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 지만지고전천줄 32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강태경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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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기엔 이 때 아닌 비극의 음모가 모두 적혀 있어요. 

만면에 웃음을 띤 인간의 얼굴이 살인의 악행을  

감춰두고 있다니 저는 경악스러울 뿐입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제2막 3장 중에서, 지만지 pp 94 -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잔인한 작품     

 

14번의 살인. 성폭행과 생매장. 신체 절단과 인육 먹기. 

잔혹하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장면들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온다고 한다면 믿어지겠는가?   

1590년대 초반에 쓴 걸로 추정되는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작품의 하나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무척 거칠고 잔인한 장면이 많다는 점 그리고 조지 필이라는 작가와 공동으로 집필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로 인해 <타이터스>의 작품성은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타이터스>는 ‘고매한’ 셰익스피어가 썼다고 보기엔 너무 심한 잔혹한 묘사가 많다보니 T. S. 엘리엇'지금까지 나온 희곡 중 최악' 이라고 악평을 하였으며 '복수 3부작' 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잔인한 복수극' 이라고 평가했다.   

도대체 내용이 얼마나 잔인하길래 복수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든 박 감독마저도 혀를 내두르는 것일까?  

  

 

  핏빛 복수가 만연한 로마

<타이터스>는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작품 제목은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고대 로마는 제국주의 국가처럼 해외 정복을 해온 나라이다. 타이터스 앤트로니커스 장군이 국력신장을 위해 몇 십 년 동안 영토 확장을 하고 개선을 하는 데서 연극은 시작된다.  그 사이에 로마의 두 왕자 새터나이너스와 그의 동생 배셔너스가 서로 왕권 다툼을 하게 되는데 한 명은 자기가 장자니까 황제 계승권을 가져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한쪽은 자유로운 국민의 선택에 의해서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에는 로마의 영웅 타이터스가 왕권 대립에 중재를 하게 됨으로써 새터나이더스와 로마의 새로운 황제에 오르게 된다.  새터나이더스는 자신이 황제가 될 수 있었던 타이터스의 공을 기리기 위해서 그의 딸 러비니아를 자신의 아내로 삼지만 왕권 타툼에 밀린 동생 배셔니스는 자신이야말로 예전부터 러비니아를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녀를 탈취하고 만다.  

러비니아를 둘러썬 두 왕자의 갈등으로 인해 혼전의 양상이 빚어지게 되었지만 황제 새터나이너스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한때 적국이었으나 포로로 잡혀온 고트 족의 여왕 태모라와 결혼하게 된다.   포로이면서 적국의 여왕이 로마 황제와 결혼하게 되는 갑작스런 전개 장면은 수긍이 안 가는 장면이지만 이 때부터 본격적인 복수극 무대의 막이 오르게 된다.

태모라의 마음 속에는 타이터스로 인해 잔혹하게 희생을 당한 자신의 아들들에 대한 분노와 이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로마에서는 전쟁에 승리하게 되면 그들이 추앙하는 신을 기리거나 전쟁에서 희생된 동료의 원혼을 추모하는 뜻에서 적국의 포로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다.  태모라의 아들들은 사지절단을 당하여 희생 제물이 되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로마의 포로에서 한순간으로 로마 제국 황제의 아내가 된 태모라는 이를 기회삼아 타이터스 가문을 복수하기로 마음 먹는다.  

비밀리에 사귀고 있었던 태모라의 인연 무어인 애런도 핏빛으로 물들이게 될 복수의 무대에 동참하게 된다.  태모라의 두 아들은 자신들의 어머니와 같은 복수심으로 배셔니스를 암살하고 러비아니를 사냥터에서 납치하여 강간하고 손도 자르고 일부러 증언을 할 수 없게 혀도 잘라내는 만행을 저지른다.  또한 태모라와 애런이 꾸민 간계에 휘말려 타이터스의 아들 두 명은 배셔니스의 암살과 관련된 모함을 쓰고 죽게 된다. 타이터스도 모함에 연루되어 자신의 손목을 자르게 된다.  

무서운 음모에 휘말려 아들들은 처형당하고 하나뿐인 고귀한 딸은 불구자가 되었다.  그리고 타이터스 자신 역시 한쪽 손목이 사라지게 되어 로마의 영웅에서 한순간에 로마 내에서 치욕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다.   가문의 몰락을 두 눈으로 목격한 외팔이 타이터스는 복수의 화살을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한 새터나이너스와 태모라에게 겨낭한다.  작품 초반에는 태모라의 복수가 전개되고 있다면 작품 중, 후반에는 이를 반격하기 위한 타이터스의 복수가 시작된다.  타이터스와 태모라가 펼치는 복수극은 더욱 극단적이면서도 잔인한 결말로 치닫게 된다.   

    

    

  작가의 문학적 미성숙함을 엿볼 수 있는 <타이터스>   

<타이터스>에는 초기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미성숙함을 볼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로마와 고트 족 간의 대립은 역사적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지만 1막에서 전개되는 적국의 포로를 신의 제물로 바치는 잔인한 제사 의식 장면은 작품에 드러나는 잔혹한 복수극의 특징을 부각시켜주기 위해서 셰익스피어가 비약적으로 표현한 면이 있다.   그 밖에도 러비니아와 배셔너스의 결혼을 옹호하는 자신의 아들을 고민할 여지 없이 단칼에 베어버리는 아버지 타이터스의 모습은 셰익스피어가 (혹은 공동 저자인 조지 필이) 복수극 장르에 치중한 나머지 지나치게 유혈이 낭자한 장면 설정을 삽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광대가 깜짝 출연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광대의 역할은 비극적이고 암울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도 코믹하고 해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간혹 사건 전개와 관련된 단초 또는 중요한 요인을 등장인물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고 있다. 

<타이터스>에서 광대는 4막에서 잠깐 등장하여 새터나이너스와 태모라에게 타이터스 가문이 보낸 편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훗날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광대의 역할에 비하면 이야기 전개 도중에 뜬금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굳이 광대의 등장을 설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느끼는 대목이다.    

   

(광대 등장) 

태모라     이건 또 누구지!  내게 할 말이 있느냐? 

광대        그럼요,  아줌마가 황제라면. 

태모라     난 황후다.  저기 앉아 계신 분이 황제 폐하시지. 

광대        오, 저 사람이구만.  폐하께 신들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여기 편지 한 장과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왔나이다.  

