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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eon Human Rights Film Festival

인천인권영화제 정기상영회

2018.10.24.수.늦은7시30분

영화공간 주안 3관

 

상영작  

파도위의 여성들 Vessel

다이애나 휘튼 l 2014 l 다큐 l 88분 l 미국

'파도 위의 여성들'은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낙태가 법으로 금지되어있기에 발생하는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수많은 여성들이 죽음에 이르는 절망적인 현실을 바꾸기 위해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시작한 프로젝트이자, 국제수역에서 낙태 유도약을 나눠주는 배를 가르키는 말이다. 

정부와 군사기관의 압박으로 항구가 봉쇄당하기도 하고, '부적절한 행사'라는 언론의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낙태를 반대하고 금지하는 논리들을 용감하게 때로는 재기발랄하게 무너뜨려 나간다.정부와 군사기관의 압박으로 항구가 봉쇄당하기도 하고, '부적절한 행사'라는 언론의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낙태를 반대하고 금지하는 논리들을 용감하게 때로는 재기발랄하게 무너뜨려 나간다.

<파도 위의 여성>은 여성의 목소리와 권리를 배제한 채 벌어지는 생명권과 선택권의 대결구도를 넘어 '여성들이 온전한 주체로 선다는 것', 이를 위해 어떻게 연대하고 바꿔나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대화의 시간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

 

*인천인권영화제는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도록 무료상영을 원칙으로 합니다.      

인천인권영화제  http://www.inhuriff.org 032.529.0415 inhuriff@gmail.com 

상영장 오시는 길 주안역 8번출구 200M 사랑병원 옆 주안 메인프라자 7층 

*활동보조가 필요한 관객은 미리 연락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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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권영화제 정기상영회 안내입니다.
2018.9.20..늦은730
영화공간 주안 3

상영작
기다림 The Wait
에밀 랑발 l 2016 l 다큐 l 59l 덴마크

록사르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축구를 즐기고 있지만 늘 불안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해 덴마크로 왔지만, 6년째 난민인정을 받지 못해 언제 강제추방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록사르의 가족에게 당국은 그저 기다리라는 말 뿐이다.
미래를 그릴 수도,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는 록사르를 통해 난민의 삶에 다가가 본다.
대화의 시간
-정형 한국이주인권센터
-낸시 이집트 저널리스트
-통역지원: 아샤 다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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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8-09-19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주제는 난민인가봐요. 아니구나 매달 상영하시는구나 ㅋㅋㅋㅋㅋ 이 포스터를 보니 올해도 벌써 이만큼 갔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머큐리 2018-09-20 09:49   좋아요 1 | URL
모리님 인천에서 하는 거니까.... 시간되시면 꼭 한번 오세요~~
11월 마지막 주에는 정기 영화제가 진행되니까 그때 오셔도 대환영하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5월 26일 부터 6월 1일까지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1996년부터 개최된 영화제로 올해로 21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쟁취', '영상을 통한 인권의식과 인권교육을 확산'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이 사회의 인권을 신장하기 위해 힘겹지만 쉬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게 어떠실지...

 

<슬로건 해제>

나는 오류입니까
나는 다른 이들에게 조심스레 물어 보았습니다.
그들에게서 내가 ‘틀렸다’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내가 틀릴 것이라 가정하고, 늘 나를 지켜봅니다.
내 휴대전화를 보고, 사진을, 글을, 통신기록을
마치 틀렸다는 증거를 찾으려는 듯이 주시합니다.
내 머리모양, 옷매무새 하나까지도 그 증거가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오류입니까
내가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는 다른 몸을 가진 여성/남성/혹은 다른 누군가가 되기도 하고,
나는 이주민이 되기도 하고,
나는 핵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다 협박을 받게 되기도 하고,
나는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다 허공으로 몸을 던지게 되기도 하고,
나는 테러 의혹으로 감시당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도 오류인 걸까요?

