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 삶의 시선 17
송경동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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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하기 참 힘들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일상을...

 

 어제 서울 역삼동에서 건물붕괴 현장에서 매몰됐던 인부 한 명이 끝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는 비보를 접했다. 건물 바닥을 철거하는 리모델링 공사를 하다가 건물이 무너져버리는 바람에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박웅현<책은 도끼다>라는 책에서 본 내용이었는데 마르셀 프루스트는 신문 읽기를 '가증스럽고 음란한 행위'라고 말함으르써 혐오했다고 한다. 24시간 동안에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 사고 등과 같은 불행한 일들을 신문 독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오락거리'로 변형시키고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도 프루스트가 신문기사를 싫어했던 것은 특정 사건에 대해서 '모든 문맥을 빼버리고 말하는' 방식의 문제점에 있다. 사건이 발생하는 발단, 과정 그리고 결과를 단 몇 줄로 압축시켜버리는 신문 기사의 내용이 독자들을 무감정적으로 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모닝커피를 음미하면서 소파에 앉아 읽으면서 몇 만 명이 죽은 테러 사건을 보면서 희희낙락하거나 둔감한 반응을 보이는 우리 '위선적인' 독자를 프루스트는 싫어했다.

 

 일반 독자들보다 문학적인 감수성이 깊었고 압축적인 내용의 신문기사를 싫어했다던 프루스트라면 송경동 시인의 '설명하기 참 힘들다' 라는 시를 읽고 찬사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설명하기 참 힘들다 - 어느 지하생활자의 보고

 

 

 지하 토목공사 때 파 들어갈 땅 주변 붕괴를 막기 위해 수직 H형 철골빔들을 박는다. 이것을 파일이라 한다. 땅을 파 들어가며 이 파일들이 주변의 지압을 견디게 하기 위해 다시 철골빔을 마주본 파일 사이사이에 수평으로 대준다. 이것을 버팀목이라고 한다. 20~30m짜리 버팀목은 없어 두 토막 내지 세 토막을 이어야 하는데, 이 연결 마디의 꺾임을 막기 위해 두 버팀목이 맞닿는 부위에 패드처럼 쇠판을 얹는다. 이것을 연결판이라고 한다. 연결판은 서른 두개의 볼트로 두 토막을 이어 휨을 방지해 준다. 이때 볼트 구멍을 꼭 드릴를 사용해 뚫어야 한다. 산소절단기를 댈 경우 열변형으로 버팀 강도 저하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꼭 산소절단기를 이요해 그 구멍을 뚫었다. 붙잡을 것 하나 없는 허공에서 폭 30cm짜리 빔을 딛고 30kg이 넘는 핸드드릴을 사용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작업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버팀부 주위에 전등을 많이 달지 않는 것도 이곳이 안전계단으로 다니는 감리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오늘 유씨가 떨어져 죽었다. 재수가 없거나 발을 헛디뎠을 뿐이다. (pp 19)

 

 

  

 

 건축 공사 현장에서 노동 경험이 많은 시인답게 그의 시에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공사 관련 용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수직 H형 철골빔', '연결판', '산소절단기' 등 건축 및 토목공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단어들이다. 시의 중반부까지는 토목공사의 전체적인 장면이 설명되다가 마지막에서야 단 두 문장으로 토목공사에 참여한 인부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하지만 인부는 공사 현장에서 실족사하고 만다. 그리고 '재수가 없거나 발을 헛디뎠을 뿐이다'라고 서술하면서 시가 마무리되고 있다. 토목공사 노동자가 아니라면 직접 목격할 수 없는 불행한 사고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기에 독자들은 토목공사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실상을 시를 통해서 생생하게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시의 부제는 '어느 지하생활자의 보고' 이다. '설명하기 참 힘들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입장에서는 토목공사 노동 경험에 전무한 독자들에게 지하생활자들의 일상을 보고한다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들은 '노동'은 신체를 고되게 하고 힘든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는 '노동자'의 고통스러운 일상과 슬픈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연애, 폭력, 부정부패. 가십거리 등과 같은 자극적이면서도 감각적인 기사만 제공하는 TV와 언론은 노동자의 추락사만 짤막하게 압축, 언급할 뿐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작업환경을 나열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지상의 공간 속에 살면서도 경제적인 능력이 상실되었고 심지어 지상의 인간들에게 눈에 띄지 못하는 '지하생활자'인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노동자'는 죽어서 보험금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지하생활자'들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죽고 난 이후부터이다. 안타까운 것은 짧으면서도 한 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노동현장에서 불귀객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신문 지면을 통해서 노동현장에서 불귀객이 된 사연을 알게 된다. 그것도 하루 아침에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이승에서 잠시나마.

 

 

 뒷빽

 

 

 김씨가 H빔에서 떨어져 죽고 나서야
 나는 깜짝 놀랐다
 고작 시급 3천 원에 목메던 그의 몸값이
 1억이 넘는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됐다

 

 그 후 나 역시 자본주의를 우습게 아는
 든든한 빽을 가졌다
 김씨가 산 것은 50년이지만
 죽은 순간은 5초도 안 된다

 

 여차하면 죽어버리자
 내 삶의 짧은 5초도
 최소한 1억쯤은 된다는 것을 알려주자
 그간 내가 몇백 번의 죽음을 경혐했는지도
 말해주자

 

 (pp 90)

 

 

 

 노동자들은 죽어서 신문 지면상에 이름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매겨진 보험금도 남겨진다. 살아 생전 쥐꼬리만한 시급을 받으면서도 일상을 연명해오던 그들이 죽고 나서야 평생 모으기도 힘든 1억의 보험금을 받는 인생의 한 장면. 수십 년동안 돈을 벌어도 1억을 만들기 어려운 시대에 단 5초라는 죽음의 과정만 거치면 손에 쥐어보지 못한 채 얻는 보험금. 시인은 노동자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냉소적으로 조롱하고 있다.

 

 

 

 

 처절한 노동작업 속에 발견한 희망과 연대

 

 송경동 시인의 시 속에는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핍박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참한 일상과 남몰래 삼켜야만했던 사회에 대한 울분이 담긴 목소리가 담겨져 있다. 시라는 것은 프루스트가 혐오했던 압축적인 내용의 신문기사보다 시인이 바라보는 장면을 단 몇 줄로 표현해야 하며 이에 대한 감정도 절제하듯이 문장 속에 숨길 수 있는 특수한 글이다.

 하지만 송경동 시인의 시는 내용이 길지 않으면서도 노동자들의 고통스로운 감정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처절한 노동작업이 이루어지는 '지하생활자'들의 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백무산 시인이 말처럼 그의 시는 '바보스러우면서도 정직하다'

 

  하지만 시인은 노동자들의 고된 일상만 바라본 것은 아니다. 힘들고 처절한 노동현장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공동체적 연대감을 정감있게 표현하고 있다.

