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공익광고 관련 글을 쓰면서 불필요한 내용 하나를 빼버렸다. 원래는 보는 사람을 불길하게 만드는 광고 한 편 더 소개하고 싶었다.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지면 북플로 접속하는 독자들이 부담스러워한다. 어제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우젠 광고를 소개한 글 대신에 원래 쓰려고 했던 내용을 썼어야 했다. 어제 Agalma님이 광고 영상이 있는 인터넷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으면 글감으로 재활용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어제에 이어서 문제의 광고 영상 한 편 소개해본다. 1985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크리넥스 티슈 광고 영상이다. 불그스름한 배경에 붉은 오니(인터넷에 떠도는 크리넥스 광고 괴담에 관한 글 대다수가 ‘도깨비’라고 써있다. 그러나 ‘오니’라고 쓰는 게 맞다. 우리나라의 도깨비와 일본 전통 요괴 오니는 완전히 다른 존재다)로 분한 아이와 흰옷의 여자가 나온다. 꼬마 오니는 뽀로통한 상태로 앉아 있다. 그녀는 티슈를 뽑다가 갑자기 오니의 볼에 뽀뽀하려고 한다. 그녀가 뽑은 티슈 한 장이 공중으로 날아가면서 광고는 끝이 난다.

 

흰옷의 여자는 1970, 8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마쓰자카 게이코라는 여배우다. 흰옷을 입은 청순한 여배우를 섭외하여 티슈의 청결한 느낌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단순한 광고가 전파되자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첫 번째 괴담. 오니로 분장한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두 번째, 광고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세 번째, 여배우는 아이의 몸에 들어간 오니에 의해 임신했으며, 정신적 충격에 시달려 병원에 입원했다. 네 번째, 광고 배경음악은 악마의 노래다. 그래서 이 노래가 흐르는 광고를 여러 번 보는 사람은 악마의 저주에 걸려 자살했다. 이러한 괴담들이 널리 알려지자 사람들은 '크리넥스 광고의 저주'라고 불렀다.

 

 

 

그러나...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말도 안 되는 내용이다. 음침한 분위기를 내는 광고 탓에 대중들은 괴상한 헛소문을 만들었다. 여배우는 중견 배우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광고 때문에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배경 음악은 악마의 저주와 전혀 관련 없다. 시인 겸 작곡가인 에드워드 바튼이 만든 노래 ‘It's fine a day’를 아카펠라 버전으로 편곡된 것이다. 천천히 돌아가는 화면에 아카펠라 음악이 더해지면서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본 크리넥스 회사는 무슨 마약 하길래 이런 광고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다른 크리넥스 광고 영상 하나 더 있다. 꼬마 오니가 나오는 광고의 전작이다. 이 광고에는 천사로 분장한 아이만 등장한다. 여러 장의 티슈가 공중에 흩날리는데 배경 음악이 음산하다. 광고 중간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가 두 번 나온다. 정체불명의 소리 때문에 공포심이 배가된다. 광고 영상을 볼 때 의문의 소리에 깜짝 놀랄 수 있으니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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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6-01-15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위기가 다 으스스하네요. 지상의 것이 아닌 신비로운 분위기를 강조하려고 한 것 같은데, 배경음악이 스시를 저미는 서슬퍼런 칼날같이 섬뜩합니다.
아, 그리고, 노래 제목에 a가 날아갔네요^^

cyrus 2016-01-15 19:47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방금 북플로 나비종님의 댓글을 확인했는데 동영상 사진이 생각보다 크게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글을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
 

 

 

 

요즘 아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도깨비다. 이 세상에 도깨비가 어디에 있냐고? 스마트폰 안에 산다. 이 도깨비는 지옥에서 왔다. 말을 듣지 않는 아이만 괴롭힌다. 아이가 반찬 투정을 할 때, 이를 안 닦을 때 도깨비가 스마트폰 화면에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무서운 목소리로 아이를 혼낸다. “이놈! 말을 안 들으면 아주아주 뜨거운 냄비에 삶아서 잡아먹을 테다!” 아이는 도깨비 목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얌전해진다. 이 도깨비의 정체는 스마트폰 어플이다. 그러니까 말 안 듣는 아이를 위해 일본에서 개발한 훈육(?)용 어플이다. 메뉴를 선택하면 전화벨이 울린다. 도깨비가 왔다는 신호다. 아이가 전화를 받으면 도깨비 얼굴이 튀어나와 무서운 목소리를 낸다. 아이는 도깨비가 오는 전화벨 소리만 듣고도 무서워한다. 심지어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까지 한다. 부모들은 아이를 타이르는 데 효과적인 도깨비 어플을 선호한다. 그러나 일부 부모들은 도깨비 어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사실 어른인 내가 봐도 스마트폰 화면의 도깨비 얼굴이 무섭게 느껴진다. 도깨비 얼굴이 궁금하신 분은 검색해보시길. 도깨비 사진을 보고 깜짝 놀라지 마시라.

