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마지막 날. 늘 그랬지만 시간 참 빨리 지나갑니다. 2018년 상반기 마지막을 책방 ‘읽다 익다’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일찍 퇴근하자마자 책방으로 향했습니다. 퇴근 시간대인 오후 6~7시에 발생하는 교통체증을 피하고 싶었거든요. 책방이 있는 동네에 고산도서관이 있어요. 책방 가는 날에는 반드시 고산도서관에 갑니다. 제가 사는 동네 도서관에 없는 책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고산도서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책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도서관에 도착했어요. 읽으려고 했던 책을 골랐는데도 시간이 남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더 많은 책을 만나기 위해 저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배고픕니다. 새벽 12시까지 빈속으로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식사를 하기 위해 도서관 근처에 있는 신매시장에 갔습니다. 시장 안에 국밥집이 있었습니다. 돼지국밥을 먹었습니다. 돼지국밥에 술이 빠지면 안 되죠. 맥주를 마셨습니다.

 

제가 ‘고독한 대식가’라서 배가 부를 정도로 먹은 느낌이 나지 않았어요. 밥 한 공기 더 주문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밥을 다 먹고 책방에 향했습니다. 제가 책방에 도착한 시간은 6시 20분이었어요. 책방에 저보다 일찍 오신 분들이 계실 줄 알았어요. 저를 맞이 해준 건 텅 빈 책방이었습니다. 책방지기님도 안 계셨어요. 책방지기님은 집에 있는 아이들을 돌본 뒤에 책방으로 가겠다는 메모를 남겼어요. 결국, 제가 잠시 책방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책방에 혼자 있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읽다 익다’ 책방 내부를 사진에 담은 적이 없었어요. 일마치고 이곳에 가면 7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기 때문에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던 거죠. 우주지감 쌤들이 오기 전에 책방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주지감 독서모임 후기는 책방 사진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힘겹게 읽었고, 이 책에 관해서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아서 후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그냥 마음 편안하게 수다를 떨고 싶더라고요. ‘서재를 탐하다’, ‘읽다 익다’ 책방에 오면 마음이 편해요. 일만 아니면 오전 독서모임도 참석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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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6-02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다. 이런 곳을 알고 있고 있으니.
나도 어딘가 찾아보면 있을 것 같지만
가까운 곳엔 없어. 멀리 나가야있지.
프로그램이 알찬 것 같다.

근데 너의 열독은 식을 줄 모르는구나.
난 늘 마음에만 있지 점점 못 읽겠어.
나중에 늙으면 영화나 드라마만 볼까 해.ㅠ

cyrus 2018-06-02 20:23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힘들어요.. ㅎㅎㅎ 매주 한번 참석하는 독서모임에 활동해보니까 일정이 타이트한 느낌이 들어요.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고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몸이 안 따라줘요.. ^^;;

오후즈음 2018-06-0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부럽네요. 오월을 앓아 누워 있었더니 한달이 없어진것같아 속상하네요.

cyrus 2018-06-02 20:25   좋아요 0 | URL
아파서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워 있을 때 제일 속상하죠.. ㅠㅠ
아프면 집에 쉴 수 있어서 좋다고 하지만, 좋은 게 아니에요. 아프면 서러워요..
지금은 몸 상태가 회복되었어요? 건강이 중요합니다.

레삭매냐 2018-06-02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전에... 통풍으로 맥쥬 드시면
안된다고 하시지 않았던가요 ㅋㅋ

그런데 돼지국밥에 맥쥬를... 쏘주
아니었던가요.

이해합니다, 힘들 게 읽은 책일수록
리뷰 쓰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쓰셔야 합니다.

cyrus 2018-06-02 20:45   좋아요 1 | URL
한 달에 맥주 한 번 마셔도 괜찮을 거.. 예.. 요.. ㅎㅎㅎ
그 날 너무 기분이 좋아서 혼술했습니다. ^^

뭘 마실까 고민했어요. 막걸리, 맥주. 제가 이 두 가지 술을 엄청 좋아해요.
대구는 요즘 열대기후 모드라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ㅎㅎㅎ

레삭매냐님은 달궁 때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꾸준히 리뷰를 쓰시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이 온라인 공간에서만 만난다는 게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레삭매냐님 글이나 댓글을 읽을 때나 독서모임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가끔 달궁 멤버들이 생각납니다.

