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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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든 콜필드의 재림    

 

 

올해가 J. D. 샐린저의 불후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년 작)>이 세상에 나온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단 한 권의 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는 물론 사진 촬영까지 단호히 거부하면서 은둔 생활을 즐기는 ' 괴짜 '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샐린저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기존 사회에 반항하려는 문제적인 인물답게 지금도 독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문제적인 평가를 받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 모든 사람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 " 라는 단 한 마디의 발언으로 소설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으며  심지어 전국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이 읽어서는 안 될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현대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면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매년 적지 않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반항끼가 넘치는 전형적인 10대 청소년을 가리키는 ' 콜필드 신드롬 ' 이라는 용어가 탄생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호밀밭의 파수꾼> 출간 51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나라에 기가 막히게도 우연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한 권의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필립 로스<울분>이다. (미국에서는 2008년에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새롭게 소개된 필립 로스의 <울분>은 냉전 체제를 겪고 있는 격동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미국의 젋은 청년 마커스 메스너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재미있게도 소설 속 배경은 한 6.25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었던 1950년대 초이다.  소설에는 당시 6.25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미국의 정세를 간간이 언급되고 있는데 특히 1951년 4월 11일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권한을 정지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나오는걸로 봐서는 이 소설의 배경은 전쟁이 처음 발발했던 1950년에서부터 1953년 사이로 설정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커스 메스너의 삶의 이력을 읽어보게 되면 메스터라는 인물이 평범하지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자신은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관련된 사교적 모임을 피하거나 또는 기숙사 룸메이트로 같은 혈족이나 마찬가지인 유태인이 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오직 법학대 졸업생 대표가 되어 고별사를 한 훌륭한 법률가가 되는 것을 목표를 삼아 공부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과 같은 현실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규제하고 있는 사회 체제나 사회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삶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사사건건 간섭하고 아버지와 설전을 벌이기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도움을 주려는 코드웰 학생과장과의 면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압권적인 장면이다.  

코드웰 학생과장은 기존의 평범한 학생의 삶의 방식과 다른 메스너에게 진지한 삶의 조언을 주고 있지만 메스터는 법률가 지망생답게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을 정확하게 인용하면서까지 자신보다 학식의 연륜이 깊은 학생과장 앞에서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논리정연하게 반박하여 설명하고 있다.  자신을 간섭하려는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리 콜필드를 연상시키고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이 콜필드가 문제아로 낙인 찍혀버려 스펜서 선생과 면담을 하게 되는 것인데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짜증과 분노를 억지로 참아내면서까지 스펜서 선생의 지적에 어떻게든 넘어가보려고 대응하고 있다.  콜필드는 자신의 감정이 가는대로 반항심 가득한 모습으로 대응하는 식이라면 메스너는 나름 지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주변인으로 남게 된 마커스 메스너   

무엇보다도 홀든 콜필드와 마커스 메스너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관계의 흐름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로 반항으로 가득한 홀리 콜필드나 상대방에게 허를 찌를 정도로 박식하고 논리적인 메스너나 결국에는 삶의 행동양식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주변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보통 20대의 젊은 시기는 ' 청춘 ' 또는 ' 인생의 황금기 ' 라고 하여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된다.  하지만  땅 속 깊이 오랫동안 자랐던 굼벵이가 매미가 되기 위해서는 어둠으로 가득찬 땅 속에서 벗어나 햇빛과 공기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천적으로 가득한 또 하나의 자연 세계와의 만남을 피할 수 없듯이 20대에 들어서는 인생의 관문에도 환경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20대들은 그 동안 집안이나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자랐던 ' 청소년 ' 이었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직업선택, 경제문제, 이전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인간 관계 등으로 이루어진 ' 어른 ' 의 세계에 직면하게 되면 고민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청소년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원래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애 대한 향수가 남아 있으며 새로운 사회집단에도 부적응을 하게 되는 주변인의 성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부적응한 사회생활을 감당하다 못해 자신을 향한 타인들의 시선마저도 곱게 느껴지지 않게 되며 어느 사회집단의 일원으로 소속되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늘 나 자신을 밀어붙였다. 늘 어떤 목표를 추구했다. 부모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주문을 전달하고, 닭털을 뽑고, 도마를 닦고, A를 받았다.  (중략) 

아버지의 비합리적인 구속에서 달아나려고 로버트 트리트에서 학교를 옮겼다. 오직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클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죽지 않으려고 ROTC에 아주 진지하게 참여했다. 이제 목표는 올리비아 허턴이었다. 나는 그애를 내가 주말에 버는 돈의 거의 반이 들어가는 레스토랑에 데려왔다. 나도 그애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알 만큼 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자, 또 하나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중동부의 자그마한 아류 대학의 캠퍼스를 아직도 엄격하게 틀어쥐고 있던 관습의 속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기 전에 성교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 필립 로스 <울분> p 61~62 -  

 

19살의 메스너는 진정으로 ' 어른 ' 이 되고 싶어했다.  세상을 알만큼 알고 있으며 이성을 유혹할 줄 아는 ' 어른 ' 으로 말이다.  열심히 공부에 매진해서 법률가가 되려는 모범생 메스너의 목표 뒤에는 어른의 세계에 안정적으로 안착되기를 바라는 막연한 희망과 동시에 자신의 삶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면 법률가라는 좋은 직장도 가지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결정적이 이유는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6.25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학업을 관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장밋빛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끌러가게 된다.  메스너 역시 냉전 체제가 만들어낸 인류의 비극이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에게 6.25 전쟁의 참전은 자신의 장래희망은 물론이고 목숨마저 한순간에 사라지는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메스너에게 젊은 청년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진심으로 걱정을 하고 조언을 주는 아버지와 학생과장의 말이 삶의 방향을 어렵게 정하도록 만드는 세상에 대한 ' 울분 ' 을 유발하는 듣기 거북한 소음에 불과했던 것이다.    

메스너는 청소년기 특유의 불안에 시달리면서 그것을 떨쳐내버리기 위한 정신적 강박증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에는 피하고 싶었던 비극적인 인생의 결과를 맞이 하게 된다. 젋음의 꽃봉오리를 제대로 피우지 못한 채 6.25 전쟁 참전 중에 20살의 나이로 전사하고 만다.  어른이 되지 못한, 그렇다고 청년이라고 불릴 수 없는  ' 주변인 ' 으로 남게 된 채 마커스 메스너는 1953년에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1951년 미국과 2011년 대한민국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리 콜필드는 3일이라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삶 속에서의 방황의 짧은 여정 끝에 자신을 향한 여동생 피비의 믿음과 사랑 덕분에 드디어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방황과 비행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유년 시절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리워지게 되듯이 16세의 콜필드는 이미 어른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 한층 더 성숙된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51년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콜필드의 나이가 16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콜필드의 나이는 67세이다.  어쩌면 67세의 콜필드는 지금도 51년 전의 방황을 그리워하면서 추억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험난한 인생의 과정을 자신보다 나이 어린 젋은 독자들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울분>의 마커스 메스너는 콜필드의 삶과 비교하면 너무 비극적이면서도 불행하다. 그렇다고 청춘 특유의 열정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전쟁의 포화 속으로 사라져야했던 죽음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콜필드와 같이 자신의 말 못하는 고통을 위로해주고 이해해주는 따뜻한 사랑과 믿음을 느끼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것이 더욱 불행하다. 그리고 삶에 대한 불만을 수도 없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메스너는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속 시원하게 알리지 못했고 반항으로 가득찬 울분마저 토해내지 못했다. 그가 울분 대신에 토해낸 것이라고는 그동안 계속 쌓인 채 묵혀왔던 울분들이 가득 차 썩어버린 구토물이었다.   

유일한 외아들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메스너의 부모는 ' 아들의 부재 ' 로 인한 상실감 때문에 반 미치광이로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관계 속에 자란 젋은 인간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역자 정영목 씨의 말을 비유하자면 완전하지 못한 ' 어른 ' 으로서의 메스너가 그나마 최선을 다해서 선택한 끝에 나온 극단적인 결과가 바로 ' 죽음 ' 이다. 그리고 메스너의 죽음은 비단 1950년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특정 시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비극적인 현상도 아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도 마커스 메스너의 후손들이 등장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우고 있는 이들은 현재 나이로는 24세이다.  숫자로 따져 보면 사회생활이 어떤 것이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어른으로 봐도 무방한 나이다.  하지만 24세가 된 88만원 세대들은 여전히 ' 어른 ' 의 세계 속에서 앞날을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불안과 방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취업이 우선이다. 그러나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이라는 인생의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든 취업률이 보장되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한창 놀아야 될 나이부터 공부에 매진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공부는 계속 된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공부에 싫증을 느꼈음에도 이상하게도 대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싫었던 공부를 하게 된다.  학교 도서관 가득히 자리잡아  하루종일 공부를 하는데 그들이 보고 있는 책은 TOEIC과 각종 공무원 시험 교재들이다.  이것이 88만원 세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들에게 자유롭게 캠퍼스를 노닐 수 있는 대학가의 낭만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오직 경쟁사회에서 낙오될 뿐이다. 경쟁사회에서의 낙오는 결국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똑같다.  결국 눈 뜨고 살아 있음에도 숨통이 막혀 오는 어른의 세계 속에서 죽게 되거나 정말로 삶의 이중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삶을 조금씩 죄어오는 기형적인 세상 속에서 젋은 세대들은 기성 세대들을 향한 불만으로나마 마음 속으로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성 세대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모습에 대해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 희망이 없다고 '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1950년대 미국이나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통해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울분>을 읽어봐야 한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는 오늘날의 젋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는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하며 그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내놓는 불만과 자조 섞인 답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였다.   

만약에 메스너의 아버지 그리고 학생과장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메스너와 같은 1930년대 출신의 전후 세대들의 고민과 방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었다면 못다 핀 꽃 한송이가 되어버리는 세대의 비극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비록 필립 로스의 소설이 구 세대를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회집단에서 관통하고 있는 세대 간의 단절 그리고 젋은 세대들의 정신적 성장통을 볼 수 있다. 

