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즐리 또는 세기말의 풍경
박창석 지음 / 한길아트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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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자신의 시를 악의 꽃이라 불렀다. 나는 너의 그림을 죄의 꽃이라 부를 것이다.  

- 비어즐리의 일러스트에 대한 오스카 와일드의 말 -

  

  

 

  세기말의 일러스트레이션, 비어즐리 

   

 


[클라이막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 일러스트, 1894년

    

어느 여인이 목이 잘린 얼굴을 든 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여인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머리를 무서워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다. 잘린 머리 앞에서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기 마련인데 이 여인은 무섭지 않은가 보다.  오히려 잘려 나간 머리를 든 채 공중부양을 하면서 그윽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여인의 표정이 더 무섭고 기괴하게 느껴진다. 

영국의 유명 일러스트레이션 오브리 비어즐리는 성서 속의 인물을 퇴폐적인 팜 파탈(femme fatal)로 묘사하고 있다. 헤롯 왕의 딸인 살로메가 자신이 사랑했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유하게 되면서 키스를 하려고 하는 장면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의 일러스트를 담당한 비어즐리의 파격적인 묘사는 희곡 출판 판매 처분까지 내릴 정도로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흑백의 강렬한 대조와 섬세한 선묘와의 조화가 이루고 있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형태묘사는 퇴폐적 분위기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당시 사회를 주름 잡고 있던 부르주아와 보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단지 사회를 문란하게 만드는 퇴폐적인 그림이라고 낙인이 찍히게 된다.   

비어즐리의 <살로메>는 인간의 이성과 상반되는 광기 어린 치명적인 사랑을 잔혹하게 그려냄으로써 비어즐리라는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한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지만 그 단지 이 작품 때문에 비어즐리가 기성 사회로부터 비난의 뭇매를 맞아야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비어즐리는 <살로메> 일러스트보다 좀 더 퇴폐적이면서도 더 야한 그림들을 그려냈다. 일러스트 묘사의 선정성 때문에 여기서 소개하기에는 그렇지만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라시스트라타>에 수록된 일러스트들은 현대 성인만화를 보는듯한 노골적이고 거침 없는 성적 묘사로 가득하다.  원작 속에서 여성의 권리 신장과 반전(反戰)을 주장하고 있는 의로운 여주인공인 라시스트라타는 비어즐리는 한순간에 음탕한 여인으로 바꿔 놓았다. <라시스트라타> 일러스트에 나오는 여성 인물들은 가슴은 물론 음부까지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으며 남성들의 성기 역시 과장되게 그려지고 있다.   

만약에 비어즐리의 일러스트가 우리나라에 나오게 된다면 선정성 시비 때문에 ' 제 2의 이현세 ' 논란이 재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퇴폐적인 일러스트를 수록하고 있었던 문학잡지 <옐로 북>은 세상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채 폐간될 정도로 비어즐리과 그의 일러스트는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는 주범으로 낙인 찍혀야 했다. 반면에 유미주의 예술가들은 비어즐리의 일러스트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들에게는 에로틱하고 퇴폐적인 비어즐리의 일러스트가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으로 보였을 것이다.   비어즐리의 예술성을 ' 죄의 꽃 ' 이라고 비유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와 비어즐리, 세기말의 두 예술가의 얕궂은 운명   

 

 


     오스카 와일드 (1854~1900)     오브리 비어즐리 (1872~1898)    

   

국내에 비어즐리의 일러스트와 그의 생애를 볼 수 있는 책은 <비어즐리 또는 세기말의 풍경>이 유일한 텍스트이다.  비어즐리의 파격적인 일러스트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시각적인 충격을 주고 있지만 오스카 와일드와의 관계 역시 비어즐리의 생애를 논할 때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이다.

오브리 비어즐리와 오스카 와일드,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지향하고 있는 심미주의적 가치라는 하나의 끈을 통해서 예술적인 교류 차원의 친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비어즐리 덕분에 오스카 와일드는 오늘날에도 유미주의적 문학의 대명사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우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비어즐리가 본격적으로 잡지 <옐로북>을 통해서 자신의 예술성을 담아낸 일러스트를 창작하는데 몰두를 하게 되면서부터 와일드와의 관계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와일드의 동성애적 스캔들로 인해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의 일러스트를 담당했던 비어즐리마저 동성애 혐의가 짙은 의혹을 받게 된다.      

 


 

비어즐리가 그린 오스카 와일드의 캐리커처, 1893년 

박창석, <비어즐리 또는 세기말의 풍경> p 26 

 

오스카 와일드가 비어즐리를 동성애적인 감정을 느꼈는지 오늘날에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와일드와 비어즐리가 결정적으로 불화를 초래하게 된 이유는 여러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동성애자인 와일드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자신에 대한 비어즐리의 사랑이 식어버렸음을 알게 된 후부터 생긴 질투 때문에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독창적인 유미주의적 예술성을 동경하는 나머지 질투로 바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옐로북>이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와일드와 비어즐리의 관계를 한순간에 갈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  

 


 

<옐로북> 창간호 표지(1894년 4월),  p 38 



비어즐리의 <옐로 북>에서의 활동은 <살로메> 일러스트보다 더 대중적인 명성을 안겨 주었으며 오늘날에도 <옐로 북>에 수록된 일러스트가 더 예술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문학가 E.F. 벤슨은  " 비어즐리가 없는 <옐로 북>은 무미건조하다 " 라고 평가내릴 정도로 <옐로 북>은 비어즐리 단 한 사람 덕분에 세기말 퇴폐문학의 산물로 인정받고 있다. 이토록 비어즐리에게 <옐로 북>은 자신의 퇴폐적인 예술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자유로운 표현의 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살로메>와 오스카 와일드의 생애에도 비어즐리가 없었다면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어즐리의 생애 역시 무미건조한 삶이 아닌 파격적인 삶을 살다 간 세기말이 낳은 기인이었다.  

비어즐리는 자신의 일러스트에 벌거벗은 누이를 그릴 정도로 누이에 대한 깊은 애착심을 느꼈는데 결국에는 누이와 근친상간이라는 극단적인 관계까기 맺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의 동성애 스캔들만큼 비어즐리의 근친상간 스캔들도 영국 사회에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비어즐리는 기성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으며 ' 패륜적 댄디 ' 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비어즐리와 와일드의 삶에서 무척 흥미로운 사실은 두 명 다 기성 사회로부터 배척당한 아웃사이더였으며 동성애와 근친상간이라는 일탈의 사랑으로 인해 스캔들을 겪었다는 점에서 서로 닯은 점이 있다.   

그리고 더 신기로운 사실이 또 있다. 와일드는 동성애 스캔들로 인해서 프랑스 남부지방에 위치하는 망통이라는 곳으로 추방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비어즐리는 결핵 때문에 요양 차 망통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지역에 있었지만 이미 앙숙이 된 사이였으니 서로 왕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죽기 전에 가톨릭에 심취했다고 하는데 이렇듯 두 사람의 운명에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예술성으로 가득한 비어즐리의 일러스트   

비어즐리는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였지만 당시 활동하고 있었던 라파엘 전파에드워드 번 존스 그리고 유럽으로 전해내려 온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자신만의 섬세하고 장식적인 양식을 확립하였다. 

비어즐리가 활동하던 세기말 유럽에는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적인 취향을 즐기고 선호하는 자포니즘(Japonism)이 유행하였는데 많은 화가들 가운데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그 영향은 매우 컸다. 비어즐리 역시 자포니즘 유행을 지나칠 수 없었다.   

 

 


호소다 <A beauty in the snow>, 일본 우키요에 
 

 


 

[공작무늬 치마] 중 일부, <살로메> 일러스트, 1894년 

p 84 

  

<살로메> 일러스트 중의 하나인 [공작무늬 치마]에서 살로메가 입고 있는 화려한 옷이 일본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연상시키고 있다. 게다가 그녀의 머리에는 장식된 휘황찬란한 공작 깃털은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일러스트가 독창적인 것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캐릭터의 이미지가 아닌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성격과 예술 양식이 부합된 캐릭터로 재창조한다는 점이다.  비어즐리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작품의 일러스트에 참여할 정도로 나름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성경 속에서 단 몇 줄도 언급 안 되는 헤롯 왕의 의붓딸을 비어즐리는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화려한 요부 살로메로 탈바꿈하였다.   

  


 

[숲 속의 알리바바] ,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일러스트, 1897년 

p 188

 

이뿐만 아니라 비어즐리는 유명한 문학 작품의 일러스트 작업에 참여했는데 요절함으로써 미완성으로 남게 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일러스트에서 또 한 번 그의 독창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 속 알리바바는 우리가 알고 있던 슬기롭고 의로운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뚱뚱한데다가 얼굴의 미소에는 간사함이 흘러 넘친다.  그리고 그의 모은 화려한 옷과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다.  비어즐리는 <아라비안 나이트> 속의 알리바바가 아닌 탐욕으로 가득찬 세기말 풍조에 걸맞는 19세기 말의 알리바바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검은 고양이], 1894년 

p 173

 

비어즐리가 사용하는 흑백 대조는 에드거 앨런 포의 공포소설 <검은 고양이>을 위한 그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애꾸눈 검은 고양이와 흰 색으로 처리된 여자의 대조는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지크프리트] ,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일러스트, 1892~93년 

p 180

 

이 일러스트는 비어즐리가 자신의 모든 예술 양식을 최대한 발휘한 작품이라고 강한 애착을 보였을 정도로 뚜렷한 흑백 대조 묘사뿐만 아니라 섬세한 선묘 그리고 자포니즘적인 영향까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의 일러스트에 가까운 형태가 구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에 알려져 있는 퇴폐적이고 음란한 일러스트가 아닌 온전히 예술성이 갖춰진 비어즐리의 몇 안 되는 작품이다. 

