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아시아라는 대륙의 넓이가 워낙 크다 보니 각 나라와 민족의 풍습이나 종교, 관습이 많이
틀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은 매우 낮은 상태가 아닌가 한다.
내가 접하는 아시아는 주로 동북쪽의 중국과 일본이고 이 두 나라는 근대 아시아의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다른 이질성을 지니고 있는 나라들이다.

조금만 더 내려가 동남 아시아나 중앙 아시아쪽으로 보면, 내가 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무지
한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시아 민족은 아직도 미개하고 게으르며 못살고 더러운
나라들이다. 뿌리 깊은 서양에 대한 해바라기성 찬미 의식은 속물적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오히려 같은 역사적 시공간과 사건을 겪은 아시아인들은 차별하는 의식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아시아 리얼리즘'전은 근대 아시아 각 나라와 사회의 발전을 그림으로 보고
제국주의 침탈에서 독립까지, 독립 후 국가건설에 까지 각 나라의 당시 시대상을 비교
조명해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문제는 '아는 만큼 보이는 그림'이 모르는 만큼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림을 감상하면서, 내가 느낀 건 아시아에 대해 나는 참으로 무지하고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베트남.....주로 동남아 국가에 대해서는 정말 무지
하다는 사실 하나는 똑바로 깨닫고 왔다.  

지식과 문화의 편중...그리고 편견...
이주노동자 문제도 그렇고 다문화사회에 대한 사회적 갈등의 문제도 그렇다.
서구의 시각이 아닌 같은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많은 이주민들에게 관용없는 무자비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런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그림... 좋은 기획이고 시도로 보인다.
다만, 중국 북쪽이나 중앙아시아의 그림들이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고 할까?
아시아라는 대륙은 정말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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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06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곳엘 다녀오셨군요.

2010-08-06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6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린산책 2010-08-06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관심갑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려용^^

머큐리 2010-08-06 12:22   좋아요 0 | URL
기회되시면 한 번 보세요...^^

pjy 2010-08-06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시아에서 우리나라도 제대로 모르겠는데요~뭐 ㅡ,.ㅡ;
너무 서구와 일본식 역사관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전 희안하게 백의 민족하면 우리나라보단 베트남의 아오자이가 더 많이 생각납니다^^;
솔직히 한복은 화려한 색이 먼저 떠오르는데요ㅋ
그냥 인상깊은 이미지에 따라 좌우되는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머큐리 2010-08-09 09:53   좋아요 0 | URL
그말도 맞는데요..가만 보면 우리나라 작가와 작품들보다 서양작가와 작품들을 더 많이 알고 있는거 같아요...반성!!

비로그인 2010-08-07 0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느낌을 다 알진 못하겠지만 올려주신 감상기 덕분에 희미하게나마 마음에 인상이 남습니다. ^^

동양권도 옛날 옛적부터 자기 이름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좀 더 역사적인 그림들이 더 많이 남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고요.

머큐리 2010-08-09 09:54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
바람결님은 무언가 지적이면서 포근할 것 같은 이미지에요..ㅎㅎ
 

[이주헌의 알고싶은 미술 21] 클림트와 성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구스타프 클림트 전이 비싼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황금빛 유혹’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그의 예술은 이처럼 어디서나 대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그 ‘치명적인 관능’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클림트의 걸작 <금붕어>를 보자. <금붕어>는 깊은 심연에서 벌거벗은 세 여인이 부유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두 여인은 관객을 향해 등을 돌리고 있으나, 그 자태가 앞을 바라보는 여인 못지않게 유혹적이다. 특히 살짝 뒤를 돌아보며 빨간 머리를 휘날리는 맨 아래쪽 여인은 노골적인 도발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그림은 그의 예술을 폄훼한 당시 사회 지도층의 위선과 몰이해를 비판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그 무렵 클림트는 교육부의 요청으로 빈 대학에 설치할 ‘학부 회화’를 그리고 있었다. <철학>, <의학>, <법학>의 세 주제로 구성된 대작 ‘학부 회화’는, 이 세 학부를 ‘어둠을 극복한 빛’의 상징으로 나타내 이성의 위대함을 표현하도록 되어 있었다 


관능의 순수한 가치 부각 ‘가부장적 도덕률’ 파괴
근원적 존재로서의 여성 복권…남성성과 화해도
  

 

하지만 중도에 공개된 ‘학부 회화’는 대학 당국과 사회 지도층을 경악하게 했다. 이성의 승리는커녕 관능적인 누드 이미지들이 욕망과 무질서의 곤죽을 빚어내는 듯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87명의 빈 대학 교수가 교육부에 작품 설치 계획의 철회를 요구했고, 이에 격분한 클림트는 앞에서 말한 <금붕어>를 그려 그들의 태도를 비난했다.