(새터나이너스, 편지를 읽는다)  

새터나이너스     이놈을 데려가서 당장 목을 매달아라! 

광대        수고비는 얼마나 주시려나? 

태모라     이놈아, 넌 교수형을 받는 거야.  

광대        교수형이라고요!   그게 내가 이 목을 달고 여기까지 온 이유였군. 

(광대, 군사들에 이끌려 퇴장) 

 

- 윌리엄 셰익스피어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제4먹 4장 중에서,  지만지 pp 164~165 -

 

새터나이너스가 읽은 편지에는 타이터스 집안이 반역을 꾸밀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광대의 무례없는 행동이 자신의 묘를 파게 된 원인이 되었지만 편지의 내용이 자신의 심기를 건드렸다고해도 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 광대를 교수형으로 처하는 황제의 행위는 작품에 비중이 없는 광대마저도 복수의 분노가 만들어낸 살육의 피바람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광대의 익살스러운 행동은 살육과 광기로 가득찬 희곡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커녕 더욱 잔혹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작품 속 미친 존재감, 무어인 에런   

로마의 위대한 영웅 타이터스와 고트 족의 여왕이었던 태모나의 모습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사랑했던 자식들의 잔인한 죽음이 원인이 되어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방법으로 통해서 복수의 칼날을 휘두른다.  두 인물의 모습은 후대에 나오게 될 <햄릿><오셀로><리어 왕><맥베스>에서도 이어지는 복수로 점칠된 비극적인 환경 속에서 서서히 이성과 인간성이 파괴되는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주연보다 뛰어난 조연을 뜻하는 씬 스틸러(Scene Stealer)가 있기 마련인데 <타이터스>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무어인 에런이다.  

작품 속 무어인 애런의 역할은 흡사 고대 로마판 <오셀로>의 이아고를 보고 있는 듯하다. 두 인물 다 공통적으로 개인적인 불만과 질투를 해소하기 위해서 간악한 음모를 꾸며냄으로써 작품 전반적으로 비극적인 갈등을 유발시키는 장본인들이다.   

하지만 <오셀로>의 이아고보다는 에런이야말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끝까지 복수심의 끈을 놓지 않는 집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 때 사랑했던 태모라를 되찾기 위해서 독자적으로 새터나이너스와 타이터스 간의 갈등을 조장하게 만드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그리고 러비니아를 태모라의 두 아들들에게 강간하게 만든 것도 에런의 머리속에서 나온 또 하나의 계획된 음모 중의 일부이다.

그리고 태모라가 낳은 흑인 아기가 자신의 핏줄이라는 것을 상키시킴으로써 작품 후반부에 이를수록 권력욕에 눈이 먼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로마 황후가 흑인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죄 없는 유모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고트족의 부활을 염원하게 된다.   

 

나는 고트족에게로 돌아간다.  제비처럼 빨리 날아서 말이다.  거기에 이 팔 안의 보물을 마틱고 비밀리에 황후의 옛 친구들을 규합해야지.  어서 가자, 입술이 두꺼운 아가야.  그곳으로 데려가마.  네 녀석이 이 아비의 갈 길을 바꿔버렸다.  야생의 열매와 풀뿌리로 널 먹여주고 염소의 젖을 빨게 해주마.  깊은 동굴 속에서 널 키워 떠나간 전사가 되게 하고 큰 군대를 이끌 장군으로 길러내겠다.     


  - 같은 책, 제4막 2장, 에런의 대사, pp 153 -

 

그러나 자신의 당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실행되었던 음모는 타이터스의 아들 루셔스에게 발각된다.   포박당하여 곧 죽음의 운명에 처하게 될 에런은 루셔스의 험학한 욕설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모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에런이 스스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정말 작품 속에서 단언 돋보이는 '악마' 같은 존재이다.

 

악마라는 게 정말 있다면 나는 악마가 되어  

영원히 타오르는 지옥의 불 속에 살고 싶다. 

그러다가 너희가 지옥에 오게 되면 이 독 묻은 혀로  

너희에게 영원한 고통을 맛보게 할 수 있을 테니까!  

 

 - 제5막 1장 에런의 대사, pp 181  - 

 

   

  잔혹한 복수극 뒤에 남는 것은,,, 

이 글에서 최대한 스포일러가 되지 않게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잔혹하거나 살육 장면의 일부를 살짝 언급했지만 <타이터스>를 직접 읽어보게 되면 셰익스피어 특유의 잔혹한 묘사를 실감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후반부에 이를수록 잔인한 묘사는 극에 달한다. (특히 결말부에서는,,,)  이 복수극을 실제로 무대로 오르게 된다면 이전에 나왔던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에 견줄만한 복수로 시작된 유혈이 낭자한 장면들이 연출될 것이다. 

무더운 여름에 장르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좋지만 잔혹한 내용의 고전을 원한다면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를 강력 추천한다.  오래 전에 나온 내용치고는 읽는데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글로 묘사되고 있지만 혹시 모르니 임산부와 노약자에게는 권하고 싶지는 않다. 

    


 

프란시스코 고야 <싸움> 1820~1823

 

' 잔혹극 ' 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프랑스의 극작가 앙토냉 아르토는 잔혹함의 인식을 통해 인간성 회복과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극에 달한 잔혹함을 경험할 때 영혼의 정화작용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관람자는 잔혹한 장면을 통해서 인간성 상실에 대한 비애를 느끼게 된다.

<타이터스>는 줄거리보다는 잔혹한 살육 장면이 많이 부각되는 바람에 이 작품이 과연 문학적 가치와 작품성을 부여할 수 있는지 독자들마다 각기 다른 관점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잔혹함이 잔혹함만으로 그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타이터스와 태모라 그리고 에런이 연출한 잔혹한 복수극 뒤에 남는 것은 복수에 눈이 먼 나머지 인간성을 상실한 채 '악마' 가 되어야했던 그들의 비참한 최후뿐이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복수의 무대에서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복수의 광기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순수한 인간성뿐만 아니라 자신 자신의 삶과 인생마저 산산히 파괴시켜버리는 무시무시한 감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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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7-17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역시나 대학생의 열렬한 방학의 탐구심은 리뷰를 읽는 내내 숙연하게 만드네요. ^^ 밑에 있는 학점 역시 숙연하게 감상했습니다. ^^ 지존이신 듯 ㅋ

마지막 줄에 있는 복수의 광기에 대한 정의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렇죠. 어떤 감정이 극단까지 올라가 치우친 다는 것은 인간의 균형을 상실하게 만들죠.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극단으로 올라가면 정말 좋은 것이 없습니다.

