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신병과 심리학
미셸 푸코 지음, 박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이성은 자신이 현명한 줄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은 미친 것이다. 이성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성은 자신이 올바르고 믿었으나 실제로는 망상에 빠져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 미셸 푸코 <정신병과 심리학> 중에서, pp 136 -
젊은 푸코의 '광기' 에 대한 풋풋한(?) 학문적 탐구
인간의 광기는 흔히 정상적인 것과는 대칭에 선 비정상의 개념쯤으로 통한다. 우울증과 죽음, 욕망, 폭력, 비판과 같은 광기의 양상은 위험하고 혐오되야 할 가치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래서 광기는 정치와 철학, 역사의 범주에선 늘상 배제되고 억압받곤 한다. 그러면 광기는 정말 비정상적이고 배척해야만 할 주제일까.
이성의 광기에 대한 배제와 억압의 역사를 담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다가 독서 진도가 나아가지가 않아서 <광기의 역사>가 출간되기 전에 쓰여진 <정신병과 심리학>을 겸하여 읽게 되었다.
푸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기의 역사>는 1961년에 발간되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광기의 역사>가 푸코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려준 처녀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광기의 역사>를 읽기 전에는 그저 '푸코' 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던 터라 <광기의 역사>가 푸코의 처녀작인줄 알았다. <정신병과 심리학>은 1954년에 푸코가 심리학과 조교수로 역임된 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공식 저작물이다. 으레 푸코라고 하면 철학자라고 떠올리기 쉬운데 그가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 오르면서 전공했던 학문이 심리학이다. 전통적인 철학의 학문적 범위에만 한정하지 않는 그의 광범위한 지식 편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신병과 심리학>에는 심리학을 통한 정신병에 대한 탐구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심리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정신병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이론 등과 같은 다양한 심리학 이론 등을 논지로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으며 2부에는 광기의 사회문화적 관계를 역사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1부는 심리학적 용어가 많이 언급되는데 사실 심리학적 지식이 빈약한 편이라 굳이 1부를 읽지 않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광기의 역사>를 읽고 있는 상황이라 '광기' 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2부만 따로 발췌해서 읽었다.
700여페이지나 되는 <광기의 역사>를 완독한 것은 아니지만 <정신병과 심리학> 2부는 훗날 <광기의 역사>로 집대성하기 전. '광기'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젊은 푸코의 풋풋한(?) 학문적 탐구를 볼 수 있었다. <정신병과 심리학> 2부 '광기와 문화'가 푸코 사상의 청소년기라고 한다면 <광기의 역사>는 사상의 범위가 한층 더 광범위해지고 성숙되어진 청년기인 것이다.
서구문화적 관점이 만들어낸 광기의 정의
푸코는 하나의 사회집단 속에서 특정 개인이 '정신병 환자' 로 간주될 수 있는 원인을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과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분석에서 찾고 있다.
뒤르켐은 '사회' 를 정치체계, 가족체계 및 그 밖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체계 등 여러 부분이 합성된 하나의 실체로 보고 있다. 즉, 사회 그 자체는 하나의 동일한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특징을 부분으로 한정지어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사회학이라는 학문에서 과학적 조사를 실시한 최초의 사회학자이다. 그는 통계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이를 근거로 이론을 제시하였다. 사회집단에 속한 사회 구성원들은 유기적 연대를 강화하는데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가 무규제 상태로 사회 내 도덕적 규범의 가치가 상실된다면 그 현상은 일탈 행동으로 보게 된다. 이를 푸코는 통계학적 시각의 관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테오도르 제리코 <미친 여인> 1822년
우리 사회는 사회가 추방하거나 감금하는 정신적 환자 속에서 자신을 알아보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질환을 진단하는 바로 그 순간, 환자를 축출한다.
- 2부 광기와 문화 서론, pp 110 -
그리고 루스 베네딕트와 같은 미국 심리학자들의 관점 역시 뒤르켐의 통계학적 관점의 내용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같은 원시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원주민 집단은 대체로 옷을 입지 않은 채 벌거벗은 상태이며 신발 역시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생활한다. 그런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있는 50명의 원주민 중에서 단 한 명만이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다고 가정해보자. 평소에 벌거벗고 맨발로 다녔던 원주민들에게는 옷과 신발로 무장한 그 원주민이 무척 낯설게 느껴지며 그동한 자신들이 생활했던 행동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는 원주민 집단의 고정된 문화적 유형에서 배제되는 행위이며 이는 곧 사회집단 내에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뒤르켐과 베네딕트의 분석과 같은 서구문화적 관점에는 공통적으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양식, 도덕적 규범 등에 위반되는 행위는 비정상적, 또는 정신병자로 간주되어진다는 점이다.