정영목 씨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감정의 혼란으로 가득했던 젋은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기대하기 위해서만으로 이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비극적인 인물 마커스 메스너로 대표되는 젋은 세대에 대한 삶의 모독이다.   

모든 사람들은 <울분>에서 묘사된 ' 필립 로스 식 ' 세상을 읽어봐야 한다.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없는 기성 세대의 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만드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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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2-1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의 폭풍책읽기 도 끝이 보이는구나 ㅋㅋㅋㅋ

그거 뭐지? 오늘 니가 한 말이 하루종일 멤돌았어 아리스토 정치학 말이야

내 대학은사 는 그 책을 20번 이상 읽었다고 하더군~ 자기 밥그릇 이니까 뭐 ㅎㅎ

근데 말이다. 아직도 50퍼센트 반액대매출 하나 한 번 검색해보니까 끝났군 ㅋㅋ

하긴 잘된 일이야~ 난 지금 가지고 있는 책 만으로도 2번 살아도 다 못 읽을테니까 말이다

책은 싸다고 하면 사들이는데 부질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도 오늘은 너 때문에

아리스 아리스 시달렸다 ㅋㅋㅋㅋ 몇 시간 고민끝에 그래 결심했어 안 사는거야 마음

먹었는데 막상 세일 안 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고민한 시간이 아깝네~ 시간당 알바를 해도

만원 짜리 이하면 하지 않는데~ 왜 푼돈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 큰 살마 되기는 글러먹은

거 같다 캬캬캬캬

cyrus 2011-02-19 00:22   좋아요 0 | URL
이제 복학도 해야되니 천천히 독서를 하려고 해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간이 글 한편씩 올릴려고 해요. 그리고 반값할인 하루동안만 하는거에요.
특정 도서를 하루만 반값으로 파는거죠. 저는 그전부터 읽고 싶어서
마침 반값할인한다기에 구입했어요.

아이리시스 2011-02-1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완전 샐린저 좋아해요.
<아홉가지 이야기> 읽어보셨어요? 단편집이요.
그거 완전 좋아해요.^^

예전에 필립 로스를 한 번 읽었는데 이 작가가 유태인 출신이었나요?
그때도 혼혈 유태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미국소설이기도 하고, 여러 모로 거부감이 좀 있어서(그래도 샐린저는 짱!)
이 책 나온 거 보고도 큰 기대 없었는데 홀든 콜필드와 비슷하고 우리와도 비슷하다면 읽어볼만 할 것 같아요. 고마워요. 편견도 없애주고, 좋은 리뷰도 보게 해줘서, 아하하.

cyrus 2011-02-19 00:26   좋아요 0 | URL
아니요, 아직 단편집은 안 읽어봤어요. 단편집도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필립 로스 유태인 출신 맞아요. 국내에 필립 로스의 작품이
출간된게 이번에 나온거랑 <휴먼 스테인> <에브리맨> 단 두권뿐인데,
제가 아는 지인은 필립 로스를 선호하더군요. 그래서 읽게 되었어요.
사실 리뷰 이벤트 때문인 것도 있지만요,,^^;;

저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감명깊게 읽어서그런지 <울분>을 읽으면서
콜필드가 떠올랐어요. 그래도 마커스 메스너보다는 콜필드가 더 나은거
같아요.

stella.K 2011-02-1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읽고 있는데 평소 미국문학 그다지 안 좋아해서 잘 읽힐까 싶었어요.
별로 두껍지도 않으면서 빨리 읽히는 건 아니지만, 작가가 정말 이야기꾼이구나
싶더군요. 처음 멋 모르고 봤을 때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나름 좋게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 책이 좋다면 저도 늦게나마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봐야겠는데요?^^

cyrus 2011-02-19 19:54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지인분이 필립 로스를 추천해준 것도 있어서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려고 해요. 저도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필립 로스, 참 괜찮은 작가인거 같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2-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작품 제일 먼저 번역본 나온 게 <콜롬버스여 안녕>(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입니다.중편 정도 분량입니다.헌책방엔 지금도 가끔 나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2-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그 이전 유태인 작가와는 달리 박해받는 유태인 운운 하는 이야기를 별로 안 하는 게 특징이더군요.이 책들도 그런지 궁금하네요.

cyrus 2011-02-19 19:56   좋아요 0 | URL
알고보니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필립 로스를 검색해봤더니
알라딘에서도 찾을 수 없는 70년대에 번역된 작품이 몇 권 있더군요.
물론 노자님이 소개하신 작품도 있었구요,, ^^
저는 필립 로스의 작품으로는 <울분>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에 나온 소설의 주인공이 단지 유태인일뿐 유태인 차별에 관해서는
크게 운운하지 않은거 같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양철나무꾼 2011-02-20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필립 로스'를 '정영목'님 때문에 알게 됐어요.
이 책 울분과 에브리맨에는 그럭저럭 만족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휴먼 스테인'은 좀 우울해요~^^

cyrus 2011-02-20 11:3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에브리맨>에 대해서도 블랑카님도 호의적으로 보시더라구요.
국내에서 소개된 필립 로스 작품이 이 세 권 이외에도
새물결이라는 출판사에 낸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소설도
있는데 알라딘에서는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책 제목을 검색하면
찾을 수 없는 책이라고 나오네요. -_-;;

꽃도둑 2011-02-2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리뷰를 읽으면서 저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각지대라고나 할까요?... 제목도 좋았어요...^^

cyrus 2011-02-21 19:38   좋아요 0 | URL
저는 <울분>을 읽으면서 샐린저의 소설이 떠올렸는데,, 지금 글 쓴거 보고나니
너무 억지로 써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예전에 샐린저의 소설을
감명깊게 읽어서 그런지 그런 인상이 떠올린거 같습니다. ^^;;

stella.K 2011-03-0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cyrus 2011-03-04 00:21   좋아요 0 | URL
축하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은 리뷰가 당선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알라딘 이벤트 당첨자 공지사항 같은 경우에는
닉네임을 기재하지 않아서 불편하네요,,^^;;

stella.K 2011-03-04 11:36   좋아요 0 | URL
ㅎㅎ 미역국이어요.ㅠ
거 한턱 쏘라니까. 말 참 안 들어요. 그럼 내 이름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ㅋㅋ3=3=33

cyrus 2011-03-04 22:1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서울에 사신다면 서울쯤이야 찾아갈 수 있지만,,
저는 가난한 청년이랍니다. ㅎㅎ

stella.K 2011-03-05 11:0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뜻이 아닌 것 같은디...
모르시면 할 수 없구요.ㅠㅠ

레삭매냐 2011-03-05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가 내게 오렌지 하나를 주면서 말했다.  " 자, 어느 쪽 손에 오렌지 하나를 들고 있는지 말해 보렴. "   " 오른손이요. "  내가 말했다.   " 그럼 이제 가서 거울 앞에 서렴. 네가 보는 소녀가 어느 손에 오렌지를 들고 서 있는지 말해 보렴. "  나는 당황해서 놀라움에 감추지 못하다가 " 왼손이요. " 라고 대답했다.  " 그렇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볼 수 있겠니? "   

나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대답이든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용기를 내서 " 내가 거울 반대편에 있다면, 오렌지는 계속 내 오른손에 있는 게 아닐까요? " 라고 답했다.  나는 그가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 잘했어, 앨리스.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대답 중에 가장 훌륭하구나. "  

- 모튼 코언 <루이스 캐럴 : 대담과 회상> 중에서,  

루이스 캐럴, 펭귄클래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문] p 54 -  

 

  

  386의 딜레마  

<진보집권 플랜>을 읽어보면 조국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 386세대의 모순이 곧 진보 세력 전체의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20대 때 386세대들은 사회적 문제들을 과감히 해결해나가는 실천을 통해서 ' 정치 진보 ' 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 생활 보수 ' 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조국 교수가 말한 주장의 요지이다.  다시 말하자면 머리속에는 진보적인 마음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는 정작 진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순의 원인을 진보 세력들 사이로 침투된 보수적 문화와 논리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자신들도 모르게 보수적 논리의 향수에 젖어들게 되면서 과거의 진보적 희망의 불씨가 사라져버렸으며 결국에는 사회를 개선하려는 희망과 의지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외고 폐지 이외에도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 등에 대해서 " 너무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므로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 라고 예단하거나, " 보수 진영에서 ' 좌파 ' , ' 포퓰리즘 ' 이라고 맹공을 가하지 않을까 " 걱정하면서 포기한 것이죠.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진보, 개혁 진영의 상상력은 쪼그라들었고, 실천마저 과감해지지 못한 것입니다.  

- 조국 & 오연호 <진보집권 플랜> p 74 -

 

  

  진보의 생각를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조국 교수는 386세대의 보수화를 정치적 민주화의 성공에 기댄 탓에  ' 관리자 모드 ' 로 되어버린 그들 스스로 문제를 자초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제 현상의 이면을 살펴보게 되면 보수 진영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큰소리라도 쳐보려는 보수 세력의 심산에 진보 세력은 마음 여리는 사람처럼 쉽게 받아들이고 되레 위축되고 마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그런 보수 세력의 심산을 애초부터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보 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통해서 점점 위축되어가는 진보 세력의 문제점을 넘어서 왜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보수주의 사상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에드먼드 버크에서부터 랜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 위대한 사회 ' 정책까지 다양한 정치적 사례와 문헌들을 통해서 보수주의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분석 끝에 보수주의의 문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세 가지 논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특정 논리들을 이용하여 진보주의자의 이념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허시먼이 주장하고 있는 보수주의자의 반동 레토릭(Rhtoric)에 대한 내용은 우석훈 소장은 국역본 추천사를 통해서 간략하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 그래 봐야 너만 더 힘들어진다 : 역효과 명제  

2. 백날을 해봐라, 아무 일도 안 벌어진다 : 무용 명제  

3. 복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다 : 위험 명제  

 

역효과 명제는 말 그대로 개혁적인 정책을 도입해봤자 지금보다 실정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며 무용 명제는 아예 되지도 않는 헛된 일이라고 강력하게 못을 박고 있다. 그리고 위험 명제는 개혁적 정책을 피력하는 진보 세력을 위험 반동분자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들의 결정 때문에 사회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위험 명제의 단적인 예가 ' 국가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다 ' 와 같은 주장이다.

