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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들은 왜 그림을 그렸을까?  

구석기 동굴벽화에 나타나는 표현 능력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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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공동체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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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의 모습은 잘 안 그렸을까? - 지배, 피지배 의식의 형성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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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들의 자연주의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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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본격화된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이 한국에 가져다준 충격은 매우 컸다. 당장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하는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컸지만, 못지 않게 지적, 심리적 충격도 컸다. '승승장구하던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로의 편입 만이 한국의 유일한 살 길'이라는 우파의 주장에 좌파 역시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표상인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지난해 한국 지식사회에서는
헝가리 출신의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1886~1964)가 주목받게 됐다. 1990년대 폴라니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던 홍기빈 박사(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는 "솔직히 대학원 논문을 쓸 때만 해도 한국에서 폴라니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홍 박사는 최근 폴라니의 대표작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길 펴냄)을 번역했다.

어쨌든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고 평가되는 현 위기에서 마르크스도 아닌, 케인스도 아닌, 폴라니가 신자유주의와 다른 경제질서를 모색하는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홍기빈 박사는 최근 폴라니 열풍에 대해 "폴라니가 하지 않은 얘기를 씌워서 비판하거나 환상을 갖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홍 박사는 지난 9일부터 4회에 걸쳐 참여사회연구소 주최로 '위기의 시대에 읽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강연을 갖는다. 홍 박사의 강연을 요약, 발췌해 게재한다. <편집자> 

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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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님 서재에서 퍼온다.

 

작년부터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은 정치철학자라면 단연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다. 그의 주저 <불화>도 소개될 예정이기에 (일부 불만에도 불구하고) '랑시에르 붐'은 한동안 더 이어질 듯하다.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론을 소개/해명하는 글이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필자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와 <무지한 스승>(궁리, 2008)을 우리말로 옮긴 양창렬씨다.  

 

고대신문(09. 05. 10) 민주주의는 모든 정체의 아나키적 원리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원상 ‘인민의 지배’를 뜻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단어는 아무데나 쓰이고, 그만큼 의미 없는 단어가 되었다. 좌우를 막론하고 민주주의를 표방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 앞에 붙는 수식어에 따라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을 가리킨다. 다양한 수식어만큼이나 민주주의는 닳아빠진 개념이 된 듯하다. 이처럼 모호한 개념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랑시에르에 의하면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 관념들의 고유함은 그것이 다의적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 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다를 수밖에 없고, 바로 그 차이가 불화를 가능하게 한다. 정치적 투쟁은 바로 그 단어를 전유하기 위한 투쟁이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되찾기 위해 랑시에르는 그 단어의 희랍적 어원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분절을 되짚어 본다. 특히 플라톤이 범례적으로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 주목하면서 말이다.  

『국가』, VIII권에서 플라톤은 여러 정체들을 검토하면서 민주정을 과두정에 대한 빈자들의 전복으로 간주한다. 이 아카데미아의 철학자는 민주주의적 인간형을 서술하는 데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정체란 정부 형태만이 아니라 그 체제 하에서 공통으로 살아가는 존재 방식과 습속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주의적 인간은 노예와 구별되는 신분상의 자유, 의회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 뿐 아니라,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 플라톤은 561c-e에서 이소노미아를 누리는 사람의 삶을 묘사하는 데, 이 민주주의적 인간형은 오늘날 공화주의자들이 비판하는 소비사회의 탈근대적 개인을 예견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 제멋대로 하는 자유는 민주정 자체가 정체들의 잡화점과 비슷한, 무정부 상태의 다채로운 정체라는 사실에 기초한다.