 

 

 

 

 

 

 

 

 

 

 

 

 

 

 

 

 

 

스마트폰이 없었던 옛날에는 그림이 아닌 말로 아이들을 혼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시끄럽게 우는 아이에게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겁을 줬다. 호랑이 그림을 보여주지 않아도 아이는 호랑이 소리에 울음을 뚝 그친다. 아이는 실체가 없는 대상에 두려운 반응을 보인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잔인한 표현이 들어간 동요가 아이들을 훈육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아이의 정서에 부적합하게 느껴질 정도로 표현 수위가 세다. 예를 들어 영국 전래 동요 모음집 《마더 구스》(Mother Goose, 원제는 ‘마더 구스의 노래’)에 수록된 ‘고자질쟁이 팃 (Tell Tale Tit)’이라는 동요의 노랫말은 이렇다.

 

 

 

네 혓바닥을 찢어서
온 동네 개들이
조금씩 잘라 먹을 거야.

 

Your tongue shall be slit,
And all the dogs in the town,
Shall have a little bit.

 

 

 

‘Tell Tale’은 다른 아이의 잘못을 어른에게 고자질하는 아이를 뜻하는 단어다. 입이 가볍고 친구들 뒤통수 잘 치는 아이들을 혼내주기 위해서 어른들은 ‘Tell Tale Tit’을 만들었고, 아이들은 노랫말을 따라 불렀다. 《마더 구스》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동요집이다. 처음 노랫말을 들었을 땐 몸을 벌벌 떨 정도로 겁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동요를 자주 듣거나 반복해서 부를수록 순진한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다음부턴 고자질하지 말아야지. 내 혓바닥은 소중하니까.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말에서 말로 전해지는 전래 동화, 동요의 시대가 저물었다. 생생한 화면과 음성이 흘러나오는 텔레비전은 인류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텔레비전 자체를 신기하게 느껴지는 아이들은 기분 나쁜 화면과 음성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텔레비전 화면이다. 특히 초기 공익광고는 문제 많은 어른보다는 죄 없는 순진한 아이들이 더 무섭게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공익광고협의회가 제작한 광고 두 편을 보자. 첫 번째 광고는 1989년에 만들어진 폭력 근절 광고다. 여자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잘 놀던 여자아이 쪽으로 갑자기 돌멩이가 튀어나온다. 아이는 날아오르는 돌멩이에 겁에 질려 도망간다. 장난감이 망가지고, 연이어 폭발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면이다.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폭력추방’이라는 문자가 나타난다. 이 광고를 본 아이들은 장난감이 부서지면서 망가지는 장면에 놀란다. 자신도 저 광고 속 아이처럼 순간적으로 공황 상태에 이른다. 여자아이가 불에 그슬린 인형을 품에 안은 채 울면서 광고는 끝이 난다. 과거에 공익광고 영상이 끝나면, 특유의 BGM(배경음악)이 등장했다. 어떤 음인지 궁금하면 광고 동영상 끝 장면에 집중해서 들어보시라. 70,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공익광고 관련 게시판에 이 배경음악이 무서웠다는 사람들의 댓글을 볼 수 있다. 사실 나도 어렸을 때 이 배경음악이 무서웠다. 이 배경음악은 슈만의 교향곡 제2번 2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기괴하게 들릴 수 있다.

 

 

 

               

 

 

 

 

 

두 번째는 역대 공익광고 중에서 제일 무서운 광고로 알려졌다. 1991년에 만들어졌으며 마약 근절을 강조한 광고다. 마약을 올가미로 표현했다. 음침한 분위기의 배경화면에 올가미들이 휙휙 소리를 내면서 나타난다. 올가미에 걸린 남자가 기괴한 비명을 지른다. 공익광고협의회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옛날 공익광고를 볼 수 있다. 거기에 감상평을 남길 수 있는데, 몇몇 사람들이 이 마약 근절 광고를 보면 무서웠다고 글을 남겼다. 남자의 비명소리는 아이들을 겁주기에 충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은 이 광고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 광고가 나간 이후에 마약 관련 범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날까지 공포감을 조성하는 공익광고로 회자할 정도면 광고 제작자가 광고 한 편 잘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광고는 전 세계 광고들과 작품성으로 경쟁을 펼치는 뉴욕광고페스티벌에 출품되어 결승전까지 올라갔다. 

 

 

 

 

 

초기 공익광고는 경고성 메시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려고 일부러 무섭고, 과장되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소리에 민감한 아이들은 공익광고의 한 장면만 봐도 겁을 냈다. 아이들의 눈에는 공익광고가 30초짜리 공포 영상처럼 보였다. 이렇다 보니 초기 공익광고협의회 공식 로고가 해골 형상처럼 보여서 무섭다고 말한 사람도 있더라.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 또한 마음을 불쾌하게 만드는 음악(혹은 소음)이나 화면을 싫어한다. 광고 제작자는 의도하지 않게 광고를 잘못 만들어 무지하게 욕먹는다. 그러나 일부러 이 효과를 노이즈 마케팅 식으로 이용해 광고를 만든 회사도 있다. 2005년에 사람들의 원성을 사게 하였던 하우젠 세탁기 광고는 '최악의 광고', '쓰레기 광고'로 비난받았다. 광고에 나오는 여자 목소리가 마치 흐느끼는 처녀 귀신 소리처럼 들린다. 모르는 광고라면 일단 한 번 보시라. 그러나 당신의 귀를 책임 못 진다.