이처럼 보수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인데 우석훈 소장은 이런 보수주의자들의 ' 무기 ' 들 때문에 진보적 개혁의 시도가 정체될 수 밖에 없었고 개혁 실행 의지에 대한 희망마저 부정하게 되어버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석훈 소장이 지적한대로 지금도 우리나라 사회에는 반동 레토릭의 영향이 남아 있으며 특히 보수와 진보 간의 의견 차가 큰 중요한 정책 결정에 보수주의자들은 반동 레토릭을 이용하고 있다.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반동 레토릭을 증명한 허시먼은 책의 결론에서 밝혔듯이 단지 보수세력을 겨낭한 비판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며 양 세력 간 단절된 소통의 담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수 특유의 레토릭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공격해오는 주장을 또 다시 반박, 방어하기 위해서 진보주의자들도 재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A. 역효과 명제

반동 :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B. 위험 명제 

반동 :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 앨버트 O. 허시먼 <보수는 왜 지배하는가> p 226 -  

 

허시먼은 진보-보수 간의 상반되는 명제 대립을 비타협적 레토릭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한 쪽 세력이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면 반대쪽 세력은 무조건 그 의견에 반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인데 결국 오랫동안 진보와 보수는 서로서로 레토릭을 이용하면서 승자 없는 대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진보-보수 간의 대화에서는 상대 진영에 대한 이해와 양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반동 레토릭을 이용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반동 레토릭을 통해서 보수적 논리를 은연중에 옹호하고 있는 언론매체이다.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반동 레토릭을 진보주의자들도 변형하여 자신들만의 레토릭을 만들듯이 언론매체도 하나의 정치이념을 옹호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전면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민주당식 복지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글을 올렸다는 언론보도 내용에서 반동 레토릭의 명제를 발견할 수 있다. 

" 무차별적 전면 무상급식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 공짜 복지의 시작입니다. "  

오 시장이 블로그에서 직접 이런 문구를 썼는지 기사보도 내용대로 12일에 올린 글을 찾기 위해서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봤지만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오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 주장 입장을 언론보도를 접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강력하게 드러내기 위한 기자가 만들어낸 헤드라인일 수 있다.  그러나 언론보도의 헤드라인은 반동 레토릭 중의 하나인 위험 명제를 사용하고 있다.  분별력 없이 내세우고 있는 민주당의 무상급식 정책을 도입하게 되면 총체적인 국가적 예산 낭비를 불러올 수 있으면 결국에는 경제 파탄의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 정책 도입의 문제점에 대한 근거보다는 정책 도입 자체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상 또 다른 명제들의 예를 찾아보지 못했지만 이처럼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언론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동 레토릭을 사용하는 언론의 탄생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정치적 사항에 대해서 혼란을 겪고 있는 대중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조장할 수 있는 동시에 정치적 사항에 대한 자주적 분별력마저 상실할 수 있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이론 중에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라는 것이 있다.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자동차 게임에서 유래되었는데 핸들을 먼저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 치킨 ' 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불리면서 패배자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즉,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이론이다.   

비타협적 레토릭을 오고 가면서 대립과 갈등의 폭이 깊어져만가는 우리나라 진보-보수의 모습은 치킨 게임에 참여하는 두 명의 경쟁자를 연상시킨다.  진보와 보수 세력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절대로 굽히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떻게든 자신의 주장을 관철되기 위해서 상대방 진영을 향해 공격적으로 나서려고 한다.  두 진영의 ' 귀머거리 ' 대화의 사회는 곧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권력 독점적인 사회이다.  무의미한 권력 엘리트 간의 대립은 대중의 영향에서 멀어지게 되면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마저 야기시키게 되며 결국은 사회 붕괴라는 파멸을 맞게 된다.   

공정한 경쟁과 협력을 통한 진보-보수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앨버트 O. 허시먼이 발견한 통찰에 의하면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의 원인은 비타협적 의사소통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반동 레토릭은 단순히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기이자 방패가 아니라 다른 진영과의 대화마저 피하는 또 하나의 소통의 벽이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폐쇄적인 담론의 종속성에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기보다는 반대 입장의 생각을 헤아려보면서 양보할 줄 알며 서로에 대해서 존중할 줄 아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건전한 발전을 지향하는 자세가 없는 한 두 정치 진영의 과도한 경쟁과 불필요한 공명심으로 발호되는 진보-보수 간의 귀머거리 대화는 우리 사회 내 숙명의 문제로 남기게 될 것이다.

 

 

   

* 기사 출처

[오세훈 "전면 무상급식,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 ] 머니투데이 2011.2.13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1021304421490747&outli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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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2-1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386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끌어내기라도 했는데,
보수와 진보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현실을 떠올리면 모순에 답답한 게 참 많아요.
우리처럼 20대도 나이를 먹으면 결국 생활보수화 되어갈지, 원.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제목을 봤을 때 <진보집권플랜>과 반대반향 논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확실히 우리는 완전한 진보를 논할 위치가 아닌가 봐요. 비슷하네요.
요즘처럼 헛된 데다 돈 쏟고 있는 꼴 보면 무상급식이 아무리 나빠도 그만할까 싶은데, 요즘 언론기사들 제목 너무 선정적이예요, 진짜. 꼭 이간질 시키려는 계략같고. 물론 그런 뉘앙스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요.

cyrus 2011-02-18 01: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나이 먹으면서 생기는 보수화를 부정할 수 없을거 같아요.
요즘 언론기사 보면 어떻게든 이목을 집중시켜보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선정적인 제목이 많긴 하죠.

마녀고양이 2011-02-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책 주문하면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를 두고 망설이면서
리뷰를 보는데........ 글쎄 사이러스님의 페이퍼가 딱 보이는겁니다.
리뷰 읽고, 그대로 주문장에 던져넣었습니다. 땡스투~ 당근 눌렀어염. 아하하.

우리의 진보는 솔직히 보수와 진보 중간 즈음, 소위 중도라는 어정쩡한 위치라 봅니다.
그거라도 되면 어딥니까, 솔직하게.. 그도 안 되는 위치에서.
복지 국가 어쩌구 남발하는 온갖 정치인들, 다 꼴불견의 극치입니다. (아하하, 강성 발언!)

cyrus 2011-02-18 01:04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아요. 분량도 그리 많지 않구요,, 사실 우석훈 씨의
서문만 읽어도 이 책이 뭘 말하고 있는지 90%는 이해할 수 있어요 ^^;;

양철나무꾼 2011-02-18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수나 진보 등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다소 과격하지만 '개혁'을 들먹이게 되구요.

이 책의 국역본 추천사를 '우석훈'씨가 썼다니...흥미로운걸요.^^

cyrus 2011-02-18 14:02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까지 보수 진보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 아래 개념 확립의 선을 긋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모호한 느낌도
들더라구요.. ^^

2011-02-18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8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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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35]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발렌타인 데이의 초콜릿 

어제가 바로 2월 14일,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준다는 발렌타인 데이였다.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발렌타인 데이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건지 아니면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릿을 주는건지 구분을 못했다. (본의 아니게 모태 솔로 티를 내고 마는구나 , , , -_-;; )   반대로 다음 달 14일, 화이트데이가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것이다.  

비록 발렌타인 데이가 초콜릿을 더 팔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업의 상술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사랑의 감정을 담은 초콜릿을 준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고 좋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여 어떻게든 이익을 챙겨보려는 초콜릿 회사의 지나친 가격 설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발렌타인 데이 기념 초콜릿 중에서 제일 비싼 가격이 30만원이란다.    

최근에는 수제 초콜릿이 유행이다. 차라리 비싼 돈 주고 사기보다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제대로 된 사랑의 증표를 전달하겠다는 여자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초콜릿 하나 만드는 것도 여간 쉽지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기구들을 구매해야한다. 여기에서도 지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비싼 돈 들어가면서 산 초콜릿이나 고생 끝에 정성스럽게 만든 수제 초콜릿을 평소에 좋아했던 남자한테 용기를 내서 전달했건만 그 남자로부터 퇴짜를 맞게 된다면 그동안 가졌던 희망과 정성은 한꺼번에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사 실연의 아픔이 무척 클 것이다.  

 

 

  자기만의 방     

Stella09님 서재에서 발렌타인 데이에 읽어볼만한 책으로 라우라 에스키벨<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고 댓글로 밝힌 적이 있었다.  책 제목의 ' 초콜릿 ' 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발렌타인 데이가 연상되었을뿐 그 때까지는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책장에 박혀 있었던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을 집어들어 읽게 되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단순 연애소설인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제목처럼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내용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 ' 막장 ' 전개라고 불릴 수 있다.  여주인공 티타페드로를 좋아하는데 막내딸은 절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며 죽을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홀어머니인 마마 엘레나를  돌봐야한다는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가풍 때문에 페드로와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페드로는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면서 어떻게든 티타에 대한 연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나 한 순간에 형부-처제 관계로 되어버린 이 두 사람은 언니와 어머니의 시선을 피하면서 은밀하게 사랑의 감정을 나누었다.   

이들의 은밀한 사랑은 마마 엘레나와 언니에게 들통났음에도 불구하고 페드로는 노골적으로 티타에게 추파를 던졌으며 티타는 사랑과 제도 사이에서 복잡한 심적 갈등을 겪어야했다. 가면 갈수록 거세지는 마마 엘레나의 핍박에 의해서 정신적인 고통마저 시달리기도 했다. 

소설 속 티타는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 사랑 ' 이라는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감정을 봉건적인 제도 때문에 억압되어야만하는 힘 없는 여성으로 상징되고 있다. 페드로와의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함에 대한 실연의 상처 그리고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마마 엘레나와 로사우라에게 문전박대당해야하는 힘겨운 시련의 시간을 달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바로 부엌이다.  소설에서는 유독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티타에 대한 묘사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티타는 항상 부엌에서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티타에게 음식이란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심적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자신만의 치료방법인 것이다. 사랑하는 페드로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였다. 그리고 요리를 통해서 자신이 ' 여자 ' 라는 정체성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결국 부엌은 티타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순수한 본질과 감정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으며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 자기만의 방 ' 이다.    

