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두렵지 않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전화윤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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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죽음에 관한 책. 간호대생 특강과 뇌과학 전문가들에 대한 취재 등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은 책이라 쉽게 읽힌다. 방광암과 심장 수술을 겪을 때의 일마저도 책으로 풀어내면서 일본 최고 전 방위적 지식의 소유자가 개인적인 문제조차 '독서'를 통해 어떻게 해결하고 이겨내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자살, 안락사, 뇌사, 임사체험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다. 죽음, 이라는 피할 수 없는 주제에 정면으로 맞선 것은 좋았지만, 결론은 좀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제일 인상 깊었던 문단은 여기. 외국어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바친다. 





수업 방해와 학내 봉쇄의 연속에 반쯤은 휴교 상태였고 수업도 시험도 없던, 도쿄대학 개교 이래 가장 변칙적인 시대, 과격파 학생들이 야스다(安田) 강당에 운집해 기동대와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진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평생 그렇게까지 공부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매일 공부를 하며(매일 그리스어로 플라톤을 읽고, 라틴어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읽고, 독어로 비트겐슈타인을 읽고, 불어로 사르트르를 읽고, 아랍어로 코란을 읽고, 페르시아어로 루미를 읽고, 한문으로 장자 전집의 주석을 읽었다.) 매일 밤을 새워 그날 수업의 예습을 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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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2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1-02-02 15: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다시 독어, 스페인어 시작할까요? 응?;;;;;;

단발머리 2021-02-04 17:18   좋아요 0 | URL
시작한다,에 1표!!!
독어에 1표! 스페인어에 1표!

감은빛 2021-02-02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걸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한두개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을텐데.
세상은 넓으니 저런 천재가 있다면,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있는 거겠죠.

단발머리 2021-02-04 17:19   좋아요 0 | URL
인간에게는 불가능하지만 다카시에게는 가능한 걸까요? @@ 영어문화권에서는 그래도 좀 쉬울텐데 일본인이라 더 놀라울 따름입니다.

psyche 2021-02-03 0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거 가능한 일인가요??

단발머리 2021-02-04 17:18   좋아요 0 | URL
가능한가봐요 ㅋㅋㅋㅋㅋㅋ 다른 건 몰라도 그리스어랑 라틴어는 정말 허걱입니다! 허걱!!!

2021-02-04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4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2-05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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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대해서라면 말을 길게 할수록 내가 불리하다. 독박육아의 정반대편에서 난 아이 둘을 키웠다. 둘째를 낳기 전, 큰아이가 3살일 때는 목요일 오후마다 시어머니를 태운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아이와 아이의 짐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토요일 오후에 아이와 아이의 짐을 찾으러 시댁에 갔다. 2 3일의 일정이었는데, 아직 젊은 시어머니여서 즐겁고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는 먹는 거, 자는 것에 예민한 편이었는데, 엄마에게 맡기기만 하면, 딩딩한 배를 내놓고는 꿀잠을 자기 일쑤였다. 남편은 어떻게 장모님에게만 가면 얘가 저렇게 순하게 먹고 자는지 궁금해했다. 나도 궁금했다.

 

아픈 아이를 안고 동동거리며 병원을 오가고, 아이의 변덕에 나 자신의 인격을 실험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사람을 만나고 싶고, 아무 말이라도, 도대체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어른의 말을 하고 싶었던 시간이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육아를 하고 집을 주요한 일터로 삼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돈을 벌지 않고 아이를 보겠다는 결정이 나의 선택이었다는 점이었다.  


 

그거 자꾸 먹으면 내성 생긴다.”

아픈 걸 어떡해.”

사람이 참을 줄도 알아야지.”

해결 방법이 있는데 굳이 왜 참아.”

어떻게 너 하고 싶은 대로만 사니.”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내 마음대로 살아봤으면 좋겠네.”

누가 살지 말래?”