재는재로 2018-06-02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임같은건 번거로워서 도서관에서 시집회같은데 관심없냐고 듣은적이있는데 모임 분위기는 어떤가요 책 고프다 주말을 잘보내시는것같네요 ㅋㅋ

cyrus 2018-06-03 12:49   좋아요 0 | URL
모임 분위기는 좋습니다. 일단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아요.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경험과 생각을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경험이 주는 느낌은 달라요.

원래 제가 집돌이인데다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해요. 특별한 일 아니면 도서관이나 서점은 저 혼자 갑니다. 여러 사람 모여서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ㅎㅎㅎ

자주는 아니더라도 책 읽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건 정신 건강에 좋은 일입니다. 예전에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요, 오랜 시간 혼자서 책 읽는 생활에 익숙해지면 상대방과의 사소한 대화조차 어려워해요. 그러니까 상대방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거죠. 대화를 못하니까 사람이 소심해지고, 내성적인 성격이 계속 유지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고, 말에서 묻어나는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눈치도 없어져요.

2018-06-03 0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03 12:50   좋아요 0 | URL
사진 책이 아니더라도 저녁 모임에 오셔도 좋습니다. ‘특별 손님‘으로 모시겠습니다. ㅎㅎㅎ
 
중세의 미학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손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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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자신의 첫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을 완성하기까지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중세를 생생하게 구축하기 위해 몇 달 동안 도서관에 파묻혀 지냈다. 에코는 그곳에서 방대한 분량의 중세 자료를 뒤적거렸다. 중세 수도원의 내부 구조를 정확하기 묘사하기 위해 건축 공부도 새롭게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게 바로 종이가 아깝지 않은 작가의 치열한 예술혼이다. 그런데 《장미의 이름》 원고를 읽은 편집자들은 소설의 시작부가 너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에코에게 충고 비슷한 제안을 했다. 소설의 시작부에 해당하는 100쪽을 줄이는 게 어떻겠냐고. 에코는 그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는 그들에게 낯선 수도원에 일주일 동안 묵을 작정을 한다면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행보(行步, pace)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코가 말한 ‘행보’는 무슨 의미인가. 소설 읽기를 ‘등산’에 비유한 에코의 말을 살펴보면 행보가 무얼 뜻하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설로 들어간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산을 오르자면 호흡법을 배우고, 행보를 익혀야 한다. 배울 생각이 없으면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게 낫다.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 64쪽)

 

 

어떠한 목적지에 다녀오기 위해 걷는 것을 행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독자는 《장미의 이름》을 읽기 위해선 반드시 이 ‘목적지’를 다녀와야 하는데, 독자가 가야 할 ‘목적지’가 바로 《장미의 이름》의 무대인 중세 수도원이다. 수도원 내부 구조, 수도원의 규율 그리고 그곳에서 사는 수도사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주제는 당대를 반영하는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독자는 《장미의 이름》을 완독하려면 중세 문화 및 사상을 익혀야 한다. 사전 준비 없이 소설 읽기에 도전하면 시작부터 막히게 된다.

 

에코가 26세 때 쓴 《중세의 미학》(열린책들, 2009)중세를 향한 행보를 익히는 데 유용한 기준점과 같은 책이다. 에코는 암흑의 천막에 가려진 중세의 시대를 열어젖혀 고전 시대(고대 그리스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해낸 중세인들의 미적 감수성을 소개하고 있다. 흔히 중세는 ‘암흑시대’로 알려져 있고, 그 시대를 상징하는 수도원에 대해서는 세상과 단절된, 폐쇄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에 십상이다. 그러나 깜깜한 시대로 대변되는 중세는 ‘근대’의 눈으로 본 것이다. 근대인이 덮어씌운 암흑의 천막을 벗긴 중세는 ‘생기 넘친 감각적 세계’였. 그동안 우리는 중세를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

 

