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 - 장영희가 남긴 문학의 향기
장영희 지음, 장지원 그림 / 샘터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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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종말 분위기 나는 연말

올해 2010년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12월 1일이 된 후부터 슬슬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는 ' 연말 잘 보네세요. '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주로 다니시는 은행에서는 벌써 부모님 폰으로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부모님과 동생 이름으로 가입된 보험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 XXX님, 건강하고 즐거운 연말 보내시고 2010년 마무리 잘 하세요. '  

아직 내 휴대폰에는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친구 녀석들은 평소에 자주 만나고 연락을 해서 그런지 아직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12월 31일이 되면 나에게 연말 인사 문자 보내겠지 하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에게 오는 친구들의 연말 인사 문자는 많아야 5개다. 몇년 전에 한 번은, 대학교 과 선후배, 동기들에게 거하게, 아니 무식하게(?) 단체 연말 인사 문자를 보낸 적이 있었다. 보낸 사람들의 수만 해도 무려 20명 넘었는데 고작 답변 인사해준 사람의 수는 8명이다.  사실, 단체 문자 보내기전에는 20명 넘는 사람들이 답변 문자해주길 바라지는 않았다.  평소의 예의 바른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서 보낸거 뿐이다.  오히려 모든 이들이 한꺼번에 답변 문자 오게 된다면 완전 문자 폭탄 수준이 될 것이다.  연말 인사 혹은 연말 인사 문자 답변을 안 해주는 이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은 새벽중에 보내는 연말 인사 문자이다. 인간의 약점을 간파할줄 아는, 잔머리 잘 굴리고 약삭 빠른 성격의 친구들이 간혹 보내기도 한다.  문자 메시지 도착 소리에 잠을 깬 적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12월 31일날에 잠을 자게 되면 항상 휴대폰을 꺼둔다.  그리고 새벽에 보내는 친구들의 연말 인사 문자와 비슷하면서 역시 짜증나게 하는 것은 생전 모르는 번호가 문자 보낼 때이다.  친구면 당장 전화 걸어서 쌍욕 날려도 무방하겠지만, 낯선 번호가 문자 오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잠결에 문자로 잘못 보냈다라고 폰을 만지작거릴수도 없고, 그렇다고 친구처럼 낯선 사람한테 욕을 할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결국에는 연말에만 잠시 폰을 끄고 잠을 자는데 특효약인거 같다. 

휴대폰으로 연말 인사 문자 메시지를 주구창창 받는 것도 괴롭지만, 그래도 연말이 되면 사람의 감정이 즐거워지게 되고, 내년에 대한 설레임 때문에 기분이 들뜬 것은 부정할 수는 없다. 연말에는 각종 망년회를 통해 한 해동안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스트레스들을 어느 정도 날릴 수 있다는 점에서 좋고(물론 너무 과하게 술을 마시면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피곤해진다. 이러니 연말이 되면 망년회라는 소리만 들어도 기피하는 사람들 있기 마련이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라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일도 있다. (혼자 사는 솔로들에게는 크리스마스 역시 그닥 반갑지 않은 날일 것이다)  이렇듯, 한 해의 기억들을 마무리하고 내년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 차야지 정말 연말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이번 해는 그렇게 즐겁고 훈훈한 연말 분위기가 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에 발생한 연평도 습격 사건으로 인해서 국민들의 마음 속에는 북한 제2의 도발 그리고 전면전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하기만 하다. 연평도에서 살았던 주민들은 그 때의 공포와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지금도 좁디 좁은 찜찔방에서 지내고 있다. 

2010년이 끝나는 시점에만 사람들의 감정이 어두웠던 것이 아니다.  올해 초에는 용산 참사 사건으로 인해서 권력 앞에서 굴복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TV로 목도했으며 해결되지 않은 4대강 사업 문제 때문에 올해 내내 대한민국은 소란스러웠다. 2010년에는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최근에 성황리에 마친 광저우 아시안게임으로 온 국민이 즐겁고 웃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TV와 신문에 비춰진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들, 폭력으로 가득한 학교 교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는 잠깐 사그러졌던 대한민국 특유의 우울을 또 다시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 요즘 연말 분위기가 아니라 종말 분위기가 나는 듯해요. '  

내가 주로 들리는 인터넷 카페의 어느 회원분이 남긴 댓글 한 마디가 올해 연말 분위기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맞는 말이기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만 하다.