플라톤은 이소노미아에 가장 분개하는데, 그것은 법 앞의 평등만이 아니라, 오히려 법을 비롯한 공적 사안을 결정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평등을 가리킨다. 그것을 보장해주는 것은 바로 추첨이었다. 추첨은 통치를 ‘아무나’에게 ‘우연’하게 맡길 뿐, 통치자의 어떤 자질이나 지식도 따지지 않는 제도다. 지식과 정치적 탁월함을 가진 자에게 기하학적 평등에 따라 통치의 특권이 돌아가야 한다고 보았던 플라톤에게 추첨은 무질서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는 정치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가 있는가라는 랑시에르의 주요한 화두와 연결된다.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320d-324d)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신화에 주목하자. 에피메테우스는 다른 생명체들에게는 기술을 나눠주면서 정작 인간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성질들을 부여하는 것을 잊는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에게서 불과 기술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흩어져 살 뿐, 도시국가에 모여 살지 못한다. 결국 제우스는 멸종할 위기에 처한 인간에게 정치적 덕(염치와 정의)을 주기로 작정한다. 헤르메스가 그 덕을 기술을 나눠주듯 분배해야 하느냐고 묻자, 제우스는 모두가 그 몫을 가질 수 있도록 분배하라고 답한다. 소수만이 그 몫을 갖는다면 도시국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여기에서 프로타고라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말해주고 있다. 정치와 관련해서 전문가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평등한 능력을 갖고 있다. 심지어 이 평등이 모든 정치 질서, 모든 정치 공동체를 정초하는 전제가 된다. 랑시에르는 이것을 ‘평등 전제’라고 부른다. 앞서 언급한 추첨 그리고 프로타고라스가 들려준 신화가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누가 누구를 정치적으로 지배해야할 자연적 원리(archē)는 없다는 사실이다. 모든 정부 형태는 이 원리의 부재, 정당성의 부재에 토대를 둔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주의는 여러 정체들 중 하나의 정체가 아니라, 모든 정체의 아나키적 원리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 평등전제를 입증하고 활성화시키는 정치를 뜻하기도 하며 그것은 반드시 정치적 주체화를 거친다. 이 점에서 데모스라는 단어가 내포한 이중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인민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고, 빈자들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인민은 본디 정치적 주체인 동시에 배제된 자라는 이중적 신체를 가진 분열된 주체인 것이다. 정치적 주체화는 항상 말과 사물 사이의 틈에서 생겨난다. 가령 헌법에 기록되어 있는 인민의 권력을 몫 없는 자들이 실제로 행사하려할 때 그것은 정치 질서 자체에 분리와 불일치를 가져오는 사건이 됨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빈자들, 노동자들, 여성들도 인민인가?’, ‘우리는 이 나라를 통치할 주인의 범주에 셈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들은 언제나 말과 사물, 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폭로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내는 역량과 행위야말로 정치요 민주주의다.  



랑시에르에게 가장 많이 쏟아지는 비판 중 하나는 그가 정치를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것, 다시 말해 드문 사건으로 묘사하며, 선거나 투표와 같은 제도를 치안의 장치로 보는 등 제도의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고로 정치를 어떻게 이어갈지, 민주주의 또는 평등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에 대해 그가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비판에 대한 몇 가지 답변들로 결론을 대신하자.

첫째, 우리는 앞에서 랑시에르에게 민주주의란 하나의 정체나 통치 형태가 아니라 정치 자체의 전제이자 원리임을 밝혔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다. 둘째, 랑시에르는 바디우처럼 모든 투표에 기권하라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는 지난 2005년에 있었던 유럽헌법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지배자들의 합의에 맞서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 투표 속에서 인민주권을 연출하는 한 방식이라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작년에 쇠고기 재협상과 대통령 재신임을 국민투표에 부치자던 주장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사실 그것은 인민으로 바꿔 읽을 수 있으며, ‘아무나’에게로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으로부터 나온다’는 인민주권의 원리를 정치 무대에 올리는 한 실험이 될 수도 있었다.  

셋째,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에서 짧은 임기로 연임할 수 없게 의회의 대표를 뽑고, 국가의 공무원이 인민의 대표를 중임할 수 없게 만드는 등 고대 그리스의 ‘추첨’을 연상시키는 주장들을 한다. 물론 이것들은 대의제를 ‘민주적’으로 이끄는 최소치이지 그러한 제도 변화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넷째, 랑시에르는 바리케이드가 세워지고 무너지며, 촛불에 불이 붙고 사그라지는 짧은 봉기의 순간에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최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그는 ‘사건과 돌발’의 사상가가 아니라 ‘해방’의 사상가다. 역사는 국가 형태에서 벗어나는 공통적인 것의 형태들을 발명하려는 다양한 노력과 실천들의 망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그가 간헐적인 사건들의 불연속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선형적 시간이 아니라, 공존하는 여러 시간성들의 집합을 통해 역사를 사유하기 때문이다.(양창렬_파리1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09. 0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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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님 서재에서 퍼온다. 

