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 교수는 《나의 서양사 편력 1》(푸른역사, 2014) 서설에서 역사학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역사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교과서나 책에서 알게 된 역사는 시대를 지배했던 기득권 논리를 대변하기 위해 첨가되고, 삭제되는 과정을 거쳐서 기록되었다.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든 덮어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들을 좀 더 세밀하게 오늘의 시점에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 권력과 신화를 해체하고 인간의 전체 지식 안에서 올바른 진실을 찾음으로써 역사의 맨살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해 프랑스인에게 물어본다면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라는 조각 작품에 대해 먼저 얘기할 것이다. 이 작품은 14세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싸운 백년전쟁 때 프랑스 칼레시를 구한 영웅적 시민 6명의 기념상이다. 당시 영국에 포위됐을 때 시민들을 위해 밧줄에 목을 매어 처형받기로 자원한 6명의 칼레 시민들을 조각한 것이다. 이 유명한 이야기의 유래를 알려면 백년전쟁(1337~1453)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영국군은 칼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칼레 시민들은 수 개월간의 항전 끝에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자 항복했다. 당황한 칼레의 시장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한다. 에드워드 3세는 칼레 시민들의 생명은 보장하겠지만, 시를 대표하는 6명이 교수형에 사용할 밧줄을 목에 걸고 맨발로 걸어 성문의 열쇠를 갖다 바칠 것을 명령한다. 

그때 용감하게 나선 6명이 있었다. 당시 칼레시의 가장 큰 부호였던 이와 시장 등 6명 모두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귀족들이었다. 이들이 처형되려던 마지막 순간 에드워드 3세는 왕비의 간청을 듣고 그들을 살려줬다. 임신 중이었던 왕비는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6명의 시민을 사면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을 연대기 작가인 프르와사르이 기록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박상익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칼레의 시민’」이라는 제목의 글(《나의 서양사 편력》 1권에 수록)에 칼레의 시민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한국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본보기로 독립운동가 이회영 일가를 소개했다. 

그러나 역시 서양사를 전공한 주경철 교수는 ‘칼레의 시민’ 이야기 속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을 보여줬다. 이미 일부 역사가들은 칼레의 시민 이야기가 프르와사르에 의해 과장, 왜곡되었다고 제기했다. 프르와사르의 기록 이외에도 현재 남아있는 칼레의 사건을 증명해주는 당대 문헌들이 20여 개가 있는데 칼레 시민들의 행동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의미가 강한 공개적 종교 의례라고 적고 있다. 6명의 시민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면서 용감하게 나섰다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프르와사르의 기록은 칼레의 시민을 외세의 힘에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애국 영웅으로 만들었고, 이야기는 민족주의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신화가 되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03-2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먼저 책에 참고 문헌이 없을때의 허탈함에 깊은 공감 한표 꾹 누르구요

두 책을 비교하여 해석하시는 모습에 감탄하며 또 한표 꾹 눌러봅니다 공감만 있지말고 감탄했어요 놀라워요 같은 버튼 좀 있음 좋겠어요 알라딘~~!

cyrus 2015-03-21 11:27   좋아요 0 | URL
제가 책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참고문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2권에 있었습니다. 저는 참고문헌이 1권, 2권 따로 있는 줄 알고, 1권에 참고문헌이 없는 것을 보고 아예 참고문헌이 없다고 단정짓고 말았습니다. 제가 실수를 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1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프 서점에서 책을 살 때 반드시 보는 것 중 하나가 참고목록`입니다. 소설은 제외하고 사회인문과학 같은 경우는 참고목록이 있어야 하잖아요. 인용문이 많다면 더더욱. 그런데 참고문헌을 전혀 기재하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전 그런 책은 아예 안 사는 쪽으로 결정합니다. 기본이 안 된 거죠... 물론 사회인문과학을 모두 자기 주장으로 깔았다면 대단한 실력이지만 대부분은 문헌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텐데 말이죠... 의심스러움..