  

 

  기분이 잡치다거나 우울할 때 읽게 되는 글

요즘 같은 기분이 잡치다거나 우울할 때는 나는 항상 책을 읽는다.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그나마 좋은 위안처이면서도 간혹 웃음을 유발하게 만드는 개그맨 행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보다 독서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책 속 저자의 목소리가 나의 우울하고 상처받은 감정들을 토닥거릴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저자의 글로부터 위안을 받게 되면 잠시나마 흐트려져 있던 감정들을 추스릴 수 있게 된다. 특히 나의 감정을 쉽게 다스리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글이 바로 故 장영희 교수의 글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교수가 번역한 영미문학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생전에 썼던 칼럼을 모은 에세이집과 단상을 곁들인 영문학 시집들을 다 읽어봤다.  하루하루가 고단하기만 했던 군대 일병 시절에 장영희 교수의 첫 에세이집 <내 생애 단 한번>을 접하면서 그녀의 글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첫만남부터 나의 코끝을 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긍정적인 마음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그 때부터 그녀의 글이 무척 좋았다. 

작년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유작이 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을 때는 이제 맑디 맑은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워었는데, 최근에 나온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인 에세이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라는 책을 읽게 되어 반가우면서도 또 한 번 '마지막' 이라는 감정이 앞선 나머지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그녀의 글은 나에게 ' 축복과 같은 꽃비' 가 되어 왔다. 마침 어두운 분위기의 연말에 때마침 그녀의 글을 읽게 되나디 정말 축복이다.  

다행히, 이번 글은 전작의 에세이들처럼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살아가야하는 삶에 대한 자조적인 감정들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간간히 몇 몇 문장 속에서 은근히 그녀의 어두운 면이 보이기도 했지만  '희망' , '사랑' ,  '웃음' 과 같은 그녀의 글에서 항상 등장하는, 긍정적인 단어들이 많은 것은 여전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소개한 영미 시들 역시 읽는 이의 감성을 자극해주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숨겨놓았던 눈물 

이번 에세이집에 수록된 모든 글과 시는 다 좋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에세이 한 편은 ' 숨겨놓은 눈물을 찾으세요 ' 라는 이름의 글이었다.  장 교수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숨겨놓았던 눈물을 찾는 것이 척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글의 요지는 다른 에세이의 내용과 비교하면 밀리는 감이 있고 읽는 사람마다 글에 대한 감정이 제각각이듯이 어떤 이들에게는 글이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짦막한 글을 읽으면서 2010년을 살아가면서 그동안 눈물을 숨겨두었던 감정의 자세가 슬그머니 떠올려졌다.  감정이 뒤흔들 정도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들과 책들을 보면서 눈물을 한 번 흘린 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머릿속에는 눈으로 입력된 장면과 내용들이 오롯이 기억이 났었지만 정작 그 순간에 내가 눈물을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눈물을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것이다.   

 

 

  눈물 흘릴 줄 아는 방법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현대인들

올해 정말 기억에 남을 감동의 장면은 여름에 온 국민을 하모니의 감동으로 느끼게 해준 '남자의 자격 - 하모니 편' 이었다.  각기 다른 성격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서 급조적으로 탄생된 오합지졸 합창단이 처음으로 합창 경연장에서 내는 목소리는 모든 국민들과 관중, 그리고 이들을 지도하는 박칼린 씨마저 눈물을 흘리게 할 정도로 감동의 결정체였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 다음으로 눈물이 나올만한 장면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비인기 종목이나 다름 없었던 인라인스케이트 선수 우효숙 씨의 금메달 시상식 장면이었다. 낯선 경기장이 있는 중국에 있는 동안 고국에 있는 몸이 불편한 친할머니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이 앞섰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서 꼭 금메달을 따야겠다는 마음도 굳게 먹었다.  결국, 그토록 바라던 금메달을 따게 되었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감독이 조심스럽게 우 선수에게 비보를 전해주었다. 한국에 계시던 할머니가 며칠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 메달 시상대에 오른 우 선수의 얼굴에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단순히 비인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기쁨의 눈물이 아닌,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금메달을 걸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애통의 눈물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우리들의 눈가를 촉촉히 할 정도로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의 감정에 동화되면서 나는 그들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니, 흘리지 못했다.  왜 눈물을 흘리지 못했던 것일까?   

