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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ㅣ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1001-174] 지킬박사와 하이드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 이상 <거울> 중에서 -
사회적 인물들의 주먹질과 매질
최근에 모 대기업 회장의 친척관계인 재벌 2세가 노동자를 구타하고 이에 대한 매 값을 지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적인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게 되자 재벌 2세의 행동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 사건이 터지고 난 후, 또 한 번 부자들에 대한 대중의 냉소적인 시선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돈과 권력이 많은 자의 비인간적인 횡포에 국민들 머리에 뿔이 나고 만 것이다. 자신보다 연세가 많으며 자신의 생존권을 되찾기위해서 홀로 1인 시위를 벌인 노동자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한 것은 문제가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그 자신이 행한 폭행을 금액으로 계산 처리하여 지불한다는 점은 자신의 성숙되지 않은 인격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만 셈이다.
이번 재벌 2세의 폭행 사건 이전에도 사회 내에서 공공의 인물로 알려진 유명인사들의 폭행 사건이 많이 있었다. 최근에 막을 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개최되기 전 쯤에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가 고급 주점에서 여종업원을 성추행하고 경비원들을 폭행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그 선수의 아버지가 유명 대기업의 회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뉴스에서도 소개되었지만 이번 폭행 사건만큼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그 뉴스가 전파되고나고 한 달 뒤에 문제의 국가대표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그 선수의 문제적인 행동은 잠잠해졌다. 재벌 2세들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바른 자세와 호감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할 연예인들도 자신들이 일으킨 폭행으로 인해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인기리에 방영되던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남자 탤런트가 자신의 후배 여성 연기자에게 폭행을 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출연하던 드라마에서 중도 하차를 하고 말았다.
지킬 박사의 고백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지킬 박사는 인간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전형적이면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현대인의 자아분열 그리고 이중인격자를 우리는 ' 지킬 & 하이드' 라고 비유하면서 부르기도 한다. 이 소설이 발표된지 124년이나 되었는데도 지킬 박사의 이야기는 꾸준히 읽혀지고 있으며 영화, 뮤지컬로 각색되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모든 인류들의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이중성을 포착한 작가의 관찰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백년이 지난 소설들은 고리타분하며 진부적인 느낌이 드러나는 고전으로 취급받기 쉽상인데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원작으로 읽어도 줄거리를 무척 흥미진진하다.
특히,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악마의 본성을 지닌 또 하나의 자아에 굴복당하고 마는 지킬 박사의 내면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결국, 자신 고유의 자아인 헨리 지킬로 돌아오지 못한 채 박사는 자살하고 마는데 그가 자살하기 전에 남긴 유서에는 그동안 말 못했던 자아 분열의 고통과 그런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들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18xx년에 태어났다. 많은 재산을 상속받았고 그밖에도 훌륭한 신체를 물려받았으며 천성적으로 부지런했다. 학식 있고 훌륭한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일을 기뻐했다. 따라서 당연히 명예롭고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의 가장 큰 단점은 쾌락을 탐하는 성향이었다. 쾌락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만, 고고한 자긍심으로 대중들 앞에서 철저하게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오만한 욕망을 가진 내게 쾌락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욕망을 감추었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킬 박사와 하이드> p 105 -
지킬 박사는 우리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즐거운 감정을 좋아하는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는 인간으로서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망의 감정을 스스로 억제하고 감추려고 하였다. 지킬 박사는 남에게 과시하는 욕망의 감정은 자신의 부조리함 혹은 추악한 본성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하였다. 결국에는 지킬 박사는 자신의 이중성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쾌락을 향한 탐욕은 지킬 박사를 선과 악의 본성으로 갈라진 이중성이 만들어낸 은밀하고도 위험스러운 유혹의 늪으로 향하게 하였다.
저주받은 약물을 복용하고난 뒤, 악의 본성으로만 가득찬 하이드로 변하면서 그동안 마음 속에 감추어두었던 폭력성을 드러낸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가 되어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행위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는 약물 복용을 멈추지 않는다. 타인들에게 드러나기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감추웠던 지킬 박사의 욕망과 쾌락은 하이드라는 제2의 자아의 발현을 통해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통해서 자신의 쾌락을 탐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이중적인 본성을 인정한 지킬 박사의 고백은 나쁜 감정들을 남에게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 살아야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평상시에 생활할 때는 자신의 이중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킬 박사처럼 '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 ' 이 되기 위해서 추악한 감정과 본능을 숨기려고 한다. 우리들뿐만 아니라 정치인, 연예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 사람' 이다.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서 항상 올바른 자세와 밝은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힘든 내색이나 화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문단속한다. 하지만 억지로 감추어두었던 추악한 본성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다. 지킬 박사의 친한 동료인 어터슨이 말한 것처럼 숨기려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꼭 찾아내는 사람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악한 본성을 ' 찾아내는 사람 ' 은 자신이 아닌, 우리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이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한 폭력을 저지른 남자 탤런트는 사건이 알려지게 된 이후에 한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자살하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하이드의 위험성을 알고 난 뒤 지킬 박사는 경찰들로부터 체포당하기 전에 자살을 하고 만다. 인간은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발현하고나서야 자기 자신의 모순적인 이중성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상의 시 구절처럼 현실적인 자아와 내면적 자아가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한다. 쾌락과 욕구로 가득한 내면적 자아가 현실적 자아가 내민 악수를 받지 않을 정도로 귀가 먼 '괴물' 하이드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