 

  

 

  고단한 삶, 잠시라도 잊게 해다오     

 

 


에두아르 마네 <압생트를 마시는 남자> 1859년

  

비어즐리가 요절하기 전에 남은 생의 에너지를 쏟아부어가면서 완성한 일러스트가 음란한 일러스트로 유명한 <라시스트라타>인데 벌거벗은 나체의 여자들이 즐비한 비어즐리의 일러스트만 보게 된다면 비어즐리를 ' 변태 일러스트 '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유럽 세기말에 활동한 악명 높은 성인 만화가로 평가한다는 것은 세기말을 대표하는 유행 사조인 유미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묘사하고 있는 에로티시즘은 세기말 사회의 화려한 이면만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세기말 유럽의 부르주아 계급의 이면에 숨겨진 퇴폐성과 변태성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퇴폐성은 결국에는 불확실한 미래와 냉혹한 자본주의로 가득찬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동경이 만들어낸 쾌락주의적 욕구인 것이다.  세기말을 살다간 수많은 예술가들은 매음굴을 들락날락거렸으며 독하기로 유명한 압생트(absinthe)를 즐겨 마시면서 삶의 고뇌를 감각적인 쾌락을 통해 잠시나마 잊으려고 하였다.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압생트를 ' 창조력에 도움이 되는 술 ' 로 알려지게 되면서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마시게 되면 환각 상태를 유발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독특한 일러스트를 만들어낸 비어즐리는 한 때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기도 했었는데 퇴폐적인 미에 대한 지나친 탐닉이 정신착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한 때 동지였던 오스카 와일드는 그의 일러스트를 압생트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는데 비어즐리에게 퇴폐적이면서도 음란한 일러스트는 기성 사회로부터 멸시를 받아야만했던 세상에 대한 고단함을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현실도피, 또는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압생트였다.    

이토록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비어즐리의 일러스트 속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열광했던 이유가 세기말이라는 이름 아래 암울한 사회에 잠시나마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그들만의 우울과 고독 때문인 것이다.  비어즐리의 일러스트를 먼저 보기 전에 비어즐리의 생애와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먼저 이해하고나서 그의 퇴폐적인 일러스트를 접하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세기말적 우울과 고독이 묻어나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S  

오스카 와일드나 아르누보 양식 혹은 비어즐리의 일러스트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며 국내에서 비어즐리의 일러스트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예술 관련 도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 책의 옥의 티는 오스카 와일드의 문학 작품에 대한 정보에 대해 살짝 미흡한 점이다. 저자가 만화 전공임에도 불구하고 오스카 와일드와 비어즐리와의 관계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공은 칭찬해줄만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 텍스트를 직접 읽어보지는 못한 거 같다. 


[춤의 대가] , <살로메> 일러스트, 1894년 

p 104
 

[춤의 대가]라는 <살로메>의 일러스트를 소개한 저자의 내용을 인용하면 , , ,  

쟁반 받침대를 일본판화의 실루엣 효가를 차용해 남근 모양의 실루엣으로 표현하였다.  (p 105) 

라는 문장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 쟁반 받침대 ' 는 텍스트를 읽지 않아서 생긴 오류의 내용이다.   즉, 일러스트에 있는 검고 기다란 형체는 쟁반 받침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오스카 와일드 작품선>(정영목 역)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크고 검은 팔, 사형 집행인의 팔이 우물에서 나온다. 손에 쥔 은 방패 위에 요카난(요한)의 머리가 있다.  (p 206) 

결국에는 일러스트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하자면 쟁반 받침대가 아니라 요한의 머리를 자른 사형 집행인이 내민 팔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면 먼저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를 먼저 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훨씬 비어즐리의 일러스트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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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3-0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안 할 수 없는 포스트군요. 흥미롭게, 누군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이,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비어즐리라는 이름 처음 들었는데, 많이 흥미가 생겼어요.^^

cyrus 2011-03-09 09:37   좋아요 0 | URL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이랑 이 책을 같이 읽어보면 더 재미있을겁니다.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08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르누보 양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비어즐리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들여다 본적은 없는것 같네요^^ 저에게 아주 유용한 포스트라 마음으로는 추천 열 번 했어요 ㅎㅎ

cyrus 2011-03-09 09:40   좋아요 0 | URL
아르누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한 내용이 없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국내에 비어즐리의 예술에 대해서 이 책만큼 상세하게 소개한 책은
없을거에요 ^^

아이리시스 2011-03-08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크핑크핑크핑크.................... 핑크표지예요, 제가 좋아하는.
근데 이건 좀 미친 핑크네요.
아르누보, 비어즐리........ 저도 배우고 갑니다.
살로메는 볼 때마다 후덜덜, 흑.

cyrus 2011-03-09 09:41   좋아요 0 | URL
지금은 저런 잔혹한 일러스트는 약과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놀랬을까요? ^^;;

양철나무꾼 2011-03-08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월터크레인이 그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그림책들을 보고 깜짝 놀랐던 게, 일본풍의 그림투성이어서 였어요.
여기서 '자포니즘'을 또 보게 되다니 반가운걸요~^^

cyrus 2011-03-09 09:43   좋아요 0 | URL
비어즐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직업도 나오지
않았을거 같아요. 그만큼 비어즈리가 일러스트의 선구자로서 평가받기도
하죠. ^^

굿바이 2011-03-08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즐리를 열심히 연구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 페이퍼를 보니 그 그림들이 생각납니다.
우키요에와 관련한 이야기들도 해주었는데 가물가물 하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1-03-09 09:44   좋아요 0 | URL
비어즐리에 대해서 열심히 연구하신 분이라면,, 전공이 예술 혹은
만화 분야쪽이겠네요. ^^

잘잘라 2011-03-0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300에 나오는 페르시아왕 볼 때 느낌하고 똑같아요.
알리바바 일러스트요.
위 아래 머리 잘린 그림보다 훠얼씬 징그럽단 느낌.. ㅡㅡ;;

cyrus 2011-03-09 09:45   좋아요 0 | URL
비어즐리의 일러스르를 보면 약간 과장되게 표현한게 많아요.
오히려 그렇게 표현하게 되니 그의 일러스트를 한 번 보게 되면
잘 잊혀지지 않은거 같습니다 ^^

마녀고양이 2011-03-08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즐리의 그림은 어쩐지 처절한데요.. 굉장히 처절해요.
압생트는 환각 물질이 강하게 있어서, 지금은 판매 금지 술이죠.
고흐와 같은 동시대 예술인의 애호술이었다 하죠. 비어즐리의 그림은
딱 그런 느낌이네요........ 슬퍼요.

야하다 하니 생각나는데,
데카메론을 고전이라 읽었을 때 당혹감과
'SXE, 잃어버린 자유, 춘화로 읽는 성의 역사'에 담긴 그림을 숨어서 읽던
기억이 납니다.

cyrus 2011-03-09 09:48   좋아요 0 | URL
어떻게 보면 비어즐리도 와일드 못지 않게 불우하게 살다갔죠.
생전에 자신의 작품들은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고요,,
비어즐리와 같이 당시 사회로부터도 무시당한 세기말의
아웃사이더 예술가들이 압생트나 매음굴에 집착하는 이유가
불우한 삶을 어떻게든 잊기 위한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생각되네요.

카스피 2011-03-08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생기는 리뷰입니당^^

cyrus 2011-03-09 09:50   좋아요 0 | URL
이 책에는 제가 포스팅한거 이외에도
다양한 비어즐리의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답니다. 그런데 좀 야한게
많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3-09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살로메도 군인들의 방패에 눌려 죽지요...요카난의 피맛을 본 후에...
 
아저씨의 꿈 열린책들 세계문학 12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종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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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코디미로군요! " 

- 도스또예프스끼 <아저씨의 꿈>중에서,  p 216 -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소설  

도스또예프스끼의 유명한 대표작들을 열거하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죄와 벌><백치><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다.  이들 작품들은 도스또예프스끼의 문학 인생 중 후기를 대표하는 불후의 명작이면서도 인간 존재의 근본 문제, 신, 이념 등 그리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읽는데 쉽지가 않다. 

하지만 <아저씨의 꿈>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도스또예프스끼적인 문학 세계과 상반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도스또예프스끼가 기나긴 시베이라 유형 생활을 끝마치고 난 후에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다시 하기 위해서 썼던 것인데  이 시기부터가 도스또예프스끼 문학 인생에서 과도기에 해당한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문학을 거대한 산으로 표현하자면 이제 막 중반에 이르렀을뿐이다. <죄와 벌><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라는 험한 산봉우리에 등정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지금까지 읽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들 중에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것이 바로 이 소설이다.  소설 속의 사건 전개가 한 편의 코믹한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던 중후한 도스또예프스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분위기의 소설이라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 아저씨 ' 공작 노인의 꿈, ' 어머니 ' 마리야의 꿈

세속적이면서도 허영심으로 가득한 귀족 부인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자신의 딸인 지나를 부유하면서도 노화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공작 노인에게 시집을 보내기 위해서 계략을 꾸민다는 에피소드이다.  자신의 딸에게는 할아버지뻘이 되는 늙은 공작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 마리야의 계략에는 자신의 부귀영달을 누리려고 하는 속셈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지나는 이미 어머니의 속셈을 눈치를 채고 공작 노인과의 결혼을 반대하였다. 사실 그녀는 폐평으로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가난한 가정교사를 짝사랑하고 있었으며 아직까지도 마음 속에는 가정교사를 향한 사랑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누가 늙어빠진 영감쟁이와 결혼을 하겠는가?  

특히 소설 속 공작 노인은 과장될 정도로 치매기 가득한 희화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이 왕년에 나폴레옹과 시인 바이런, 음악가 베토벤을 만났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만났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횡설수설하는 코믹한 캐릭터이다.

공작 노인과 딸의 결혼이 성사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여생의 행로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마리야는 딸의 완고한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공작과의 결혼이야말로 부와 명예로 가득한 삶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식으로 간곡하게 사정을 한다.    

그 당시 유럽 사회에서는 상류층으로 진출하여 부유한 삶을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는 상류층 집안과의 혼사를 맺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중대한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지나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공작 노인과 청혼을 하게 된다.  자신도 공작 노인과의 결혼이야말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그런 지나를 사모하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는데 젊은 관리 모즈글랴꼬프는 한 때 지나에게 고백을 했다가 퇴짜 맞은,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연히 마리야의 계략을 알게 된 모즈글랴꼬프는 지나와 늙은 공작과의 결혼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서 공작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 결혼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지나의 청혼은 한낱 꿈 속에 있었던 일이라는 식으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공작 노인에게 늘어놓는다.    