전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제대로 한 권도 읽지를 못 했어요. ^^ 게다가 악인들은 모두 흑인으로 나온다는 것에 대해서 별로 호감도 가지 않구요.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호불호이기는 하지만요. ^^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에서 이런 셰익스피어의 시각에 대해 분석한 내용이 있었다고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때 당시 시대의 통념상 그것은 받아 들일 수 밖에는 없었겠죠.

암튼 위대한 작가인데 그다지 손이 안 가는 작가이니 저도 참 좀 극단적인 독서가에요.

비 많이 오는 데 시루스님의 집이 좀 걱정입니다. 독서에 집중하시게 비가 안 새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

cyrus 2011-07-18 15:33   좋아요 0 | URL
아직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읽은건 아니지만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묘사하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해요.
특히 <햄릿>은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한 번 읽어보셔요 ^^

제가 사는 대구, 특히 저희 동네는 비 걱정 안 해도 됩니다. ㅎㅎ
항상 무덥거든요. 오늘도 무척 더워요.
서울 경기도 쪽에도 이제 더워지기 시작한다죠?
열심히 일하시더라도 이제 본격적으로 혹서기에 들어사게 되니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

양철나무꾼 2011-07-1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만지 책들 좀 좋아해서 하나 씩 사모으고 있는데,
세익스피어의 이 책은 아직이네요~ㅠ.ㅠ

오랜만에 고야의 그림을 보내요~^^

cyrus 2011-07-19 20:28   좋아요 0 | URL
저도 지만지 책을 구입해보려고 하는데,, 축약본이 좀 있는지라
왠만하면 완역본을 구입하려고 해요.

제가 읽은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완역본이에요.
내용이 좀 잔인하죠? ^^;;

마녀고양이 2011-07-20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현대 사회가 더 발전된 사회일지 모른다는,
적어도 몇가지 점에서는 더욱 좋아진 사회일지 모른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특히........ 형벌 측면에서는요. 아우, 몸서리쳐져요.
갑자기 조선 시대의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이 생각나서요. ㅠ

cyrus 2011-07-21 20:47   좋아요 0 | URL
능지처참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유사한 형벌이 있어요.
정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예전보다 좋은건 사실인거 같아요.
 
벚꽃동산 열린책들 세계문학 22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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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장님의 썰렁한 농담

예전에 어느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청취자의 재미있는 사연을 듣게 되었다.  

사연을 보낸 사람이 평범한 회사원인데 회사 과장님의 하이 개그(?)에 맞춰 억지로 웃는 게 힘들다는 것이었다.  부장님 입장에서는 회사원들에게 친숙함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거좋은 경영 분위기 형성을 위해서는 유머가 필수이다. 그래서 유머도 경영 리더들이 갖추어야하는 능력중 하나이다.  

그런데 부장님 개그가 얼마나 재미 없고 유치하길래 이런 사연까지 보내게 된 것일까?  만약에 부장님이 이 사연을 라디오로 듣고 계신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나,,,

사연 내용에 의하면 부장님의 유머가 더 이상 못 봐주겠다면서 하소연을 하였다. 과장님의 유머 실력에 대해서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지 않은채 재미있지 않은 유머를 막 던진다고 표현하였다.  대놓고 지적과 비난은 하고 싶지만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분이기에 욕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 웃을 수도 없다.  정말 나라면 청취자와 같은 곤란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루하루 부장님 비위 맞추기가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에 어느 캔커피 광고에도 이런 유사한 장면이 등장하지 않은가.  회사 과장이 차태현에게 ' 커피를 자주 마시면 코피 나 ' 라고 썰렁한 농담을 날려주신다.  그러자 차태현은 과장님의 어이없는 유머에 재미있다는듯이 웃어대지만 과장이 사라지자 얼마 안 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만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지금도 부장님 앞에서 억지로 웃어야 하는 회사원 청취자 말고도 현대인들도 가끔 이런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백화점이나 호텔, 레스토랑에 일하는 종업원들은 그 회사의 얼굴이기도 하다. 고객 앞에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항상 얼굴에 웃음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만약 오늘따라 몸이 너무 안 좋다거나 자신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하고난다면 종업원들 입장에서는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다. 마음이 뒤숭숭하고 절망적인데도 직업의 특성상 그들은 많은 고객 앞에서 밝은 웃음을 유지해야 한다.  

 

비단 서비스에 종사하는 종업원들만 힘든 것이 아니다. 요즘에는 쿨(cool) 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도 실연의 아픔에 절망하지 않고 아무 일 없다 듯이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처해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쿨하다고 말한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다보면 마음속으로 불편하고 힘들다고 느껴졌던 것들이 상대방에게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둔다.  

 

남들에게 그런 모습을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태연한 척 하는 것은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이다. 물론 방어 기제는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병이 되고 만다. 정말 힘든 상황에서도 억지로 웃어야하는 ‘스마일마스크 증후군’ 으로 발전하게 된다. 증상이 심해지면 식욕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두통, 불면증이 나타난다. 더욱 안 좋은 것은 정신적으로는 삶에 대한 의욕감이 떨어져 결국에는 우울증에 걸리게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것이다. 
  

 

  쿨 하지 못해 미안해

체호프의 희곡에서도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한다.『벚꽃동산』에 나오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있으면서도 쿨한 척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거에는 부유한 재력을 자랑했지만 낭비벽 때문에 궁핍해진 벚꽃동산의 지주인 라네프스까야
부인은 돈에 몰리는 상황에서도 파티를 벌이거나 구걸하는 농부에게 금화를 주는 등 허영심 가득한 생활태도를 버리지 못한다.  

 

그녀의 오빠 가예프 역시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자립심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으며 벚꽃 동산의 부가 가치를 파악하지 못하는 고리타분한 인간이다. 상인 로빠힌이 이 동산이 경매를 통해서 소유권이 자신에게 넘어간다고 말을 하자, 가예프는 이 곳이 백과사전에도 등재된 곳이라고 내세우면서 끝까지 땅을 파는 것을 거부한다.  여동생은 오빠의 말을 철썩같이 믿으며 동산을 팔아넘기는 것에 반대하고 나선다. 역시 그 여동생의 그 오빠이다.  