 

 

 쇠밥

 

 

 흙먼지에 섞어 먹는 밥 
 싱거우면 녹가루에 비벼 먹고 
 석면가루도 흩뿌려 먹는 밥

 

 체인블록으로 땡겨야 제 맛인 밥
 찰진 맛 좋으면 오함마로 떡쳐 먹고
 일 없으면 고층 빔 위에 혼자라도 서서 먹는 밥

 

 시큼한 게 좋으면 오수관 때우면 먹고 
 새콤한 게 좋으면 가스관 때우면 먹고 
 연장이 모자라면 이빨로 물어뜯어서라도 먹어야하는 밥


 무엇보다 나눠 먹는 밥


 1톤짜리 앵글 져다 공평하게 나눠 먹고 
 크레인 포클레인 지게차 기사도 불러 
 함께 비지땀 흘리며 먹는 밥

 

 석양에 노을이 질 때면
 아내와 아이도 모두 사이좋게 앉아 먹는
 그 쇠밥

 

  (pp 26~27) 

  

 

 

 흙먼지, 녹가루, 석면가루 등 몸에 좋지 않은 유해한 먼지가 묻은 밥이라도 노동자들에게는 힘든 노동 뒤에 먹는 밥은 꿀맛이다. 특히 3연 중에 '연장이 모자라면 이빨로 물어뜯어서라도 먹어야하는 밥'이라는 구절에서는 고된 작업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노동자 특유의 굳센 근성을 볼 수 있다.

 

 

 꿀잠

 


 전남 여천군 쌍봉면 주삼리 끝자락
 남해화학 보수공사현장 가면 지금도
 식판 가득 고봉으로 머슴밥 먹고 
 유류탱크 및 그늘에 누워 선잠 든 사람 있으리

 

 이삼십 분 눈 붙임이지만 그 맛
 간밤 갈대밭 우그러뜨리던 그 짓보다 찰져
 신문쪼가리 석면쪼가리 
 깔기도 전에 몰려들던 몽환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꿈자락 붙들고 늘어지다가도 
 소혀처럼 따가운 햇볕이 날름 이마를 훑으면
 비실비실 눈감은 채로 
 남은 그늘 찾아 옮기던 순한 행렬  

 

 (pp 54)

 

 

 힘든 노동작업을 하고 난 뒤에 먹는 쇠밥이 '꿀맛'이라면 이삼십 분 새우잠은 '꿀잠'이다. 독자들에게는 지나치기 쉽고 외면해버리는 시간들이지만 이들에게는 고된 노동을 잠시나마 잊혀지게 만드는 달콤한 시간이다. 노동을 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노동자들에게 '꿀잠'은 신체적, 정신적인 휴식의 과정이 아니라 가난한 일상 속에서도 그들이 소망하는 희망의 삶을 꿈꾸게 만드는 행복한 망중한이다. '꿀밥'과 '꿀잠'이 있기에 노동자들은 남들보다 먼저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더 힘든 일을,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윤과 생산을 더 많이 창출하도록 더욱 박차를 가하는 바쁜 자본주의의 일상이 노동자들에게는 삶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긍정적 자기위안의 기회마저 사라지게끔 만들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투쟁을 하는 것은 단지 자신들의 경제적 지위만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꿀밥'을 먹을 수 있으며 '꿀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일만 하는 노동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원한다.

 

 

싸우려면 끝까지 싸워야지
도중에 그만두면 영원히 찌그러진다는 것

 

 - 송경동「마음의 창살」중에서, pp 55 -

 

 

 

 시인이 쓴 저 구절처럼 노동자들은 잃어버린 생존권을 찾기 위해서 오늘도 자본가에 맞서 싸우고 있다. 경제적 자립성과 생존권은 이미 자본가들과 전경의 구둣발에 찌그러질대로 찌그러졌지만 남은 인생동안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희망의 기대감만큼은 그들에 의해 찌그러지지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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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1-1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루스트가 정말 말은 잘했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사람을 편협하게 만들고 오만하게 만들지.
신문나 뉴스 한번 본 걸 가지고 전체를 본듯 착각하게 만드는 거.
책은 도끼다. 제목이 특이한데 왜 그런 제목을 썼을지 궁금하긴 하다.
시집에 대해 얘기 안하고 엄한 책이 꽂히다니 나도 참...ㅠ

cyrus 2012-01-12 23:10   좋아요 0 | URL
한 번 읽어보세요, 책에 소개된 박웅현씨의 독서법도 좋고요..
책 속에 좋은 구절도 많이 볼 수 있답니다. 덕분에 이 책을 통해서
김훈과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어보려고 해요. ^^

차트랑 2012-01-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적 가치의 최고봉이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 노동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인적 가치를 창출해내는 노동자들은 정작 그에 알맞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아니, 대우해주지 않는 사회입니다.

누군가는 "당신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했다는데....
정녕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란 말인가요...
가치관과 행동관이 일치하지 않는 사회에게 우리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요...

글을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몹시 무겁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글을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습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12-01-12 23:14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저도 아무 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에는 노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이 무척 강했어요. 요즘 저 같은 젊은 세대들도
막노동을 힘들고 더럽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식으로 인식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송경동 시인의 시를 읽고나니 노동이라는 것도 무조건 힘든 일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상 속에서도
삶의 희망을 찾고 비록 짧지만 휴식을 통해서 행복을 얻는 모습들이
노동을 접하지 못한 저로써는 무척 새로웠습니다.
요즘 이 분의 산문집이 많이 읽혀지고 있는데 독자들이 시집들도
많이 읽혀졌으면 좋겠어요. 송경동 시인의 시 속에서는 정말
우리가 몰랐던 노동자들의 삶을 볼 수 있거든요 ^^

잘잘라 2012-01-13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과 1년도 안 된 얼마 전까지 건축 공사 현장 감리를 했고 또 봄이면 그 일을 시작할 예정이라 이건 꼭 얘기를 하고 싶어요.

'재수가 없거나 발을 헛디뎠을 뿐이다'라는 말을 공사 관리 감독관 처럼 얘기했다고 하셨는데, 그건 그렇지 않거든요. 감리자가 제일 신경쓰는게 안전 관리예요. 안전모, 안전띠 착용, 안전판 설치.. 물론 공사 규모에 따라 감리자가 상주하는 현장도 있고 그렇지 않은 현장도 있지만 아무튼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제일 먼저 조사 대상이 되는 사람이 바로 감리자거든요. 물론 감리자가 할 일 중에 부실공사를 막는 것도 큰 일이지만 그보다는 안전 공사를 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해야 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공사현장은 항상 공기(공사기간)에 쫓기기 때문에 시공사는 안전에 소흘하기 쉬워요. 그러나 감리자는 감리자의 업무 중에 안전관리가 들어있기때문에 공사현장에서 그나마 공기보다 안전을 우선 순위에 둘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감리자예요. 감리자와 별도로 감독관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하는 분도 있어요. 제 느낌에는 cyrus님이 얘기하신 '공사 관리 감독관'이란 아마도 '현장 소장'을 얘기하시는 것 같아요.

