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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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임기를 마쳤다. 존재감이 좀 부족했다고 느껴지던 헌법재판소가 일약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커다란 공로가 있는 분이고, 여성이다. 8인의 헌재 재판관 중 유일한 여성인 이정미 재판관, 우리나라 최소의 여성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대통령.

 

두 사람이 여성이라는 점이 현재 우리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위치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둘 다 여성이기에 남성이라면 받지 않아도 될 여러가지 관심을 받은 사람들이고 공인이며, 공인이기에 여성성에 대한 논의에 불씨를 당긴 사람이기도 하다.

 

정치인 박근혜, 자칭 대한민국과 결혼한 대통령.

여성이기에 여성성에 기반한 상생과 협력,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하면서 대통령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그러나 실제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점. 아이를 낳은 경험이 없다는 점 등 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여성성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여성혐오에 시달리기도 한 경력이 있다. 박근혜의 가치관이나 행동이 여성주의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증명하는 테제는 여성험오에 기반한 여성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은 여성성에 기반한 정치를 하지 못하는걸까?

 

통치행위의 문제가 발생하자, 이제 그 변호를 여성의 나약함이나 여성에 대한 예의로 가리려고 했다. 공적인 업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치부하여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려는 행태는 여성주의를 지배자들이 어떻게 전유하고 사유하는지 날것으로 드러낸다. 이러려고 여성대통령이 탄생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여기에 덧붙여 이래서 여자를 대통령으로 삼으로 안된다는 여성혐오도 판을 친다. 문제는 이러한 언설과 행위가 혐오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정미 재판관이 탄핵결정을 하던 날. 급하게 나오느라 헤어롤을 머리에 끼고 출근하는 사진이 화제다. 이것이 일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이라고 치켜세우고, 그동안 일 못하는 여성대통령에 대한 대안으로 비교되기까지 한다. 이정미 재판관의 개인사를 잘 모르고 그 가정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일반 여성이 아무리 바쁘다고 출근하면서 헤어롤을 끼고 출근했을때 어떤 시선을 보낼까? 아마도 열에 아홉은 정말 정열적으로 일하는 여성으로 치부하기 보다는 자기관리 못하는 칠칠치 못한 여성으로 여길 확율이 더 크다. 여기에 이정미 재판관에 대한 환호에 어떤 불편함이 있다.

 

여성이 사회에서 좀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무언가 공적인 일을 하려고 해도 일에 전념하게 만들어 주는 아내가 집안에 있는 남성에 비해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거기에 애들까지 돌봐야 한다면 그 여성의 일은 거의 전쟁이나 마찬가지일테다. 때문에 일터에서의 경쟁력이 남성들에게 뒤질 수 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남성과 똑같이 교육받고 남성보다 더 많은 스펙을 가지고도 남성에 비해 번번히 유리천정의 벽을 느껴야 하는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아내부족이 크다는 것이 이책의 주장이다. 여성에게도 자신의 일에 전념하도록 가정을 보좌하고 운영하는 아내를 보장하라!!

 

