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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가정용 곤충에 관한 은밀한 에세이 1881 함께 읽는 교양 9
조슈아 아바바넬.제프 스위머 지음, 유자화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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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  깜짝이야! "  

내 동생은 가끔 내 방에 있는 책꽂이를 종종 들러볼 때가 있다. 나보다 먼저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라 학생 때보다 책을 가까이하지 않는 동생이지만 본인 말로는 쉬는 날이면 틈틈이 책을 읽는다고 하던데,,,  쉬는 날 집에 오게 되면 하루를 거의 수면과 인터넷 눈팅으로 지내기가 다반사인 동생의 모습은 사회생활에 찌들린 현대인들의 독서수준 실태가 어떤지 잘 보여주고 있다.  (내 동생이 집에서 10분이라도 책을 읽는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우리 집에는 책꽂이가 내 방에 있는데 8기 신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받은 책들은 따로 꽂아 보관하고 있다.  여행 에세이, 순정소설을 좋아하는 동생에게는 인문과학 분야의 신간평가단 선정도서를 읽을리 만무하지만 어떤 때에는 신간평가단 도서들이 보관하고 있는 곳을 볼 때가 있었다. 아마도 한 권이라도 읽어볼 책이 있을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던가보다.   

그동안 8기 신간평가단 선정도서들 대부분은 분량이 꽤 상당한 책이 많았는데 8기 마지막 선정도서인 제프 스위머의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가 제일 분량이 적은 책이다.  그리고 분량처럼 작은 판형에다가 노란색의 디자인은 언제나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읽기에도 편한 책처럼(?) 보이게 만든다.  책제목도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딱 좋다.  '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여성 독자들의 감성을 건드리게 하는 순정소설 제목이 연상된다.  

작은 판형, 작은 분량 그리고 순정소설 같은 제목.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동생의 호기심을 증폭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 알지 못했던 동생은 무심코 작은 노란 책을 펼쳐본 순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 어머~~~  깜짝이야!  이 책 뭐야, 이상한 벌레 사진이 있잖아. "   

동생은 이 책이 사랑의 감정을 다룬 작은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하고 집어들었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예상했던 것과 다른 책의 내용이라서 한 때 공포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동생에게 이 책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주자, 왜 이런 책을 읽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본의 아니게 신간평가 도서로 공짜로 받은거뿐인데...  동생으로부터 독특한 취향(?)을 가진 오빠로 보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지붕 ' 작은 ' 가족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는 우리가 평생 살아가고 있는 보금자리인 집에서 은밀히 살고 있는 곤충들의 삶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이 낱낱이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곤충' 을 평소에 자주 보게 되는 나비, 잠자리 등과 같은 친숙한 녀석들이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고 있는 곤충들은 바로 빈대, 이, 파리, 바퀴벌레, 개미·집먼지 진드기 등 먼지 가득히 쌓인 집안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피부에 누비고 다니면서 인간에게 나쁜 병균을 선사해주는 불편함만 주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불청객이나 다름없는 해충을 ' 가정용 곤충 ' , ' 작은 가족 ' 이라고 친숙하게 표현하고 있다.   

친한 가족마냥 표현하는 것도 모자라 이들을 현미경으로 근접촬영하기도 하였다. 평소에 곤충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거나 심장이 약한 분들에게 읽기를 권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대한 곤충 사진들이 실려 있다.  그동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크기의 곤충들을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좋지만 몇 몇 곤충들의 모습은 괴수영화에 나오는 형태가 기괴한 괴물이 연상될 정도로 책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집먼지 진드기, 바퀴벌레 등 우리에게 혐오스런 감정을 느끼게해주는 곤충들에 대한 내용은 읽는데 고역이었다.  안 그래도 바퀴벌레 한 마리에도 속으로 쩔쩔매고 기겁하는 성격인데 평소의 크기보다 큰 바퀴벌레의 사진을 보니 살짝 기겁하기도 했다.   

 

 

   가정용 곤충 종결자, 집먼지 진드기  

그리고 이 책 중에서 관심 있게(?) 읽은 내용은 진드기에 관한 것이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진드기는 특정한 곳에 사는 곳마다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모낭진드기는 인간의 속눈썹에서 사는 진드기의 종류인데 우리 인간의 속눈썹에 최대한 25마리(!) 넘게 산다고 한다.  이들은 속눈썹 모낭에 터를 잡고 새로 난 눈썹을 뜯어먹는다. 눈가에 화장품을 바르는 사람에겐 모낭진드기가 더 많이 산다.  하지만 속눈썹에 25마리 사는 모낭진드기보다 더 한 놈이 있으니 그 곤충이 바로 집먼지진드기이다. 침대 한 대에 집먼지진드기가 10만~1000만 마리쯤 산다. 거기에다가 이불, 베개,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서도 살고 있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 수만 마리 이상의 집먼지진드기랑 한지붕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피부에서 떨어져나오는 각질을 먹고 사는데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비듬이란다.  그리고 확대된 진드기 사진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실내온도가 21도이면 집먼지 진드기가 가장 좋아하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도 가장 좋아하는 온도인 동시에 ... 

책 속에 소개한 곤충들에서 해충 종결자라면 아마도 집먼지 진드기일 것이다. 집먼지 진드기가 온갖 호흡질환와 피부질환의 원인으로 낙인 찍히고 있는만큼 이들을 박멸하기 위한 다양한 약품와 기구들이 나오고 있지만 저자는 집먼지 진드기를 박멸하는게 무척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해충통제회사도 집먼지 진드기를 박멸하기가 어렵다고 인정할 정도이니 작은 진드기가 무섭다.  저자는 해충제 대신에 진드기를 박멸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는데 베개 커버를 폴리우레탄으로 씌우고, 60도 이상의 물에서 매주 이불을 세탁하라고 조언해주고 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귀차니즘이 숨겨져 있는 인간들에게는 이런 조건으로 세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말 집먼지 진드기가 혐오스러운 사람들에게는 권하고 싶은 방법에 불과할 뿐이다.  

  

   

  이 책은 해충들을 쫓아낼 수 있는 지침서가 아닙니다

이 책이 우리 눈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해충이라고 불리는 가정용 곤충들의 사생활을 알려준다고해서 이들을 집으로 쫓아낼 수 있는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 하에 책을 읽는다면 도리어 공포 앞에서 연약한 심장이 떨어져나갈 수 있다.  저자가 알려주는 가정용 곤충들을 박멸하는 방법을 일일이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런 의도로 책을 읽게 된다면 가족으로 여기는 저자에게는 퍽 섭섭하게 느낄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실제로 경험할 수 없는, 가정용 곤충들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보금자리의 은밀한 구역을 엿볼 수 있는 경이로운 기회라고 생각하자.  굳이 돈을 안 내고도 우리의 눈에 충격과 공포감을 주게 만드는 3D 영상관 같은 경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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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5-1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어쩐지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쓰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는데, 신간평가도서로 온 것이군요. 역시나 전 벌레는 워낙 싫어해서...리뷰만 읽어도 대 만족이에요.

성향에 맞지는 않은 책이셨을 텐데 참고 독서하시는 것도 대단하십니다! ^^

cyrus 2011-05-14 15:41   좋아요 0 | URL
리뷰 한 편 쓴다고 이 책 네, 다섯 번은 읽었던거 같아요^^;;
분량은 적어서 참 좋았는데,, 막상 펼치기가 두려운 책이에요ㅎㅎ

루쉰P 2011-05-15 07:56   좋아요 0 | URL
뜨아..대단하심. 전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나 많이는 못 읽는데..

겉표지만 봐도 펼치기 두렵다는 생각에 동감입니다. ㅋ

마녀고양이 2011-05-14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여,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눈썹이나 옆구리가 가려우면
음... 진드기가 돌아다니나봐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울 코알라가
옆에서 질색팔색을 합니다... ㅋㅋ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곤충에 대한 혐오감을 유전적으로 조금은 타고난 듯 해요.
아마 선사 시대 대형 곤충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사마귀 이런 녀석은 도저히 좋아할 수 없더라구요.

cyrus 2011-05-14 15: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곤충에 대해서 안 좋은 기억은 없지만 스멀스멀 기어가는
녀석을 보게 되면 저도 모르게 소름끼치게 되는 그런 느낌이 오더라구요. ^^;;

잘잘라 2011-05-1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쓰기 시작하면 감당 못할것 같아서,
이 책은 정말 무조건 패~쓰!!!! ㅜㅜ
으으.. 그러나.
정말
모르는게 약,일까요?
아는게 힘,일까요?
ㅜㅜ

cyrus 2011-05-14 15:45   좋아요 0 | URL
이런 곤충들의 습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곤충들의 모습까지
알게 된다면 감당 못할겁니다. ^^;;

BRINY 2011-05-1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게 약이다!를 외치며 이 책은 사지 않을랍니다.

cyrus 2011-05-16 12:4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BRINY님 ^^

출판사 입장에서는 미안한 말이지만,,^^;; 확대시킨 곤충 사진만 아니면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되요. 특히 진드니가 바퀴벌레 사진을 보게 되면,,
기겁할거에요ㅎㅎ

감은빛 2011-05-1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이상하게 여기저기 가려운 느낌이 들긴 하더라구요~ ^^
싫든 좋든 늘 같이 살아야 하는 존재에 대해 좀 더 아는 건 좋은 일이 아닐까 싶어요.