감리자든 감독관이든 현장소장이든 아무튼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났는데 저렇게 태평스런 얘기를 하는 경우는 없어요. 소속은 달라도 모두가 피고용인이라는 입장은 같은 것이고 맡은 업무에 따라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인데 저렇게 간단히 남 일 처럼 얘기할 수는 없지요.

저도 송경동 시인의 책 읽고 있는데 많은 부분 공감하는 부분도 있는 반면 너무 노동자를 별개로 격리된 존재로 부각시키는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댓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리뷰 쓰면서 제 생각을 더 정리해야 할 것 같아요.

cyrus 2012-01-13 10:47   좋아요 0 | URL
제가 노동 경험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어요. 공사 관리 감독관이라는 것도
있고 현장 소장이라는 직책도 있었군요. 포핀스님의 지적이 아니었다면
제 글 때문에 공사 관리 감독관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비춰질 우려가 있었어요. 문제가 되는 내용을 수정해야겠어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그런데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신다니 다치지 않도록
몸 조심하셨으면 해요 ^^

차트랑 2012-01-13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포핀스님은 모르시는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매우 해박하시다보니 감탄스러워서 건방지게 리플을 달았습니다 ㅠ.ㅠ
 

 

 

 오늘 모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 작성한 모 님의 국가장학금제도에 대한 글을 읽게 되었다. 역시 필자처럼 국가장학금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서 쓴 글이었는데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단 환영했지만 그것보다는 그 분이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모 님은 신청기간을 잘못 알아버리는 바람에 인터넷 접수로만 가능하는 신청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국가장학금 인터넷 신청기간은 1월 4일까지였다.

 

 '국가장학금 미신청 시 모든 교내장학금 수혜대상 제외'라는 조건 아래 국가장학금 신청을 '의무화'하는 학교의 홍보가 비단 필자가 다니는 학교에서만 하는 줄 알았는 데 생각보다 전국 곳곳의 대학교에서도 학생들 사이에서 강요성(?) 있는 홍보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모 님이 다니는 학교도 그런 규정이 있다면 75만 원 정도 주는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못해서 교내장학금 200만 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과에서 1등을 했는데도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못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 누구나 이런 입장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너무나 억울하고 분할 것이다..

 

 며칠 전에 쓴 국가장학금 관련 글에서도 밝혔지만 국가장학금 신청기간이 끝난 지금도 필자가 다니는 모 대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여전히 성적우수장학금 제도 변경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가끔 학교 게시판을 읽곤 하는데 어느 학생이 남긴 글이 지금 성적장학금 변경 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다.

 

 

 아 진짜 공부할 의욕 안생긴다..........

 1등했는데 기쁘지가 않다.......

 아 열심히 해서 받는 장학금이랑 소득이랑 뭔 상관인지 ........ 어의없네요

 

 

 

 필자도 처음에 교내성적우수장학금 변경 제도 소식을 접하면서 한순간에 기분이 맥 빠졌다. 거의 3년 만에 과 학년 내 1등을 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장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도가 바뀌는 바람에 전액이 아닌 70%만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해서 수혜를 받는다면 나머지 30%는 받을 수 있지만 아직 수혜대상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장담할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재수 없는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

 

 성적 잘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장학금 제도 도입으로 인한 교내장학금 변경 규정을 반기지 않고 있다. 특히 정말 며칠 간 집에 안 들어가고, 밤을 새가면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학생들에게는 정말 의욕 떨어지게 만드는 규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며칠 전에 쓴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존 롤즈의 정의의 제2원칙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학교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려고 한다.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서 등록금 재원을 확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내장학금 범위를 축소하는 정책 규제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련다.

 

 

 

 다만...

 

 국가장학금 사연을 쓴 모 님의 사례처럼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학생들을 위한 국가장학금 본연의 의미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

 

 (1) 만약에 cyrus가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못해 교내 성적우수장학금 300만 원을 받지 못했다고 가정하자.

 

 (2) 그렇게 된다면 국가장학금을 지원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제정비용비가 감소되어지고 대학교 입장에서는 cyrus에게 지급되어야 할 300만 원을 회수하게 됨으로써 이득을 볼 수 밖에 없다.

 

 (3) 그렇다면...  결국 국가장학금제도의 목적과 다르게 cyrus는 300만 원의 비용부담이 생기게 되어 그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적은 시급의 알바를 해서라도 말이다.

 

 좀 웃긴 상황이지만..  국가장학금 신청 한 번 안한 것 때문에 좋지 않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글에서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국가장학금 제도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신청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접수를 하지 못한 학부생들을 위해서 인터넷 접수 기간을 늘리던가 가능한 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내에서라도 오프라인 접수가 할 수 있도록 접수창구의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상 '한국장학재단' 사이트에서만 가능하는 인터넷 접수도 문제점이 있었다.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공인인증서를 만들어야 한다. 공인인증서는 USB나 본인 컴퓨터 내 폴더에 따로 저장할 수 있지만 개인 휴대폰 메모리카드에도 저장할 수 있다.

 필자 같은 경우에는 USB가 구비되지 않아서 개인 휴대폰에 따로 저장했다. (휴대폰에 공인인증서를 저장하면 이와 관련된 어플이 설치된다) 그런데 국가장학재단 내 보안 프로그램 때문인지 몰라도 휴대폰에 저장된 공인인증서로는 인터넷 신청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신청을 하면 프로그램이 강제로 종료되곤 했다. 그래서 휴대폰에 저장된 공인인증서로도 접수가 불가능한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신청하는 국가장학금제도라는 것을 감안해서 고객센터 전화상담서비스도 확대되어야 한다. 오늘도 필자는 국가장학금에 대해서 궁금한 부분이 있어서 고객샌터에 세 번을 전화를 했는데 통화량이 많아서 받을 수가 없었다.

