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ㅣ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평점 :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미술사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수없이 등록되는 미술 관련 신간도서를 확인한다거나, 도서관에서 미술 관련 책이 꽂혀 있는 서가를 둘러보게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많았다.
' 우리나라에는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서양미술사 책이 많은데,
유독 우리나라 미술사 책이 많이 나오지 않은걸까? "
에른스트 곰브리치와 호스트 잰슨의 <서양미술사>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꾸준히 팔리면서도 읽고 있는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 개론서이다. 서양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이나 서양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이 꼭 읽게 되는 책이 단언 곰브리치가 쓴 책이다. 900페이지 정도의 양을 자랑하는 이 두꺼운 미술사 책이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에는 수준 높은 미술의 역사와 이론들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한 저자의 문장력이 한 몫을 하고 있지만, 이런 저자의 의도는 서양미술에 대한 우리나라 독자들의 지대한 관심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도 있었다. 그래서 곰브리치 이외에도 외국의 대중 미술 전문가들이 쓴 책들이 많이 출판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이주헌, 한젬마, 이명옥 씨와 같은 ' 대중들을 위한 미술 ' 이라는 포맷으로 서양미술을 소개하는 전문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출판된 미술 관련 도서들 중에서는 서양미술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정작 대중들을 위한 우리나라 미술을 소개하는 책의 출판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을 소개하는 책이 많이 출판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홍준 씨는 이전에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었던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조명함으로써 문화재 탐사 붐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밖에도 추사 김정희, 한국의 도자기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을 펴내면서 대중적인 우리나라 미술 저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강우방 씨는 솔 출판사에 기획된 ' 한국 미의 재발견 ' 시리즈에 참여하여 우리나라 불교 조각과 탑의 미적 가치를 소개하였다. 전호태 씨는 고구려 벽화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故 오주석 씨는 단원 김홍도 등과 같은 조선 시대의 풍속화가들을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게 하였다.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이사로 역임하고 있는 진홍섭 씨가 쓴 <한국미술사> 등 우리나라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학술적 시도가 있었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인 단점이다. 우리나라 미술 전공자들에게는 이런 책의 등장은 크게 환영받을 일이었지만 반면 대중들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어렵기만 하다. (진홍섭 씨가 쓴 이 미술사 역시 900페이지 정도가 된다) 이런 활발한 저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만은 않은게 사실이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의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 문화는 중국의 영향으로부터 받은 문화라는 인식을 가지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의 문화를 외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개된 우리나라 미술은 미시적인 내용들이었다. 고구려 미술, 조선 시대의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로 두드러지게 갈라져 있으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미술의 역사를 조명하고 있는 책이 보기 드물었다.
한국미술의 시작, 빗살무늬토기
서양미술의 인지도에 밀려나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점점 잊혀져 가고 있는 현상이 우리나라 미술의 현주소이다. 메마른 토양이나 다름없는 우리나라 미술계에 이번에 유홍준 씨가 출간한 <한국미술사 강의 1>은 '가물에 단비' 와 같은 존재이다. 특히, 그전부터 한국미술사에 관한 책을 고대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이 책의 출간이 무척 반갑기만 하였다.
이번에 출간된 1권은 선사시대, 삼국시대 그리고 학계로부터 심도 있게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발해의 미술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삼국시대부터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을 통해서 한국미술사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재정립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교과서의 첫 단원이 선사시대(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이 미술의 역사 역시 출발점을 선사시대로 잡고 있었다. 특히, 신석기 시대에 등장한 빗살무늬토기에 대한 내용은 선사시대의 유물에서도 고대의 조상들의 미적 가치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빗살무늬토기
번개무늬토기, 신석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전에 교과서에서 본 빗살무늬토기의 사진을 보면서 토기에 새겨진 저 빗살무늬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그냥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고고학적 유물인 토기로만 보였던 것이었다.