역시 시루스님! 멋진 리뷰입니다!

cyrus 2011-05-16 12: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책 읽고 나니깐 갑자기 쓰고 있던 베개와 침구류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더라구요^^;;

pjy 2011-05-17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좋은 환경은 곤충에게도 좋은 거죠~~ 우리 쫌 같이 살죠ㅋ 그정도는 괜찮아요~ 다만 서로 잘 모르게! 예의있게!!

cyrus 2011-05-17 13:06   좋아요 0 | URL
pjy님은 다른 분들과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군요, 저 역시
그런 편이거든요. 저는 진드기 같은 곤충은 싫어하지만 결벽증에 가깝게
너무 청결하려고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 너무 청결함에 매달리면
나쁜 곤충들을 박멸할 수 있겠지만은,, 살아가는데 피곤할거 같아요 ㅎㅎ
 
<사유의 악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유의 악보 - 이론의 교배와 창궐을 위한 불협화음의 비평들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1
최정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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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Overture):  시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사, 작곡 그리고 연주)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
내가 말하고 있다고 믿는 것,
내가 말하는 것,
그대가 듣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듣고 있다고 믿는 것,
그대가 듣는 것,
그대가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
그대가 이해하는 것,
내 생각과 그대의 이해 사이에 이렇게 열 가지 가능성이 있기에
우리의 의사 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시도를 해야 한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시도], <상상력 사전> 열린책들, p 5 -

 

 

 

  1악장: 로렌스 스턴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삶과 견해>   

     

 


로렌스 스턴 (1713~1768)
 

 

세계문학사상 가장 기이한 작품이라고 불리는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삷과 견해>(우리나라에서는 문지의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에서 ' 트리스트럼 샌디 ' 라는 이름으로 국역되어 출간되었다)을 쓴 영국의 작가 로렌스 스턴.  영국의 평범한 신사였던 그는 이 유명한 소설을 집필했을 당시 폐결핵을 앓고 있었으며 건강이 악화되어 몹시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스턴은 소설의 첫 1권을 쓰기 시작한 1759년부터 1767년까지 총 8년동안 제9권까지 집필, 출판하였다.  이듬해 작가가 사망하게 되어 이 소설은 9권까지 마무리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지만 후대의 문학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트리스트럼 샌디> 못지 않게 기존의 소설 형식의 틀을 거부한 내용으로 독자들 사이에서는 난해함으로 가득찬 악명 높은 소설인 <율리시즈>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백년 전에 이미 ' 의식의 흐름 ' 방식을 시도한 로렌스 스턴 덕분이다.  

스턴은 <트리스트럼 샌디> 출판 당시 영국의 수상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윌리엄 피트 에게 진심어린 존경(?)이 담긴 헌정사를 썼는데 집필하는 동안 폐결핵이 선사한 신체적 고통을 웃음의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스턴의 낙천주의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헌정하는 작품에 대해 이처럼 절망을 느끼는 가엾은 헌정자도 없을 것이니,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이 작품을 이 나라 한 귀퉁이 외딴 초가집에서, 병약한 육신과 질병과 그 외 인생의 해악을 웃음으로 이겨보려 애쓰며 저술했기 때문인데, 우리가 미소를 짓거나, - 더욱이 소리내어 웃을 때마다, 보잘것없는 삶의 단편에 무엇인가 더한다는 강한 신념 때문입니다.  

- <트리스트럼 샌디 1> [진심으로 존경하는 피트 경께] 로렌스 스턴, 문학과지성사, p 11 -

  

스턴은 서문격인 헌정사에서 영국의 수상 각하가자신이 쓴 소설을 읽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큰 영광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소설의 평가에 대해서 은근히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 의식의 흐름 ' 기법을 사용하는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는 이 소설을 읽었겠지만 윌리엄 피트가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관심있게 읽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안 읽었을 수도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 세계문학사상 가장 기이한 작품 ' 이라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벗어난 독특한 내용과 서술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탈선을 거듭할 정도라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파악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내용 도중에 또 다시 피트 경에게 보내는 작가의 서문이 나오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등 풍자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어려운 단어와 문장까지 사용하고 있어서 아무리 수많은 각주을 달고 있어도 소설의 형식을 거부한 이 소설을 국내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변주 : 평범한 대학생 cyrus의 일상과 <사유의 악보>에 대한 견해  

인간은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나 어떤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피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트리스트럼 샌디> 단 한 편의 작품을 통해서 로렌스 스턴이 집필기간 동안 느꼈을 폐결핵의 고통을 말끔히 날릴 수 있었다.  <팡세>를 남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사상가인 블레즈 파스칼은 불의의 마차 사고를 겪게 되어 심하게 다치게 되었는데 한동안은 사고에 대한 후유증과 불면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파스칼은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 연구, 훗날 자신의 수학적 업적 중의 하나가 된 사이클로이드(직선 위로 원을 굴렸을 때 원 위의 정점이 그리는 곡선) 연구를 통해서 후유증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유명한 인물의 일화 이외에도 인간에는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근심과 고통 혹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방법으로는 독서 또는 그냥 무심하게 잠드는 것이다.  그나마 독서는 내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안정제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 그리고 감정의 카타르시스을 느끼게 해주는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어서 왠만하면 독서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편이다.  

요즘에는 곧 다가올 시험에 대한 부담감에다가 상당한 분량의 내용을 요구하는 레포트 준비 때문에 이번 달은 거의 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학교 가서 수업 받고 도서관에 가서 전공 책으로 공부하는, 이 반복적인 패턴의 일상이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 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복학할 때부터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바쁜 학업 때문에 알라딘 블로그 활동도 뜸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읽어야 할 책은 많아지는 반면에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 전공책 네 다섯 권을 하루 종일 내내 보고 있으니 누런 황사가 내 마음 소을 덮인 것마냥 답답함이 느껴질 때도 많다.   그리고 이번 달에도 독서모임에 참석할 수 없어서(이번 달만해도 벌써 세 번째이다) 아쉬움을 억지로 삼켜내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하루 일상 중에서 편안함을 느껴보는 시간은 학교 갈 때 또는 집으로 돌아갈 때 타게 되는 버스 안에서이다.  버스를 타는 동안에는 책을 읽다거나 혹은 잠깐의 낮잠이라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책 읽는다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버스 안에서 책 한 권 읽게 되면 30분 이상을 못 넘긴다.  그 이후로는 조금씩 눈꺼풀이 무거워지게 되며 바로 수면 모드로 들어가게 된다.   

어쩌면 버스 안에서 책 읽는 시간보다는 앉아서 잠 자는, 아니 꾸벅꾸벅 졸았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요즘 버스 안에서 읽었던 책이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라면 . . .  

과연 이 책을 버스 안에서 졸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읽을 수 있는 독자가 있을 것인가,,, ?  

나는 지금까지 버스 안에서 네 번 정도 <사유의 악보>를 읽었는데 20분도 못 넘긴채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을 작정이다.  

이 책을 통해서 과연 인간의 사유라는 행위의 당위성에 대해서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난해한 글 덕분에 그동안 나의 머리속에 맴돌고 있었던 ' 사유해야 한다 ' 라는 일종의 강박관념을 벗어날 수 있었다.  들뢰즈가 무슨 말 하는지, 박상륭의 소설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그것들은 중요하지가 않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불협화음의 텍스트를 읽음으로써 지금까지 살면서 스트레스가 남기고 간 인생의 노곤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버스를 타면서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도 모를 정도로 깊은 수면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이 요즘 든든한 수면제 역할(?)을 하고 있어서 참 좋다.      

만성 불면증에 시달렸던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한 수면제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면 나의 수면제는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이다.  

 

   

 

 * * * * * * * * *  ' 기형과 잡종의 조각난 ' 사유의 악보  * * * * * * * * *

 

최정우의 <사유의 악보>는 질 들뢰즈, 루이 알튀세르, 조르주 바타유 등과 선뜻 다가서고 싶은 엄두가 나지 않은 사상가들의 사유가 종합 선물 세트처럼 담아내고 있어서 읽기 힘든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서문 아니 서곡에서 ' 기형과 잡종의 조각난 육체들 ' 이라고 자신의 글을 정의한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 기형과 잡종의 조각난 ' 그의 독특한 사유 방식이 일반 독자들에게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을 뿐이다.  일정한 줄거리 형식이 없으며 밑도 끝도 없는 내용 전개로 이루어진 기형적인 소설인 <트리스트럼 샌디>를 처음 읽는 독자가 느끼게 되는 반응처럼 말이다. 

<트리스트럼 샌디>와 <율리시즈>를 만나게 되면 독자는 이 소설의 줄거리가 어떻게 진행될 것이며 결말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소설 읽기에 대한 통상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처럼 <사유의 악보>는 저자가 자신만의 사유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건지 또는 사유의 결과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문하는 방식을 요구하게 되는, 평소대로 인문학 도서를 읽는 것처럼 오목조목 따져 가면서 읽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읽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물론 이 책에서 악보처럼 등장하고 있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사상가들의 광범위하게 축적된 사유의 결과물를 이해하면 불협화음의 악보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으며 더욱이 들뢰즈나 바타유와 같은 난해한 사상들을 파편적으로나마 충분히 이해를 하고 있다면 불협화음으로 이루어질 거 같은 악보에 깊숙이 묻혀져 있는 아름다운 화음(?)의 소리를 찾는 의외의 성과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곡에서 저자는 자신의 악보는 결코 음악이 아니며 단지 독자들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표기의 형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아예 자신의 의도를 배반하고 마음껏 해석하기를 강력히 권하고 있다.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순전히 독자들의 선택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독자는 자신만의 독서, 즉 사유의 악보를 연주함으로써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사유 방식의 가능성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2악장:  절대로 연주되어질 수 없는 것 :  

           칸딘스키와 존 스텀프의 악보 그리고 <사유의 악보>  

 

 


바실리 칸딘스키 <상호의 화음> 1942년   

  

러시아의 추상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책에서 회화를 음악으로 접근하는 새로운 표현의 사유 방식으로 시도하고 있다.   

 

첫째는 분명하게 나타나는 단순한 형태에 종속되는 단순한 구성으로, 나는 이를 선율적 구성이라 부른다.  둘째는 복합화된 구성으로서, 이는 ......  주요 형태에 여러 형태들이 종속된 구성이다.  ......  이 복합화된 구성을 나는 교향악적 구성이라 부른다. 

