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자신을 책 읽는 바보라는 별명을 지었다. ‘간서치(看書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책 보는 일을 즐거워했다. 가난한 서얼 출신인 그는 남의 책을 베껴주는 품을 팔면서 책을 읽었다. 이뿐만 아니다. 풍열로 눈병이 걸려 눈을 뜰 수 없는 가운데 실눈을 뜨고 책을 읽었다. 동상에 걸려 손가락 끝이 곪아 피가 터질 지경인데도 책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쓸 정도로 치열했다. 장작이 없어 차가운 방 안에서 추위를 견디다 《한서》 한 질을 이불처럼 펼치고, 《논어》를 병풍으로 삼아 냉기를 막았다는 이덕무의 일화는 독서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여준다.

 

이덕무는 독서에 네 가지 유익함이 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 배고픔을 잊게 해준다. 추위를 막아주며 근심과 번뇌를 없애주는 데다 기침까지 낫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덕무에게 독서는 기운과 기운이 통하여 막힌 것을 뚫어주게 만드는 우주의 이치다. 다만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독서가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독서가 질병을 말끔히 치유해주는 만능 치료법이라고 할 수 없다. 이덕무처럼 눈병에 걸린 상태에서 무리하게 책을 읽으면 시력이 더 악화할 수도 있으니까. 독서의 치유 효과는 플라세보 효과의 예로 보면 좋겠다. 병을 낫게 할 수는 없어도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은 된다. 실제로 영국의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6분 정도 독서를 하는 사람의 심장 박동수와 근육 긴장이 풀어지는 것이 확인됐다. 음악 감상, 커피 마시기, 산책 등과 같은 스트레스 해소법들보다 독서가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더 큰 효과가 있었다.

 

이처럼 독서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유용한 장점과 효과가 너무나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서를 무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우린 이덕무처럼 굶주리지도, 춥지도 않지만, 책을 읽지 않는다. ‘책 안 읽는 사회’라는 불명예스러운 표현은 지겹도록 들었다. 무슨 연유인지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무슨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신기하게 쳐다보거나 대놓고 무시하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오늘 동아일보 1면에 보도된 기사 중에 ‘책따’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책을 읽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을 뜻한다. 쉬는 시간에 학생이 책을 읽으면 다른 학생들이 그에게 다가와서 장난을 걸면서 독서를 방해한다. 아이들은 독서를 구닥다리 행위로 여긴다. 게다가 책 읽는 아이가 보면 은근히 질투심도 느껴진다고 한다. 마치 책 읽는 모습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조그만 교실에 갇혀 똑같은 내용만 암기하면서 배우고 있다. 교실은 3년 내내 배틀 로얄(Battle Royale)이 펼쳐진다. 연필이라는 무기를 들고 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전략서인 문제집을 풀기 시작한다. 30여 명 남짓의 학생들은 친구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입시제도에 벗어날 수 없다. 탈출구는 없다. 이 게임이 끝나려면 잔인하게 수능시험을 쳐야 한다. 수능시험은 최후의 결전이다. 이 결전을 대비하기 위해 고등학생들은 3년 동안 교과서와 문제집을 봐야 한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성적표를 받게 되면, 입시 배틀 로얄은 종료된다. 여기서 명문대에 가는 학생은 배틀 로얄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다. 입시에 인질 잡힌 학생들에게 독서는 사치다. 아니, 최후의 결전에 승리하는 데 있어서 독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 읽을 시간에 문제집을 더 보게 된다. 이래서 책 읽는 사람은 교실의 별종이다. 독서를 곧 입시 경쟁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는 탈선으로 생각한다. 오늘날의 교실은 책을 읽고 싶어도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없는 공간이 되고 말았다. 이곳은 교과서와 문제집만 허용된다. 교실의 아이들이 불쌍하다. 이런 환경이 익숙해져서 독서의 즐거움을 모른다. 교육 기관은 '책따' 문제를 해결하려고 독서 문화를 장려하는 제도를 시행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맞지 않은 무기를 억지로 장착하는 셈이다. 책을 많이 읽게 해서 성적에 반영하는 교육 체제는 또 다른 경쟁을 낳는다. 오히려 독서를 더욱 기피할 수 있다.  