cyrus 2015-03-21 11:1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참고문헌이 있어야 분야에 관련된 책을 참고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제가 한심하게 참고문헌이 2권에 있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어요. <나의 서양사 편력>이 두 권짜리거든요. 저의 실수 때문에 좋은 책이 이상하게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돌궐 2015-03-21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문헌이나 자료가 발굴되어 기존과 다른 해석이 나오면서 역사학이 발전하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해석들이 다 잘못된 것만은 아니고 그 나름의 한계 속에서 이루어낸 성과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그렇게 이해할 수밖에 없었음을 인정해야 할 때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역사가가 성실하게 조사연구를 했다는 것이 전제가 되야겠습니다.^^

cyrus 2015-03-21 11:23   좋아요 0 | URL
돌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정확한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패러다임이 생각납니다.

sslmo 2015-03-2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아요~^^
이런 정보, 저같은 입문자에겐 큰 도움이 돼요~^^

cyrus 2015-03-21 11:18   좋아요 0 | URL
어렵지도 않고, 서양사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안티고네 2015-03-2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 말미에 참고 문헌 있는데요?

cyrus 2015-03-21 11:14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2권에 있었군요. 1권을 다 읽고 2권 절반 가량 읽은 상태라서 2권에 참고문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제가 책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부끄러운 글을 쓰고 말았군요. 잘못된 내용은 수정하겠습니다.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15-03-24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레의 시민`이야기를 몰랐던 저로서는, `칼레의 시민` 이야기와 `칼레의 시민` 이야기에 감춰진 이야기가 모두 다 흥미롭습니다.

cyrus님 좋은 글, 공부를 부르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3-24 18:05   좋아요 0 | URL
실수로 잘못 적은 내용이 있어서 지난 주 토요일에 수정했습니다. 그래서 칭찬받을 만한 글은 아니랍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세트] 나의 서양사 편력 - 전2권
박상익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중국 고대 황제(黃帝) 시대의 전설에 의하면 거울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작은 통로가 있었다고 한다. 이 통로를 통해서 거울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왕래하면서 평화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거울 세계의 사람들이 인간의 세계를 급습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인간은 황제의 비범한 능력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황제는 통로를 막아버리고 침략자들을 거울 속에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거울 세계의 사람들에게 인간의 행위를 똑같이 따라 하는 벌을 내렸다. 그들 본래의 모습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까치, 1994)에 나온다.

 

나 아닌 다른 사람, 내 나라 아닌 다른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정부와 극우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저지른 자신들의 잘못을 미화하고 정당화하여 우리나라와 중국의 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역사 왜곡을 둘러싸고 일본 내의 입장은 이렇다. 하나는 우리 역사를 쓰고 가르치겠다는데 참견하는 한국과 중국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를 왜곡하고 미화하는 것은 일본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는 미래를 조망하는 거울이 된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새 장을 확인할 수 있다. 따져보면 일본의 역사 왜곡보다 우리 자신의 역사 왜곡이 더 심각하다. 정치권의 이념 대립은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에 이르러 급기야 역사 갈등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정치와 이념, 역사인식이 철저히 둘로 나뉘었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역사마저 이념의 잣대에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서 공통의 역사를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현실을 비춰주고 미래를 조명하는 거울의 용도를 상실한 지 오래다. 과거는 불변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고,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인간은 거울의 세계(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로 나뉜 인간은 역사에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 그대로 반영되기를 원한다. 대화와 소통의 통로를 원천 차단하여 역사를 정치적 이념 가치에 맞게 부합하여 정당화한다. 역사를 정치적 이념의 울타리 안으로 완전히 가두는 것이다. 이런 역사를 학생들은 암기하면서 공부한다. 역사를 유연하게 바라보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사고력의 기회를 잃게 된다. 이러다 보니 역사는 ‘죽은 학문’이 된다. 역사는 이미 완료된 고정불변의 실체가 되고 역사학은 그런 대상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니, 역사학의 내용도 변화할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다. 한마디로 한번 완성이 된 역사학의 내용은 정설로 굳어지게 되어, 이후 지속적인 연구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책을 통해 알게 된 역사는 이미 그것을 저술한 학자들이 연구한 것이니 우리는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편견이 생긴다.

