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타그뤼엘 제5서
프랑수아 라블레 지음, 권국진 옮김 / 신아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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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팡타그뤼엘 제5서》가 번역돼 나왔다. 이 작품은 1979년 을유문화사에서 번역본이 나온 뒤 오랫동안 절판됐다. 라블레의 대표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작자 미상의 대중소설 ‘가르강튀아 대연대기’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라블레는 1532년에 ‘팡타그뤼엘’을, 1534년에 ‘가르강튀아’를 발표했는데, 이 두 작품을 합본한 책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이라는 익숙한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거인국의 왕 팡타그뤼엘(Pantagruel)과 그의 아버지 가르강튀아(Gargantua)의 행적을 다룬 연대기 형식의 소설이다. 거인 부자는 음식을 실컷 먹고, 술을 벌컥 마시고, 실없는 대화를 하는 등 소란스러우면서도 유쾌하게 살아간다. 지상의 기쁨을 누리는 데 여념이 없는 거인들의 우스꽝스러운 행보는 금욕적이고 천상의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던 중세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팡타그뤼엘’과 ‘가르강튀아’는 외설스럽고 반종교적인 작품으로 낙인찍혔지만, 그때는 중세의 낡은 관행들을 뚫고 근대 세계가 서서히 움트던 시대였다. 대중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희망이 담긴 라블레의 소설을 좋아했다.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라블레는 1546년에 《팡타그뤼엘 제3서》, 1552년에 《팡타그뤼엘 제4서》를 발표한다. 라블레는 1553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1564년에 저자명이 라블레로 되어 있는 책이 나온다. 그 책의 제목은 ‘선량한 팡타그뤼엘의 영웅적 언행록에 관한 다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 책’이다. 이 책이 바로 《팡타그뤼엘 제5서》이다. 라블레가 쓴 거인 연대기는 총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어째서 《제5서》가 전작들과 비교해 많이 주목받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그동안 《제5서》가 ‘위작’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재 《제5서》와 관련된 판본으로 확인된 책은 총 세 권이다. 세 권 모두 라블레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왔다. 세 권의 판본을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1562년에 ‘종이 울리는 섬’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왔고, 1564년에 결정판인 《제5서》가 나왔다. 나머지 판본은 연대 미상의 필사본이다. 이 필사본은 라블레 사후에 활동한 무명작가가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5서》의 진위에 대한 학자들의 논점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제5서》는 라블레가 쓴 작품이 맞다. 두 번째, 라블레가 《제5서》를 쓰는 도중에 세상을 떠난 바람에 《제5서》는 미완성된 작품이 된다. 그러나 라블레의 필체를 잘 이해하고 있고, 종교개혁 정신을 가진 무명작가가 소설을 완성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약간의 가필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세 번째, 전작과 너무나 다른 문체로 봐서는 《제5서》는 위작이다. 세 번째 입장은 오랫동안 《제5서》를 설명할 때 꼭 거론되었고, 다수의 학자에게 지지받아왔다. 이렇다 보니 《제5서》는 읽을 가치도, 연구할 가치도 없는 작품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5서》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가 달라진다. 《제5서》가 라블레의 초고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위작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제5서》는 《제3서》와 《제4서》의 주인공이자 팡타그뤼엘의 친구인 파뉘르주(Panurge)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술병 신(神)의 신탁을 받으러 항해하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당연히 이 책도 기존에 나온 전작처럼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대화가 전개되고, 인물들은 기이한 섬에 당도하면서 황당한 소동에 휘말린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섬 주민들은 ‘새 인간’에 가까운 모습인데, 권력을 남용한 종교인들을 풍자하는 알레고리(allegory)로 볼 수 있다.

 

《제5서》에는 전작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칼리그램(calligram, 상형 시)이다. 칼리그램이란 ‘글자로 만든 그림’을 뜻한다. 라블레가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제5서》를 가필한 무명작가가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독특한 글임은 분명하다. 《제5서》 44장에 ‘에필레미’라는 노랫말이 술병 형태의 그림 안에 들어 있다. 에필레미는 포도를 수확할 때 주신 바쿠스(Bacchus)를 찬양하면서 부르는 익살스러운 노래를 말한다.

 

 

 

 

 

 

“오, 신비로 가득 찬 술병 신이여,

난 한쪽 귀로도 그대의 목소리를

듣겠나이다. 당장에, 내 마음이 간구

하는 말을 베풀어주소서. 이처럼

거룩한 성수(聖水)에 인도를 정복한 바커스를 모든 진실을 간직하도다. 성스러운 신주(神酒)여, 그대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시오. 모든 허위와 모든 기만은 노아의 시대에는 극도의 기쁨이 되지만 그대가 그 비법을 우리에게 베푸나이다. 원하건대, 내 고통을 삭혀주는 아름다운 말을 베풀어주소서.

                 이처럼 한 방울도 잃어버리지 않게 하겠나이다.

                                흰 것이나 붉은 것이나 모두.

오, 신비로 가득 찬 술병 신이여,

난 한쪽 귀로도 그대의 목소리를

듣겠나이다. 당장에.”

 

 

(권국진 옮김, 212~213쪽)

 

 

 

그런데 《제5서》의 역자는 《제5서》의 실제 판본에 실린 칼리그램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제5서》가 번역되기 한참 전에 유석호 연세대 불문과 교수는 자신의 라블레 연구서에 《제5서》의 칼리그램을 언급한 적이 있다.[주] 책 14쪽 역주에 ‘호메르스’라는 이상한 단어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호메로스(Homeros)의 오자이다.

