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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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사랑니를 뽑은 날이었다. 아랫턱과 혀에 감각이 없었다. 온 몸에 힘도 없으니 모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겠다 라고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마취 풀리지 않은 오른쪽 입술의 생소한 감각이 이상했다. 다른 생각을 하자. 오래전부터 집에 꽂혀있었던 것 같은, 누가 샀는지 모를, ‘자기 앞의 생’을 꺼내들었고. 읽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말안해도 알겠지. 읽으면서 점심으로 죽을 먹고, 진통제를 먹는 도중에 읽어내리면서, 까무룩 졸았다가 금새 깨어 다시 읽으면서. 불편한지 모르고 아픈지도 모르고 오후 내내 소설에 푹 빠져있었다. 정확히는 모모에게 빠져있었던 것 같다. 어마어마한 한파가 불어닥친 날이었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지 않고, 보일라를 쾅쾅 틀었다. 저녁이 되었고, 책을 덮었고, 모모와 로자아줌마가 마음속에서 자꾸 돌아다녔다. 마취가 풀린 입안은 얼얼했고 저녁은 먹고 싶지 않았다. 책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었고 팟캐스트를 검색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자기앞의 생生’이 있었다. 소설만큼 소설적인 캐릭터 작가, 에밀아자르-로맹가리의 생애를 들었다. 소설의 여운이 천천히 몸에서 빠져나갔고, 고양이를 쓰다듬다 잠들었다. 꿈 속에서 모모를 만났을까.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고 일어났더니
하루사이에 열살에서 열 네살이 되어버린 모모처럼, 나도 한 20년 쯤. 폭삭 나이를 먹어버린 느낌.

사랑하기 위해 분투했던 지난 생이었던 것 같은 데, 여전히 사랑하는 일이 서툴고 어렵다.

로쟈와 모모의 우정을, 모모의 눈에 비친 잔혹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모자란 듯 아름다운 다양한 등장 인물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게 되는 자기 앞의 생- 이라는 감각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사랑해야한다.


p.12-13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대답하는 대신 몸에 좋은 박하차만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p.44
하밀 할아버지는 늘, ˝ 내오랜 경험에 비추어볼 때˝라든가 ˝너희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게 되어서 영광이구나˝라는 말을 했고, 그 외에도 나를 기분 좋게 해주는 표현들을 아주 많이 썼다. 지금도 그런 말을 들으면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p. 62
하여튼 그 사건이 내 감정을 건드렸고, 나는 너무 열이 올랐다. 그런 감정은 내 속에서 치밀어오른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위험했다. 발길로 엉덩이를 차인다거나 하는 밖으로부터의 폭력은 도망가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안에서 생기는 폭력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럴 때면 나는 무작정 뛰쳐나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만 싶어진다. 마치 내 속에 다른 녀석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부짖고 땅바닥에 뒹굴고 벽에 머리를 찧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그 녀석이 다리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아무도 마음속에 다리 따위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아진다. 그 녀석이 조금은 밖으로 나가버린 기분이다. 여러분은 내 말을 이해하는지.

p.91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P.99-100
그녀는 처음에는 무척 놀라는 것 같더니 곧 행복에 빠져들었다. 마치 천국에 있는 듯 보여서 나는 아줌마가 다시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될까봐 두렵기까지 했다.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마는 그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나는 절대로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몇 차례 마리화나를 피운 적은 있지만, 그래도 열 살이란 나이는 아직 어른들로부터 이것저것 배워야 할 나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행복이란 놈은 요물이며 고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어차피 녀석은 내 편이 아니니까 난 신경도 안쓴다. (...) 어쩌면 내가 잘못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고. 하지만 나는 행복해지자고 주사를 맞는 짓 따위는 안 할거다. 빌어먹을, 나는 이제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p.275
˝난 안 갈 거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모두 다 나쁜 놈들이에요. 안락사는 절대 안된대요.˝
그녀는 무척 차분해 보였다. 다만 오줌을 쌌으니 닦아달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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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8-02-2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책읽은 거!! 정말 반가웠어요 ㅎㅎㅎ
 
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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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나고 또 밀려나는 사람/것 들의 이야기.