 

이번주에 나온 가장 중요한 번역서는 물론 칸트의 <판단력 비판>(아카넷, 2009)이다. 3대 비판서를 백종현 교수가 혼자 힘으로 완역한 셈인데, 이로써 최재희(이석윤)판 3대 비판서가 수십 년만에 완전히 세대교체되었다. 기념비적인 업적이며 역자가 '한국의 칸트'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겠다. 여하튼 덕분에 한국어로 칸트를 읽어볼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됐다(나는 대학 2학년 때인가 최재희판 <순수이성비판>을 읽다가 그만 둔 기억이 있다). 물론 온전한 세대교체 및 한국어 번역의 정착은 일반 독자들뿐 아니라 철학전공자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읽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가령 학술논문에서도 백종현판 칸트가 인용된다면 비로소 '한국어본'의 소임을 완수하게 되는 것). 한국어로서 칸트는 아직 '젊은' 철학자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9. 05. 16) 근대 정신세계 혁신, 그 파괴와 건설의 완결편 

“그의 철학은 너무나도 파괴적이었고 많은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의 사상은 근대 의식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노르베르트 힌스케 <현대에 도전하는 칸트>)


이 문장의 주인공이 바로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다. 근대 철학의 혁신자이자 계몽 정신의 산마루였던 칸트는 파괴자였던 것만큼이나 건설자였다. 그는 낡은 세계를 무너뜨리고 정신의 새 건축물을 세웠다. 이 파괴와 건설의 논리적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이 그의 3대 비판서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다. 이 세 비판서 가운데 마지막 저작 <판단력비판>이 칸트 전문 연구자 백종현 서울대 교수의 번역과 주해를 거쳐 새롭게 나왔다. 앞서 백 교수는 <실천이성비판>(2002)과 <순수이성비판>(2006) 번역·주해본을 펴낸 바 있다. 이로써 칸트 3대 비판서가 백종현판으로 완역됐다. 40년에 걸친 칸트 연구의 결실이다.  



우리에게 각인된 칸트의 이미지는 파괴자라는 말이 주는 격정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일점일획의 오차도 없는 단조롭고 엄격하고 규칙적인 삶을 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쾨니히스베르크의 걸어다니는 시계가 그의 이미지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후년의 칸트를 칸트 생애 전체로 확대한 모습이다. 젊은 시절 칸트는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내기 당구를 즐기고 살롱과 클럽을 드나들고 흥겨운 대화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사교계의 총아, 멋쟁이 신사가 칸트였다. 그랬던 그는 1770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 정교수 취임을 전후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칸트는 사교계에 발을 끊고 은둔자가 됐다. 그 무렵 하나의 거대한 문제가 그를 엄습했던 것이다. 철학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적 의무감이었다. 골방에 틀어박힌 칸트는 고투에 고투를 거듭한 끝에 10여 년 뒤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책이 바로 <순수이성비판>(1781)이다. 칸트는 이 책에 이어 7년 뒤 <실천이성비판>(1788)을 완성했고, 다시 2년 뒤 <판단력비판>(1790)을 세상에 내보냈다. 3대 비판서를 완성한 후의 칸트는 젊은 날의 습성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노인이 돼 있었다.

칸트가 세 주저에 ‘비판’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그가 계몽정신의 아들임을 보여준다. <순수이성비판>의 초판 머리말에서 그는 자신의 시대를 “모든 것이 비판에 부쳐져야 하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라고 규정한 뒤 이렇게 말한다. “이성은 오직, 그 자신의 자유롭고 공명정대한 검토를 견뎌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꾸밈없는 존경을 승인한다.” 이성이 모든 것을 비판에 부친다면, 이성 자신도 그 비판의 법정에 서야 할 것이다. 이성이 이성 자신을 소환해 심문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칸트 비판철학의 놀라운 전환이다. 인간 이성이 이성 자신을 규명함으로써,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인식할 수 없는 것,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과 행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간해 내는 것이 이성 비판의 제1과제라고 칸트는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 비판이란 이성 자신의 기능과 능력을 밝히고 그 한계를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서 그 한계를 모르는 이성은 가차 없이 탄핵당한다.  