 

 

 

[주] 유석호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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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슬 2024-12-30 2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을유문화사판 《제 5서》에도 에필레미를 번역했지, 칼리그램이란 언급은 없습니다.
권국진 역이 2019년에 나왔는데도 2016년에 유석호가 언급한 칼리그램 설명이 빠진 걸 보면, 무얼 참고했는지 감이 오네요.
을유문화사판 번역은 이렇습니다.

오, 신비에
넘치는
술병 신이여
나는 한쪽 귀로도
그대의 소리를 듣는다.
당장에
나의 마음이 의지할
말을 내리라.
이처럼 거룩한 성수(聖水)에
인도를 정복한
박쿠스는
모든 진실을
간직하도다.
성스러운 신주(神酒)여
그대보다 멀리
  떨어져 있으라
모든 허위,
  모든 기만(欺瞞)은.
노아의 심령(心靈)은
  기쁨에 싸이나
그 비법(秘法)을 그대는
  우리에게 베풀도다.
염원컨대
  나의 괴로움을 제거하는
아름다운 말을
  내리소서.
이처럼 귀한 것이라면
  한 방울도 헛되게 하지 않으리
희고 붉은 것도 모두.
오, 신비에
  넘치는
성스러운
  술병이여,
나는,
  한쪽 귀로도
그대 소리 듣겠노라,
  당장에.

(민희식 옮김, 814~815쪽)

cyrus 2024-12-25 23:00   좋아요 0 | URL
을유문화사 <제5서>가 상당히 오래된 책이고 절판본이라서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서점극장 라블레>라는 세계문학 전문 책방에 있는 을유문화사 <제5서>를 본 적이 있어요.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서 그 자리에 읽지 못했는데, 다음에 그곳에 가면 시간을 내서 읽어봐야겠어요. 제가 몰랐던 내용을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7월 22일 월요일

세 번째 강의. 퀴어와 장애의 교차

 

 

 

 

 

[레드스타킹 페미 스쿨] https://cafe.naver.com/redstocking

 

 

 

‘병리화’는 참으로 생소한 단어입니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단어이기도 해요. 예전에 책을 읽다가 ‘병리화’라는 단어를 몇 번 보곤 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전혜은 선생님은 병리화의 정의를 ‘정상성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기제’라고 말했습니다.

 

정상성을 생산하고 강조하는 병리화는 건강을 ‘정상’으로, 질병과 장애를 ‘비정상’으로 구분 짓게 만듭니다. 건강한 몸이 정상성의 기준이 되는 순간, 아픈 몸과 장애인의 몸은 각각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몸’, ‘결핍된 몸’으로 취급받습니다. 병리화는 환자와 장애인을 ‘불행의 아이콘’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병리화는 그들에 대한 결함, 오류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하는 혐오를 재생산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병리화, 즉 정상성을 해체하는 작업은 결국 ‘정상적인 몸’과 ‘병리적인 몸’을 구분하게 만드는 위계 체계를 비판하는 일입니다.

 

‘병리적인 몸’으로 규정된 몸은 그 몸의 실제 경험과 관련 있는 섹슈얼리티도 병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리화된 장애 여성은 섹슈얼리티를 탐색하고 실험할 계기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혜은 선생님이 번역한 앨리슨 케이퍼(Alison Kafer)의 글 『욕망과 혐오: 추종주의 안에서 내가 겪은 양가적 모험』은 일종의 금기가 되어버린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앨리슨 케이퍼는 장애학과 퀴어를 연구하는 여성학자이며 장애인입니다. 이 글의 제목에 나오는 추종주의“신체 절단 장애 여성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비장애인은 추종주의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된 순간 “뭐야? 이상해. 변태 아니야?”라는 반응할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케이퍼는 추종주의자를 ‘변태’라고 규정하는 반응을 의심합니다. 만약 절단 장애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을 ‘병리화’하여 부정하게 된다면, 절단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마저도 부정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장애 여성은 무성적 존재로 간주되고 맙니다. 케이퍼는 절단 장애 여성들의 동의 없이 그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공개하고, 심지어 스토킹하는 일부 추종주의자들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추종주의자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가 절단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케이퍼는 이 『욕망과 혐오』라는 글에서 추종주의에 대한 자신의 양가적 반응을 솔직하게 밝힙니다. 그녀는 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추종주의와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으로 비유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비유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유래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아시아를 정복하려는 알렉산더(Alexandros) 대왕은 이 매듭을 푸는 대신에 칼로 매듭을 잘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케이퍼는 추종주의라는 매듭을 자르지 않습니다. 추종주의에 대한 양가적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천천히 매듭을 풀어나갑니다.

 

만약 제가 케이퍼의 글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추종주의를 알게 되었다면, 저는 알렉산더 대왕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추종주의는 장애 여성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거야. 그건 문제가 있어’라고 부정적으로 단정 지었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떤 복잡한 문제를 단순 명쾌하게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린 저 알렉산더 대왕처럼 말이죠. 하지만 케이퍼가 생각했듯이 추종주의가 얽힌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아주 복잡하며,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쉴라 제프리스 《코르셋》 (열다북스, 2018)

 

 

 

사실 제가 추종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도록 영향을 준 책이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코르셋》(열다북스)입니다. 트랜스 여성을 배제하는 제프리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남성의 눈요기를 위해 여성의 몸이 훼손되는 행위(SM, 피어싱)‘유해 문화’라고 보는 입장에 일부 동의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케이퍼의 글을 읽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절단된 몸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마저 ‘유해 문화’로 단순하게 규정해버린다면 추종주의도 유해 문화가 되고, 절단한 몸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병리적인 욕망’으로 남게 됩니다. 결국 신체 절단 행위를 비판하는 제프리스의 주장은 ‘목욕물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오류를 피하지 못합니다.

