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페이지 ‘자유주의 – Liberalism’는 왜곡된 정보와 편향된 주장이 난무하는 세상을 비춰주는 자유주의의 등불이라도 되는 것처럼 중립적인 사실을 그럴듯하게 전달한다.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보기 좋게 포장한 글을 보면 페이지 관리자 혹은 게시물을 만드는 필자의 지적 수준이 의심된다. 논리력이 결여된 내용을 들먹이면서 자유의 가치를 표방한다. 자유주의의 의미를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로 이해하려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우려스럽다. ‘자유주의’ 페이지 게시물들은 사진과 짤막한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파워포인트 발표용 자료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이슈를 깊이 이해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날로 먹듯이 공부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간단한 이념이 아니다. 이런 간결한 근거 자료를 사람들은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근거 자료를 비판하는 정제된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사회문제를 편향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자유주의’ 페이지는 자신의 주장이 유리하도록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견강부회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주에 ‘<진격의 거인>의 정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이 게시물은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의 글을 토대로 만들었다. 한 위원은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을 예로 들면서 감성에 휩쓸리는 무지한 대중을 저격했다. 그러면서 거인을 ‘반이성 집단주의’로 비유하여 자유를 위해 이성을 지키려는 합리적 개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리고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그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거인』 그리고 『잠든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줄여서 ‘잠든 이성’이라고 하겠다)를 소개하면서 고야를 계몽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만화 속 거인을 무조건 이성을 거부하는 무지한 대중 또는 이를 몽매하게 만드는 여론으로 비유한 것을 적절하지 않다. 거인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합리적 인간’이라면 주인공 엘렌 예거가 거인으로 변신하는 줄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엘렌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캐릭터다. 그가 자유를 위협하는 거인을 조종하는 힘을 가진 상황은 역설적이다. 나는 <진격의 거인>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게시물의 주장을 반박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지 못했다면 만화 줄거리를 그럴듯하게 끼워 넣은 한 위원의 주장에 수긍할 뻔했다.

 

한 위원의 글에 비판받을 대목이 또 하나 있다. 한 위원은 만화에 나오는 거인의 디자인을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서 기원했으며 사투르누스를 ‘무지한 시간’으로 해석했다. 또 고야를 학살과 폭력의 광기에 맞서는 자유주의자라고 치켜세웠다. 고야의 거인 그림만 봐도 우리는 만화 <진격의 거인>이 저절로 연상된다. 그러나 이 유명한 거인 그림이 고야가 그리지 않은 것으로 판명났다. 2009년에 『거인』을 소장하고 있는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은 『거인』을 그린 화가를 고야가 아닌 그의 조수 어센시오 훌리아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거인』은 에스파냐를 호시탐탐 노렸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혹은 에스파냐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체제 권력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명확하게 통일된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 에스파냐를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잠든 이성』은 흔히 이성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진리의 침묵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성의 힘이 상실된 무지한 몽매의 경고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해석은 고야의 의도와 상반된다. 『잠든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는 판화집 《변덕》의 49번째 작품이다. 책상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사나이 뒤쪽에 부엉이와 박쥐가 날아든다. 그림 왼편에 보면 책상에 앉아서 펜을 쥔 부엉이 한 마리가 있다. 전통적으로 부엉이는 부정적인 동물로 전해내려 왔다. 어둠, 꿈, 어리석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부엉이가 무조건 흉조로만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로마 신화에서 부엉이는 지혜의 신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네)와 함께 다니는 신성한 새로 여겼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과 함께 나타난다’라고 언급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완전히 밤이 되기 전에 이미 어둠의 도래를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미래의 예측은 정확해진다. 밤은 이성이 잠에 취하는 무지한 시간이면서도 예술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의 시간이다. 고야가 활동했던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자들은 꿈을 이성의 반대라고 생각했지만, 고야는 꿈과 이성의 조화를 통한 예술을 강조했다. 그는 자유주의자를 신봉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했지만, 한편으로는 공상에 대한 동경을 강하게 느꼈던 낭만주의자였다. 고야는 『잠든 이성』 밑에 그림을 독자에게 설명하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써넣었다. ‘상상이 이성과 만나면 예술의 어머니가 된다.’ 이 문장은 고야가 낭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성이 잠들면 공상은 인간의 악마적 본능, 삶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광기로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고야의 부엉이는 낭만적인 황혼 위를 날다가 감성이 메마른 척박한 땅으로 내려와 잠든 사나이를 깨우려고 한다. 사나이가 일어나면 예술적 영감을 알려줄 것이다. 

