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라는 노래가 있다. 좀 오래된 노래...
"말 없이 건네주고 달아난 차가운 손....."
요즘이야 이메일로 몇자 적어 발송만 눌러버리면 되는 시대니 저런 고전적 낭만을 누리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그래도 낭만적인 편지도 보내곤 했었다.
사실 난 이런 낭만적인 (받은 사람이건, 주는 사람이건) 설정과 동떨어진 편지를 생애
(여성으로 부터) 첫 편지로 받았으며 그 사건 이후로 제대로 된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여성은 사춘기가 지나지 않은 선머슴 같은 애였고, 그 선머슴은 소년의 어릴적 낭만을
산산히 부서놓고, 나중에 항의했더니 "어렸을때 장난친거 가지고 너무 꽁한거 아니냐"는
치명적 발언으로 상처난 동심의 억울함에 쫀쫀한 남자라는 이미지 까지 씌워주는 참으로
대단한 여자 친구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편지라고 할 것도 없는 내용이다. 순전하게 욕으로 도배질을 한 뒤에
깔끔하게 편지봉투에 넣어 우표도 붙이지 않고 우리집 우편함에 넣어져 있었으니까?
다만, 봉투의 보내는 사람에 '모르는 소녀가"..... 처음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이후로 난 여자도 남자 빰치게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사실은
여자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갖지 않도록 도와줬다. (고맙다고 해야하나?)
때론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여자에 대한 강론을 하곤 한다.
"아들들이여 여성은 나약하고 약한 존재이니, 절대 보호하고 존중해줘야 하며, 만일 여성을
때리거나 하는 놈은 인간도 아닌 짐승이나 마찬가지니 명심할 지어다."
그럴때마다 아들들이 하는 얘기가 있다.
"뭘 모르는 우리 아버지... 여자들이 얼마나 힘이 세고 무서우며, 소리도 잘 지르고, 손톱으로
공격하기 시작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인데...어디 여자를 약하다 하시나이까..."
결국 이렇게 정리한다.
"야 이놈들아 그래도 여자는 약한존재야... 지금은 강해보여도 좀만 크면 안그렇다니까
암튼 여자들이랑 싸우지마... 얼굴에 손톱자국 생길라....글구 니들이 건드니까 그렇지 왜
여자들이 손톱을 세우냐? 솔직히 말해봐 니들이 놀리고 그러지?"
"응... 여자애한테 돼지라고 그랬어... " --;
이렇듯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늦고 또 어리다.
어린시절의 충격적 편지 사건 이후 편지를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연애할 때 편지도 쓰고 했던 것 같은데...왜 이리 기억이 가물가물 한지 ...정말 내가
편지를 쓴 사실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냥 업무상 이메일 몇 번 쓰고, 잠시 나가 하늘을 보니 오늘 하늘은 너무 너무 높다.
그냥 누군가에게 불쑥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고 편지에 대한 유년 시절이 그 씁쓸한 추억이...
광석이 형이 그랬다 이런 맑은 날 말고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쓰라고...
그래서 오늘은 그냥 참을란다....
낼부터 빨간 날인데....시간은 왜이리 더디냐....사무실은 참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