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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랫 동안 투쟁하고 있는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
콜트콜텍기타노동자 투쟁 3000일을 마주하며 <콜트콜텍기타노동자와 함께하는 3000명의 친구들(콜친)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이제 음악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콜친"이 되어주세요! 더 많은 분들께 콜친을 제안해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콜친"들은 다음의 내용에 동의하시는 분들입니다. 꼭 확인하신 후에 함께해주세요!

(1) 음악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고 있는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합니다.

(2) 2015년 5월 9일(토) 낮4시에 개최되는 <콜트콜텍기타노동자와 함께하는 3000명의 친구들(콜친) 페스티벌>에 직접 참가합니다. (장소는 추후 공지, 서울 도심)

(3) 콜친들 참가비로 1만원을 후원합니다. 참가비는 전액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의 재판비용 지불 및 클럽<꿈의공장> 조성을 위해 사용됩니다.
* 참가비 입금 : 하나은행 261-910187-19907 (예금주 : 이원재)

* 콜친 참가방법
"이름+연락처(핸드폰번호 및 이메일주소)"를 NoCort2007@gmail.com 또는 @NoCort(트위터)로 보내주세요.

* 문의 : 02.773.7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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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참 유명한 사건이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일터다.

이른바 재벌집 자식으로 자라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이륙하려는 항공기를 돌려 자신의 부하직원을 떨구고 간 사람이야... 그렇게 자라왔으니 그렇다고 치자.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상황은 뭔가 이 사회가 많이 비틀어져 있음을 느끼게 한다.

정말 '모멸의 시대'에 접어든 것 아닐까?

 

아파트 경비원, 청소미화원.. 이들은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주민의 모멸에 항의하며 자살한 경비원이 있고 식당에서 밥조차 먹는 것도 제한해서 화장실 옆의 공간에서 식사를 해야 하는 미화원들도 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너무 당연스레 여겨지는 현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판매원들은 어떤가?

얼마전 개봉했다 내려간 영하 '카트'에서 손님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무릎 꿇고 사죄하는 장면이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는 주차원이 손님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사실로 나타났고 백화점 매장에서는 손님의 환불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빰을 얻어 맞는 상황까지 나아갔다.

 

아파트 청소용역을 하는 분이 복도에 보푸라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집을 노크했다가 폭행을 당했다는 기사에 "우리가 내는 관리비로 먹고사는 주제에" 어딜 함부로 노크하냐고 했다는 주민의 폭언에서 약자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는 시대임을 느끼게 한다.

 

'소비자는 왕이다'

이 하나의 구호가 사방천지에 왕들을 귀환을 부르고 있는 듯한 현실에서 타인의 노동에 대한 감사함이나 타인의 노고에 대한 공감은 사라지고 지위에 따른 대접에만 신경쓰고 있다.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멸을 자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굴종을 보내고 있는건 아닐지.

 

물론 개별 인격체 중에 정말 말종이 있을 수도 있다. 문제를 개별화 시키면 해법은 단순해 진다. 못된 놈들만 적절하게 처벌하면 끝이다. 하지만 사회가 이러한 문제에 둔감해진다면 이는 개별적인 개인의 일탈로 해석하고 해결할 수 없다. 당장 주민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한 미화원은 용역업체로 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 주민과 관계가 껄끄러워진 노동자와 계속 고용을 유지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여기에는 누가 잘 못했는가에 대한 판단은 전혀 없다. 누가 더 힘이 쎈 갑이냐는 판단만 있는 것이다.

 

이러니 가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가르키며, 공부 안하면 저렇게 고생하고 산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생만 하나? 이제 평생 멸시 받고 이에 항의라고 할라치면 해고를 감수해야 한다. 인간적인 가치나 자유, 평등함은 다 말아먹고 그냥 노예처럼 굴종하고 살아야 한다. 결론은 무한경쟁... 밟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그럼 끝인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일까? 어느덧 우리들의 감수성은 타인을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일까?  

 

서동진 교수의 '변증법의 낮잠'을 읽다가 87년 6월 항쟁에 대한 대목에서 새삼 놀란 것이 있다.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에 백기완 선생이 민중진영 후보로 나와서 내건 공약 중 재벌해체와 재벌의 소유재산을 공공의 재산으로 환수하겠다는 공약이 있었다. 그때는 그러한 공약이 최소한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할 공약은 아니었다. 지금은? 아마 가장 진보적이라는 정당도 함부로 외치지 못할 공약일 것이다. 자유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경과하면서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은 이렇게 오그라 들었다. 노동해방은 사라지고 일할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해고노동자와 언제 해고될지 몰라 불안에 떨며 전전긍긍해 하는 비정규직 노동이 전체 노동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

 

비정규직을 버팀목 삼아 자신의 안전을 누리던 정규직에게 이 정부는 고용안전을 유연화(?) 시키겠다고 한다. 비정규직에 대해 냉랭한 시선을 보냈던 정규직에게 돌아온 이 부메랑을 어찌할런지. 같이 살자고 연대하지 않고 희생양으로 치부하면 자신의 안전만 도모했한 결과는 정규직이 중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라면 이제 한계치까지 온 듯하다.

