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꼼수다`의 광팬인 나는 정봉주 전의원을 구속하는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

계속 BBK의 진실이 공방이 되는 현 시점이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한 사람을 가둬둔다고 진실이 스러지진 않는다.

이번 판결로 BBK의 실체는 이상득의 비자금 실체와 한미FTA 이면의 실체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집중을 받는 사안이 되어버렸다.

 

진실로 BBK의 진실을 알고 싶어서 대법원이 부린 꼼수라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술로서 인정하겠지만.... 역사적으로 그럴 놈들이 아닌것으로 보아 그럴 의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재판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고야 말 것이다.

 

`나는 꼼수다`의 광팬으로서... 꼼수팀이 무조건 진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의혹이 제기되고 합리적으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할 사안에서 항상 이 정부는 폭력적으로 논의를 중단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기초적인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지탄 받아야 한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똑같은 의혹을 제기해도 수첩공주는 무사하고 봉도사는 구속되는 이 현실을 법으로 합리화시켜 준다는 사실.

사람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진실에 대한 목마름이 `나는 꼼수다`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듯이 진실에 대한 탄압은 또 다른 저항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탄압과 저항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제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나는지 똑똑히 지켜 보겠다. 그리고... 한가지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겠다.

어차피 단기간에 승부날 싸움은 아니니까... 끈질기게....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aint236 2011-12-2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보의 새로운 아이콘이 등장했습니다. 좌무현 우봉주! 그가 농담처럼 했던 대권주자에 한발짝 더 다가선 셈입니다.

머큐리 2011-12-23 11:45   좋아요 0 | URL
쇠는 두들길수록 단단해지겠죠..^^ 깔대기가 많이 그리울듯 합니다
 

한겨레 책소개 www.hani.co.kr/arti/culture/book/456732.html 

‘미국사 산책’ 시리즈 17권 완간
방대한 자료 바탕 ‘통섭적’ 탐구
온전한 한국현대사 이해에 도움  

미국사 산책 1~17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각권 1만4000원

3월 중순에 나온 제1권 ‘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으로 시작한 강준만 교수의 <미국사 산책>이 약 10개월 만인 12월 말에 제17권 ‘오바마의 미국’을 끝으로 마침내 완간됐다. 18권짜리 <한국 현대사 산책>과 10권짜리 <한국 근대사 산책>에 이은 이 17권짜리 미국사 ‘산책’ 또한 강 교수다운, 그리고 어쩌면 강 교수만이 해낼 수 있는 대중적 역사 쓰기의 새 경지를 보여준다. 그의 역사책은 우선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강준만의 ‘산책’에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대개의 나라 안팎 역사 서술들이 일반인들에겐 지겹고 따분한 ‘그들(전문연구자들)만의 놀이’처럼 돼 있는 현실에선 더욱 그러하다.

강 교수는 이번 산책을 시작할 때 머리말 ‘왜 통섭 미국사가 필요한가?’에서 몇가지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서술원칙을 밝혔다. 우선 세분화된 자신들의 영역만을 파고드는 전문연구자들의 ‘좁고 깊게 파기’를 지양하겠다고 했다. 그런 ‘학술적 글쓰기’가 연구실적 올리기에 좋고 또 학계 인정도 받는 길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통합적인 역사인식이라는 역사연구와 서술의 애초 목적 자체를 훼손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역사란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낳는 데 기여해왔다. 강 교수는 친미냐 반미냐, (한국사의 경우) 자학이냐 자위냐식 이분법적 역사이해의 편식이나 폐단도 그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왜 모든 분야와 주제들을 ‘비빔밥’처럼 요리해 통합적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시도가 이렇듯 외면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모든 분야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한 분야에만 집착할 경우 포괄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놓치게 되고 그로 인해 긍정과 부정의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는 건 아닌가?” 이게 강 교수의 문제의식이고 ‘산책’ 기술 기본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 교수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역사기술 원칙은 파편적으로 파고만 들 게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상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지금 한국 사회의 이해가 어딘가 크게 잘못돼 있고,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닿아 있다.