치매기가 있는 공작 노인은 모즈글랴꼬프의 어설프게 짝이 없는 속임수를 곧이 곧대로 믿어버린다.  결국에는 모즈글랴꼬프의 계략 때문에 지나와 공작 노인의 결혼은 파기되었고 마리야의 계락마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이 기회에 틈타 모즈글랴꼬프는 다시 한 번 지나에게 고백을 하게 되지만 도리어 또 한 번 실연을 당하게 된다.  지나는 이전부터 쭉 모조글랴꼬프의 계락을 이미 눈치 채고 있었으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비겁한 속임수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청혼을 거절한다.  

' 사랑 ' 이라는 이름으로 둘러싼 간계가 실타래처럼 꼬여 버리는 바람에 아리따운 처녀와의 사랑을 꿈꾸었던 공작 노인 ' 아저씨 ' 의 꿈은 산산히 부서지게 되었고 화려한 여생의 앞날을 고대하던 마리야의 장밋빛 꿈마저도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모즈글랴꼬프는 자신이 만든 속임수로 인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되고 말았다.     

 

 

  최후에 웃는 자는 마리야와 지나  

 

 


SBS 주말 드라마 <웃어요 엄마>에서 출연중인 이미숙 씨  

자식의 성공을 통해서 자신의 안락한 행복을 누리려고 하는  

어머니 조복희로 등장하고 있다. 

 

자신의 딸을 통해서 사교계 상류층으로서의 명성과 부귀를 통해 안락한 삶을 누리고 싶어하는 마리야의 모습은 S 방송국 주말 드라마 <웃어요 엄마>에 등장하고 있는 조복희(이미숙 분)와 유사하다.    

조복희는 자신의 딸인 신달래(강민경 분)를 무명 연예인에서 톱 스타 연예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거수일투족 딸을 감시하고 최대한 자신의 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제일그룹 사장인 구현세(박성민 분)과 정략결혼을 시키려고까지 한다.  연예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야하는 말 못하는 정신적 고통과 오직 명예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억지 결혼에 신물이 난 신달래는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드라마 초반부터 딸의 출세에 눈이 먼 나머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끝없이 다그쳤던 조복희는 후반기에 이르러면서 자신의 딸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를 위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는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진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과연 드라마 제목처럼 조복희는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마지막에는 웃을 수 있을지 결말을 끝까지 지켜봐야하지만 소설 속 마리야는 결혼 파기라는 굴욕을 깨끗이 씻어내고 웃을 수 있었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때문에 이수일과의 사랑을 파기시켜버린 심순애처럼 사랑의 참된 가치를 강조하였던 지나도 정신적인 교감보다 물질적 가치가 중요시되는 사랑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지나는 예전에 연분을 맺은 가난한 가정교사이 아닌, 자신에게 두 번이나 고백을 한 모즈글랴꼬프도 아닌, 고위직 장군의 아내가 되고 만다.  

결말에는 마리야가 어떻게 되었는지 상세한 속사정을 알 수 없지만 지나가 고위직 장군과 결혼을 했으니 마리야는 마음 속으로 웃었을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상류층 인사와의 혼사가 이루어졌으니 이제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으니까.  

이 소설에서는 딸의 결혼에 집착하며 엄격하기만한 마리야와 반대로 우스꽝스러운 노인으로 등장하는 공작의 등장이 돋보이지만 지나라는 인물 역시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소설 전반부에서는 사랑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여성으로 등장하지만 결말에서는 고위직 장군과 결혼함으로써 세속적인 사랑을 선택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사랑에 실패를 하게 된 공작 노인과 모즈글랴꼬프의 모습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결국 이 소설에서 최후에 웃는 자는 마리야와 지나, 두 모녀인 셈이다.  

 

 

  사랑보다는 다이아몬드

이 소설은 얼핏 도스또예프스끼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의 전개와 유사하다. <가난한 사람들>에 등장하는 가난한 하급관리인 마까르 제부쉬낀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가 결정적으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이유가 물질적인 안정을 영위할 수 있는 잘 사는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이 소설에서도 바르바라는 마까르보다 더 잘 사는 부유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서신을 나누면서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애틋한 사랑은 슬픈 결말로 끝나게 된다.   

앞에서도 잠깐 심순애를 언급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바르바라와 <아저씨의 꿈>의 지나, 이 세 여인의 공통점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부유한 권세가와 결혼을 하고마는 봉건적인 사회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플라토닉 러브는 엄격한 가족 제도와 명예 그리고 부(副)가 만들어낸 상류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인 장애물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매도할 수 없다. 이 여성들에게는 견호하게 세워진 사회적인 장애물을 뛰어 넘으려고 하는 의지가 미약했고 지금도 그 장애물은 무너지지 않았다.  

사랑이 1순위인 결혼보다는 더 잘 사는 것에 1순위로 두고 있는 취집을 선호하는 오늘날의 결혼 세태와 월평균 수입이 400만원이 넘어야 행복한 결혼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20, 30대 남녀의 결혼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도 사랑으로만 밥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랫동안 연인의 끈을 이어가면서도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가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순애는 김중배와 결혼 이후에도 이수일에 대한 사랑을 못 잊어서 괴로워하는데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속에 사랑에 실패하는 여성들은 이상하게도 사랑의 후유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묘사가 없다. 반면에 남자들이 더 고통에 시달린다. <가난한 사람들>의 마까르는 부당한 현실 때문에 이루어진 사랑의 실패 앞에서 괴로워하고 <아저씨의 꿈>의 모즈글랴꼬프는 고위직 장군의 아내가 된 지나의 모습을 보면서 억지로 인생의 쓴 맛을 삼켜내고 있다.   

과연 지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생애에서 첫 사랑은 가난한 가정교사였다.  마음이 여린 그녀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병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다 간 가정교사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과 행복으로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 앞에서 갈등을 하고 괴로워하는 여성의 고뇌를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 한 편을 코믹한 드라마가 아닌 정말로 진지하게, 도스또예프스끼가 마음 먹고 제대로 썼다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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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3-07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이아몬드보다 사랑이요^^

cyrus 2011-03-07 22:02   좋아요 0 | URL
저도 명예, 부보다는 사랑이 우선이에요. ^^

stella.K 2011-03-07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옙스키가 코믹소설도 썼군요.
그 할배는 항상 심각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물질만능의 사회일수록 사랑을 믿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랑은 언제든 식을 수 있지만 물질은 영원하다 내지는 오래 간다고
보잖아요. 이것저것을 다 떠나서 빨리 결혼해서 자손을 번식시키고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다 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큭~

cyrus 2011-03-07 22:04   좋아요 0 | URL
전에 다른 소설들은 심각한 주제에다가 약간은 지루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 중편인 것도
있구요 ^^

마녀고양이 2011-03-07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남자라서 그런걸까요?
여자는 사랑에 목 매지 않지만, 남자는 진정한 낭만을 안다는 듯한. ^^
사회를 뛰어넘기란 쉽지 않죠... 그리고 인간의 본질은 비슷한거 같아요.

사이러스님, 고전 참 많이 읽으시네요. 감탄스러워요.

cyrus 2011-03-07 22:04   좋아요 0 | URL
고전도 읽어보면 무척 재미있는게 많아요. 단, 니체 같은
철학고전은 제외에요 ^^;;

노이에자이트 2011-03-0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의 해학이 가장 두드러진 소설이 또 몇 편 있는데 단편으로 '악어', 장편으로 <스쩨빤치꼬보 마을 이야기>가 있습니다.도스토예프스키 하면 칙칙하다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읽어보면 괜찮을 작품이죠.

cyrus 2011-03-07 22:06   좋아요 0 | URL
<아저씨의 꿈>이 발표되고 난 후 다음 소설이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이더군요, 지금 연도순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고 있는데 다음 소설도
무척 기대가 됩니다.

아이리시스 2011-03-08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죄와벌>도 못 읽어가지고~~~~~~~~~~~~~ 아 부끄러워, 부끄러워.
이건 그것보다 좀 얇나요? 물론, 두꺼워도 더 빨리 읽히는 내용이 있다는 걸 잘 알지만.^^
 
<반자본발전사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반자본 발전사전 - 자본주의의 세계화 흐름을 뒤집는 19가지 개념
볼프강 작스 외 지음, 이희재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 왕이 만난 두 명의 백성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 <어린 왕>을 보게 되면 화려한 세상의 이면 뒤에 숨겨진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어린 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 안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력자로 상징되는 존재가 바로  ' 왕 ' 이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이 어린 왕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왕이라는 인식과 상반되고 있다.  

어린 왕은 이상한 꿈들을 꾸게 되는데 그 증 첫번째 꿈에서 초라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 직공을 만나게 된다. 어린 왕은 직공에게 말을 걸게 되는데 직공은 자신이 처한 불우한 상황을 탄식조로 늘어 놓기 시작한다.  

 

" 전쟁터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노예로 삼고, 전쟁이 없는 곳에서는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노예로 만들지.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오. 부자들은 우리에게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돈을 주지. 우리는 하루 종일 그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은 금고에 금을 쌓아 올리고 있소.  [.....]  

포도를 밟아 으깨는 것은 우리인데 정작 그 즙을 포도주로 마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고, 옥수수를 심고 거두는 것은 우리인데 정작 우리 식탁은 텅 비어 있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있다오. 사람들은 우리를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는 노예나 다름없소. " 

- 오스카 와일드 [어린 왕] 중에서, p 108, <별에서 온 아이들>, 펭귄클래식코리아 -

 

꿈 속에서 만난 직공의 말을 들은 왕은 자신이 지금까지 꿨던 꿈 속의 내용들이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 사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이한 내용의 꿈을 꾸고 나서부터 왕은 파격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몸에 두루고 있는 화려한 의상을 벗어 던지고 과거에 왕이 되기 전에 염소지기 시절에 입었던 남루한 옷을 입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의 머리 위에 씌어 있던 황금 왕관 대신에 들장미가지로 만든 왕관을 씌웠던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의 말 못하는 고통을 공감하기 위한 과감한 시도였다. 