그러다 잠시
질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내 마음의 외부와 마주합니다.
지금 당장은 나만을 향하는 불안들이 영화 속 '삶들'과 만납니다.
영화 안/밖의 사람들이 모두 나일 수도 있다가, 나였다가
이내 섞입니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사이
내가 오류라는 불안은 저만치 다른 곳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오류입니까
나의 존재 자체를 오류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물음이며, 항변입니다.
내 몸이 규격화된 여성/남성의 몸이 아니라서 틀렸다고 하는 성별이분법에,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국적이 없기에 내가 틀렸다고 하는 법에,
나 스스로 몸을 던지게 만드는 노동환경에,
나와 내 가족이 이성혼 관계나 혈연관계가 아니어서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제도에,
그날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나를 틀렸다고 하는 국가에,
이제 이 물음은 이것들만을 향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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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간만에 남아 도는 시간에 영화를 본다. '이미테이션 게임'과 '킹스 맨'

두 영화 모두 인류와 정보통신에 관한 영화이고 현대의 전쟁은 정보전쟁임을 드러내는 영화이다. 왠만한 첩보물과 비교해도 손색없이 재미있는 영화들이었다. 


킹스맨... 현란한 액션들과 최첨단 무기들... 마치 007 영화가 현대적으로 부활하면 이런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은 영화다. 인류의 질서를 파괴하는 악당들에 대항하는 영국 비밀조직 킹스맨의 활약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의 배경은 일종의 사회진화론과 가이아 이론인 듯하다. 지구가 점점 이상한 징조를 보이는 것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일종의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인데, 숙주인 지구를 죽이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이런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는 자체적으로 병을 치유하기 위한 활동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상기후 현상인 것이다. 인간이 어떠한 노력을 해도 이상기후를 잡을 수 없는데, 그건 원인인 인간 스스로를 자체적으로 조정하기 전에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다고 인류 전체를 몰살시킬 수 없는 법. 결국 생존할 인류와 멸절시킬 인류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서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구원과 선택의 문제가 반복 되는데 여기서 구원의 대상은 신에 대한 믿음이나 헌신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부와 권력일 뿐이다. 맘몬의 시대에 딱 들어맞는 구원이 아닐까 한다. 


영화에서 첧학적 사고를 만나는 것이야 이제는 흔한 일이 되어 버렸는데, 현락한 액션을 통한 시각적 만족에 일종의 철학적 전제를 던져준다는 의미에서 흡족하게 관람했다. 더우기 현재의 정보통신과 신경생리학을 통합하여 이루어지는 인류절멸 계획은 그 상상의 황당홤보다 오히려 극사실주의적인 현상으로 보여서 가볍게 웃을 수 만도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현재의 인류는 정보통신을 활용하면서도 그 거미줄에 갇혀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속에 던저져있다. 이른바 감시사회와 개인의 프라이버시,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의 문제는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의 문제이지만 이 기본적인 권리가 항상 무너질 상황에 놓여 있으며,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인류는 양날의 검을 쥐고 휘두르고 있는 셈이다. 


이미테이션 게임.... 독일의 암호통신기 '이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해 2차대전 당시 암호분석을 행하던 학자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앨런 튜링이 있었다. 이 영화는 튜링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2차 대전을 종결시키기위해 직접 전선에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투쟁했던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자, 특출한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주변과 잘 동화되지 못해 차별을 받아야 했던 천재 수학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조국을 위해 헌신했음에도 정보기과으로 부터 끊임없이 감시를 받아야 했고, 결정적으로 동성애자임이 밝혀서 탄압받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도 정보와 통신의 발전이 인류의 생활.. 심지어 전쟁에 까지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찰이자 정보와 통신을 장악한 자는 거의 신처럼 군림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그러한 권능을 결코 일반인이 알 수없도록 하는 국가의 역할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명 튜링머신은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컴퓨터의 원형적 모태가 되었고 인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 선악과를 따서 건네 준 튜링은 신이 아닌 인간의 편견의 저주로 인해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호르몬 치료를 받다가 자살한다. 애플의 한입 베어먹은 사과 로고는 이런 튜링을 기념하기 위한다는 설이 타당하게 느껴지는 경우다. 더우기 애플은 무지개색 사과를 채택한 적이 있는데 무지개가 동성애를 상징한다고 한다면 튜링과 애플로고의 연결은 더 강고해 지는 것 아닌지... 어쩌면 튜링이후 컴퓨터가 발전한 생태계에서 애플은 또 다른 선악과를 우리에게 제공하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화 두 편으로 올 설 연휴는 그마나 영양가 있게 보냈다고 해야 하나 ...후... 이제 낼이면 출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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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6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동에서 소외된 노동자... 이제는 아예 노동할 자유도 잃어버린 노동자...