 

고야의 그림 속에는 온통 괴물과 광기, 참혹과 전율로 가득하다. 그의 그림은 감상자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고야는 세상의 추악성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 폭로했다. 그래서 고야를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해서 비판정신이 투철한 화가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고야의 예술을 아울러 본다고 할 수 없다. 청력이 상실한 만년의 고야가 그린 그림에는 살육, 광기, 마법 같은 어두운 주제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추악하고 끔찍한 세상의 진실을 너무나도 가까이 봤던 탓일까. 고야는 누구보다 먼저 무지한 몽매에서 깨어났지만, 그의 눈은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원초적 광기가 자세히 들여다볼 정도로 너무나도 예민했다. 올더스 헉슬리는 고야를 ‘슬픔의 끝까지 알았던 인간’이라고 했다. 그런 고야가 자신의 그림이 정치색으로 덧칠되어서 제멋대로 해석되고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슬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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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6-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조차 없는 자유주의 게시글에 참담해집니다...하아. 거인=무지한 다수, 집단적 몽매 연결 자체도 오류지만, 제시한 `무표정`,`무뇌아`,`무언가 화난 표정`근거도 너무나 차별적이며 비논리적. 이상하게 보이면 감화원 보내던 시절의 시각이군요.
작가가 `무`자가 들어가는 단어나 관념에 대단한 오해가 있지 않나 싶네요; `만화에 빠지면 멍청이 대중된다`를 참 에둘러 말하신 듯...그리고 이어지는 고야 연결까지... 급피곤해지네요.
이 글 쓴 분은 다분히 의도에 치우쳐 그러셨겠지만, 어떻게 무의식이나 인간광기는 전혀 고려않고 이렇게 철저히 이원론적인 대립만으로 글을 쓸 수 있는지...휴, 한숨이.
cyrus님 이 글 쓰시느라 욕보신 듯...

cyrus 2015-06-08 20:30   좋아요 1 | URL
자유주의 페이지에 가끔 공감하는 글을 읽을 때가 있긴 합니다만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천 원짜리 지폐를 줍는 확률과 같아요. ‘진격의 거인=고야의 거인=무지한 몽매’ 이런 식으로 연관 지어 쓰면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허점이 보여요. 이 게시물 덕분에 고야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것 또한 몰랐던 것을 더 알기 위한 공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boooo 2015-06-0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다른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 보일 때가 있는데 조심해서 봐야 할 곳이더군요. 그런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죠.

cyrus 2015-06-08 20:33   좋아요 0 | URL
네. 자유주의를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으면서 게시물 내용이 무조건 맞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페크pek0501 2015-06-0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고 나니 대중의 착각, 다원적 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cyrus 2015-06-08 20:35   좋아요 0 | URL
대중을 혼란에 빠뜨려서 몽매한 집단으로 만드는 나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돌궐 2015-06-0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확신과 완강함으로 가득 찬 문장을 쓴다고 하더라구요.
알면 알수록 글쓰고 말하기가 더 힘든 법인데...

cyrus 2015-06-08 20:3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그리고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진솔한 비판을 무시하기도 하죠. 돌궐님의 말씀을 저도 깊이 새겨들어야겠습니다. 예전에 쓴 글 중에도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서 썼던 게 있을 겁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학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죽을 때까지 항상 공부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

 

 

 

 

지난주 토요일에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다음 날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대로 표현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확실한 근거가 없는 내용이 있으면 삭제하거나 수정한다. 최근 메르스 공포가 퍼지면서 메르스가 중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으로 알려졌다. 나는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여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중동지역에 있는 낙타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왔으므로 아프리카 지역도 메르스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추측성 짙은 내 주장이 본의 아니게 메르스에 관한 올바른 진실을 곡해하는 유언비어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오이밭에서는 신발끈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오해받을 만한 내용 때문에 유언비어 유포자로 억울한 누명 쓰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보충 설명을 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프리카도 메르스 발생 지역이 될 수 있다는 내 생각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비롯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메르스 감염의 주범인 중동지역의 낙타가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실만 가지고 아프리카도 메르스 발생 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성급하게 추론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메르스 관련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메르스는 중동지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아직 아프리카에서 메르스 감염자나 사망자가 나온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제한된 증거만 가지고 아프리카를 메르스 발생지역으로 추측하는 내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힌다. 근거 없는 주장 때문에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을 메르스 전파자로 오해하고 차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질병 전염에 대한 공포가 새로운 위험을 낳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년 우리나라는 에볼라 감염의 공포가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무지의 현상이 빚어진 적이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아프리카인을 경계하고, 국제 행사를 주관하는 모 여대는 아프리카 학생들의 행사 참여를 취소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질병에 대한 공포는 전염병에 대한 올바른 정보에 근거한 이성적인 믿음마저 마비시킨다. 에볼라 발생 지역을 아프리카와 연관 짓는 단순한 인식 때문에 질병의 위험성이 과도하게 강조되었고, 언론은 공포를 확산시켰다. 감성이 치우친 공포의 확산을 막지 못한다면 전염병 감염과 관련된 특정 지역인 및 국가 거주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시선도 확산한다.