이러한 왕의 파격적인 복장을 본 신하와 귀족들은 처음에는 자신이 섬기는 왕인줄 몰랐거나 혹은 일부는 왕의 행동에 대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거지나 다름없는 서민의 옷에다가 장미가지 왕관을 씌우고 있는 왕의 모습에 몇 몇 신화들은 수치감을 느끼기도 한다. 국가의 권력을 상징했던 왕이 돌연 가난한 거지 행세를 하는 모습에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신화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왕은 의상은 변했어도 자신이야말로 이 나라를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라는 위엄이 어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왕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던 수많은 군중 속의 한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전하, 전하께서는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의 호사스러움 덕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시옵니까?  전하의 허영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으며, 전하의 부도덕함 때문에 우리가 빵을 얻을 수 있는 것이옵니다.  가혹한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도 힘들지만, 봉사할 주인이 없는 것은 훨씬 더 힘든 일이옵니다. " 

- 오스카 와일드 [어린 왕] 중에서, p 118,  <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코리아 -

 

남자가 어린 왕에게 한 말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백성들에게 어린 왕이라는 존재는 강력한 힘을을 가진 권력자라는 의미를 넘어서 화려한 부(副)의 상징이다. 부유한 자들 덕분에 가난한 자신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반대로는 자신들이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가 ' 강한 자 ' 들의 존재 때문이라는 원망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자신들과 같은 ' 약한 자 ' 들은 그들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는 정신적 무력감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자들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부유한 자를 향한 가난한 자들의 이중적인 시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올리버 트위스트> (2005년 작)  

오스카 와일드는 어린 왕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서 영국 전역에서 불어닥쳤던 산업 혁명의 여파가 여전히 감돌고 있었던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기계의 등장으로 공업화 사회로 이행되면서 자본의 위력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자본을 어느 정도 소유하느냐에 따라서 부유한 자(부르주아)그렇지 못한 자(프롤레타리아)계급이라는 경계선으로 나눠지게 되었으며 이들 간의 대립과 격차는 날로 심해져만 갔다. 특히 프롤레타리아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은 궁핍한 환경 속에서 불만족스러운 처우를 받으면서까지 일을 해야만했으며 그렇게 일을 해도 빈곤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이 가난한 서민들이 바라는 꿈이였지만 자신들 앞에서 떵떵거리며 다니는 부유한 자들의 삶을 내심 동경하고 있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대중적인 인가를 한 몸에 받았던 찰스 디킨스<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동명 주인공처럼 서민들은 선량한 부자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은근히 바랬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데델라가 되려는 꿈은 실제 영국 사회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지기에는 힘들었지만)  그리고 와일드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군중 속의 남자처럼 부유한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가 빅토리아 시대 사회상에서 볼 수 있는 양면성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볼 줄 아는 남다른 혜안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느끼게 되는 더 놀라운 사실은 와일드가 바라 본 영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 흔한 현상이며 고질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부유한 자들끼리 누리는 부당한 삶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나름 부유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명품을 고집하며 언젠가 자신도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될 수 있다는 헛된 꿈 때문에 가능성 없는 희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부유한 상류층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능력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강대국이 되는 방법  

자본주의의 꽃이 만발했던 유럽의 산업혁명 시기에 부르주아 기득권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자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산업 육성의 발전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 계층 간의 극심한 빈부 격차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부르주아 지배층들은 산업 발전이 가져다주는 장밋빛 희망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을 향한 프롤레타리아의 불만을 쉽게 잠재우려고 했다.  지금보다 더 경제가 좋아지며 빈곤층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그리고 산업 발전이야말로 곧 강대국이라는 단순화된 도식도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강대국으로 갈 수 있는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제국 열강들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식민지 획득을 통해서 자원의 수탈이나 착취를 노골적으로 행하였다. 이들에게는 어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든지간에  ' 발전과 개발 ' 만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부도 축적했겠다 식민지 개발을 통해서 얻은 부를 통해서 ' 강한 나라 ' 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인해 주춤했었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강대국으로써 보이지 않는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덕분에 경제적인 호황을 누리는 동시에 세계 패권의 지휘봉마저 잡게 되었다.  

식민지주의가 빛바랜 1949년 1월 20일에도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 날부터 본격적으로 발전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선포하기에 이르게 되며 그의 선포문에는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자신들 스스로 강대국이 되었다는마냥 자만심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과학 진보와 산업 발달의 수혜가 저발전 지역의 향상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새롭고 과감한 사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해외에서 이익을 수탈하는 낡은 제국주의는 우리 계획 안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구상하는 것은 공정한 민주적 거래에 토대를 둔 발전 사업입니다.  

- <반자본 발전사전> p 36 -

  

오늘날에는 중국의 등장으로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누리고 있지 못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세계화의 유행 속에서도 세계를 향한 미국의 패권은 여전하다.  거기에다가 중국은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패권을 가진 나라로 성장하게 되었고 그 뒤를 위어 인도, 일본 등의 약진도 두드러지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 인도, 일본 등과 같은 나라들도 세계화로 이어지는 경제 발전과 개발을 강조하고 있으며 작년 G20 정상회의 개최국인 한국도 강대국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발전 비관론자들이 보는 ' 발전과 개발 '  

그러나 발전 비관론자들은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가 더 좋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도약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세계의 빈곤만 더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수백년동안 지속된 ' 공업 문명 = 강대국 ' 이라는 자본주의적 도식 때문에다 다원적이었던 세계의 가치관이 점점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개발 도상국들은 자신의 수준에 걸맞기 않게 강대국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적 도식을 억지로 도입하다보니 도리어 빈곤 문제를 가속화하게 만든 역효과만 불러 일으켰으며 개발 도상국과 선진국 간의 경제적 수준의 격차는 더 이상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발전과 개발 ' 을 부르짖었던 강대국식 자본주의의 탄생 배경과 그 문제점을 총 19명의 발전 비관론자들이 모여 총 19개의 항목으로 분석하고 있다.  발전 비관론자들의 주장과 분석을 엮은 볼프강 작스에서부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의 제도화를 비판했던 故 이반 일리히,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 반다나 시바까지 <반 자본 발전사전> 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 안티(Anti) ' 발전론자들의 향연인 것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발전과 개발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낱낱이 자본주의의 허물을 벗겨내고 있는 19명의 석학들의 날카로운 주장이 썩 달갑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글이 시작되기 전에 명시한 일러두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읽기 전에 일러두기를 먼저 봐야한다. 19명의 석학들이 말하고 있는 ' 개발 ' 은 긍정적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자연으로 대표되는 천연자원을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생활을 유용하게 만든다는 건전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 발전 ' 이라 쓰고 ' 빈곤 ' 이라 부른다

<반 자본 발전사전>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 사전 ' 답게 적지 않은 분량이며 자본주의라는 집합의 원소들로 구성된 개념들을 반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  발전에서부터 기술까지 총 19가지의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어도 좋다.   

평소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의 장면을 마주치게 되는 것처럼 <반자본 발전사전>도 평소와 다른 독서를 하게 되면 발전과 개발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을 의외로 발견할 수 있다.  

볼프강 작스가 쓴 [서문]은 발전 비관론자들이 말하고 있는 사상적 맥락을 간략히 이해할 수 있는 독서의 준비운동이다. 역시 볼프강 작스가 쓴 제1장 [발전] 챕터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자주 사용하고 듣게 되는 단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제일 중요한 핵심내용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1장부터 시작해서 제4장 [도움], 11장 [빈곤], 15장 [과학], 2장 [환경] 순으로 읽어나갔는데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만큼 서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발전 비관론자들의 주장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트루먼의 1949년 선포 이후로 ' 발전 ' 이라는 기준으로 강대국, 개발 도상국으로 본격적으로 구분짓기 시작하였으며 (1장 ' 발전 ')    

미국과 같은 강대국은 개발 도상국의 발전을 위한 의도의 개발 원조라는 이름 아래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권력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개발 도상국은 강대국이 만들어낸 진리를 철석같이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 도움 ' 으로 이해하게 된다. (4장 ' 도움 ' )    

그러나 강대국이 제시한 도움에 지나치게 맹신하는 개발 도상국은 자신이 처한 빈곤의 상황에 대해서 무력감 또는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기 쉬우며 자신의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부유한 나라라는 기준에 대해서 항상 강대국의 시선과 그들이 만들어낸 기준을 잣대로 바라보는 빈곤에 대환 획일화된 관점을 가지게 된다. (11장 ' 빈곤 ')     

그리고 강대국은 과학이야말로 산업 위주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더 좋은 삶을 위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고 있으며 (15장 ' 과학 ' )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새로운 문제점으로 등장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으로 탄생된 것이 생태학이다. 생태학을 통해서 ' 지속 가능한 발전 ' 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하여 빈곤의 불평등과 극심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강조하고 있다.  (2장 ' 환경 ')  

 

이런 순서의 독서를 통해서 자본주의에서 강조하고 있는 발전의 장점은 강대국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용어였으며 새로운 개념들과의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 발전 ' 의 위력은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그 힘은 세계적인 빈곤 문제를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판 MB 정부의 자본 발전사전

 


이명박 대통령의 2011년 신년연설 키워드 그래프 (출처: 연합뉴스)
  

올해 이명박 대통령 신년사에 관련된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서 역대 대통령의 신년사를 분석하여 키워드로 분류한 것인데  지금까지 대통령들이 국민들에게 강조했던 정치적 키워드를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키워드 분석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가장 강조되었던 말은 경제, 성장, 복지, 일자리 등이었다. 그 수많은 키워드 중에는 유독 경제, 성장이 눈에 띈다.  작년에 서울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기세등등한 것일까 ?   국운융성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선진국의 문턱을 단숨에 넘어가자는 대통령의 당찬 포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의 화두는 경제 성장인 것이다.  경제 성장과 관련해서 눈여겨 봐야할 키워드는 개발, 기업, FTA, 녹색이다. FTA는 굳이 말할 것도 없듯이 지금까지도 국정 운영에서의 뜨거운 감자로 지금도 논란의 열기가 여전하다. 그리고 개발(Development)이라는 단어는 경제 성장에서 절대로 땔래야 땔 수 없는 단어이다.   한국형 뉴딜 사업으로 표방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MB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대표적인 개발 정책이다.   