<금붕어>에서 우리가 인상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에로티시즘의 승리에 대한 화가의 확신이다. 심연을 떠도는 여인들은 그들의 관능으로 어떤 명철한 지성이라도 다 녹여버릴 태세다. 클림트는 세상의 그 어떤 학문도 이 생명의 힘을 이길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게는 모든 지식과 문명이 다 이 힘의 자식이었다.

작품을 좀 더 분석해 보자. <금붕어>뿐 아니라 <물뱀> 등 클림트의 그림에서는 곧잘 심연이 등장한다. 이 물은 한마디로 태초의 양수다. 모든 생명활동, 나아가 이성도, 학문도, 문명도 이 태초의 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 작동원리가 에로티시즘이다. 이 원리를 그리지 않고 어떻게 이성과 학문의 진면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고, 존재의 시작은 성에서 비롯되며, 성의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이성이든 문명이든 호르몬을 전제하지 않고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에로티시즘의 진실을 클림트는 부단히 조형으로 표현하고자 애썼던 것이다.

클림트가 활동할 당시 빈은 파리 못지않은 예술과 사상의 중심지였다. 부르주아지의 문화적 열정은 빈의 살롱과 카페, 극장을 풍요롭게 했다. 하지만 곧(1918년) 무너져 내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로서 빈은 구체제의 모순이 압축된 곳이었다. 핵심 정치세력인 자유주의 세력은 사회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궁정귀족, 관료 등 보수적인 구세력과 타협하면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회주의,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등 제반 세력의 도전을 받아 1900년경 의회권력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무기력하고 분열된 사회에 대한 젊은 세대의 거부는 자유주의가 내세운 ‘합리적 인간’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고, 이는 무의식과 본능의 세계로 대변되는 ‘심리적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일종의 오이디푸스적 반항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지적 반항이 있었기에 프로이트의 위대한 정신분석학적 업적과 클림트의 우상 파괴적인 에로티시즘의 미학이 탄생할 수 있었다. 이는 어떤 면에서 해체를 앞둔 사회였기에 가능한 문화의 묵시록적 발효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은, 클림트 발효된 에로티시즘 안에는 나름의 페미니즘적 성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로티시즘은 곧잘 성 상품화의 수단으로 지탄 받는다. 하지만 클림트의 전시에 유독 여성 관객이 많이 몰리는 데서 알 수 있듯 클림트의 에로티시즘은 그런 부정적인 미학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퇴폐적이고 퇴영적인 요부들로 가득한 것 같으나, 그들은 한낱 유혹자라기보다는 생성과 창조의 여신인 대모(大母, Great Mother)에 가깝다.
 

전통사회는 물론 근대사회도 기본적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남성 중심의 사회는 본질적으로 이분법의 사회다. 이성, 문명, 진보는 남성의 세계에 속하고, 광기, 자연, 정체는 여성의 영역에 속한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 아래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은 곧잘 요부로 매도됐다. 클림트의 시대의 유럽 여성운동은 1884년 프랑스와 1894년 독일에서 본격적인 여성교육기관을 탄생시켰고, 핀란드(1906), 노르웨이(1913), 러시아(1917) 등지에서 참정권을 획득했다. 이런 진보적인 여성운동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제재는 그 선구자들에게 요부의 탈을 뒤집어씌우는 것이었다.

클림트의 ‘요부상’은 얼핏 이런 가부장문화의 ‘네거티브 전략’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디트> 등 관능의 절정을 보여주는 그의 ‘요부’들은 오히려 에로티시즘이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갖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근본적으로 우주의 순환과 생성의 원리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관능의 순수한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가부장사회의 도덕률을 깨고 그럼으로써 대모, 곧 근원적 존재로서 여성을 인정하게 하는 힘이 그의 예술에는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에로티시즘의 미학으로 여성을 복권시킨 그의 그림은 나아가 남성과 여성, 남성성과 여성성의 진정한 화해도 시도한다. 그 대표적인 걸작이 유명한 <키스>다. 그림의 구성은 단순하다. 꽃이 핀 벼랑 위에서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고 남자는 여자의 뺨에 키스를 한다. 둘 다 금빛 옷을 입었는데, 금장식은 남녀의 옷에 그치지 않고 여자의 뒤꿈치에서 남자의 어깨 부분까지 일종의 광배 같은 것을 형성한다. 옷과 광배를 한데 이어 보면 남성의 성기 형태가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지금 남성 성기 모양의 광채 안에서 두 사람의 젊은 남녀가 진한 화해의 키스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남성 안의 여성성과 남성성의 화해를 의미한다. 
 