 

 

 

                

 

 

 

'살↗균↘세탁 하셨나요 하↗우↘젠↗'

 

 

 

 

요즘 같은 시대에 사람들은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평소에 친숙했던 대상이 한순간 낯설게 느껴지면 공포가 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모든 것이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아이는 어른보다 감성이 예민해서 낯선 상황에 두려움을 잘 느낀다. 심하면 트라우마까지 남는다. 장난으로 시작한 일이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울부짖는 모습을 그저 귀엽다고 바라보는 어른들의 태도는 가학적으로 느껴진다. 부모들의 행동이 아이에게 위협감을 줄 때가 있다.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 하지 마시라. 아이들은 사납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매서운 목소리를 내뱉는 부모의 모습을 무서워한다. 사소한 어른들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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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01-08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깨비, 공포, 광고...이걸 연결하니 전 이 광고가~
http://youtu.be/_r7yKaDxGvc
무려 아름답기 까지 하죠!

cyrus 2016-01-08 18:42   좋아요 0 | URL
광고 보고나서 감상평을 답글에 달겠습니다. ^^

cyrus 2016-01-08 19:01   좋아요 1 | URL
Agalma님, 제가 오늘 소개하고 싶은 광고를 또 보네요. ㅎㅎㅎㅎㅎ

이 광고 때문에 크리넥스 광고의 저주라는 도시괴담이 생겼어요. 이 도깨비 광고 전에 아기가 등장하는 크리넥스 광고도 있습니다. 그 광고 배경음악이 음산해요.

AgalmA 2016-01-08 21:11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괴담에 관심이 많아서 이 전작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요^^

공익광고 모아보니 또 새롭더라고요. 이 시리즈 계속 이어주세요. 재밌습니다^^

살리미 2016-01-0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은나노스팀 광고 너무 하네요. 왜 저런 목소리를... 저렇게 잼난 광고가 난 왜 기억이 안나는지...
전 요즘 정부홍보광고들이 죄다 무섭던데요.. 유관순 광고도 그렇고 후두암 하나 주세요.. 하는 광고도 그렇고 ㅎㅎ

cyrus 2016-01-08 18:43   좋아요 1 | URL
오로라님. 인터넷 검색창에 `대한민국 최악의 광고`라고 입력하면 재미있는(?) 광고를 더 볼 수 있습니다. ㅎㅎㅎ

나비종 2016-01-0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론 : 광고에 대한 짧은 책을 한 권 읽은 것 같습니다. 리뷰를 적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본론 :
1. 도깨비 어플 : 영상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서 그런지 그닥 무섭지 않았습니다. 도깨비가 모가지를 조금씩 돌릴 때마다 심호흡을 하면서 봤거든요. 여기서 저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마음의 준비는 공포도 극복하게 한다는...
2. <마더 구스> : 잔혹 동화를 연상케 하는군요.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녀가 나오는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3. 폭력 근절 : 초기의 광고는 다소 촌스러운 느낌을 주네요. 예전에 봤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 폭.력.추.방. 글씨도 너무나 정직한 신명조~ㅎ
4. 마약 근절 : 무섭진 않지만 아이디어가 기발합니다. 요즘 나오는 `후두암 하나 주세요~`가 생각나네요. 점점 표현 방식이 세련되어 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5. 하우젠 : 다시 듣고 빵 터졌습니다ㅎㅎ 흐느끼는 처녀 귀신~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십니다^^ 잠시 딴지를 걸자면, 살균세탁하..까지 음이 똑같습디다. 표시하신 화살표 방향을 살짝 바꾸고 싶어졌다는==33
6. 사소한 어른의 행동 :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했습니다. 지금 중2가 초1때, 아이의 언니에게 큰소리로 혼냈던 제 모습을 언젠가 기억하며 얘기하더군요^^;
공익광고협의회의 광고는 예전부터 좋아했었습니다. 저는 광고 카피가 마음에 들어오더라구요. 커피 광고 비슷했던 것 같은데, `세월은 강물을 따라 흐르고, 사람은 그리움을 따라 깊어간다.`라는 말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이라 저 문구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저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도 가끔 광고를 보려고 TV를 볼 때가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광고 카피를요.

결론 : 아이를 주제로 한 이 페이퍼 내용이 마음에 듭니다. 공익광고처럼~~ 제 글 쓰려 들어왔다가 댓글만 쓰고 간다는ㅎㅎ

cyrus 2016-01-08 18:54   좋아요 0 | URL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제가 오늘은 너무 길게 썼어요.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참았어요. 정성이 느껴지는 댓글을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

《마더 구스》에 잔인한 노랫말의 동요가 몇 개 더 있습니다. 국역본이 어린이용이라서 이런 동요들은 삭제되었습니다. 다음 번에 이 부분에 대해서 글로 정리하겠습니다. 생각보다 흥미있는 텍스트입니다.

어렸을 때 혼자 밤에 TV에서 나오는 어두운 분위기의 공익광고를 보는데 섬뜩했습니다. 잠들기 전에도 광고영상 장면이 떠올려서 한동안 고생했습니다. ㅎㅎㅎ

요즘은 다시 봐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멋진 광고를 보기가 힘들어졌어요.

살리미 2016-01-08 1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생각났는데 요즘 쓱~ 광고 혹시 보셨어요? 신세계 ssg.com 광고인데 괜찮지 않나요?? 분위기가 에드워드 호퍼 그림을 연상하게 하더라고요.