 

 

‘메르스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 (강석기) / 동아사이언스 2015년 6월 1일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7116

 

 

동아사이언스에 <강석기의 과학카페>라는 이름으로 과학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강석기 기자는 어제 ‘메르스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질병의 위험성에 치중하여 중구난방 하는 언론 보도기사를 일일이 찾으면서 읽는 것보다는 보기 쉽게 깔끔하게 정리한 과학 전문기자의 글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최근에 밝혀진 연구 결과에 의하면 메르스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작년에 유행한 에볼라보다) 낮은 편이고, 강력한 전파력을 지닌 변이를 일으키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가 일어나기 쉬운 RNA 바이러스에 속하지만, 변이로 복제되는 오류를 수정하는 안전한 효소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메르스가 변이 가능성이 작다는 전제하에 변이를 일으키는 예상 밖의 변수를 대비하여 계속 연구하고 있다.

 

메르스 백신 또는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강조할수록 대중은 전염병의 존재감에 두려움을 떤다. 공포감에 지배당하여 마비된 이성은 상황에 대한 판단력도 같이 떨어진다. 메르스 치사율이 높지 않다는 근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감염 전파가 빠르게 확산하고 한 명씩 사망자가 생겨나는 허술한 방역 실태를 부정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물론 메르스는 위험한 질병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을 명확하게 다루지 않는 언론에서 떠는 호들갑에 비하면, 메르스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글은 질병에 대한 공포를 막아내는 방패 역할을 한다. 우리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잘못된 유언비어의 침투에 이성의 방어벽은 허물어지지 않으며 참된 진실만 바라보는 눈을 우리 스스로 지켜낼 수 있다. 그 눈이 감겨져 잠드는 순간, 이성은 극단적인 논리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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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06-0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열하게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자세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cyrus님 말씀이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만, 사실 또 한편으로는 저만해도 이성적인 판단이 자꾸 흐려지는 것 같아요. 약간씩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언론과 정부의 책임도 큰 것 같구요.)

cyrus 2015-06-05 21:34   좋아요 0 | URL
저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불안감이 생겨요. 오늘 서울시와 정부가 방역 대응책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니 골치가 아픕니다. 없던 병이 생길 것 같습니다. ㅎㅎㅎ

수이 2015-06-0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기 자세가 너무 부실했어_ 암튼 축하할 일 축하하려고 왔어. 2등 축하해_ :)

cyrus 2015-06-05 21:35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서 하루를 보내겠죠? 누님도 2등 축하해요! ^^