 

 

 

 

 

 

 

 

 

 

 

 

 

 

 

 

 

* 전혜은, 루인, 도균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여/성이론 통권 제39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

 

 

 

 

서로 상반된 입장으로 나누어지는 페미니즘 논제에 접근할 때 알렉산더 대왕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되지 않으려면 양쪽 입장 중에 한쪽을 선택해서 (그 입장이 옳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양쪽 손을 동시에 잡아’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고민하는 방식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공부 방식이 혜은 선생님이 말한 ‘교차성을 사유하기 위한 기본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후기를 빌어서 케이퍼의 글을 번역하신 혜은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번역한 케이퍼의 글 일부는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 수록된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기』(글쓴이: 전혜은)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전문은 《여/성이론》 제3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페미 스쿨 커리큘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케이퍼의 글을 꼭 읽어보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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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 동대구역점 오픈

 

 

 

지난달에 알라딘 중고서점 동대구역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대구 동성로점, 대구 상인점에 이어 대구에서 세 번째로 들어선 알라딘 중고서점입니다. 대구에 있는 중고서점은 총 네 곳입니다. 나머지 한 곳은 ‘Yes24 반월당점’입니다. 대구도 알라딘 중고서점과 Yes24 중고서점이 있는 지역이 되었네요. 중고서점 개장 소식을 접하면 양가적인 감정이 듭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사는 지역에 중고서점이 하나 더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지갑의 두께가 얇아지더라도 제가 원하는 책이 서점에 있으면 무조건 가서 살 의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고서점이 늘어나면 헌책방과 동네 책방의 입지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헌책방을 찾는 단골손님 대부분은 연세가 많은 분입니다. 그분들의 건강이 점점 좋지 않게 되면 외출을 하지 못할 것이고, 헌책방에 가는 일도 줄어들겠죠. 그리고 헌책방을 오래 운영하신 분들도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힘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제가 자주 가는 헌책방 중에 두 곳은 문을 닫았어요. 손님이 너무 없다 보니 주말에 문을 열지 않는 헌책방도 있어요.

 

동대구역점 후기를 쓸려고 했는데, 헌책방이 사라지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으면서 시작했네요. 각설하고 동대구역점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제가 동성로점 후기 이벤트에 참여해서 ‘우수 후기’에 당첨되었고요, 상인점 후기 이벤트에서는 ‘최우수 후기’에 당첨되었어요. 당연히 이 후기를 쓴 목표는 2회 연속 ‘최우수 후기’로 당첨되는 것입니다. 최우수 후기로 당첨될 수 있는 참신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을 해봤는데요, 남들이 쓰지 않는 방식으로 후기를 써봤습니다. 그리고 중고서점을 자주 애용했던 사람으로서 이번에 새로 생긴 동대구역점에 대해서 소신을 밝혔습니다.

 

 

 

 

 

 

 

서점 내부 모습을 담은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어요. 지난주 토요일에 동대구역점에 갔는데요, 역시 휴일이라서 그런지 서점에 온 손님들이 꽤 많았어요. 그래서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가 없었어요. 손님들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어요.

 

새로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서점이라서 그런지 내부 공간은 비교적 넓은 편이었어요. 하지만 알라딘 굿즈 진열대가 하나둘씩 늘어나면 점점 공간이 좁아지겠죠?

 

 

 

 

 

 

G(소설, 에세이, 여행) 책장에서 찍은 내부 모습입니다. 벽 쪽에 있는 D 책장음반, 만화, 라이트노벨 등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기다란 통로를 따라 끝까지 가면 외국도서로 채워진 D 책장을 볼 수 있습니다.

 

 

 

 

 

 

 

사고 싶은 책을 담을 수 있는 스테인리스강 바구니는 검색용 컴퓨터 책상 밑에 있어요. 동성로점과 상인점에 많이 가본 저는 바구니가 출입구 주변에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대구역점에 들어오면서 한동안 바구니를 찾아 헤맸답니다. 동대구역점에 처음 오신 분은 바구니의 위치를 기억해두세요.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는 성인용, 아동용으로 나누어져 있어요. 성인용 책상과 의자는 다른 서점(동성로점, 상인점)에 있는 것과 거의 비슷해요. 책상 위에 휴대폰, 노트북 충전기, USB 등을 꽂을 수 있는 콘센트가 있습니다. 아동용 책상은 의자에 앉은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비스듬한 형태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책상 위에 스케치북과 물감을 놓여 있네요. 책을 덜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면 이 자리를 좋아하겠어요. 물론 성인용 책상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리가 있어요.

 

 

 

 

 

 

 

B 책장(청소년, 부모, 어린이)과 C 책장(유아) 주변 공간이 다른 책장이 있는 공간과 비교하면 넓어요. 서점에는 적어도 손님들이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쾌적한 공간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런 공간을 가만히 놔둘 알라딘이 아니죠. 손님들 지나가는 공간 한가운데에 알라딘 굿즈 진열대를 놓던데요, 저는 진열대를 자꾸만 들여놓으려는 알라딘의 공간 배치 방식이 손님 친화적인 공간과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요. 손님들의 눈길을 끌도록 상품을 진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님들의 쾌적한 보행이 가능하도록 공간을 조성하고 잘 유지해주었으면 합니다.

