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월요일

세 번째 강의. 퀴어와 장애의 교차

 

 

 

 

 

[레드스타킹 페미 스쿨] https://cafe.naver.com/redstocking

 

 

 

‘병리화’는 참으로 생소한 단어입니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단어이기도 해요. 예전에 책을 읽다가 ‘병리화’라는 단어를 몇 번 보곤 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어요. 전혜은 선생님은 병리화의 정의를 ‘정상성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기제’라고 말했습니다.

 

정상성을 생산하고 강조하는 병리화는 건강을 ‘정상’으로, 질병과 장애를 ‘비정상’으로 구분 짓게 만듭니다. 건강한 몸이 정상성의 기준이 되는 순간, 아픈 몸과 장애인의 몸은 각각 ‘건강관리를 소홀히 한 몸’, ‘결핍된 몸’으로 취급받습니다. 병리화는 환자와 장애인을 ‘불행의 아이콘’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병리화는 그들에 대한 결함, 오류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하는 혐오를 재생산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병리화, 즉 정상성을 해체하는 작업은 결국 ‘정상적인 몸’과 ‘병리적인 몸’을 구분하게 만드는 위계 체계를 비판하는 일입니다.

 

‘병리적인 몸’으로 규정된 몸은 그 몸의 실제 경험과 관련 있는 섹슈얼리티도 병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병리화된 장애 여성은 섹슈얼리티를 탐색하고 실험할 계기를 가지지 못하게 됩니다. 혜은 선생님이 번역한 앨리슨 케이퍼(Alison Kafer)의 글 『욕망과 혐오: 추종주의 안에서 내가 겪은 양가적 모험』은 일종의 금기가 되어버린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앨리슨 케이퍼는 장애학과 퀴어를 연구하는 여성학자이며 장애인입니다. 이 글의 제목에 나오는 추종주의“신체 절단 장애 여성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 비장애인은 추종주의의 의미를 처음 알게 된 순간 “뭐야? 이상해. 변태 아니야?”라는 반응할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케이퍼는 추종주의자를 ‘변태’라고 규정하는 반응을 의심합니다. 만약 절단 장애 여성에 대한 성적 욕망을 느끼는 것을 ‘병리화’하여 부정하게 된다면, 절단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마저도 부정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장애 여성은 무성적 존재로 간주되고 맙니다. 케이퍼는 절단 장애 여성들의 동의 없이 그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서 공개하고, 심지어 스토킹하는 일부 추종주의자들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추종주의자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가 절단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대안적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케이퍼는 이 『욕망과 혐오』라는 글에서 추종주의에 대한 자신의 양가적 반응을 솔직하게 밝힙니다. 그녀는 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추종주의와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으로 비유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비유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유래와 관련된 전설에 따르면 아시아를 정복하려는 알렉산더(Alexandros) 대왕은 이 매듭을 푸는 대신에 칼로 매듭을 잘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케이퍼는 추종주의라는 매듭을 자르지 않습니다. 추종주의에 대한 양가적 입장을 그대로 유지한 채 스스로 질문을 하면서 천천히 매듭을 풀어나갑니다.

 

만약 제가 케이퍼의 글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추종주의를 알게 되었다면, 저는 알렉산더 대왕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추종주의는 장애 여성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거야. 그건 문제가 있어’라고 부정적으로 단정 지었을 거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떤 복잡한 문제를 단순 명쾌하게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버린 저 알렉산더 대왕처럼 말이죠. 하지만 케이퍼가 생각했듯이 추종주의가 얽힌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아주 복잡하며, 명확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쉴라 제프리스 《코르셋》 (열다북스, 2018)

 

 

 

사실 제가 추종주의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도록 영향을 준 책이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코르셋》(열다북스)입니다. 트랜스 여성을 배제하는 제프리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남성의 눈요기를 위해 여성의 몸이 훼손되는 행위(SM, 피어싱)‘유해 문화’라고 보는 입장에 일부 동의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케이퍼의 글을 읽고 난 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절단된 몸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마저 ‘유해 문화’로 단순하게 규정해버린다면 추종주의도 유해 문화가 되고, 절단한 몸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는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병리적인 욕망’으로 남게 됩니다. 결국 신체 절단 행위를 비판하는 제프리스의 주장은 ‘목욕물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오류를 피하지 못합니다.

 

 

 

 

 

 

 

 

 

 

 

 

 

 

 

 

 

* 전혜은, 루인, 도균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편집부 《여/성이론 통권 제39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

 

 

 

 

서로 상반된 입장으로 나누어지는 페미니즘 논제에 접근할 때 알렉산더 대왕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되지 않으려면 양쪽 입장 중에 한쪽을 선택해서 (그 입장이 옳다는 의미로) 손을 들어주기보다는 ‘양쪽 손을 동시에 잡아’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고민하는 방식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공부 방식이 혜은 선생님이 말한 ‘교차성을 사유하기 위한 기본적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후기를 빌어서 케이퍼의 글을 번역하신 혜은 선생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번역한 케이퍼의 글 일부는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 수록된 『장애와 퀴어의 교차성을 사유하기』(글쓴이: 전혜은)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전문은 《여/성이론》 제3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페미 스쿨 커리큘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케이퍼의 글을 꼭 읽어보기를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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