 

 

  이들도 한 때 ' 여자 ' 였다 - 나차, 마마 엘레나     

그러나 소설 주인공인 티타만 불우한 것만 아니다. 티타가 요리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귀머거리 요리사 나차의 영향이 컸었는데 나차 역시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어지 못하고 마는 뼈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여인이다.  사랑의 좌절감을 맛본 티타에게 유일하게 연민을 느꼈고 정신적 동일감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나차였다. 나차 역시 부엌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자신과 같은 경험을 겪고 있는 티타를 동정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마 엘레나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차는 로사우라의 결혼 피로연 준비를 하며서 그동안 마음 속으로 억눌러져 있었던 헤어진 연인에 대한 감정 그리고 강렬한 그리움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그녀는 갑작스런 심경 변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양손에 그리워했던 옛 애인의 사진을 쥔 채.  

소설에서 티타를 모질게 구는 악명 높은 어머니로 등장하는 마마 엘레나 역시 젊은 시절에 사랑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여인이다.  마마 엘레나도 정작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의 사건으로 결국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했다. 불행하게도 결혼한 남편이 엘레나의 과거사를 알게 된 순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마마 엘레나는 평생 두 남자를 만났고 삶의 반려자로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한 채 과부로 살았던 것이다.   

마마 엘레나가 유독 막내 티타를 모질게 굴었던 이유는 점점 밝혀지는 엘레나의 과거사를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  티타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에 남편이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엘레나에게는 티타가 옛 연인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태어난 죄 밖에 없는 티타에게 삶에 대한 불평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은 티타마저도 자신처럼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상처를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 특유의 모정을 어쩔 수 없이 가풍이라는 이름 아래 매정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삶을 봉건적인 제도에 스스로 속박당하는 운명을 선택했다.

그러나 마마 엘레나가 티타를 정말로 악의적인 감정을 가졌으며 정말로 싫어했는지에 대해서는 중요치가 않다.   그리고 엘레나를 단순히 신데렐라 계모를 연상케하는 악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마마 엘레나도 가슴 아팠지만 애틋했던 사랑의 추억을 몰래 간직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세 딸의 어머니이기전에 한 때 사랑이라는 감정에 청춘을 불태웠던 ' 여자 ' 라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한다.  마마 엘레나가 죽은 뒤에 티타는 그동안 봉인되었던 호세라는 옛 연인이 그녀에게 썼던 편지 묶음을 보관한 함을 발견하게 된다.  마마 엘레나는 남 몰래 비밀 보관함 속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호세에 대한 사랑의 추억이 남기고 만 상처를 달랬거나 그리움을 눈물로 삼켰을 것이다.  

 

  

  페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  

솔직히 말자하면 나는 페드로와 티타의 재결합이 못마땅하다.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며서까지 티타에 대한 연분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페드로의 모습이 정말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페드로는 티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집착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 때문에 괴로워해야하는 티타의 말 못하는 심정을 정작 이해하지 못한 채 티타를 자신의 성적 욕구을 채울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소유하려고 했다.  그리고 존이 티타를 사랑하는 모습에 질투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소설 속 페드로의 모습은 뜨겁기만한 사랑의 감정에 쉽게 타오르고 사랑하는 여자를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남성으로서 전형적인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채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집착하는 모습은 사랑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병적인 스토커에 불과하다. 나는 티타에 대한 페드로의 사랑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을 때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히려 페드로를 향한 마음을 담아 만든 티타의 초콜릿은 그렇게 달콤 쌉싸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페드로는 정작 티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타가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아니 그는 티타가 만들어준 음식을 직접 먹어보려는 생각마저 하지 않았다. 그저 티타를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신만의 기호식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티타가 만든 음식에 대해서 티타 앞에서 칭찬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 담긴 진심어린 칭찬으로 보기 어려운 그녀의 비위만 맞춰주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는 성냥갑

페드로와 진심으로 티타를 사랑했던 의 모습을 비교해가면서 읽게 되면 티타에 대한 이 두 남자들의 태도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티타에 대한 페드로에 대한 태도는 이미 설명했고 존 같은 경우에는 티타의 정신적 고통과 처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였고 티타가 예전에 페드로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에 그는 깨끗하게 티타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게 된다.   

"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뜻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p 124 ~ 125 -  

 
티타에게 들려주는 존의 성냥갑 이야기는 무척 인상 깊다.  존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성냥갑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성냥개비가 티타였을 것이다. 그러나 티타에게는 자신의 불꽃을 태워줄 수 있는 사람은 존이 아닌 페드로였다.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존에게는 티타와 페드로의 재결합을 인정하기가 쉽지가 않았을 것이고 본인도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티타를 사랑했다. 티타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티타의 의견을 존중하여 자신이 한 발 물러섰다.  그야말로 진심으로 티타를 사랑하고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남자였던 것이다.  

존의 말대로 우리들의 심장 어딘가에는 성냥갑 한 개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성냥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불꽃을 만났거나 반면 여전히 자신의 성냥에 불을 붙여줄 불꽃을 찾지 못한 채 고독의 습기에 축축해지면서 방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성냥갑이 축축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뜨겁게 해줄 불꽃을 찾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불꽃을 찾는게 여간 쉽지가 않다.  나에게 맞는 불꽃인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보면 성냥갑을 다 태워버릴 정도로 너무 센 불꽃도 있을 것이도 반대로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게 너무 미약한 불꽃도 있기 때문이다. 즉, 너무 세지도 않고 그렇다고 약하지 않은 적당한 불꽃이 필요하다.   

결국에는 고독으로 습기가 찬 심장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아주 적당한 불꽃이란 성냥갑의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불을 붙일 수 있는 불꽃인 것이다.  모든 불꽃이라고 성냥개비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과 정성을 이해하기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서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전달했을 초콜릿들은 몸 안에 흐르는 사랑의 불씨를 지펴줄 수 있는 불꽃인 것이다.  그 중에서 일부는 사랑의 불씨를 지피는데 실패한 여성들도 있을 것이며 어디선가 남몰래 실연의 아픔을 눈물로 달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연당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자신에 대한 여성의 진심어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채 초콜릿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다거나 혹은 연애에 관심이 없어서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용기를 무릅씁고 초콜릿을 건내준 상대방 여성의 마음만큼은 이해해주자. 남성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여성들도 말하고 있지만 남성들은 여성이 자신에게 구애를 하면 보편적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구애외 동시에 여성이 준 초콜릿을 거절한다. 

  " 너의 마음만은 충분히 받을께. "  

냉정하게 딱 잘라서 거절하는 것보다는 이런 말 한 마디 해주는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준비했고 혹은 밤 새가면서 서툰 실력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초콜릿일 수도 있다. 예의상 말로만 그렇게 거절하는 것보다는 정말로 상대방이 준 정성이 담긴 초콜릿을 받는 것이야말로 상대방의 진심을 이해하고 실연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받지 않게 해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평생 이성에게 초콜릿 한 번 못 받은 것도 있어서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는 보지는 않았다. 굳이 발렌타이 데이 초콜릿 운운하면서까지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을 향한 상대방의 진심과 이해는 꼭 알고는 있자라는 것이다.  

티나는 핍박과 고통의 삶 속에서도 페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 홀로 부엌에서 요리를 만드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써 페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정작 페드로는 그런 티타의 진심어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많은 시련 끝에 끝내 재회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이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기적인 성격에만 사로잡힌 페드로 같은 남자는 절대로 이성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존처럼 상대방에게 무척 예민할 수 있는 마음 속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고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만이 진짜로 사랑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능력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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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2-1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콜릿 향이 날 것 같은 제목, 늘 벼렀는데 몇 년째 못 읽은 책이예요.
발렌타인데이 맞아 특별히 간택하신 거예요?,ㅋㅋㅋ
따뜻한 불꽃 하나 맘속에 지피고 싶은 추운 겨울밤이예요, 그죠?
거기도 눈이 많이 내렸어요?

cyrus 2011-02-15 00:26   좋아요 0 | URL
네, 스텔라님 서재에서 그냥 무심코 한 말 때문에 읽게 되었어요.
읽게 된 자세한 이유는 스텔라님 서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연애소설인줄 알았는데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

대구는 17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려왔다고 하네요.
어제 하루종일 내내 눈 내리다가 저녁 때 드디어 그쳤어요.
내일 기상과 동시에 집 앞에 제설 작업 좀 해야겠습니다.
잘 하면 또 새벽에 눈이 온다고하네요 -_-;;

삽하나 2011-02-15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렌타인 데이 따위. 나이 들면 이렇게 됩니다 ㅋㅋ
나도 이제 알라딘에서 놀까해요
슬슬 글 옮겨 오려고 구상중 +ㅅ + 즐겨찾는 서재, 꾸욱. 누르고 싶은데 여기는 어디 있나요???? ㅠㅠㅠ 버튼을 찾을 수가 없네잉;;

cyrus 2011-02-15 10:56   좋아요 0 | URL
서재 사진 밑에 보면 즐겨찾기 버튼 있어요. 삽하나님도 여기서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

stella.K 2011-02-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결국 읽지도 않았으면서 읽은 척 하신 거로군요. 칫!
그게 막장 전개였던가요?
어쨌든 전 그 책 재밌게 읽었어요. 읽고 누구 줬지만...ㅠ
무엇보다 맥시코의 정서가 우리나라 정서와 일맥상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흡인력이 좋았죠.
근데 쪼꼬렛 먹고 싶어졌어요. 일부러 사 먹진 않아도 누군가 먹으라고 그러면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는데. 문제는 사소한데 있다고, 사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 먹고 있슴다.ㅠㅠ

cyrus 2011-02-15 21:08   좋아요 0 | URL
그래서 댓글 달았을 때 이유를 밝히지 않았어요^^;;
인물 관계는 거시기해도 읽는데 정말 흡인력 좋았어요.
결말이 무척 궁금해 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줄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별다른 생각은 없는데,,
갑자기 댓글 보니 초콜릿 먹고 싶어지네요 ^^;;

마녀고양이 2011-02-16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란게 워낙 어렵잖아요...
사람의 마음이란게 워낙 헤아리기 어렵고, 거기다 변덕도 심하고.
언제부터인가 사랑 이야기, 남녀 이야기, 그런 영화들을 즐기지 않게 된 것은
이렇게 저렇게 말해도, 정열적인 사랑이란 조금은 허무하다는 생각 때문인가 봐요.