 

 

 

 

 

 

 

A 책장이 있는 곳에 가면, ‘알라디너의 선택’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책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알라디너들로부터 높은 평점이 받은 책들이 꽂혀 있어요. 막연하게 책장에 ‘알라디너의 선택’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책을 진열하기보다는 ‘특정 알라디너의 닉네임’을 언급하면서 그분들이 직접 추천한 책들 위주로 책장을 마련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로쟈의 선택’, ‘다락방의 선택’, ‘syo의 선택’, 이런 식으로 말이죠. 조유식 대표이사님!(이 글을 보진 않겠지만‥…) 알라디너가 ‘온라인 알라딘’과 ‘알라딘 서점’을 지금까지 유지하게 만든 열혈 구매층이고 팬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역시 새로 생긴 서점이라서 그런지 제가 사고 싶은 책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요즘 책 소비를 자제하고 있는 중이라서 지름신을 막느라 참고 또 참았습니다. 책장 하나하나 둘러보다가 ‘절대로 사면 안 되는 책’도 만납니다.

 

 

 

 

 

 

 

 

G37 책장 제일 아래쪽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소설 전집《우울과 몽상》이 꽂혀 있네요. 가격은 12,000원입니다. 정가(28,000원)의 반값에 2,000원 할인된 가격입니다. 책 상태는 좋아요. 그러나 안사는 게 좋아요. 번역이 정말 구리거든요.

 

 

 

 

 

 

 

G37 책장 제일 아래쪽에 절판된 《주석이 달린 앨리스》가 있어요. 책 겉모습만 보면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죠. 하지만 이 책의 번역도 그다지 좋지 않아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책입니다.

 

서점 후기에 ‘절대로 사면 안 되는 책’을 언급하니까 마치 제가 알라딘 영업을 방해하는 손님 같네요. 그런데 저는 예전부터 이런 후기를 한 번쯤 써보고 싶어요. 저의 오랜 소원을 이루게 해준 알라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동대구역 안 생겼으면 이런 솔직한 후기를 못 썼을 거예요.

 

 

 

 

 

 

 

 

 

 

개점한 지 얼마 안 된 서점인데 책을 안사고 그냥 갈 수 없었어요. 언젠가는 읽게 될 책들을 골랐어요.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다음 글에서 밝히겠습니다.

 

 

 

 

 

아! 깜빡 잊을 뻔했네. ‘알라딘 중고서점 검색기’ 어플에 ‘동대구역점’을 추가해주세요. 서점이 문을 연지 한 달이나 지났는데 왜 어플 업데이트를 안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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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7-3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라딘 서점 거의 안 가는데, 그 이유가 말이 중고서적이지 그냥 현재 유통되는 책이 대부분이에요. 사실, 헌책방 단골들이 헌책방 가는 이유는 절판된 책들을 구입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런 책은 거의 없고, 덤핑으로 창고에 박힌 책들만 쌓아놓고 파니....

cyrus 2019-07-31 17:25   좋아요 0 | URL
헌책방과 알라딘 중고서점에 각각 장단점이 있어요. 헌책방이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의 절판본이 있는 곳이라면, 알라딘 중고서점은 90년대 중반 이후의 절판본이 있는 곳이에요. 곰발님이 말씀하신 대로 알라딘 중고서점에 있는 책들 대부분은 팔리지 못해 출판사 창고에 있던 것들이죠.

레삭매냐 2019-07-30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 후기가 깔금하네요.

날카로운 지적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
까지~ 모름지기 이런 후기를 써야 하는
데 너무 천편일률적인 후기로 도전했
다가 물 먹었나 봅니다 ㅋㅋㅋ

하나의 트렌드로 보이는데 일단 새로운
곳 매장이 오픈하면 집중적으로 갠춘한
책들을 몰아 주지 않나 싶네요 :>

사지 말아야 할 책에 대한 정보도 인상
적이었습니다 쵝오.

cyrus 2019-07-31 17:29   좋아요 0 | URL
저는 후기든 리뷰든 눈으로 보거나 직접 만진 것들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솔직하게 쓰는 편입니다. 대부분 리뷰나 후기는 장점만 언급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요.

저도 대구 알라딘 서점 세 곳을 가보면서 느낀 건데, 개장 초기에 제가 읽을 만한 책을 많이 샀던 것 같습니다. ^^

stella.K 2019-07-3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누구의 선택 같은 디테일한 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중고샵을 찾을 정도라면 책에 대한 애정, 정보 등은 이미 장착하고 있고
그렇게까지 특화할 필요는 없어 보이거든.
하지만 너처럼 번역이 구린 걸 색출해 내는 알라디너의 특별한 시선을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정보는 정말 필요하거든.
난 중고샵 안 나간지가 꽤 된다.
몸이 안 좋아서 아끼고 있는 중이거든. 보니까 나가고 싶네.ㅠ

헌책방이 점점 설 자리가 없는 건 정말 안타까워.ㅠ

cyrus 2019-07-31 17:33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중고서점에 있는 책들을 리뷰해볼까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중고서점에 가보면 ‘정말 내용은 좋은데 팔리지 못한 책’과 ‘내용이 별로라서 사기 아까운 책’을 보게 돼요. 저는 후자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었어요. ^^

박균호 2019-07-30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석달린 앨리스가 번역이 구렸군요. 장정이나 디자인은 정말 좋은 책인데...

cyrus 2019-07-31 17: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구성은 정말 좋은데, 번역이 ‘옥에 티’입니다. ^^;;

나와같다면 2019-07-30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yes24 중고서점 생긴다는 기사 보고 cyrus님 생각났어요.