광기의 역사

피터르 브뤼헐 <죽음의 승리> 1562년경
15세기 말은 확실히 광기가 언어의 본질적 힘과 다시 관계를 맺게 된 세기들 중 하나다. 고딕 시대의 마지막 징표들은 차례차례, 그리고 연속적으로 죽음과 광기에 대한 강박관념에 지배받았다. 죄없는 자들의 묘지에 그려진 '죽음의 무도'(Dance macabre), 피사의 캄포 산토 벽에 새겨진 '즉음의 승리' 가 그것이다. 그리고 또 그 당시에는 광인들의 수많은 춤과 축제가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럽이 그렇게 기꺼이 기념하던 광인 춤과 광인 축제가 존재했다.
- 5장 정신질환과 역사적 형성 중에서, pp 116~117 -
2부 '광기와 문화' 에는 <광기의 역사>에서 다루어지게 되는 광기라는 단어가 형성되어지는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광기는 일반인들에게는 혐오스러운 '비정상적' 행위이지만 15세기 때만 해도 어느 곳에나 광인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으며 광인의 심리에 대한 저작물도 출판될 정도로 그 당시 대중들에게 광기는 친숙한 주제였다. 광기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가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사회학적 대상이었다.
윌리엄 호가스 <연작 '탕아의 편력' - 정신병원에서> 1732~1735년
가난한 불구자들, 빈곤층 노인들, 고집 센 실업자들, 성병 환자들, 온갖 유형의 방탕아들, 가족이나 왕권이 가하는 공식 처벌을 기피하는 자들 (중략) 간단히 말해서 이성, 윤리 그리고 사회 질서에 비추어 볼 때, '문란' 의 신호를 보이는 모든 자들을 이 강제수용소에 감금했다.
- 5장 정신질환과 역사적 형성 중에서, pp 119~120 -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광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광인들을 수용하기 위한 강제수용소가 생기게 되면서 광기는 개인적인 문제의 대상으로 그 범위가 변형되었다. 그리고 '광인' 에 포함되는 대상은 단순히 정신질환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7세기의 강제수용소는 단순히 의학적으로 정신병에 걸린 환자들을 수용하는 의학적인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 아니다. 사회 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가난한 부랑자에서부터 사회 질서에 어긋나고 부도덕적인 범죄자들까지 사회에서 인정될 수 없는 비이성적이면서도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강제수용소에 감금했다. 강제수용소의 탄생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이성' 을 통용하는 권력집단의 사회적 통제 수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이성을 감금하고, 광기라는 낙인을 붙여 치료의 대상으로 전환시킨 것은 심리학과 정신병리학이 등장한 근대 이후부터다. 그러나 사회적 일탈과 범죄 행위로 결부되는 광기의 시선은 변함없었다.
광기 그리고 정신병에 대한 편견을 깨자
광기에 대한 편견의 출발점은 사회적 소수자와 그 대척점에 있는 기득권자들의 평가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후자만이 그 기준을 정하고 평가함으로써 비극을 낳고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이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광기에 대한 편견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배척과 소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컨대 당연히 가져야 할 교육과 직업을 얻을 기회를 빼앗아 놓고 장애인을 사회적 무능력자로 낙인찍어 사회로부터 보호가 필요하거나 격리의 대상으로 삶을 규정해버리거나 동성애를 혐오스러운 병균체로 사회를 오염시키거나 격리가 필요한 정신병으로 치부하는 등의 사회적 판단이 여전히 사회에서 당연시되고 있다.
정신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사회, 문화적으로 여러 요인이 있지만, 영화나 언론매체에서의 정신과 환자에 대한 왜곡된 묘사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영화나 언론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것을 이용한다. 그리고 실제 정신병을 앓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확률이 높지 않은데도,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정신병 환자의 소행으로 모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편견으로 음지에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준다.
이제 정신병도 약으로 치료할 수 있으며, 정신병은 더 이상 숨길 병도 아니다. 다른 질병처럼 주위 사람과 상의하고 감기를 치료하듯 스스럼없이 병원도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정신병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바뀌어야 한다. 이는 의료인들이 더 노력하고 연구할 문제이지만, 의료시스템을 포함한 사회제도적 측면에서도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