영화 카트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영화를 못 만들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영화 속 현장과 현실이 겹치면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가 답답해서 였다. 


얼마전 대법원에서 쌍용자동차 대량해고가 합법적이라 판결했다. 회사의 거짓말을 모두 인정하여 당시 정리해고가 법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의 옳고 그름은 한편으로 밀어 놓고 대량으로 정리해고가 아무런 윤리적인 판단없이 이루어지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 

영화 처음에도 나왔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한 그 '실화'에 주목해야 한다. 그 '실화'의 시대적 배경 역시 빠지면 안된다. 그 이유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참여정부 시절이기 때문이다. 


보수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 지칭했던 그 시절,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닥친 해고의 칼날은 자칭 좌파정권 하에서도 자행되었던 것이다.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소모품처럼 사람을 해고해도 괜찮다고 신호를 준 것이 그나마 이 땅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선 시기에 일어났다고 하는 점에서 이 영화는 하나의 상징를 보이고 있다. 

이러니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이 정부의 대법원의 판단을 그저 보수적이라 비판할 수 있을까? 최소한 노동에 관한 한 이 사회는 보수적 시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영화의 극적 구성이나 리얼리티는 잘 살려져 있다. 다큐멘터리처럼 투박하지 않고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았다. 몇번씩이나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들도 감동적이었고 ...


그럼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다. 이만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평범한 마트 노동자가 대기업과 정면으로 맞붙어 싸우는 투사가 되는 것조차 자연스럽게 연출된 이 영화에서 무언가 빠진 것이 있어 불편해 진다. 아마도 나의 편협함도 한 몫햇으리라. 


그래서 이쉬움을 토로한다. 당시의 싸움은 홈에버 노동자들의 단독 싸움이 아니었다.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민주노총을 비롯해 수많은 사회단체들이 함께 했다. 그들의 파업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은 여러 사람들이 결집해서 이루어진 '연대'에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는 이후에도 이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더불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제시해야 할 것은 바로 연대의 정신이었다. 


영화에서 '연대의 정신'이 빠지자 관객의 시선은 연민과 동정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단치 처참하게 싸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싸움의 종말은 항상 패배였다. '연대'를 했었지만 패배 했었다. 그러나 그 패배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영화 속에서 희망을 찾기란 요원하다. 아니 어쩌면 감독은 아직도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노동에서 해방된 세상이 아니라 노동에 종속되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노동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에서 노동에 종속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노동운동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이전에는 노동을 착취하는 세상을 뒤엎는 것이 노동운동이라면 이제는 최소한 노동이라도 보장해 달라고 싸우는 것이 노동운동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뒤엎지 못해도 인간 답게 대접해 달라고 노동을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빨갱이가 되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니 이제 정규직을 유연화하여 비정규직과 비슷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새누리당에서 이야기한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분열이 자본의 의도였지만 노동을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노동자는 모두 노동자였지만 분열되고 갈라진 노동계급은 스스로 몰락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모든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이란 딱지를 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결국 노동자들의 단결 밖에 없다. 그리고 단결과 더불어 연대가 필요하다. 이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연대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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