 

두 자매에게는 벚꽃동산은 과거의 화려한 시절로 상징되는 공간이기도 하면서도 궁핍한 현실로부터 피폐된 심리 상태를 안정시켜주는 그들만의 세계다. 그러나 결국 벚꽃동산이 로빠힌의 소유로 넘어가면서 자매와 그들과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은 동산을 떠나게 된다.  

 

이들은 동산을 떠나면서도 쿨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뜨로피모프라는 인물의 대사를 보면 그가 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기 보다는 그에게 동전 한 푼이라도 주고 싶은 동정심이 들게 된다. 

 


  로빠힌  (그를 껴안는다) 잘 가시오. 여러 가지로 고마웠소.  

               필요하다면 여비를 줄 수도 있는데.

  뜨로피모프 뭐 하러? 필요 없습니다.

  로빠힌  동전 한 푼 없을 텐데.

  뜨로피모프  고맙지만, 있습니다. 번역료 받은 게 있죠. 여기 이 주머니 안에.  

                    (걱정스러운 듯) 그런데 내 덧신은 어디에 있지!  

 


  (중략) 
  

 

   로빠힌, 지갑을 꺼낸다.  

 

 

  뜨로피모프  그만두시오. 그만두라니까..... 나에게 2만 루블을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것이오. 나는 자유로운 인간이오. 당신들, 부유한 사람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당신들 모두가 귀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나에게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솜털같이 하찮을 뿐이요. 당신네들 없이도 나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네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말이오. 그렇게 나는 강하고 당당합니다. (하략)

 

  - 체호프『벚꽃동산』(구판, 미스터 노 세계문학) 4막 p 256~257 -

 

뜨로피모프는 자신의 덧신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자기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다. 그러면서 자신도 인생의 루저(loser)임에도 불구하고 처량한 자신이 부끄러워서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고 있다.  

 

더욱 더 가관인 것은 자매의 모습이다.  동산을 팔고 난 뒤에 반응이 180도 달라진 문제투성자매들은 너무 쿨 한 나머지 희망에 고무찬 '자뻑' 에 빠지고 있다.  예전에 동산이 파는 것을 강하게 거부했던 가예프는 동산을 팔고 나자 모든 것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오빠의 말에 옆에서 장단을 맞춰 준다.  라네프스까야 부인은 이번에 동산을 팔게 됨으로써 과거에 화려했던 행복한 시절이 다시 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다가 희곡이 결말에 이르게 되면 무대 위에는 '자뻑' 자매만 남게 되는데 방금 희망에 한껏 고무되었던 활기찬 모습은 사라진다.  자매는 서로 껴안고 조용히 흐느낀다.  자매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엔딩 장면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마음껏 울어보지도 못하고 겉으로는 쿨 한 성격의 스마일 맨이 되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비극배우

이 책은『벚꽃동산』이외에도 체호프의 다른 희곡 작품들도 수록되고 있다. 특히 책 속의 수록된 작품들 중에서도『어쩔 수 없이 비극 배우』라는 짤막한 단막극이 있다.  

 

내용은 간단하다. 똘까초프라는 어느 가장과 그의 친구 무라슈낀이라는 두 인물만 등장한다. 똘까초프라는 사람은 관리라는 직업 생활과 가정생활에 너무 지쳐서 우울증에 걸린 나머지 미쳐버리는 인물이다. 똘까초프는 무려 5페이지에 걸쳐서 친구 무라슈낀에게 자신의 힘든 것들을 하소연한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이런 비극적인 생활을 동정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똘까초프의 긴 사연을 들은 무라슈낀의 반응은 시답잖다.  똘까초프의 말에 대답해주는 말은 고작 ‘동정하네’. 단 한 마디였다.  

 

똘까초프가 진짜로 미쳐버리게 되자 겁에 질린 무라슈낀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절망적인 단막 웃음극은 막을 내린다. 일상생활이 쪼들리다가 결국엔 미쳐버린 똘까초프가 불쌍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해결해줄 거 같은 쿨 한 모습을 보이다가 마지막에 겁에 질리고 마는 무라슈낀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엔딩이다.  불행하고 슬픔에 빠진 똘까초프 코믹한 무라슈낀이나 결론은 두 명 다 어쩔 수 없이 비극배우였던 것이다.  

 

 

체호프의 희극 제목대로 어쩌면 인간은 삶이라는 커다란 연극 무대 위에서 어쩔 수 없이 정신적인 상처를 가리기 위해서 웃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비극 배우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긴채 스마일 맨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처럼.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웃음의 가면을 벗어 던져야 한다. 이제 힘든 일에 대해서 쿨 하지 못하다고 해서 더 이상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 혼자서 끙끙 앓기보다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나게 함으로써 함께 치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모습도 중요하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마음의 고통을 견디면서 항상 슬퍼야만 하는 비(悲)극 배우가 되지 말자.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지인들과 함께 해결해나가면서 활기찬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희(喜)극 배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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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회사에서 너무 웃는 표정을 짓느라
볼 근육이 뭉쳤던게 생각나는데, 대체 제가 그렇게 웃을 일이 없을텐데 언제 그랬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웃느라 볼 근육 뭉치는거 너무 아프잖아요.. 그때는 정말 가식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구요. ^^

제 친구는 'cool' 이라는 용어를 너무 싫어했습니다. 한국인같지 않고 인정머리 없다나 머라나 그러더군요. 우리 민족은 욱 하지만, 속내를 제대로 표현하거나 상대에게 알려주거나 이해시키지 못 하는 면이 더 강한 듯 합니다. 저만 해도, 제 속내를 너무 많이 비추면 엄청나게 창피하고 화끈하거든요, 그게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말이죠. ㅎㅎ

cyrus 2011-07-13 20:54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는 쿨하다는게 좋은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것도바도 더 힘든게
쿨한 척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저도 왠만하면 저의 속마음을
남에게 표현하려고 고치는 중이에요. 예전에는 남에게 잘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마음속으로 쌓아두는 편이었거든요. ^^;;

비로그인 2011-07-1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싫은걸 억지로 해야 되고,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거기에 어쩔수 없이 맞춰가야 하는 사람들. 현대인의 몸과 마음은 어쩌면 조금씩 그렇게 병들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을까요..