동네 헌 책방보면 마음이 짠하지요. 저도 그래요..

cyrus 2019-07-31 17:38   좋아요 0 | URL
만약에 헌책방이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면 90년대 이전에 나온 책들을 접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헌책방이 문 닫아버리면 거기에 있던 책들은 다른 헌책방에 이전하게 되거나 아니면 폐지로 분류되어 처분됩니다.

카스피 2019-07-3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헌책방을 찾아 대구를 간 기억이 나는데 서울과 마찬가지로 대구역시 기존의 헌책방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문을 닫게 되어 참 안타깝네요.

cyrus 2019-07-31 17:44   좋아요 0 | URL
주말에 자주 헌책방에 가는데, 문이 닫힌 헌책방의 모습만 보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

syo 2019-07-3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다락방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간 취급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연료는 칼국수로 드리겠습니다.

????

cyrus 2019-08-01 09:13   좋아요 0 | URL
서문시장에 파는 칼국수를 먹고 싶습니다! ^^

syo 2019-08-01 11:15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그럼? 저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잘 되었네요.
 

 

 

 

 

 

 

 

작년이었어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의 말을 했었죠.

 

 

“신체 장애인들보다도 더 한심한 사람들은…‥ 아,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더 우리가 그 깊이 생각해야 될 사람들은 정신 장애인입니다. 정치권에서는 말 하는 것 보면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 장애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까지 우리가 포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처]

 

 

이 대표가 ‘정신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정신 장애인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구분 지어서 정치인을 비판하는 발언이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 장애인을 ‘포용하기 쉽지 않은 존재’로 규정한 이 대표의 생각은 장애인을 배제하는 인식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두 달 전에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로 비유했습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의 행보(자기 생각과 다른 국민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모습)가 문제 있다면 의학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비판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발언을 놓고 정치권에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만, 그녀의 발언을 두둔하는 네티즌들도 있었습니다.

 

이 대표와 김 의원은 각각 장애인과 환자를 ‘정상과 거리가 먼 사람’, ‘무능력한 사람’과 같은 의미로 설정하여 정치인을 비판했습니다. 두 사람의 발언은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인과 만성 질환 환자를 ‘병리화(pathologizing)하여 그들의 비정상성, 결함, 오류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하는 ‘장애 혐오’를 재생산하게 만듭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진행된 페미니즘 스쿨 세 번째 강의 주제 중 하나가 ‘병리화’였습니다. 병리화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이 단어를 종종 보곤 합니다만, 이게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전혜은 선생님은 병리화의 의미를 아주 쉽게 설명했습니다. ‘정상성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기제’라고요.

 

과거에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습니다. 1990년에 동성애를 질병 분류 목록에 제외됐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람은 여전히 동성애를 ‘정신 질환’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은 동성애를 질병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성애 혐오를 부추깁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내민 구원의 손길을 받은 동성애자는 탈동성애자로 ‘치유’될 수 있다면서 ‘전환치료’를 주장합니다. 동성애자를 질병으로 병리화하게 되면 헤테로섹슈얼(heterosexual: 이성애)이 ‘정상적인 섹슈얼리티’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동성애는 ‘비정상적인 사랑’으로 낙인찍히는 거죠. 장애 문제를 병리화하는 것은 성소수자 배제의 논리와 비슷합니다.

 

 

 

 

 

 

 

 

 

 

 

 

 

 

 

 

 

 

* 조한진희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동녘, 2019)

 

 

 

 

정상성을 강조하는 병리화는 건강과 질병을 각각 ‘정상 대 비정상’으로 구분 짓게 만듭니다. 건강한 몸이 정상성의 기준이 되면, 아픈 몸은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면 일어날 수 있는’ 몸으로 취급받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지속되면 우리는 질병 문제의 원인을 사회가 아닌 개인에서 찾게 됩니다. 그리고 병리화는 환자를 ‘불행의 아이콘’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라는 부제가 달린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동녘)는 건강이 ‘성공적인 자기 관리’의 기준이 된 사회를 되돌아보게 만든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아픈 몸에 대한 혐오에서 벗어나는 삶의 방식을 제안합니다. 몸이 아픈 것이 곧 불행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며, 아픈 사람은 그 불행을 극복할 힘을 가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피터 콘래드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 (후마니타스, 2018)

 

 

 

오늘날 우리 사회와 문화는 정상, 건강에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 사람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기준을 내세운다는 명분상의 우위를 점하면서 자신과 타자를 구분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타자에게 무언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상성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비정상성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치료적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인간의 유형, 습관, 행동, 특성, 성향들을 ‘병리화’하여 수많은 진단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후마니타스)는 기존에는 질병으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들이 치료받아야 하는 의학적 문제로 규정 받는 ‘의료화(medicalization) 현상을 다룬 책입니다. 과잉 병리화와 과잉 의료화를 별다른 생각 없이 수용하게 되면, 장애인과 환자, 성소수자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남아 비인간화됩니다. 병리화는 타자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사회적 소수자 개인의 삶을 제대로 보고, 각각 개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그/그녀들을 타자화하지 않게 만듭니다.