만약에 볼프강 작스, 이반 일리히 등과 같은 세계의 저명한 발전 비관론자들이 MB 신년사 키워드 그래프를 보았다면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19명의 ' 안티(Anti) ' 발전론자들이 만들어 낸 <반자본 발전사전>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MB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올해 국정운영 키워드 그래프는 ' 자본 발전사전 ' 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구제역보다 무시무시한 자본주의의 돌림병  

MB 정부의 신년사 키워드 그래프를 통해서 한국 역시 발전과 개발만을 강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흐름에 이미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도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 발전 ' 자본주의의 환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현실에 대한 마하트마 간디(모한다스 간디) 의 경고는 발전 비관론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작은 섬나라 하나(잉글랜드)의 경제 제국주의가 지금 세계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인구가 3억인 나라가 하나같이 그런 경제 수탈에 나선다면 메뚜기 떼처럼 세계를 깡그리 벗겨먹을 것이다.  

- <반자본 발전사전> 개정판 서문중에서, p 21 -

간디의 경고에서 말하고 있는 주요 단어들을 살짝 바꿔서 표현하자면 미국' 발전 '자본주의가 지금 세계에 족쇄를 채우고 있으며 현재 13억이라는 육박한 인구 기록을 가진 중국까지 그런 경제의 대열에 나선다면 모든 국가들도 일제히 따라 나서게 되고 세계는 또 다른 불화와 사회적 질병들이 생겨날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 사회적 질병 ' 은 단순히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빈곤 문제만이 아닌 모든 나라가 ' 발전 ' 자본주의의 환상에 집단적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 라는 속담이 있듯이 개발 도상국이 ' 발전 ' 자본주의의 환상에 지나치게 맹신하는 나머지 빈곤과 저성장 문제는 더 심화되는 동시에 자신들이 빈곤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자죄감에 빠지기 쉽다.  그들은 그런 자괴감 속에서도 언제나 강대국이 내세우는 ' 발전 ' 이라는 명목의 원조와 도움만이 자신들의 상황을 구제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은 여전히 버리지 안않는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잇따라 퍼지는 돌림병처럼 제2, 제3의 개발 도상국으로 전염되어 악순환이 반복, 유지된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통치 하의 식민지 지배와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뼈아픈 역사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으며 초고속 경제 성장이 준 달콤한 맛에 들인 대한민국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환상의 돌림병의 증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돌림병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으며 선진국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지 않는 이상 돌림병을 치유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마나 돌림병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은 그동안 긍정적으로 여겨져왔던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면을 살펴보아야 하며 근본적인 이해를 통해서 강대국이 만들어낸 ' 발전 ' 에 대한 환상과 신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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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2-28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평가단 도서인가 보군요.
MB정권을 일컬어 '자본 발전 사전'이라고 칭한 것도 흥미롭구요.
안 읽어도 님의 자상한 리뷰덕에 책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겐 개발 뿐만이 아니라 많은 긍적적인 단어들이 반어법으로 읽히는게 문제에요~ㅠ.ㅠ

cyrus 2011-03-01 12:36   좋아요 0 | URL
저는 오히려 더 좋은 점에만 생각해서 문제인거 같습니다. ^^;;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서 좋든 싫든 간에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 봐야하는데,,
저는 개발과 발전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했었거든요 ^^;;
이 책을 보면서 그동안의 발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반딧불이 2011-02-28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카 와일드의 <어린왕>에 나오는 말(118쪽)은 정말 의미심장한 말이네요. 어린왕과 올리버 트위스트, 반자본 발전사전, 이명박...사이러스님 생각의 지도가 보이는듯 합니다.

cyrus 2011-03-01 12:43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개발 원조가 유일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빈곤] 챕터 내용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강대국의 개발 원조가 오히려 빈곤문제를
부추기고 있었다는 사실이요,

꽃도둑 2011-02-28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명박의 자본발전 사전은 발전과 토목을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한 눈에 보이네요.
아 여기서 녹색, 젊은이, 추진, 행복, 도움, 미래, 자유ㅡ등등
죄다 가짜 논리라는 거죠.
[반자본발전사전]은 그러한 가짜논리에 속지 않도록 개념 정의를 다른 각도에서 한 거라고 생각돼요.

구제역보다 무시무시한 자본주의 돌림병! 맞아요. 백신보다 다원주의식 치료법이 더 중요하죠. 느리게 길들이기....그리고 자본주의 힘 빼기, 발전 전문가를 불구자로 만들기 등등..

cyrus 2011-03-01 12:46   좋아요 0 | URL
사실 이 책이 선정되어서 나름 뿌듯한거 같아요,, <반자본 발전사전>도
저에게 의외로 수확(?)이었던 책이었습니다. 언제나 읽어봐도 괜찮을거
같아요 ^^;;

이런 자본주의의 환상이 한국은 이미 빠진 것이나 다름없고 또 다른
개발 도상국들에게 퍼진다는게 위험한 일이죠. 오히려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또 다른 빈곤을 더 생길꺼 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1-02-2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뭐가 문제인지 아세요?
한탕주의 이죠, 비단 금전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측면에서..
꾸준히 노력하거나 고민하거나 하나씩 해결하지 않고, 아니 아예 이런저런 사유로 시도조차 않고 무조건 한탕으로 해결나기를 바란다는거죠... 그러니 자본주의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리겠어요? 특히 무한경쟁 시장에 발을 놓은 자본주의가....

사람은 도리어 선택 조건이 없을 때, 너무 취약한 상황만 아니라면 더
행복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참 모순적이죠.....

사이러스님. 제가 제일 두려운건요, 책을 읽고 아 이제 조금 알거 같아 하는데
다른 책이나 지식에 접하고, 또다른 측면이 있구나 하면서 내내 헤매는거....
이게 평생갈까봐 무서워요. 세상이 너무 넓어요. ㅎㅎ

cyrus 2011-03-01 12: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인간은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었던 익숙한 지식이 완전히 부정되어
폐기된다면 새로운 지식에 대한 인식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죠.
저도 그동안 발전, 개발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읽는 내내 발전 비관론자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내심 불편하기도 했었습니다.

정말 마고님 말씀처럼 번거롭더라도 천천히,, 조금씩 사유나 고민을 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게 옳은거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너무 넓기도 하고요 ^^

잘잘라 2011-02-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박2일 멤버들이 복불복 게임하면서
너무나도 솔직하게, 너무나도 자주, 너무나도 큰소리로 외치는 한마디
"나만 아니면 돼!"

그리고 술자리에 가면 심심챦게 들을 수 있는 외침
"인생 한 방!"

들을 때마다 섬뜩 섬뜩해요. ㅜㅜ

cyrus 2011-03-01 12:5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정부도 약간 그런 성향이 있는거 같아요. 나만 아니면 돼!
일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각없이 그냥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들이대는거 같습니다 ^^''

herenow 2011-02-2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그럴싸하게 보이는 '신년연설 키워드 그래프'의 예쁘장한 단어들이
실제론 어떤 의미인지 속속들이 밝혀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적이었죠.
더 쉽게 읽히도록 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네요.
그러면 더 많이 읽히고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사회적 영향력이 생길텐데요.

복학생의 개학날, 어땠을까 궁금하군요. ㅎㅎ

cyrus 2011-03-01 12:55   좋아요 0 | URL
네, 몇 몇 내용은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쓴 글이라서 몇 몇 독자들은 쉽게 읽혀지지 않았을거 같네요. ^^

맥거핀 2011-02-2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스카 와일드의 <어린 양> 읽어보고 싶네요. 이 리뷰에서 또다른 책을 배우고 갑니다.^^

cyrus 2011-03-01 12:56   좋아요 0 | URL
펭귄클래식 시리즈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선집인 <별에서 온 아이>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아주 좋은 이야기가 있으니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

교고쿠도 2011-03-0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생각하면 군사독재 시대보다도 지금이 더 막장(!)이라 생각됩니다. 그때는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저항하였으나, 지금은 부조리에 저항하는 모습조차 거의 볼 수가 없으니까요...

cyrus 2011-03-01 13: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요즘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서 이렇다 할 저항에 대한 사고와
생각이 실종된거 같아요. 아무래도 돈과 자본이 강조되는 자본주의의 단맛에 우리나라 사회가 이미 빠져버린 것이 원인인거 같습니다. 몸에
안 좋은 불량식품이면서도 불량식품 특유의 맛에 빠져드는 것처럼
자본주의를 쉽게 부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일이기도 하고요.

아이리시스 2011-03-01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는 일단 늘 멋지니까 뒤로 하고,
개강 하셨습니까? 개강하셔도 이렇게 멋진 리뷰 보여주실 겁니까?
개강계획은 뭡니까, 장학금입니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cyrus 2011-03-01 16:02   좋아요 0 | URL
글쎄요...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몇 권씩은 꾸준히 읽으려고 해요. 그리고 아이리시스님
한 발 늦으셨네요, 아까 방금 어제 있었던 개강날에 대한 페이퍼 올렸는데,, ^^;;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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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천, 그는 누구인가?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정조를 개혁 정책과 탕평책을 통해 대통합을 추진하고자 한 개혁군주로써 평가받고 있으며 24년 재위 기간을 일명 ' 정조 르네상스 ' 라고 일컫으면서 세종 시대와 함께 조선의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다. 