서니데이 2016-01-08 19:56   좋아요 1 | URL
저도 오늘 봤는데, 약간 그 생각이 들던데요.

cyrus 2016-01-09 16:23   좋아요 0 | URL
오로라님, 눈썰미가 좋은데요. 호퍼의 그림에 영감을 얻어서 만든 것 맞습니다. ^^

1004ajo 2016-01-09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일상에서 우리가 중독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조심하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저로 살고 우리 아이들도 그러했으면 좋겠네요.

cyrus 2016-01-09 16:26   좋아요 0 | URL
중독을 스스로 고치거나 조절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외부에 의존하면서 고치는 방법도 완벽한 해결 방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잘못 하면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서니데이 2016-01-09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편안한 저녁 되세요.^^

페크pek0501 2016-01-1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소재로 글 쓰시는 것, 응원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나비종 님의 댓글도 좋았습니다.
 

 

 

질병의 고통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피할 수 없는 숙명인지 알면서도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본능적일 수밖에 없다. 의학의 발전은 환자의 고통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하여, 아픈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인류 초기의 의학은 우리 몸의 각 부분에 추상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영적의 힘으로 질병을 치유하려고 했다. 몸속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근대 의학의 문이 열렸다. 죽은 사람의 몸을 열어보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비로소 오늘날과 같은 해부학이 정립된다.

 

 

 

 

 

 

 

 

 

 

 

 

 

 

 

 

 

 

인체의 구조에 대한 기념비적인 저서인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는 1,000년이 넘는 의학의 한계를 극복했다. 고대 로마의 의사 갈레노스가 동물 해부를 바탕으로 만든 해부학을 넘어섰다. 베살리우스는 해부학 연구를 위해선 시체를 훔쳐내는 일도 서슴지 않는 정열적인 의학도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사람의 몸을 신의 영역으로 여겨 인체가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걸 용납하지 않던 기독교 시대였다. 베살리우스는 해부 실습이 허용된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의 의학교수로 임명되었다. 베살리우스는 파격적인 해부학 수업을 시도했다. 자신이 직접 시체를 해부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풍부한 해부 경험이 쌓인 베살리우스는 갈레노스의 해부학에 문제점을 발견했다. 교회 권력의 힘이 유럽을 지배하게 되자 갈레노스의 해부학은 유일한 정통학설로 인정되었다. 이를 비판하는 학자는 교회의 이름으로 불이익을 받았다.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를 발표한 이후 베살리우스는 종교 권위에 도전한 대가로 교수직을 그만둔다.

 

 

 

 

 

 

 

 

 

 

 

 

 

 

 

 

 

 

종교의 힘이 무너지면서 의사들은 해부학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들은 메스를 쥐고 베살리우스의 후예가 되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해부학 수업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해부학 실습 학교가 많이 세워졌다. 하지만 해부용 시체, 특히 죽은 지 얼마 안 된 시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사형수의 시체만이 해부가 허용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범죄자들의 시체만으로는 부족했다. 의사들은 낮에 메스를 들고, 밤에는 삽을 들었다. 돈이 없는 의사는 시체 도굴꾼이 되었다. 재력이 있는 의사는 전문 시체 도굴꾼을 고용했다. 시체 도굴과 해부 실습이 빈번해지면서 비윤리적인 문제들이 하나둘씩 발생하기 시작했다. 도시의 오물 구덩이에 시체 토막이 발견되었다. 해부하다가 남은 시체 토막이 몰래 버려진 것이다. 파리의 작가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는 시체 토막이 발견되는 파리의 오물 구덩이를 《파리의 풍경》에 기록했다. 그는 구덩이 안에 묻힌 시체 토막을 보면, ‘끔찍한 중범죄’가 떠오른다고 썼다. 불행하게도 메르시에의 예감은 수십 년이 지나서 현실이 된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시체 도굴꾼이 성행했다. 에든버러의 작은 여관을 운영하는 윌리엄 버크와 윌리엄 헤어는 시체 도굴이 돈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 그들은 방세를 밀린 채 사망한 투숙객의 시체를 해부학교에 팔아 방세를 회수했다. 버크와 헤어는 시체를 구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병든 투숙객, 노숙자들을 유인해 목 졸라 살해하고 시체를 팔았다. 버크와 헤어의 범행이 발각되기 전까지 17명의 사람이 희생당했다(문헌마다 희생자의 수가 다르다. 어떤 책은 15명이라고 썼다). 버크와 헤어가 공급한 시체는 에든버러 의과대학 강사인 로버트 녹스가 매입했다. 헤어는 자신의 죄를 면하기 위해서 버크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결국 버크는 1829년에 교수형에 처했다. 석방된 헤어는 에든버러를 떠나 런던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버크의 시체는 법의 규정대로 해부 실습소로 향했다. 지금도 에든버러 대학 박물관에 가면 버크의 골격 표본을 볼 수 있다. 살인자의 성(姓) 버크(burke) ‘목 졸라 죽이다’를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발견’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거나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흔히 최초의 발견자가 되면 돈방석에 앉고, 역사교과서에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중 절반은 처음에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그나마 일자리를 잃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잘못 걸리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과학자들은 ‘미친 짓’이라는 비난 속에도 새로운 발견에 매달렸다. 그 과정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사자들은 혼자 괴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눈부시게 보이는 과학의 역사를 더 자세히 보면 낭만적이지 않다. 특히 해부학의 역사가 그렇다. 당시 시대적 상황 때문에 베살리우스는 어쩔 수 없이 허락 없이 시체에 손을 대야 했다. 그 일이 악의적으로 변질하여 버크와 헤어 같은 진짜 ‘미친놈’들이 나오기도 했다. 새로운 발견을 위해 미친 척한 학자들 덕분에 지금의 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제 의사들은 해부용 시체를 훔치지 않아도 된다. 버크와 헤어 연쇄 살인 사건 이후로 의사들은 합법적인 과정으로 해부용 시체를 얻을 수 있다. 해부학 실습을 시뮬레이터로 대신하는 의과 대학이 있다고 한다. 시체의 배를 갈라서 내부 기관을 손으로 만지는 일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의대생들은 해부학 실습날이 다가오면 많이 긴장한다더라. 그러나 보는 것과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아는 것’에만 의존하는 집단적 태도가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과학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의대생들이 베살리우스의 후예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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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1-07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사들뿐 아니라 화가들도 해부를 엄청 많이 했다고 하더라구요. ^^