며칠 전, 오전 7시 40분쯤. 몸을 구부리고 어느 편의점 옆에서 빵을 급하게 먹던 한 젊은 남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에게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었음 좋겠고, 스스로 웃는 일이 많았으면 합니다. 그 남자를 보던 제 모습이 투영되어 조금은 서글픈 저녁입니다.

cyrus 2011-07-13 20:56   좋아요 0 | URL
저는 남에게 비위 맞추는게 불편하던데,, 사회생활할 때 걱정이에요.
특히 싫은 사람 비위 맞춰주고나면 나중에는 혼자서 속앓이를 하곤했어요.
 
영혼이라도 팔아 취직하고 싶다 - 한국 실업의 역사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9급 공무원이 되고 싶다 

2주 전 금요일, 우연히 MBC에서 방송된 ' MBC 스페셜 - 나는 9급 공무원이 되고 싶다 ' 편을 보게 되었다.  이 날 방송에서는 청년실업이 200만 명에 달하는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9급 공무원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자들의 사연과 그들의 일상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하루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단지 안정된 미래를 위해서 두꺼운 공무원 시험 문제집 앞에서 악전고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서울 번화가에 위치하는 공무원 입시학원을 다니기 위해서 일부로 서울로 상경하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의지하고 있는 백수 공무원 시험 준비자도 있었다.      

일부 고시생들은 인터뷰 도중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2011년 1/4분기 청년 실업률은 8.8%로 심각한 수준이다. 이에 취업을 향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15만 명의 청년들이 9급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올해 4월 9일에 치뤄진 국가직 9급 공무원 공개경쟁채용 시험의 응시자 경쟁률이 평균 93.3대 1이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취업난의 현실을 반영해주는 씁쓸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심각한 청년 실업률 문제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공부를 하는 고시생들뿐만 아니라 지금도 취업을 위해서 비정규직을 전전하면서 스펙을 쌓거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해 2~3년씩 대기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들 모두 절박한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특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20대들은 ' 88만원 세대 ' 라는 암울한 명함을 달게 되었다.  

이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인 방안을 강구해보지만 정부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일자리 고용 문제는 사회적 논쟁에서 비켜나 있다. 실업과 취업은 대개 정부 정책과 기업의 고용계획 그리고 통계 언저리에서만 맴돌뿐 정작 청년실업률은 해가 갈수록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실업 문제가 우리나라 역사에 미친 영향  

이 책에서도 강 교수는 그동안 저술활동을 하면서 선보였던 통시적 저널리즘 방식을 통해서 ' 실업 ' 이라는 특정 주제어로 꿰어내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특히 그는 수많은 언론자료 및 통계자료를 인용하여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이 겪어야했던 주요 정치적 상황과 사건들의 배후에는 실업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분석을 도출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1952년에서 1960년까지 대학생 연평균 증가율은 14.5%였다. 이 같은 대학생의 양적 증가는 혁명을 발생하게 한 원인들 중 하나였다.  1960년에 10만명에 육박했던 대학생들의 30%가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면서 이들의 사회적 불만이 높아지게 되면서 정부에 대한 분노가 4.19 혁명 을 통해 표출된 것이다.    

강 교수는 5.16 쿠데타가 일어난 것도 실업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예편 대상 1순위로 곧 군복을 벗게 될 처지였던 박정희는 4.19 직후의 혼란상을 지켜보며 쿠데타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 문제는 도시화와 대졸자 수의 증가에 따라 요동쳤다.  한국 경제가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된 이후 농촌을 빠져나와 도시로 집중된 인구는 만성적인 실업문제를 야기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졸업정원제 실시로 대학생 수가 크게 증가하자 고용시장에서 대기업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이는 또다시 좋은 직장의 전제조건으로서 명문대 입학 경쟁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었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때부터 흔들리기 시작해 점점 파괴적 양상으로 치달아온 전 세대에 걸친 고용불안은 이제 손쉽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악화된 것이다.

  

  

  레포트의 내용대로 이루어진 사회병리현상    

책에서 인용된 자료 중에서 흥미로운 내용은 1997년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낸 실업현상을 분석한 [실업자 1백만 명 시대의 과제]라는 이름의 레포트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 자료를 통해서 고실업 시대에 나타날 8가지 사회병리현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오늘날 실업문제와 관련해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현상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실업 급증으로 인해 사회불안감이 확산되어 사회범죄가 발생하며 계층간 위화감 증폭, 취업이 어려운 학생들의 졸업 기피, 경영정상화를 위한 과격한 노사대립이 전개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발간한 자료 내용대로 고실업 시대에 접어든 지금,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불안정한 경기로 인한 사회양극화가 심화될수록 ' 묻지마 범죄 ' 가 눈에 띄게 늘어나게 되었으며 취업 시즌이 다가올수록 졸업을 연기하는 것이 예비 졸업생들의 관례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는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실업의 역사는 돌고 돈다 

저자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대한민국이 처한 실업 문제를 거시적으로 깊게 보기를 권한다.  실업 문제는 그 어떤 이념도 뛰어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운영과 작동방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기존의 좌우 이념의 틀을 벗어나 승자독식 문화의 의식과 관행을 바꾸고 공존공생의 자세를 찾지 않으면 영원히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하지만 ' 원수와도 같이 살자 ' 는 식의 자세만 가지고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성급하게 마무리짓는듯한 저자의 결론이 통사적으로 우리나라 실업 문제를 접근한 내용에 비하면 아쉽게만 느껴진다.   강 교수의 결론은 그 이전에도 실업문제와 관련해서 경제학자나 정계 인사들이 내렸던 진부한 해결방안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과 맞물린 정치에 대한 불신이 만들어낸 허무주의적 관점일수도 있다지만 저자의 표현대로 ' 비판하는 시늉만 ' 내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취업대란이 심각한 사회문제인만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의 해결방안이 결론으로 제시되기를 바랐던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단순히 실업 현상과 관련된 대한민국의 역사적 이력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 역사는 돌고 돈다 ' 라고 하였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법이다. 책에서 소개된 대한민국 업대란의 역사를 통해서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실업현상이 야기할 새로운 문제라는 '도전' 에 '대응'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실업 문제는 반짝 등장하는 일시적 유행과는 차원이 다르다.  과거에 지속되었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고질적인 사회문제이다.  실업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과거의 문제를 반복, 답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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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2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사회적 문제가 너무 넘쳐나서
이젠 감당하지 못 할 수준이 되는 것 같지 않나요?
어디에서 어디까지 손을 대야, 평등과 자유를 함께 가질 수 있을까요?