정조 시대와 관련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연암 박지원이다. 정약용은 자신이 개발한 거중기를 통해 화성 건설에 참여, 주도하였으며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실학자로써 정로의 총아였으나 정조 사후에 불거진 천주교 탄압에 의해서 유배 생활을 해야했다.  박지원은 청나라 여행을 통해 보고 듣은 견문들을 <열하일기>에 기록하였으며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한다는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렇듯 정조 시대는 정약용과 박지원이라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인재의 등장 그리고 화성 축성을 통해서 문예부흥을 이끌고자 하였으며 중국으로부터 고증학, 천주교 등 다양한 학문들이 성리학으로 견고히 다져진 조선으로 유입되는 등 오늘날에도 수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연구대상이 되는 동시에 양면의 역사적 평가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TV 속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정조 시대의 미시사가 재해석되고 있다. 

올해에도 정조 시대와 관련한 흥미로운 역사책이 발간되었는데 <정감록>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예언서에 대한 역사적 탐구로 유명한 백승종 씨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다.  그런데 이 책이 유독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제목에 있는 ' 불량선비 강이천 ' 이다.  하필 그냥 선비도 아닌 ' 불량 ' 선비다. 그리고 강이천이라는 이름 역시 낯설게 느껴진다. 강이천이라는 자가 정조 시대 때 어떠했길래 불량선비라고 불리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백과사전에 ' 강이천 ' 을 검색해봤는데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68~1801,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 본관은 진주. 자는 성륜(聖倫), 호는 중암(重菴). 아버지는 흔(俒)이다.

1779년(정조 3) 12세 되던 해부터 임금의 총애를 받고 궁궐에 출입하면서 응제시(應製詩)를 지어 올렸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기설(理氣說)을 토대로 하는 당시의 보편적 학문성향을 탈피하여 고증학적(考證學的)인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구명(究明)하는 데 전념하여 전도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1797년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김정국(金鼎國)에 의하여, 주문모(周文謨)와 접촉하면서 천주교교리를 배우며, 요언(妖言)으로 민심을 혼란시킨다고 보고되어 형조의 탄핵을 받아 그해 11월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이어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옥사하여 주문모와 함께 효수(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음)되었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는 간략하게 강이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포털 사이트가 운영하고 있는 검색 사전에서는 이보다 더 간략하게, 그것도 단 네 줄로 설명하고 있었다.    

 

강이천 ( ? ~ 1801 )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 본관 진주, 호 중암(). 진사()로서 문명이 높았으나, 1797년(정조 21) 천주교인이라 하여 사학죄인()으로 몰려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신부 주문모()와 함께 효수되었다. 문집에 《중암고(稿)》가 있다.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강이천의 출생연도를 불분명으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거슬렸지만 강이천이라는 사람이 조선 후기 때 활동했던 천주교인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사전 속 내용을 통해서 강이천이 왜 불량선비라고 불리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교(邪敎)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받았던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 사대부들 입장에서는 성리학과 위배되는 사교에 가입한 강이천을 불량 선비마냥 바라봤을 것이다.  

 

  

 

  강이천 - 조선의 이상적 공상주의자 

백승종 씨의 책에서는 수많은 문헌들을 통해 밝혀진 강이천이라는 천주교인의 생애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전 속에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강이천의 삶은 그리 평범하지가 않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후손이라는 강이천이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병으로 인해 애꾸눈이 되었으며 심한 종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강이천은 죽을 때까지 평생 안고 가야 할 신체적 불편함을 이겨내고 어린 나이에 정조로부터 재능을 촉망받았으며 박지원도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볼 정도였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강이천은 신체적 역경을 이겨낸 조선 최고의 학자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강이천이 향하는 곳은 양반 집안 자제라면 거쳐야 할 사대부가 되는 길이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성리학적 이념과 정반대인 천주교였다.  당시 천주교 전파에 나섰던 주문모 신부와의 교류를 통해서 천주교에 대해서 관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정조와 박지원으로부터 사대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강이천은 왜 그 당시로서는 사학으로 규정되었던 천주교로 전회했던 것일까?  

정조 시대는 근대화의 물결이 한반도로 밀려 들어왔던 과도기적 시대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은 선박을 타고 시시때때로 바다에 출현하였으며 이 때부터 천주교가 들어오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성대의 시대 속에서도 혼란의 시류가 있기 마련이다.  조선 중기 이후에 떠돌기 시작한 <정감록>은 민중들 사이에서는 조선의 말세예언에 대해서 운운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이런 불안정한 시국은 강이천의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강이천은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사회로는 조선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전망하였다. 개혁적인 정책 도입한 정조마저도 나날이 불안정과 혼란으로 거듭되는 민생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이천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여 새로운 조선의 모습에 대해 꿈꾸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리학적 이념에서 벗어나 단지 가난한 평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건전한 사회의 조선을 만들고자 하였다.    

비록 그가 꿈꾸는 세상은 민속 신앙과 <정감록>의 예언적인 내용이 가미된 이상적인 유토피아였지만 번영을 위해서 민중들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특히 강이천의 유토피아는 빈민 구제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백승종 씨는 강이천을 ' 이상적 공상주의자  ' 라고 규정하고 있다.   

놀랍게도 강이천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유럽의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볼 수 있는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오직 노동자계급의 구제에 중점을 둔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강이천의 사상을 이들의 사회주의 사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계급상으로 힘이 없는 서민들을 구제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강이천은 조선 사회에 걸맞는 이상사회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 - 개혁군주냐 보수군주냐    

 

   

이덕일 <조선 왕을 말하다 2> &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전 2권) 

 

이런 강이천의 비전(Vision)을 지켜본 정조가 이를 그대로 방관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전국 방방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정감록>이라는 책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민심이 불안정하고 있는 마당에 강이천의 비전 역시 정조의 눈으로 봤을 때는 민심의 불안정에 더욱 부채질하는 위험한 사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고증학의 등장까지 더해지면서 조선 사회는 성리학 이외에 여러가지 사상들이 존립하고 있는 방향으로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정조는 내심 이런 사상들의 등장 때문에 조선 왕조 성립의 기틀로서 대대로 내려온 성리학적 이념이 붕괴될 것이며 성리학의 붕괴는 곧 조선의 멸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조선 사대부 권력을 공고히 확립, 유지하기 위해서 문체반정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정조는 문체반정의 일환으로 사대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패관소설과 소품문을 금지하였으며 아예 문체와 문장 작성마저도 전통적인 한문체를 고수할 것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에 반하는 천주교를 ' 서학 ' 이라고 몰아 붙이면서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정조가 아꼈던 인재들, 정약용과 박지원도 정조의 문체반정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셋째 형 정약종이 천주교인이라는 이유,  박지원은 <열하일기>가 잡문이라고 규정받게 됨으로써 두 사람은 문체반정 때문에 잠시나마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이렇듯 정조는 <정감록>, 천주교, 바다에 자주 등장했던 서양인들 그리고 패관소품을 성리학을 배반하는 하나의 반체제적인 요소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반체적인 사상에 심취하고 있는 강이천이 정조에게는 불량스러운 선비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백승종 씨는 정조를 성리학 이념을 유지하려는 보수군주였으며 반면에 강이천을 기존의 사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상황에 맞선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저자는 조선의 ' 문화투쟁 '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조에 대한 백승종 씨의 평가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개혁군주라는 이미지를 뒤엎는 새로운 주장이기도 하다.  특히나 문체반정에 대한 평가는 이전에 <정조와 철인시대의 정치>와 작년에 출간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조선 왕을 말하다> 2권의 저자인 이덕일 씨의 평가와 사뭇 다르기도 하다.  이덕일 씨는 당시 지배층이었던 노론 세력을 막기 위한 명목으로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던 것이고 성리학이 아닌 중국에서 들어온 고증학과 같은 학문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 사대부들의 태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정조를 둘러싼 두 역사가들의 서로 다른 평가에 대해서 누가 옳다고 판가름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어떤 시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약용 & 박지원 - 지식인의 두 얼굴       

 

 

 

문화의 격동기에 들어선 18세기 조선 후기의 사회 모습을 단순히 정조와 강이천뿐만 아니라 그 시대 속에서 활동했던 정약용과 박지원의 모습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지만 읽으면서 정약용과 박지원에 대한 언급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특히 정조의 문체반정이라는 비난의 화살로부터 겨냥을 받았던 이 두 인물의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정조와 강이천 간의 문화투쟁으로 인해 정약용과 박지원에게도 충돌의 불똥이 튀어졌다.  정약용은 정조에게 보내는 반성문에서 자신이 천주교와 관계한 점에 대해서  ' 아이들의 장난 ' 과 같은 일이었으며 자신의 입신이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정조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하는듯한 내용을 쓰기도 하였다.  정조는 박지원으로 하여금 천주교 탄압에 앞장 설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으며 이에 박지원은 자신이 군수로 부임하고 있는 지역의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 두 지식인들은 정조의 문화투쟁의 부메랑이 자신들에게 날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문헌에 기록된 내용만을 가지고 정약용과 박지원이 벼슬을 통한 정계 진출의 영달을 위해서 정조의 정책에 동조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오늘날 실학 사상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진 정약용과 박지원 역시 성리학의 이념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  

18세기 조선 한반도에서 발생한 문화투쟁으로 인해 강이천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비록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사회는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한 채 그렇게 역사의 먼지로 남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이야기가 있다. 아들인 이카로스와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서 발명가인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새의 깃털들을 모아 붙여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뜨거운 태양 가까이 너무 높게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너무 높게 난 나머지 날개의 밀랍이 녹아버려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이카로스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도전에 대한 기쁨에 너무 도취한 나머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카로스를 자신의 역량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상징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의 세계에 과감히 한발짝 더 나아가려는 그의 도전 정신은 훗날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태양과 구름으로 이루어진 하늘이라는 광활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이카로스처럼 강이천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사회를 뛰어넘을 수 있는 무모한 도전에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내던졌다. 그것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는 조선의 시국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서민들을 위한 그의 이상사회에 대한 염원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회의 문제적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신체적, 사회적 역경 속에서도 희망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강이천의 ' 이카로스 드림 ' 이 단순히 문헌 속으로 남아 있기에는 너무 아쉽기만 하다.  강이천은 불량선비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더 먼저 앞서간 생각을 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대담했던 진정한 선비였다. 그의 시대적 도전 정신은 눈여겨 볼만하며 앞으로도 강이천에 대한 꾸준한 역사적인 연구가 필요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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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2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가 연결되면, 머리 속이 복잡하면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단 말이예요. ㅠㅠ
천주교 전파가 순수한 의도만 있는 거라면 상관없는데,
제게는 서양의 시커먼 속을 지나칠 수가 없다는거죠. 그러니
천주교에 헌신했던 분들에 대해서도 평가가 복잡해지고, 그로 인해
<공상적 이상주의자>에 대해 무조건 수용이 어렵다는거죠.
물론 제 기질 상으로, 이상주의자나 몽상가가 아닌 것도 한 몫 합니다만.

cyrus 2011-02-21 19:21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에서 설명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강이천과 교류가 있었던
천주교인들도 자신들이 남긴 문헌에 강이천의 사상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지 않더군요. 아마도 천주교인들도 강이천만의
생각에 대해서 수용하기 어려웠을겁니다. ^^

양철나무꾼 2011-02-21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지원 관련 부분, 제 생각은 틀려요.
박지원이 강이천의 능력을 눈여겨 봤을지는 모르지만, 강이천의 성품이나 인간성은 폄훼하죠.
이 정도 능력이라면 강이천은 신체적 역경을 이겨낸 조선 최고의 학자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을까요?
그러기엔 강이천의 꿈이 너무 크지는 않았을까요?

