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 - 공존하려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것들
캐스파 헨더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냄비에 푸짐하게 깔린 콩나물과 미나리 등 갖은 채소와 함께 어우러진 아귀탕은 얼큰하고 담백한 국물맛이 일품이다. 아귀와 콩나물, 여기에 고춧가루가 한데 버무려져 만들어지는 아귀찜도 매콤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아귀의 어원은 아구(鵝口)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굶주린 입’이다. 아귀의 입은 몸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 못생긴 데다 꽃게, 조기, 갈치 등 갖가지 바다 어패류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60년까지는 어물전의 골칫거리였으며 때문에 음식재료로 대접받지 못했다. 인천에 사는 어민들은 이 생선이 입만 큰데다 별로 먹을 만한 부위도 없어 그물에 잡혀 올라오면 다시 물에 던져버렸는데 이 때문에 ‘물텀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우리는 아귀를 이용해 처음으로 요리를 만든 무명씨에게 감사해야 한다.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아귀로 음식을 만드는 일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아귀를 처음 본 사람은 못생긴 아귀의 모습에 겁먹기 쉽다. 조업 경험이 많은 어민들은 그물에 잡힌 아귀를 본 순간 놀랬을 정신적 충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무명씨의 아귀 요리 도전 덕분에 아귀는 괴물 오명에 벗어나 영양분이 풍부하고 맛 좋은 음식재료가 될 수 있었다. 아귀의 반전 매력 하나 더. 아무거나 집어삼킬 수 있는 커다란 입을 가진 모습과 다르게 아귀는 저지방 식품이라 다이어트 음식으로 손색이 없다.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생물 중에 아귀처럼 무시무시한 괴물이었다가 이제는 지구에 사라져서는 안 될 귀한 존재로 대접받는 경우가 많다. 아홀로틀은 도롱뇽의 일종이다. 미소를 지으면서 웃는 듯한 아홀로틀의 매력에 빠져 집에서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도롱뇽이 중세 동물우화집에서 위험한 동물로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도롱뇽은 불에 타지 않는 동물 혹은 독을 지닌 동물로 여겼다. 뱀장어는 하와를 유혹하는 뱀과 닮았다는 이유로 불길한 동물로 오해받았으며 거대한 다리를 가진 문어는 바다 괴물 크라켄으로 둔갑하였다. 옛날 박물학자들은 생물 도감에 있어야 할 동물을 괴물도감에 포함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기준은 단순하다. 미(美)와 정상적 형태에 가깝지 않은 동물은 생물 도감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못한 채 기괴한 생물로 분류된다. 여기에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이 된다. 과학의 햇살이 세상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데도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괴물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인어, 설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

 

캐스파 핸더슨의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 현대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다. 알파벳 A부터 Z로 시작되는 순으로 지구상에 살 것 같지 않은 희귀한 생물들을 소개한다. 돌고래, 일본원숭이, 복어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생물들은 TV나 생물학 교과서에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 바다 아래 깊숙한 곳에 사는 것도 있다. 심해생물의 외형은 딱 봐도 외계에서 온 생명체 같은 느낌을 준다.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는 생태 과정이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우리에게는 그저 수수께끼를 지닌 특이한 존재다. 사실 우리에게 친숙한 생물도 처음에는 특이하고 위험한 존재였다. 인간은 어떤 생물에 관한 정보가 부족할수록 더욱 정밀한 검증 절차 대신에 상상력으로 허전한 지식의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의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생물을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상상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왜곡된 지식을 무수히 양산한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무비판적인 자료 집대성으로 인해 황당무계한 내용이 적지 않다. 박물학에 관한 한 최초의 백과사전이지만 환상적으로 묘사한 동물도 나온다. 플리니우스는 뿔과 날개가 달린 말, 사람의 얼굴을 한 짐승 등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적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이 현대판 《박물지》라고 해서 우리가 아는 지식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동물의 세계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상상력이 학문을 지배했던 과거에 유행했던 옛 지식을 추적하면서도 동시에 과학적으로 검증된 현실의 진리를 보여준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자신의 책을 ‘알라테이아고리아(aletheiagoria)’라는 신조어로 표현했다. 진리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aletheia)’와 환등기(phantasmagoria)를 합한 것이다. 중세 동물우화집과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인류의 상상력이 투영된 세계를 총망라해서 보여주는 환등기다. 저자는 오래된 환등기를 작동시켜 상상력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진리를 복원한다. 그 진리가 진귀한 생물이 인간과 공존하면서 사는 모습이다. 이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인간과 관련된 지식을 동원한다. 그래서 글이 옆으로 새는 느낌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의 단점을 독자에게 미리 밝히고 있다. 앵무조개의 눈을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에 사진기의 역사까지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글쓰기에 처음은 적응하기 힘들 수 있겠지만, 과학, 문화, 역사 등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서술된 한 권의 백과사전으로 봐도 좋겠다.   

 

저자는 현대의 박물지 항목에 ‘인간’을 추가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인간은 생물과 공존하기보다는 생태계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나온다. 고대의 박물지에 아홀로틀, 뱀장어, 문어가 괴물이었다면 현대판 박물지인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에 나오는 유일한 괴물이 바로 인간이다. 한때 동물을 무서워했던 인간은 과학의 힘을 믿고 상상력의 안개를 걷어치움으로써 자연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 상상력의 안개 덕분에 태초의 생태를 오랫동안 간직하던 동물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졌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멸종 위기의 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선한 존재가 인간이다. 이 책의 ‘인간’ 항목은 독자들이 새로 추가할 수 있다. 상상력을 동원해도 좋다. 과연 인간의 행동은 지구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지구의 보존 아니면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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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1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종말!ㅠㅜ 인간보다 더 무서운건 없다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르네요 ^~^

cyrus 2015-03-17 21: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요즘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 너무 많습니다. ^^;;

AgalmA 2015-03-17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물지> 번역작품으로 한번 봤으면 했는데, 해외원서로도 잘 없는 듯 하데요? <산해경>처럼 온갖 도해들이 가득할테니 볼만할텐데 말이죠.

cyrus 2015-03-17 21:23   좋아요 0 | URL
펭귄북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표지를 본 적이 있어요. 이런 책도 펭귄북스 시리즈에 포함될 정도면 유럽에서는 고전으로 읽는다는 거죠. 저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이 책도 번역될 날이 찾아올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