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주말을 맞아야 할 시기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소식에 기분이 심란하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메르스 국내 환자가 늘어나 있다. 메르스의 확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감염에 대한 공포다. 여기에 SNS에서 떠돌아다니는 잘못된 정보가 국민의 혼란을 가중한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건당국의 대응 과정에서 전체 감염자는 두 자릿수에 이르렀다. 심각한 상황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건당국은 인터넷과 SNS에서 떠도는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의뢰해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감염환자가 역학조사를 거부하면 200만 원의 벌금형을 처하며 의료진이 감염 의심 환자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에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보건당국은 브리핑이나 설명 자료를 통해 메르스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시하고 있지만, 대중의 혼란과 두려움을 단번에 잠재우는 것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현재까지 메르스의 명확한 감염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모든 환자가 직·간접적으로 중동지역과 연관이 있다. 메르스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낙타는 메르스 전염의 매개체로 지목될 것이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사는 낙타에서 메르스 항체가 발견되었다. 메르스 바이러스(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낙타 젖에서 최소 삼일 이상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메르스 환자가 급증했던 중동에서는 살균하지 않은 낙타 젖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루에 메르스 관련 언론기사가 수십 개 이상 쏟아져 나온다. 새 감염자가 나왔다는 긴급속보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해당 기사를 확인해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기사를 보면 특별한 내용은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메르스 관련 기사들은 천편일률이다. ‘Ctrl+C, Ctrl+V’ 기능을 쓴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름 있는 주류 언론 서 너 개에서 보도된 메르스 관련 기사들을 꼼꼼히 읽어보면 모두 다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메르스를 중동지역에서 시작된 호흡기 질환으로 소개했다. 보건당국은 중동지역에 방문한 자는 의료기관을 방문해 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접한 대중은 메르스의 근원지를 중동으로 인식하기 쉽다.

 

 

 

 

 

 

 

 

 

 

 

 

 

 

 

 

 

보건당국과 언론은 메르스의 감염 경로에 대해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중동지역에 있는 낙타가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작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6백 명이 넘는 메르스 환자가 급증하여 보건부 장관이 교체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낙타의 수는 26만 마리. 중동지역에서 낙타가 제일 많은 나라가 예멘(40만 7천 마리)이다. 예멘에서 발견한 메르스 환자는 1명에 불과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맨 다음으로 낙타가 많이 사는 아랍에미리트에서 70명이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사는 낙타를 모두 집계해서 나온 2천 700만 마리에 비하면 중동지역 낙타의 수는 비교적 적은 편에 속한다. 아프리카에 낙타가 많이 산다. 소말리아에 700만 마리, 케냐에 300만 마리가 살고 있다. 낙타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의 낙타 수만 합쳐도 천만 마리. 2014년 <떠오르는 전염병>이라는 학술지에는 이집트의 도축장 네 곳에서 채취한 낙타 52마리의 혈액 시료 가운데 48개 시료에서 메르스 항체가 발견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메르스 항체가 보유한 낙타 대부분은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왔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변이가 일어난다면 사스(SARS)에 맞먹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될 수 있다. 낙타가 많이 사는 아프리카도 예외가 아니다. 메르스의 발병과 낙타의 상관관계는 이미 몇 차례 실험으로 검증되었다. 전문가들은 국내의 동물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없으므로 동물원의 낙타를 특별히 경계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안심하기에 이르다. 이제 우리나라도 전염병 안전 국가가 아니다. 아프리카가 전염병이 많이 창궐하는 지역인 만큼, 보건당국은 아프리카에서 체류한 사람들도 메르스 진단 검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단 한 번도 아프리카 낙타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지 않은가.

 

 

 


※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한 도서는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도서출판 MID, 2014년)이다. 내가 알기로는 메르스에 대한 내용이 유일하게 실린 대중 과학 서적이다. 저자는 강석기 씨로, 12년 동안 ‘동아사이언스’ 과학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는 강석기 씨가 ‘동아사이언스’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추려 모은 책이다. 칼럼 제목은 ‘낙타와 메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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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르스의 습격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
    from 冊性愛子 2015-06-03 17:08 
    지난주 토요일에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다음 날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대로 표현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확실한 근거가 없는 내용이 있으면 삭제하거나 수정한다. 최근 메르스 공포가 퍼지면서 메르스가 중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으로 알려졌다. 나는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여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AgalmA 2015-05-31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타를 타본 적이 있는데, 보기와 달리 얌전하지 않더군요. 머리를 흔들어대며 콧물, 침 마구 튀기고 쉬도 수시로 엄청난 양을 방출합니다; 글의 위험성과 좀 상반된 댓글이긴 합니다만; 낙타의 천방지축 성질을 좀 알리고 싶었기에...
이런 경우 예방도 예방이지만 빠른 안전대책이 제일 중요한데...전반적으로 안전불감증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정부는 위협으로 으름장에다...

cyrus 2015-06-02 20:34   좋아요 0 | URL
정말 중요한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낙타 침 발사 공격이 북한 미사일보다 더 무섭습니다.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낙타 침 공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경악했습니다. 침을 뱉는 것이 아니라 위 안에 있는 소화물까지 뱉어내는 것이더군요. 침과 소화물을 뱉을 때 콧물도 섞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낙타의 콧물이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낙타의 침이 메르스 바이러스가 살기에 좋은 성분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과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