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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기생충 - 엽기의학탐정소설
서민 지음 / 청년의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만약 세기의 명탐정들을 한 자리에 불러들여 ‘탐정 어벤저스’를 만들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인물이 적합할까? 일단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는 빠지면 안 된다. 탐정 어벤저스에 초대하면, 겉으론 귀찮다고 츤츤거리면서도(퉁명스러운 태도) 자신을 불러주지 않으면 섭섭하게 생각하지 싶다. 그다음 추천 인물은 에도가와 코난. 명석한 추리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는 무기 아이템(신발)까지 갖추고 있어서 든든하다. 증인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진술할 수 있도록 ‘회색 뇌세포’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가 있어야 한다.
탐정 어벤서스 일원들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바로 ‘기생충 탐정’ 마태수다. 마태수가 누구냐고? 원래 이름은 ‘마태우스’였다. ‘마침내 태어난 우리들의 스타’의 약자이다. ‘마태수’는 개명한 이름이다. 그는 해로운 기생충에 위협받는 인간들을 돕고, 인간에 이로운 기생충과의 공존을 꿈꾸는 ‘우리들의 탐정’이다. 나는 마태수를 탐정 어벤저스 가입에 강력히 추천한다!
《대통령과 기생충》은 최초이자 마지막인 ‘엽기의학탐정소설’이다. 이 특이이한 장르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기생충을 소재로 한 탐정소설이다. 2001년 서민 교수가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소설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이 추천사를 남겼다. 그의 추천사 마지막 문장 한 줄이 강렬하다.
“2백여 년 전 파블로 선생의 곤충기 이후, 최고의 ‘엽기생물문학’이 되겠다.”
김어준은 책이 재미있게 보이려고 추천사를 허투루 쓰지 않았다. ‘엽기’라는 단어만 보고 책을 오해하는 것은 금물이다. ‘엽기’가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로 알려져서 그렇지, 《대통령과 기생충》을 실제로 읽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엽기’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민 교수의 발상은 ‘상상력’에 가깝다. 엽기의 진짜 매력은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에 있다. 《대통령과 기생충》은 기생충에 관한 상상력의 기록이다.
소설에서 기생충은 인간을 괴롭히고, 심지어 인간 목숨까지 노릴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얼핏 보기에도 독자의 속을 불편하게 하는 묘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기생충에 대한 묘사는 탄탄한 과학적 근거 위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들어졌다. 서 교수의 상상력은 아주 건전하며, 절로 웃음이 나온다.
마태수는 정의로운 ‘기생충 탐정’이다. 그리고 자칭 ‘비뇨생식기 전문 탐정’이다. 기생충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사건을 해결할 때마다 ‘기생충 전도사’가 된다. 기생충의 실체를 잘 모르거나 ‘기생충은 사라져야 할 해로운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기생충 세계의 진실을 알려준다. 《소설 마태우스》의 주인공 ‘형사 마태우스’와 ‘기생충 탐정 마태수’, 이 두 사람을 비교해보면 《대통령과 기생충》이 《소설 마태우스》보다 작품성이 한층 더 향상된 소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형사 마태우스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은 황당무계하다. 그리고 엽기적인 실수 연발로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이러한 설정에 억지웃음을 유발하려는 듯한 초보 작가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소설 마태우스》는 ‘초보 작가’의 어설픈 면이 확연히 드러낸 작품이다. 반면 《대통령과 기생충》의 마태수는 사건 해결에 진지하게 임하며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대통령과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게 남아있는 심각한 병폐를 풍자한다. 자신의 몸과 생명에 자해하는 병역기피자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했고(『입영 전야』), 정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야생동물마저 먹는 남자들의 욕심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고환이 흔들리고 있다』).
『신찬섭을 죽여라』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 슬립(Time slip)형 소설이다. 마태수가 유신 체제 시절로 돌아가서 사건을 해결하는 전개가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타임 슬립 수사물’과 비슷하다. 『대통령과 기생충』은 재미를 떠나서 기생충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저자의 진실한 메시지가 함축된 소설이다. 여기서 마태수는 ‘기생충학자 서민’의 오너캐로 등장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대통령 이름이 ‘노주현’이다. 이 책이 처음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어느 대통령을 패러디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노주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근엄함을 잊고, 기생충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는다. 그의 모습을 보면 평소에 친근하면서도 성격이 소탈한 실제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그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이 책을 보셨으면, 불쾌한 표정을 짓기보다는 재미있어서 웃었을 것이다.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곧잘 벌이는 악당들은 어쩌면 기생충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채찍을 휘두르는 선생님』 129쪽)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민간인’ 박근혜는 청와대에 머물고 있다. 오늘도 청와대에 당장 나오기는 힘들어 보인다. 청와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순순히 물러나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구질구질하다. 4년간 박근혜가 보여준 행적은 국민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세월호 사고 소식을 접하고도 무감한 반응,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뻔뻔한 태도. 그녀는 ‘최순실’이라는 악랄한 기생충에 지배받았고, 이로 인해 그녀 인생뿐만 아니라 나라가 크게 휘청거렸다. 사익을 누릴 수 있는 ‘줄기세포 연구’만 바라봤던 박근혜의 성격상 ‘기생충학’이 무얼 연구하는지 그리고 기생충학 연구가 계속 진행해야 할 이유를 잘 모를 것이다. 누가 되든 간에 차기 대통령은 기생충학 연구자들을 위해 대대적인 지원을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