수이 2015-06-05 21:38   좋아요 0 | URL
이게 마냥 불안에 떨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 알 사람들은 다 아는데_ 정부가 개 같이 아니다 개를 욕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_ 지난해 세월호에 이어서 이번 메르스 케이스도 그렇고 아주 대한민국 밑바닥을 여실히 들여다보게 만드네.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
윌리엄 브리튼 지음, 오일우 외 옮김 / 모음사 / 1992년 6월
평점 :
품절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는 총 38편의 단편 추리소설을 모은 책이다. (책 제목을 줄여서 ‘존 딕슨 카’라고 하겠다) 사실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상당히 짧은 글이라서 콩트에 가깝다. 역자는 서문에 이 책을 만들게 된 배경을 밝혔다. 미스터리 콩트만 모아서 책 한 권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 외국의 단편집과 추리물을 게재하는 잡지를 뒤져 봤다고 한다. 그래서 1년 동안 150여 권의 책을 뒤져서 400편이 넘는 콩트를 모았고, 여기에 38편을 추려서 선정했다. 실제로 《존 딕슨 카》 앞표지를 보면 공동 역자 이름 왼쪽에 ‘정선·번역’이라고 표기되었다. 공동 역자는 오일우, 오수현 씨다. 두 사람은 같은 성씨에다가 문리과 대학을 졸업했다(오일우 씨는 서울대, 오수현 씨는 성균관대). 역자 이력만 봐도 현재 두 사람 다 연로한 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서울대 문리대는 1975년에 인문대, 사회과학대, 자연과학대로 해체되었다. 《존 딕슨 카》의 초판 발행연도는 1992년이다. 이 한 권의 책을 만들려고 외국 미스터리 콩트를 수집했을 때 두 역자의 나이는 대략 40대 초중반으로 접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해외 추리물, 특히 고전 중심의 단편 앤솔로지가 계절을 타지 않고 많이 나왔는데《존 딕슨 카》 도 그 출판 열풍 속에 탄생한 책이다. 그렇다고 《존 딕슨 카》가 유명 추리소설 작가의 대표작들만 엄선해서 너무 뻔하게 느껴지는 책은 아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명 작가의 미스터리 콩트를 접할 수 있는 진귀한 책이다. 두 역자는 미스터리 콩트를 선정하는 네 가지 기준을 명확하게 밝혔다. 첫 번째 7쪽 이하의 짧은 분량, 두 번째 재미있을 것, 세 번째 한 작가당 한 편, 네 번째 다양한 내용일 것. 38편의 미스터리 콩트 중에는 독자의 허를 찌르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으로 결말을 드러내는 훌륭한 작품이 있는 반면에 이야기가 긴박감 있게 전개되다가 마무리는 개그로 허무하게 끝나는 작품도 있었다. 두 역자의 노고가 돋보이는 미스터리 콩트 모음집의 표제가 된 윌리엄 브리튼의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는 존 딕슨 카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도 허무한 결말에 쓴웃음이 날 수도 있으니까.

 

에드가 골트는 삼촌과 사는 가난한 고아다. 에드가는 열두 살 때 무심코 존 딕슨 카의 소설을 읽고 나서 자신도 언젠가는 밀실 살인을 실행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존 딕슨 카의 소설에 나오는 밀실 살인을 완벽하게 모방하여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존 딕슨 카, 심지어 그의 또 다른 필명이 카터 딕슨으로 낸 작품들을 무시무시한 속도로 읽었고, 작품 속에 나오는 밀실 사건을 섭렵한다. 본의 아니게 카는 에드가의 살인 계획을 돕는 멘토가 되었다. 에드가는 삼촌의 재산을 차지하려고 밀실 살인의 희생자를 삼촌으로 정한다. 삼촌을 죽인 뒤 굴뚝으로 탈출하기로 계획한다. 비록 카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수법이긴 하지만, 에드가는 이를 멋지게 실행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용의자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알리바이를 꾸며냈고, 삼촌의 집을 방문한 레뮤얼 스토퍼와 의사 해럴드 크로울리마저 속일 작정이었다. 카의 소설처럼 에드가는 2층에 있는 서재 안에서 삼촌을 죽이고 굴뚝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고는 뻔뻔하게 삼촌의 지인들이 있는 음악실로 향했다. 스토퍼는 삼촌이 내려오지 않자 2층으로 올라간다. 에드가는 자신의 밀실 살인이 계획대로 성공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2층에서 내려온 스토퍼는 삼촌의 책상에서 꺼내 온 권총을 쥔 채 등장하여 삼촌을 죽인 범인으로 에드가를 지목했다. 에드가가 꾸민 완전 밀실 범죄는 실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에드가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서재의 문을 잠그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이 책에 수록된 총 38편의 미스터리 콩트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작가들의 작품까지 포함되어 있다.