 

무엇보다 심각한 사실은 우리나라 역사교육에 서양사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역사교육에서 서양사는 푸대접을 받고 있다. 자국사와 서양사를 모두 필수과목으로 포함한 일본의 역사교육과 대비된다. 전공의 경우에도 역사는 서양사가 짜놓은 틀 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고대-중세-르네상스-근대로 이어지는 공식을 암기하면서 배운다. 이런 문제가 고착되면 서양사를 공부해야 할 필요성을 학생들이 전혀 느끼지 못하는 우려가 생긴다. 또 초보적인 서양사마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면 국가적 망신에 가까운 무지의 태도가 드러날 수 있다. 나치의 하겐 크로이츠 문양이 있는 복장을 착용한 걸그룹 가수의 실수는 전 세계적으로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나의 서양사 편력》은 서양사를 공부하고 싶은 독자도 볼 수 있는 99개의 작은 서양사 거울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대, 중세, 근대, 현대 그리고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의 시대를 볼 수 있는 총 4개의 거울 방으로 만들어졌다. 독자는 관심 있는 거울 방을 골라서 노크해서 들어갈 수 있다. 서양사 거울은 독자가 여행할 수 있는 통로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과거의 사실들을 총망라해서 공부하는 기존의 역사 교육을 답습하지 않는다. 그런 역사가 현재에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을 미치면서 전체를 만들고 또 각자를 만들어 왔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 역사도 우리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 된다.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결 고리 내지는 상호 연관성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가령 ‘새로운 로마’를 위해 ‘구(舊) 로마’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파괴한 로마인들의 반달리즘(vandalism)을 통해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반달리즘을 조명한다.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 ‘새로운 서울’을 만든다는 핑계로 서울시(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는 역사가 있는 종로 피맛골을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했다. 그 이후로 피맛골은 예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을 지키던 예술가들은 하나둘씩 떠났고,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주던 맛집들도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면서 사람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서양사는 역사분쟁을 헤치고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공존에 이바지할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에라스뮈스는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학문을 연마한 선구자적인 ‘세계 시민’이었다. 유럽연합(EU)은 1987년 국경과 종교, 언어를 초월해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학문을 연마했던 에라스뮈스의 이름을 딴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EU 회원국 대학생들은 재학 기간에 1∼2학기를 다른 유럽 국가의 대학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도 아시아판 에라스뮈스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상호교류를 통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아니라 ‘동북아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여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세대의 등장을 기대할 수 있다.

 

5개의 거울이 있는 밀턴의 방으로 들어가면 권력화한 종교가 지배하는 17세기 영국의 사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거울상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종교를 배타하는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개신교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또 권력 앞에 굴하지 않는 밀턴의 강인한 정신과 양심은 국회에서 ‘밥그릇 전쟁’하느라 여념 없는 국회의원들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왕정복고에 의해서 명예가 상실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실명이 된 밀턴은 궁핍한 상황에 처해있어도 자신의 공화주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제임스 2세가 될 요크 공 제임스와 나눈 대화는 권력 앞에 주눅이 들지 않는 밀턴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요크 공 제임스는 밀턴을 직접 찾아가 실명한 상태가 왕정을 무너뜨리는 혁명 활동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이는 밀턴의 행적을 비꼬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었다. 그러자 밀턴은 한 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만일 전하께서 저의 실명을 신이 진노해서 받은 천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신은 전하의 부친이신 선왕께 훨씬 더 불쾌하셨을 겁니다. 선왕은 신의 심판으로 머리를 잃었으니까요.” 제임스 2세의 선왕은 의회를 무시하는 전체 정치를 펼치다가 청교도 혁명으로 참수당한 찰스 1세였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카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정 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과거에 벌어졌던 상황이 후대에 의해 끊임없이 재평가되며 그것의 가치가 변화하여 인식되는 유연한 학문이 바로 역사학이다.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역사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잘못된 상황을 반성하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역사의 거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역사를 바라보는 이런 인식은 역사에 대한 반쪽짜리 이해에 불과하다. 역사에 정치가 절대로 개입해선 안 되며, 현재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역사는 정치권력을 흉내 내면서 따라다니는 그림자가 아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으른독서가 2015-03-19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고 나니, `읽고 싶어요`릉 누르게 되네요. 좋은 책 많이 알려주세요.