암튼 확실한 건...리뷰가 엄청 멋지다는 것과,
강이천에게 있어 정감록과 천주교는 종교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었을거라는 생각~

cyrus 2011-02-21 19:25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댓글을 보고나니 당쟁으로 치열한 진흙탕의 정계라는
커다란 사회적 장벽 때문에 강이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나무꾼님
말씀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에는 힘든 현실일 수도 있었구요. ^^

아이리시스 2011-02-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강이천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ㅠㅠ

어느 시대든 세상을 바꾸려는 소수세력은 있기 마련인데, 자신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려놓고 무언가를 시도했던 인물들에게는 안쓰러움 같은 것들이 깃들어요. 공개적으로 이름 붙여진 천주교 박해 네 번 있을 동안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나갔는데 리뷰 읽으면서 교과서적인 것들의 뒤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이해하게 되네요. 팩트 말고 왜 그랬지? 하는 학자정신이 나온다고나 할까.

cyrus 2011-02-21 19:27   좋아요 0 | URL
저도 강이천이라는 인물을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어요.
기존에 알려져 있는 역사나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주류 역사나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겁니다. ^^

반딧불이 2011-02-2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나무꾼님과 나란히 리뷰를 올려주셨네요.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강이천의 글이 있는건가요?

cyrus 2011-02-21 19:31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참고문헌들을 보게 되면 문체반정에 대한 언급이 있는
글과 책들은 많이 있는데 강이천이 쓴 글은 없는 거 같습니다.
강이천과 관련된 문헌들도 대부분 강이천 사건 당시 기록된
옛 문헌들이기도 하구요,, 아마도 강이천이라는 인물을 대중적으로
알리게 된 책이 백승종 씨의 책이 유일하다고 생각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2-2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반정에서 정약용은 정조의 편에 섰고 박지원은 제대로 벼락을 맞아버렸죠. cyrus 님의 글이 정약용과 박지원은 문학을 보는 시각에서 정반대 진영의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백승종 씨도 정조는 물론 정약용에 대한 세간의 무비판적인 숭배열에도 거리를 두고 있으니까요.

cyrus 2011-02-21 19:3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몰랐던 사실인데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18세기 조선사에 대해서 급 관심이 생겼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부터 시작해서 정민 교수가 쓴 18세기 조선사에
관한 책까지,, 읽을거리거 더 생겼네요. ^^

잘잘라 2011-02-2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앞에는 서너번 읽어봐도 잘 모르겠더니,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 이라는 설명에는 뭔가 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결국 제 기억엔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만 남겠죠.^^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 적절한 비유인듯..

cyrus 2011-02-21 21:37   좋아요 0 | URL
제가 건성으로 책 소개와 관련 없이 썼다보니 읽는데 애먹으셨군요. ^^;; 그래도 책 내용은 읽어보면 좋답니다. ^^

2011-02-23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2-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인물을 알게 되었네요.
관심도서로 찜해놓고 갑니다.
 
인간, ' 대칭 ' 의 매력에 사로잡히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 대칭의 역사 승산의 대칭 시리즈 3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안기연 옮김 / 승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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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진리와 아름다움에 관한 공부야.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부야.

- 이언 스튜어트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p 25 -

 

  

 

  불광불급 (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광적으로 덤벼들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불광불급의 열정 없이는 세상에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뜨거운 열정을 마음 한 구석에 품으면서 자신감을 갖고 오랜 시간을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공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를 하든 간에 내가 하는 일에 정신이 나갈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소로 그때, ' 아! 그래도 내가 열심히 했구나 ' 하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광불급의 열정인 것이다.  

 

  

  수학벽(癖)에 들린 사람들   

수학자라고 하면 단순히 수학을 연구하고 어렵기 짝이 없는 수학 문제들을 푸는데 공을 바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언 스튜어트<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라는 책을 읽고나서는 수학자라는 직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회의 현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찬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통상 관념 사전> 식으로 ' 수학자 ' 라는 인간을 정의하자면 ' 수학벽(癖)에 들린 사람들 ' 이라고 하고 싶다.

지구상에서 아무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수학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든 수학자들이 바라는 담대한 꿈이며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도 길이 빛나게 할 수 있는 영광적인 표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해법으로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게 되었을 때 얻는 기쁨의 카타르시스는 어려운 문제 하나에 집요하게 매달릴 수 있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고력의 힘을 발휘하는 정신적인 근원이며 수학자로서의 삶을 추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폴 에어디쉬 (에르디쉬, 1913~1996)

 

아마도 수학벽에 들린 진정한 수학자를 꼽으라면 바로 헝가리의 폴 에어디쉬일 것이다. 에어디쉬는 이론이나 개념의 틀을 짜는데 치중하는 수학자가 되기 보다는 특별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문제들만 해결하려고 하는 일반 수학자들과는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하루 최대 4, 5시간밖에 자지 않았고, 극도로 오랜 시간 연구를 계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그가 수학 해결의 결과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문제를 푸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름답고 기초적인 풀이를 얻고자 하였으며 그런 수학 문제 풀이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방랑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보헤미안이기도 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들을 해결하는 공로로 화려한 수상과 상금 경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의 대부분의 재산을 학생들을 돕거나, 문제풀이 상금으로 내거는 것으로 썼다. 그렇다보니 집도 가지지 않는 무일푼으로 단촐한 삶을 살았다.  에어디쉬에게 수학 문제 풀이는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증명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유쾌한 지적 활동이었던 것이다.   

 

   
  * 본의 아니게 폴 에어디쉬 이야기로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사실 이언 스튜어트의 책에는 폴 에어디쉬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지 않는다. 폴 에어디쉬 이야기는 같은 출판사(승산)에서 출간되었던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지호에서 출간된 <화성에서 온 수학자>(품절)에 소개되어 있다.  
   

 

  

 

 

  ' 수학자 ' 라는 이름의 독한 사람들 
 

하지만 이언 스튜어트의 책에서 등장하는 수학자들은 중에는 폴 에어디쉬보다는 더한 사람들도 있다.  에어디쉬의 수학 문제 풀이 앓이를 뛰어넘는 종결자 정도는 아니지만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수학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았으며 에어디쉬의 생애 못지않은 독특한 생의 이력을 남긴 수학자들도 있었다.    

 

 

  1) 기하학을 연구했던 무명씨의 수학자들

 


 

임의의 각 삼등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부피가 주어진 정육면체 부피의 정확히 2배인 정육면체 작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주어진 원의 넓이와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 작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고대 그리스 때부터 기하학으로는 풀지 못했던 세 가지의 불가능한 문제가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 임의의 각을 삼등분하기 ' , ' 원과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 만들기 ' , ' 2배의 부피를 가진 정육면체 만들기 ' 이다.   유클리드의 저서 <기하학 원론>에는 수많은 기하학 명제들과 해법을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없었다는 점에서 비롯되어 후세의 수학자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한 작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기하학을 가르쳤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기하학에서는 오직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 사용하여 도형을 작도해야한다고 말함으로써 오랜 세월 기하학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어 자와 컴퍼스만으로도 이 세 가지 작도를 증명하려고 도전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무리 똑똑한 현자들마저 해결하지 못하는 나제일수록 오히려 더 불가능한 문제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되며 열심히 연구하려는 사람은 많아지기 마련이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수학자들은 비로소 자와 컴퍼스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와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로 분류할 수 있다고 결론을 지었으며 ' 해법이 없다 ' 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수천년동안 수많은 무명씨의 수학자들은 플라톤의 정의에 사로잡혀 불가능한 기하학 문제에 매달려야 했다.    

 

  

  2) 병약한 천재, 닐스 헨리크 아벨   

 

 


닐스 헨리크 아벨 (1802~1829)

 

가난한 형편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병약한 기질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오직 하나의 분야를 해결하기 위해서 끝장 보려는 수학자도 있었다.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은 3세기 동안 수학상의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던 5차 방정식의 해법을 탐구하였다. 19세라는 나이에 아벨은 5차 방정식은 기존의 방정식 풀이 방법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음을 증명하였지만 그의 증명 방법이 난해한 나머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수학계의 1인자였던 프리드리히 가우스마저 어려운 수식과 증명으로 가득한 젋은 무명 수학자의 연구 논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정도이다.  젊은 나이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아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증명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5차 방정식 연구에 더욱 매진하였다.  

그러나 열심히 수학을 연구하기에는 아벨은 너무나 가난했으며 날이 갈수록 병마로 인해 쇠약해져만 갔다. 그러나 아벨은 자신의 수학적 공로를 통해서 고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동료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아벨의 연구 결과는 차즘 인정받기 시작하게 되고 독일의 베를린 대학은 젋은 아벨을 교수로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교수 임명직을 알리는 초대장이 도착되기 이틀 전에 아벨은 26세라는 짧은 나이로 불행한 생애를 마쳤다.  

