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유독 약해서 입사 후 계산기로 두들겨도 합계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내가 요즘에 읽고 있는 책들이 예산에 관한 책들이다. 그러니까 숫자에 대한 감각을 촉구하는 책들이 되겠다. 비슷한 이야기들이지만 강조점이 틀리고 따라서 상호보완 해가면서 읽으면 좋은 책들이다.
세금 문제를 주요하게 이슈로 삼고 세금개혁 없이 대한민국의 개혁은 있을 수 없다
고 주장하는 선대인의 책이다. 무슨 정책이던 실효성을 가지려면 자원이 있어야 한다. 특히 공적 사업을 시행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세금일진대 현재 세금은 가진자들에게 유리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실제 세금을 내는 주체들의 불평등함을 시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책이다. '프리라이더' 즉 이 사회는 무임승차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문제는 그런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주요한 과실을 독식하고 있다는 것이 선대인의 주장이다.
세금문제는 항상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우선적으로 조세저항이 강하다. 세금을 조금 올린다고 말하는 것은 정권을 걸고 할 수 있는 간 큰 소리일 뿐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세금의 수입없이 공공사업은 불가능하다. 문제의 근원은 내가 내는 세금이 나에게 아무런 혜택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르는 세금에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더구나 가진 사람들...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 전문직, 자영업자들에 비해 투명한 지갑을 가진 봉급자들로서는 더더욱 세금인상에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개발 사회시절의 생산에 대한 과세가 주된 골격을 이루는 이 나라의 조세 제도는 사회구조의 변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이 있다. 주식거래 차익 등 금융 자산에 대한 세금, 부동산 보유로 인한 이익에 대한 과세가 형편없이 약하거나 아예 없는 현실은 실질적으로 부유한 자들에게 유리하다. 더욱이 MB정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감세제도는 실질적으로 부유한 자들에게 유리할 뿐 아니라 실질적인 과세의 형평성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선대인은 조세제도의 형평성을 회복함으로서 돈을 거둘때 형편에 맞게 많이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내고 없는 사람들은 좀 적게 내는 조세제도를 구축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이 제대로 되어야 다음으로 진행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걷힌 세금은 어떻게 써야 할까? 아니 어떻에 쓰여지고 있는가를 알기위해 참고가 되는 책이다. 세금을 잘 걷으면 무엇하나 제대로 써야 효과가 많이 나오는 법. 그 효과는 정치인들의 생색내기도 아니고 실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예산은 일단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인 예산인 듯하다. 세금의 지출이 어디에 쓰여지는지 관심도 없을 뿐더러 그것에 대한 실질적인 감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일단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먼저 돈을 끌어다 쓰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낸 돈으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그러니 세금인상을 한다고 하면 얼굴부터 찌푸려진는 것 아닐까? 그러나 지출되는 예산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쓸데없는 소모성 사업에 지출을 줄이고 실제 삶에 도움이 되도록 예산을 지출하게만 만들 수 있다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보다가 문득 생각난 영화가 '데이브'다. 대통령이 외도 중 혼수상태에 빠져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측근들은 대통령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대통령으로 대리하여 자신들 맘대로 예산편성도 하고 권력을 휘두르는데, 이 대타로 등장하는 사람이 국무회의를 주관하면서 상식선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였는데... 우리의 현실에서 그렇게 상식적인 예산 집행을 감시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게 문제다. 그러면 누가 해야 할까? 결국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좀더 고생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의 장점은 누가해도 정신 똑바로 박힌 사람이 정치를 하면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는 통치기술이기 보다 상식이 아닐까 하는 근거없는 낙관성까지 듬뿍 안겨준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대로 '예산실명제'를 시행하여 쓸모없는 예산을 사용한 사람들을 기록하여 향후 인사검증 시에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된 듯하다. 더불어 실질적인 예산집행에 대한 지금까지의 낭비 사례를 고찰하고 새로은 예산집행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할 시점이 된 듯하다. 이 지점을 통과해야 이른바 '복지국가' 담론을 구체화 시킬 방안이 생길 것이다.
대한민군의 금고는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 책을 읽으면 세금과 예산에 대한 종합적인 관점이 잡힐 듯 하다. 예산 문제도 결국 관점의 문제이다.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엇갈릴 것이고 무엇을 우선 순위에 두느냐에 따라 집행하는 예산의 규모와 선후가 정해질 것이다.
고백하다시피 숫자에 약한 내가 이 책들을 읽는다고 뭔가 깨달음이 크진 않다. 나라의 예산이 아니라 내 개인의 예산도 관리하지 못해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간당거리고 살고 있는 내가 이런 책을 읽는 다는 것 자체가 좀 웃기긴 하지만.... 추상적인 이야기로 진보를 이야기 하는 시대는 아닌 것같다. 대의명분과 관점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현실화 시킬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것을 경계하고 실사구시하는 태도를 지니지 못하면 그저 관념속에서만 개혁을 이야기할 터다.
결국 자본주의를 뒤엎지 못한다면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할텐데... 아쉽게도 MB가 먼저 써먹은 '공정사회'가 일정한 답이 될 수 있겠다. 다만, 공정사회를 외치는 분들이 너무 불공정하게 살아오셔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병역면제...) 믿음이 가지 않고, 항상 국민을 위한다면서 제 욕심들만 챙겨서 문제이긴 하지만... 그들이 말한 공정함에 대해 엄밀하게 들이대야 한다...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돈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