cyrus 2015-03-20 20:59   좋아요 0 | URL
참고문헌이 없어서 아쉽지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독서가님도 좋은 책 많이 알려주십시오. ^^

안티고네 2015-03-21 21:1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참고문헌? 2권 274-278쪽에 나와 있는데요~

cyrus 2015-03-21 21:15   좋아요 0 | URL
안티고네님. 지적 감사합니다. 오늘 2권에 참고문헌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제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안티고네 2015-03-28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cyrus 님. 무시할 수도 있는 댓글에 즉각 대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자신을 책 읽는 바보라는 별명을 지었다. ‘간서치(看書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책 보는 일을 즐거워했다. 가난한 서얼 출신인 그는 남의 책을 베껴주는 품을 팔면서 책을 읽었다. 이뿐만 아니다. 풍열로 눈병이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가운데 실눈을 뜨고 책을 읽었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 끝이 곪아 피가 터질 지경인데도 책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치열했다. 장작이 없어 차가운 방 안에서 추위를 견디다 《한서》 한 질을 이불처럼 펼치고, 《논어》를 병풍으로 삼아 냉기를 막았다는 이덕무의 일화는 독서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준다.

 

이덕무는 독서에 네 가지 유익함이 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 배고픔을 잊게 해준다. 추위를 막아주며 근심과 번뇌를 없애주는 데다 기침까지 낫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덕무에게 독서는 기운과 기운이 통하여 막힌 것을 뚫어주게 만드는 우주의 이치다. 다만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독서가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독서가 질병을 말끔히 치유해주는 만능 치료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이덕무처럼 눈병에 걸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책을 읽으면 시력이 더 악화할 수도 있으니까. 독서의 치유 효과는 플라세보 효과의 예로 보면 좋겠다.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어도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은 된다. 실제로 영국의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6분 정도 독서를 하는 사람의 심장 박동수와 근육 긴장이 풀어지는 것이 확인됐다. 음악 감상, 커피 마시기, 산책 등과 같은 스트레스 해소법들보다 독서가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더 큰 효과가 있었다.

 

이처럼 독서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유용한 장점과 효과가 너무나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무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우린 이덕무처럼 굶주리지도, 춥지도 않지만, 책을 읽지 않는다. ‘책 안 읽는 사회’라는 불명예스러운 표현은 지겹도록 들었다. 무슨 연유인지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무슨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대놓고 무시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오늘 동아일보 1면에 보도된 기사 중에 ‘책따’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책을 읽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을 뜻한다. 쉬는 시간에 학생이 책을 읽으면 다른 학생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장난을 걸면서 독서를 방해한다. 아이들은 독서를 구닥다리 행위로 여긴다. 게다가 책 읽는 아이가 보면 은근히 질투심도 느껴진다고 한다. 마치 책 읽는 모습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조그만 교실에 갇혀 똑같은 내용만 암기하면서 배우고 있다. 교실은 3년 내내 배틀 로얄(Battle Royale)이 펼쳐진다. 연필이라는 무기를 들고 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전략서인 문제집을 풀기 시작한다. 30여 명 남짓의 학생들은 친구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입시제도에 벗어날 수 없다. 탈출구는 없다. 이 게임이 끝나려면 잔인하게 수능시험을 쳐야 한다. 수능시험은 최후의 결전이다. 이 결전을 대비하기 위해 고등학생들은 3년 동안 교과서와 문제집을 봐야 한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성적표를 받게 되면, 입시 배틀 로얄은 종료된다. 여기서 명문대에 가는 학생은 배틀 로얄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다. 입시에 인질 잡힌 학생들에게 독서는 사치다. 아니, 최후의 결전에 승리하는 데 있어서 독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 읽을 시간에 문제집을 더 보게 된다. 이래서 책 읽는 사람은 교실의 별종이다. 독서를 곧 입시 경쟁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는 탈선으로 생각한다. 오늘날의 교실은 책을 읽고 싶어도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이곳은 교과서와 문제집만 허용된다. 교실의 아이들이 불쌍하다. 이런 환경이 익숙해져서 독서의 즐거움을 모른다. 교육 기관은 '책따' 문제를 해결하려고 독서 문화를 장려하는 제도를 시행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맞지 않은 무기를 억지로 장착하는 셈이다. 책을 많이 읽게 해서 성적에 반영하는 교육 체제는 또 다른 경쟁을 낳는다. 오히려 독서를 더욱 기피할 수 있다.  