나는 엄마를 쳐다봤다.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 데도 못 가는 건 결국 식구들 때문이었다. (36)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직장 생활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확장되어가는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해야 하는 일을 해야만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경우도, 내가 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역시나 의 힘이고, 돈이 주는 자신감이다. 생존을 넘어 생활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밥이 당연하고, 빨래가 당연하고, 청소가 당연하고, 쓰레기 버리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그래서 그런 일에는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 일하고 있지만, 돈이 지급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는 것으로 그 값을 한다고 믿었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가르치는 것이 내 몫이어야 했다. (151)


 

돈을 받지 않고 살아온, 돈을 벌지 않고 돈을 쓰고 살아온, 내 기억과 추억들이 김이설의 문장 안에 그대로 살아있어서, 좋았다. 그 시간을 잘 견뎌와서 다행이다 싶었고, 아이들이 아무리 귀여워도, 귀여웠어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다 하라고 했다. 눈치 볼 것도 없이, 기죽을 것도 없이 천천히 다 해보라 했다. 그러다 지치면, 재미없어지면, 지루하거나 외로워지면 자기에게 오라 했다. 늘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언제든지 나를 맞이할 거라고 했다. 그동안 기다렸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겠다 했다. 더없이 따뜻한 청혼이었다. (163)

 

 

사람이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 아닐까 싶다. 다 하라는 말.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는 말. 그래서 지치고 외로워질 때 나에게 오면 된다는 말. 자식이 부모에게 듣고 싶은 말도, 제자가 스승에게 듣고 싶은 말도, 연인이 연인에게 듣고 싶은 말도 이런 말이 아닐까. 하고 싶은 걸 해 봐. 천천히 한 번 해봐. 힘들 땐 나한테 와. 여기서 기다릴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11시쯤 읽기를 시작해 단숨에 다 읽고 그리고 김이설을 검색해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 다른 작품의 이름을 익혔다. 육아의 고단함과 현실의 팍팍함이 따뜻한 말들로 데워지는 과정이 너무 근사했다. 사랑을 믿고 싶은 밤이었다. 좋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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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2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2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1-01-22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달하고 따뜻해서 너무 좋네요. 여기 앉아 읽고 있노라니 군고구마랑 아메리카노 함께 하고 싶어져요.

단발머리 2021-01-22 20:15   좋아요 1 | URL
저 오늘 에어프라이어로 고구마 구워서 얼죽아와 함께 먹고 마시며 <올랜도>를 읽었습니다. 좋은 시절이었어요^^

수이 2021-01-23 12:06   좋아요 0 | URL
악 올랜도 -.-

psyche 2021-01-23 0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연님 말씀대로 달달하고 따뜻해서... 이 글 읽다가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꺼내 통째로 먹고 있어요. 먹다보니 아메리카노도 땡기는군요. ㅎㅎ

수이 2021-01-23 12:06   좋아요 0 | URL
아이스크림 먹을 때 따뜻한 아메리카노랑 같이 하면 궁합 잘 맞아요 프시케님 전 위 약해서 찬 거 확 들어가면 바로 놀라더라구요. 그래서 뜨끈한 커피랑 꼭 같이 먹어요.

단발머리 2021-01-26 21:17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 방금 한 통 클리어 했습니다. 전 오늘 쿠쿠 크러스터! 밤이라 커피는 내일로 미루려고요^^
달콤한 밤입니다, 오늘 밤도요!

hnine 2021-01-23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요, 이상하게 아끼는 사람에겐 다 해보라는 말이 쉽게 안나오는 것 같아요. 혹시 했다가 실패하는 일을 보게 하기 싫어서일까요? 안전한 길만 권하고, 조금 가능성이 없다 싶으면 만류하는 쪽을 취하는 수가 많지 않나, 자신을 반성해보고 있네요.
제일 가까이 제 자식에게도, 다 해보라는 말을 해본적이 있나 생각해보고 있어요.
이 소설, 사랑을 믿고 싶게 만드는 소설 맞아요. ^^

단발머리 2021-01-24 13: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맞아요. 그 말을 하기 제일 어려운 사람이 자식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다 해봤어, 그런 거 하는 사람 내가 다 봤어, 하면서 사랑의 말로 만류하게 되지요ㅠㅠ 사실 인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제일 행복한데 말이에요.
행복을 바란다 하면서 하지 말라 말하는 이런 모순이.... 항상 우리 삶에서는 흔한 일 같아요.
사랑을 믿고 싶게 하는 소설이어서, 읽는내내 저는 하트뿅뿅이었습니다^^

공쟝쟝 2021-01-2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을 믿고 싶어지는 밤. ㅜ0ㅜ 단발님ㅜㅜ 하고 싶은거 다해ㅜㅜ 그리고 여기루 와~

단발머리 2021-01-26 21:17   좋아요 0 | URL
그맘 변치 말아요! 변하면 안 돼요!! 와락!!!
 