비는 엄청 쏟아지고, 기분이 너무 쳐지네요. 요즘 시루스님은 어떠세요?
알바하고 책 읽고, 그러세요? 근황 이야기 요즘은 못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cyrus 2011-07-12 17:3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점점 심각해지는 사회적 문제가 도저히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여기도 오늘 비가 안 올줄 알았는데,, 오네요.
내일 예비군 훈련 있는데 내일도 비 왔으면 좋겠어요 ㅎㅎ
그래야 하루 놀 수 있거든요,

학교 학과사무살에서 일하고 있어요, 땜방으로 하게된 것도 있고,,
방학이라서 힘들지 않아요, 예전에 휴학생 때 새벽 편의점 알바보다
편해서 좋아요 ^^

카스피 2011-07-1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넘의 실업문제는 언제 해결될지...

cyrus 2011-07-12 17: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정부가 제대로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다음 세대들에게 악영향이 이어질꺼 같아요. -_-
 
말괄량이 길들이기 - 전예원세계문학선 310 셰익스피어 전집 1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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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괄량이 아니 '악녀' 길들이기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연극이나 뮤지컬로 자주 공연되는 인기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원작 텍스트로 읽혀지기보다는 연극, 뮤지커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대중들에게 널리 소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아동용 도서로 내용이 축약되어 나오기도 하는데 완역본과 내용 구성과 분위기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전예원 판 <말괄량이 길들이기>(이하 <말괄량이>)를 읽기 전에 중, 고등학생 수준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말괄량이>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축약본과 내용의 차이가 있다면 완역본 제1막에서는 크리스토퍼 슬라이라는 땜장이가 등장하는 도입부가 있다는 점, 그리고 작품 제목의 ' 말괄량이 ' 인 카트리나가 아동용과 청소년판 속 모습과는 다르게 무척 험악하고 거친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파두아(책에서는 ' 페두어 ')의 부호 밥티스타('벱티스터')의 큰 딸 카트리나('캐더리너)는 성격이 매우 거칠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땐 고함지르기, 여성의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서슴지 않는다. 말이나 행동이 얌전하다 못해 '악녀' 라고 불릴 정도로 사나운 기질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동생인 비앙카의 두 팔을 포박한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채찍질을 하기도 한다)

 

 당신의 그 얼굴엔 생채기를 낸 피로 화장시켜 멀건이 상판대기로 만들어 드리리다.  

 - 셰익스피어 <말괄량이 길들이기> 1막 1장 카트리나의 대사, 신정옥 역, 전예원, pp 39 - 

  

이런 사나운 기질 탓에 카트리나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다. 오히려 남자들 사이에서는 기피대상 1호다.

반면에 그녀의 여동생 비앙카("비앵커")는 성격이 거친 언니와는 정반대이다.  순전하고 착한 성격으로 남자들이 그녀와 결혼하려고 노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러나 두 딸의 아버지 밥티스타는 장녀 카트리나가 결혼하기 전까지 비앙카의 결혼을 성사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비앙카의 구혼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평소에 비앙카와 구혼하기를 바랐던 그레미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카트리나의 결혼을 어떻게든 성사시키려는 계획을 꾸민다.   하지만 루첸티오라는 또 한 명의 젋은이가 비앙카에 첫 눈에 반하게 되면서 비앙카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계략은 극이 전개될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밥티스타가 비앙카에게 가정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비앙카의 구혼자들은 가정교사로 변장하여 비앙카에게 구애를 펼친다.  

그러는 와중에 카트리나에게 임자가 나타난다. 베로나의 신사 페트루치오는 카트리나에게 구혼해 결혼에 골인한다.  페트루치오는 카트리나에 대한 연정보다는 밥티스타의 재산을 탐나 말괄량이 카트리나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녀보다 더 거친 언동과 가혹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녀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페트루치오가 카트리나를 길들이기 위한 방법은 밥도 주지 않고 잠도 재우지 않는 것이다.   결국에는 페트루치오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작전은 성공하게 되고 카트리나는 예전의 난폭한 성격을 버리게 되고 남편에게 순종적인 아내로 변하게 된다. 이로써 사랑을 둘러싼 젊은 남녀의 코믹한 소동을 그린 희극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독을 독으로 다스리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는 비앙카를 차지하기 위한 남자 인물들 간의 대립도 홍미진진하지만 역시나  페트루치오와 카트리나 간의 대립이 흥미롭다. 

특히 말괄량이의 난폭한 성질을 억제시켜서 길들임으로써 점차적으로 사랑을 싹틔워가는 페트루치오의 계획은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이다.   그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녀의 못된 성격에 대하여 그것과 같은 수단으로 대응하고 있다.  

카트리나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페트루치오는  하인들 앞에서 난폭하게 행동을 한다. 자신의 비위을 맞추지 않는다고 욕지거리를 퍼붓고 심지어 폭행을 하기도 한다.  페트루치오의 난폭한 행동을 지켜보던 카트리나는 그의 화를 달래기 시작한다.  

하지만 페트루치오는 실제로 하인들에게 못 되게 굴 정도로 악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그는 카트리나처럼 똑같이 성질이 급하고 화를 잘 내는 까칠남(?)으로 연극한 것이다.  

주인 페트루치오의 행동을 지켜본 두 하인의 대사를 통해서 그가 카트리나를 길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도 카트리나와 똑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성격을 카트리나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나다니엘 : 피터, 이전에도 그러셨나?  

  피이터 : 독을 독으로 다스리는 셈이지.   

  - 같은 책, 4막 1장 pp 106 -  

  

이런 페트루치오의 모습에 카트리나는 자신이 그동안 행했던 모습들이 선연히 떠오른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치밀하게 짜여진 페트루치오의 연극에 빠져들게 된다.  

   

  

  남편은 왕,,?   

결국 카트리나는 페트루치오의 전략 덕분에 사나운 성격을 버리게 되었지만 남편에게 순종적인 여자로 180도 완전히 변하게 된다.    

 

남편은 우리들의 주인이요 생명이자 보호자며 머리요 군주이십니다. 우리들을 걱정해주며 우리들이 편안히 생활할 수 있도록 바다에서 육지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시잖아요.   