어떻게 보면 아벨의 생애는 정말 불행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른 나이에 아무도 이루어내지 못한 수학적 성과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세라는 아직 어린 나이에 사회가 주는 쓴 맛을 맛 본 아벨은 자신의 생활고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학 연구를 통한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터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을 구제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강박관념 속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생의 모든 에너지를 오직 수학 연구를 위해 소진해버렸다.  그런 아벨의 삶은 젊은 천재의 요절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3) 불운한 혁명가, 에바리스트 갈루아    

 

 


에바리스트 갈루아 (1811~1832)

 

수학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수학자 2명은 앞서 소개했던 아벨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에바리스트 갈루아이다.  아벨은 26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갈루아는 아벨보다 5살 적은 21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아벨보다 더 불운한 경험을 가득찬 삶을 살아야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공통적으로 이 두 사람은 5차 방정식이 분야의 연구로 인정을 받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점 그리고 죽고 난 뒤에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던 연구로 인해 수학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는 점에서 보면 이 두 사람의 생애는 흥미롭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갈루아는 수학적 신동의 기질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른 과목의 성적은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수학 성적은 동급생들보다 더 뛰어났으며 오히려 수학 공부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7세의 나이로 5차 방정식에 관한 주제로 첫 논문을 발표했지만 그의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가 논문을 분실한 탓에 인정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자신의 능력을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했던 열혈 청년 갈루아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 번째 논문 심사에서는 탈락하고 말았고 세 번째로 다른 권위 있는 수학자로부터 심사를 받을 수 있는 논문 제출에 응모했으나 하필이면 심사위원 수학자가 사망하게 되렸기 때문에 갈루아의 세 번째 논문은 또 분실되고 말았다. 

정말 아벨 못지 않게 지독하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 연속된 불행의 좌절 속에서 갈루아는 자신의 혈기왕성한 열정을 새로운 사회로 개선하려는 7월 혁명으로 향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분풀이를 시도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호전적인 기질이 강한 나머지 젋음 특유의 힘을 주체하지 못했던 갈루아는 7월 혁명에 참가했다는 죄목으로 잠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고 그 사이에 연애 관계까지 맺게 되었다.  자신의 연애 관계가 짧은 수명으로 마감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원인이 될 줄은 그는 알고 있었을까?   

복잡한 연애 관계로 인해 갈루아는 결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 남자들에게 결투는 자신의 자존심을 걸린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다.  결투 전날 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하게 되고 갈루아는 자신과 같은 소속인 공화당원이며 절친한 사이의 친구인 슈발리에에게 유서를 남겨둔 채 결투로 인한 총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갈루아가 죽기 전날에 쓴 유서는 지금도 수많은 역사가들의 연구 대상이며 그의 짧은 생애에 대한 수많은 추측들이 등장하고 있다.   유서에는 단순히 죽기 전에 남기는 보통 평범한 내용만 남겨져 있지 않다.  마무리하지 못했던 연구 내용을 슈발리에에게 논문으로 출판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기 하루 전에 갈루아가 급하게 쓰다보니 유서에는 휘갈겨 쓴 수학적 용어와 수식들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데 그 내용에는 훗날 5차 방정식에 대한 연구에 대한 ' 갈루아의 이론 ' 으로 불리게 될 내용에서부터 오늘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준 군(group)의 이론까지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도 갈루아가 고안한 이론들은 물리학, 우주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갈루아는 유서에서 자신이 ' 생각해 낸 ' 이론들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그의 말대로 실현되었다.   

갈루아의 유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생전에 그토록 인정 받지 못했던 5차 방정식 연구를 혁명 참여 와중에서도 천착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죽기 하루 전날에 영영 무덤으로 가지고 갈뻔했던 자신의 연구 내용들을 유서를 통해서나마 알리려고 했던 그의 모습은 뼛 속 깊이 ' 수학자 '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수학자들만 느낄 수 있는 진리의 아름다움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적 지식 하나 제대로 건지기는커녕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된 기하학 관련 내용이나 군의 이론 등에 대해서 자세하세 설명하지 못했다.  책의 부제는 ' 대칭의 역사 ' 라고 달고 있는데 정작 ' 대칭 ' 이라는 주제에 대한 내용이 아닌 엉뚱하게도 책에도 언급되지 않는 폴 에어디쉬에다가 책 속에서 소개된 수학자들의 생애만 열거하고 말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주제와 논지에 벗어난 글이 되었음을 뒤늦게나마 알리려고 한다.  

최근에 같은 출판사에서 마커스 드 사토이의 <대칭>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알고 예비독서 삼아서 읽어봤는데 쉽지가 않았다. (이 책 역시 이언 스튜어트의 책보다 한층 더 수준이 놓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수학적 개념을 알기 위한 입문용으로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본문 중간에 수식은 당연히 나온다.  

그렇다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수학적 용어와 수식만 보고 막연히 어렵다고 해서 짐짓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언 스튜어트는 대중들을 위한 수학 전문 저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미 기본적인 개념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읽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정말 수학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으며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수학적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나는 수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읽는데 애먹었지만 그렇다고 이번 독서가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수학 지식은 건지지 못했지만 수학사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면 오늘날에도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잡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수학적 개념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학의 역사 속으로 남게된 수많은 수학자들의 업적을 확인하면서 이들이 남들보다 수학 연구에 매달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반인과는 다르게 수학 문제를 풀면서 얻게 되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었으며 고생해선 찾아낸 진리라는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수학자들은 진리라는 빛나는 진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나머지 일반인과 다른 독특한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생전에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발견한 수학의 진주들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느낄 수 없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집중력을 하나의 수학 문제 해결에 쏟아부었다. 인정을 받는냐 못 받느냐에 떠나서 수학자들은 오직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불광불급의 열정을 발산시켰다.  

수학자가 아닌 나로써는 수학자들이 발견해낸 진리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무엇이다라고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어려웠던 수학 문제를 풀어본 경험을 생각해보면 수학자들이 느꼈던 진리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인고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가 나오면서 느끼게 되는 짜릿한 기쁨, 그것이야말로 진리라는 진주가 뿜어내고 있는 수학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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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2-19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자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결과
디자이너=문제를 찾아내고 문제를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해내는 사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 리뷰를 읽었어요. 그랬더니 그렇다면 수학자도 디자이너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데 몰입한 수학자와, 누군가에게 발생한 어떤 문제(또는 필요)를 해결하는데 몰입한 디자이너의 모습이 다르지 않군요. 흠..

cyrus 2011-02-20 11:26   좋아요 1 | URL
수학자를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멋집니다. 디자이너들도 자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서 몰입하기도 하죠. ^^

마녀고양이 2011-02-1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학자는 약간 미친겁니다 란 에세이를 읽고,
수학자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게 되었었죠. 너무 멋지다구요.
무슨 일이든 한가지에 미쳐있고,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 행복하다면
그 생애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구요.

수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미학이라잖아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단아한 공식으로 풀어내느냐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이해가 가더라구요. 사이러스님두 그렇죠?

cyrus 2011-02-20 11:32   좋아요 1 | URL
저는 고등학생 때 수학 선생님이 폴 에어디쉬 관련 책을 추천하셔서
읽어봤는데 이 사람 참 괜찮더군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요. 수학 용어와 수식이 있는 책보다는
오히려 수학자들의 생애나 에세이가 더 재미있는거 같아요.

마고님 말씀 듣고보니 아르키메데스가 생각나네요. 자신이 죽고나면
묘비명에 자신이 발견한 수학 원리들을 새기라고 유언을 남겼거든요.
정말 수학자들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간결한 공식으로 풀어내는 과정과
결과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양철나무꾼 2011-02-20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칭'은 가지고 있어서 설렁설렁 넘겼어요.
(넘 어려워요~)
'대칭'을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랑 엮으시다니...좀 멋지십니다~^^

cyrus 2011-02-20 11:33   좋아요 0 | URL
<대칭>이라는 책,,, 어,, 어렵나요? ^^;;
아무래도 이언 스튜어트의 책의 부제가 ' 대칭의 역사 ' 라서
읽어봤습니다. 여전히 ' 대칭 ' 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수학의 역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어서 좋았습니다. ^^

2011-02-20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0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11-02-20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파란 나비 사진은..제가 오래~전에 어떤 나비박물관에서 찍어온 녀석과 똑같군요.
그걸 자랑한답시고 한 번 어딘가에 인터넷으로 올렸는데..그 이후로 자주 보이는..
설마 그 때 그 사진이 저 사진은 아니겠지이~ㅎㅎ

그나저나, 오랜만에 싸이러스님한테 댓글을 멋지게 달아야지! 하고 왔는데..
수학이라뇨,수학이라뇨...OTL (털썩);;

cyrus 2011-02-20 16:30   좋아요 1 | URL
그래도 오랜만에 댓글 달아주시다니 반갑습니다. ^^
제가 독서 취향이 독특하니 엘신님이 이해해주세요. ^^;;


아이리시스 2011-02-21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학을 엄청 못했어서, 그래도 고등학교 때 이과반으로 갔고, 수학에 대한 책은 이해 못해도 한 번 들춰봐야 속이 시원하고 그럴 때가 있었어요.
학창시절엔 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책이나 이야기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재미조차도 못붙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전 정답없는 사회과학쪽엔 자신 있었지만 수학공부도 답안지 펴놓고 맞춰가곤 했었어요. 말이 안되죠.

이젠 별 쓸때도 없지만 미드 <넘버스> 보고 수학 엄청 못했던 과거가 좀 억울하던데요.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은 이유불문하고 멋져요. 나쁜 일 빼고요. 제목이 멋진 책인 것 같아요. 수학 아니고 미학 책인줄 알았잖아요,ㅋㅋㅋ

cyrus 2011-02-21 19:35   좋아요 1 | URL
죄송해요, 아이리시스님도 제 글 때문에 착각하셨네요.^^;;
저도 솔직히 수학 문제 푸는 건 좋아했는데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수능 때 수리영역 점수가 개판으로 나왔던거 생각하면,, ㅠ_ㅠ
지금은 수학 문제 푸는 거 좋아하지는 않지만 수학자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거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