- 칸딘스키 <예술에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중에서,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1> p 39 재인용 -

 

그가 남긴 추상화는 교향악적이고도 역동적인 추상표현을 관철한 뒤 점차 기하학적 형태로 배열되는 것이 특징인데 칸딘스키는 자신이 그린 그림 아니 회화의 악보에서 음악의 선율을 느낄 수 있다고 하였다.  점, 선, 면 라는 회화의 세 가지 요소만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면 자신의 그림에서 음악을 듣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칸딘스키의 친절한(?) 부연 설명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각기 각색의 알록달록한 무수한 원형들 그리고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로 가득한 그의 그림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이 화가가 도대체 무엇을 그리고자 했는지 의문을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캔버스를 오랫동안 뚫어져라 쳐다봤자 결국에는 추상화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일반적인 그림처럼 형태와 색채로 이루어진 특정 대상을 재현하기 위한 의도로 그려진 것이 아니다.  칸딘스키는 자신의 추상화를 통해서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형태 배열이 만들어낸 선율적 구성의 아름다움을 예술화하여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것도 귀로 듣는 것이 아닌 눈으로!  

칸딘스키가 회화를 음악에 접근했다면, 최정우는 사유의 텍스트를 음악에 접근하고 있다.

이론, 예술, 철학 등 다양한 사유의 형태들이 조합하여 만들어낸 ' 사유의 악보 ' 역시 칸딘스키의 그림처럼 사유를 하나의 ' 음악 ' 으로 둔갑한 ' 예술화 ' 한 하나의 형태다.  비록 저자는 독자들에게 기형적인 형태 배열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일말의 참고사항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사유의 텍스트를 장난감 블록을 조립하듯이 접붙임과 해체를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사유의 텍스트에서의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다.

 


 

존 스텀프 <요정의 아리아와 죽음의 왈츠> 악보 일부

 

그리고 운이 좋으면(책을 읽게 된 독자가 저자가 말하고 있는 ' 소수의 독자 ' 중의 한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기형적인 텍스트에 매료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 나온 <사유의 악보> 표지 이미지는 존 스텀프의 <요정의 아리아와 죽음의 왈츠> 악보 중 일부에서 따온 것이다.  국내에서는 ' 죽음의 왈츠 '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무시무시한 이름 덕분에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이 곡을 연주를 하게 되면 죽게 된다는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괴담으로 전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곡은 작곡가 존 스텀프가 친구들과 자신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일뿐 악마가 만든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존 스텀프의 <죽음의 왈츠>는 단순히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연주되는 왈츠풍의 ' 음악 ' 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악보를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텀프가 만든 악보는 절대로 연주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무슨 의도로 이런 기괴한 악보를 만들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존 스텀프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음표로 이루어진 악보 자체를 ' 형태 ' 의 이미지로 변환시키는 새로운 구상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 형태 ' 의 악보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스텀프의 친구들은 기존의 상식의 틀을 거부함에서 나오는 독특한 재미를 느꼈겠지만 반대로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악마가 만든 저주 받은 음악의 악보라고 생각하면서 벌벌 떨어야만 했다. 

이렇듯, 어떻게 접근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악보의 형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탄생물들이 나오는 것이다.  <사유의 악보> 역시 읽는 독자들마다 각기 다른 해석들의 결과가 나올 것이다.


 

 


  3악장: 또 다시 <사유의 악보>에 대한 견해   

 

시대는 폭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획득해가고 있는 것은 불충분한 폭발뿐이다. 혁명은 계획 단계에서 제거되거나, 아니며 너무 일찍 성공한다.  격정은 순식간에 고갈되어 버린다.  

- 헨리 밀러 <북회귀선> 문학세계사, p 22 -

 

창조적인 행위를 통해서 독자들은 사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지게 된다.  사유하는 행위는 단순히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이성적이면서도 강압적인 방식이 아닌 우리 스스로 현상에 대한 질문을 구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는 능동적인 방식인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식의 명제는 참된 진리로 이루어져있을지 몰라도, 그 명제들로 이루어진 지식 체계 전체는 무의미한 내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버트런트 러셀은 오직 ' 참 ' (True)으로 이루어진 확실성의 세계의 토대를 찾기 위해서 시도를 했지만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갔지 않은가.  다만 러셀은 복잡해져가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으로 사고(思考)할 것을 권하였다.  여기서 사고는 결국에는 사유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를 내릴 수는 없기에 어느 대상과 현상 또는 그러한 것들의 측면을 지각(知覺)의 작용에 직접 의존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해야 한다.  

<사유의 악보>, 이 책이야말로 그전까지 절대불변의 진리만 찾아 헤매던 기존의 사유 방식에서 탈피하여 ' 혁명 ' 처럼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능동적인 사유 방식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있다.  좀 과한 비유일수도 있지만 이 책의 등장은  ' 사유의 혁명 ' 일지도 모르겠다.   비록 저자가 겨냥하고 있는 독자들은 ' 소수 ' 로 한정되어 있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은 항상 소수의 힘에 의해서 등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헨리 밀러의 말처럼 새로운 시대를 찾기 위한 혁명에 대한 격한 갈망과 요구 그리고 열정은 너무 뜨겁다보면 한순간에 식어버릴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단순히 ' 알라디너 ' 가 쓴 책이라는 단순한 호기심적 관심이 아닌 새로운 사유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으로 읽혀지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이 한 권의 책이 전염병처럼 창궐하기를 소망하듯이 이 책이 그동안 위기론으로 암울하기만했던 우리나라 인문학의 판도를 확 뒤집어질 수 있는 진짜 제대로 된 사유의 ' 혁명 ' 이 되기를 소망한다.

   

  

 

  종곡(finale):  트리스트럼 샌디 Ver. 의 헌정사   

 

 람혼님. 

 " 주제, 내용, 형식의 3대 요소가 좀 특이하긴 하지만, 저는 이것을 감히 서평이라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니 람혼님의 발 앞에, 정중함과 겸손함으로 바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기를 간청드리는 바이며. -  당신께서 여가가 있으실 때.  -  람혼님, 기회가 있다면, 또한, 선의를 위해 - 이대로 받아주시기를 소원하는 바입니다.   

 

신간도서평가 활동을 통해서  

람혼님의 음악을 공짜로(?) 듣게 되는 영광을 누리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독자, 

cyrus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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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04-1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벌써 리뷰라니요.... 전 책을 아직 받지 못했는데 이 어인 일일까요?..ㅡ.ㅡ
전체적으로 읽기에 만만한 책은 아닌가보네요..
아 근데 리뷰는 근사해요..^^

cyrus 2011-04-11 15:49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아직 안 받았어요. 지난주에 운 좋게도 도서관에
이 책을 발견해서 읽고 있었던거 뿐이랍니다. ^^;;
책이 언제 올까요? ㅎㅎ

책 구성이 하나의 음악처럼 여러 개의 악장과 몇 곡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내용도 들뢰즈, 에드워드 사이드, 바타유,
박상륭, 탈근대성 등 다양한 주제가 정말 기형적이라고 할만큼
다양하고 광범위합니다. ^^;;

맥거핀 2011-04-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가 스스로 택스트를 해체, 재조립하고 보아야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책에 참 어울리는 리뷰네요.^^ 그 사유의 악보를 보고, 어떤 음악을 스스로 만들어내는지는 읽는이에게 달려있겠지요. 좋은 음악 잘 들었습니다. (근데, 저도 책은 못 받았음..짤린거임?-_-)

cyrus 2011-04-11 15:56   좋아요 0 | URL
저도 아직 이 책 못 받았어요. 위의 꽃도둑님 답글에서도
밝혔지만 도서관에 대출해서 읽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요즘 시험 공부 기간이라서 책 읽고 서평 쓸
시간이 없어서 다른 평가단원분들보다 먼저 얼른 읽고 서평 올리게
되었네요.. ^^;;

책의 서문(서곡)에서 저자는 자신의 텍스트를 자유롭게 해석하고 사유할 것을
권하고 있더라구요. 물론 저도 아직 이 책의 80% 정도는 이해를
못했지만 계속 읽다보니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발견도 하는 나름의 성과도 있었구요. 특히 ' 나르시스트를 구별하기 위한 자기진단법 ' 이라는
내용을 강추합니다. 자서전 읽기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사유 방식이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

굿바이 2011-04-1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이런 독특하고 훌륭한 리뷰를 이리 빨리 올리시다니요^^
'기형과 잡종의 조각난'이라는 표현은 많은 것들을 설명할 수 있거나, 절대로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라고 읽히기도 하네요. 아직 책을 읽지 않아서 그저 넘겨짚었지만 말이죠.

재미있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1-04-13 00:22   좋아요 0 | URL
얼른 책이 와야할텐데 말이죠,, 직접 읽어보시면 또 다른 사유의 방식을
찾으실 수 있을거에요. 하지만 내용이 쉽지 않으니 읽기 전에 마음
단단히 먹어야합니다. ^^;;

양철나무꾼 2011-04-12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하면 한니발이 생각난다는~
저도 이 책 끼고 앉았는데 말이죠, 끼고만 앉았어요.
이 책 갈피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칸딘스키...제법 잘 어울리는걸요~^^



cyrus 2011-04-13 00:24   좋아요 0 | URL
한니발이라면 살인마 나오는 영화를 말하는거죠?
제가 이 유명한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거든요,, ^^;;
무리해서 읽아나가기보다는 생각나는대로 관심 있는 부분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좋을거 같습니다 ^^

starover 2011-04-1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직접 작사한 노래가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cyrus 2011-04-13 00:26   좋아요 0 | URL
아,, 일부러 작사 작곡 연주라고 적은거였는데,, 이프리트님에게
오해를 주고 말았네요.