고전 시대의 미학을 물려받은 중세인들은 비례와 조화로 어우러진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지향했다. 비례는 아름다움의 수학적 증명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가 제시하고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가 확립한 비례는 균제 즉 조화라는 미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중세 교회의 유리창을 장식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가장 오묘한 빛을 내는 유리로 만들어진다. 중세 신학자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공식으로 ‘빛과 색깔’을 강조했고, 스테인드글라스는 자연의 빛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최고 수준의 기법으로 발전했다. 성서를 해석하는 일에 몰두한 교부와 신학자들은 ‘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았으며 그 세계 속에 숨겨진 신의 섭리를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신성한 신의 섭리를 알레고리(Allegory)란 형식으로 표현했다. 알레고리는 설명할 수 없는(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신학 지식을 신자들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중세는 종교적 권위의 결별을 선언한 근대가 도래하면서 점점 균열하기 시작했다. 인문주의자들은 부패한 세속 교회를 무너뜨리고, 수도원의 지식 독점을 해체하기 위해 신학과 스콜라 철학을 공격 목표로 삼았다. 그들에게 신학과 스콜라 철학은 신의 권위가 막강했던 중세를 대표하는 학문이다. 신학과 스콜라 철학이 반영된 중세 미학은 한때 서구 지성사의 반열에도 끼지 못했다.

 

에코는 중세 미학을 불러들이면서 중세에 대한 복권도 시도한다. 과연 중세는 엄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유지한 청교도적인 시대였는가에 대해 에코는 회의한다. 고전 미학은 중세 고유의 학문과 종교를 통해 여러 차례 수정되다가 미적 수준을 갖춘 중세 미학으로 발전했다. 중세인의 미적 전통은 고전 문화의 부흥을 뜻하는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중세인들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중세 미학은 학문과 예술의 부흥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중세의 미학》은 역사에서 중세와 근대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 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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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02 17:16   좋아요 0 | URL
현재에 있는 사람은 과거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잘 봐요. 지금 우리도 시간이 흘러 ‘과거’가 된다면 ‘현재’에 있는 사람(우리 시점에서는 그들은 미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죠)들은 우리의 단점을 가지고 평가할 것입니다.. ㅎㅎㅎ 문득 미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18-06-02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중세는 근세/르네상스의 도래로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일단 중세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살펴 보기 위해서
는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부터 읽어야 하는데...
항상 생각만 하도 실천에 옮기질 못하고 있네요.

<장미의 이름>도 이번에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
문트>를 읽다 보니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cyrus 2018-06-02 20:50   좋아요 0 | URL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중세와 관련이 있나요? 레삭매냐님이 <장미의 이름>을 읽고 싶어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우주지감 쌤들이 오전에 인문학 책 읽기 모임을 해요. 5월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어서 완독했고요, 이번 달부터 읽게 될 책이 단테의 <신곡>입니다. 이 책도 중세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책이죠.
 

 

 

 

이토 준지 컬렉션 10화 첫 번째 이야기

글리세리드

 

 

 

 

 

『글리세리드』는 공포감보다는 비위에 거슬리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이토 준지는 ‘찐득거리는 불쾌감’을 느낀 경험을 토대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끈적끈적한 기름 덩어리들이 비적비적 흘러나오는 집의 묘사와 기름을 먹고 사는 인물들의 모습은 작품을 보는 사람의 속을 느끼하게 한다. 역시 이토 준지는 불쾌감을 유발하는 재주가 있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자선 걸작집》 (미우, 2016)

* [절판] 이토 준지 《어둠의 목소리》 (시공사, 2014)

 

 

 

유이는 고기를 파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아버지고로라는 이름을 가진 오빠와 함께 사는 소녀다. 그녀가 사는 집은 어둡고 기름이 흘러넘친다. 고로는 아버지 몰래 혼자서 기름을 벌컥벌컥 마시는 히키코모리다(성이 같을 뿐 식당에 혼자서 밥 잘 먹는 이노가시라 고로[1]의 음식 취향과 정반대이다). 기름을 섭취한 영향으로 인해 아버지와 고로의 피부에 기름기가 많고, 몸에 생긴 기름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 고로는 몸에 묻은 기름과 얼굴에 난 여드름 때문에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외출을 하지 않은 채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종종 동생을 괴롭히면서 화풀이를 한다. 기름에 민감해진 유이는 집안에 퍼져있는 기름의 농도(유도, 油度)[2]를 감지하는 능력이 생긴다.