초콜릿을 받으면서, 마음만 받을게 말하는 남자... 글쎄요.
또 어떤 사람은 지나친 이기주의라고 화낼걸요.. 아하하.

cyrus 2011-02-16 21:30   좋아요 0 | URL
마고님 말씀대로 사랑이란게 참으로 어려운 인간의 감정인거 같아요.
이 소설의 결말을 읽으면서 무언가 허무한 느낌도 들기도 했었어요.

starover 2011-02-1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페미니즘을 음식 요리법과 함께 드러내려는 방법이 참신한 작품이죠.
 
정치의 발견 -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
박상훈 지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마르크스는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    

작년에 신문을 보다가 참으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였다. 그 때 내가 본 신문은 보수적인 성향의 중앙일보였는데 마키아벨리에 관련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에 대한 짤막한 기사였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 무관심에 빠진 신문 구독자들 대다수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은 기사 내용일 수도 있었지만 정치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구독자들에게는 기사의 표제를 보는 순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진보학계 거장 최장집 ‘ 한국 정치의 길’ 을 말하다 - “ 마르크스는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필요 ” 

그런데 딱 기사 제목을 보는 ' 마키아벨리 ' 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구독자들은 분명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아니, 왜 하필이면 권모술수를 상징하는 마키아벨리를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 사람의 주장,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 

 
   

    

  

 

   최장집 교수에게 마키아벨리란 , , , ? 

 

 


니콜로 마키아벨리 (1469~1527)
 

하지만 이 기사를 자세히 보니 최장집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압축하여 소개한 것이었다. 지금 한국정치에는 마르스크보다는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는 내용만 드러나고 있을뿐 정작 왜 마키아벨리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에 이유를 알 수 있는 최 교수의 설명은 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은 자사 언론에서 내고 있는 특별섹션의 인터뷰 기사를 은근히 홍보하기 위해서 만든, 쓸데없는 지면 낭비에 불과한 일종의 지라시 형식의 기사였던 것이다.  

이처럼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오늘날에도 학자와 대중들 사이에서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 인물중의 한 사람이다.   후세에 '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 ' 이라고 불리게 되는 권모술수적 정치가의 등장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그의 책 <군주론>은 정치학의 불후의 고전이 되는 동시에 사상이 위험한 불온한 서적이라는 엇갈린 명예를 얻게 되었다.  책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죽어서도 ' 권모수술의 화신 ' 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악의에 찬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만했다.  

그런 문제적인 인물을 작년에 후마니타스 출판사가 주최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정치철학 강의에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마이카벨리즘을 재조명,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최장집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서 예전부터 진보 사상에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마르크스 사상이 실패한 이유가 정치적 역할이 없다는 것임을 지적하며 우리나라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푸는 것만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마르크스 이론의 치명적 결함은 정치의 역할이 없다는 점이지요. 마르크시즘이 현실 속에서 작동을 못하고 실패한 이유는 거기에 있어요. 정치는 없이, 이상과 규범만 강요됐기 때문에 권력의 문제를 잘 다룰 수 없었지요. 그런 이상과 당위의 논리는 우리에게 넘쳐요. 오늘 한국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런 규범이 아니라 좋은 정치를 이끌 실력이라고 봐요.”     

- [중앙일보] 인터뷰 중에서 -

그리고 마키아벨리야말로 이상의 정치학이 아닌 현실의 정치학을 인식한 인물이며 권력과 폭력 그리고 악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정치의 영역으로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최 교수의 인터뷰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는데 (그것도 같은 날에!) 최 교수의 강의계획서에 있는 메모 일부를 인용하고 있는데 그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생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키아벨리] 폭력과 악을 정치의 중심에 놓기 : 도덕으로서 폭력과 악을 극복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가?  또 이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가?  폭력과 악에 정면으로 대응한 최초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  

- [오마이뉴스] 인터뷰 중에서 -

결국에는 최 교수는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적인 정치에만 좇기보다는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실현 가능한 정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실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바로 우리에게는 ' 폭력과 악 ' 으로 상징되고 있는 권력인 것이다.  

 

  

 

  박상훈 대표에게 막스 베버란 , , , ?  

 

 


막스 베버 (1864~1920)

 

현재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인 박상훈 대표는 자신의 정치학 강의 내용을 담은 <정치의 발견>이라는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의 책을 발간하였다.  정작 책에서는 박상훈 대표가 참여했다던 강연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저자가 ' 후마니타스 출판사 대표 ' 라는 사실을 알면 대충 무슨 강연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최장집 교수의 마키아벨리 강의를 주최했던 출판사가 후마니타스다)        

 

 

박상훈 대표의 이력을 살펴보면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적이 있는데 최장집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으며 <정치의 발견> 서문에서도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가르쳤던 교수가 최장집 교수라는 것을 살짝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출간된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개정 2판에도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박 대표가 쓴 책도 최 교수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보이기도 하다. 박 대표가 정치학 강연을 하기 시작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든 취지가 오늘날 우리나라 정치의 문제점을 무엇인지 파악하고 지금보다 나은 정치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탐구하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박 대표 역시 최 교수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르크시즘에 천착하고 있는 진보의 모습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으며 마르크시즘은 체제 전체를 이끌어가기 위한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으며 권력마저 부정한 나머지 대중들에게 정치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불어넣는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철학의 빈곤>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 노동계급은 그 발전 과정에서 낡은 시민사회를 계급과 계급 적대를 배제하는 결사체로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정치권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정치권력이란 시민사회 내에 존재하는 적대와 반목의 공식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  

(중략) 

마르크스주의가 갖고 있는 이른바 정치 부재론 내지 정치 종언론은 정치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기 쉽다. 오로지 혁명이 중요하고 혁명 이후에는 하나의 진정한 정치형태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데, 사실 그것만큼 위험한 생각은 없다. 정치는 인간이 천사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꼭 있어야 하는 불가피한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정치를 선용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지 정치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 <정치의 발견>  p 138~139 -

 

그리고 선(善)함만을 강조하는 신념의 윤리만 추구하는 정치보다는 하나의 집단 체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쉽이 충만한 지도자적인 역할이 있느 정치 역시 필요하며 그 역할을 충당할 수 있는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중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폭력과 악으로 점철되고 있는 냉혹한 정치 세계의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정책 결정 시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는 책임의 윤리를 가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정치가란 모든 폭력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기꺼이 관계를 맺기로 한 사람이다. " 

- p 28,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재인용 -

 

박 대표가 인용하고 있는 막스 베버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거나 정치가라는 직업은 대의정치에 입각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 역할이라는 생각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다. 박 대표도 실제로 강연 중에 막스 베버의 글을 인용했을 때 수강자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막스 베버가 주장하고 있는 올바른 정치가의 모델은 마키아벨리의 표현보다 과격하기만 하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우와 같은 간사한 책략과 사자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신의가 두텁고 고결한 인격을 가진 선량한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막스 베버는 마키아벨리보다 한 술 더 떠 정치가들을 악마의 힘과 관계를 맺어야한다고 비유하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사 제목을 보면서 당황하는 구독자의 느낌처럼 그 당시 강연에 참석했던 청중들도 막스 베버의 표현을 듣는 순간 적잖이 놀랬을 것이다.  

 

    

  책임의 윤리이냐, 신념의 윤리이냐  

최장집과 박상훈, 이 두 사람은 사제지간에다가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정치관도 일치해서 어떻게 보면 그 선생의 그 제가가 하나같이 과격하면서도 독단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은 근본적인 연구를 하지 않고 주관적인 편견으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최 교수와 박 대표가 최근에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를 재조명하기 전에 이미 17년 전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국내에 초판 번역했던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해제에서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의 정치적 윤리관의 유사성에 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1994년 초판 출판 때 쓴 강정인 교수의 번역본 해제는 지금도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개정판에도 실려 있다)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윤리관은 막스 베버가 " 소명으로서의 정치(Politics as a Vocation) " 에서 구분한 ' 확신의 윤리 (ethics of conviction) '' 책임의 윤리 (ethics of responsibility) ' 중 책임의 윤리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베버에 따르면 확신의 윤리는 인간이란 선한 존재란 전제하고, 동기가 선하면 주어진 행위는 그 결과에 상관없이 선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서 책임의 윤리는 인간의 평균적인 악을 전제하고, 이를 감한하여 행동해야 하며, 따라서 동기의 선함보다는 결과의 선함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베버의 이러한 구분은 일부 문제가 없지 않지만, 기독교적 윤리관은 확신의 윤리에,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윤리관은 책임의 윤리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 <군주론> (개정 3판),  마키아벨리, 강정인 역, p 242 -  

 

그러나 마키아벨리와 막스 베버의 정치적 윤리관이 일맥상통한다고 해서 이들이 확신의 윤리, 즉 신념의 윤리를 완전히 도외시했다고 왜곡적으로 받아들어서는 안 된다.    