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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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누스바움은 『타인에 대한 연민』에서 폴 로진의 말을 인용해 원초적 혐오의 모든 대상은 동물이거나 동물적 물질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혐오의 대상은 동물성을 상기시키는 것’, 즉 우리 자신의 동물성과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상기시키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141)

 


인간은 동물인 것이 분명한데, 동물성을 상기시키는 대상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너의 구별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인간은 나와 너 사이의 차이를 바탕으로 우리와 다른 그들을 창조해냈다. 어떤 인간이 더 인간다운가. 어떤 인간이 더 동물에 가까운가. 이 질문이 바로 혐오의 시작점이다.

 


유대인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동물성과 육체성이 두드러진 존재로 여겨졌다.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보다 더 냄새나고 더 성적이라고 인식되었으며(160), 유대인 남성은 다른 어떤 인종의 남성보다 더 여성적이라고 여겨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들은 난폭한 짐승과 같다고 생각했고(161), 무엇보다도 그들은 성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존재로 여겨졌다.    

 

착하고 거짓이 없고 주인에 대해 무한한 충직함을 보이는 반려동물들을 떠올려볼 때, 동물에 대한 인간의 이러한 판단은 진실이 아니다.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동물이다. 동물인 인간은, 스스로 동물이기를 거부하고, ‘동물성이라는 굴레를 자신들과 다른 집단인 그들에게 투사한다. 유대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민자, 성적 소수자 그리고 가장 방대한 소수 집단인 여성에게.

  


특정 집단을 우리보다 더 동물적이라고,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냄새가 나고 성적이며 죽음의 악취가 풍기는 집단이라고 규정하면 어떨까? 그런 집단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지배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닌 그들이 동물이고 더럽고 냄새가 나는 대신 우리는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발밑에 있다. 우리가 그들을 지배한다. 이와 같은 모순적 사고가 골치 아픈 동물성과 자신과의 거리를 창조하는 방법으로 인간 사회에 만연해 있다. (147)

 


인간을 동물과 식물에 비유할 때, 남성은 동물로 여성은 식물로 환원된다. 남성은 동물의 활동성과 적극성을, 여성은 식물의 고정성과 수동성을 부여받는다. 반면 인간과 동물로 그 기준점이 이동하면, 남성은 더 인간다운 존재가 되고, 여성은 더 동물적인 존재가 된다. 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동물적인가. 여성을 더 동물에 가깝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여성에 대한 혐오는 모든 투사적 혐오와 마찬가지로 분명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의 대상은 언젠가 맞게 될 육체의 죽음이다. 여성이 그 두려움의 (하지만 종종 욕망되는) 조건을 대변한다면, 이는 곧 죽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결국 남성들의 두려움 때문에 여성들이 통제와 규제를 받게 된다. (242)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고 임옥희 님의 글이었다고만 기억나는데, 사실 그것도 정확한 건 아니다.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이유는 여성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특별히 여성의 재생산 능력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5-6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남성들이 두려움 때문에 여성을 억압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에서야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과학 기술이 이 정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도 임신과 출산은 말 그대로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자신과 똑같은, 사이즈만 다른 존재를 눈에 보이지 않게(배만 보이게) 간직했다가(임신), 죽다 살아나는 과정을 통해 쏟아 낸다는 것(출산)은 우주의 신비 그 자체이다. 초기 인류에게 이러한 과정이 얼마나 놀랍고 신기했을지는 더 이상의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다. 두려움은 혐오로 이어지는데, 두려움과 경이로움의 근거였던 임신과 출산이 이제는 혐오의 근거가 된다. 여성은 월경을 하기 때문에, 임신을 하기 때문에, 출산을 하기 때문에 동물적이라고 여겨진다.