문제는 그게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냐는 것일 터. 그 능력이 바로 강준만 역사쓰기의 비결이요 요체다. 미국 조지아대, 위스콘신대에서 미국언론사·대중문화사·커뮤니케이션사를 공부한 강 교수는 굉장한 수집가다. 국내외 전문서적, 신문, 방송 보도, 잡지, 논문 등 그가 인용하는 방대한 자료들을 보면 사료를 찾는 그의 안테나와 채집망이 얼마나 강력하고 광범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기성 연구나 보도자료들을 적절히 채집하고 활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적당히 나열하는 차원을 넘어서려면 수집력 못지않게 그것을 선별해내고 재조립·재해석하는 선구안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건 또 엄청난 독서력과 판단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시공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이다. 예컨대 제1권의 경우,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기원전 역사부터 시작에서 곧바로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갔다가 다시 ‘콜럼버스는 과연 영웅인가, 약탈자인가’에 관한 21세기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명과 종교개혁 등 콜럼버스와 그의 후예들을 아메리카로 밀어낸 유럽 사정을 파고들었다가 포카혼타스 신화 등 아메리카 원주민 사정, 그리고 노예무역과 인디언 사냥, 독립전쟁, 유럽의 죄수유배지가 된 호주 원주민의 비극 등으로 확장해간다. 오바마 정권의 등장과 향후 전망을 축으로 최근의 위키리크스 파장과 ‘구글-위키피디아-아이폰’ 정치학까지 다루는 마지막 제17권은 ‘왜 미국은 제2의 한국인가?’라는 짧지 않은 맺음말을 따로 붙였다.

애초 강 교수는 이 책을 ‘미국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로 꾸밀 작정이었고, 한국인을 위한 미국사 산책이니만큼 특히 한-미 관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장면들과 겹치는 이 책의 미국사 부분은 좀더 온전한 한국현대사 이해에도 유용하다. 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닮은 점으로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을 꼽고, 한국의 반미주의와 사대주의의 정체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그는 여기서도 친미냐 반미냐, 사대주의냐 아니냐 식의 이분법적 시각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섣불리 이론화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진 않는다. 그가 말하는 ‘통섭’은 친미-반미뿐만 아니라 좌-우, 진보-보수 등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게 대원칙이다. 편식하지 않도록 다양한 재료로 적절히 요리해서 내놓을 테니 최종판단은 독자가 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관이 없을 수 없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가려내고 재배열할 때의 선구안 그 자체에 이미 강준만의 역사관·세계관이 작용하고 있다. 그게 이 책에 의미를 채워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하(紫霞) 2011-01-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도 많은데...미국사도 많군요ㅠㅠ

머큐리 2011-01-06 18:45   좋아요 0 | URL
강준만의 글은 그래도 술술 잘 넘어가는 편이잖아요...^^;
많아도 재미는 보장할 수 있는데...구입하려면 가격이..ㅠㅠ
 


www.hani.co.kr/arti/opinion/column/408639.html


   
  ......대기업의 중소기업 착취가 진정한 경쟁인가? 학벌 간판을 놓고 싸우는 입시전쟁이 진정한 경쟁인가? 정글의 법칙에 따른 약육강식이 진정한 경쟁이란 말인가? 진보는 경쟁을 부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경쟁을 해보자며 ‘경쟁’을 선점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진보가 기존의 경쟁관을 바꾸지 않으면, 한국 사회를 약육강식형 경쟁관을 가진 사람들의 손아귀에 넘겨주는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김진석의 <더러운 철학>에서 내가 읽은 메시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인권침해와 인간고통은 계속될까? 영국 사회학자 스탠리 코언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조효제 옮김, 창비, 2009)이라는 책을 썼다. ‘왜 국가와 사회는 인권침해를 부인하는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주로 ‘부인의 심리학’을 다루고 있다. 나는 언론학도로서 언론의 문제를 다룬 제7장에 눈길이 갔다. 코언은 이렇게 말한다.