 

조직 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합법적으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자본의 무한 착취에 굴종하고 감내하는 착한(?) 노동자가 되라고 훈육하겠다는 것이다. 쌍차 굴뚝에서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하는 노동자에게 하루 100만원씩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쌍용자동차의 날 선 언급도 다를 바없다. 이미 이 세상은 자본의 세상이고 자본이 가진 가장 커다란 권력인 금력과 자본의 이해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정부의 형사권은 항상 이 시대를 거스르려는 사람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사용해 왔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그렇게 분노하면서 정말 분노하고 바꿔야 할 것에 대해서는 너무 무감각해져 왔다. 이게 신자유주의 15년이 정치사회적 결론이다.

 

자신의 계층 사다리의 밑바닥이 아니라는 점에 위안 받으며 더 낮은 사람들을 멸시하고 굴종하고 살 것인가? 힘겹게 싸우는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연대하면서 살 것인가? 선택은 결국 개인의 몫으로 돌아가는가? 이런 시대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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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1-10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새해에도 각성을 부르는 좋은 글 읽게 되어 고마워요. 올 한해도 불의를 보고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행동함으로 세상을 바꿔갈 수 있도록 함께해요!!

머큐리 2015-01-11 22:46   좋아요 1 | URL
오기누님도 새해에 건강하세요...^^
 

또 다시 노동자들이 고공으로 올라갔다.

지상에서 싸우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에 마지막으로 농성을 행해야 하는 곳으로 ...

지상에서 추방된 자들은 땅 속으로 죽어 들어가거나 살기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다.

 

한겨레 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668927.html?_fr=mt1

 

스타케이컬이 그렇고 한진이 그랬으며 씨앤앰 노동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쌍용이 또 추가되었다.

 

대한항공 김현아 부사장의 슈퍼갑질에 세상이 시끄럽다. 하기야 그들의 부를 창출하고 유지하고 지탱시켜 주는 노동자들에게 인격이 없는 물건취급을 했으니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하자. 하지만 그렇게 슈퍼 갑질을 하도록 허용한 것은 누구일까?

 

IMF시절 한보의 정태수는 직원을 머슴으로 칭했다. 이른바 노예로 여긴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사용자와 노동자는 형식적이나마 계약관계 임을 전면 부정하고 아직도 봉건제에 살고 있음을 깨우치는 일갈이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게 한 말이었다.

그 시절 이후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을까?

 

87년 체제 후 민주화가 많이 진행되었다고들 한다. 사실 변화된 것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이 관계는 변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더 심화되고 있다. 시대가 변해서 대놓고 노예라고 머슴이라고 칭하지 않지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모욕하고 상처주고 굴욕을 주고 있고 이러한 행위는 하늘이 준 천부인권적 권리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노력없이 세습받은 부와 지위로 타인을 모욕하는 그 천박한 행태는 이 사회에서 용인받아 왔기에 행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도 이런 천박한 행위를 용인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비정규직을 용인하는 것, 정리해고를 용인하는 것....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조건을 계속해서 허용하고 있는 것, 노동이 상품임을 용인하는 것...

 

이제 다시 고공으로 올라간 노동자들에게 전해줄 이야기는 무엇이어야 할까?

지상에서 추방되어 하늘 가까이에 올라가 이 엄혹한 바람을 맨몸으로 버텨야 하는 이들에게 이 사회가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노동의 문제가 삶의 문제라서 그런걸까?

아직 쉬운 해답이 보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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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당파성이란 단어가 과학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어느 사건이나 사물을 당파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여기서 노동자의 당파성이란 말이 나왔다.

노동자의 입장에서 봐야 이 세계가 투명하게 보인다는 말이다.

이는 거꾸로 자본가의 시각에서 봐도 이 세계는 투명하게 보인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어느 입장이 더 인간적이냐의 문제가 아닐까...그 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란 자본가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인간적이지 못한 체체임은 분명해 보인다.