<사유의 악보> 제목 속에 있는 ' 악보 ' 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책 내용 속 비평문들의 부제가 한 장의 악보처럼 '~ 악장 ' , ' 변주 ' 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쓴 서평도 일부러 책의 구성방식을
패러디한거랍니다. 그래서 일부러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용문을
작사, 작곡, 연주라고 적은겁니다. 사실 저 인용문은
이번에 나온 <상상력 사전> 첫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죠. ^^

starover 2011-04-22 19:5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rainmaker_1201 2011-04-1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아마 이렇게 정성스러운, 그리고 일종의 '수면독서(!)'에 기반한 리뷰는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약간 (먼저) 읽고 있는데, 어쩌면 최정우씨는 인문학이라는 시대의 코드 대신 그 자리에 '사유'라는 들뢰즈적 의미를 도입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ㅎ

cyrus 2011-04-15 00: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yjk7228님^^

이 책,, 사실 읽기에 좀 어려운 면이 있었지만 님이 언급하신
들뢰즈적 의미의 사유라는 의미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으면
읽어볼만한 인문학 책인거 같습니다. ^^

람혼 2011-04-15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소중한 서평은 저자인 저에게 너무나 과분한 음악, 또 다른 축복의 악보가 아닐까 합니다. 소중하고 세심하게 잘 읽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cyrus님! ^^ 분석적인 서평이라기보다는 저의 악보를 변주하신 또 다른 악보 같이 느껴져서 말 그대로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cyrus 2011-04-20 08:0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람혼님, 요즘 시험기간이라 바빠서 답변이 늦었네요 ^^;;
저야말로 람호님의 악보 덕분에 의미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람혼님의 다음 글도 기대가 됩니다. ^^

람혼 2011-05-03 16:4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다음 책도 결연한 의지로 치열하게 써보겠습니다. 함께 파이팅! ^^

루쉰P 2011-04-17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독자에게 강력하게 마음껏 사유할 것을 권유하는 철학책이라고 하니 마음에 와 닿네요. 게다가 버스에서 불철주야 독서에 매진하며 수면제 역할을 하는 이 책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시는 것도 마음에 팍팍 와 닿네요.

독서나 잠드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신다니 저와 비슷하신 듯, 파스칼처럼 고통을 공부나 연구로 이겨내기에는 연약한 갈대와 같은 인간이라서 힘들고, 저도 독서를 통한 광기 어린 스트레스를 풀고 있죠. 푸훗.

암튼 좋은 리뷰 덕분에 많이 느끼고 가요. 시험 잘 보내세요. 학교의 용자가 되세요!

cyrus 2011-04-20 08:05   좋아요 0 | URL
시험이 끝나면 잠 제대로 푹 잤으면 좋겠네요, 밤 새면서 책은 읽을
수 있는데 공부만큼은 정말 밤 새가면서 하는게 힘드네요 ^^:;

아이리시스 2011-04-1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잘 지내신 거예요? 아직 중간고사 전이죠? 이건 너무 어려워서 읽기가 힘들어요. 책이 어려워 보이니까 리뷰도 어려워 보여서 겁먹었어요. 위에 람혼님이 저자이신 거구나. 저도 트리스트럼 샌디는 대학 때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퍼낸 출판사가 여전히 대산 뿐인 거예요? 역시 시루스님 부지런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아요. 봄날 맘껏 즐기시고 중간고사도 완전 화이팅!^^

cyrus 2011-04-20 08:09   좋아요 0 | URL
이번주부터 시험기간이에요, 지금까지 시험친게 고작 한 과목뿐이에요,,-_-;;
아이리시스님도 잘 지내고 계시는거죠? ^^ 저도 처음에는 읽기 전부터
두려움을 가졌었는데 편안한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읽어보시면 어렵지
않아요,, ^^;;

아이리시스님 댓글 보고나니 힘이 마구마구 솟네요, 남은 시험기간동안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1-04-26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밤을 같이 지새던 동지로서, 오랜만이라 안부 인사 차 들렸어요~
시험 완전 대박 나세요~^^

cyrus 2011-04-28 14:44   좋아요 0 | URL
이틀전에 시험이 끝났어요. 열심히 한만큼 시험이 잘 쳤어요,, 아직
중간시험 성적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ㅎㅎ;;
 
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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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자는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 배운다.  

- 아이스퀼로스 <오레스테이아> 중에서 -  

  

 

    

  니체, 생애 마지막 10년  

한 중년의 남자가 마부로부터 가혹하게 채찍을 맞는 말을 끌어안고 광장 한가운데서 오열하고 있었다. 마부의 눈초리도, 웅성거리는 군중도 그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친구들에 의해 정신병 요양소로 옮겨진다.  

정신병 요양소로 가게 된 그 중년 남자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 신은 죽었다 " 고 외친 남자는 이렇게 속세로부터 멀어져 갔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통해서 신에 의지했던 인간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주인공, 즉 ' 위버멘쉬 ' (Uebermensch)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 위버멘쉬 ' 는 가치의 창조자로서 풍부하고 강력한 생(生)을 실현할 수 있는 ' 힘에의 의지 ' 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가 살았던 19세기에 신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자살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 신 ' 이라는 하나의 관념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시도를 해내게 된다.  니체에게서 신의 존재 부정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의지를 앗아가버린 모든 억압과 우상도 부정하는 것이다. 니체의 이 같은 선언은 인간의 개별적 주체성을 근간으로 한 20세기 실존철학의 전범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니체는 생애 마지막 10년은 자신을 둘러싼 두려움과 허무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했다.  평생을 질병에 시달렸고, 정신분열증에 걸려 사실상 죽은 거나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  10대 때부터 지독한 편두통을 호소했으며 왕성한 저작활동을 하던 3, 40대에는 극심한 조울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거대한 세계를 이해하고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철학이나 과학에 의존한다. 그러나 근원적인 지식의 토대를 파고든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때로 정신적인 부작용에 시달리곤 하였다.    

 

 

 

  러셀은 왜 미쳐버렸는가?  

현대 수학의 금자탑이라고 불리고 있는 <수학원리>를 집필한 논리학자 버트런드 러셀 역시 정신분열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버트런드 러셀의 치열했던 지적 여정을 만화로 소개하고 있는 <로지코믹스>의 서론에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 왜 유독 논리학자는 정신병에 잘 걸릴까? ” 

앞에서 언급한 니체를 ' 논리학자 ' 로 규정되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 논리학 ' 이라는 학문 자체를 '철학 ' 과 비교해서 따져놓고 본다면  판단이나 개념의 내용이 진리인 것 같은 인식을 얻기 위한 사고의 경로나 그 형태를 이성적으로 연구한다는 점은 철학과 논리학은 서로 유사하다.  무엇보다도 논리학은 애초부터 철학에서 떨어져나온 한 핏줄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로부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서 논리학이라고 불리는 학문의 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으며 그 후로 뛰어난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적 인식을 올바른 것으로 하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연역적 논리학 대신 모두 제각기의 입장에서 특징있는 인식론적 논리학을 설정하였다.  

어쨌든 논리학자들이 보여주는 광기에 대한 이야기의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할 줄 아는 논리학자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 논리학자 ' 에 대한 인식과 정반대라서 흥미롭다.     

특히 ' 러셀 ' 이라고 하면 대중들 사이에서는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손꼽히고 있다.  <수학 원리>를 31살에 쓴 수학자이자 논리학자이며 평생에 걸쳐 감옥도 두려워하지 않고 1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등을 반대한 반전 평화운동가이자 사회학자였다.  그런 그가 정신분열증의 고통에 남몰래 시달려야만 했던 것일까?    

 

   

 

  ' 확실성 ' 이라는 이상과 모순된 현실 사이에서의 갈등

러셀은 논리학을 통해 완전무결한 수학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평생을 바치게 된다. 처음에는 수학을 통해 확실한 토대를 찾으려 했던 러셀의 지적 욕망은 시간이 지나면서 따분한 계산에만 열중하는 수학에 염증을 느끼게 되고  그 당시의 수학에 만족하지 못한 러셀은 본격적으로 철학에 열중하게 되고, 자신은 수학자가 아닌 논리학자라는 자각을 갖게 된다. 

러셀에게 논리학자라는 자각을 심어준 결정적인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라이프니츠였다.    

 

유클리드와의 첫 만남은 내 안에 씨가 뿌려진 것과 같았고 ,,,  라이프니츠의 꿈에 대해서 듣는 것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았다.  

- <로지코믹스> p 100 -

 

어린시절 러셀은 세상의 확실성을 부여하고 증명해줄 수 있는 학문을 유클리드의 기하학이라고 반견하게 되지만 점차적으로 수학의 확실성에 대한 회의감이 들게 되면서부터 라이프니츠의 논리학에 심취하게 된다.   라이프니츠는 러셀보다 수백년 전부터 이미 철학에 확고한 토대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에 대해서 탐구하였다.    

러셀에게 라이프니츠의 만남은 유년시절의 유클리드의 만남 못지 않게 자신의 지적 영역을 한층 더 확장될 수 있었던 전환점이 되었다.  젊은 니체가 헌책방에서 우연히 쇼펜하우어의 책을 발견하게 되면서 ' 생(生)의 의지 ' 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부여되는,  예전부터 확신하고 지배하고 있었던 가치와 신념을 자신 스스로 타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러셀은 수학을 연구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 곤경 ' 을 처하게 되는데 마음 속 깊이 품은 목표, 즉 세계에 대한 확실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예전부터 확고히 서 있는 토대의 기본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지적의 여정 속에는  ' 정신적인 ' 위험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러셀이 활동하던 당시 ' 무한 ' 이라는 개념은 수많은 수학자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셀은 수학에서 위치하고 있는 무한의 영향력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고 있지만 무한이라는 개념 역시 수학의 허약한 내면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 관념 ' 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로지코믹스> p 143 

러셀의 꿈 속에서 ' 수학의 왕 ' 가우스가 나타나  

무한의 수학적인 토대를 무너뜨렸다고 꾸짖고 있다.
 