cyrus 2016-01-08 11:4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원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바스키아 이야기도 쓸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지고, 주제와 상관이 없어서 안 썼습니다. ^^

AgalmA 2016-01-07 2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험정신에 주목한 본문과 조금 어긋난 글이라 죄송한데; 이 글에서의 범죄들에 대해 더 감정이입에 되어 말을 해 보면...
오늘 오로라님이 투구게에 대한 잔인한 실험에 대해 글도 올리셨다시피, 인간의 욕심 때문에 잔인하게 가행되는 동물실험과 학살도 참 문제가 많죠. 상아를 위해 코끼리를 죽이고, 가방을 위해 악어를 죽이고, 멋을 위해 털을 빼앗고, 장식을 위해 시베리아 호랑이를 사냥하고 곰의 머릴 자르고, 실험에 이용되는 쥐가 제일 고생이 많고...인간에 대한 인간 행위가 다를 바도 없는 게 보험금을 노린 범죄도 점점 더 극성이고...
데미안 허스트의 충격적인 작품들은 혐오감도 주지만 그런 각성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실험정신들이 금방 상업, 범죄에 이용된다는 게 또 딜레마...

cyrus 2016-01-08 11:54   좋아요 0 | URL
미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옳은 말씀 하셨습니다.  제가 소개한《역사책에도 없는...》 책에 시험관 아기 실험 논란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불법으로 자신의 정자로 정자은행을 운영한 의사가 적발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지금도 시험관 아기 연구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Agalma님 말씀대로 과학자들은 어떤 연구에 참여하기 전에 윤리적 보편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연구 결과에 대한 성찰도 필요합니다.

해피북 2016-01-07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으론 어제 이발사들의 해부학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의사들의 해부와 시체도굴꾼 이야기까지 새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재밌고 좋아요 ㅎ

cyrus 2016-01-08 11:56   좋아요 0 | URL
제가 사소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

살리미 2016-01-07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창기 의사들의 해부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들은 항상 흥미롭기도 하고,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의학의 발전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습니다.
제대로 해부를 해보지도 않고 시뮬레이터로 대신하는 의사들에게 내 수술을 맡긴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Agalma님 말씀처럼 어디까지를 인간을 위해 허용할 범위인가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인것 같네요. 제가 영화를 좋아하다보니 닥치는대로 막 보곤 하는데 요즘엔 정말 너무 혐오감을 주는 내용들이 많아서 (장기매매를 위한 납치나 불법 시술같은...) 이게 정말 현실에서 문제가 되고 있으니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지는건가 싶어서 끔찍해질 때가 많아요.
음.... 갑자기 cyrus님 의도와 멀어져가는 느낌이 있습니다만.. ㅎㅎ

cyrus 2016-01-08 12:10   좋아요 1 | URL
과학 발전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보다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원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발견 소식이 나오면 대중은 열광합니다. 과거에 황우석 교수에게 기대를 했던 것처럼요. 대중의 기대심리가 높아지면 학자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합니다.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져서 윤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릅니다. 이런 사례는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시퍼런 칼끝이 사내의 심장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뚫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사내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땅바닥에 쓰러진 사내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그리고 시커먼 밤하늘 위를 바라보면서 마지막 목소리를 힘겹게 내뱉었다. “죽기 전에 달나라에 가보는 일이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좀 아쉽군. 이렇게 된 거 멋지게 떠나야지.”