 


편파적인 생각을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대인은 거짓말쟁이라던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은 성적 에너지에 사로잡힌 존재라던가, 아랍계 이주민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라던가, 하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타 집단에 대한 혐오와 멸시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 모든 집단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강력하게 동물성의 상징이 되었던 여성들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디 여자가. 감히 여자가. 여자 따위가. 이 엄격하고 강력한 굴레의 무게를 떨치고 일어설 수 있을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홍성수 교수는 마사 누스바움의 핵심 사상이 이 책에 잘 요약되어 있다고 소개한다. 그녀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접근하기 쉽도록 쓰였다는 데는 동의한다. 백인 노동자 출신의 자수성가한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딸에게는 고등교육과 직업적 성취를 격려하면서도, 뿌리 깊은 인종 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기억하는 장면들이 인상 깊었다. <서문>만 읽어도 충분히 좋은 독서가 될 듯싶다.

 


이 책이 시작된 날은 2016 11, 미국 대통령 선거 날이었다. 비탄과 두려움으로 미국 전체가 들끓었던 밤, 외국의 호텔 방에서 그녀는 마음속의 두려움과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분노, 혐오, 시기와 같은 감정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트럼프의 등장이 미국인들, 특별히 미국의 지식인들에게 던져주었을 무한의 절망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트럼프는 등장도 화려했지만, 퇴장 역시 화려했고, 그렇게 여러 번 미국에 새 역사를 선사하고는 이제 곧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릴 모양이다. 2024년을 기약하는 그의 말이 이번에는 제발 이루어지지 말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역사적으로 유대인, 여성, 동성애자, 불가촉천민, 하층 계급 사람들이 바로 ‘육신의 오물로 더렵혀진 존재‘로 상상되었고, 혐오는 이들을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로 활용되어왔다. - P6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지만, 일찍부터 그것이 특권이었음을 깨달았고 특권의 배타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회피하지 못했던 유일한 차별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었다.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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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포의 권력] 아브젝시옹과 동물성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4-01-20 19:00 
    『공포의 권력』을 읽는다. <아브젝시옹과 성스러움>, <감정의 문화정치>,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페미니즘의 개념들>, <쥘리아 크리스테바>에서 ‘아브젝시옹’, ‘아브젝트’ 부분을 찾아 읽었다. 마침 가족 중 한 명이 핸드폰을 교체하게 되어서 ‘밀*의 서재’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전자책의 ‘검색’ 기능을 야무지게 잘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건수하님이 소개해 주시고 다락방님이 추천해
 
 
미미 2021-01-17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21-01-18 10:24   좋아요 1 | URL
저는 아주 흥미롭게 읽은 책이에요^^ 미미님의 감상평도 듣고 싶네요 ㅎㅎㅎ

라로 2021-01-1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 사라지기를 염원합니다!

단발머리 2021-01-18 10:25   좋아요 0 | URL
제발 제발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
알렉산드라 해리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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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이 책을 알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알라딘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서라면 책 읽기를 권하는 가정 분위기에, 일찍 어머니를 여읜 것, 이복 오빠들의 성적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다는 정도를 알고 있는데,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 말 그대로 소상히 기술하고 있다.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전할 때는, 몇 년, 몇 월, 몇 일자 일기인지, 혹은 그녀가 누구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나온 것인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어 더욱 신뢰할 만하다.

 

그녀의 일상과 일기와 편지와 만남이 어떻게 소설과 에세이, 비평 작업으로 이어졌는지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자신의 눈으로, 자신만의 기준으로 보기 원하는 독자라면 작가의 해석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나같은 경우는 몇 달 전에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올랜도』, 『파도』, 『세월』등을 어떻게 읽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기에 이런 작가의 도움이 무척이나 고맙다. 내년에 버지니아 울프 전작 읽기 계획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 책을 꺼내 해당 부분을 다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다.

 


버지니아는 결혼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엄청난 힘으로 생동하는, 항상 살아 숨 쉬고 항상 뜨거운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를 전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계획하는 삶은 작업하는 삶, 대화하는 삶, 자유로운 삶이었고, 두 사람의 사랑은 공감에 기초한 즐거운 사랑이었다. (65)

 