 

뭐니 뭐니 해도 『글리세리드』의 하이라이트고로의 ‘여드름 짜기’ 공격이다. 결말보다 중간 장면이 더 유명한 작품이다. 고로는 자신의 얼굴에 난 여드름을 한꺼번에 짜서 유이를 괴롭히는데, 얼굴에서 기다랗게 국숫발처럼 흘러나오는 피지가 인상적이다. 아니, 인상적이라기보다는 혐오스럽다. ‘역대급 혐짤’을 말로 표현하면 묘사가 주는 불쾌감을 느낄 수 없다. ‘이토 준지 여드름’이라고 검색하면 그 문제의 장면을 볼 수 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보지 말 것!

 

 

 

 

 

 

이토 준지 컬렉션 10화 두 번째 이야기

다리

 

 

 

 

 

 

카나코는 한밤중에 할머니가 사는 마을에 향한다.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특이한 장례 풍습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망자를 땅에 매장하지 않고, 다다미에 실어 다리 밑에 흐르는 강물에 떠내려 보낸다. 그리고 그 과정을 모든 마을 사람들(아이들도 포함)이 모여서 구경한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4 : 허수아비》 (시공사, 2008)

 

 

 

마을 사람들은 강물에 떠내려가는 망자가 다리 밑에 통과하면 성불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망자가 다리 밑에 통과하지 못하고 강물에 잠겨버리면 성불에 실패한 것이다. 카나코가 건넌 다리 위에는 성불하지 못한 채 유령이 된 마을 사람들이 서 있다. 유령들은 밤마다 할머니를 부르고, 죽음을 직감한 할머니는 손녀 카나코에게 자신이 죽으면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과연 할머니의 유언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이토 준지 컬렉션 11화 첫 번째 이야기

초자연 전학생

 

 

 

 

 

 

이 이야기의 화자인 마이코는 학교 동아리 ‘초자연 동호회’ 회원이다. 초자연 동호회는 초자연적 현상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결성한 동아이다. 초자연 동호회의 리더인 히카루는 숟가락을 구부리는 초능력을, 동급생 키요시는 영시(靈視) 능력이 있다. 동호회 회원들은 그들이 진짜 초능력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두 사람은 속임수를 쓰고 있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7 : 신음하는 배수관》 (시공사, 2008)

 

 

 

그러다가 어느 날, 전학생인 츠카노 료가 초자연 동호회에 가입한다. 료도 초자연적 현상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료가 나타날 때마다 그의 주변에 기이한 사건들이 일어난다. 초자연 동호회 회원들 앞에 ‘진짜 초능력자’가 나타난 것이다!

 

 

 

 

 

 

이토 준지 컬렉션 11화 두 번째 이야기

허수아비

 

 

 

 

 

『다리』와 조금 비슷한 작품이다. 『허수아비』에도 특이한 장례 풍습이 나온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은 망자를 잊지 못해 무덤에 망자의 모습과 닮은 허수아비를 세운다. 전체적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작품은 아니었으나 살아있는 듯한 허수아비의 표정이 섬뜩하다.

 

 

 

 

 

 

 

 

 

 

 

 

 

 

 

 

 

 

* 이토 준지 《이토 준지 공포 박물관 4 : 허수아비》 (시공사, 2008)

 

 

 

『허수아비』를 보면서 ‘세계의 괴기 장소’ 중 하나로 언급되는 멕시코의 ‘인형의 섬’이 생각났다. ‘인형의 섬’에 가면 여기저기에 매달린 흉물스러운 인형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섬에 버려진 인형들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봐도 오싹하다. 인형의 섬이 생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이 섬의 관리인이 인형을 매달았다는 설이 있다. 섬의 관리인은 물에 빠진 소녀를 구하지 못해 죄책감에 빠졌고, 소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인형들을 매달아 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연하게도 섬 관리인 역시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인형의 섬’ 탄생에 둘러싼 지금까지의 내용은 ‘나무위키’에 있는 것이라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1] 

 

 

 

 

 

 

 

 

 

 

 

 

 

 

《고독한 미식가》(이숲, 2010, 2016)의 주인공.