칸트의 비판 작업은 정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냈다. 이성의 자기비판 작업을 통해 칸트는 우리 정신이 세계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를 자기 안에 가지고 있으며, 그 인식을 통해서 사물 자체의 존재가 확실해진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인간 이성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현상세계의 창조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신이 담당하던 창조자 구실이 인간의 이성 안으로 옮겨졌다. 세계 존재의 근거가 신에게서 인간으로 바뀐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의식의 규정을 받는다는 이 발상, 신의 업무를 인간의 업무로 바꿔놓은 이 발상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그렇게 의식이 창조자 노릇을 한다고 해도 제멋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의식은 엄격한 법칙을 따른다. 이렇게 의식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자연의 법칙’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순수이성비판>이라면, 그런 자연의 법칙 안에 종속돼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유의지로써 세계를 바꾸고 도덕적 이상을 구현해 가는 정신 능력의 근거를 규명하는 것이 <실천이성비판>이다. 물론 이때도 정신은 엄격한 내적 법칙 곧 도덕법칙을 따른다. <판단력비판>은 이 두 저서 사이 가교 노릇을 하는 책이다. 판단력은 자연과 자유 사이,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다. 행위하고 실천하려면 먼저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하는 마음의 능력의 원천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칸트가 먼저 탐구하는 것이 ‘미적(미감적) 판단력’이다. 이 미적 판단력 규명이 이후 철학적 미학의 진정한 출발점을 이룬다. 나아가 칸트의 미적 판단력은 현대의 정치철학에도 자양분을 제공하는데, 한나 아렌트의 ‘정치 판단 이론’은 칸트의 이 판단력비판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명섭 기자)     

 

세계일보(09. 05. 13) 칸트 3대 저작물 완역 마침표 찍다

서양의 세 문화기둥인 그리스·로마 문화와 과학, 기독교 사상은 칸트에 이르러서야 최초로 통합됐다. 그는 이 세 문화기둥을 동시에 한 시야에 두고 반성하며 설명했다. 한국 철학사와 정신사에 칸트 철학이 미친 영향도 지대했다. 한국에 칸트 사상이 유입된 것은 20세기 초. 우리 사회가 19세기 말부터 서양전통에 합류한 게 계기가 됐다. 우리 사회 저변에는 유교적인 가치 체제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서양의 가치가 사회 유지의 잣대가 되고 있다. ‘사회 정의’라는 문제만 하더라도 ‘서양 법사상’이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 흐름의 핵심에 ‘칸트’가 있다. 칸트 철학은 우리보다 앞서 서양철학을 받아들였던 일본을 통해서였다. 한국 철학박사들 중 ‘칸트’를 주제로 학위를 받은 사람은 100명이 훨씬 넘는다.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를 주제로 학위를 받은 사람들보다 많은 수치다. 

이처럼 철학사에서 칸트의 비중이 컸으나, 그간 그의 사상이 ‘동일 학자의 일관된 설명’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칸트의 3대 저작물인 ‘순수이성비판’(1781년) ‘실천이성비판’(1788) ‘판단력비판’(1790)은 그의 인식론을 잘 담아냈으나, 한 학자가 풀어낸 경우는 없었다. 각기 지식(眞)과 행위(善)의 영역을 논한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에 더해 감정 영역인 ‘미(美)’의 문제를 다룬 ‘판단력 비판’을 한 사람이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백종현(59)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성과는 눈에 띈다. 백 교수는 최근 ‘판단력 비판’(아카넷)을 내놓으며 칸트의 3대 저작물 완역에 이정표를 찍었다. 일본 저작물을 답습하던 관행을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칸트의 3대 저작물을 한 학자가 완역한 경우는 외국에서도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게 책을 출간한 아카넷 오창남 편집장의 설명이다. 



칸트가 10년에 걸쳐 3대 저작물을 내놓았듯 백 교수도 3대 저작물 번역에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했다. 2002년 ‘실천이성비판’에서 시작해, 2006년 ‘순수이성비판’를 거쳐 올해 ‘판단력비판’을 번역하며 작업을 마무리했다. 백 교수는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 저수지’에 모이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이 저수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칸트 철학이 우리 사회에 주는 뜻은 각별하다”고 설명한다.

“사람의 여러 가치를 논했던 칸트 철학은 ‘인간 소외’가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는 현실에서 더 유용성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여러 ‘가치’가 있는데, 이 가치를 가치있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칸트는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했어요. 사람이란 결함이 있는 존재인데, 이를 극복하는 가치있는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나오지요.”