 

 

 

1. 오 헨리 - 고백 (The Confession of.....)
2. 작자 미상 - 절묘한 변호 (An Ingenious Defense)
3.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 - 백만에 하나 있는 우연 (The Unreckonable Actor)
4. 페렌츠 모나르 - 최선책 (The Best Policy)
5. 앤서니 길버트 -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Over My Dead Body)
6. 제임스 홀딩 - 장갑 낀 손 (Hand in Glove)
7. 매트 테일러 - 영화관의 강도 사건 (Mcgarry and the Box-Office Bandits)
8. 잭 리치 - 봉 (鳳, Setup)
9. 에드먼드 크리스핀 - 샤프 펜슬 (The Pencil)
10. W. 하이덴펠트 - 달빛 (Moonshine)
11. 엘러리 퀸 - 세 사람의 과부 (The Three Windows)
12. 제임스 굴드 커즌스 - 목사의 오명汚名 (Clerical Order)
13. 폴 태보리 - 조용한 여행자 (The Very Silent Traveler) 
14. 존 D. 맥도널드 - 그앤 참 좋은 애였는데 (He Was Always a Nice Boy)
15. 제임스 N. 영 - 번지수가 틀렸다 (The Wrong House)
16. 팻 매거 - 선거 열풍 (Campaign Fever)
17. 빅터 캐닝 - 벽 속으로 (Through the Wall)
18. 존 콜리어 - 크리스마스엔 돌아온다 (Back for Christmas)
19. 찰스 G. 노리스 - 존 로시터의 아내 (John Rossiter's Wife)
20. 시어도어 매시슨 - 분재 (盆栽, No Motive)
21. 케니스 J. 매캐프리 - 은퇴 (The Resignation)
22. 로버트 H. 커티스 - 프로 (The Pro)
23. 사키 - 로라 (Laura)
24. 프레드 S. 토비 - 혼자 여행하는 아이 (Child on Journey)
25. 찰스 아인슈타인 - 전화 번호 이야기

(The Episode of the Telephone Number)
26. 부알로 나르스작 - 까마귀 (Le Cordeau)
27. 피터 해리스 - 등산길의 죽음 (Death on a Mountain)
28. 잭 샤키 - 벌레와의 대화 (Conversation with a Bug)
29. 조르주 심농 - 석 장의 렘브란트 (Les Trois Rembrandts)
30. A.F. 오래슈닉 - 사냥터 (Hunting Ground)
31. 듀에인 데커 - 심각한 문제 (Weighty Problem)
32. 윌리엄 브리튼 -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
(The Man Who Read John Dickson Carr)
33. 에드 월리스 - 의심 (A Case of Suspicion)
34. J.F. 피어스 - 비장의 카드 (Ace in the Hole)
35. 찰스 보먼트 - 피를 나눈 형제 (Blood Brother)
36. 에드워드 D. 호크 - 어디를 가도 있는 사나이

(The Man Who Was Everywhere)
37. 리처드 매드슨 - 물 한 모금 (A Drink of Water)
38. 애거서 크리스티 - 이중 단서 (Double Clue)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는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주도한 추리소설 릴레이 창작에 참여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추리소설을 구상할 정도로 추리소설을 좋아했다고 한다. S.S. 반 다인얼 스탠리 가드너 그리고 사무엘 홉킨스 애덤스를 비롯한 7명의 추리소설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프랭클린이 제공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야기를 집필했는데 이 작품들은 《대통령의 미스터리》(산다슬, 2005년/절판)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었다. 잭 리치는 독자에게 반전을 주는 유머 쇼트 미스터리의 대가다. 그의 또 다른 단편 추리소설(제목은 『누가 ‘귀부인’을 가졌는가』)은 《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테리 걸작선》(도솔, 2002년/품절)에 실려 있다. 존 콜리어, 에드워드 D. 호크, 사키 역시 잭 리치와 함께 미스터리 앤솔러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작가다. 존 D. 맥도널드는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의 작가이며 그의 대표작 《사형집행인들》은 두 번이나 영화화되었다.  부알로 나르스작은 프랑스의 추리작가 피에르 부알로와 토마스 나르스작의 공동 필명이다. 대표작은 《악마 같은 여자》(동서문화사, 2003년).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의 원작이 부알로 나르스작의 소설 《죽음의 입구》(D'Entre Les Morts)이다. 조르주 심농은 매그레 반장이 나오는 추리물 시리즈의 작가로 유명하다. 리처드 매드슨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 원작자로 유명하며 공포, SF, 판타지 등 장르를 넘나들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으나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중 단서』는 38편의 작품 중에서 분량이 조금 긴 단편이다. 에르퀼 푸아로가 등장하는 작품이며 최근에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8 : 빅토리 무도회 사건》(황금가지, 2015년)에 수록되어 있다. 2, 3, 4, 5, 12번 작품은 《미니 미스터리》(청년사, 1996년/절판)에 실려 있다. 《미니 미스터리》도 《존 딕슨 카》처럼 짧은 미스터리 콩트들만 모은 앤솔로지다. 《미니 미스터리》에 수록된 미스터리 콩트들은 엘러리 퀸이 선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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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02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희귀 본을 어찌 구하시는지...^^

cyrus 2015-06-03 16:34   좋아요 0 | URL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따로 메모하고, 기억해둡니다. 그리고 헌책방에 가거나 중고샵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사고 싶은 책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합니다. ^^

csp 2015-06-03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데 꼭 한번 읽어보고 싶은 선집이로군요. 촌스러운 표지를 보고 있자니 어렸을 적 읽던 팬더 추리 걸작 시리즈도 생각이 납니다.