 

 

 

 

[출처] [이해찬, 장애인 앞에서 ‘장애 비하’ 발언 논란] (프레시안, 2018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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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9-07-25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 때 아프다고 할 때마다 안 받아들여지거나 심하게 혼나기도 해서 ‘아픈 것‘ 자체가 나쁜 줄 알고 아파도 참고, 친구들이 아파서 학교를 조퇴하거나 양호실을 가면 그래도 되나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픈 건 나쁘기 때문에 어떤 사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못‘ 했거든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니 아니더라구요. 누구나 아플 수 있고, 아픈 건 당연하고, 아프면 쉬어야 하고 그렇더라구요. 아픈 것 역시 정상인거죠. 사실 정상, 비정상 개념 자체가 무섭긴 하지만요. 지구에 사는 생명체가 얼마나 다양하고 얼마나 많은데, 그 각각의 존재 자체가 다 특별하고 다름을 어떻게 한 두가지 잣대로 범주화 할 수 있을까요.

cyrus 2019-07-27 10:35   좋아요 0 | URL
아픈 몸은 ‘노동을 할 수 없는 몸’, ‘나태한 몸’으로 연상되기 때문에 부정적 낙인으로 찍히기 쉬워요. 그래서 여전히 사람들은 조퇴, 결근, 생리 공결, 출산 휴가 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죠. 아프다는 핑계를 내세워 일을 적게 하면서 임금을 받는다는 이유로 말이에요. 정말 비양심적인 사람들도 있긴 해요. 하지만 그런 이유만 가지고 휴식 차원에서 일을 쉬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9-07-25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학이 발달하면서 개인은 몸의 주체성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나처럼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9-07-27 10:38   좋아요 1 | URL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의사들이 ‘질병’으로 분류하게 되고, 여기에 제약 회사들이 가세해서 약을 만들어 팔아요. 이런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되면서 아픈 사람들은 병원 치료나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됩니다.

Conan 2019-07-27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주째 몸이 아파서 치료를 받으며 휴가와 복귀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 스스로에대한 무력감과 동료에대한 죄의식이 생기더군요... 주변의 부정적 인식도 있구요...

cyrus 2019-07-29 16:46   좋아요 1 | URL
Conan님이 느낀 그 심정, 저도 이해합니다. 우리나라는 만성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작업 환경과 근로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몸이 아프면 무조건 일을 그만두어야 하죠. ㅠㅠ

2019-07-27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9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9 1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플갱어의 섬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4
에도가와 란포 지음, 채숙향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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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MC이상(약칭 ‘이상’): 안녕하세요. ‘이상한 책’의 이상한 진행자 MC이상입니다. 여러분들을 위해 무더위를 식혀줄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올여름 피서지 대신에 으스스하고 기괴한 섬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바로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의 소설 《도플갱어의 섬》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깐깐하게 책을 읽는 것으로 유명한 깐죽 아니, ‘깐독의 달인’ 사이러스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사이러스(약칭 ‘사이’): 안녕하세요. 사이러스입니다. 방금 저를 소개하면서 ‘깐죽’이라고 말씀하신 거 같은데, 사실 소설에 대해서 깐죽거릴 게 많아요.

 

 

이상: 네, 선생님. 벌써 긴장되기 시작하는데요. 《도플갱어의 섬》이 어떤 소설인지 먼저 소개해주신 다음에 선생님만의 날카로운 의견을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사이: 《도플갱어의 섬》은 1927년에 발표된 소설입니다. 원제는 ‘파노라마 섬 기담(パノラマ島綺譚)입니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 번역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에도가와 란포’는 필명입니다. 란포의 본명은 히라이 다로(平井太郎)입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에서 따온 것이죠. 란포는 서양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아 여러 편의 추리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추리소설 발전과 보급에 앞장을 섰던 작가입니다. 그래서 그를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도플갱어의 섬》은 ‘도서(倒叙)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도서’란 시간의 흐름을 역순으로 전개하는 서술 방식을 뜻합니다. 영화 용어로 많이 쓰이는 ‘플래시백(flashback)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을 먼저 밝힌 다음에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보여주는 방식이죠. 그러면 도서 미스터리가 어떤 장르인지 이해가 되죠? 독자는 처음부터 범인이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범인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발단과 그 과정을 지켜보죠. 여기까지만 보면 완전 범죄가 됩니다. 그러나 탐정이 등장하면서 완전 범죄로 남을 뻔한 범행이 탄로 나게 되면서 사건이 해결됩니다. 《도플갱어의 섬》에 나오는 범인은 ‘극단적인 몽상가’인 히토미 히로스케입니다. 히로스케는 자신의 이상향인 ‘파노라마 섬’을 만들기 위해 아주 대담하면서도 치밀한 전략을 실행합니다. 자신을 자살로 위장하여 ‘히토미 히로스케’에 관한 모든 삶의 흔적들을 모조리 지웁니다. 그런 다음 자신과 닮았지만, 이미 망자가 된 고모다 겐자부로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히로스케는 매장된 고모다가 죽다 살아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고모다가 되어 혼신의 연기를 펼칩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서 히로스케는 완벽하게 고모다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모다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아 그 돈으로 본격적으로 파노라마 섬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파노라마 섬은 현실 세계와 다른 곳입니다. 그곳은 거대한 기계가 환상적인 자연경관을 연출하고 있는 섬입니다. 파노라마 섬이 얼마나 기괴한지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직접 봐야 합니다.

 

 

이상: 란포가 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미스터리 소설인 《도플갱어의 섬》도 포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 볼 수 있을까요?

 

 

사이: 네, 그럼요. 현실과 완전히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려는 주인공의 모습은 포의 단편소설 『애른하임의 영토』에 나오는 주인공과 비슷합니다. 둘 다 몽상가이고, 그들이 세우려고 하는 이상향은 오로지 자신들을 위한 안식처이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의 이상향은 헛된 꿈으로 보이겠지만, 몽상가들은 이상향에서 사는 일이 현실이며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세는 꿈, 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란포의 좌우명이 어쩌면 몽상가들이 좋아할 만한 말일 수 있겠군요. 그리고 몽상가들은 자신을 ‘몽상가’라고 스스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눈썰미가 좋은 독자라면 ‘포를 위한 오마주(hommage)로 볼 수 있는 소설 속 장면들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이상: 포를 위한 오마주라니! 흥미로운데요. 어떤 장면인가요?