우리 사회의 좌우갈등과 빈부격차 등 문제점도 칸트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법률적 평등과 시민적 자유에서 조화를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하면 갈등의 강도가 낮아진다고 백 교수는 설명한다. 사회의 소외층 혹은 사회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중요하다. 백 교수는 “소외층들이 스스로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라며 “약자가 감사하다고 여기는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의 3대 저작물 완역은 일본 영향을 받았던 선배 학자들의 한계를 건너뛰었다는 의미가 추가된다. 또 통일되지 않았던 철학 언어가 자리를 잡게 된다는 점도 의미 있다. 일례로 그간 국내 저작물에서 ‘오성’(깨닫는 능력)으로 번역됐던 독일어 ‘VerStand’(아는 능력)는 본래의 뜻인 ‘지성’으로 풀이했다. 백 교수는 칸트의 3대 저작물 완역에서 더 나아가 4대 저작물의 하나로 그의 종교 철학을 다룬 ‘순절한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를 번역하고 있다. 2∼3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번역이 끝나면 칸트 사상의 ‘진선미성’(眞善美聖)이 완결되는 셈이다.(박종현 기자) 

09. 05. 15.  



P.S. <순수이성비판>의 해설서로는 백종현 교수의 <존재와 진리>(철학과현실사, 2008)가 있지만 입문서도 겸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저자가 옮긴 카울바하의 <칸트 비판철학의 형성과정과 체계>(서광사, 1992)가 예전엔 입문서 역할을 했었다. 김상봉 교수의 <자기의식과 존재사유>(한길사, 1998)는 짐작에 우리말로 씌어진 가장 쉬운 칸트 소개서가 아닐까 싶다('쉽다'는 건 어디까지나 다른 책들과의 비교에서만 의미를 갖지만). 칸트 전공자인 김상봉 교수는 언젠가 <판단력 비판>을 옮기겠다고 한 적이 있어서 나는 김상본판이 백종현판보다 먼저 나올 줄 알았다.  

개인적인 바람을 적자면, 승계호 교수의 입문서 <칸트>가 꼭 좀 번역/소개됐으면 싶다. 영어권의 칸트 입문서로 한국인 학자가 쓴 책이 읽힌다는 건 자랑할 만한 일 아닐까. 정작 이런 책을 번역하는 데에는 국내 학자들이 왜 인색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바람을 더 적자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번역 이후에 백종현 교수가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마저 번역해주면 좋겠다. 한국의 헤겔 전공자나 헤겔학자들은 임석진판을 넘어서는 <정신현상학> 번역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므로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건 '부지런한' 칸트 전공자가 아닐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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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 서평 / 진태원

 

1.
뢰즈와 가타리, 또는 들뢰즈-가타리, 또는 들뢰즈가타리는 두 개의 구분되는 고유명사이자 서로 뗄 수 없게 연결된 머리 둘 달린 <괴물>(이들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에서)이면서, 또한 수없이 많은 흐름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익명의 뿌리이기도 하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무언가 새로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선 그들이 이러한 통일성으로서의 다양성, 다원성으로서의 일원성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철학사에서 공동의 저술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1846), 『공산당 선언』(1848) 등을 공동으로 저술했으며, 그 외에도 그들의 작업은 늘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들뢰즈와 가타리에 조금 앞서 루이 알튀세르는 자신의 제자들이자 동료들인 발리바르, 마슈레, 랑시에르, 에스타블레와 함께 공동으로 저 유명한 『자본을 읽자』(1965)를 발표했다. 하지만 들뢰즈와 가타리의 작업은 두 개의 분리된 인격체, 두 명의 독립적인 사상가가 결합해서 그들이 각자 이전에 추구해 왔던 사상과 구분되는 새로운 사상의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례들과 구분되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2.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은 또한 그 자체로도 매우 새롭고 매우 강력하다. 매우 새롭다는 것은 이들의 사상이 플라톤 이래 서양 사상의 주요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노선을 제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매우 강력하다는 것은 이러한 노선이 플라톤주의 철학 또는 초월성의 철학과 지배권력 사이의 본질적 연관성을 드러내 주고, 이를 넘어설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은 일차적으로 존재행동학(onto-ethologie)의 관점에 따라 파악될 수 있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1968),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1968) 및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1972) 『천개의 고원』(1980) 등에서 체계화된 존재행동학의 요소들은 존재의 일의성 또는 <고른 판>과 역량의 존재론 또는 <기관 없는 신체> 및 일반행동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이와 반복』에서부터 말년의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에 이르기까지 존재의 일의성은 들뢰즈와 가타리 철학의 열쇠어로 남아있다. 존재의 일의성(univocite)이란 일차적으로는 존재가 하나의 의미로 말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왜 존재가 하나의 의미로 말해진다는 사실이 그토록 중요할까? 이는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의 근간을 이루어온 일체의 초월성의 담론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존재의 일의성을 확인하고 체계화하는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존재의 일의성, 존재가 하나의 의미로 말해진다는 것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복합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다. 존재의 일의성의 핵심은 단순히 존재의 하나의 의미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원론으로서의 일원론에 있다. 곧 존재와 존재자들, 근거와 근거지어지는 것들 사이의 존재론적 구분이나 간극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존재의 근원적인 다양성을 인식하는 데 있다. 이들에게 스피노자(또는 베르그송)의 철학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에 따르면 스피노자(또는 라이프니츠)는 <긍정적 무한>의 철학자다. 곧 그는 무한을 단순히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무한의 내재적 인식가능성을 긍정하면서, 다양한 무한들, 따라서 환원 불가능한 다양한 질적 차이들의 소통, 관계의 문제를 자신의 철학의 핵심 문제로 삼았다. 이 때 각각의 무한들은 정의상 자율성과 동등성을 함축하기(이것이 소위 <평행론>의 존재론적 함의다) 때문에, 무한들의 소통, 관계는 항상 이미 타율성과 종속관계를 함축하는 초월적 질서인 <신학적 구도>가 아니라, <내재적 평면> 또는 <고른 판> 위에서 이루어진다.