아마도 남자는 세 번 울어야한다는, 깊게 박혀있는 사회적인 시선 탓도 있지만 요즘 감정이 메마른 현대인들의 마음에는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방법이 잊혀지고 있었다.   

우리 주변 세상이 너무 어둡고 우울하다보니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과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 안에서 타인과의 만남 역시 우리들의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있는 요인이다.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감정의 표현을 나타내는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한다. 

  " 이 사진 속 장면이 슬퍼요. ㅜㅜ ' , ' 멀쩡하던 그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다니,, ㅠ_ㅠ "  

'슬픔' 이라는 감정을 우리는 눈물 흘리는 장면의 이모티콘으로 표현한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기 위한 방법으로 이모티콘이 유일하다.  하지만, 아무리 댓글에서 'ㅠㅠ' 를 남발한다고 해도 타인은 내가 진심으로 슬픈 감정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에는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나마 드러내는 언어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다 간결하면서도 쓰기 편한 이모티콘의 유혹에 벗어나지 못한 채 언어 껍데기들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나 역시 이모티콘사용이 편하다는 이점 때문에 이모티콘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나지 못한다면 ' 감정이 눈꼽만큼도 없는 ' 인간으로 보일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아바타' 과 자신의 실명이 아닌 '닉네임' 을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 감정을 표출하려는 '인간' 으로 보이려고 한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자

  '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부(富)이다. '

눈물에 관한 에세이의 마무리를 프랑스의 소설가 생 텍쥐페리의 명언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눈물은 꼭 감정적으로 나약한 사람들만 흘리는 것이 아니다. 또 무조건 슬플 때나 화가 날 때 나오는 액체도 아니다.  나보다 못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영화 속 장면이나 책 속 문장을 보면서 생기는 감동적인 마음을 통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남들에게도 보이기 싫다면 혼자서라도 눈물을 흘려보자.  눈물은 사람의 우울한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을 때 눈물샘을 건드리는 순간이 온다면 눈물샘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자. 그러면 두 눈에 눈물이 자연스럽게 흐르게 될 것이다.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가짐으로써 지금과 같은 암울하고 어두운 세상 속에서 감정이 메마르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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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0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따뜻한 글이예요. 너무 감사드려요.
사이버 공간도 결국 사람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페르조나(가면)이 훨씬 강화된 공간이기도 하구요. 그게 매력이기도 하죠.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고, 포장된 나로서 살아갈 기회의 제공이라는거.

연말. 사랑의 열매의 단란주점 사건으로 인해
뚝 떨어진 기부 문화 기온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왔습니다.
올 연말은 이래저래....... 조금은 서글픕니다. 그래도
우리 멋진 겨울 시작을 맞이하기 위해 힘을 내볼까요, 화이팅!

cyrus 2010-12-04 20:04   좋아요 0 | URL
많이 바쁘실텐데 제 서재에 들려주시네요.
마고님도 얼마 남지 않은 연말에는 서글픔을 훌훌 털어버리고
웃음으로 마무리되시길 바라요.

stella.K 2010-12-0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얘기일지는 모르겠는데, 안평도 사건을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그런데, 연평도 주민들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은 독기가 서려있더군요.
그게 더 마음을 쓸어내렸습니다. 어렵기는 다 같이 어려운데
사람들 저마다 어쩌면 이렇게 반응이 다를까 싶더군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은데, 한다면 나라겠죠.
근데 나라는 너무 거창하고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고...등등.
사는 게 점점 팍팍해서 큰 일이어요.

장영희 교수의 책들은 정말 좋죠.
저는 몇 년 전 모 신문에 칼럼 쓰신 거 보면서 정말 미문이구나 했어요.
그걸 책으로 묶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 아직도 제 책상 책꽂이에 꽂혀있습니다.
다른 책도 읽어봐야 할텐데 말이죠.^^

cyrus 2010-12-05 13:48   좋아요 0 | URL
저도 갑작스런 안평도 사건으로 인해 마을에 사는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되었고 정든 고향을 떠나야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습니다, 거기에다가 재벌 2세의 폭력 사태 등
자꾸 눈쌀을 찌푸리게하는 사건들이 연달이 터지니 나라 분위기가
어수선하네요. 내년에는 사회 분위기가 좋게 반전되기를 바랄뿐이네요^^


2010-12-05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