 

한가하게 앉아서 책이나 읽는 시대는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책을 읽어 내린 선조들의 미덕이 언제 끊겼나 싶다. 학생들은 수험공부에 시달리고 어른들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유흥과 환락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 마음의 수양을 뒷전으로 보내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책만 읽고 살아가기는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책은 만들어질 것이며,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내일을 꿈꿀 것이다. 물건이야 낡을수록 기쁨이 사그라지지만, 책은 읽을수록 충만해지는데 우리 책의 신세는 왜 비루한지 모르겠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3-18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8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5-03-18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저 이 책 무척 좋아해서 여러번 읽고 손때 묻혀뒀는데 아버님이 가지고 가셔서 다시 샀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저두 어제 병원에서 또 버스정류장에서 책을 꺼내들고 있자니 시선들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럴때마다 좀 머쓱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읽는 기쁨! 요것도 추억이지 싶어요

cyrus 2015-03-18 20:33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이 책을 감명깊게 읽으신 분들이 많군요. 역시 책을 가까이하는 분들은 통하는 게 있어요. ^^

작년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지하철에 책 읽는데 중학생들에게 방해받은 경험담을 독서 모임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어요. 요즘 아이들이 독서를 멀리하게 되니까 몰상식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러다가 몇 년 뒤에 버스나 지하철에 책 읽는 사람을 보기 힘들 것 같아요. ㅠㅠ

아무개 2015-03-1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읽고 눈물을 줄줄...흘렸던 기억이...

하아.....책따라..그런게 있군요.

cyrus 2015-03-18 20:35   좋아요 0 | URL
저도 책바보를 읽으면서 감동받았어요. 남들이 뭐라하더라도 독서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tella.K 2015-03-1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시키려면 별놈의 이유를 다 만들어서 따를 만든다니까.
너무 예뻐도 따고, 공부 잘해도 따시킨다잖아.
책따도 있다니? 책 읽기 힘든 세상도 세상이지만
그 전에 별 이유를 다 만들어 따를 만드는 이 세상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ㅠ

그나저나 나 이 책 오래 전에 구판으로 사 놓고 아직도 안 읽고 있다.
하도 안 읽어서 중고샵에 팔까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는데?ㅋㅋ

cyrus 2015-03-18 20:40   좋아요 0 | URL
댓글 분위기로 봐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덕무 이야기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아요. ^^

누님 말씀에 공감해요. 요즘 자신과 조금 다른 사람을 보면 일부러 소외하고 차별하는 경향이 있어요.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닌텐도 게임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학생도 따돌림 받는다고 하더군요.

단발머리 2015-03-1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리뷰 읽고 있노라니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저는 `추위`를 잊게 해준다, 에서 맞아,맞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 같은 입시제도하에서 진짜 공부가 가능할까요?
저는, 어렵다고 봐요. 아하...

cyrus 2015-03-18 20:41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회의적으로 생각해요. 미래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막막합니다.