 지난 주 인터넷 접수 기간에도 필자의 친구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통화량이 많다는 이유로 전화를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사실 접수 기간에는 통화량이 폭주하여 민원접수를 하지 못하는 경우는 당연하다. 그런데 인터넷 접수 기간이 끝난지 5일이 지났는데도 통화량이 많아서 민원접수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3월 달부터 올해부터 대학교를 다니게 되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장학금 신청 기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에 드러난 국가장학금 제도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고 학생들의 민원을 고려하여 좀 더 내실 있는 장학금제도로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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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2-01-10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운게 없군요~

그나저나 cyrus님 대단해요! 학년 1등은 어떻게 하면 되는거죠?^^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래요. 노력한 만큼 보답 받을 수 있는 사회라는걸 경험할 수 있음 좋겠는데 말이예요.

cyrus 2012-01-11 18:54   좋아요 0 | URL
그냥 열심히 공부했을 뿐입니다. 현맘님 말씀처럼 올해에도
노력한만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순오기 2012-01-10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든 처음 실시할 때는 시행착오가 생기고, 추가로 구제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해요. 성적우수장학금은 소득과 관계없이 지급되어야 마땅하다 생각되네요. 결국 국가장학금 때문에 피해를 보는 학생들도 속출할 상황이라니~ 어'의'가 아니라 어'이'가 없네요.ㅜㅜ

순오기 2012-01-10 05:17   좋아요 0 | URL
제 서재 방명록과 아래 글에 남기신 답변 잘 봤어요.
신청기간 놓치지 않게 탁상일기에 적어뒀어요. 고맙습니다~ ^^

cyrus 2012-01-11 18: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학교측에서는 성적우수장학금 수혜범위가 교내 장학금 중에서
많다는 이유만으로 변경을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처음 시행하는 제도라서 피해를 보는 학생들이 속출돌 수 밖에
없을거 같아요

꽃도둑 2012-01-10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학제도는 미국과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형평성에서도 그렇고 접근성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우리도 유럽처럼 등록금 상한제와 후불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싶은데...
공평하고 아주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ㅡ 우리나라 대학관계자들이 촛불집회하려나?..ㅎㅎ
1등 하고도 별로 달갑지 않다면 장학금 제도의 본디 모습을 잃는 거겠죠,,
본디 성적순이었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복지쪽으로 가던가...
반값 말고,,,후불제와 상한제로 말이죠. 지금 상황은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속셈으로 비치는 데요?,,,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여요.

cyrus 2012-01-11 18:58   좋아요 0 | URL
여야에서 반값 등록금 도입을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되니깐
나온게 국가장학금 제도에요. 이제 막 시행하는 단계라서
국가장학금 제도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과 이의제기는 아직
공론화되지 못했는데요.. 일단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지켜봐야 될거 같아요 ^^;;

saint236 2012-01-10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무슨 꼼수일까요?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꼼수인가요?

cyrus 2012-01-11 19:0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여당이 추진하고자 했던 반값등록금 도입이 실행되지 못한
'포퓰리즘'으로 남게 될까봐 어떻게든 학생들의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국가장학금을 도입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해요.
그래서 전국의 대학교뿐만 아니라 언론, 방송을 통해서도 국가장학금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고요..

굿바이 2012-01-10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등록금 정책은 조금 더 봐야 알 것 같은데
cyrus님이 이렇게 좋은 성적을 얻었군요!!!!
우와~ 장해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액수와 상관없이 진심으로 축하해요^______^

cyrus 2012-01-11 19: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굿바이님 ^^
액수가 줄어들었어도 열심히, 올바른 과정으로 노력한 끝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만족합니다. ^^

마녀고양이 2012-01-10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이 행정 공부를 하시잖아요....
그래서 잘 아시겠지만, 정부 기관에서 어떤 시스템을 만들 때 참 졸속으로 빠르게 해치울 때가 많다는 것을 종종 느낍니다. 만일 하나의 프로세스를 만든다면, 그 프로세스를 시행할 때 발생하는 경우의 수를 따져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하나씩 검토하고 시행령을 내려야하는데 그렇지 못 하단 말이죠.

제가 그것을 많이 느낀 이유는, 제가 금융권 전산직이었기 때문이죠. 어느날 갑자기
정부에서 어떤 규정을 고친다고 내려오면서, 번개불에 콩 굽듯이 해내라고 난리가 나요.
그래서 밤샘하면서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보면, 경우의 수가 막 비어요. 어떤 때는 부작용도 일어나요. 그럼 거꾸로,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입안자에게 이런 경우는 어쩌냐고 올라가요... 진짜 웃기지요?

하나를 해도 차근차근 하면 될 것을, 승질도 진짜들 급하고, 엉터리고. ㅉㅉ

그나저나,,,, 이번 시험 성적 엄청 좋다구요,,, 역시, 시루스님, 아자!

cyrus 2012-01-11 19: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책을 도입할 때도 그 정책으로 인해서 발생하게 될
예상 시나리오를 따져보고. 만약 도입한 정책이 결과가 좋지 않으면
피드백을 통해서 점검해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 과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다는게 흠이죠 ^^;;

그리고 위에 세인트님 댓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여당이 자신들이
먼저 언급한 반값등록금 도입이 실패하자 어떻게든 학생들의 불만을
달래주기 위해서 언발의 오줌 누기 식으로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인간 등정의 발자취 - 개정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 지음, 김은국. 김현숙 옮김, 송상용 감수 / 바다출판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르네상스형 괴물, 켄타우로스 케이론

 

 

 

 

 

폼페오 바토니  <아킬레우스를 가르치는 케이론>  1746년

 

 

 

 켄타우로스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말의 형태를 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그들은 야만적이어서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난폭한 성질을 지녔다. 또한 음탕할 정도로 여색을 좋아해서 종종 님프(nymph)나 신족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기도 한다. 몸에서 말(馬)의 부분은 태양에 속하는 남성적인 힘을 나타내며, 이 힘을 다스리는 정신이 상반신을 이루는 사람 부분에 있다. 요컨대 켄타우로스는 덕성과 판단력이라는 인간의 고귀한 본성과 대비되는 인간의 저열한 본성을 상징한다.

 그러나 모든 켄타우로스가 호전적이고 난폭한 건 아니다. 케이론이라는 이름의 켄타우로스는 선량하고 정의를 존중하는 온화한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의술, 음악, 수렵, 예언에 능통하여 헤라클레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 등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아킬레우스를 가르치는 케이론의 모습을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활을 쏘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케이론은 수많은 영웅들에게 궁술, 수렵만 가르쳤던 것은 아니다. 케이론은 켄타우로스 일족 중에서 유일하게 박학다식한 현자였다.

 폼페오 바토니가 묘사한 장면에서 케이론은 아킬레우스에게 수금을 켜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젋은 아킬레우스 뒷편에는 지구의가 있는 걸로 봐서는 케이론은 지리학도 가르쳤나보다. 하지만 지구의가 존재하기에는 아킬레우스가 활동하던 신들의 세계는 지리학, 천문학이라는 학문도 존재하지 않았던 너무 먼 옛날 시절이다. 바토니는 지구의를 조그맣게 그려넣음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케이론의 박학다식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록 아킬레우스는 성인이 되면서 수금 연주를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보다는 그리스의 오랜 적국인 트로이를 공략하는 데만 열을 올렸지만 말이다.