 (중략) 

그러면서도 우리들에게 무엇을 바라던가요?  사랑과 상냠함과 순종을 바랄 뿐이지요.  그토록 큰 빚에 비하면 우리의 지불은 너무나 미미한 거예요.  그러니 아내가 고집 부리고 짜증내고 퉁명스럽고 깔쭉대면서 남편의 착한 심정에 순종치 않는다면 어진 군왕에 반역하는 간악한 신화와 같을 지니 배은망덕한 배신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전 여자의 좁은 소견머리가 부끄럽기 그지없답니다.   평화를 위해서 무릎을 꿇어야 할 경우에 되려 전쟁을 선포한다든가, 봉사 사랑 순종을 바쳐야 할 경우에 우위와 지배를 요구하니 말입니다.  

 - 같은 책, 5막 2장 pp 145 -

  

우리의 말괄량이 카트리나, 변해도 너무 변해버리고 만다.   페니미즘 문학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읽었더라면 무조건 남성차별적이라고 맹비난, 아니 맹렬한 비평을 퍼붓고도 남을 문장이다. 

조선 시대 때 부부 사이 간에 지켜야 했던 여필종부(女必從夫)로 상징되는 유교적 윤리관이 여전히 남아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희극이 해피엔딩으로 끝났어도 카트리나의 기나긴 설교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대사 속에는 남성우월적이면서도 남성 앞에서의 여성의 존재를 비하시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들처럼 여필종부라는 도덕관념에 사로잡힌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의 남성 귀족에게는 카트리나의 대사에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로 통쾌감을 느꼈을 것이지만 오늘날 점점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무조건 남편이 왕이라는 부부 간의 미덕은 구시대적 유물로 전락되었다.   

 

 

  진정한 승리자는 누구일까?

하지만 이 문장만을 가지고 셰익스피어가 남성우월주의자이며 여성차별자라고 단언하기에는 섣부르다.    오늘날에는 권위적인 남성이 강조되는 가치관의 중요성은 남녀평등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퇴색되었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그 당시 16세기 영국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16세기 영국에서는 훗날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인정해준 엘리자베스 1세가 등장하여 여왕이 등장하가도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남성들처럼 동등하게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고 상승할 수 있는 여건은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 결말을 놓고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보면 카트리나가 페트루치오에 굴복당하는 모습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페트루치오는 이제 카트리나와 정식으로 부부로 맺어지게 된 이상 책임감에 억눌린 처량한 남편으로 전락하게 된다.  카트리나가 한발짝 물러나 고개를 숙임으로써 오히려 그녀는 앞으로 가만히 앉아 페트루치오를 조종하는 여자로서 역으로 볼 수 있다.   

결말 이후에 대한 지극히 주인적인 상상이지만 카트리나가 일부러 순전한 성격으로 변한 척하는 연극을 한거 아닌가 생각도 해보게 된다.  결국에는 뛰는 페트루치오 위에 날아다니는 카트리나인 것이다.   부부가 된 이후부터 의도적으로 숨겨진 그녀의 말괄량이 성격이 나오게 된다면...   굳이 안 봐도 뻔한 비디오다.  

카트리나가 이전과 다른 제대로 된 말괄량이로 돌아온다면 과연 페르루치오는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말괄량이 길들이기 전략을 내세울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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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로맨스 소설이 말이죠
(둘 다 요즘 쓰여진거지만) 현대물하고 중세물하고 여성의 역할이나 성격이 확연히 달라요.
중세물은 보통 드센 여자가 남자에게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끝나구요
현대물은 약한 여자가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끝난답니다.

잼나요, 관점이란게. ^^
글구 로맨스 물을 보면, 여자의 소망도 나타나죠.
자유롭고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힘들 때는 든든한 보호막을 원하는. 남자도 그럴까요?


cyrus 2011-07-11 19:04   좋아요 0 | URL
힘들 때 든든한 동반자가 필요하는 남자도 있을거에요,
제가 그런 편이거든요,, ^^;;
그렇다고 든든하다고해서 엄마처럼 매달리는 마마보이는 오바라고 생각해요.

꽃도둑 2011-07-1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량광이 길들이기 아주 오래전에 영화로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크크 카트리나에게 동종요법이 먹혀들었군요.,..
ㅎㅎㅎ 근데 관계가 너무 복잡해요..
반면에 그녀의 여동생 비앙카("비앵커")는 성격이 거친 누나와는 정반대이다.(맨인용문 밑)
누나? 에잉~~ 읽다가 한참 웃었습니다. ,,^^

cyrus 2011-07-11 19:06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에도 셰익스피어의 희극과 비극을 처음 읽게 되면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이해 못해요. 읽다가 중간에 책 앞장에 있는
인물 소개도를 꼭 보곤해요, 그러다가 두번, 세번 읽게 되면
어느 정도 인물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정확하게 지적해주셨네요. 가끔 여성 인물에 대한 소개를 적을 때
그런 실수를 하곤해요. 바로 고칠께요 ㅎㅎ
 
씨앗의 자연사
조나단 실버타운 지음, 진선미 옮김 / 양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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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씨앗을 매우 사랑한다. 씨앗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조나단 실버타운 <씨앗의 자연사> pp 7에서 인용) -

 

   

  씨앗 한 개의 기적  

5년 전, 이스라엘의 과학자들은 무려 2000여 년이 된 종려나무 씨앗의 싹을 띄우는데 성공하였다. 이 놀라운 연구 결과는 고대 씨앗으로 싹을 틔운 사례들을 통틀어 역사상 오래된 씨앗의 발아로 기록되었다.  

성서에 나오는 인물 중 최고령인 `므두셀라` 의 이름을 딴 이 씨앗은 기원 후 73년 로마군의 공격을 받은 유대인 96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유명한 마사다 성채의 지하에서 발견되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종려나무 씨앗은 기원전 35년에서 서기 65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간혹 해외토픽감으로 고대의 씨앗이 싹을 틔우는데 성공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몇 년 전에는 어느 책에서는 1200년 된 연꽃 씨앗을 소량의 물이 담긴 샬레에 보관해두었더니 싹을 틔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연꽃의 씨앗은 다른 식물의 씨앗보다 수명이 길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심심찮게 수천년 묵은 오래된 연꽃 씨앗의 발아 소식이 학계에서 보고된다. 

이 지구상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씨앗들 중에는 어떤 것은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하고 한 떨기 꽃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불량 씨앗은 쭉정이가 되어 더 이상 크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씨앗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는 존재,  그래서 시작과 같은 희망찬 단어와 잘 어울린다.  오랫동안 땅 속 깊숙이 잠을 자던 씨앗 한 개가 드디어 땅을 비집고 새파란 새싹 이파리가 나오기 시작한 모습은 생명 탄생의 기적을 연출하기도 한다.   
 