 

 

[2] 이토 준지는 습도(공기 중에 수증기가 포함된 정도)에 영감을 얻어 ‘유도(공기에 포함된 기름의 농도)’라는 가상의 용어를 만들었다. (《이토 준지 자선 걸작집》 자작 해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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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01 12:25   좋아요 1 | URL
제가 청소년 시절에 여드름으로 고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여드름이 나봤자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예요. 제 피부가 지성인데, 여드름이 많이 생기지 않아서 신기해요. 축복받은 피부입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8-06-01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고 나서 멕시코 인형의 섬
을 검색해 보았는데... 오싹하네요 정말.

사탄의 인형에 등장하는 처키가 떠오르기도
하구요. 인형도 이렇게 무서울 수 있구나 싶
네요.


cyrus 2018-06-01 19:21   좋아요 0 | URL
호러영화의 인기 소재가 인형이죠. 인형이 사람의 모습을 모방한 물건이라서 더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이하라 2018-06-0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드름 공격을 가볍게 묘사하신 걸텐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혐오스럽네요ㅠ
그 외의 작품들은 흥미를 끄는 매력도 있는 것 같아요

cyrus 2018-06-02 17:18   좋아요 1 | URL
애니메이션의 특정 장면도 스포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토 준지 특유의 공포를 직접 확인해야 묘사가 주는 공포감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어요. 이토 준지 만화책을 보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이토 준지의 그림을 볼 수 있어요. ^^;;
 

 

 

공허한 말, 웃음을 유발하는 언사를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 [1]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에 나오는 이 문장은 중세 유럽의 웃음에 대한 입장이 잘 드러나 있다. 현세의 행복을 뜻하는 웃음은 경박하며, 내세를 지향하는 경건한 기독교적 세계관과 상반되는 것이므로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9)

* [절판] 호르스트 푸어만 중세로의 초대(이마고, 2003)

    

 

 

 

 

 

 

 

 

 

 

 

 

 

 

* 만프레트 가이어 웃음의 철학(글항아리, 2018)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 시학(도서출판 숲, 2017)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도서출판 숲, 2013)

    

 

 

10세기 초 성직자들은 독일 호엔알트하임(Hohenaltheim) 주교 회의를 통해 즐거워하는 육체는 죄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2]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웃음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시학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웃음이 쓸모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미의 이름의 맹인 수도사 호르헤는 웃음이 신의 권능을 부인하는 해로운 악마의 선물로 여겼고, 시학2희극론사람 목숨을 빼앗는 위험한 금서로 만들었다. 그는 웃음을 사교의 덕 중 하나로 꼽은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만약에 수도원 도서관에 웃음의 장점을 언급한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있었다면 호르헤는 이 책에도 독을 발랐을 것이다. 아무튼, 호르헤 같은 중세의 신학자나 성직자들은 진리 속에 있는 웃음을 추방했다. 그들은 경건함을 중시했다.

 

그렇지만 모든 중세 사람들이 웃음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창시자인 베네딕투스(Benedictus)바보의 웃음은 떠들썩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조용히 웃는다라고 말했다. [3]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는 중세 유랑 탁발승이나 음유시인들이 도덕, 사랑, 유희, 외설 등을 노래한 작자 미상의 세속시가집이다. 이 시가집이 처음 발견된 곳은 독일 남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이다. 이 시가집을 만든 사람(공동의 저자일 수 있다)이 누군지 영원히 알려지지 않겠지만 중세에도 억압과 고통을 해방하는 웃음의 긍정적 기능을 옹호한 윌리엄 수도사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장미의 이름의 윌리엄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의 가상 인물이다).

    

 

 

 

 

 

 

 

 

 

 

 

 

 

 

*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연암서가, 2012)

    

 

 

웃음을 유일하게 허용하는 날이 있으니 그게 바로 축제가 있는 날이다. 중세의 문화를 연구한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중세 사람들의 마음속에 두 개의 인생관이 공존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경건한 삶을 지향하는 금욕주의적 인생관, 또 하나는 방탕하게 축제를 즐기는 세속적 인생관이었다. 실제로 교회가 지정한 1년은 일하는 날과 축제하는 날로 구분되어 있다. 하위징아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세 사람들은 모순적이면서 열정적인 인간[4]으로 살아왔다. 장미의 이름의 화자로 나오는 아드소모순적이면서 열정적인 중세인이라 할 수 있다. 소설에 묘사된 청년 시절의 아드소는 수도원에 몰래 들어온 마을 처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는 자꾸만 샘솟는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신앙심에 의지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경건한 교회에 매일 빠짐없이 출석하면서도 향락적인 일탈을 꿈꿨던 중세 사람들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로저 베이컨의 학문 세계를 소개한 책들