cyrus 2015-06-03 16:36   좋아요 0 | URL
팬더추리걸작 시리즈도 헌책방에서 가끔 발견하곤 합니다. ^^

2015-11-27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06-03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구하셨네요.ㅎㅎ 완역본의 묵직함도 좋지만, 편집이 잘 된 어떻게 보면 독립영화 같은 그런 책도 참 좋습니다.

cyrus 2015-06-03 16:37   좋아요 0 | URL
오탈자가 있긴 하지만, 읽는 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

에이바 2015-06-08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고르는 안목이 부럽습니다. 존 딕슨 카 표지인물은 숀 펜 같은데요? 대통령의 미스터리 표지는 로트렉 작품이고요. 눈 크게 뜨고 아는 작품 없나 찾다가 표지만 알아차렸네요. ㅎㅎ

cyrus 2015-06-08 21:16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물만두님의 서평 덕분에 알게 되었어요. 안목이 있다기보다는 이웃님들이 남기는 서평을 읽으면서 좋은 책을 고릅니다. ^^
 

 

 

 

즐거운 주말을 맞아야 할 시기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소식에 기분이 심란하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메르스 국내 환자가 늘어나 있다. 메르스의 확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감염에 대한 공포다. 여기에 SNS에서 떠돌아다니는 잘못된 정보가 국민의 혼란을 가중한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건당국의 대응 과정에서 전체 감염자는 두 자릿수에 이르렀다. 심각한 상황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건당국은 인터넷과 SNS에서 떠도는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의뢰해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감염환자가 역학조사를 거부하면 200만 원의 벌금형을 처하며 의료진이 감염 의심 환자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에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보건당국은 브리핑이나 설명 자료를 통해 메르스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시하고 있지만, 대중의 혼란과 두려움을 단번에 잠재우는 것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현재까지 메르스의 명확한 감염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모든 환자가 직·간접적으로 중동지역과 연관이 있다. 메르스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낙타는 메르스 전염의 매개체로 지목될 것이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사는 낙타에서 메르스 항체가 발견되었다. 메르스 바이러스(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낙타 젖에서 최소 삼일 이상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메르스 환자가 급증했던 중동에서는 살균하지 않은 낙타 젖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루에 메르스 관련 언론기사가 수십 개 이상 쏟아져 나온다. 새 감염자가 나왔다는 긴급속보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해당 기사를 확인해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기사를 보면 특별한 내용은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메르스 관련 기사들은 천편일률이다. ‘Ctrl+C, Ctrl+V’ 기능을 쓴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름 있는 주류 언론 서 너 개에서 보도된 메르스 관련 기사들을 꼼꼼히 읽어보면 모두 다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메르스를 중동지역에서 시작된 호흡기 질환으로 소개했다. 보건당국은 중동지역에 방문한 자는 의료기관을 방문해 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접한 대중은 메르스의 근원지를 중동으로 인식하기 쉽다.

 

 

 

 

 

 

 

 

 

 

 

 

 

 

 

 

 