 

인민들의 호의로 군주가 된 사람은 그들의 환심을 계속해서 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인민들이란 단지 억압당하지 않는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이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민들의 의사에 반해서 그리고 궈족들의 호의에 의해서 군주가 되었을 때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인민들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며, 이는 당신이 그들을 보호함으로써 쉽게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군주론> 마키아벨리, 강정인 역, p 71 -

 

마키아벨리는 인민들의 호의를 토대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호의적인 인민들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는 서로 조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막스 베버는 단지 신념의 윤리에만 치우치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최고의 신념 윤리가라 할 수 있는 혁명가도 ' 종말론적 예언자로 돌변 ' 하여 현실적인 정치 문제에 무감각해지며 반대로 책임의 윤림에만 너무 추구하다보면 권력 자체를 숭배하게 되어 정치력을 왜곡시키는 가장 해로운 형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박상훈 <정치의 발견> p 34)

  

  

 

  위기에 맞설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정치

의사들이 소모성 열병에 대해서 말하는 바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 병은 초기에는 치료하기는 쉬우나 진단하기가 어려운 데에 반해서, 초기에 발견하여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진단하기는 쉬우나 치료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나하면 정치적 문제를 일찍이 인지하면 (이는 현명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문제가 신속히 해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하고 사태가 악화되어 모든 사람이 알아차릴 정도가 되면 어떤 해결책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 <군주론> 같은 책, p 25 -

 

강정인 교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을 ' 위기의 정치학 ' 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질병을 비유하여 마키아벨리가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정치가란 자신의 눈 앞에 찬아온 정치적인 문제(위기)를 일찍이 인지를 하고나서 신속히 해결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역량을 가지고 있는 군주, 즉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현명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자만이 가능하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역량이라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은 단지 특별한 능력을 가진 군주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권력은 일반적으로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가리키고 있다. 그 권리와 힘은 국민의 대의를 위한 올바르고 합법적인 과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간혹 폭력적이고 강제적인 과정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수많은 정치가들이 발에 담그고 있는 이 거대한 정치판은 선과 희망이 가득한 에덴 동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가는 그런 권리와 힘이 지배하고 있는 정치의 세계 앞에서 뛰어든 이상 자신이 다스리는 국가 내에 커다란 정치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조건 방관하고 차일피일해서는 안된다. 냉혹한 정치 현실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특별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교회 개혁을 내세워 새로운 피렌체의 통치체제를 시도하려다 반대파에 의해 화형당한 사보나롤라를 ' 무기를 든 예언자 ' 로 비유하여 정치의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개인 또는 집단들 간의 이해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실질적이지 않는 언명만 내세우는 역량은 도리어 화를 부른다고 말하고 있다.   똑같이 막스 베버는 소박하고 순수하기만하고 특별한 책임 의식이 없으며 내적으로 무력한 자는 정치가를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박 대표가 진보적인 성향이며 정치학 강연에 참석한 이들 대부분 역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대표는 책의 서문을 통해서 진보와 보수가 서로 대화하면서 정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박 대표의 정치적 윤리관은 진보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을 떠나 정치적 위기를 인식하고 고민할 줄 아며 이를 맞설 수 있는 책임감을 가진 적극적인 정치가야말로 현실적인 감각을 지는 정치가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최대의 정치적 위기가 바로 관용과 타협적인 대화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절된 상태의 보수와 진보세력의 모습이다. 지금도 수많은 정치가들은 치명적인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채 자신들의 권력을 앞세워 서로 자신들의 밥그릇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도 대중들 앞에서는 자신들은 권력에 집착하지 않으며 권력만 앞세우는 자를 혐오하는 선량한 정치인마냥 행동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국민들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는 정치적인 질병들을 치유하려는 책임감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글을 조국 교수의 인터뷰 내용으로 마무리하겠다.  권력을 ' 오용 ' 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가들과 반대로 권력을 ' 오해 ' 하고 있는 대중이라는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조국 교수 역시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주장을 막스 베버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하다.   

   
 

막스 베버는 " 정치인은 악마적 힘과 손잡는 사람 " 이라고 갈파한 바 있어요. 정치권력을 다름 아니라 악마적 힘입니다.  이 힘과 손을 잘못 잡으면 악마에게 내가 넘어가죠. 이 힘을 포기하면 반대 정파가 이 힘을 사용하여 나를 억누르죠. 그러나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에 능한 것을 넘어, 그 권력을 잡았을 때 이를 잘 다투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거죠. 진보, 개혁 진영의 사람들은 권력 행사를 혐오하는 경향을 버려야하며, 권력을 유능하게 행사하는 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 <진보집권플랜> 조국 & 오연호, p 253~254 -

 
   

 

  

 

P.S 

독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일수록 저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독자들의 반발과 반문도 비례하기 마련이다.  막스 베버를 인용하여 책임 윤리를 강조하는 권력, 순화하면 리더십을 가진 정치적 윤리관을 주장하는 박상훈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시즘이 정치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최 교수와 박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 반문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니 순전히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일말의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채 이 책을 읽지 말았으면 좋겠다.  희망만 가득한 채 읽을수록 내용에 대해서 실망감을 가질 수 있다. 사실 나 역시 막스 베버의 글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안 읽었으면 이 책, 그냥 실망만 안겨주는 그저그런 책으로 될뻔 했다.

마르크시즘에 대해서 깊이 있는 지식도 없거니 전문적으로 정치를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나 역시 이 내용에 대한 작은 설명도 남지기 못했다.  그렇다보니 책에 대한 감상이 주관적이면서도 편협적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 좋다고 나쁘나고 평가를 하지 않겠다. 오히려 그런 평가는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의 내용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평가는 어디선가 이 책을 읽고 있을, 그리고 이제 막 읽기 시작하려는 독자들의 몫인 것이다.  

 

 

  

 

* 자료 출처   

[최장집, " 나는 왜 마키아벨리에 주목하는가? "]  오마이뉴스,2010.7.24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20838 

  

[최장집 “마르크스 이론 치명적 결함은 정치의 역할이 없다는 것이죠”]  

중앙일보 섹션 J, 2010.7.24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4335025&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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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2-11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두 좀 있다가 읽을 책이예요. cyrus님 리뷰가 큰 도움됩니다. 고맙습니다. ^^

cyrus 2011-02-11 16:54   좋아요 0 | URL
고맙긴요,, 포핀스님의 독서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

양철나무꾼 2011-02-11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최장집 교수의 '마르크스는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필요하다'는 기사 제목만 봤었는데...이런 뜻이었군요.
님의 리뷰를 찬찬히 읽어보니 그럴듯 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저라면 '군주론'따윈 퉁쳐 버렸을걸요~^^

cyrus 2011-02-11 16:57   좋아요 0 | URL
저도 뭣도 모르고 까치에서 나온 <군주론>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덕분에 <정치의 발견>을 수월하게 읽었던거 같습니다.
<정치의 발견> 아니었으면 저도 잘 안 읽었을겁니다. ^^;;
그래도 <군주론>보다는 <한비자>가 더 나은거 같아요.
<한비자>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마녀고양이 2011-02-1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나 이 글 어디 보관해야 하는거 아닐까.. 이런 생각했어요.

저는여, 정치란 목적 의식은 올바르고 확고하게, 하지만
실행력에 있어서는 협상과 타협, 컨트롤의 기술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진정으로 테크닉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의 카이사르를 좋아하구요.
얼마 전에 울프 홀 소설의 크롬웰에게 홀랑 반한거죠.

군주론 당장 장바구니로.. 계속 벼르고 있기만 했거든요.
오늘 페이퍼, 너무 고마와요.

cyrus 2011-02-11 17: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 어디가서 꿀리지 않는 실행력이 필요한거 같아요.
MB는 실행력은 좀 있는데 타협하면서 분위기를 컨트롤하는게
부족한게 흠이지만요,,^^;;

herenow 2011-02-1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말 꺼내기가 무섭게 리뷰를 올려놓으셨군요~ ^o^
있다가 저녁때 링크된 자료들까지 찬찬히 읽어봐야겠어요.

서점에서 찾아읽기의 부담을 미리 덜어주신 cyrus님을 위한 뽀너스~



cyrus 2011-02-11 17:03   좋아요 0 | URL
리뷰가 herenow님께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까 조금 걱정되네요 ㅎㅎ;;
그래도 이 책 직접 읽어보시면 나쁘지 않을겁니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조명하고 성찰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동영상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역시 시가 패러디는 보면 볼수록 재미있네요 ^^

아이리시스 2011-02-1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괜찮을 것 같아요. 목차를 쭉 훑어봤는데, 심히 어렵지도 않을 것 같고.
물론 제 밑바닥이 홀랑 드러날 만큼 어려울 수도 있지만요, 흐흐.
찜해두고 담번에 주문하려구요. 그런데 <군주론>을 읽고 읽어야 한단 말이죠?
음.. 고민이네.^^

cyrus 2011-02-11 17:04   좋아요 0 | URL
아니요. 굳이 <군주론>까지 읽을 필요는 없을거 같아요^^;;
아이리시스님이 편한대로(?) 부담없이 읽으시면 된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2-11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주의가 경제결정론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 정치학 쪽이 좀 취약하다는 지적이 있지요.그래서 민족주의 분야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많았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2-1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장집 박상훈은 사제지간이고 책도 함께 내기도 하고 그랬는데 작년에 최장집 씨는 손학규 지지를 선언했고 박상훈 씨는 진보신당 지지를 선언해서 요즘은 두 사람 사이가 어떤지 궁금합니다.

cyrus 2011-02-11 23:5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노자님 댓글을 읽고나니 마르크스주의의 지적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박상훈 대표의 서문에서도 최장집 교수에 대해서
좋게 표현하고 있는걸로 보니 지지 노선이 서로 달랐다고해서 사제관계가
소원해지지 않은거 같습니다. ^^;;

감은빛 2011-02-12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군요!
게다가 <군주론>까지!
엄청 빠르시군요! ^^

cyrus 2011-02-13 10:35   좋아요 0 | URL
까치에서 나온 <군주론>은 예전에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나름 진지하게(?) 읽었던터라 <정치의 발견>의 박상훈 대표의
막스 베버에 대한 이야기를 보게 되니 <군주론>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군주론>에 밑줄 쳤던 부분을
읽게 된겁니다. ^^

2011-02-12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3 1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간달프 2011-02-2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면 '신자유주의'도 정치 이론이 희박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것 역시 마르크시즘처럼 종말론(혹은 정치종말론)의 형태로 왔고요. 그런데 그걸 현실에서 적용하려면 역시 정치론이 불가피했는데, 그걸 도덕주의라든가 기독교 근본주의 따위와 같은 과거의 유산들을 들여다 정치를 대신하려 했던 건 아닌지...

카톨릭으로 인해 핍박당했던 케네디는 종교과 정치를 분리시켰지만, 지금의 미국은 카터 레이건 클린턴 부시와 부시 쥬니어, 오바마 할 것 없이 모두 '기독교의 말'을 들여다 쓰고 있지요.
 