 

 


 

<로지코믹스> p 144,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은 오랫동안 확고히 세워져 있었던 하나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가 러셀의 꿈 속에 나타나는 장면은 관념적인 존재를 부정하려는 러셀이 겪게 되는 내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역사적인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전부터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세상의 믿음, 가치 등이 한순간에 변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 예측불가능한 변화의 시류 속에 자신이 직접 동참하고 주도하는 것 역시 쉽지가 않은 일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이 학계로부터 제대로 인정받기까지 이 두 사람은 생전에 종교적인 핍박에 시달려야 했으며 니체 역시 신을 부정한다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종교로부터 배척과 오해를 받아야만 했다.  러셀 역시 당시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학문적 신념의 틀을 깨부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 스스로도 그런 시도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내면 속에 존재하고 있던 ' 정신적인 ' 위험성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나서야 화이트헤드와의 기나긴 공동 연구를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는 <수학원리>를 완성하게 된다.  러셀은 평생 바치게 될 학문적 시도의 본격적인 첫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일생 동안 천착해 온 무결점의 수학 원리는 끝내 도출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확실성의 진리에 이르는 왕도는 없다

학문의 가장 완벽한 기초, 토대를 찾기 위해서 수년동안에 걸쳐 오로지 수와 식, 기호로 가득찬 공식을 집착했던 러셀의 입장에서는 확실성의 토대에 대한 불확실성이라는 미제의 결론에 대해서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것이다.  영원하며 절대적인 확실성으로 이루어진 진리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러셀에게 오랜 논리학 연구를 통해서 남게 된 것은 정신적인 후유증, 그것이 바로 ' 확실하게 증명하고자 했던 ' 완벽한 실체에 대한 증명이 도출되지 못함에 대한 허무와 회의감뿐이었다.  그런 정신적인 공허감과 회의감 때문에 논리학자들은 정신분열증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러셀뿐만 아니라 확실한 토대의 논리를 추구하기 위해 시도했던 수학자, 논리학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프레게칸토어는 미쳐버렸고, 괴델은 우울증에 걸렸다. 그리고 러셀의 제자였던 비트겐슈타인은 자살하고 만다.    

그러나 이들 논리학자들의 광기를 향해서 손가락질할 이유가 없으며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게 된 논리학의 토대에 대해서 쓸모 없는 연구에 불과한 실패라고 규정할 수도 없다.  우리는 논리학자들의 말 못하는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런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다나오스의 딸들> 1904년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다나오스의 딸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결혼 첫날밤에 남편의 목을 베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서 지옥에서   

구멍 뚫린 물통에다 물을 부어 채워야 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 

 

논리학자들의 고통은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다나오스의 딸들처럼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다.  ' 토대를 이루는 체계에 토대가 없는 ' 아이러니한 상황을 견디면서 혹은 절대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 논리학의 광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자처하였다. 

러셀은 ' 인간사에서의 논리의 역할 ' 이라는 강연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강연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진리에 이르는 왕도는 없다. "  

그리고 논리학에 완벽한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면 오늘날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세상에서도 완벽한 확실성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결국에는 확실성의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는 수많은 현실의 딜레마에 마주하게 되는 우리 인간들이 요구되어지는 것은 최소한 두 세번,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사에서 논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기도 하다.

이성적으로 여러번 판단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과정의 행동은 수많은 고민 끝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 행동하는 자는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 라고 말한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퀼로스의 격언처럼 우리는 사유를 통한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복잡하고 험난한 세상을 이해하고 헤쳐나갈 수 있는 창조적인 생의 의지이다.  

러셀과 수많은 논리학자들이 겪어야했던 고통과 비교하면 우리가 그동안 고수하고 있었던 삶의 가치와 신념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느끼게 되는 고통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결국 러셀은 확실성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토대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 ' 행동 ' 했으며 이를 위해서 ' 광기 ' 라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창조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위대한 구원이며,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하는 자가 되려면 뼈를 깎는 고통이 필요하고, 많은 변신이 필요하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펭귄클래식코리아, p 159 -  


러셀이 추구했던 논리학의 토대 구축은 확실성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무모하면서도 감히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지성사에서 영원히 남게 될 도전이었다.  어떻게 보면 러셀이야말로 니체가 수백년 안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언한 그 ' 위버멘쉬 ' , 자기 손으로 자기가 믿고 있던 가치를 스스로 극복할 줄 아는 초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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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4-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마녀고양이님 밑 댓글을 보고 한 번 들어와 봤는데 너무 재밌게 읽고 가네요. 니체도 그렇고 미쳐버린 사람들에게 유독 관심이 많은데 인간의 사유 끝에 결국 해결하지 못해 그런 광기 속으로 간다는 사실이 참 납득이 가네요. 독서력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확실성이란 것을 찾기 위해 필연적으로 광기로 간다는 말은 참 무섭네요. 자주 자주 들려서 많이 읽고 배우고 가겠습니다. 너무 감사해요. ^^

cyrus 2011-04-05 07:5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루쉰님 ^^

노이에자이트님 서재에서 종종 보곤 했었는데 저야말로 아직 많이
배울게 많답니다. ^^;; 저도 님 서재 자주 들리겠습니다.

루쉰P 2011-04-05 13:00   좋아요 0 | URL
하하^^ 너무 겸손하시네요. 전 이렇게 꽉꽉 차 있는 리뷰를 너무나 좋아해요. 정말 생각하시며 리뷰를 쓰신다고 느껴요. 아! 전 언제쯤 그렇게 책과 나를 몰아일체로 만들 수 있을 지 고민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4-0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역시나 생각거리가 많은 좋은 리뷰네요.
제가 한때 "세상에 정답이다, 누군가 이것은 정답이니 이 길로 가야한다'고 납득할만한 진리를 알려주면 좋겠다고 소원한 적이 있었어요. 정말 절실했죠. 아마 러셀이나 니체 모두 그런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우리는 다들 생의 의미를 찾는 방랑자가 아닐까요?

로지테라피를 창시한 빅터 프랭클 역시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자살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1980년대 후반에 자살하고 말아요. 나치 수용소에서 힘들게 살아남고서 말이예요. 저는 요즘 들어 실존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답니다.

cyrus 2011-04-05 07:54   좋아요 0 | URL
프리모 레비라는 소설가 역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는데 끝내
자살했다죠,, 예전에 <죽음의 수용소에서>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실존에 대한 고민,, 쉽지 않은거 같아요. ^^;;

루쉰P 2011-04-05 12:59   좋아요 0 | URL
빅터 프랭클도 자살했군요. 프리모 레비의 경우 다 늙어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했는데 그 끔직한 상황을 이겨내고 죽은 것은 서경식 교수의 책을 읽은 저로서는 수용소보다 더 끔직한 것이 현실의 사람들 이었다는 점인 것 같은데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암튼 실존의 고민은 저도 쉽지가 않습니다.

blanca 2011-04-05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지코믹스가 만화였던 거예요! 어마나. 그리고 저 러셀이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것도 몰랐네요. 너무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군요. 니체는 참 개인적으로 불우한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cyrus 2011-04-06 09:18   좋아요 0 | URL
러셀의 사상과 무한론에 대한 소개의 내용은 좀 어려웠지만 그래도
만화라서 철학적인 내용을 소개한 도서치고는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좀 약간 과장한 감도 있었지만 정신분열증이라기보다는
정신이 불안정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

2011-04-07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8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undcake 2021-11-24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터 프랭클 자살하지 않았습니다.휴

poundcake 2021-11-24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로지테라피도 아니고 로고테라피입니다. 혹시나 제가 다른 사람을 말하고 있다면 죄송합니다.
 
<도스또예프스키 평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 도박꾼 ' 도스또예프스끼   

<죄와 벌><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책 제목만 들어도 금방 떠올리게 되는 세계적인 작가, '도스또예프스끼' .  톨스또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로 칭송된다.

그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여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세계에 투영한 그의 작품들은 현대에 와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 세계적인 대문호 ' 라는 위대한 칭호의 수식어와는 반대로 항상 따라오는 또 다른 수식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 도박꾼 ' 이라는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러시안 룰렛이 있는 도박장으로 찾아가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병적인 도박꾼으로 알려져 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도박에서 손을 떼겠다고 아내에게 수없이 다짐했지만 그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다시 집 안의 돈을 싹 쓸어 담고 도박판으로 달려갔을 정도이다.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결혼반지, 아내 귀걸이, 옷, 신발은 물론 낡은 모자까지 전당포에 맡기는 일은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다보니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빚쟁이를 피해 4년 동안 해외 도피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런 자신의 도박벽과 관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노름꾼>(Igrok)이라는 소설이 탄생될 수 있었다.   그래서 도스또예프스끼라고 하면 쉽게 도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도스또예프스끼 복권    

 

 


중후하고 엄격한 이미지의 도스또예프스끼가  

복권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복권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러시아 땅을 

하늘 위에서 바라 본 도스또예프스끼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라는 말이 있듯이 도스또예프스끼가 후세에도 자신의 도박벽이 회자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알 길은 없지만 반대로 그와 관련된 살아있는 자들은 말을 한다. 특히 ' 도박꾼 '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 때문에 한순간에 천덕꾸러기 조상을 두게 된 도스또예프스끼의 후손들에게는 말이다. 