똑똑한 아내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내조하는 남편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그러한 내조를 받았던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전형적인 주부의 삶을 살았던 언니 바넷사를 보며 자신에게도 그런 삶이 가능할지 갈등했던 그녀, 독신 여성이자 이모이자 여성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했던 버지니아 울프에게 레너드 울프는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동료였던 것 같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특히 <서문>을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는 이 문단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허마이오니 리 Hermione Lee버지니아 울프를 읽은 것은 십 대 후반에등대로를 처음 읽은 직후였다. 그때 나에게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 책이자 영문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었다. 내가 울프를 대하는 마음에 형태를 잡아주는 책인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짧은 전기가 허마이오니 리의 전기에 어떻게 빚지고 있는지는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이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를 전하면서, 함부로 갖다 쓴 부분이 너무 많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8)



십대 후반에 버지니아 울프의등대로』를 읽고, 그리고 허마이오니 리의버지니아 울프』을 읽었던 알렉산드라 해리스의 경험은 이 책으로 결실을 보았다. 창작자로서의 고통, 지루한 자료 조사, 숱하게 지새운 밤들, 열정과 땀방울이 한곳에 모인다.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시작된 생각과 기록들이 허마이오니 리를 거쳐 알렉산드라 해리스에게 전해져 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고, 보통의 독자인 나는 그 모든 노력의 결실을 편안하게 받아 누린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지식이 축적되고, 새로운 발상들이 지구 반대편의 이곳까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 이 책의 원제는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이고, 허마이오니 리의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는 『버지니아 울프 (책세상, 2011)』로 번역되었는데, 현재는 품절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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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2-29 0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도 읽어볼래요! 내년에 단발님은 버지나 울프 전작 읽기가 목표입니까? 너무 근사해요! >.< 응원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쏙 담아가요!

단발머리 2020-12-29 08:08   좋아요 1 | URL
전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럴까요?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서라면 이 책의 접근법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너무 가깝게 가지 않으면서도 울프 그녀의 말로 상황을 설명하려는 게 느껴집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차근히 함 읽어보렵니다^^

수이 2020-12-29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따라쟁이는 버지니아 울프 책 하나씩 모으고 있어요. 우와 떨린다 기대된다.

단발머리 2020-12-31 20:11   좋아요 0 | URL
자자잔!!!!! 짠!!!!

난티나무 2020-12-29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왓 저도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버지니아 울프 부분 읽고 있어요!! ㅎㅎㅎ 전작 읽기 좋아요~^^

단발머리 2020-12-31 20:12   좋아요 0 | URL
자신이 없는데 일단 하겠다고 페이퍼를 써버렸네요. 하나씩 찬찬히 읽어보려고요. 12월에 올랜도인데 이제 12월이 끝나간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icaru 2021-01-1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 저도요, 저도 이책 읽어볼래요!!! ㅋ 얼마전에 어깨에 생긴 혹을 수술하러 집과 멀리 있는 병원에 예약하고 갔었는데요. 대기하면서 병원 대기실에 비치된 책들중에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에서 나온 자기만의 방, 이 있는 것을 본 거예요... 그리고 나서 나중에 마이클 커닝햄의 책 세월ㅡ을 들춰보고, 영화 디아워스를 다시 봤어요(아 보다 말았지만..) 버지니아 울프를 더 캐봐야겠어요! ㅋ

단발머리 2021-01-18 10:42   좋아요 0 | URL
어깨에 혹이 생기셨다고요? 수술까지 받으셨다면 많이 고생하셨겠어요... 에궁 ㅠㅠㅠ 그런데 그 와중에도 책장을 살피신다니 icaru님 책사랑은 어디에서든 빛이 나네요.
치료는 잘 받으신 거지요? 날이 추워서 병원가는 것이 큰 일인데 무사히 깨끗하게 잘 치료받으셨기를 바래요!!!!!