이 책은 단순하게 아내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다. 심층적으로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에 대한 가치 문제, 사회에서 행하는 노동과 가정노동의 차별을 통한 여성성에 대한 착취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모성이라는 단어 속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이 존재하고 있는가? 가사노동과 육아노동이 궁극적으로 여성성이 행해야 할 노동인가? 아니면 남성 역시 할 수 았는 노동인데 여성에게 미루고 있는 노동인가? 생래적인 본성은 없다. 인간이 사회화를 거치면서 어떤 노동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모든 남성들과 똑같이 여성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다만, 남성은 아내역할을 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고 사회는 아내는 여성에게 할당된 자리라고 강요하는 것 뿐이다. 남성이 지배적인 성으로서 이 사회에 자리매김되기 까지 아내가 있었다. 그리고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아내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남성을 아내의 자리로 돌려보내라고 얘기하는게 아니다. 아내의 자리는 남성이고 여성이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남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남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주저함이 없도록 사회적 시스템과 사회적 의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시스템인데... 요즘 육아휴가 사용의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문제가 핵심으로 대두된다. 단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의 노동의 문제이자 의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의 논의에 따르면 최근 유력대선후보들의 공약은 유치원 수준이다. 정희진선생이 육아를 국가가 책임져야 하다는 책을 비판한 칼럼을 한겨레에 실은 적이 있다. 가사와 육아의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는 총론에서 이의가 없지만 각론으로 들어가서 다시 여성의 일로 몰아가면 그것은 기만일 뿐이다. 남성들이 가정으로 회군해야 한다. 그 전에 회군의 명분을 주어라. 근로시간 단축과 가사와 육아노동의 가치화를 이루어야 한다. 누가 명분을 줄 것인가? 그야 권력을 가진 남성이 주어야 한다. 여성의 문제가 왜 남성으로 부터 나오는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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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트라우마 -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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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다운 외모와 다소 멋쩍어하는 듯한 미소,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주위를 살피는 태도와 침착하고 과묵함. 왠지 무게가 있어 보이는 모습"

러시아 역사학자이자 해방 정국에서 서울 주재 소련영사의 아내였던 샤브시나가 기록한 박헌영의 첫인상이라 한다.

 

남에서는 빨갱이의 수괴로 북에서는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남과 북이 모두 지우고자 했던 비운의 혁명가가 있다. 이 책은 남과 북 모두 역사의 질곡을 겪으면서 그 와중에 희생당한 사람. 일제 강점기 내내 굽히지 않고 민족해방에 헌신했던 철저한 공산주의자이자 조선공산당 최고 지도자인 박헌영에 대한 이야기 이다.

 

요즘 젊은이(?)중에 박헌영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까?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저자 손석춘은 북한의 젊은이들도 박헌영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긴 미제의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 반동 반혁명분자에 대해 체제가 어떤 정보를 주었을까마는.. 남과 북에서 외면당한 한 혁명가를 추모함은 비틀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박헌영뿐이랴... 박헌영과 오랜 동지적 관계를 가진 김삼룡, 지리산 산사람들의 총사령관 이현상...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박헌영의 아들로 태어나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던 원경스님까지... 역사의 물줄기를 이토록 험난하게 넘겨야 했던 사람들이 있음을 보며, 격동의 현대사를 견딘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새삼스런 감회가 일어났다.

 

미군정하헤서 정치활동을 금지당한 채 북으로 넘어갔지만 김일성의 견제를 받으며 지내다 한국전쟁 후 미제국주의의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 비운의 혁명가이지만 아직도 남쪽의 일부 사람들은 박헌영의 스파이설을 믿고 있다고 한다. 뭐 북의 말을 믿는 것은 자유지만 제발 역사 공부 좀 했으면 하는 분들이 좀 있다. 그러고 처음으로 박헌영 간첩설을 제기하신 분이 '강철서신'으로 유명한 김영환씨라고... 이분 북에 밀입국까지 하신 주사파지만 현재는 북한에 대한 가장 강한 반대활동을 벌이고 계신 분이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증언하시는 분...

 

샤브시나의 인상과 달리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감금되었을때 자신의 대변을 먹으며 정신병환자 행세로 출감하여 다시 독립운동을 했던 강철같은 혁명가이자 해방 후 가장 유력한 대중정당인 조선공산당의 지도자였던 인물이 이렇듯 역사 속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이제 빨갱이란 표식으로  지워졌던 수많은 이 땅의 혁명가를 복권시켜야 하지 않을까?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투명하게 평가되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데...