가부장사회에서는 성역할을 엄격히 구분하기 때문에 남성에게도 여성성이 있고 여성에게도 남성성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인정되지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주어진 성역할을 철저히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남성 안의 여성성과 여성 안의 남성성은 시종일관 억압을 당한다. 여성 억압이 남성 억압이기도 한 것은 그것이 남성 안의 여성성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남녀 화해란 남성과 여성의 화해를 넘어 이렇듯 남성 안의 여성성과 여성 안의 남성성이 그 반대의 정체성과도 화해를 하는 것이다. 남자도 사람들 앞에서 울 수 있고 여자도 ‘사내다운’ 호걸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할 때 남성과 여성은 서로 동등한 인간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동료가 될 수 있다. 클림트의 <키스>는 바로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30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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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The Early Renaissance in Florence


Masolino da Panicale
The Annunciation, probably 1425/1430

 


Masolino da Panicale
The Archangel Gabriel, probably 1420/1430

 


Masolino da Panicale
The Virgin Annunciate, probably 1420/1430

 


Florentine 15th Century
Matteo Olivieri, 1440/1450

 


Florentine 15th Century
Profile Portrait of a Young Man, 1430/1450

 


Domenico Veneziano
Madonna and Child, c. 1445

 


Domenico Veneziano
Saint Francis Receiving the Stigmata, c. 1445

 


Domenico Veneziano
Saint John in the Desert, c. 1445

 

 


Fra Angelico and Fra Filippo Lippi
The Adoration of the Magi, c. 1445

 


Attributed to Fra Angelico
The Entombment, c. 1445

 


Fra Angelico
The Healing of Palladia by Saint Cosmas and Saint Damian, probably 1438/1443

 


Fra Angelico
The Madonna of Humility, c. 1430

 


Fra Filippo Lippi
The Annunciation, probably after 1440

 


Fra Filippo Lippi
Madonna and Child, 1440/1445

 


Fra Filippo Lippi and Workshop
The Nativity, probably c. 1445

 

Fra Filippo Lippi
Saint Benedict Orders Saint Maurus to the Rescue of Saint Placidus, c. 1445

 

 


Andrea del Castagno
Portrait of a Man, c. 1450

 


Andrea del Castagno
The Youthful David, c. 1450

 


Benozzo Gozzoli
The Dance of Salome, 1461/1462

 


Benozzo Gozzoli
The Raising of Lazarus, probably 1497

 


Benozzo Gozzoli
Saint Ursula with Angels and Donor, c. 1455

 

 


Fra Carnevale
The Annunciation, c. 1448

http://blog.naver.com/geist10.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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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14세기와 15세기 초, 시에나(Siena)의 미술

http://blog.naver.com/geist10

Simone Martini
The Angel of the Annunciation, c. 1333

 

 

Paolo di Giovanni Fei
The Assumption of the Virgin, probably c. 1385

 

 

Paolo di Giovanni Fei
The Presentation of the Virgin, c. 1400

 

 

Gentile da Fabriano
Madonna and Child, c. 1422

 

 

Gentile da Fabriano
A Miracle of Saint Nicholas, 1425

 

 

Andrea di Bartolo
The Crucifixion, c. 1415

 

 

Andrea di Bartolo
Joachim and the Beggars, c. 1400

 

 

Andrea di Bartolo
Madonna and Child, c. 1415

 

 

Andrea di Bartolo
The Nativity of the Virgin, c. 1400

 

 

Andrea di Bartolo
The Presentation of the Virgin, c. 1400

 

Master of the Osservanza (Sano di Pietro?)
The Death of Saint Anthony, c. 1430/1435

 

 

Master of the Osservanza (Sano di Pietro?)
The Meeting of Saint Anthony and Saint Paul, c. 1430/1435

 

 

Master of the Osservanza (Sano di Pietro?)
Saint Anthony Distributing His Wealth to the Poor, c. 1430/1435

 

 

Master of the Osservanza (Sano di Pietro?)
Saint Anthony Leaving His Monastery, c. 1430/1435

 

 

Giovanni di Paolo
The Adoration of the Magi, c. 1450

 

 

Giovanni di Paolo
The Annunciation, c.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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