2021-01-24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4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24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해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1
정소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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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레삭매냐님의 서재에서 알게 된 책이다. 도서관 신착도서 자리에서 만났을 때 제목이 눈길을 끌어 한 번 쳐다보기는 했는데, 처음 보는 작가라(죄송합니다, 작가님) 패쓰했는데, 레삭매냐님 리뷰를 읽고 관심이 생겼다. 주말에 도서관에 갔더니 아직도 그 곳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기에 얼른 대출해 왔다. <작가의 말>에서 정소현이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일까. 이 소설은 미안하다고 말하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아파트라는 공동 건물이 가진 한계와 나만의 공간을 침범해 들어오는 소음이라는 가볍고 두려운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1111호 윤서엄마는 결혼할 당시만 해도 명랑하고 싹싹한 여자였다. 전처의 아들, 시어머니까지 감싸 안으며 예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딸 윤서를 낳은 후에도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며느리를 믿지 못 하고 의심하는 시어머니와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모른 척 하는 남편으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중, 아이를 낳고 8년이나 지난 후에 심각한 산후풍을 앓게 된다. 한기 때문에 냉장고도 열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내몰려 집에서만 생활하던 윤서엄마는 시어머니의 분가 이후, 시어머니와 친했던 1211호 진이 이모 손자들의 층간소음을 더는 참을 수 없어한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는 말은, 피해자들에게 전적으로 가혹한 말이다. 귀책사유가 95인 사람과 귀책사유가 5인 사람이 싸우고 있을 때, 현재 상황으로는 둘이 싸우고 있으니 너희 둘 다 잘못이다,라는 말 역시 그렇다. (: 귀책사유 95의 윤총장과 귀책사유 5의 추장관) 더 잘못한 사람(윤총장)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한지를 보여주는데, 가장 약한 고리의 피해자가 아파트 위층에 산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되고, 무조건 피해자인 아래층이 윗집의 횡포 때문에 옆집의 가해자로 변해가는 과정이 소상하게 그려진다.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이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유의해서 볼 만하다. 1111호 윤서엄마는 산후풍으로 9년 가까이 침대에만 누워있는 상태이고, 1211호 진이 이모는 오후에 손자 5명을 돌봐주는 외할머니이자 친할머니이다. 1011호 주부는 배앓이중인 신생아를 돌보는 초보엄마이다. 원하던 원치 않던 이제는 자신의 집에 갇혀 버린 그녀들. 휴식과 재충전의 장소이자 화목한 스위트홈은 이제 감옥이 되어, 감옥에 갇힌 그들은 결국 하나 둘 미쳐간다. 들리지 않은 소리를 듣고, 고통을 주는 윗집과 옆집, 아랫집을 향해 음악을 틀어 대고, 발로 쿵쿵대고, 급기야는 우는 아이를 안고 소파위로 올라간다. 아이의 시끄러운 울음 소리를 윗집에 잘 들리게 하려고.

 


각 가정의 이야기는 너무나 뻔하고 흔한 거라서, 오히려 슬펐다. 가족이라는 굴레, 시어머니의 질시, 재혼 가정의 갈등, 초보 엄마의 괴로움까지. 집에 갇힌 그녀들의 한숨과 슬픔이 너무나 생생했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가해자이며 피해자였고, 어린 아이가 둘이라 죄송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1211호 쌍둥이 엄마의 대사는 내가 한 말 그대로다.

 



“… 인터폰 주신 뒤로 저희는 더 조심하고 지내요. 아이들까지 층간소음 방지 슬리퍼를 신겼어요. 그런데 또 인터폰을 주셔서 좀 당황스러웠어요. 그때도 관리실에 말씀드렸지만, 한번은 애들이 앉아서 숙제하는 중이었고, 한번은 애들이 학원에 있었고 저는 소파에 앉아 있었거든요. 오늘도 오전에 외출했다가 이제 막 들어오는 길인데 이렇게 올라오셨네요.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신다면 그건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에요. 옛날이랑 달라진 것도 없는데 갑자기 이러시니 저희도 좀 당황스럽지만 죄송한 일은 죄송한 거고 아닌 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요. 저희도 신경 쓰고 조심하고 있으니 그쪽에서도 예전처럼 배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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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2-02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리...

순전히 그놈의 리뷰 대회 참전과 소소
한 상품에 눈이 멀어- 뭐 그랬습니다.

층간 소음은 고저, 서로 양해해 가면서
사는 것 밖에는 답이 없는 것으로.
저도 누군가에겐 가해자가 될 수 있다
는 게 참.

단발머리 2020-12-05 18:24   좋아요 0 | URL
리뷰 대회 참전을 위해서지만 그 대상이 좋은 책이라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수상도 축하드리구요!!

층간 소음은 조심하는 수밖에는 없는 듯해요.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한 번 전화오면, 말 그대로 전화가 딱 한 번 오면,
그 다음부터는 툭하면 전화가 오더라구요 ㅠㅠ 전화 없는 세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