몇 년 전에 러시아에서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초상화가 들어간 복권이 발행되자 도스또예프스끼의 후손들이 복권 발행에 대해서 강력한 반발을 일으켰던 해프닝이 있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복권 발행을 중지할 것임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복권을 발행하는 재단 측에서는 후손의 소송에도 눈 하나 까딱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도스도예프스끼뿐만 아니라 유명한 황제나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가 들어간 복권을 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손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의 조상의 얼굴이 복권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탐탁치 않게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복권이 국가가 공인한 ' 사행성 오락 ' 이라고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복권 역시 ' 도박 ' 그 자체인 것이다.  게다가 복권의 홍보 수단 때문에 ' 대문호 ' 가 아닌 ' 도박꾼 ' 이라는 이미지가 다시 한 번 부각될 우려가 있다.  

하긴, 생물 발생의 기원을 밝혀냈고 백신의 발견 등으로 과학사에서는 위대한 미생물학자로 알려진 파스퇴르와 유산균의 정체를 증명하였고 노벨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는 메치니코프가 우리나라에서는 유유, 요구르트 제품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만 봐도 후손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손에 항상 쥐어져 있는 복권 속의 도스또예프스끼를 보게 된다면 복권을 장식하고 있는 그저 그런 수염 난 아저씨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러시아의 위대한 대문호에서 한순간에 ' 복권 아저씨 ' 로 전락되는 것이다.  

 

 

  ' 도박꾼 ' vs ' 대문호 ' :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양면적인 평가 

그러나 후손들이 아무리 복권 회사에 소송을 걸어 승소를 한다하더라도 도박으로 인해 퇴색해버린 대문호로서의 명예를 다시 회복하기에는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 대문호 ' 라는 명예는 계속 유지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러시아 자국 내의 소송 승소 하나만으로 대중들의 머리 속에 인식된 ' 도박꾼 ' 이라는 불명예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국내에 한 때 인기 연예인의 도박 사건 때문에 수많은 여론들이 도박의 심각성에 대해 거론되었을 때에도 항상 먼저 회자되는 인물이 바로 도스또예프스끼다.  도박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병적 심리 상태를 가진 도박 중독자를 빗대어 표현할 때도 제일 먼저 도스또예프스끼가 등장한다. 그만큼 도스또예프스끼는 ' 도박 중독의 심각성 ' 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도스또예프스끼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소설가로 알려지면서 지금까지도 살고 있었더라면 그의 도박 스캔들은 여론과 대중의 눈을 쉽사리 피해 갈 수 있었을까?   그 역시 ' 소설가 ' 라는 사회적 공인으로서 대중들의 지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며 추악한 스캔들은 소설 판매 부수량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어쩌면 실제보다 더 궁핍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 글은 무척 잘 쓰는데 인간성은 글러먹었고 도박에 미쳤대. ' 라고 대중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미 수 백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서 오늘날에는 ' 도박꾼 ' 혹은 ' 도박 중독자 ' 라고만 하는 것도 다행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 러시아 도박꾼 ' 의 소설을 읽고 있으며 그가 쓴 소설들을 불후의 고전으로 추앙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도박 중독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전세계의 독자들의 심장을 파고드게 만드는 그의 장엄한 문학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단어와 문장을 통해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소설가의 본질과 그가 탄생시킨 문학은 이토록 다른 것일까?   어떤 이들은 ' 도박꾼 ' 이 쓴 소설 - 특히 <노름꾼> - 을 굳이 ' 고전 ' 이라고 부르면서 읽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 도박 중독자 ' 도스또예프스끼를 위한 E.H. 카의 실증적 변명    

 

 


E.H. 카 (1892~1982)
 

 

그러나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자칫 속물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중독을 자신의 처녀작인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E.H. 카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쓴 소설뿐만 아니라 그가 쓴 편지들, 일기 그리고 그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쓴 회상록 등 다양한 문헌 자료를 통해서 작가의 도박 증세를 보다 입체적이면서도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E.H. 카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이토록 도박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떤 이유를 단순히 도박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비롯된 순간적으로 나오게 되는 비정상적인 흥분 그리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강렬한 열정의 기질이 자기 자신을 극단적인 룰렛 중독으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 신경은 산란하고 한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지만 피곤하다오.  그러나 동시에 원기는 왕성하오.  나는 초조하고 흥분한 상태요.  그리고 내 성질에 이것은 때대로 필요하다오.  

-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E.H. 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p 197 재인용 -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서 언젠가는 룰렛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하루 돈을 허무하게 잃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배의 절망 속에서도 승리라는 선물을 선사해 줄 승리의 여신이 자신에게 손짓할 것이라고 생각, 아니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표도르가 자신의 방법에 따르면 룰렛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은 완벽하게 정확한 것이었고 완전한 승리를 얻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냉혈적인 영국인이나 독일인이 그렇게 한다는 조건에서이지 나의 남편처럼 신경질적이고 쉽게 포기하며 모든 것을 극단으로 밀고 가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회상록> 중에서, E.H. 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p 195 재인용 - 

 

아내의 표현대로 순전히 ' 운 ' 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의 진리를 충동적인 성격이 다분히 강한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룰렛은 사실상 적성이 맞지 않았다.   그가 룰렛에 집착한 원인을 오늘날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게 된다면 ' 도박자의 오류 ' 에 빠진 것과 유사하다.  ' 도박자의 오류 ' 란  실패를 거듭할수록 드디어 성공할 때가 왔다고 확신하는 도박 중독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이상심리를 뜻한다. 슬롯머신을 계속 당기면서 이번에야말로 잭팟이 터질 때라고 지나친 기대심리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E.H. 카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중독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냉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노름꾼>에는 돈을 잃든 말든 도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을 경멸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소설을 읽는 독자들 - 특히 도스또예프스끼가 지나치게 도박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 에게는 작가 자신의 도박벽 증세를 스스로 자기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카는 단순히 도스또예프스끼를 바라보는 단편적인 진실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중독은 단순히 돈을 얼마 많이 따느냐에 따른 일반적인 도박 중독자의 증세라고는 볼 수 없다. E.H. 카의 표현대로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룰렛은 ' 깊은 도덕적 타락에 빠지고 싶은 욕망의 추구 ' 였던 것이다.  

 

 

 

  여전히 ' 도스또예프스끼 ' 가 지독한 도박 중독자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 

객관적이고 치밀한 자료 분석으로 일가견이 있는 E.H. 카가 대문호의 일대기를 균형 있게 조명했음에도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증세에 대한 카의 온화한 관점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낀 독자도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은 1931년에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대문호의 도박벽을 바라본 카의 시선은 도박의 늪에 헤어나지 못하는 도박 중독자를 사회악으로 규정되는 일탈의 문제로 바라보는 오늘날의 시선과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E.H. 카는 자신의 조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닌, 그것도 러시아의 소설가인 도스또예프스끼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조명하기 위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 라는 문장이 자주 인용되는 <역사란 무엇인가>가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도 카가 객관적이면서도 균형적인 냉철한 시각으로 역사를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처녀작인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의 도스또예프스끼 연구는 훗날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소비에트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엄정성과 객관성이 강조되는 그의 역사학에도 단점은 있다. 역사의 진보가 있다고 판단되면 지도자의 악행이나 인권 유린을 눈감아주는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증세를 평범하지 않는 성격에서 기인한 자신만의 욕망 추구라는 결론을 내린 카의 분석은 옳다 나쁘다는 식의 도덕적 판단의 배제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카가 도박 중독자인 대문호를 절대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 평전을 쓴 것이 아니며 또 우리는 이미 수백 년에 살다가 죽은 대문호를 단순히 도박 중독자라고 해서 굳이 그의 명성을 흠을 낼 필요도 없다.   도스또예프스끼 이외에도 문학가, 미술가라고 가리키는 수많은 예술가들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많은 일탈행위들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이용한 아름다운 그림과는 반대로 성격은 그야말로 통제불능이었다. 그는 항상 시비 걸기를 좋아했으며 결국에는 싸움 끝에 화를 이기지 못해 상대방을 살해한 적이 있는 전과자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행동에 대해서 선과 악의 구별이라는 기준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예술가가 만들어낸 예술을 가지고 옳다 나쁘다고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 도박꾼 ' 도스또예프스끼를 용서해야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여곡절 끝에 도박 중독에서 스스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위대한 작품의 창작을 위한 불꽃을 피울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도박 중독을 치료하는데 전문의가 필요하는 마당에 도스또예프스끼는 아내의 내조 덕분에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야말로 인간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도스또예프스끼는 도박 중독에서 벗어난 것 그 이상으로 인간 승리를 맛보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난지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대문호로 그의 이름이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생전에 문단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언젠가는 뿌쉬낀과 맞먹을 대작가가 될 것이라는 자부심은 끝까지 버리지 않았으며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과 지독한 룰렛 중독으로 인해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창작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수백번이 넘는 도박장 인에서의 룰렛 게임을 수차례 패배한 인생의 낙오자였지만 소설 창작이라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올인(all-in)한 인생의 룰렛 게임에서는 끝끝내 승리할 수 있었다.   

  

 

* 사진 출처 및 인용 관련기사   

[‘ 도스토예프스키 로또복권 ’…후손들 발끈] 동아일보, 2005년 2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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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3-2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서재에 오면 뭔가 늘 새로운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되네요. (제가 워낙 무식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cyrus님이 그만큼 남들과 다른 무엇으로 글을 쓰시려고 신경쓰신다는 뜻도 되겠지요? 감사드려요. ^ ^)

도스또예프스끼, 궁극적으로는 글쟁이네요. 도박에 빠진 도스또예프스끼는 안보이고(저는 그의 아내가 아니니까요.) '노름꾼'이라는 소설을 써낸 작가만 보입니다.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아내에게 붙이고 싶네요. ^ ^

cyrus 2011-03-28 08:02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저도 포핀스님 서재에 가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특히 실용 분야에 대한 책의 서평이나 글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천덕꾸러기 남편을 죽을 때까지 내조한 안나라는 아내도
참으로 대단한거 같아요, 요즘 같으면 그냥 이혼도장 쾅 찍을텐데 말이죠 ^^;;

반딧불이 2011-03-28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박에 주목해서 읽으셨군요. 도스토예프스키 복권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어요. 새로운 정보 고맙습니다.

cyrus 2011-03-28 08:03   좋아요 0 | URL
평전을 읽기 전에는 도스또예프스끼라고 하면 항상 도박이 떠올려서
도박 중독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마녀고양이 2011-03-2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흥미롭네요.
도스또예프스키가 도박벽이 있었다니, 아하......
하기사 그런 글을 써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예민했겠어요. 그리고
풍족함에서 천재성이 나오기는 힘들겠죠. 도박이란 중독이고, 중독이란 결핍이고.