 

 

 

 

 

 

 

 

우리는 이 사내를 희곡의 주인공으로 알고 있다. 또한, 그의 특이한 신체 부위까지도 기억한다. 이 사내는 사람들 눈에 띌 정도로 커다란 코를 가졌다. 이 사내의 이름은 사비니앵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다. 이름을 줄여서 흔히 ‘시라노’로 부른다. 프랑스의 극작가 에드몽 로스탕은 시라노를 모델로 한 희곡을 써서 명성을 얻었다. 작품 속 시라노는 못생긴 큰 코를 가진 수줍음 많은 남자로 나온다. 그러나 실존인물 시라노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큰 코를 제외하면 잘생긴 외모를 유지했으며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을 정도로 사교적인 성격이었다. 부유한 환경 속에 자랐음에도 너무 활발한 성격 탓에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탕진했다. 시라노는 생각이 제대로 박혀 있는 건달이었다. 그는 세속적으로 오염된 종교 권위에 반항하는 글을 여러 편 남겼다. 이렇듯 반항기 넘치는 그의 성격은 주변에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시라노는 한밤중에 누군가로부터 습격당해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시라노의 이름이 있는 두 편의 소설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그 작품들이 바로 <달나라 여행>과 <해나라 여행>이다. 이 두 작품은 시라노의 대표작으로 많이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소설이 나오는 과정이 껄끄러웠다. 소설 출판을 맡은 시라노의 친구가 두 책에 나오는 과격한 표현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이 책에 있는 시라노의 비판 정신이 또 한 번 트집 잡을까 봐 걱정했다. 친구 입장에서는 죽은 시라노의 명예를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달나라 여행>과 <해나라 여행>은 공상과학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달나라 여행>은 달에 대한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한 소설이다. <달나라 여행>의 주인공은 달이 지구처럼 사람이 사는 세계라고 주장한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지구가 둥글다고 확신에 차 있다. 그리고 성서로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 반대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진보적인 생각을 거침없이 발언하는 모습으로 봐서는 시라노와 비슷하다. 달나라로 가기 위한 이동 수단은 과학적으로는 성립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로켓의 원리와 약간 유사한 면이 있다. 수많은 유리병을 몸에 달고, 병에 포도주를 가득 붓는다. 태양의 열기로 인해 병 속에 있는 술이 끊기 시작하면 공중으로 솟는 추진력이 생긴다. 달나라는 지상 낙원으로 묘사되었다. 달나라에 도착한 주인공은 자신이 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시라노가 활동했던 시절에 사람들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지상 낙원을 찾고 싶어 했다. 시라노는 그 당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통된 소망을 달나라 묘사에 반영했다.

 

하지만 시라노가 달나라 세계를 설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달나라 사람들이 지구 사람들보다 잘사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달나라 사람들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엄격한 법령 속에서 살아간다. 시라노는 달나라 사람들의 풍습을 황당하게 묘사해서 비판성 있는 풍자를 유도했다. 달나라에서는 시(詩)가 화폐 역할을 한다. 달나라의 젊은이들은 노인들보다 더 똑똑하다. 달나라 사람 남성, 여성 모두 성기와 비슷한 물건을 달고 다닌다. 이들은 성기 모양의 물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달나라에서는 성기 모양의 물건이 귀족의 상징이다. 시라노는 당시 귀족들의 상징인 칼을 우스꽝스러운 물건으로 바꾸어 권력에 집착하는 귀족들을 풍자했다.

 

<달나라 여행>과 <해나라 여행>은 공상적인 요소보다는 사회 풍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주인공이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 맞서서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이 많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야기가 재미없다. 공상과학소설의 원조 격이라고 해서 읽을 생각은 하지 마시라. 이 두 작품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시라. 로스탕의 희곡 작품이 성공하자 사람들은 시라노를 ‘코가 커서 슬픈 남자’로 기억하기 시작했다. 시라노도 자신의 코가 부담스럽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달나라 여행>을 읽으면서 시라노가 나름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만들려고 스스로 노력하는 멋진 남자로 느껴졌다. 소설에 보면 달나라 세계에서는 코가 낮은 채 태어난 아이들은 거세했다. 반면 코가 큰 아이는 재치 있고, 관대하며, 상냥하고,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 여겼다. 코가 크면 정력이 세다는 속설이 있다. 이 내용이 진짜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시라노는 대단한 정력가임은 분명하다. 시라노는 남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콧대를 마음껏 높이면서 살다가 멋지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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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6-01-06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라노에 대해선 레나타 살레츨 <불안들>에서도 분석글이 있습니다. 참고삼아 남깁니다^^
<달나라여행> 억압적인 상황이나 화폐구실을 하는 다른 사물 등의 설정은 하인리히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과 비슷한 구석이 있군요.
코와 성기쪽 혈이 같으니 정력 문제는 맞다고 보는데요. 현대의학은 찾아봐야 알겠고^^;

cyrus 2016-01-07 14:51   좋아요 0 | URL
Agalma님이 추천한 책을 찾아봐야겠어요. 좋은 정보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코와 정력의 상관성이 너무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습니다. 상관성을 인정하는 주장, 반대로 관련 없다는 내용의 주장이 혼재되어 있어서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

서니데이 2016-01-06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가 큰 사람이 한 사람은 아닌데, 어쩐지 코가 큰 사람, 하면 시라노 부터 떠올라요. ^^;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편안한 저녁 되세요.^^

붉은돼지 2016-01-06 18: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라노하면 제라드 빠르디유(맞나?)가 생각나요 ^^

물고기자리 2016-01-06 18:37   좋아요 2 | URL
저도요ㅋ 제라르 드빠르디유(?)^^

서니데이 2016-01-06 18:4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저도요^^;

cyrus 2016-01-07 14:53   좋아요 1 | URL
저는 ‘시라노’하면 영화 ‘시라노 연애조작단’이 생각나요. 여기서 세대 차이가 나는군요. ^^;;

