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빨갱이들과 싸운다"

 

 

 

 

 

 

 

 어제 S 방송국에서 하는 '궁금한 이야기 Y'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항상 금요일 밤 9시가 되면 뉴스 대신에 꼬박 챙겨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언론이나 뉴스에서 나오는 화제의 인물에서부터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세상사의 이면을 일종의 다큐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어제는 정동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폭행하여 일명 '박원순 시장 폭행녀'

로 알려진 인물에 대해서 소개했다.  

 이 문제의 인물은 대학생 반값등록금 행사에 참여했던 정동영 위원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사건부터 시작해서 행사에 참석 중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폭행을 휘두르는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故 김근태 통합민주당 상임고문의 장례식장에서도 난동을 피웠다. 문제는 박시장 폭행사건 이후, 치료감호소에서 한 달여간 수감되었다 풀려나자마자 장례식장에서 소란을 피운 것이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정치인들에게 폭력을 가했으며 장례식장에서까지 난동을 부린 것일까? 프로그램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뉴스나 신문에서 알려지지 못했던 그녀의 속사정을 알 수 있었다.

 문제의 여인은 진보 세력을 적대적으로 보는 극우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인터뷰에서 “내가 오늘 빨갱이들하고 싸웠다. 내가 그렇게 해서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고, 우리나라가 잘 돼서 튼튼한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게 저의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 첫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하는 사람은 ‘친구’이고, 부정적인 대답을 하는 이는 곧바로 ‘적’, 또는 ‘빨갱이’다" "그동안 난동을 피운 것 또한 그들이 자신과 정치적 신념이 다른 ‘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진보적 입장을 가진 정동영 위원, 박원순 시장에게 폭행을 시도했으며 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장례식에서도 '빨갱이들은 다 죽어라'하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그녀에게 모든 '빨갱이'들은 적이었다.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어제 프로그램에 전파된 '박원순 폭행녀'의 인터뷰를 보면서 순간 섬뜩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소개된 '일곱 계명' 속 내용이 떠올렸다.

 소설 배경인 메이너 농장의 동물들은 인간의 착취와 살육에 반발하여 폭동을 일으키게 된다. 농장에 있는 인간들을 쫓아내버리고 난 후 농장을 지배한 동물들은 모든 동물들이 농장에서 생활하는 데 준수해야 할 불가변의 7개의 계명을 만들게 된다.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도정일 역, 민음사, pp 26)

 

 

 첫번째, 두번째 계명은 앞에서 언급한 '박원순 폭행녀'의 생각과 유사한 사고방식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적이 아니면 친구라는 생각, 바로 전형적인 흑백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농장을 이끄는 돼지들은 자신들이 적이라고 여겼던 인간들처럼 다른 동물들을 속이고 착취하며 끝내는 팔아먹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농장에서 쫓겨난 인간들과 어울리면서 두 발로 걷을 수 있을 정도로' 점점 인간을 닮아간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이면서도 <동물농장>을 통해서 스탈린 치하의 구 소련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레닌이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서 차르를 무너뜨렸을 때에는 소련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삶을 살 수 있는 계급 혁명의 이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레닌이 세상을 떠나고 스탈린이 새로운 소련의 지배자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은 새로운 착취 계급의 등장에 불과한 쇼로 전락하고 말았다.

 흑백 논리와 금지 사항으로 가득 찬 세상. <동물농장>의 세상은 그래서 답답하고 기계적이며, 획일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적'과 '친구'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계명으로 인해 동물농장은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는 흑백 논리적 사고가 지배하는 전체주의적 사회가 되고 만다.

 

 

 

 

 "저 털 없는 괴물들을 조심해야 한다!"

 

 

 

 

 

 

 

 

 

 

 

 

 

 

 

 

 

 오웰의 <동물농장>은 인간이 만들어 낸 이분법적 흑백 논리에 지배당한 사회의 문제점을 동물이 사는 동물농장으로 우화적으로 표현한 소설로 잘 알려졌지만 오웰이 사용한 표현 방식은 <동물농장>이 처음으로 출판한지 정확히 98년 전에 독일의 시인이 이미 사용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아타 트롤, 한 여름 밤의 꿈>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풍자 서사시다. 이 작품은 1847년에 발표되었고 98년 후에 오웰의 <동물농장>이 발표되었다.

 작품 제목 속 '아타 트롤'은 서사시에 등장하는 주인공 곰의 이름이다. 아타 트롤은 자신의 애인인 뭄마와 함께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묘기 곰으로 살고 있었는데 주인의 착취를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자신의 발에 묶인 사슬을 끊은 채 탈출한다. 그 이후부터 아타 트롤은 인간을 적대시하고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그런 아타 트롤의 생각은 작품 속 5장에서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도 인간을 적대시하는 흑백 논리가 아타 트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들아, 왜 너희들이 우리 다른 동물보다
 더 우월하단 말이냐?
너희들이 머리를
 똑바로 치켜들고 있기는 하지, 그러나 머릿속에는
 비천한 생각들이 기어 다니고 있는데, 뭐.