하지만, 토기에 새겨진 단순한 무늬를 유홍준 씨는 ' 한국미술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새벽 ' (p 30) 이라고 말하고 있다. 토기에 새겨진 빗살무늬가 토기를 쉽게 잡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능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이들이 무늬를 새기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는 고대의 인류에게도 주위의 사물을 파악하고 표시하려는 '의식' 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류가 사물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직립보행 못지 않게 중요한 인류 발전의 획기적인 일이다. 아기들이 흰 종이이든 벽이든간에 손에 쥐고 있는 크레파스나 펜으로 우리의 눈으로 그 형태를 확인할 수 없는 기이한 낙서들을 남기는 이유가 자신의 주위에 펼쳐져 있는 사물에 대한 인식이 만들어낸 행위이다. 현재 인류의 지능과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져 보일 것 같은 원시적인 인류에게도 사물을 보려는 의식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의식의 결과물이 토기에 새겨진 단순한 무늬라는 점에서 보면 미술이라는 행위는 이미 고대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다 나은 한국미술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대로 선사시대부터 신라, 고구려, 백제를 아우르는 삼국시대 그리고 백제까지 고대의 미술을 소파에 앉아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최근에 밝혀진 연구 결과들은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연구 논쟁의 연장성에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정리를 하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이번 <미술사 강의> 저술은 저자의 학술 활동 경력 중 최대 프로젝트이며 이전에 그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알리게 해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명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확하면서도 충실한 내용을 담으려는 그의 노고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 역시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는 법. 이 책의 2장의 고인돌에 관한 내용에서는 지금까지도 학계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문제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지금까지도 고인돌이 세워진 의도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엇갈린 주장과 가설이 제시되고 있다.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 교과서에 있는 잘못된 내용의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은 고인돌이 지배자를 위한 무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인돌의 용도가 집단 생활을 하고 있는 공동체사회의 제단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혹은 민간신앙의 상징물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유홍준 씨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고인돌의 용도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으며 고인돌이 단순히 지배자의 무덤이라는 일방적인 내용이라고 언급하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고인돌의 분류법에 대해서는 저자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기념 조형물로서 장중한 멋을 풍긴다. (중략)
남방식 고인돌은 덮개돌이 대개 너럭바위나 큰 바윗덩어리지만 창녕 유리의 고인돌처럼 거대한 메줏덩어리 모양으로 육중함을 과시하는 것도 있다.
-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제2장 고조선 또는 청동기시대, p 60~61 -
학창시절 때 국사 시간에서도 배웠듯이 고인돌은 북방식, 남방식으로 분류한다고 알고 있다. 탁자 모양으로 생긴 고인돌을 북방식으로, 바둑판 모양의 고인돌은 남방식이라고 학생들은 통상적으로 그렇게 배워왔다.
탁자식 고인돌, 경북 문경시 산양면 반곡리
바둑판 고인돌, 강원 양구군 양구읍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편지> 시리즈로 어린이들을 위한 역사를 소개하는 저술가로 유명한 박은봉 씨는 2007년에 쓴 <한국사 상식 바로잡기>에서 북방식, 남방식으로 분류하는 고인돌 표기법은 식민사학이 만들어낸 역사학 용어라고 밝히고 있다. 한반도를 북부와 남부 지방으로 임의로 나눈 이유에는 북부 지역의 사람은 위의 중국에 내려온 민족이며, 남부 지역의 사람은 예로부터 스스로 발전하지 못할 정도의 문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항상 외부로부터 지배, 발전했다는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자신들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지배되어 온 북방식, 남방식 고인돌의 분류는 북방식 고인돌은 탁자식이며, 남방식은 바둑판 모양이라는 이분법적인 정설을 낳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탁자식 고인돌은 남부 지역에서 발견되며 반대로 바둑판 고인돌도 북부 지방에서도 발견되어 이분법적인 분류법이 주는 효력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2006년판 국사 교과서에서는 고인돌의 분류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고쳤다고 한다.
저자의 이런 내용은 저자의 실수라기 보다는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학계의 분류법을 고수하려는 일종의 학문적 매너리즘의 경향일 수 있다. 사실, 새로운 고인돌 분류법 개정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었을 때에 대부분 사학자들 중에서는 북방식, 남방식 분류법을 그대로 사용하자는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오류의 내용이 검증과 비판 없이 그대로 대중들에게 알려진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 특히 저자는 머리말에서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에서 당당한 지분율을 가진 문화적 주주 국가라고 밝히고 있다. 비록 중국의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중국의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만에서 볼 수 있는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미술문화 속에는 우리 민족 특유의 정체성이 들어가 있다. 비록 작은 단어이지만 우리나라 민족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잘못된 역사는 우리나라 한국사뿐만 아니라 미술사의 옥의 티가 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미술사의 시작은 일제 시대 때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일본인의 학자들에 이루어졌다. 미술의 역사에서도 일본인 학자들은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여 우리나라의 문화마저 말살하려고 하였다.
즉, 이번에 나온 <한국미술사 강의>에서도 이런 사소한 오류의 내용이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거나 지금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다면 과거의 식민사관의 미술사의 내용과 별 반 다를게 없다. 이런 문제점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미술문화를 대중들에게 정확히 소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 노력에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미술사를 미술 전공자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고정된 학문 인식을 넘어서 고고학자, 사학자들과의 학문적 연계를 통해서 지금보다 나은 한국미술사를 정립하려는 통합의 자세 역시 필요하다.
* 사진출처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3901&docid=228382&dir_id=10020101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291374&docid=727347&dir_id=10020202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1013&docid=14363&dir_id=10020202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75155&docid=14363&dir_id=1002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