서니데이 2016-01-07 1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많이 춥네요.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1-07 19:25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역사 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 - 현직 의사가 쓴 생활 속 질병과 의학의 역사
박지욱 지음 / 시공사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8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라면 누구나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심지어 여학생들도 단발머리를 자르기 위해 이발소를 찾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90년대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여학생은 물론이고 남자들도 하나둘 이발소를 떠나 미용실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발소에 50대 이상 남자들만 온다. 이발소 손님이 팍 줄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또 하나 있다.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수입도 줄게 되자 퇴폐 영업소로 변질한 이발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퇴폐 이발소 때문에 이발소 전체의 이미지가 좋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왔던 아버지들이, 머리를 깎으러 왔던 학생들마저 떠나기 시작했다. 흰색, 적색, 청색 사선 무늬가 있는 원통형 사인 볼은 이발소를 상징하는 표시다. 불법 퇴폐 이발소도 이 표시를 사용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 사인 볼이 남성 손님을 유혹하는 용도가 되고 말았다. 2006년 한국이용사회중앙회는 이발소만 사인 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에 건의한 적도 있다. 한때 사인 볼이 두 개씩 돌아가는 이발소가 불법 퇴폐업소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발소 사인 볼은 국제 공통의 기호인 만큼 무분별한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

 

예전에 이발소 삼색 사인 볼이 프랑스 혁명에 목숨을 바친 어느 이발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프랑스 국기는 청색, 백색, 적색 순으로 이루어진 삼색기다. 이 국기는 프랑스 혁명 시절에 만들어졌다. 사인 볼의 정확한 유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과 이발소 삼색 사인 볼은 전혀 관계가 없다. 진짜 유래를 알고 싶으면 프랑스 혁명사가 아니라 의학의 역사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발사는 가위뿐만 아니라 칼도 잘 다룬다. 면도칼은 남자 손님의 수염을 다듬을 때 사용된다. 중세의 이발사들은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실력이 있어서 머리 깎는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했다. 이때 당시 인체 해부는 기독교 윤리에 어긋난 금기 행위였다. 학생들에게 신체 내부 구조를 가르쳐야 할 대학 의학교수들도 자신의 손에 피 묻히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인체를 해부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이발사다. 중세의 이발사들은 ‘투잡’을 뛰었다. 그러나 의학교수들은 시체를 해부하는 일을 담당하는 이발사를 조수급으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시체를 해부했다. 오류투성이로 가득한 인체 해부 지식을 바로잡은 베살리우스(1514~1564)는 자신이 직접 해부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의과대학 교수였다. 베살리우스 이전에 해부를 담당했던 무명의 이발사들은 의학사에 길이 남을 역할을 했다. 이발사들이 라틴 어를 쓰고 읽을 줄 몰라서 그렇지 대학교수들보다 신체 기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고, 환자의 상처를 능숙하게 치료했다.

 

 

 

 

 

사진 출처: TV 지식용어 - 시사Ya (링크)

 

 

 

비록 그들은 대학에서 천대받은 존재였으나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외과 수술 기술을 잊지 않았다. 실전 감각이 남아있는 이발사들은 곪은 상처에 있는 고름을 제거하고, 방혈(防血)을 했다. 그때는 방혈을 정기적으로 하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이발사는 방혈 침으로 환자의 팔뚝에 있는 정맥을 찔러 피를 뽑았다. 1540년 프랑스의 메야나킬이라는 이발사 겸 의사가 처음으로 삼색 사인 볼을 만들어 이발소 문 앞에 내걸었다. 흰색은 붕대, 적색은 동맥, 청색은 정맥을 뜻한다. 긴급 환자들이 쉽고 빨리 알아볼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 외과의사조합이 이발사 조합에 분리되면서 이발사는 머리 깎는 일만 했다. 삼색 사인 볼은 자연스럽게 이발소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다.

 

《역사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라는 책에서도 이발소 삼색 사인 볼의 유래를 설명했다. 그런데 저자의 설명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제의 대목을 살펴보자.

 

 

사용한 붕대들은 잘 빨아서 빨래걸이에 널어 말리는데, 바람이 휙 하고 불면 붉은 피가 묻은, 아니 이미 갈색으로 변했을 피가 묻은 하얀 리넨 붕대들이 어지럽게 빙빙 돌기도 했을 것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이발소 앞에서 만나는 삼색등처럼 말이다. 이제야 제대로 알았다. 이발소 삼색등은 방혈시술을 상징하고, 방혈은 이발사-서전(surgeon)의 특기였다는 것을. 그리고 수술실 앞이 아니라 이발소 앞에 삼색등이 남은 이유가 서전이 동업자인 이발사를 배신하고 떠나면서 내버려두고 왔기 때문이란 것을. (45~46쪽)

 

 