화가든, 작가든, 다른 무엇이든 천재는 참 힘들었겠어요.
아니.... 인간은 다 힘든걸까요?

사이러스님, 요즘 학교에서 무지하게 바쁘시담서요? 건강 챙기시고~ ^^

cyrus 2011-03-29 00:44   좋아요 0 | URL
ㅎㅎ ' 무지하게 ' 정도는 아니구요,, 중간고사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아서 거의 공부하는데 시간을 쓰는거 같아요,, 물론 중간에
책도 읽게 되지만요. 마고님도 건강 조심하시구요,, 열심히 하시는만큼
학업에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요 ^^

비로그인 2011-03-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거장처럼 써라] 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그를 보게 되네요.

ㅎㅎ.. 여전히 좀 시간이 들 것 같은, 이런 페이퍼를 쓰시는 걸 보면 아직 연애는 안하고 있으신 것 같네요.

cyrus 2011-03-29 00:47   좋아요 0 | URL
<거장처럼 써라>에서 바라보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한데요,, 요새 갑자기 도스또예프스끼와 관련된 책이 나오는거 같아요.

요즘은 학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연애는 아직,, 아무래도 연애는
저의 적성과는 맞지 않는거 같아요,,^^;;

굿바이 2011-03-2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복권도 있고 도스또예프스끼는 참으로 복이 많은 분이십니다. 평전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도스또예프스키가 강조한 인간의 자유의지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도박장에서 부인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쓰는 작가의 모습은 뭐랄까 자유의지를 스스로 반납한 것 같지만 말입니다 :)

cyrus 2011-03-29 14: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서 작품 창작에 몰입한다는건 정말
대단한거 같습니다. ^^

꽃도둑 2011-03-2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커스를 확실히 맞추고 쓰신 좋은 글입니다. 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중독에 대해 좀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건 사실인 거 같아요. 저는 카가 그 도박증에 대해 일견 연민을 갖고 있지 않나 할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생활고를 탈피하고자 시작한 도박이었잖아요. 처음엔 그랬지요...하지만 중독성이 강한 도박에서 그는 헤어날 줄을 몰랐지요...
어쨌든 그의 인생은 비난과 찬탄과 연민을 한 몸에 받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cyrus 2011-03-30 13:31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점은 카 역시 도스또예프쓰끼 못지 않게 인생이 순탄치 않았답니다.
카 역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해서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고 하네요.
어쩌면 카는 위인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자신처럼 순탄치 못한 위인에게 인생의 연민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맥거핀 2011-03-2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한편으로는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의 도박벽의 양상과 원인을 누구보다도 잘 분석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것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묘사하는 자신과 그것으로 달려가는 자신으로 분열되어 있던 것일까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노름꾼>과 같은 소설이 나왔을지도 모르지요.
자신이 왜 도박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많은 도박꾼보다 나은 것인가요, 아니면 더 불행한 것인가요. 자신의 치부(?)를 이야기하는 <노름꾼>과 같은 소설을 쓰는 그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리뷰를 읽고나니 여러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1-03-30 13:34   좋아요 0 | URL
평전을 읽을 때 <노름꾼>이랑 같이 읽어보면 도박 중독에 대해서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거 같아요, 저는 아직 이 소설을
읽지 못했거든요,, ^^;;

제 생각이지만 자신이 왜 도박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도박에 집착하는 사람보다는 덜 불행한거 같아요.
빠져나가기 힘들다는 도박 중독에서 벗어났고 그 이후로 유명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걸 봐서는요,, 거기에다가 자신의 부끄러운 체험을
소설을 만들어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데
나름 성공적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대칭>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대칭 - 자연의 패턴 속으로 떠나는 여행 승산의 대칭 시리즈 4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안기연 옮김 / 승산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수학 전공자들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    

 

  

 

한 달 전에 ' 대칭 ' 에 대한 탐구의 여정을 그려 낸 이언 스튜어트<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부제: 대칭의 역사)를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 한 권의 책 속에는 대칭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연구를 한 유명한 수학자들의 인생 이야기에서부터 대칭 분야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 군론 ' 등 다양한 수학적 이론들이 들어차 있다.  수학 비전공인 나로서는 본문마다 하나씩 등장하는 수학적 공식과 이론들을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대칭을 탐구한 수학자들 이야기 위주로 읽었다.  다행히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수학적 이론들, 즉 앞에서 언급한 군론과 같은 경우, 이름만 알뿐이지 전혀 내용은 모른다.  (하지만 수학자들이 겪은 흥미로운 일화 같은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수학자들의 이야기만은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읽게 된 마커스 드 사토이<대칭> 역시 전자의 독서 방식으로 울며 겨자 먹듯이 읽었다.  학업에 열중하라 개인적인 활동을 위해서 몇 권의 책을 읽어야해서 이 책만큼은 속독하였다. 군론, 몬스터 대칭군 등과 같은 중, 고등학생 때 배우지 않은 전문적인 수학적 이론에 관한 애용을 수학 비 전공자가 천천히 여러 번 읽게 되면 그 중 하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독서를 하기에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수학을 독학하는 것도 아니고 틈만 날 때마다 수학 공식 풀이에 열중하였다던 수학자 오일러처럼 수학 문제 풀이나 연구를 좋아하는 취향이 아닌 이상 굳이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수학 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풀이를 하는지 그 과정이 중요하지만 수학 관련 교양도서를 읽을 때에는 수학을 심도있게 알고 싶어하지 않는 이상 굳이 풀이 과정을 상세하게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학 교양도서에 나오는 수학적 내용의 가치를 수학 비전공자의 눈으로 낮추어 보려거나 수학 교양도서는 무조건 어렵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의도는 전혀 없다.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중요한 수학적 개념은 공식이나마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수학 비전공자들가 이 책을 읽기에는 만만치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떻게 본다면 이 책은 수학 전공자들이 꼭 읽어봐야하는 책처럼 느껴진다.  이 책 앞에서 소개되고 있는 전문가들의 서평은 이제 막 페이지 한 장을 넘기기 시작하고 있는 수학 비전공자 독자들의 기를 벌써부터 죽이고 있다.  

<대칭>의 저자 마커스 드 사토이 교수는 여행기의 기법을 이용하여, 196,884차원의 몬스터군과 같은 전문 수학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이번 봄 학기부터 대수학 수강 학생들에게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권장하려고 한다.  

- 이기석 (한국교원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의 서평 -

 

  

  이언 스튜어트의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와 마커스의 <대칭>

수학 비전공자 독자들이 저런 전문가의 서평을 보게 된다면 다음 페이지를 넘겨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여기서 책을 덮어야 할 것인지 망설여질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이 신간평가단 도서가 아니었다면 책을 펴본지 1분도 안 되어 벌써 책을 덮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읽은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를 읽은 경험이 오히려 이 책을 읽어낼 수 있는 한 줄기의 작은 힘(?)이 되어 주었다.  이번에 나온 마커스 드 사토이의 <대칭>은 저자 자신이 몬스터군을 탐구하는 기나긴 여정을 수기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서술적 특징을 제외하고는 이언 스스튜어트의 책의 서술 방식과 유사하게 대칭을 탐구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들이 소개되고 수많은 수학적 이론들의 퍼레이드로 구성되어 있다.  이언 스튜어트의 책도 대칭을 주제로 한 내용이니만큼 마커스 드 사토이의 책에도 중복되는 내용이 많았다.  

3차방정식의 해법을 둘러싼 니콜로 타르탈리아와 카르다노의 대립, 가난에 허덕이다가 생전에 자신의 수학적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채 요절한 닐스 아벨 그리고 혁명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세상의 소용돌이에 쉽게 휩쓸릴 정도로 감정적이었으며 수학적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놓친 끝에 역시 요절하게 된 불운아 갈루아 등 ' 대칭 ' 의 세계를 알아내고자 했던 수학자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들은 마커스 드 사토이의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수학 비전공인 탓에 확실한 정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읽어 본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이언 스튜어트의 책을 먼저 읽어본다거나 아니면 마커스 드 사토이의 책과 같이 읽어보면 대칭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칭의 목록화를 꿈꾸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대칭>은 마커스 드 사토이가 천착하고 있는 몬스터 대칭군에 대한 자신의 연구 과정을 순차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몬스터 대칭군은 ' 몬스터 ' 라는 괴물이라는 뜻의 이름이 붙여져 있듯이 196,884차원(!)에서 볼 수 있는, 수학자들 사이에서는 무시무시한 대칭군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서 몬스터 대칭군에 대한 개념을 상세하게 소개하기에는 서평 작성의 공간이 부족할뿐더러 내용을 소개한다하더라도 서평이 지루함의 황천포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몬스터 대칭군에 대해서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유일한 방법은 이 책을 읽어보는수 밖에 없다.  몬스터 대칭군이 대학원생에서 전문 수학자들 사이에서 다루어지는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커스 드 사토이의 수학적 일기를 읽어보게 되면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그것도 광대한 세상 속에서 숨겨진 대칭들을 목록화하겠다는 그의 담대한 열정은 실로 대단하면서도 존경스럽기도 하다.  일상에서는 제대로 눈여겨 보지 않는 건축물에서부터 바흐의 음악까지 마커스는 대칭을 발견하여 수학적인 접근으로 증명하고 있다.    