 

어제부터 국가가 행정대집행이란 명분으로 밀양의 할매, 할배들을 폭력으로 진압했다. 평생을 일궈온 땅을 765KW가 지나가는 송전탑이 지나가는 자리에 있다는 이유로 빼앗겨야 하는 이들에게 순순히 말을 들으라 하는 것이 인간적인가? 

단순하게 땅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송두리 채 들어내는 것 같아서 저항하는 노인들에게 국가는 '행정대집행'이란 어려운 법률용어로 포장한 날 선 폭력을 휘둘렀다. 조폭들도 국가라고 하면 저항을 포기하는데 아무런 힘없는 노인들이 어찌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알몸으로 저항해도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날 선 폭력에 끌려 나와야 했다.

여기서 되묻게 된다. 왜 국가는 이들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진압하는가? 이들이 잘못한 것은 무엇일까? 국가는 과연 무엇인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콜트콜텍이란 회사가 있다. 기타 좀 만져 보거나 처음 기타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들어본 회사일거다. 이 회사가 2006년 대전의 공장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생산물량을 중국과 인도네시아도 이전하고 이듬해 7월에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다. 해고의 이유는 생산성 저하에 따른 폐업이었다. 당시 회사의 재무구조는 튼튼했고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도 없는데 사업장을 폐쇄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조는 반발했고 8년째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라는 게...

장래에 올 수 있는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정리해고는 정당하다고 한 것이다....이 무슨 개짖는 소리란 말인가

 

 

 

이런 식이면 모든 대기업도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단행해도 된다. 이건희는 항상 언제 삼성이 쓰러질지 모른다고 위기를 입에 달고 다녔는데... 장래에 올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는게 법리상으로도 인정받은 이 참에 망설일게 뭐가 있을까? 뭐 그렇다는 얘기다.

 

밀양에서 보듯, 콜트콜텍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 여기에 빠진게 하나 있다. 바로 '사람'이다.

경쟁, 효율성, 비정규직, 정리해고, 파견노동, 알바....여기 어디에 사람 냄새나는 단어가 있을까?

사람이 사람답게 살자고 할때 국가의 의무는 무엇인가? 공권력이란 미명으로 우리가 국가에게 양도한 저 압도적 무력은 누구에게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어김없이 찾아온 6월 10일에 대학생들이 70여명 연행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묻어버리고 진정한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뻔뻔한 권력에게 항의하러 가는 길이었다. 대통령 책임이 아니니 헛발질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참사의 책임은 권력에 있다. 권력을 보유한 자에게 항의하지 않으면 누구에게 항의하란 말인가? 권력을 가진자가 사과하지 않으면 누가 사과해야 하는가? 어른들 모두의 책임이니까 모두 책임을 나누고 아무도 책임지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인가? 자본의 이윤을 위해 행한 권력의 보살핌이 참사를 불렀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사람을 지우지 말자.

사람을 지우는 순간 우리가 사는 곳은 지옥이 된다. 천국과 지옥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그곳에 존중할 사람이 없으면 지옥이고 존중할 사람이 있으면 천국이다. 우리는 지금 사람을 지우는 곳에서 살고 있다.... 당파성을 따지지 않아도 이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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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4-06-13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큐리님 안뇽 ♡ (나름 발랄해보려고 벌버둥? ㅎㅎㅎ) 제가 이번 총리후보자의 발언을 보면서도 이나라 지도층 인사들의 생명의식이 저리 바닥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니 바닥인걸 알았는데 저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는 세상이구나 이런 느낌. 저런 사람들이 권력을 가지면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의 방향이라면서 수십만을 죽이는구나 하는 생각이요. 밀양 영상을 보고 한참 울었어요. 그냥 그대로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세상이네요.

낭만인생 2014-06-13 11:56   좋아요 0 | URL
정말 밀먕... 이게 국가인지 답답합니다. 모두가 나서야할 때가 아닌지요..

머큐리 2014-06-14 12:32   좋아요 0 | URL
아직도 바닥은 아닌 듯하니...정신 똑바로 챙겨야 할 듯 해요~~^^
언제 맛있는 커피나 한 잔 해야 할텐데요...ㅎㅎ

이상하네 2014-06-20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상황에서 사람은 왜 뽑는거죠?? 취업사이트에 올라왔네요..참나..
 

해고된 쌍용노동자 중 23번째 죽음이 있었다.

왜 이런 비극이 계속되는 것일까?

이렇게 이어지는 죽음의 뒤편에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죽음들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일까?

가끔 배운 넘들이 더 잔인하고 무섭다는 생각을 한다.... 회계법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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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10-14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계 법인은 매일 숫자만 보다 보니 사람 목숨도 숫자로 보이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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