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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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326] 일곱 명의 광인

 

 

 

  용이 되지 못한 잉어, 로베르토 아를트    


 


로베르토 아를트 (1900~1942)   


' 미치광이 ' 라는 예사롭지 않은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에다가 ' 로베르토 아를트(Roberto Arlt, 1900~1942) ' 라는 낯선 작가의 이름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에게는 선듯 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이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소개된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더라면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는 이번 주 주말에 있을 독서모임 때문에 읽게 된 것이지만)

(* 피터 박스올의 책에서는 ' 일곱 명의 광인(원제: The Seven Madmen)' 으로 소개되어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899~1986) 


로베르토 아를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소설가인데 현재로서는 내가 아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로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호르헤 보르헤스마누엘 푸익뿐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열거하라면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후안 룰포(멕시코), 이사벨 아옌데(칠레) 그리고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또 한번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우수성을 입증해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까지.  ' 마술적 리얼리즘 ' 으로 대표되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이제 국내에서는 낯선 변방의 문학이 아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가 세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로베르토 아를트의 문학은 보르헤스와 마누엘 푸익의 국제적인 명성에 견줄만한 세계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유인 즉슨, 로베르토 아를트는 보르헤스가 추구하는 마술적 리얼리즘 문학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를트 역시 리얼리즘 문학을 표방했지만 보르헤스처럼 현실을 초월한 환상적인 세상을 그려내기보다는 범죄와 위악으로 가득찬 아르헨티나의 실상을 그려내고 있다.

독자적인 문학을 추구했던 로베르토 아를트는 세상을 떠난지 40여년이 지나서야 고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집이 발간됨으로써 재평가되었지만 이미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상징으로 보르헤스와 마르케스을 주축으로 한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메리카 대륙에 확고히 뿌리를 박은 탓에 아를트는 같은 출신 작가 보르헤스의 명성에 가려지게 되었고 고국에서조차 ' 아웃사이더 ' 작가로 인식되어 별다른 부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를트에게는 운 역시 따라주지도 않았다.  불행한 유년 시절의 경험(어머니의 죽음)은 그의 삶에는 걸림돌이 되었으며 왕성한 집필 활동 중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42세라는 젋은 나이에 사망하게 됨으로써 이제 막 꽃봉오리를 피려고 하는 아를트의 문학은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나마 그의 인생 중 황금기라면 <7인의 미치광이> 한 권으로 '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학상 ' 을 수상한 이력이 유일하다.  

보르헤스는 아를트보다 1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역시 아를르 못지 않게 유난히 굴곡이 많은 생애를 살다 갔다. 불우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뻔했으며 아르헨티나를 독재 집권한 페론 정부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게다가 인생의 황혼기에 실명이 되어 문학 인생에 또 한 번 최대 위기를 겪었지만 실명된 상태에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87세의 나이로 꽤 장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문학가들에게는 최대의 명예인 노벨문학상 만년 후보였음에도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전파된 그의 문학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호르헤 보르헤스와 마누엘 푸익이라는 아르헨티나산 잉어는 고국의 독재 정권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문학 인생에서 수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현재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인 거대한 용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로베르토 아를트는 독창적인 문학을 추구한 특별한 존재의 잉어였음에도 불구하고 ' 세계 ' 로 향할 수 있는 등용을 통과하지 못하고 말았다. 단지 그의 문학적 재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무엇이 이들을 미쳐버리게 만든 것인가? 

소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 7인의 미치광이 ' 이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언듯 제목만 봐서는 이 소설에는 단 일곱 명만 등장하는 걸로 알기 쉬운데 다양한 인물들이 부수적으로 등장하며 전반적으로 독자들의 눈에 자주 띄는 인물이라고는 주인공 에르도사인과 점성술사 그리고 전직 창녀인 이폴리타뿐이다. 

언급된 세 명의 등장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 , ,

소설 주인공인 에르도사인은 설탕 회사에 다니다가 몰래 회사 공금을 횡령한 적이 있는 범죄자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불안과 과대 망상이 머릿속에 넘나드는 정신이 불안정한 발명가로 그려지고 있다.    

점성술사는 ' 7인의 미치광이 ' 의 핵심 인물이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서 에르도사인과 그 밖의 인물들(이들도 ' 미치광이 ' 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을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도록 끌어 모은다.       

결국 아를트의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을 대놓고 말하자면 ' 미친 놈 ' , ' 또라이 ' 들이다.  

제정신이 아닌 소위 미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정상인이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기 마련인 것처럼 소설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망상과 불안에 휩싸인 인물들의 독백과 미친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을 읽게 되면 처음에는 이야기 읽기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읽는데 무척 난감했다.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아니었다면 읽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집어던져 버렸을 것이다. 소설 시작부터 나오는 인물들이 무엇 때문에 미쳐버렸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은근히 난해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 미치광이 ' 로 만든 것일까? 

     

  

  세계의 모든 사상들이 넘쳐났던 근대 아르헨티나    

갑작스런 사회적 변화로 인해서 새로운 사상들이 소개되면 대중과 지식인들은 그 사상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되는데  <7인의 미치광이>에서 그려지고 있는 근대화가 성립되고 있었던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모습이 그러했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초에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함으로써 공화국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세기 말, 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유럽 대륙의 자본들만 아르헨티나에 유입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전파되고 있었던 다양한 사상들도 홍수의 범람하듯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근대화가 이루고 있었던 이 시기의 아르헨티나는 화려한 번영을 누렸지만 국내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예전보다 대량적 실업과 공황으로부터 야기된 범죄는 날로 늘어만갔고 아르헨티나 대중과 지식인들은 수없이 넘쳐 흐르는 이데올로기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다양한 사상들을 지나치게 수용하게 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사상적 내용을 제멋대로 왜곡하여 받아들였으며 정치 권력자들은 이데올로기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렇다보니 국내 정치마저도 조금씩 불안정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7인의 미치광이>에 등장하는 연금술사는 근대적 사상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아르헨티나 지식인을 상징하고 있다.  연금술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혁명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장면에서는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에서 유행했던 당시 사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 1  미래주의 (Futurism)  

" 수많은 대중들을 이끌어나가고 그들에게 과학에 기초한 미래상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그런 훌륭하고 멋지고 강철 같은 의지력을 갖춘 사람을 창조해 내는 것, 생각만 해도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까?  사회혁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겁니다. "  

(중략) 

" 앞으로 우리는 과학 지식으로 무장한 황태자를 만들어낸 겁니다.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댕길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오히려 에디슨이나 포드 같은 인물일 겁니다. "   

- 로베르토 아를트 <7인의 미치광이> p 58 -

 
 

움베르토 보초니 <도시의 폭동> 1910~1911년 작

 

연금술사는 산업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를 ' 산업주의 ' 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미래주의를 연상시킨다.  미래주의자들은 과거의 전통과 아카데믹한 공식에 반기를 들고 무엇보다도 ' 과학 ' 으로 대표되는 기계문명의 약동감을 찬미하였는데 연금술사는 혁명을 통해서 ' 산업의 시대 ' 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 2  파시즘 (Fascism)  

 


베니토 무솔리니 (1883~1945)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계로 가득찬 현대문명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미래주의는 주목할만 하지만 전쟁에 대한 과격한 찬양은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결합되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연금술사는 아예 노골적으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찬양하고 있다.     

 

" 이 사회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소. 딴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그들만은 내 말을 믿을 거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소?  내 구상을 조금 더 소상히 밝혀 볼 테니 한번 들어봐요. 미래의 사회는 크게 두 계급으로 나누어질 거요. 두 계급은 당연히 극과 극의 성격을 지니게 되겠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 계급의 지적 수준은 30세기 정도 차이가 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무지 속에서 살게 될 거요.

- p 196 -

  

" 그렇소. 우리 인간이 상상하는 건 시간이 지나면 모두 실현될 수 있소. 이탈리아에선 무솔리니가 종교교육을 의무화하지 않았소?  대중의 지지를 받는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실례요. 좀 더 알기 쉽게 얘기할까?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간에 대중들이 믿게만 만들면 뭐든 못 할 일이 없다오. 결국 문제는 대중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느냐 하는 거지. "  

- p 198~199 -   


파시즘은 인간평등을 부인하며 인간불평등의 사실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의 이상으로서 불평등을 확신하는 경향을 보인다. 소수 엘리트가 지배하는 정치는 폭력과 전쟁을 신념으로 인간생활의 전국면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해서는 국가 내 모든 매스미디어를 독점하여 여론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비밀조직을 결성하기로 계획을 꾸미는데 결국에는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독점적인 특정 세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 3  자본주의 (Capitalism) 

돈을 최고로 여기는 자본주의에서는 대중들로 하여금 소비하고 싶은 욕망과 남에게 뭔가를 과시하고 싶은 허영심을 부추기고 있는 폐해를 낳기 마련이다. 게다가 재화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른 경제적 수준으로 부르주아와 프폴레타리아라는 양립의 계급을 형성하게 되고 빈부 격차의 문제는 물론이고 이윤 획득에 눈이 먼 비도덕적인 범죄도 발생하게 된다.   

에르도사인은 수많은 비용의 회사 공금을 비밀리에 빼돌렸음에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횡령한 돈들은 엉뚱한 곳에서 남발되어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쓴 돈이 400페소로 불어난 걸 알았을 때 그는 놀라 기절할 뻔했다. 정신이 나갔던 건지 아니면 귀신에 홀렸던 건지, 에르도사인은 마치 그 돈을 탕진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것처럼 엉뚱한 데만 골라 돈을 써댔다.  예를 들어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과자를 사거나, 또 구경 한번 못 해본게 요리나 거북이 수프, 개구리 튀김 요리를 사 먹고 다녔다.  잘 차려입은 부자들만 가는 화려한 식당에 들어가 생전 처음 보는 비싼 술과 포도주를 마시기도 했다. 이처럼 별 생각 없이 먹고 마시는데 돈을 다 쓰다 보니 정작 내의나 구두, 넥타이 같은 생필품에는 신경 쓸 틈조차 없었다.  