  

  씨앗, 처절한 생존의 역사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남긴 명구처럼 먼지처럼 가볍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씨앗 속에는 식물들의 복잡하고 정교한, 그리고 경이로운 생명의 잠재력이 숨겨져 있다. 

<씨앗의 자연사>의 저자인 조나단 실버타운은 작은 씨앗 속에 숨겨진 놀라운 자연의 힘을 소개하고 있다.  평소에 볼 수 있는 콩에서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로 보잉 747 점보제트기 여섯 대를 합친 것만큼이나 거대한 자이언트 세쿼이아까지 험난한 생태계 속에서 생명의 꽃을 피우려는 씨앗들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섹스와 꽃가루받이, 씨앗 퍼트리기 그리고 하나의 싹을 틔우기 위해서 스스로 진화를 하는 등 자연선택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씨앗의 생존전략들은 동물들의 번식 과정 못지 않게 처절하기만 하다.  

연꽃과 이스라엘에서 싹을 틔운 종려나무 씨앗처럼 오랜 세월을 견뎌낸 씨앗은 자신의 대사활동을 스스로 중단시킬수 있으며 오랫동안 정지된 상태를 유지하며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과는 반대로 단명의 운명을 가지는 식물의 씨앗도 있다.  포플러와 버드나무 씨앗은 전파되는 순간 수시간 이내에 심을 흙을 찾지 못하면 썩어버린다.   

이처럼 씨앗이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씨앗이 새싹을 틔울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계절에 따라 변하게 되는 기후, 즉 습도, 온도 그리고 흙 속에 포함되어 있는 영양분 구성 성분에 따라서 자신이 성장하기에 유리한 조건이 들어맞을 때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식물이 유성생식을 선택한 이유

유성생식은 주로 암수라고 하는 두 가지 성별을 이용해서 다음 세대에 자손을 남기는 방법을 말하며 반대로 무성생식은 암수 개체 필요없이 한 개체가 단독으로 새로운 자손을 형성하는 방법이다.    

일부 식물들 중에는 무성생식을 택하는 종(種)도 있지만 동물과 같이 섹스로 생식하여 씨앗과 열매를 생산하기도 한다.   

18세기 중반에 ‘식물의 성’ 이라는 개념이 정립되기는 했지만 배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난자와 정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은 이어졌다.  배아를 생산하는 역할의 정도에 따라서 난자의 역할을 비중 있게 보고 있는 난자론자와 반대로 정자의 역할을 난자보다 중요하게 보는 정자론자들로 대립되었다.   

완두콩 교배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낸 그레고리 멘델은 수년 동안 조팝나물 교배실험을 통해 식물의 생식을 통한 연구를 시도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 멘델은 조팝나물이 무수정식물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계에서 유성생식이 보편적인 이유는 학자들의 호기심을 늘 자극했다.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식물의 번식과 유성생식 간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가설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유성생식이 선호되는 유력한 이유는 유익한 유전자들이 서로 합쳐져 유전자가 가지고 있는 이점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매 세대마다 뒤섞임으로써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유전적 다양성이 커지면 한 가지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는 무성생식 번식에 비해 수많은 유전자를 동시에 가져서, 환경 변화에 따른 적응이 수월하게 된다.  무성생식은 똑같은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지기에 유성생식에 비해 환경 적응에 불리하며 질병에도 취약하다.  

   

 

  씨앗에 숨겨진 자연 형성의 과정  

   


 

르네 마그리트 <천리안> 1936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부모가 가지고 있는 형질이 후대로 전해져 내려올 때 자연선택을 통해서 주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는 형질이 선택되어 살아남아 내려옴으로써 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좋은 형질의 후손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생물은 같은 종이나 다른 종의 개체와 경쟁을 해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그야말로 생존경쟁인 것이다.  

다윈이 주장한 자연선택은 작은 씨앗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중복수정을 통해서 씨앗 한 개 속에 두 개의 배아가 생긴다.  그러나 3, 4억개의 정자들 중에서 단 한 마리가 난자와 결합하여 수정되듯이 씨앗 속 두 개의 배아 중 하나만 수정될 수 있다.  수정 선택에서 탈락된 배아는 수정에 성공한 배아를 위해서 내배유가 되어 배아가 발육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씨앗의 내부에는 곧 세상 속에 등장할 자연의 세계만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여러가지 진화 과정들도 포함되어 있다.  복잡하면서도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씨앗의 종족보존 과정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맛 좋은 열매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씨앗이 만들어낸 초목들은 인간의 호흡 활동에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이다.   

중국 고대의 사상가 노자는 ' 씨앗 속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이, 그가 바로 천재일 것이다 ' 라고 말하였다.   

마그리트 속 화가처럼 알을 알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닌 알에서 깨어나게 될 생명, 즉 새의 탄생에 대한 가능성을 인지할 줄 아는 천리안을 가지고 있듯이 노자는 씨앗이 품고 있는 자연의 세계가 실현될 가능성을 눈여겨 볼 수 있는 사람을 천재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씨앗 하나가 이루게 될 자연을 탄생하게끔 만드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진화의 과정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신비는 풀려지지 않은 이상 자연이 형성되는 과정은 아직 인간에는 여전히 무궁무진하고 예측불가능한 미지의 세계이다.   

씨앗 속에 숨겨진 미지의 세계를 100% 이해하지 못한 인간은 노자가 말한 '천재' 의 수준은 아닌거 같다.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모든 것들이 조그마한 씨앗 한 개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심지어 씨앗의 존재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식물의 혜택을 받고 있는 은혜로움마저 모른다.   

인간이 거대한 지구에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 씨앗 속의 세계를 볼 줄 아는 '천재' 정도는 되지는 못하더라도 씨앗이 작다고해서 이들의 존재를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은혜로움을 모르는 무지한 '바보' 는 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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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7-06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구절을 보고, 아 이뻐~ 하고 기분이 사르륵 풀어지려는 찰나,
치열함에 대한 이야기를 홀긋 보고 다시 주저앉습니다. ^^

씨앗은 희망이죠, 실제적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끈질긴 진화와 적응을 해왔다 하더라도
희망이라는, 시작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그대로 있는거죠. 그때는 참 이쁜데 말입니다,,,

cyrus 2011-07-07 10:02   좋아요 0 | URL
제가 언급한 부분 이외에도 씨앗이 생존하는 전략과 방식이 다양해요.
그만큼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련과 고통이 수반되는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