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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
알렉산드라 해리스 지음, 김정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0월
평점 :
어디에서 이 책을 알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알라딘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서라면 책 읽기를 권하는 가정 분위기에, 일찍 어머니를 여읜 것, 이복 오빠들의 성적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다는 정도를 알고 있는데,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에 대해 말 그대로 소상히 기술하고 있다.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전할 때는, 몇 년, 몇 월, 몇 일자 일기인지, 혹은 그녀가 누구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나온 것인지를 소상히 밝히고 있어 더욱 신뢰할 만하다.
그녀의 일상과 일기와 편지와 만남이 어떻게 소설과 에세이, 비평 작업으로 이어졌는지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자신의 눈으로, 자신만의 기준으로 보기 원하는 독자라면 작가의 해석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나같은 경우는 몇 달 전에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올랜도』, 『파도』, 『세월』등을 어떻게 읽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기에 이런 작가의 도움이 무척이나 고맙다. 내년에 버지니아 울프 전작 읽기 계획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 책을 꺼내 해당 부분을 다시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느낌이다.
버지니아는 결혼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엄청난 힘으로 생동하는, 항상 살아 숨 쉬고 항상 뜨거운” 결혼 생활에 대한 기대를 전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계획하는 삶은 작업하는 삶, 대화하는 삶, 자유로운 삶이었고, 두 사람의 사랑은 공감에 기초한 즐거운 사랑이었다. (65쪽)
똑똑한 아내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내조하는 남편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지만, 버지니아 울프는 그러한 내조를 받았던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전형적인 주부의 삶을 살았던 언니 바넷사를 보며 자신에게도 그런 삶이 가능할지 갈등했던 그녀, 독신 여성이자 이모이자 여성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했던 버지니아 울프에게 레너드 울프는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동료였던 것 같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 특히 <서문>을 좋아하는데, 이 책에서는 이 문단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허마이오니 리 Hermione Lee의 『버지니아 울프』를 읽은 것은 십 대 후반에 『등대로』를 처음 읽은 직후였다. 그때 나에게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 책이자 영문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었다. 내가 울프를 대하는 마음에 형태를 잡아주는 책인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의 짧은 전기가 허마이오니 리의 전기에 어떻게 빚지고 있는지는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이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를 전하면서, 함부로 갖다 쓴 부분이 너무 많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8쪽)
십대 후반에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고, 그리고 허마이오니 리의 『버지니아 울프』을 읽었던 알렉산드라 해리스의 경험은 이 책으로 결실을 보았다. 창작자로서의 고통, 지루한 자료 조사, 숱하게 지새운 밤들, 열정과 땀방울이 한곳에 모인다. 버지니아 울프에게서 시작된 생각과 기록들이 허마이오니 리를 거쳐 알렉산드라 해리스에게 전해져 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고, 보통의 독자인 나는 그 모든 노력의 결실을 편안하게 받아 누린다. 부지런한 사람들의 지식이 축적되고, 새로운 발상들이 지구 반대편의 이곳까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 이 책의 원제는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이고, 허마이오니 리의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는 『버지니아 울프 (책세상, 2011)』로 번역되었는데, 현재는 품절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