보건당국과 언론은 메르스의 감염 경로에 대해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중동지역에 있는 낙타가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작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6백 명이 넘는 메르스 환자가 급증하여 보건부 장관이 교체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낙타의 수는 26만 마리. 중동지역에서 낙타가 제일 많은 나라가 예멘(40만 7천 마리)이다. 예멘에서 발견한 메르스 환자는 1명에 불과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맨 다음으로 낙타가 많이 사는 아랍에미리트에서 70명이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사는 낙타를 모두 집계해서 나온 2천 700만 마리에 비하면 중동지역 낙타의 수는 비교적 적은 편에 속한다. 아프리카에 낙타가 많이 산다. 소말리아에 700만 마리, 케냐에 300만 마리가 살고 있다. 낙타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의 낙타 수만 합쳐도 천만 마리. 2014년 <떠오르는 전염병>이라는 학술지에는 이집트의 도축장 네 곳에서 채취한 낙타 52마리의 혈액 시료 가운데 48개 시료에서 메르스 항체가 발견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메르스 항체가 보유한 낙타 대부분은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왔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변이가 일어난다면 사스(SARS)에 맞먹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될 수 있다. 낙타가 많이 사는 아프리카도 예외가 아니다. 메르스의 발병과 낙타의 상관관계는 이미 몇 차례 실험으로 검증되었다. 전문가들은 국내의 동물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없으므로 동물원의 낙타를 특별히 경계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안심하기에 이르다. 이제 우리나라도 전염병 안전 국가가 아니다. 아프리카가 전염병이 많이 창궐하는 지역인 만큼, 보건당국은 아프리카에서 체류한 사람들도 메르스 진단 검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단 한 번도 아프리카 낙타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지 않은가.

 

 

 


※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한 도서는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도서출판 MID, 2014년)이다. 내가 알기로는 메르스에 대한 내용이 유일하게 실린 대중 과학 서적이다. 저자는 강석기 씨로, 12년 동안 ‘동아사이언스’ 과학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는 강석기 씨가 ‘동아사이언스’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추려 모은 책이다. 칼럼 제목은 ‘낙타와 메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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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르스의 습격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
    from 冊性愛子 2015-06-03 17:08 
    지난주 토요일에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다음 날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대로 표현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확실한 근거가 없는 내용이 있으면 삭제하거나 수정한다. 최근 메르스 공포가 퍼지면서 메르스가 중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으로 알려졌다. 나는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여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AgalmA 2015-05-31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타를 타본 적이 있는데, 보기와 달리 얌전하지 않더군요. 머리를 흔들어대며 콧물, 침 마구 튀기고 쉬도 수시로 엄청난 양을 방출합니다; 글의 위험성과 좀 상반된 댓글이긴 합니다만; 낙타의 천방지축 성질을 좀 알리고 싶었기에...
이런 경우 예방도 예방이지만 빠른 안전대책이 제일 중요한데...전반적으로 안전불감증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정부는 위협으로 으름장에다...

cyrus 2015-06-02 20:34   좋아요 0 | URL
정말 중요한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낙타 침 발사 공격이 북한 미사일보다 더 무섭습니다.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낙타 침 공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경악했습니다. 침을 뱉는 것이 아니라 위 안에 있는 소화물까지 뱉어내는 것이더군요. 침과 소화물을 뱉을 때 콧물도 섞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낙타의 콧물이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낙타의 침이 메르스 바이러스가 살기에 좋은 성분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과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개정판 민음의 시 42
문인수 지음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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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일생에 세 번 운다는 말이 있다.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올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나라가 망했을 때. 그런데 어디 눈물 흘릴 일이 고작 세 가지밖에 없을까? 남자가 흘러야 할 눈물 세 가지는 남자가 여자보다 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허세일 뿐이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마음껏 울어 볼 때도 있어야 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물을 흘리게 된다. 눈물에 감정이 개입되면 그것은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식의 관념은 사람 간의 형식과 격식에 치중하게 되고 솔직한 정서를 억누른다.

 

슬프다는 것. 그것은 분노나 미움의 감정보다는 덜 공격적이다. 문인수 시인은 시를 쓰기 위해 슬픔의 감정을 선택했다. 다만, 그 슬픔은 시인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려고 슬픔의 내성을 키운다. 시집 《뿔》(민음사, 초판: 1992년 / 개정판: 2007년)에 나오는 눈물은 마치 윤활유처럼 고독한 감정을 쓰다듬는다.

 

 

 흐린 날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은 비.

 젖은 것들의 몸이 잘 보인다 치잉 칭 감기는, 빗줄기의 한쪽 끝을 몰고 새 날아간다. 건물과 건물 사이 세 뼘 잿빛 하늘 가로질러 짧게 사라진다. 창유리 창유리들이, 나무 나무의 이파리 이파리 풀잎들이 모두 그쪽을 보고 있다 잘 보이는, 노리 속의 새 길게 날아가는 아래, 젖어 하염없이 웅크린

  몸, 섬 같구나 그의 유배지인 몸.