마커스는 수학자와 예술가들의 눈과 마음이 대칭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이유가 대칭이야말로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완벽한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어린이들은 빗방울을 그림으로 묘사를 하면 일반적으로 눈물 모양으로 그리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진짜 모양은 완전한 구체다.  구는 3차원에서 가장 대칭에 가까운 형태다. 

특히 마커스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여행 차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에 가게 되는 에피소드는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었다.  마커스는 궁전 내부에 그려진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아라베스크 무늬에서 대칭의 형태를 발견하게 되는데 수십 년 전에 이미 또 다른 사람이 이미 알함브라 궁전에서 대칭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M.C. 에셔의 그림, 

에셔는 알함브라 궁전의 아라베스크 무늬를 철저히 관찰, 연구 끝에  

연속적인 무늬의 변형을 주제로 한 독특한 그림이 탄생시킬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의 형태를 표현하기로 유명한 화가 M.C. 에셔였다. 

에셔는 화가가 되기 전인 젊은 시절에 알함브라 궁전의 아라베스크 무늬를 보게 되었는데 무늬의 형식미에 매료되어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오랜 관찰의 노력 끝에 연속적인 무늬의 변형을 주제로 한 독특한 그래픽이 탄생될 수 있었다.  오랜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마커스와 에셔가 알함브라 궁전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아라베스크 무늬의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장면은 인간은 대칭적 대상들에 계속 이끌려 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수학자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

마커스의 대칭 목록화 프로젝트는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움베르토 에코는 인간이 목록화에 집착하는 이유가 우주처럼 한계가 없는 세상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표현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그 속성을 이용한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사물을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에코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가 찾고자하는 대칭의 세계는 끝없는 반복되는 패턴의 변주로 이어지는 에셔의 그림처럼 무한성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지금 어딘가에 마커스가 찾아내지 못한 대칭의 세계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바쳐 탐구하게 될 그의 프로젝트는 그가 죽어서도 완수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집요한 탐구가 어리석게 여겨지지 않는다.  마커스에게 대칭의 목록화는 세상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헝가리의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재치있는 명언대로 수학자는 커피를 정리로 바꿀 수 있는 기계, 즉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상식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모든 수학자들이 폴 에어디쉬처럼 괴팍한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단 한 줄의 수학 공식이나 어렵기 짝이 없는 이론에 잠과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연구하려는 수학자들의 집요한 탐구욕 때문에 우리는 수학자들을 특이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탐구욕은 단순하게 문제 풀이의 발견이 아닌 어쩌면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무한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P.S> 

사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완독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학적 이론에 대한 내용을 무시한 채 속독해버린 탓에 이 책의 서평도 정작 대칭과 관련된 수학적인 내용을 심도있게 다루지 못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이 책에 내용의 오류가 발견되었는데 p 255 에 ' 1940년,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느 베유의 형제인 반전주의 수학자 앙드레 베유 ,,, '  라고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아마도 여기서 언급되는 사상가 시몬느 베유는 노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80년대에 국내에 많이 소개되었던 여성 사상가 시몬느 베이유를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시몬느 베이유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그래서 형제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이다.  앙드레 베유는 시몬느 베이유의 친동생이므로 문맥상으로는 시몬느 베이유의 친오빠라고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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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from 男兒須讀五車書 2011-03-21 09:21 
    수학은 진리와 아름다움에 관한 공부야.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부야. - 이언 스튜어트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p 25 - 불광불급 (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광적으로 덤벼들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불광불급의 열정 없이는 세상에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뜨거운 열정을 마음 한 구석에 품으면서 자신감을 갖고 오랜 시간을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2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대칭'이란 건 자연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특히 에셔의 그림들을 보면 세상에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들의 이면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서요. 사실 대칭으로 보이지만 전혀 불균형한 것들도 많지 않을까.

전 '수학'은 정말 별루예요..ㅋㅋㅋㅋ
집요한 면이 없고 게을러서 그런 것 같아요.
반면에 수학과 출신인 제 동생은, 자기는 수학에 정말 재능이 없다며 전산쪽으로 전공을 바꾸긴 했지만 정말 집요한 구석이 여전히 있더라구요. 징그런 놈!! ㅎㅎ

cyrus 2011-03-21 23:33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은 수학 공부하는 일이 없어서 그런거지 수학을 썩 좋아하지는
않아요. ^^;; 제 생각이지만 수학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은근히
끈기 있는 성격을 가진거 같아요.. ㅎㅎ

교고쿠도 2011-03-2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시몬느 베이유...제가 꽤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대칭>은 제게 있어서 일종의 고문입니다. 왜 인문사회팀에서 이런 골치아픈 수학책을!!! ㅜ.ㅜ

cyrus 2011-03-21 23:34   좋아요 0 | URL
간혹 헌책방이나 대학교 도서관에 가면 몇 년 전에 나왔던
시몬느 베이유의 책들이 있던데,, 기회가 된다면 읽어봐야겠네요^^

저도 이 책,, 읽는내내 난감했습니다. ^^;;

blanca 2011-03-21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이 아주 체계적이네요. 게다가 수학관련책을 이 정도면 정말 제대로 잘 읽어내신 것 같은데요. 저는 수학을 정말 싫어했어요. <아름다운 수학>이라는 책을 읽고 멀미 났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수학과 음악이 상통한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라베스트 무늬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잘 읽고 가용.

cyrus 2011-03-21 23:3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이 읽으신 책의 제목이 아이러니하네요 ^^
이 책에서도 바흐가 작곡할 때 수학, 특히 대칭을 이용했다는 내용이
언급되는데,, 사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무척 흥미롭게 읽었어요^^;;

감은빛 2011-03-22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학에 대한 책이라니, 정말 읽기 싫을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때 이미 수학을 포기했고,
수학 0점도 받아봤어요.

어려운 책에 대해 글을 참 잘 쓰셨어요!
부러운 재주입니다!

cyrus 2011-03-22 10:07   좋아요 0 | URL
사실 이번 선정도서는,, 거의 수학 전공자들을 위한 책이었어요.
저는 수험생 시절에 수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20 몇 점 받았어요,, ^^;;

잘잘라 2011-03-22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한번도 수학을 잘하고싶다거나 수학자를 꿈꿔 본 적이 없어요. 수학자의 삶은 어떨까 하는 관심도요. ㅠㅠ

cyrus 2011-03-22 21:15   좋아요 0 | URL
저도요 ㅎㅎ 수학이 살아가는데 정말 유용한건 분명하지만,,
저에게는 친해지기 어려운 과목이에요 ^^;;

노이에자이트 2011-03-22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드레 베이유가 오빠입니다.제가 가진 시몬느 베이유 전기의 화보에 남매 사진이 있어서 알았지요.앙드레는 이미 아홉살 때 어려운 기하학 문제를 술술 풀었다는 천재였다네요.

cyrus 2011-03-22 21:1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몬느 베이유의
동생 역시 누나 못지 않게 남달랐군요 ^^

노이에자이트 2011-03-22 21:45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이신지...저는 댓글에 앙드레 베이유가 오빠라고 썼는데요.시몬느가 여동생이구요.

cyrus 2011-03-22 22:04   좋아요 0 | URL
수정했어요,, ^^;; 지금 버스 안이다보니 잘못 수정하고 말았네요.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 쓰니 눈이 아프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3-22 22:12   좋아요 0 | URL
버스 안에서도 이런 작업을 하다니...역시 요즘은 유비쿼터스 시대입니다.하지만 저는 버스나 기차 안에선 책도 못 읽어요.어질어질해서...버스 안에서는 문자메시지 오는 것도 싫더라구요.

cyrus 2011-03-23 00:21   좋아요 0 | URL
버스를 타게 되면 몹시 흔들려서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눈이 더
나쁠거 같아서 글 쓰는 작업 같은 긴 시간이 필요한 일에는
잘 안 쓰는 편입니다. 간단히 댓글 정도는 간간이 남길 수 있는데,,
댓글 한 개 쓰는 것도 조금은 힘드네요,,

그래도 차 안에서 책은 자주 읽습니다. 물론 움직이는 차 안에서
책 읽는 것도 시력을 나쁘게 하는 원인이 되지만요,, ^^;;

카스피 2011-03-2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역시 수학을 싫어해서 리뷰 내용은 선뜻 이해가 잘 가질 않지만 에셔의 그림은 참 신기해 보입니다.

cyrus 2011-03-23 00:22   좋아요 0 | URL
에셔의 그림 한 점 넣기를 잘했네요, ^^
사실 저도 많이 관심을 두지 않는 책을 읽고 서평 쓰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수학 이론들이 뭔 뜻인지도 잘 몰랐구요,, ㅎㅎ

양철나무꾼 2011-03-23 0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결국 이 책이 선정되어 읽으셨군요.
이 리뷰를 먼저 읽었다면 제가 이 책을 설렁설렁 넘기는 일 따윈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암튼 승산의 대칭시리즈는 다시 봐도 엄청 어렵군요.

중3아들이 학교 재량활동 시간에 어찌어찌 하여 수리탐구부에 들었는데, 거기서 배우게 되는게 고등수학이래요.
고등학교용 수학일까 고등수학일까 하며 묻던걸요~^^

cyrus 2011-03-23 08:30   좋아요 0 | URL
요즘 중학교 재량활동에도 수학과 관련된 부서가 있군요,
저는 방과후 활동이라고,, 정규수업 끝나고나면 영어, 수학 과목
중심의 심화학습을 한 적이 있었어요, 솔직히 중학생 때는
수학 공부할만했는데 고등학생이 되고나니깐 젬병이 되어버렸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