    

 

 

 

 

 

 

 

 

 

 

 

 

 

 

 

 

 

 

 

 

 

 

 

 

 

* 유대칠 신성한 모독자(추수밭, 2018)

* S. P. 램프레히트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8)

* 아먼드 A. 마우러 중세철학(서광사, 2007)

* F. C. 코플스턴 중세철학사(서광사, 1988)

 

    

 

윌리엄이 웃음의 기능을 옹호한다고 해서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까지 받아들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산이다. 윌리엄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스승이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이다. 로저 베이컨은 실제로 생존했던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이다. 그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수도사였지만, 과학과 수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자연철학자였다. 베이컨은 열세 살(!)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다. 옥스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은 로버트 그로스테스트(Robert Grosseteste). 그로스테스트는 옥스퍼드 대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베이컨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로스테스트와 베이컨의 스콜라 철학을 옥스퍼드 파로 분류한다. 이 두 사람은 이슬람 국가에서 전해지게 시작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 관심을 보였지만, 그렇게 열광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적인 실험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동시대 학자들을 비판했다. 베이컨은 귀납법과 연역법을 모두 사용하여 어떤 진리의 진실성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절판] 최정은 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휴머니스트, 2005)

 

    

 

아먼드 A. 마우러(Armand Augustine Maurer)는 베이컨을 스콜라 철학 시대의 역설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한다.[5] 베이컨은 종교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학문적 시각과 태도를 유지했다. 과학(특히, 빛을 연구하는 광학)에 헌신한 그의 탐구 자세는 정통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는 감옥에 수감되는 시련을 겪었다. 베이컨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면 트릭스터(Trickster)이다. 트릭스터는 사회가 만든 획일적인 규범의 한계를 넘어서는 대범한 용기를 가졌으며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한다. 트릭스터와 대비되는 인간상이 하마르티아(Hamartia).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온다. 하마르티아는 자신의 실수 또는 결함에 의해 불행을 초래하는 비극적인 인간이다. 하마르티아는 원래 신에 의해 눈이 먼 인물을 뜻한다. 윌리엄을 논쟁을 펼친 호르헤는 하마르티아에 속한다. 그는 신의 권능에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자신과 다른 진리를 죄악시한다. 로저 베이컨은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 겪는 네 가지 오류를 제시했는데, 특히 그가 엄중히 경고했던 오류는 무가치한 권위의 복종이다. 흥미롭게도 호르헤는 베이컨이 경고한 오류를 범했고, 베이컨의 제자인 윌리엄은 그와 논쟁을 할 때마다 고지식하고 권위적인 자세를 비판했다. 결국 호르헤의 치명적인 오류, 즉 결함은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발생하게 만들었고, 자신뿐만 아니라 수도원의 도서관까지 파멸시킨다. 호르헤는 신의 권능에 눈이 멀기 시작하면서부터 진리의 자유를 통제하는 악마가 된 비극적인 인간이다.

 

 

 

 

[1] 장미의 이름(열린책들, 2002) 154

[2] 중세로의 초대(이마고, 2003) 374

[3] 중세로의 초대(이마고, 2003) 375

[4] 중세의 가을(연암서가, 2012) 341~342

[5] 중세철학(서광사, 2007)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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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5-29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장미의 이름> 비디오를 구해 보겠다고
온 동네 비디오 가게를 돌아 다니던 기억이 나
네요.

정말 나중에 책으로 만나 보니 영화가 정말 책
의 발톱 만큼도 따라가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도 읽어야 하는데...
소장각입니다만.

절판된 <트릭스터>도 땡기네요...

cyrus 2018-05-30 17:54   좋아요 1 | URL
최정은 씨의 <트릭스터>는 영화, 만화작품을 중세의 시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 저자의 해석이 흥미롭긴 한데, 중세 사상뿐만 아니라 고대, 근현대 철학까지 동원한 글이라서 읽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다 읽진 않았고, 관심 있는 내용이 나오는 장만 읽었어요.
 