- p 51 -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돈을 소비하는 에르도사인은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또 다시 회사 공금을 몰래 빼돌리는 범죄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에르도사인의 부인 이폴리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폐해에 시달리는 심각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폴리타에게도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헛된 공상과 과거 부유한 집안에서 일해야했던 하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꿈을 자주 꾸게 되는데 그녀는 자신이 속한 프롤레타리아 세계에 대해서 심한 질투와 좌절감을 느끼는 동시에 정반대의 세계인 부르주아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  

냄비, 화로, 깨끗한 나무 천장, 욕실의 거울, 그리고 빨간 전등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겐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중략) 

소녀들의 예쁜 몸을 감싸고 있던 가벼운 옷감과 그 위에 수놓인 자수, 그리고 리본 ...  자신이 똑같은 돈을 주고 산다 해도 그건 저 아이들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일 것만 같았다. 이처럼 자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과 잠시나마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중략) 

정말로 평생 하녀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제 평생을 하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옥죄고 있는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 p 324 -   

     

 

  광기의 시대를 정확히 예견하다  

로베르토 아를트는 <7인의 미치광이>의 후속편격으로 1931년에는 <화염 방사기>(원제: Los Ianzallamas) 를 발표한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드려는 일곱 명의 미치광이들의 밑도 끝도 없는 여정의 결과는 속편인 <화염 방사기>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후속편은 국내에서 번역 소개되지 않았다.  점성술사가 바라는 미래의 사회는 결국에는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할 유토피아일뿐이다.  자신들이 꿈꾸왔던 사회가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나서야 더 미쳐버리는건 아닌지 소설의 결말이 무척 궁금하기만 하다. 

이 한 권의 소설로 가지고 광인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지만 로베르토 아를트는 근대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모순과 수많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생긴 병리적 현상들이 만들어낸 광기의 시대를 적나라하게 묘사했으며 거기에다가 이로 인해 겪게 될 고국의 미래상을 적확하게 예견하고 있다. 

근대 아르헨티나가 겪었던 병리적 현상이란 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회적 과정에서 비롯된 정신분열증이다.  특히, 에르도사인과 점성술사는 정신분열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심각한 증상을 보여주고 있다.  

에르도사인은 수차례 공금을 횡령하는 사회적 일탈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자신에게 닥치게 될 운명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고능력조차 마비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다보니 에르도사인에게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정서적으로 둔화되어 있으며 죄책감마저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한 삶을 타개할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구원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삶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유일한 방법에는 자신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발명 실력이다.  에르도사인은 자신이 발명한 ' 구리 장미 ' 가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 성공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에르도사인이 바라고 있는 ' 희망적인 삶 ' 은 현실접촉이 완전히 상실된 나머지 생기게 된 잘못된 신념에 불과하다.

자신 스스로 ' 미치광이의 매니저 ' 로 자처하는 연금술사의 정신상태 역시 심각하다. 그는 열변을 토하면서 자신이 계획한 미래의 청사진을 그럴싸하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온갖 이데올로기가 범벅이 된 혼란스럽고 비합리적인 공상일뿐이다.  자본과 산업의 시대를 주창하면서도 때로는 파시스트, 사회주의자처럼 말하다가 간혹 군군주의자로 변신하기도 한다.  점성술사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초인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의 지배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맨쉬(Übermensch) 사상마저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하면 위대한 사람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설 속 미친 점성술사의 예언(?)은 로베르토 아를트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뒤에 그의 고국에서 실현되었다.    

 

 


후안 페론 (1895~1974) 


1946년, 후안 페론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9년 동안 독재정치를 단행하였다.  그는  언론 ·보도의 자유를 탄압하였으며 강력한 중앙집중화된 정부와 권위주의로 상징되는 ' 페론주의(Peronismo) ' 을 탄생시켰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외국인 소유의 자본 회사들을 국유화시키고 공업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오늘날에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쇠퇴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페론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파시스트였으며 페론 역시 무솔리니를 동경했음을 알 수 있듯이 페론주의를 파시즘의 일종으로 정의내리기도 한다.   

여전히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는 후안 페론과 그의 영부인 에바 페론(에비타)아르헨티나의 영웅으로 신적인 존재로 기억하고 있다. 독재정치로 인한 반발로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를 피해 잠깐 망명의 시기도 있었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망명한 영웅을 그리워하였다. 결국 영웅은 국민들의 기대에 힙입어 망명한지 1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재집권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후안 페론의 업적에 대해서 서로 엇갈린 평가로 나뉘어져 있지만 집권 당시 막강한 권력을 앞세워 독재정권 체제를 유지했다는 점에서는 후세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로베르토 아를트가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했다고해서 그의 문학이 평가받아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 특유의 파시즘인 페론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근대화로 상징되는 사상의 쓰나미을 목격한 아르헨티나 대중과 지식인들은 국민적 좌절감, 심리적 열등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적 혼란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계급적 불균형은 대중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민주화의 기반을 잠식시켰으며 대신 국가를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지배자의 등장을 열망하였다.  

로베르토 아를트는 기성 문단을 주름 잡았던 동시대 아르헨티나 작가와는 다르게 썩어 곪은채 무관심으로 방치되고 있었던 고국의 암울한 사회적 실상, 결국에는 정신분열증을 야기할 정도로 극도로 혼란스러원 광기의 시대를 초래하게 될 사회적 원인을 그가 유일하게, 그것도 정확히 포착해낸 것뿐이다. 이 점이야말로 로베르토 아를트의 문학을 오늘날 재평가해야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P.S>

국내에서 이 작가의 인증샷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7인의 미치광이> 이 책 한 권뿐이다. 인증샷을 찾기 위해서  내가 즐겨찾는 몇 개의 국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작가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아를트의 인증샷 그리고 작가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수준과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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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도 2011-02-06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오, 굉장히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 ^^왜 그들은 미쳐버릴수밖에 없었는가!

cyrus 2011-02-07 09:04   좋아요 0 | URL
내용은 읽어볼만한데 처음 읽어볼 땐 쉽지가 않았어요.
이 소설 후속편이 번역되지 않아서 결말이 어중간하게 끝나버려서
아쉬웠습니다.

2011-02-06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2-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하면 이런 리뷰를 쓸 수 있는겁니까, 사이러스님?
으아, 에바 페론의 이야기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거기도 근대화의 물결에 엄청 시끄러웠군요. 하기사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그렇죠. 그렇게 한걸음씩 나아간다고 믿고 싶습니다. ^^

아르헨티나 그 시대의 흐름까지 잘 알게 되네요. 라틴 문학이 생각보다 넓고 깊더라구요. 우리에게는 워낙 생소하긴 하지만 말이죠. 저 역시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라틴권 책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던데....... 여하간 멋지십니다~

cyrus 2011-02-07 19:47   좋아요 0 | URL
저는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최근에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를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라틴 문학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지게 되더라구요.
사실, 이 소설 해설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 이론이 언급되고 있어서
다 읽어도 이해하는데 힘들었어요 ^^;; 그나마 생각했던걸
억지로 끄적거려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꽃도둑 2011-02-07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설 연휴 잘 보냈어요?
작가 로베르트 아를트 저도 처음 듣는 작가네요.
왠만한 작가는 라틴문학집으로 읽은 기억이 나는데....
혹, 지금 우물 파고 계신가요?... 깊게 파려면 넓게부터 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듯~
정말 다양한 책읽기네요..브러워요,,ㅡ.ㅡ
덕분에 좋은 정보 많이 얻고 갑니다~~^^

cyrus 2011-02-07 19:49   좋아요 0 | URL
그런 의도는 아닌데 이상하게 요즘에는 라틴 문학에 끌리게 되네요.^^
이 책 읽고나니깐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이 읽고 싶어지더군요.

아이리시스 2011-02-0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하면 이런 리뷰를 쓸 수 있는 겁니까, 시루스님?
한 권 읽는 시간이 얼마쯤 걸리시는 겁니까, 시루스님?
리뷰쓰는데는요?,ㅋㅋㅋ

cyrus 2011-02-07 19:51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한 권 읽는데 1주일 걸렸어요..^^;;
이 책 이번 주 독서모임 선정도서인데 저 말고도 이 책을 읽는데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다행히 이번 설 연휴 집에서 보내게 되어서 1주일동안
이 책 한 권 읽느라 고생했어요^^;;

비로그인 2011-02-0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연결의 책읽기에 관한 글이어서 처음 보는 소설이지만 왠지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소설에서 공간이 막 바뀌는 것처럼 정신이 나른해지지 않아서 더욱 더 관심을 갖게 하는 cyrus님 리뷰라는 생각도 들고요.

저 본문 중의 저자들은 눈에 익기도 하지만 로베르토 아를트라는 작가는 처음이거니와 님이 아니었으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리뷰 읽다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가네요 ~ ^^

cyrus 2011-02-07 22:48   좋아요 0 | URL
이번 글 좀 길었죠?? 정말 오랜만에 썼는데 길어져버렸네요 ^^;;
순전히 작품을 읽다가 느낀 생각들을 막 적다보니 원래 소설에서
가지고 있는 주제나 내용을 살짝 왜곡했지 않았나 걱정도 했었어요.
소설 해설 내용은 마르크스 자본 이론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거든요.
후속작이 국내에서 번역되지 않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감은빛 2011-02-0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이거 굉장한 글이군요!
지금은 다 읽을 수 없으니.
일단 추천부터 눌러놓고, 밤에 돌아와서 다시 읽어야겠어요.

cyrus 2011-02-08 20:28   좋아요 0 | URL
제목만 거창할뿐 내용은 그저 그렇답니다. ^^;;
하지만 이 소설,, 읽어보시면 내용이 황당하면서도 재미있을겁니다.
이 책 덕분에 새로운 라틴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다이조부 2011-02-08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뭔가요? ㅋㅋ 같은 책을 동시에 읽는 입장에서 먼저 선수쳐서 이렇게 감상문을

적으면 나랑 비교되잖아요 ㅎㅎㅎ

cyrus 2011-02-08 20:30   좋아요 0 | URL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
요즘 나름(?) 복학 준비한다고 바빠서
카페나 블로그에도 포스팅할 시간도 없을거 같아서 후닥 쓰고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