 

얼마전 통합진보당의 해산결정을 보며..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원경스님의 기억에 의존하여 새로 밝혀지는 여러 사실들도 있다. 물론 정식으로 역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부분들도 많이 있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보천보 전투'에서의 김일성을 부정하고, 북으로 가면 처형 당할 것을 알고 남에 남아서 싸우다 전사했지만 시신 확인이 안되었다는 이현상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다만 사실 확인이 안된다는 점이 아쉽다.

 

또 하나 서슬퍼런 박정희 치하에서 박갑동씨가 '중앙일보'에 '내가 아는 박헌영'이란 글을 6개월이나 연재했다고 한다. 이는 박정희가 직접 부탁해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해방정국에서 박헌영선생(박정희가 선생이라 칭했다고)의 '8월 테제'를 아주 감명깊게 봤다고 그게 박정희 인생의 세계관이 되었다고 한 증언도 흥미롭다. 전형적인 2단계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했던 '8월테제'에서 군사쿠데타의 원형을 보았던것은 아니었을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박정희는 한때 남로당 당원이었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다. 질곡의 역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분노와 함께 슬픔을 느낀다.

아버지의 박헌영의 복권에 대해 저자가 묻자 원경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한마디만 더 말씀드린다면, 아버지(박헌영)의 복권은, 우리 손(석춘)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급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대신, 남로당 전체, 이름 없이 산화된 그 사람들의 명예를 정말이지 바로 찾아야 합니다. 물론, 박헌영 선생이 복권되면 그것도 덩달아 이루어질 가능성이 많아요. 일단 아버지는 아무리 금기시하고 억압해도 언젠가는 이름 석 자가 나오고, 100년 뒤든 언제가 됐든 학자들 입에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 그런데 광복 운동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남로당이 되려고 그렇게 청춘을 불살랐던 것은 아니거든요. 남의 힘에 의해서 우리가 해방을 맞이하고 보니까 모든 게 뒤틀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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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굴의 시대 - 침몰하는 대한민국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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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던 듯 하다.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박노자는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박노자의 글을 찾아 읽는 건 한결같은 그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하는 내 자신에 대한 의심에서 일 수도 있겠다. 

박노자의 글은 어쩌면 단순하다면 단순하다.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과 폭력은 체제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그 본성(?)상 어찌할 수 없는 체제이다. 사람들을 경쟁시키고 폭력을 통해 배제하고 비인간화시켜야 작동이 되는 체제이니 이 체제를 어서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 

여기서도 박노자의 대답은 한결같다. 사회주의의 실현을 통해서...단순하게 자본주의를 인간화 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니 체제를 전복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혁명인 것일까?

실제로 제체를 뒤엎어버리는 방법은 혁명 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데 혁명을 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혁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호하다. 

아니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시대는 혁명이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인 시대가 아닌가? 

혁명을 하자고? 미친 놈 소리를 듣거나 낭만적인 이상주의자 딱지가 붙기 딱 좋은 상황일테다. 

혁명따위는 집어치우고 니 앞이나 잘 처신하라고 쏘아 붙일 터다. 역시 자본주의다. 개인의 경쟁력이 최고의 지상과제인 이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박노자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그저 탄식만 할 뿐....


그러데 왜 박노자의 글을 읽는가? 끊임없이 변주하는 듯 하면서도 동일함을 유지하느 그의 글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혁명에 대한 다짐을 하려고? 설마... 난 자보주의를 싫어하고 무한경쟁을 도모하는 이 사회를 증오하면서도 감히 혁명이란 말을 꺼내지 못하겠다. 그렇게 순치되어 온 것이다. 이런 나를 깨닫게 만드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 박노자다. 그는 등에 처럼 사람등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왜 이 숨막히는 체제를 가만히 놔두고 소소한 일에 분노하느냐고...그런데 정말 숨막히는 체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박노자에게 지금의 한국사회는 80년대의 혁명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순치된 사회다. 더 이상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은 잃어버리고 각자도생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경쟁에 올인하는 사히다.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민중의 고통과 희생을 도외시하는 사히다. 그럼에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사회다. 더불어 우파적 민족주의와 좌파적 민족주의가 발전에 경도되어 경합을 하는 사회다. 진정한 좌파는 쥐꼬리만큼 남아서 발버둥치는 사회다. 그럼에도 아직 희망이 있는 사회다. 어디에? 이렇게 험하게 굴러가는 사회에, 그리고 이 사회에서 발버둥쳐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본다. 그런데 그 희망의 근거는 항상 우리를 좌절케 만든 근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온 긍정적 단어는 '연대'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다. 