저자의 생각은 그럴듯하다. 방혈시술에 쓰면서 생긴 피 묻은 붕대가 바람에 의해서 돌아가면 이발소 사인 볼의 흰색과 적색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파란색의 의미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삼색 사인 볼이 방혈시술을 상징하는 기호라는 건 틀림없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흰색, 적색, 청색의 정확한 의미를 꼭 언급했어야 했다. 이발사의 유래를 설명할 때 이 내용은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리고 저자는 삼색 볼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국제적 기호라는 사실 또한 알려주지 않았다. 삼색 볼을 내걸고 의사가 하는 일까지 겸한 이발소의 등장에 정규 의과대학 코스를 밝은 의사들은 탐탁지 않았다. 의사 흉내 내는 이발사들이 늘어나자 자신들 밥그릇이 뺏길까 봐 걱정되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의사들 사이에서 외과의사와 이발소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을 것이다. 역할이 분리되는 과정에 이발사 일을 그만두고 정식으로 서전, 즉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그런 사람들을 ‘배신’으로 보는 저자의 표현이 내용을 재미있게 하려고 썼다 해도 편협하게 해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자의 사고방식대로라면 의사들은 외과 업무에 완전히 손을 뗀 이발사들이 삼색 사인 볼을 고집하는 것에 반발했어야 한다. 이발소가 삼색등을 사용하는 이유가 과거의 영광에 대한 이발소의 자부심으로도 볼 수 있다. 그들에게 여느 대학교수들보다 월등한 외과 실력을 갖췄던 시절이 있었다. 의학의 역사를 논할 때 이발사들의 역할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의사를 겸한 이발사들의 존재를 그저 돌팔이로 취급하면서 지대한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과거에 그들을 향한 차별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발사가 의사로 전환하는 일을 ‘배신’의 의미로 나쁘게만 볼 수 없다. 

 

《역사책에는 없는 20가지 의학 이야기》는 의사들도 잘 모르는 의학의 뒷이야기들을 현직 의사가 정리한 책이다. 이발소 삼색 사인 볼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당뇨병, 보툴리눔 독소의 위험성 등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질병들도 소개했다. 의학과 관련 없지만, 외국인 최초로 국립묘지에 안장된 영국 의사 스코필드 이야기 같은 감동적인 글도 있다. 책의 편집 구성이 아쉽다. 책에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짧은 글은 저자의 주석이 되어주고, 이보다 더 긴 내용은 특정 용어를 부연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런 글들이 본문 중간에 끼어 있어서 본문을 읽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짧은 내용의 주석은 본문 밑에, 긴 내용의 부연 설명에는 ‘아시나요?’ 제목을 붙여 20가지의 이야기 후미에 배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딴죽 걸기

 

* ‘화약에서 그라비아까지’라는 제목의 글은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e)에 대한 내용이다. 폭약의 재료이자 혈관 확장을 위한 약으로도 쓰이는 이 물질을 흔히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부른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식 명칭으로 ‘나이트로글리세린’이 있다. 전자는 세계표준인 IUPAC에 근거한 대한화학회 명명법을 따른 것이며, 후자는 국립국어원이 규정한 단어다.  둘 다 사용해도 된다.

 

* “인체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다빈치, 라파엘, 도나텔로, 미켈란젤로로 대표되는 화가들도 해부학을 익혔다.” (151~152쪽, 이 네 사람은 <닌자 거북이> 캐릭터 명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렇다 보니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유명 화가 세 사람 때문인지 도나텔로를 화가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가 도제 시절에 습작으로 그림 몇 점 남겼어도 이것만 가지고 전문 화가로 규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도나텔로는 정식으로 조각 제작 교육을 받은 조각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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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6-01-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렴풋이 알기로는 이발사 투잡과 이발소 상징 기호의 최초는 스페인인데... 아닌가요?^^

cyrus 2016-01-05 20:59   좋아요 1 | URL
삼색 등이 정식으로 나오기 전에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이발사들은 외과 수술을 겸한 일을 했습니다. 삼색 등을 처음 만든 사람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데 그 내용을 언급한 문헌은 찾지 못했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1-05 21:04   좋아요 0 | URL
대체 전 어느 책에서 봤는지 ㅠㅠ

cyrus 2016-01-05 21:05   좋아요 1 | URL
혹시 책제목을 아신다면 알려주세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믿을 수가 없거든요. ^^

북다이제스터 2016-01-05 21:07   좋아요 1 | URL
넵, 책 제목 꼭 생각해 내어 말씀 드리겠습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1-05 21:26   좋아요 0 | URL
방금 생각난건데요. 스페인 도시 배경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때문에 제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근거 없는 불명확한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ㅠ

해피북 2016-01-06 0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발사가 해부도 했었다니 참 신기한 일이네요. 또 이발소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던 삼색 사인볼에도 의미가 숨어있다니 ㅎ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6-01-06 16:37   좋아요 0 | URL
긴 글을 재미있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01-06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중학교 때까지는 이발소를 다녔습니다만. 여기서도 나이든 분들이나 barber shop을 갑니다. 대부분 스타일리스트를 표방하는 곳이나 저가형 체인미용실로 가구요. 포악했지만, 스탈을 따지던 옛스러운 시절엔, 좀 나가는 남자라면 오전에 barber shop에 들러서 머리를 하고 면도를 했지요.ㅎㅎ

cyrus 2016-01-06 16:42   좋아요 0 | URL
이발소 아저씨들은 남자 손님만 오면 항상 일정한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다듬어요. 그래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발소 가는 날이 부담스러워요. 자기가 원하는 헤어스타일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