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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ㅣ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육아에 대해서라면 말을 길게 할수록 내가 불리하다. 독박육아의 정반대편에서 난 아이 둘을 키웠다. 둘째를 낳기 전, 큰아이가 3살일 때는 목요일 오후마다 시어머니를 태운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아이와 아이의 짐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토요일 오후에 아이와 아이의 짐을 찾으러 시댁에 갔다. 2박 3일의 일정이었는데, 아직 젊은 시어머니여서 즐겁고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는 먹는 거, 자는 것에 예민한 편이었는데, 엄마에게 맡기기만 하면, 딩딩한 배를 내놓고는 꿀잠을 자기 일쑤였다. 남편은 어떻게 장모님에게만 가면 얘가 저렇게 순하게 먹고 자는지 궁금해했다. 나도 궁금했다.
아픈 아이를 안고 동동거리며 병원을 오가고, 아이의 변덕에 나 자신의 인격을 실험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사람을 만나고 싶고, 아무 말이라도, 도대체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어른의 말을 하고 싶었던 시간이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육아를 하고 집을 주요한 일터로 삼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돈을 벌지 않고 아이를 보겠다는 결정이 나의 ‘선택’이었다는 점이었다.
“그거 자꾸 먹으면 내성 생긴다.”
“아픈 걸 어떡해.”
“사람이 참을 줄도 알아야지.”
“해결 방법이 있는데 굳이 왜 참아.”
“어떻게 너 하고 싶은 대로만 사니.”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내 마음대로 살아봤으면 좋겠네.”
“누가 살지 말래?”
나는 엄마를 쳐다봤다. 내가 아무것도 못 하고 아무 데도 못 가는 건 결국 식구들 때문이었다. (36쪽)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 직장 생활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확장되어가는 세계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해야 하는 일을 해야만 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경우도, 내가 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자주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역시나 ‘돈’의 힘이고, 돈이 주는 자신감이다. 생존을 넘어 생활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겨지지 않는다. 밥이 당연하고, 빨래가 당연하고, 청소가 당연하고, 쓰레기 버리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그래서 그런 일에는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 일하고 있지만, 돈이 지급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는 것으로 그 값을 한다고 믿었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가르치는 것이 내 몫이어야 했다. (151쪽)
돈을 받지 않고 살아온, 돈을 벌지 않고 돈을 쓰고 살아온, 내 기억과 추억들이 김이설의 문장 안에 그대로 살아있어서, 좋았다. 그 시간을 잘 견뎌와서 다행이다 싶었고, 아이들이 아무리 귀여워도, 귀여웠어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다 하라고 했다. 눈치 볼 것도 없이, 기죽을 것도 없이 천천히 다 해보라 했다. 그러다 지치면, 재미없어지면, 지루하거나 외로워지면 자기에게 오라 했다. 늘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언제든지 나를 맞이할 거라고 했다. 그동안 기다렸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겠다 했다. 더없이 따뜻한 청혼이었다. (163쪽)
사람이 사람에게 듣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 아닐까 싶다. 다 하라는 말.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는 말. 그래서 지치고 외로워질 때 나에게 오면 된다는 말. 자식이 부모에게 듣고 싶은 말도, 제자가 스승에게 듣고 싶은 말도, 연인이 연인에게 듣고 싶은 말도 이런 말이 아닐까. 하고 싶은 걸 해 봐. 천천히 한 번 해봐. 힘들 땐 나한테 와. 여기서 기다릴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11시쯤 읽기를 시작해 단숨에 다 읽고 그리고 김이설을 검색해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 다른 작품의 이름을 익혔다. 육아의 고단함과 현실의 팍팍함이 따뜻한 말들로 데워지는 과정이 너무 근사했다. 사랑을 믿고 싶은 밤이었다. 좋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