사회주의에 관한 한 양가적 감정이 들어있다. 이미 백일몽처럼 스러진 현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 할 수도 없지만, 그 나름대로 성취되었던 긍정적인 요소들까지 버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스탈린 식 사회주의를 배격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그 정치적으로 부자유스럽던 체제가 보호하는 가치 즉 노동자들의 존업성, 계획경제를 통한 완전고용, 직장에서의 평등과 부와 권력의 세습이 없었던 점 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옹호를 하고 있다. 이건 좀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 속에서 이런 긍정적인 가치에 대해 얼마나 평가해야 할지 감은 오지 않는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하는 연대의 가치에 대해서는 뭐 별다른 비판을 하지 못하겠다. 연대가 너무 안되서 문제이니.... 특히 시민사회와 노동계급의 연대는 항시 고민의 중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계급의 정의가 있다고는 하나 임금을 받고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에도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 게급은 사회적 위치에 대한 객관적 조건과 더불어 이른바 계급의식이라는 주관적 깨달음이 통합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다만 현재의 언론을 통해서는 계급적 자각을 이루기 힘들다는 점은 말해봐야 잔소리다. 


진부한 듯 새롭다고 해야 하나? 이 체제를 살아가면서 꼭 질문해야 할 문제에 대해 이른바 총정리를 해 두었다고 하자. 다만, 이 시대가 모멸의 시대이자 이제 비굴의 시대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나타나는 이 혐오스런 감정들이 과잉되는 시대. 단순하게 살아남기를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박노자에게 답을 구하지 말라. 다만, 박노자가 말하는 이 사회에 대해 공감했다면, 자신이 무엇이라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까지 박노자가 안내했으면, 다음은 독자 몫이다. 그리고 박노자는 이런 문제제기를 한 것으로 충분하게 자신의 역할을 한 것 아닐까? 


투박한 듯 날이 서 있는 변하지 않는 견결한 사회주의자를 난 사랑한다. 나와 의견이 같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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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1~9 완간 박스 세트 - 전9권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미생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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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책값을 마지막으로 할인하는 시즌에 구입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인기에 영합했음도 인정한다.

그러나 드라마는 한 편도 보지 못했다. 그건 집에 케이블 방송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고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라해도 인터넷을 뒤져가며 시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웹툰으로 본 건 사실이다. 장그래가 인턴으로 합격했을때 붉은 눈의 오차장이 장그래를 끌고 간 곳이 쌍용자동차 희생자들의 영정이 있는 경복궁이었던 장면에서 울컥했던 기억이 아련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스토리를 잇지 못하고 띄엄띄엄 본 웹툰을 다시 정주행하기 어려웠고 결국 드라마의 인기와 도서정가제 시행 전의 할인행사를 통해 이 만화책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나에게도 미생의 직장인은 낯선 사람들이었다.

대기업을 다니지 못한 나로서 이 스토리는 그냥 환타지다. 어쩌면 직장인이란 이런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롤모델을 전시한 듯한 이야기들...

 

우스개 소리가 있다. 아마 미생이 방송되면서 사장들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진 모양이다. 계약직이라도 신입사원들의 프리젠테이션은 방송에 나온 정도의 수준은 되야 된다고 생각한다나 어쩐다나..