노동의 미래 - 디지털 혁명 시대, 일자리와 부의 미래에 대한 분석서
라이언 아벤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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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주변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다. 세계의 어느 국가도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디지털 혁명 시대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인공지능의 확산 등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경제는 물론 의식구조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몰아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누가 먼저 어떻게 적응하고, 더 나아가 주도권을 쥐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시류를 잘 타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의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하게 될 문제다. 디지털 혁명이 우리 사회에 미칠 효과에 대해서는 낙관과 비관으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어 분명한 전망을 내리기가 힘들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지적했듯이 첨단 과학기술 시대의 도래로 세계 노동력의 단지 5%만 필요하게 되는 시대가 현실이 된다면 그 이후의 혼란은 충분히 예상된다.

 

<이코노미스트> 수석 편집자이자 칼럼니스트인 라이언 아벤트(Ryan Avent)《노동의 미래》(민음사, 2018)라는 책에서 밝지만은 않은 미래의 부와 노동환경을 전망한다. 산업혁명은 대혼란과 오류, 일자리의 감소 등을 수반한다. 이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기술기반 경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혁명이 19세기 산업혁명의 발전 과정처럼 흡사하게 진행될 거로 주장한다. 산업혁명 이후 전통적인 경제에서는 노동 · 원료 등 요소 투입량의 차이에 의해서 경제적 격차가 발생했지만, 디지털 경제에서는 ‘희소성이 높은 자원’, 즉 경제적 가치가 놓은 기술 소유의 차이가 소득 격차를 급격히 증대시켜 부의 양극화를 가져온다. 소규모의 기업이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 발전에 많은 투자를 할 것이고, 경제시장에서 ‘승자 그룹’이 되어 부를 축적하게 된다.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19세기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정보혁명이 산업구조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지식사회의 서막이라고 진단했다. 농업혁명의 시대에는 자기 힘으로 물건 하나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어도 비옥한 토지만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부를 창출할 수 있었겠지만, 디지털 경제에서는 자신의 지식과 정보 능력이 없으면 더 이상의 부를 창출하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부를 유지하기도 힘들게 된다. 디지털 경제에서는 자신의 아이디어만 있으면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많은 사업기회를 발견할 수가 있다. 하지만 ‘노동력 과잉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면 고도로 숙련된 소수의 지식근로자만 일을 수행하고, 수많은 노동자는 저임금을 받거나 일자리를 잃는다. 아벤트는 자동화세계화,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의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력 과잉의 시대가 온다면 노동력의 경제적 · 정치적 영향력은 낮아지고, 희소성 높은 자원의 소유주들은 막대한 부를 독점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디지털 혁명이 조성하는 노동력 과잉에 따른 경쟁 및 갈등소득 분배의 불균형 문제는 향후 풀어야 할 전 지구적 차원의 도전 과제다. 저자는 전 세계의 일반적인 숙련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기회를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향후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인류는 이미 과거 산업혁명을 통해 깨달은 경험이 있다. 혼란스러운 정치적 변화를 겪은 뒤에야 인간의 삶을 보다 개선하는 진보적인 사회운동이 전개되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재분배를 논의하는 장이 형성될 것이라면서 저자는 낙관적으로 예측한다. 그런데 실물경제의 침체로 하루하루를 답답하게 살아가는 ‘서민’ 독자 입장에선 전문가의 낙관이 속 터지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우리 사회의 주변부는 변화를 요구하지만, 핵심으로 갈수록 고여 있는 물 같다. 부를 독점하는 소수의 권력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 돼 있기 때문이다. 기회균등, 공정한 경쟁, 공평한 분배와 같은 얘기는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의 응석쯤으로 비친다. 디지털 혁명 시대가 코앞에 있는데도 자신이나 자녀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 Trivia

 

 

 

 

책 앞날개 저자 소개 문구에 보면 ‘수적 편집자’라고 표기된 오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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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9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5-29 18:24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보면 저자는 기계가 일자리를 대신하는 시대에 노동단체의 교섭권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아무래도 일자리 뺏긴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많아지면 노동조합들도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