 

(「비」, 13쪽)

 

 

슬픔의 내성을 키운다는 것은 슬픔을 슬픔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슬픔을 하나의 성찰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가 슬픔으로 뒤바뀌는 변주의 과정을 시인은 내버려 둔다. 불로 변하는 슬픔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시인의 마음을 뜨겁게 태워도 크게 억울해하지 않는다. 시인은 슬픔의 힘을 믿는다. 슬픔의 힘으로 마음 한구석에 남은 고독의 앙금까지 싹 다 태워버리는 것이 고독한 현실에 원망을 품고 있는 것보다는 유익하기 때문이다.

 

 

말 걸지 마라.

 

나무의 큰 키는

하늘 높이 사무쳐 오르다가 돌아오고

땅속 깊이 뻗혀 내려가다가 돌아온다.

나갈 곳 없는

나무의 중심은 예민하겠다.

도화선 같겠다.

무수한 이파리들도 터질 듯 막

고요하다.

 

누가 만 리 밖에서 또 젓고 있느냐.

비 섞어, 서서히 바람 불고

 

나무의 팽팽한

긴 외로움 끝에 와서 덜컥,

덜컥, 걸린다.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 같다.

저 나무 송두리째

저 나무 비바람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다.

 

나무는 폭발한다.

 

(「슬픔은 물로 된 불인 것 같다」, 14~15쪽)

 

 

인간은 누구나 슬픔을 안고 살며 그 슬픔을 통해 성숙한 자아를 이루기도 한다.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라. 크게 웃고 떠드는 사람일수록 마음속 그늘이 깊고, 희망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심장으론 다른 이들보다 더 차가운 절망의 피가 흐른다. 문인수 시인의 시에는 고독을 꼭 극복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다림이 담겨 있지 않다. 살아있는 내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제 몫의 슬픔이다. 「까마귀」에서 시인은 허허벌판 한가운데 드러내놓고 울 작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건한 시인이라고 왜 슬픔을 모르겠는가. 강건하기에, 슬픔의 물기는 더 축축하다.

 

 

나는 지금

동구 밖 홰나무 꼭대기에 서 있다

흘끔거리다가 마른 나뭇가지에 주둥이 비비다가

가슴패기 어깻죽지 털다가 꽈악꽈악 소리 지르다가도

잘 보인다

검다.

도무지 열어젖힐 수 없구나 온몸을 오욕칠정을

다 뒤져 보아도 나는,

숯이다.

나는 지금

동구 밖 홰나무 꼭대기에 서 있다.

잘 보인다

더는 타오르지 못하겠다.

 

허허벌판으로 가야겠다.

 

번개 우레 쾅 쾅 목 놓아

목을 놓아, 그 끝 간 데 없는 울음이 돼야겠다.

젖어, 자야겠다.

 

(「까마귀」, 23쪽)

 

 

우리는 눈물 속에서 그 사람의 참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거짓된 마음, 교만한 마음에서는 절대로 눈물이 나올 수 없다. 바닥 없는 슬픔은 마른 눈물로 쩍쩍 갈라질 뿐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는다. 《뿔》에는 진실한 눈물의 흔적이 보인다. 어찌 보면 이 시집은 눈물로 만들어 낸 진주같이 아름답기만 하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본 자들이 인생을 안다는 옛말이 있는 것처럼 눈물에 젖은 시를 읽는다면 자기 존재를 알게 되리라. 우리 모두 지금 슬픔이란 감정으로 조금씩 물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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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05-29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루스트의 말이 생각납니다.
슬픔이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슬픔은 우리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그능력가운데 일부를 잃어버린다.

오쌩 2015-05-2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말대로 슬픔이야말로 정신적 성찰과 지혜를 선물하는거 아닐까 싶어요.
노폐인 노개인^^

cyrus 2015-05-30 20:03   좋아요 0 | URL
적당한 슬픔과 눈물은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치유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문인수 시인의 시를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

붉은돼지 2015-05-2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문장을 보니 뜬금없이 떠오르는 문구가 있습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화장실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ㅋ

분위기 파악 못하고 죄송합니다 ㅡㅡ;;;

cyrus 2015-05-30 20:04   좋아요 0 | URL
사실 저 화장실 문구로 첫 문장을 쓸려고 생각했었습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15-05-29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정말 책을 다양하게 읽으시는군요~ 시집이라면 원래 근사하지만 옮겨주신 시들이 참 좋네요^^

cyrus 2015-05-30 20:05   좋아요 0 | URL
시집에 제가 소개한 것보다 더 좋은 시들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