오쌩 2015-03-1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픔을 잊는것 까지는 모르겠고.ㅎ
근심,걱정에서 잠시나마 초연해질수 있는 점은 저도 크게 공감해요.
예전 학교다닐때 야자시간에 책읽다가
선생님이 공부안한다고 책을 뺏아간적이 있는데, 문제풀이에 치중하는 공부,답맞추는 공부가 현실인 세상에서
제대로된 학교교육이 나올지 의문이네요


cyrus 2015-03-19 18:49   좋아요 0 | URL
저는 수업이 일찍 마쳐서 교과서를 덮고 책을 읽었는데 선생님한테 핀잔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때가 고3이라서 수능문제집이 아닌 소설책을 들춰보는 제자가 걱정이 되어서 하신 말씀이었지만, 잠깐이라도 책을 읽을 여유를 이상하게 보는 선생님의 생각이 실망스러웠어요.

개암나무 2015-03-2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따? 별별 따가 다 등장하네요;;; 헐;
그나저나 이 책 있었던가 하면서 찾아보니 갖고 있는건『책에 미친 바보』였네요.
평을 살피니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는 하는데 『책만 보는 바보』도 읽고 싶네용.

cyrus 2015-03-27 22:37   좋아요 0 | URL
책 제목이 비슷해서 저도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ㅎㅎㅎ

간서치 2015-06-1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고 두고두고 다시 펴보고.. 읽다가 눈물도 나고 그랬어요.. 자꾸 손이 가는 새우깡 같은 책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했고요..

cyrus 2015-06-15 20:04   좋아요 1 | URL
그래서 닉네임이 ‘간서치’군요. 정말 뜻이 깊은 닉네임이네요. 이덕무는 독서가의 워너비이자 <책만 보는 바보>는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고, 가지고 있어야 할 책입니다.

간서치 2015-06-1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래서 간서치가 되고 싶어졌지요...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목표를 크게 잡으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이 생에 못되더라도 다음생에라도 말이죠.