 

 

사이: 히로스케가 매장된 고모다의 시체를 파헤치기 전에 ‘가사(假死) 매장’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히로스케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매장된 사례를 잘 알고 있는데요, 이때 히로스케의 범행을 관찰하듯이 서술하고 있는 화자는 포의 단편소설 『때 이른 매장』을 언급합니다. 아마도 이 이름없는 화자의 정체는 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작가일 것입니다. 고모다의 아내 치요코는 남편 행세를 하는 히로스케를 의심합니다. 결국 히로스케는 자신의 정체를 안 치요코를 죽입니다. 그는 치요코의 시체를 콘크리트 기둥 안에 숨깁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포의 대표작 『검은 고양이』가 생각났어요. 이 단편소설에 나오는 남편도 아내를 죽이고 맙니다. 그도 아내의 시체를 지하실 한쪽 벽 속에 숨깁니다. 이 남편과 히로스케는 시체를 완벽히 숨겼다고 확신하지만, 아주 사소한 실수로 인해 범행 사실이 발각됩니다. MC 양반, 히로스케가 치요코를 죽인 다음에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이상: 글쎄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사이: 책을 제대로 안 읽었구먼. 책을 펼쳐서 221쪽을 보시오. 치요코를 죽인 이후로 히로스케는 더욱 더 망상에 가까운 광기를 드러내요. 이때 그는 자신을 ‘파노라마 왕국의 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자신이 죽인 치요코를 ‘파노라마 왕국의 여왕님’이라고 스스로 선포합니다. 저는 소름 돋는 히로스케의 말을 보면서 그가 『애너벨 리』에 나오는 ‘바닷가 왕국’의 남성과 너무나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 ‘애너벨 리’라면…‥ 포가 쓴 시 아닌가요?

 

 

사이: 네, 맞아요. 『애너벨 리』는 죽은 아내를 위한 애가(哀歌)입니다. 이 시의 화자인 남성은 바닷가 왕국에 영원히 잠들어 있는 애너벨 리를 잊지 못해 늘 그녀의 곁에 누워 있어요. 만약 그가 이 바닷가 왕국의 주인이라면, 애너벨 리는 이 왕국의 여왕입니다. 그러나 화자의 마음속에는 왕국이 아닌 오로지 애너벨 리에 대한 일편단심만 있을 뿐입니다. 그에게 애너벨 리는 단순히 사랑했던 연인이 아니에요. 에너벨 리는 그녀를 사랑했던 소중한 기억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면서 화자를 살아가게 만드는, 화자만을 위한 진짜 ‘왕국’인 거죠. 그는 죽은 애너벨 리가 다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한 담보로 이 왕국을 바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히로스케는 바닷가 왕국의 남성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인간이죠. 히로스케는 치요코를 ‘파노라마 왕국의 여왕님’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치요코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치요코를 왕국의 여왕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녀가 섬의 경관을 돋보이게 하는 나체상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히로스케는 그녀를 자신의 왕국을 아름답게 만드는 부속품으로 취급합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직접 만든 왕국인 파노라마 섬을 사랑합니다.

 

 

이상: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히로스케가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네요. 선생님은 지금까지 《도플갱어의 섬》을 긍정적으로 평하면서 소개해주셨는데요, 이 소설에 대한 선생님의 비판적인 견해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사이: 일단 작품 평을 하기 전에 이 책에 있는 오자 하나를 지적하고 싶소.

 

 

이상: 네? 저희가 만든 《도플갱어의 섬》에 오자가 있었어요?

 

 

 

 

 

사이: 내가 읽은 책은 초판이에요. 111쪽에 보면 ‘무가유향’이라는 말이 나와요. 무가유향을 한자로 쓰면 ‘無可有鄕’입니다. 《도플갱어의 섬》의 일본어 텍스트에 보면 ‘無可有鄕’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런데 번역본에는 무가유향의 한자어가 ‘無何有鄕’으로 되어 있어요. 이 한자어를 읽으면 ‘무하유향’입니다. 무가유향과 무하유향 모두 유토피아(utopia)를 뜻하는 한자어죠.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줄 수 있소.

 

 

이상: 아, 정말이네요. 다음 쇄가 출간되면 이 오자를 고치겠습니다.

 

 

사이: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도플갱어의 섬》의 최악의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저는 히로스케가 치요코를 죽이는 장면을 언급할 것입니다.

 

 

이상: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그 장면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히로스케의 잔인한 광기가 ‘펑’하면서 폭발하는 절정의 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이: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 이상하네요. 출판사 이름이 ‘이상’미디어라서 그런가?

 

 

이상: 네? 뭐라고요?

 

 

사이: 아, 아닙니다! 책 이야기를 해보죠. 저는 란포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가끔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역겹다고 느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장면은 제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히로스케가 치요코를 죽이는 장면을 묘사한 문장에 나오는 표현 몇 개를 인용해보죠. 인용된 표현들은 모두 220쪽에 있습니다.

 

 

 “벌거벗은 남녀의 도취된 몸짓”

 

“죽음의 유희”

 

“히로스케와 치요코 모두 어느새 고통을 잊고 황홀한 쾌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에 빠져들었습니다.”

 

“치요코의 창백한 얼굴과 그 위에 흐르는 실처럼 가느다란 피, 붉은 옻칠을 한 것처럼 윤기가 흐른 한 줄기 피는 얼마나 고요하고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릅니다.”