 

한가하게 앉아서 책이나 읽는 시대는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책을 읽어 내린 선조들의 미덕이 언제 끊겼나 싶다. 학생들은 수험공부에 시달리고 어른들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유흥과 환락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 마음의 수양을 뒷전으로 보내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책만 읽고 살아가기는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책은 만들어질 것이며,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내일을 꿈꿀 것이다. 물건이야 낡을수록 기쁨이 사그라지지만, 책은 읽을수록 충만해지는데 우리 책의 신세는 왜 비루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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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18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5-03-18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꺅! 저 이 책 무척 좋아해서 여러번 읽고 손때 묻혀뒀는데 아버님이 가지고 가셔서 다시 샀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저두 어제 병원에서 또 버스정류장에서 책을 꺼내들고 있자니 시선들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럴때마다 좀 머쓱해지는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읽는 기쁨! 요것도 추억이지 싶어요

cyrus 2015-03-18 20:33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이 책을 감명깊게 읽으신 분들이 많군요. 역시 책을 가까이하는 분들은 통하는 게 있어요. ^^

작년에 이런 일도 있었어요. 지하철에 책 읽는데 중학생들에게 방해받은 경험담을 독서 모임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어요. 요즘 아이들이 독서를 멀리하게 되니까 몰상식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러다가 몇 년 뒤에 버스나 지하철에 책 읽는 사람을 보기 힘들 것 같아요. ㅠㅠ

아무개 2015-03-18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책 읽고 눈물을 줄줄...흘렸던 기억이...

하아.....책따라..그런게 있군요.

cyrus 2015-03-18 20:35   좋아요 0 | URL
저도 책바보를 읽으면서 감동받았어요. 남들이 뭐라하더라도 독서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stella.K 2015-03-1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시키려면 별놈의 이유를 다 만들어서 따를 만든다니까.
너무 예뻐도 따고, 공부 잘해도 따시킨다잖아.
책따도 있다니? 책 읽기 힘든 세상도 세상이지만
그 전에 별 이유를 다 만들어 따를 만드는 이 세상이 더 문제라고 생각해.ㅠ

그나저나 나 이 책 오래 전에 구판으로 사 놓고 아직도 안 읽고 있다.
하도 안 읽어서 중고샵에 팔까 했는데 그러면 안 되겠는데?ㅋㅋ

cyrus 2015-03-18 20:40   좋아요 0 | URL
댓글 분위기로 봐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덕무 이야기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아요. ^^

누님 말씀에 공감해요. 요즘 자신과 조금 다른 사람을 보면 일부러 소외하고 차별하는 경향이 있어요.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닌텐도 게임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학생도 따돌림 받는다고 하더군요.

단발머리 2015-03-18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리뷰 읽고 있노라니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저는 `추위`를 잊게 해준다, 에서 맞아,맞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 같은 입시제도하에서 진짜 공부가 가능할까요?
저는, 어렵다고 봐요. 아하...

cyrus 2015-03-18 20:41   좋아요 0 | URL
그쵸? 저도 회의적으로 생각해요. 미래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막막합니다.

오쌩 2015-03-1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고픔을 잊는것 까지는 모르겠고.ㅎ
근심,걱정에서 잠시나마 초연해질수 있는 점은 저도 크게 공감해요.
예전 학교다닐때 야자시간에 책읽다가
선생님이 공부안한다고 책을 뺏아간적이 있는데, 문제풀이에 치중하는 공부,답맞추는 공부가 현실인 세상에서
제대로된 학교교육이 나올지 의문이네요


cyrus 2015-03-19 18:49   좋아요 0 | URL
저는 수업이 일찍 마쳐서 교과서를 덮고 책을 읽었는데 선생님한테 핀잔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때가 고3이라서 수능문제집이 아닌 소설책을 들춰보는 제자가 걱정이 되어서 하신 말씀이었지만, 잠깐이라도 책을 읽을 여유를 이상하게 보는 선생님의 생각이 실망스러웠어요.

개암나무 2015-03-27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따? 별별 따가 다 등장하네요;;; 헐;
그나저나 이 책 있었던가 하면서 찾아보니 갖고 있는건『책에 미친 바보』였네요.
평을 살피니 겹치는 부분이 있다고는 하는데 『책만 보는 바보』도 읽고 싶네용.

cyrus 2015-03-27 22:37   좋아요 0 | URL
책 제목이 비슷해서 저도 혼동할 때가 있습니다. ㅎㅎㅎ

간서치 2015-06-15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고 두고두고 다시 펴보고.. 읽다가 눈물도 나고 그랬어요.. 자꾸 손이 가는 새우깡 같은 책이었어요.. 아이들에게 읽어주기도 했고요..

cyrus 2015-06-15 20:04   좋아요 1 | URL
그래서 닉네임이 ‘간서치’군요. 정말 뜻이 깊은 닉네임이네요. 이덕무는 독서가의 워너비이자 <책만 보는 바보>는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하고, 가지고 있어야 할 책입니다.

간서치 2015-06-1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래서 간서치가 되고 싶어졌지요... 턱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목표를 크게 잡으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이 생에 못되더라도 다음생에라도 말이죠.

cyrus 2015-06-17 21:02   좋아요 0 | URL
간서치님은 목표를 꼭 이루실거라 믿습니다. 저도 많이 배워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