 

 (중략)

 

 인간들아, 두 발 달린 뱀들아.
 왜 너희들이 바지를 입는지
 나는 잘 안다! 다른 동물의 털로
 나희들 뱀의 나체를 감추려는 것이지.

 
 얘들아! 저 털 없는 괴물들을
 조심해야 한다!
 내 딸들아! 바지를 입은
 비동물적 짐승을 믿지 마라! 

 

 ('아타 트롤, 한 여름 밤의 꿈' 제5장 중에서, <독일, 어느 겨울동화> 시공사, pp 192)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타 트롤은 신체는 곰이면서도 사고와 생각은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들의 입장과 별 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동물농장>에 언급되는 계명 속의 내용과 유사하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오웰의 <동물농장>과 관련해서 더 재미있는 사실은 하이네 역시 진보적인 입장을 지녔으며 한 때 마르크스와 친분적 교류를 맺기도 했다. 하지만 하이네는 이 작품을 집필하고 있었던 당시에 대두되기 시작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하이네는 항상 자신의 진보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보수주의자들을 풍자하는 작품들을 남겼는데 <아타 트롤>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을 풍자, 비판하는 내용이 암시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등장하는 동명의 주인공인 곰의 일대기를 통해서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들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아타 트롤이 생각하는 동물사회의 평등 사상은 19세기 중반, 급진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각했던 사유 재산 제도의 철폐 요구를 뜻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사유 재산을 철폐함으로써 모든 인간들이 공정한 부의 분배를 통해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하이네는 <아타 트롤>을 통해서 이들의 과격하고 비현실적인 이념의 입장을 풍자, 비판하고 있다. 불평등한 사회를 조장하는 적을 '귀족 세력'으로 간주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구 세력과의 타협을 하고 마는, 뚜렷한 목적도 없는 추상적인 이념에 사로잡힌 독일의 진보 세력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흑백 논리의 위험성  

 

 

 

 

"나라를 망치는 좌파는 빨갱이, 북한으로 가라!"

보수 언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극우주의자들의 편향된 사고방식이다.

 

 

 

 19세기 중반의 하이네에서부터 20세기 초의 오웰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의 '박원순 폭행녀'까지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흑백 논리의 힘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지금도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여전히 '남과 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 낸 흑백 논리의 영향력이 남아 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거나 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을 지니게 되면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빨갱이' 또는 '북한으로 가라!'고 말한다.

 소련이 붕괴되었고 독일이 통일된 지 10여 년이 지났건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냉전이 팽배하던 1970년대에 만들어진 반공주의적 사고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박원순 폭행녀처럼 진보 세력을 무조건 '빨갱이' 또는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분법과 흑백 논리는 상대방을 악으로 몰고 자신을 지고지선의 존재로 자처한다. 그와 동시에 제3자에게 악의 세력과 야합할지, 착한 우리 진영에 협조할지를 다그친다. 이분법은 상황을 단도직입적으로 구분하니 속 시원하게 다가온다. 선과 악, 친구와 적, 천사와 악마, 상식과 몰상식, 양심과 비양심으로 나누니 '내 편'과 '네 편'이 분명해진다. 이해가 쉽고 헷갈리지 않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다.

 모든 것을 양극단으로 나누다보면 중립, 중간지대가 없다. 시장경제 아니면 좌파이고 좌파는 빨갱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사이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중도는 부정된다. 따라서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는 사고의 유연함을 잃는다.  

 흑과 백 사이에 드넓은 회색지대가 있어야 현실의 복잡함을 감당할 수 있다. 좌파적 편견, 우파적 아집 하나로는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끌고 가지 못한다. 이분법과 흑백 논리라는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이념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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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0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과 악, 좌와 우' '천사와 악마'라는 상대적인 용어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이다'라는 넓.은. 의.미.의 정.치.적.인 용어로 조선에 들어오게 된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조선에 없는 말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용어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해주신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이러한 이분법을 중.화.시킬 수있는 그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cyrus 2012-01-09 19:33   좋아요 0 | URL
저는 그 날 방송을 보면서 안타깝기보다는 무서웠어요.
아직도 TV 속 여자가 인터뷰에서 하는 말이 생각나요. 그 사람도
천사와 악마, 선과 악을 언급하면서까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있더군요.

감은빛 2012-01-10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빨갱이'인 제 입장에서 보면, 정동영 의원이나 박원순 시장은 그닥 좌파도 아니고 절대 빨갱이라고 얘기할 수 없는데 말이죠.(고 김근태 선생은 조금 다릅니다.)

언제 시루스님과 술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아직 진정한 의미의 새해(설)이 되지 않았으니,
늦었다는 말은 쓰지 않을게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