“문화적 부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미디어라는 야수가 무엇을 선별하고 가공하고 보도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은 대단히 포착하기 힘든 과정이다. 미디어의 여과장치가 문화적 부인 그 자체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개인 차원의 ‘부인의 심리학’은 대중매체의 매개 과정을 거치면서 집단 차원의 ‘부인의 경제학’으로 바뀌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한국을 사례로 삼아 살펴보자. 나는 한동안 <한겨레>를 구독할 만한 사람이 구독을 하지 않을 때엔 꼭 그 이유를 캐물었는데, 답은 거의 한결같았다. 비판 일변도로 너무 어두워 불편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비판의 내용엔 동의한다는 점이다. 어떤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의 논리다. 세상이 정의롭지 못한 건 잘 알고 있지만, 불의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빠져 지내다간 자기 한몸 지키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대중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느라 이미 충분히 피곤한데다 지쳐 있다. 쉬고 싶어 한다. 위로받고 싶어 한다. 아니면 좀더 나은 경제적 지위를 누리기 위해 애쓴다. 모두 다 선량한 사람들이지만, 중요한 건 이들이 언론을 포함한 모든 대중매체를 이용할 때에 갖는 첫째 동기가 바로 그런 오락·위로·자기발전이라는 사실이다. 개인적 삶의 영역을 떠나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의 선택 이유가 그런 만큼 세상의 불의에 대한 부인이 집단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내외 모든 대중매체 상품이나 관련 기업들의 성공 사례를 보라. 오락·위로·자기발전 이외에 ‘양심에의 호소’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있는가? 물론 늘 예외는 있기 마련이지만, 판 자체를 뒤엎진 못한다. 오늘날 한겨레가 보수신문들에 양적으로 밀리는 이유는 자본력이 약해서만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인권’이 ‘경제’에 포섭되고 ‘개인 심리’가 ‘시장 논리’에 압도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매년 200명이 넘는 어린 학생들이 자살을 하지만, 이미 이런 자살은 뉴스 가치를 잃은 지 오래고, 그래서 우리 모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잘 살아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자녀의 입시전쟁 매니저로 맹활약하고 있다. 우리는 ‘재개발’의 잔인성을 평소에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개발로 지어진 아파트를 거부하진 않는다. 우리가 사회적 사건으로 충격을 받거나 분노하거나 비탄에 잠기는 건 모든 대중매체가 집중적으로 매달리는 예외적 사건에 국한된다. 즉, 인권과 고통도 대중매체 이벤트가 될 때에 비로소 감지될 뿐이다.

모든 게 대중매체 하기에 달렸다는 ‘대중매체 결정론’이나 아예 경쟁을 없애자는 근본주의 처방을 역설하려는 게 아니다. 우선 실천 가능한 차원에서 대중매체 개혁의 의제를 다시 점검해보자는 뜻이다. 좀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오락·위로·자기발전이 잘 팔리는 상품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과, 그것들을 어떻게 해서든 인권과 고통의 문제와 연결해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매우 크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저널리즘의 문법은 여전히 반세기 전의 것이다. 그때와는 세상이 크게 달라진 만큼 새로운 문법의 창출이 절실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57930.html 

한국처럼 이념과 정치가 과잉인 사회에서는 세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권이다. 한국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바다가 갈라지듯 편이 갈라져 정부 관련 일에 대한 접근 기회가 완전히 박탈당하거나 무한정 풍성해지는 사회다. (.......)

정권 비판에 늘 접근 기회가 박탈당한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원한과 저주가 끼어드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보수 인사들이 발산한 원한과 저주를 기억하시는가? 그들의 처지만 놓고 본다면,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형편없이 망가지고 있는 건 그 세월에 대한 복수욕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황석영 변절’ 논란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겪으면서 해본 생각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편가르기’와 그에 따른 ‘승자독식주의’는 한국 정치가 필요 이상으로 살벌한 이전투구로 전락하는 주요 이유가 아닌가. 현 정권 사람들이 복수욕과 탐욕의 수렁에서 탈출해 진정으로 국민 화합을 이루는 길이 무엇인지 고뇌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