 

 앞에서 켄타우로스를 날 것 그대로의 야만성과 덕과 정신이 다스리는 인간의 본성이 결합된 혼합적인 존재라고 한다면 케이론은 인간이라면 알아야 할 학문과 예술이라는 지식의 분야를 동시에 습득하고 있는 르네상스형 인간, 아닌 '괴물'로 볼 수 있다.

 르네상스형 인간이란 한 분야가 아닌 다양한 곳에서 두각을 나타낸 사람을 말한다. 누구보다도 더 호기심과 탐구력이 강하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문학이던 과학이던 예술이던 골고루 습득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들 간의 링크가 잘되어 있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의 저자 제이콥 브로노우스키는 20세기의 마지막 르네상스형 인간인 동시에 과학과 예술 간의 밀접한 지적 사유 과정을 집대성할 줄 아는 현대의 케이론이다. 그의 마지막 지적 활동의 결과물로 남게 된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인류의 정신 및 지성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진보'라는 인간의 등정이 지성사에 미친 영향

  

 브로노우스키는 인류 지성의 진보적 발전을 '인간 등정'으로 비유하고 있다. 인간의 체력으로는 높은 산 정상까지 뛰어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 정상에 빨리 오르고 싶은 마음에 처음부터 빠른 걸음으로 산에 오르게 되면 체력적 소비가 많아져 정상에 도달할 수 없다.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한걸음씩 한걸음씩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산에 오르는 과정을 인류의 진보에 비유하자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단 한 번만에 세상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하나의 봉우리가 또 다른 봉우리의 발판이 되는” 유기적 여정을 거친 끝에 만들어졌다.

 아기는 걸음마를 떼고 스스로 일어서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갈 기본적인 준비를 마친다. 인간의 조상도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되었다.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커진 두뇌와 자유로워진 두 손은 창조의 모체가 된다. 인간은 과학과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놀라운 창조물들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인류의 진보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는 최초의 과정이다.

  나무와 돌을 깎기 시작했을 때 인류는 다시 한 번 진보했다. 브로노우스키는 ‘사물을 쪼개고 깎는 것은 흙을 뭉쳐 토기를 빚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라고 말한다. 깎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사물의 본성을 파헤쳐 구조와 법칙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돌덩이 내부에 있는 형상을 망치로 해방시킨다’고 생각했던 조각가 미켈란젤로처럼 인간은 깎으며 분석하고 이때 발견한 법칙을 토대로 사물을 재구성했다. 연금술 역시 금속의 숨겨진 구조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인간 등정의 일보 중 하나였다.

 이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잉태된 진보는 예술과 종교 등의 영역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르네상스 미술을 발전시킨 원근법은 단지 중세 미술만 바꾼 것이 아니었다. 원근법은 신의 관점으로 사물을 배치하는 중세의 예술관을 붕괴시켰고, 수학을 시간과 연동되는 역동적 사유양식으로 발전시켰다. ‘눈에서 빛이 나오는 게 아니라 물체에서 빛이 나온다’는 이슬람 물리학자 알 하젠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원근법은 예술을 넘어 과학과 종교, 세계관의 붕괴로 이어졌다.

 

 

 

 

 '도덕적 상상력' 없이는 인류의 진보는 없다

 

 케이론은 비록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이지만 그는 이성과 지혜를 두루 갖춘 박학다식한 현자였기에 오늘날에는 포악한 짐승에 가까운 켄타우로스 일족과 구분하고 있다. 케이론은 수금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었지만 켄타우로스 일족은 그저 술만 마시고 아무 님프나 잡아서 추태 부리는 짐승에 가까운 행동을 한다. 

 이처럼 브로노우스키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상상력의 자질에서 비롯된 창의적인 정신의 능력이라는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창의적인 정신의 능력은 예술과 과학이라는 분야를 통해서 구현하고 있는데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귀한 선물'인 것이다. 이런 믿음 하에 브로노우스키는 인류의 진보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실 브로노우스키의 관점은 오랫동안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인간중심적 사고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은 과학과 예술을 통해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진보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을 절대 지식으로 여기는 인류의 오만과 무지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절대적인 확실성을 신봉하는 독재자들의 신념으로 과학과 인류 진보가 후퇴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현대로 오면서 핵물리학의 발전이 오히려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는 레오 실라드의 진언과 현실로 나타난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통해 과학의 오용 가능성에 대한 물음과 해답을 찾고자 한다.

 특히 책이 쓰여진 지 30년이 지났지만 그는 인간의 고유한 정신을 배반하면서까지 목적보다는 수단을 정당화하는 데 과학을 이용하는 사회적 흐름을 우려하고 있다.

 

 

“인간이 현실적으로 시험해보지도 않고서 절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믿을 때 이런 식으로 행동한다. 인간이 신의 지식을 갖고자 할 때 이런 짓을 하는 것이다. 과학은 지식의 그야말로 인간적인 형태이다. 우리는 항상 알려진 것의 첨단에 있으면서 바라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 한다. (중략) 우리는 절대 지식과 절대 힘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pp 416~420)

 

 

 

 오늘날의 과학은 사회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과학의 고삐를 쥐고 흔들기를 원하는 정부와 갈등을 빚게 된다. 이 때문에 과학이 할 일은 지상의 부(副)가 아니라 도덕적 상상력을 계승하는 데 놓여야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도덕적 상상력이 없이는 인간과 믿음, 과학은 함께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케이론과 같은 존재가 있어야 사회의 발전은 물론이고 훌륭한 인재가 탄생하듯이 브로노우스키는 이와 같은 과학의 바탕이 확립될 때 진보의 ‘인간 등정’도 여전히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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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1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 신, 인간, 자연을 서로 분리시키고, 자연을 인간이 정복해도 좋은 대상으로 바라본 서구의 사상적 배경은 서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경쟁의식을 잉티했대고 저는 봅니다.

아, 그리고 '절대 지식과 절대 힘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제가 해당 책을 읽지 못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이랍니다)

아주 좋은 글 잘 일었습니다.

cyrus 2012-01-11 19:14   좋아요 0 | URL
제가 인용한 문장에서 중간 내용을 일부러 생략해서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네요 ^^;;

저자는 원시 시대부터 원자폭탄이 등장하는 현대까지(이 책이 1970년대쯤에
다큐로 만들어진 것을 토대로 출판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조망해보면서
인간이 과학과 예술을 다룰 줄 아는 능력 덕분에 무시무시한 원자폭탄까지
제조할 수 있는 진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서
인간의 이러한 능력을 예찬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
예를 들어서 과학의 힘을 절대적으로 보며 맹신하게 되면
결국에는 인간 우리 스스로 파멸하는 길로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요.
원자폭탄 같은 경우에도 결국 과학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은 정치세력들의 탐욕이 만들어 낸 위험한 무기가 되었잖아요.