존재론의 영역에서 초월적 구도, 수직적 위계관계를 배제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내재적 평면 위에서 충분한 합리성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존재자들 사이의 평등한 자유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존재론적 일의성은 항상 이미 역량(potentia/puissance)의 존재론 또는 기관 없는 신체론을 함축하며, 이를 요구한다.

역량의 존재론은 서양철학의 두 가지 전통에 대한 비판적 대결을 함축한다. 이 두 가지 전통 중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 형상론이고, 다른 하나는 원자론이다. 이 두 가지 전통은 서로 비판적인 긴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기에 이들은 존재자들의 생성, 즉 개체화의 문제를 내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공통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곧 이 두 전통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요소들(이것이 형상이든 원자이든)의 관점에서 생성의 문제를 다룰 뿐, 요소들 자체의 생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의 문제는 다루지 못하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보기에 이는 이들이 존재자들의 내재적 역량을 단순한 가능태(le possible), 곧 그 자체로는 비실재적이며, 초월적인 외부의 원리의 작용에 의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는 허구화된 힘으로 간주하는 데서 비롯한다. 하지만 스피노자-니체-베르그송을 따라 이들이 강조하고 있듯이 역량은 그 자체가 실재적인 힘이며, 역량의 내재성 덕분에 존재자들은 자신들의 관계설정을 위해 초월적 원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역량의 존재론의 관점에서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운동(비실재적인 무에서 실재적인 현실의 창조라는 점에서 이는 본질적으로 신학적이다)이 아니라 잠재성에서 현행적인 것들(actualites)로의 내재적 차이화의 운동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역량의 존재론의 논리적 귀결은 주체와 객체, 사물과 인간,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존재론적 구분이 실격되고 그 대신 기술적 존재자를 포함한 모든 존재자들의 활동의 문제를 다루는 행동학(ethologie)의 문제가 실천철학의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에톨로지는 원래는 동물들의 행태를 다루는 생물학의 하위분과중 하나이지만,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이는 일의성과 역량의 존재론을 완성하는 철학 체계의 한 부분으로 격상된다. 이런 행동학의 문제설정에 따르면 유와 종의 분류법 대신 역량의 관점에서 존재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분류의 핵심 기준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예를 들면 짐을 끄는 말은 경주용 말보다는 짐을 끄는 소와 같은 부류로 분류된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행동학에서는 목적론적으로 위계화되고 질서지어진 기관과 기능보다는 정서/변용(affection)과 배치가 실천철학의 기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런 존재행동학의 체계가 다루려고 하는 실천적 문제는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1670)에서, 그리고 빌헬름 라이히가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에서 각자 제기했던 질문이다. “수 세기에 걸친 착취 이후에도 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도 <현실적으로> 착취와 예속을 <원할> 만큼, 모욕과 착취를 감내하고 있는가? ... 대중들은 전혀 순진한 얼뜨기들이 아니다. 어떤 지점, 어떤 일련의 조건들 아래에서 그들은 파시즘을 <원했으며>, 해명될 필요가 있는 것은 대중들의 욕망의 이러한 도착(perversion)이다.”(『안티 오이디푸스』) 왜 대중들은 자신의 지배를 욕망할까?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이는 대중들의 본질을 이루는 대중들의 역량이 바로 대중들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대중과 대중의 역량의 분리를 조직화하는 것이 바로 미시 파시즘의 체계다.