 

 

히로스케와 치요코는 전라 상태입니다. 히로스케는 강압적으로 치요코를 덮친 상태에서 교살을 시도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자마자 불쾌감이 느껴졌어요. MC양반, 치요코가 죽어가는 과정을 ‘죽음의 유희’라고 표현한 문장이 좋다고 생각하오? 피해자인 치요코가 죽어가면서 황홀한 쾌감에 빠진다는 묘사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이 장면을 ‘미학’이라고 주장할 수 있나요? 저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미학으로 과대 포장하면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작년에 이상미디어 출판사에서 나온 《단발머리 소녀》사토 하루오(佐藤春夫)의 단편소설 『불의 침대』가 수록되어 있어요. 혹시 그 소설을 읽어보셨습니까?

 

 

이상: 네, 당연히 읽었죠.

 

 

사이: 『불의 침대』에 벌거벗은 여인이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가 《단발머리 소녀》 리뷰를 쓰면서 그 장면을 비판한 적이 있어요.[주] 온몸에 불이 붙은 여인이 쾌락을 느끼면서 죽어가는 것처럼 묘사했거든요. 포는 『상상력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추한 것도 상상력의 재료가 될 수 있으며 아름답다고 썼습니다. 란포는 《도플갱어의 섬》에서 기괴하고 섬뜩한 것을 상상력의 재료로 쓰는 포의 작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죠. 하지만 기발한 란포의 상상력은 가끔 정도를 넘어설 때가 있어요. 히로스케의 망상이 위험하듯이, 란포의 상상력도 위험해요. 우리는 그 점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야 하고 비판적으로 봐야 합니다.

 

 

이상: 좋은 쪽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단발머리 소녀》도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이: 고맙긴. 시간이 더 있었으면 《단발머리 소녀》까지 비판할 수 있었소. 그나저나 《단발머리 소녀》에도 오자가 있던데, 고치긴 했소?

 

 

이상: 정말요? 그 책에 오자가 있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사이: 허, 이런…‥.

 

 

이상: 오늘은 여기까지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도플갱어의 섬》은 표제작 이외에 세 편의 소설이 수록된 란포의 작품 선집입니다. 오늘 인터뷰에서 언급되지 못한 세 편의 소설도 재미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인터뷰 때 뵙겠습니다. (속마음: 다음 인터뷰를 할 땐 저 사람 부르지 말아야겠어)

 

 

 

 

[주] “파격으로 가장한 문학의 성 착취를 보고 싶지 않다” (2019년 1월 28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063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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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7-2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참 재미있는 글이네요.잘 읽었습니다.에도가와 란포는 본래는 에드가 앨런 포우에서 필명을 따올정도로 처음에는 정통파 본격 추리로 출발했는데 중간에서 이른바 변격물로 변신해간 작가죠.아무레도 일본인 특유의 뭐랄까 좀 음습한 감성과 암울했던 군국주의 시대의 합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cyrus 2019-07-25 11:4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란포 특유의 음습한 묘사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란포의 단편소설 <애벌레>에 묘사된 장애인의 모습이 불편하게 느껴진 이후로는 란포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양가적인 느낌이 들어요. 재미있으면서도 무언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요. ^^;;

2019-07-24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7-25 11:51   좋아요 0 | URL
여자 도둑이 탐정 아케치와 사랑에 빠지는 전개가 별로였어요... ㅎㅎㅎ
제 리뷰에 작품과 출판사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안 뽑힐 가능성이 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7-2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cyrus님께서 평소 대화에서도 ‘~했소‘하는 문어체를 많이 사용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ㅋ

cyrus 2019-07-25 11:5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저는 옛날 사람이 아닙니다! ㅎㅎㅎㅎ 저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 옛날 사람 어투를 써봤습니다... ^^;;

syo 2019-07-2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글도 잘 쓰시면 어떡해요. 왜 혼자서 칼국수도 잘하고 피자도 잘 만들죠?

cyrus 2019-07-25 11:55   좋아요 0 | URL
나름 재미있게 쓴 리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저조하네요. 스포일러 표시 때문에 글을 안 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네요. 그런데 지금 이 글을 다시 보니 분량을 조절하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오늘 날씨가 습하면서 흐린데 따끈한 칼국수가 먹고 싶네요.. ㅎㅎㅎ

syo 2019-07-25 13:42   좋아요 0 | URL
요즘 전체적으로 알라딘이 좀 휑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거예요.

칼국수 한그릇 하시죠. 저 서울 올라가면 또 기약없이 못 만날 텐데.

cyrus 2019-07-27 10:48   좋아요 0 | URL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휑하다기보다는 온라인 관계가 파편화되었다고 생각해요. 이 곳 알라딘 서재에 크게 두 가지 유형의 회원이 활동한다고 생각해요. 첫 번째 유형은 혼자서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 분들, 두 번째 유형은 특정 회원들을 중심으로 친분을 맺는 분들이에요. 그 전에 syo님과 만나면서 얘기했었지만, 제가 읽는 책들이 쉽고 재미있는 분야나 주제의 내용이 아니라서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책을 매개로 저와 친하게 지내기 어려워할 거예요. 책에 대한 공통된 관심이 온라인 회원들 간의 친밀도를 높아지게 만드는 원인이거든요. 제 블로그가 다른 분들의 블로그와 비교하면 친밀도를 형성하기 어려워요.

서울에 언제 가세요? 서울 가기 전에 한 번 뵙죠. ^^

syo 2019-07-29 11:57   좋아요 1 | URL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가을의 한복판은 서울에서 보내게 되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그 전에 한번 봐요. 사이러스님이 바쁨쟁이니까 여유내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