그래서 과학을 인류의 진보를 위한 인간만의 절대적인 지식 또는 힘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존재가 서로 상생하는 도덕도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추천되는 책이고 과학 분야 도서치고는
어렵지 않은 게 장점이에요.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해요 ^^


차트랑 2012-01-1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 생략을 해서 죄송합니다.
(맥락을 무시한 생략은 큰 오해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 인정합니다)

제가 인용한 부분은 "(중략) 우리는 절대 지식과 절대 힘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pp 416~420)"입니다.

아, 그리고 좋은 말씀해주시고
독서 목록에 포함 시킬 수 있도록 해주신 점
고맙습니다.

그리고 좋은 글을 써주셔서 역시 고맙습니다.
 

 

 

 "난 오늘도 빨갱이들과 싸운다"

 

 

 

 

 

 

 

 어제 S 방송국에서 하는 '궁금한 이야기 Y'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항상 금요일 밤 9시가 되면 뉴스 대신에 꼬박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언론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화제의 인물에서부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세상사의 이면을 일종의 다큐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어제는 정동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폭행하여 일명 '박원순 시장 폭행녀'

로 알려진 인물에 대해서 소개했다.  

 이 문제의 인물은 대학생 반값등록금 행사에 참여했던 정동영 위원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사건부터 시작해서 행사에 참석 중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폭행을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故 김근태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의 장례식장에서도 난동을 피웠다. 문제는 박시장 폭행사건 이후, 치료감호소에서 한 달여간 수감되었다 풀려나자마자 장례식장에서 소란을 피운 것이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폭력을 가했으며 장례식장에서까지 난동을 부린 것일까? 프로그램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뉴스나 신문에서 알려지지 못했던 그녀의 속사정을 알 수 있었다.

 문제의 여인은 진보 세력을 적대적으로 보는 극우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내가 오늘 빨갱이들하고 싸웠다. 내가 그렇게 해서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고, 우리나라가 잘 돼서 튼튼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게 저의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첫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하는 사람은 ‘친구’이고,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이는 곧바로 ‘적’, 또는 ‘빨갱이’다" "그동안 난동을 피운 것 또한 그들이 자신과 정치적 신념이 다른 ‘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진보적 입장을 가진 정동영 위원, 박원순 시장에게 폭행을 시도했으며 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장례식에서도 '빨갱이들은 다 죽어라'하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그녀에게 모든 '빨갱이'들은 적이었다.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어제 프로그램에 전파된 '박원순 폭행녀'의 인터뷰를 보면서 순간 섬뜩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소개된 '일곱 계명' 속 내용이 떠올렸다.

 소설 배경인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은 인간의 착취와 살육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농장에 있는 인간들을 쫓아내버리고 난 후 농장을 지배한 동물들은 모든 동물들이 농장에서 생활하는 데 준수해야 할 불가변의 7개의 계명을 만들게 된다.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도정일 역, 민음사, pp 26)

 

 

 첫번째, 두번째 계명은 앞에서 언급한 '박원순 폭행녀'의 생각과 유사한 사고방식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적이 아니면 친구라는 생각, 바로 전형적인 흑백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농장을 이끄는 돼지들은 자신들이 적이라고 여겼던 인간들처럼 다른 동물들을 속이고 착취하며 끝내는 팔아먹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농장에서 쫓겨난 인간들과 어울리면서 두 발로 걷을 수 있을 정도로' 점점 인간을 닮아간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동물농장>을 통해서 스탈린 치하의 구 소련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서 차르를 무너뜨렸을 때에는 소련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삶을 살 수 있는 계급 혁명의 이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레닌이 세상을 떠나고 스탈린이 새로운 소련의 지배자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은 새로운 착취 계급의 등장에 불과한 쇼로 전락하고 말았다.

 흑백 논리와 금지 사항으로 가득 찬 세상. <동물농장>의 세상은 그래서 답답하고 기계적이며,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적'과 '친구'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계명으로 인해 동물농장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는 흑백 논리적 사고가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사회가 되고 만다.

 

 

 

 

 "저 털 없는 괴물들을 조심해야 한다!"

 

 

 

 

 

 

 

 

 

 

 

 

 

 

 

 

 

 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이분법적 흑백 논리에 지배당한 사회의 문제점을 동물이 사는 동물농장으로 우화적으로 표현한 소설로 잘 알려졌지만 오웰이 사용한 표현 방식은 <동물농장>이 처음으로 출판한지 정확히 98년 전에 독일의 시인이 이미 사용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아타 트롤, 한 여름 밤의 꿈>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풍자 서사시다. 이 작품은 1847년에 발표되었고 98년 후에 오웰의 <동물농장>이 발표되었다.

 작품 제목 속 '아타 트롤'은 서사시에 등장하는 주인공 곰의 이름이다. 아타 트롤은 자신의 애인인 뭄마와 함께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묘기 곰으로 살고 있었는데 주인의 착취를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자신의 발에 묶인 사슬을 끊은 채 탈출한다. 그 이후부터 아타 트롤은 인간을 적대시하고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런 아타 트롤의 생각은 작품 속 5장에서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도 인간을 적대시하는 흑백 논리가 아타 트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들아, 왜 너희들이 우리 다른 동물보다
 더 우월하단 말이냐?
너희들이 머리를
 똑바로 치켜들고 있기는 하지, 그러나 머릿속에는
 비천한 생각들이 기어 다니고 있는데, 뭐.

 

 (중략)

 

 인간들아, 두 발 달린 뱀들아.
 왜 너희들이 바지를 입는지
 나는 잘 안다! 다른 동물의 털로
 나희들 뱀의 나체를 감추려는 것이지.

 
 얘들아! 저 털 없는 괴물들을
 조심해야 한다!
 내 딸들아! 바지를 입은
 비동물적 짐승을 믿지 마라! 

 

 ('아타 트롤, 한 여름 밤의 꿈' 제5장 중에서, <독일, 어느 겨울동화> 시공사, pp 192)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타 트롤은 신체는 곰이면서도 사고와 생각은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입장과 별 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동물농장>에 언급되는 계명 속의 내용과 유사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오웰의 <동물농장>과 관련해서 더 재미있는 사실은 하이네 역시 진보적인 입장을 지녔으며 한 때 마르크스와 친분적 교류를 맺기도 했다. 하지만 하이네는 이 작품을 집필하고 있었던 당시에 대두되기 시작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이네는 항상 자신의 진보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보수주의자들을 풍자하는 작품들을 남겼는데 <아타 트롤>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이 암시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등장하는 동명의 주인공인 곰의 일대기를 통해서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들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타 트롤이 생각하는 동물사회의 평등 사상은 19세기 중반,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했던 사유 재산 제도의 철폐 요구를 뜻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사유 재산을 철폐함으로써 모든 인간들이 공정한 부의 분배를 통해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하이네는 <아타 트롤>을 통해서 이들의 과격하고 비현실적인 이념의 입장을 풍자, 비판하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를 조장하는 적을 '귀족 세력'으로 간주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구 세력과의 타협을 하고 마는, 뚜렷한 목적도 없는 추상적인 이념에 사로잡힌 독일의 진보 세력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흑백 논리의 위험성  

 

 

 

 

"나라를 망치는 좌파는 빨갱이, 북한으로 가라!"