이들의 미시 파시즘 이론을 이해하려면 우선 푸코의 규율권력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푸코는 17세기 이래 서양 사회의 지배 권력의 작동방식을 규율권력이라는 개념에 따라 이론화했다(특히 『감시와 처벌』 및 『성의 역사 1권』 참조). 곧 푸코는 프랑스 혁명 이래 근대 정치사상이 유포시킨 사회계약론과 주권적 주체의 관점과는 달리, 권력은 자유로운 주체들의 소유물이 아니며, 부정하고 금지하고 억압하는 힘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권력은 자유롭다고 가정되어 있고 또 스스로도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주체들을 생산해 내고,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지배의 체계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푸코는 이를 규율권력이라 부른다.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19세기 이후 규율권력은 통제권력으로 바뀐다. 통제권력은 규율권력보다 더 심층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며, 규율권력에서는 여전히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어 있는 데 반해, 통제권력에서는 이 양자가 단일한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곧 규율권력에서는 예속적 주체가 자신의 인성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지배장치에 따라 규율되고 감시되지만, 통제권력에서는 이러한 통일성이 해체되고 지배장치 자체가 예속적 주체의 구성요소에 포함된다. 따라서 통제권력은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나 가치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고, 우리가 이 욕망을 실현하는 방식들 및 능력들 자체를 통제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미시 파시즘이 존재한다.

따라서 문제는 미시 파시즘을 변혁하는 일인데, 미시 파시즘은 본질적으로 우리 각자의 근본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이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내재적 해체/변혁과 맞물려 있는 문제다. 바로 이 때문에 이들에게 생성/되기의 문제가 핵심적인 윤리적-정치적 과제로 부각된다. 그리고 다시 이들에게 다수자의 생성들(devenirs de majorite)이나 소수자의 생성들(devenirs de minorite)이 아니라, 소수화되기(devenir-minoritaire)가 중요한 과제라면, 이는 이 후자의 생성/되기가 피지배집단 내에서도 배제된 타자의 타자(여성 흑인 노예들, 이주노동자들, 동성애자들 ...), 또는 오히려 이들을 타자의 타자로 만드는 메커니즘을 변혁의 핵심 문제로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과 집단의 상호구성적 관계, 즉 배치(agencement)를 이론적 문제로 제기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이며, 이를 수행적 형식으로 제기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이다.

 4.
따라서 내가 보기에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지지자들이 결국 여전히 답변해야 할 문제는 실천의 문제인 것 같다. 리좀, 배치물, 지층, 성층작용, 판, 절편, 도주선과 단절선, 파괴의 선, 추상적 기계, 도표, 전쟁기계 등과 같이 이들의 저서에 담긴 현란한 개념들과 정신분석, 기호학, 마르크스주의, 문학 등은 물론이거니와 현대 수학 및 물리학, 화학, 결정학, 분자생물학, 동물행동학, 정신의학, 경제학, 음악 등을 넘나들면서 현란하고 난삽한 논의를 전개하는 이들의 작업에 얼이 빠지고 현기증을 느끼는 독자들에게는 슬그머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들 법하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이 모든 논의들이 여기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이들의 논의가 노동자들의 분신, 이주노동자들의 자살, 노숙자들의 추위와 굶주림에 대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이는 분명 호의적인 질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악의적인 질문도 아니다. 오히려 이 질문들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자신들의 사상을 세우면서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질문들과 다르지 않을 질문들이며, 따라서 그들의 사상을 공감하고 따르는 이들 역시 품어야 하고 또 나름대로 답변해야 할 질문들이다. 아마 그때 비로소 들뢰즈와 가타리는 두 개의 분리된 고유명사이기를 그치고, 새로운 가지들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익명의 뿌리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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