cyrus 2015-06-17 21:02   좋아요 0 | URL
간서치님은 목표를 꼭 이루실거라 믿습니다. 저도 많이 배워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야겠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 공존하려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것들
캐스파 헨더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냄비에 푸짐하게 깔린 콩나물과 미나리 등 갖은 채소와 함께 어우러진 아귀탕은 얼큰하고 담백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아귀와 콩나물, 여기에 고춧가루가 한데 버무려져 만들어지는 아귀찜도 매콤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아귀의 어원은 아구(鵝口)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굶주린 입’이다. 아귀의 입은 몸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 못생긴 데다 꽃게, 조기, 갈치 등 갖가지 바다 어패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60년까지는 어물전의 골칫거리였으며 때문에 음식재료로 대접받지 못했다. 인천에 사는 어민들은 이 생선이 입만 큰데다 별로 먹을 만한 부위도 없어 그물에 잡혀 올라오면 다시 물에 던져버렸는데 이 때문에 ‘물텀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우리는 아귀를 이용해 처음으로 요리를 만든 무명씨에게 감사해야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귀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귀를 처음 본 사람은 못생긴 아귀의 모습에 겁먹기 쉽다. 조업 경험이 많은 어민들은 그물에 잡힌 아귀를 본 순간 놀랬을 정신적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무명씨의 아귀 요리 도전 덕분에 아귀는 괴물 오명에 벗어나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 좋은 음식재료가 될 수 있었다. 아귀의 반전 매력 하나 더. 아무거나 집어삼킬 수 있는 커다란 입을 가진 모습과 다르게 아귀는 저지방 식품이라 다이어트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생물 중에 아귀처럼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가 이제는 지구에 사라져서는 안 될 귀한 존재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아홀로틀은 도롱뇽의 일종이다. 미소를 지으면서 웃는 듯한 아홀로틀의 매력에 빠져 집에서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도롱뇽이 중세 동물우화집에서 위험한 동물로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도롱뇽은 불에 타지 않는 동물 혹은 독을 지닌 동물로 여겼다. 뱀장어는 하와를 유혹하는 뱀과 닮았다는 이유로 불길한 동물로 오해받았으며 거대한 다리를 가진 문어는 바다 괴물 크라켄으로 둔갑하였다. 옛날 박물학자들은 생물 도감에 있어야 할 동물을 괴물도감에 포함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기준은 단순하다. 미(美)와 정상적 형태에 가깝지 않은 동물은 생물 도감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못한 채 기괴한 생물로 분류된다.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과학의 햇살이 세상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데도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괴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인어, 설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캐스파 핸더슨의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현대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다. 알파벳 A부터 Z로 시작되는 순으로 지구상에 살 것 같지 않은 희귀한 생물들을 소개한다. 돌고래, 일본원숭이, 복어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생물들은 TV나 생물학 교과서에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 바다 아래 깊숙한 곳에 사는 것도 있다. 심해생물의 외형은 딱 봐도 외계에서 온 생명체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는 생태 과정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우리에게는 그저 수수께끼를 지닌 특이한 존재다. 사실 우리에게 친숙한 생물도 처음에는 특이하고 위험한 존재였다. 인간은 어떤 생물에 관한 정보가 부족할수록 더욱 정밀한 검증 절차 대신에 상상력으로 허전한 지식의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생물을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상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왜곡된 지식을 무수히 양산한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무비판적인 자료 집대성으로 인해 황당무계한 내용이 적지 않다. 박물학에 관한 한 최초의 백과사전이지만 환상적으로 묘사한 동물도 나온다. 플리니우스는 뿔과 날개가 달린 말, 사람의 얼굴을 한 짐승 등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적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이 현대판 《박물지》라고 해서 우리가 아는 지식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동물의 세계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상상력이 학문을 지배했던 과거에 유행했던 옛 지식을 추적하면서도 동시에 과학적으로 검증된 현실의 진리를 보여준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자신의 책을 ‘알라테이아고리아(aletheiagoria)’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진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aletheia)’와 환등기(phantasmagoria)를 합한 것이다. 중세 동물우화집과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인류의 상상력이 투영된 세계를 총망라해서 보여주는 환등기다. 저자는 오래된 환등기를 작동시켜 상상력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진리를 복원한다. 그 진리가 진귀한 생물이 인간과 공존하면서 사는 모습이다. 이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간과 관련된 지식을 동원한다. 그래서 글이 옆으로 새는 느낌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단점을 독자에게 미리 밝히고 있다. 앵무조개의 눈을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에 사진기의 역사까지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글쓰기에 처음은 적응하기 힘들 수 있겠지만, 과학, 문화, 역사 등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서술된 한 권의 백과사전으로 봐도 좋겠다.   

 

저자는 현대의 박물지 항목에 ‘인간’을 추가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인간은 생물과 공존하기보다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나온다. 고대의 박물지에 아홀로틀, 뱀장어, 문어가 괴물이었다면 현대판 박물지인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에 나오는 유일한 괴물이 바로 인간이다. 한때 동물을 무서워했던 인간은 과학의 힘을 믿고 상상력의 안개를 걷어치움으로써 자연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 상상력의 안개 덕분에 태초의 생태를 오랫동안 간직하던 동물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졌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선한 존재가 인간이다. 이 책의 ‘인간’ 항목은 독자들이 새로 추가할 수 있다. 상상력을 동원해도 좋다. 과연 인간의 행동은 지구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지구의 보존 아니면 종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피북 2015-03-1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종말!ㅠㅜ 인간보다 더 무서운건 없다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르네요 ^~^

cyrus 2015-03-17 21: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요즘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너무 많습니다. ^^;;

AgalmA 2015-03-17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물지> 번역작품으로 한번 봤으면 했는데, 해외원서로도 잘 없는 듯 하데요? <산해경>처럼 온갖 도해들이 가득할테니 볼만할텐데 말이죠.

cyrus 2015-03-17 21:23   좋아요 0 | URL
펭귄북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표지를 본 적이 있어요. 이런 책도 펭귄북스 시리즈에 포함될 정도면 유럽에서는 고전으로 읽는다는 거죠. 저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이 책도 번역될 날이 찾아올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