보수 언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극우주의자들의 편향된 사고방식이다.

 

 

 

 19세기 중반의 하이네에서부터 20세기 초의 오웰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의 '박원순 폭행녀'까지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흑백 논리의 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지금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여전히 '남과 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흑백 논리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거나 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을 지니게 되면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빨갱이' 또는 '북한으로 가라!'고 말한다.

 소련이 붕괴되었고 독일이 통일된 지 10여 년이 지났건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냉전이 팽배하던 1970년대에 만들어진 반공주의적 사고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박원순 폭행녀처럼 진보 세력을 무조건 '빨갱이' 또는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분법과 흑백 논리는 상대방을 악으로 몰고 자신을 지고지선의 존재로 자처한다. 그와 동시에 제3자에게 악의 세력과 야합할지, 착한 우리 진영에 협조할지를 다그친다. 이분법은 상황을 단도직입적으로 구분하니 속 시원하게 다가온다. 선과 악, 친구와 적, 천사와 악마, 상식과 몰상식, 양심과 비양심으로 나누니 '내 편'과 '네 편'이 분명해진다. 이해가 쉽고 헷갈리지 않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을 양극단으로 나누다보면 중립, 중간지대가 없다. 시장경제 아니면 좌파이고 좌파는 빨갱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사이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중도는 부정된다. 따라서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는 사고의 유연함을 잃는다.  

 흑과 백 사이에 드넓은 회색지대가 있어야 현실의 복잡함을 감당할 수 있다. 좌파적 편견, 우파적 아집 하나로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끌고 가지 못한다. 이분법과 흑백 논리라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이념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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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0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과 악, 좌와 우' '천사와 악마'라는 상대적인 용어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다'라는 넓.은. 의.미.의 정.치.적.인 용어로 조선에 들어오게 된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선에 없는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용어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해주신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이러한 이분법을 중.화.시킬 수있는 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cyrus 2012-01-09 19:33   좋아요 0 | URL
저는 그 날 방송을 보면서 안타깝기보다는 무서웠어요.
아직도 TV 속 여자가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 생각나요. 그 사람도
천사와 악마, 선과 악을 언급하면서까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있더군요.

감은빛 2012-01-1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빨갱이'인 제 입장에서 보면, 정동영 의원이나 박원순 시장은 그닥 좌파도 아니고 절대 빨갱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데 말이죠.(고 김근태 선생은 조금 다릅니다.)

언제 시루스님과 술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아직 진정한 의미의 새해(설)이 되지 않았으니,
늦었다는 말은 쓰지 않을게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1년 2학기 성적표

 

 

 

 

 

 

 

 

 

 

 

  오늘 2011학년 2학기 최종성적이 공개되었다. 작년 학기도 열심히 공부한만큼 성적도 잘 나왔다. 원래 목표한 성적이 6과목 중에 4과목만 A+ 받는 것이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 교수님들 대부분 학점 짜게 주기로 학부생들 사이에서 알려졌는데 특히 2학기 때 수강한 <인사행정론>과 <행정통제와 개혁> 같은 경우에는 학부생들이 꺼려하는 과목으로 악명이 높았다.

 전자의 과목의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논술형 약술식 문제와 많은 내용의 답안을 요구하는 논문형 문제를 출제하기 때문에 아무리 암기력 좋은 학생이라도 기껏 잘 해봤자 A, A- 정도 받는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유독 여학생들에게 성적을 잘 준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경계(?)의 대상이 되는 유명한 교수님이었다.

 후자의 과목 역시 시험문제가 어렵기로 알려졌다. <행정통제> 교수님은 어떤 과목을 가르치든 항상 객관식 문제를 출제하셨는데 학생 성적의 변별력을 위해서 몇 문제는 어렵게 내는 편이다. 간혹 공부했던 교과서에 없는 내용들이 보기에 나오는 문제들을 출제하는 경향이 있어서 필자도 이 교수님 수업만은 많은 공부의 시간에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작년 2학기 성적은 예상외로 좋은 성적이 나왔다. 솔직히 <인사행정론>과 <행정통제>에서 이렇게 좋은 점수가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 문제의 두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4과목에서 좋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반대로 만만히 봤던 <복지행정론>에서 가까스로 B+이라는 학점을 받았다. <복지행정론>에만 A+을 받았으면 전 학기 최고 성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조금은 아쉽다. 

 

 

 

 

 국가장학금과 '반값 장학금'

 

 그래도 거의 3년 여만에 성적등수 1등을 하게 되었다. 2007년년도 1학기 때 1등을 시작해서 2학기 때는 5등 그리고 작년에 복학을 하여 2011년 1학기 때 2등을 했다.

 성적 1등 했다고해서 그것이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적이 우수할수록 등록금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다. 필자가 다니는 학교는 이전에는 성적우수장학금을 100% 주는 규정이었다. 1등은 등록금 전액이고, 2~3등까지는 등록금의 1/2, 1/3씩으로 지급되었다.

 

 

 

 

 

 

 그러다가 올해부터 전국 모든 대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 신청 의무화가 되면서부터 교내 성적우수장학금액 범위의 규정이 달라졌다. 학교에서 지급하는 기존의 성적우수장학금은 70% 지급하되 나머지 30%은 국가장학금으로 수혜받게 되었다.

 국가장학금은 대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서 정부에서 만든 장학제도인데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작년에 정부가 추진하려고 했던 반값 등록금 논의가 결렬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마련된 장학금 제도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국가장학금 신청 의무화가 되기 시작하면서 필자가 다니는 학교의 성적우수장학금액이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100% 혜택을 받던 성적우수장학금이 올해부터 갑자기 70%로 축소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이 학생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국가장학금은 가계소득이 7분위 이내인 학생들에게 수혜를 받을 수 있는데 만약에 7분위 이내가 아닌 경우라면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한다.

 사실 작년 12월부터 정부에서부터 언론, 학교까지 모든 학생들에게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는 국가장학금을 신청하는 학생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 국가장학금 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은 교내 모든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공지하였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지 않게 되면 소득분위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학교 측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국가장학금 수혜 신청한 학생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정부가 학교에서 지원하는 재정 혜택이 많아지게 된다.  

 필자가 다니는 D 학교 같은 경우에는 국가장학금 신청 공지사항이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한 12월 초에만 해도 그것을 신청하는 학생 수는 대략 1100여 명에 불과했다. 일반적인 대학교의 총 학생 수가 1만 명을 넘는다고 추산하면 국가가 지원하는 장학제도에 자발적으로 신청한 학생 수가 1천 여명에 불과한다는 것은 무척 적은 인원이다.