여기서 자본이 원하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읽는다. 돈을 적게 주고도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열정적인 노동자를 뽑고 싶다는 열망... 미생은 아직 완생이 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 고발보다 미생임에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젊음의 기특한 자기계발서로 읽힐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만화가 기지는 미덕이 있다.

그 미덕은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불공정함에 대한 비판과 이 시대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공감대가 잘 그려져 있는 것이다. 무엇인가 생활을 위해 노력하고 땀흘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이야기들, 영웅적이지 않지만 사회의 한 자락에서 묵묵히 일하고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담담하게 풀어가는 이야기에서 느끼는 공감대는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현실적인 리얼리티를 결코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 쓰라린 현실...

난 이 만화를 통해서 이 사회의 노동의 구조가 얼마나 왜곡되고 어긋나 있는지 떠들었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드라마를 보든 만화를 보든 미생을 좀 보라고 선전하고 다녔다.

어느 날 내가 알고 있는 한 계약직 사원에게 이 만화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보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참 좋은 작품이니 꼭 한번 보라고 말했다. 그때 그가 한 대답에 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못 보겠어요...."

 

아..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던지... 이 만화가 아니라도 주변에 그렇게 많은 미생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고 했는데.. 얼마나 관념적인 사고였는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눈물 없이 이 만화를 끝까지 읽어내려간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미생을 통해 난 또 한번 죽비로 호되게 등짝을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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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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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냐 감정이냐?

예전 같으면 무조건 이성이 우위라고 말하겠지만, 지금은 감정이 우선한다고 말해야겠다. 감정의 힘은 이성을 복종시킨다. 강정이라는 강력한 엔진으로 인해 벌어진 행동을 이성은 사후적으로 합리화한다. 인간은 이성적이라기 보다 감정적인 동물이다.

 

감정의 흐름이 개별적인 것만은 아니다. 물론 개개인의 감정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것은 틀림없지만, 개개의 감정도 사회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이 책은 심리학적인 분석에서 사회학적인 분석으로 넘어간다. 한국 사회에서 유력하게 나타나는 감정적 키워드는 무엇일까? 저자는 '모멸감'을 키워드로 삼았다.

 

모멸감...모욕과 멸시를 합친 말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른면 이 사회는 모멸감이 넘실거리는 사회다.

모멸은 모욕하고 경멸하는 거, 즉 마음으로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또는 무심코 격하시키고 그 존엄성을 부정하는 것, 상대방을 비하하고 깔아 뭉갬으로써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다. 그러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느끼게 되는 감정이 모멸감이다.

모멸은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내준다 해도 반드시 지키려는 그 무엇, 사람이 사람으로 존립할 수 있는 원초적인 토대를 짓밟는다. 그런 처지에 몰리면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느끼면서 자신 또는 남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날 수 있다.

 

모멸감을 유발하는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 저자는 모멸감을 느끼는 범주를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 등 7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물론 이는 개념적인 분류일 뿐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다름 범주들이야 이해가 간다 해도 '동정'의 경우는 좀 의하할 지 모른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타인의 상황에 대한 단정과 피상적인 감정이입이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지극히 불편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값싼 동정으로 타인을 이해했다고 하면서 잊어버리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의 존재가 단지 나의 행복을 확인하는 배경으로만 여겨진다면, 그들은 한낱 대사이나 수단에 머물고 만다. 나와 그들 사이에 인격적인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 많이 등장하는 것은 '감정노동'이다. 소비자는 왕이라는 구호가 실질적인 지위확인으로 등장하는 이 사회에서 감정노동자는 노동자라기 보다는 노예이다. 모든 사람이 노동자이고 소비자인 사회에서 소비자의 지위로 타인을 억압하는 풍토가 만연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자 내면화된 경쟁의 부작용이 표출되는 현상일 뿐이다.

 

물론 대안은 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대안, 사회를 구조적으로 변경시키고 내면의 힘을 길러야한다. 항상 그렇듯이 대안이 대안으로 작동하려면 실천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항상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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