 국가장학금 신청하는 학생 수가 적다는 것은 학교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신청하는 학생 수가 적어서 정부가 지원하는 등록금 충당 재원을 많이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학교의 대대적인 국가장학금 신청 홍보와 불신청 시 교내장학금 수혜 불이익이라는 경고(?) 덕분에 모든 전교생들이 국가장학금을 신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청을 한다해도 가계소득 7분위 이내에 들지 못하면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번에 바뀐 '성적우수장학금 70% + 국가장학금 30%' 제도에 대해서 학생들이 반발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값 등록금'을 원했던 학생들이 국가장학금 제도 때문에 '반값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장학금에 관련한 바뀐 규정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성적우수장학금은 정말 열심히 학업에 노력한 학생들이라면 받고 싶어하는 장학금 중의 하나이다.  갑작스레 성적우수장학금이 수혜 범위가 줄어들게 됨으로써 그동안 성적우수장학금 혜택을 받았다거나 그것을 목적으로 공부했던 학생들에게는 맥 빠질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교내 게시판에 바뀐 장학금 제도에 대해서 몇 몇 학생들 사이에서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는데 교내 장학복지팀 측에 의하면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예산 범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교내 장학금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성적우수장학금의 예산범위를 변경했다고 밝혔다.

  

 

 

 

 롤즈의 정의 제2원리

 

 필자는 회계학적 지식이 무지한데다 이에 대해 경제적인 관점에서 어떤 제도의 효과에 대해서 따져보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에 이번에 바뀐 장학금 제도 변경에 대해서 옳은 건지 잘못된 것인지 딱 부러지게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서 장학혜택을 늘리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번 제도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환영한다.

 

 

 

 

 

 

 

 

 

 

 

 

 

 

 

 

 

 

 아직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만 교내 장학금 제도의 변경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면서 존 롤즈가 말했던 정의의 제2원칙이 생각이 났다.

 롤즈에 따르면 정의의 제1원칙은 '평등한 자유의 법칙'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상, 양심, 언론, 집회의 자유, 보통선거의 자유, 공직 및 개인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자유 등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제2원칙에서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하고 있다. 롤즈는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 아래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직책과 지위가 결부되어어야 함을 요구한다. 쉽게 말해 못 가진 자, 덜 가진 자에게 가장 큰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등록금 문제를 롤즈의 정의 제2원칙 입장에서 비추어 본다면 학교는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한 등록금 부담 완화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성적우수장학금 예산범위 변경을 불가피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가장학금 제도가 제대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사실 이번 등록금 변경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의 이면 속에는 학교 내 재정력에 대한 불신도 반영되어 있다. 필자의 학교는 오래전부터 사학재단의 존재 때문에 말썽이 많았으며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학교 증축 투자에만 추진한 것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지금도 사학재단의 무분별한 학교재원 사용으로 인해서 학교 재정이 파탄이 이르렀거나 재정 부실 학교로 전락, 퇴출되는 사례가 많다.

 학교가 재정력이 탄탄하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재원을 확충할 수 있다. 필자의 학교는 아직 재정적인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날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사학재단의 권한을 제재하지 않고 학교 재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갈수록 높아지게 되며 학교의 재정력의 기반이 흔들리게 된다.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국가장학금 제도가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 완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모든 대학교에 정부예산을 지원하는 것만 아니라 지원받은 대학교가 그 예산을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자했던 반값등록금 논의가 물거품이 되었기에 국가장학금 제도가 등록금 마련에 제일 부담이 많았을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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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1-07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알라디너들은 A+ 성적표를 받는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대체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저런 성적표를 받을까요?
국가장학금이 현실에선 그렇게 적용되는군요.
울아들도 3월에 신청해봐야겠어요.

cyrus 2012-01-07 23:16   좋아요 0 | URL
올해 대학생이 되는 신입생들은 3월 2일부터 3월 15일까지
신청기간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국가장학금에 신청하기 위해서는
꼭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답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장학재단'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오해할 수 있어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국가장학금이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학교의 장학금 제도가 축소, 변경되는거
아닙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만 이례적으로 제도가 변경되었을뿐이지
다른 학교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장학금 수혜 범위를 확장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제가 다니느 학교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장학금 제도 변경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답니다. ^^;;

이건 뭐,, 변경이라고 하기 보다는 장학금 축소에 가깝기 때문이죠..

잘잘라 2012-01-07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아아- 저런 저런 저런 성적표는 정말이지 생전 처음 봐요. 못볼걸 본 기분이랄까. 흐흐흣 그나마 복지행정론 비뿔 아니었으면 cyrus님 외계인인줄 알았을겁니다. 크하하.

축하드려요. cyrus님^^

cyrus 2012-01-07 23:19   좋아요 0 | URL
포핀스님, 제가 작년까지만해도 2학년이었는데 사실 2학년 학생들 중에는
저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적이 잘 나오는 학생이 별로 없어요,
저희 과 3학년 같은 경우에는 1등이 올 A+인 4.5점을 받았고요...

제가 다니는 과가 야간인데 주간 학생들의 성적 차이가 엄청 많이 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서 주간 행정학과 2학년에서 1등에서 6등까지는 거의 학점이
4.0을 넘을 정도라니 성적우수장학금 받는게 어려렵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전쟁인거죠 ^^;;

제가 속한 야간 같은 경우에는 정말 4.0을 넘는 학생이 한 학년에 많아야 세 명 정도에요 ㅎㅎ

비로그인 2012-01-0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역시나. 훌륭한 성적이 눈앞에 펼쳐지는군요 ^^

배경은 그린에 붕어빵.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배경이겠지만. 밝아보여서 좋습니다.
또한 학교 공부에, 책도 많이,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으시는 것 같아서 보기 좋습니다.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장학금 받게 되시는 것이지요? 우선은 축하 드립니다 !!!

cyrus 2012-01-09 19:36   좋아요 0 | URL
작년 1학기 때는 노력한만큼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는데
2학기 때는 다행히도(?) 성과가 좋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말은 있어도 세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말이 없는 걸로 보니, 그 이상을 동시에 잡는다는게 쉽지 않은가봐요.
대학생활에 있어서 연애도 하면 좋을텐데 말이죠.
제가 복학하기 전에 바람결님이 저에게 연애 꼭 하시라고 바랬던
댓글이 기억나네요. 도서관에서 그저 공부만 하다보니
예쁜 여자 한 명도 보지 못하고 말았네요 ㅎㅎ ^^;;

세도나 2012-01-09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와 같은 생각이시네요. 전 국가장학금 신청기간을 놓쳐서 이번에 교내장학금 반액 놓치게 될 사람입니다...;
시간있으시다면 제 글도 한번 읽어주세요...;제 블로그 입니다.
http://blog.naver.com/songsiw/70128511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