"p.160 (디디의 우산)

디디는 자기 우산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 도도는 우산을 재촉하지 않았다. 비 오는 날엔 다른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빌려준 우산에 관한 것은 잊은 듯 무심했으나 디디는 도도와 도도의 우산을 신경 썼다. 우산 하나를 빚졌다는 생각에 비 오는 날엔 마음이 무거웠다. 도도의 목소리를 듣거나 도도가 근처에 있으면 고리 모양의 우산 손잡이가 목에 걸린 것처럼 그쪽 방향으로 몸이 무거워졌다. "


소설을 읽으면서 유년 시절의 가난했던 기억들이 모락모락 떠올랐다. 돈이 없구나. 나는. 내 부모는. 우리 집은.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난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다. 언제나 있었고, 그래서 그게 나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더듬어 보면 어린 나는 약간의 비참함과 주눅, 양보와 포기. 잊기 위해 하는 공상 따위로 하루를 채웠던 것 같다.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포기’, 혹은 ‘애초에 욕망하지 않는 것’과 같은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약간은 비참한 과정이다. 부모는 나의 생존 기술을 ‘철들었다’는 말로 칭찬하거나 ‘욕심 없다’는 말로 비난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나는 무언가를 원하기보다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쉽고 익숙하다.

결핍을 욕망하는 것이 인생의 도식일 테지만, 결핍을 인식하기도 전에 포기했으므로. 20대의 내가 좇은 것은 “돈이 아닌 사람 중심의 세상”이었다. 엄마는 말했다. 빨리 취직해서 돈이나 벌라고 경영학과를 보내놨더니, “돈으로 사람의 행복을 살 수 없어” 따위를 읊조리는 운동권이 되어 왔다고. 데모라도 똑바로 했으면 좋았을걸. 결론은 그 ‘돈’ 때문에 활동을 계속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역시 약간의 긍지감과 보람, 아니라고 다독이지만 ‘불안함 + 조금 비참한 기분’이 정서의 주류였다. (혹시나 하여 덧붙이지만 가난이라는 상처가 없거나, 극복된 운동가는 더 좋은 기분으로 운동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만난 이들은 그랬다.) 당장 이동할 차비가 없어서, 우산이 목에 콱 걸린 것 같은 날들이 기억난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돈을 벌기 시작한 지, 만 2년이 되어간다. 당연히 대단한 부자가 되지 못했다. 돈을 벌면서도 내가 한 번 샀으니까 네가 이번엔 사야지. 그렇지 않은 척, 빚진 것들에 대한 미묘한 계산을 머리로 한다. 하고 싶지 않은 데, 실컷 베풀고 싶은데 잘 안된다. 그냥 습관 같다.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셈하게 되는, 역시 가난의 흔적인가. 부자로 살아 본 적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부모님한테 겨우 챙겨 드린 세뱃돈 봉투가 얇아 마음이 답답하다. 잠깐이나마 화폐 없는 세상을 꿈꾼다. 디디처럼 어색해하며 ‘혁명’을 발음해봤다가 또 쑥스러워져 입을 닫는다.

"p.213 (파씨의 입문)

밤은 춥습니다. 차 씨가 사는 방은 북쪽 벽이 갈라진 커다란 방이고 그 방은 난방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체온은 일정하므로 그대로 누워있으면 언젠가는 바닥이 데워질 것이라고 파씨는 생각하지만 바닥은 언제까지나 바닥으로서 차가울 뿐이라서 금번에도 파씨의 등은 물고기의 척추처럼 싸늘합니다. 파씨의 어머니는 이불 속에서도 외투를 벗지 않습니다. 파씨의 아버지도 겉옷을 벗지 않습니다. 그들은 방에서 서로 간에 우울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말을 나누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때로 다툽니다. 최종적으로 다툼이 가장 격렬한 순간엔 언제나 묵언입니다. "


설날이라고 모처럼 일곱 식구가 다닥다닥 붙어서 밥을 먹고 TV를 보고 그랬다. 엄마가 소고기무국을 끓여줬는 데 고기가 많아서 놀랐다. “와- 우리 집 부자다. 고깃국에 고기가 예전보다 두 배는 많아졌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근데 엄마 나 서울 가서 소고기를 국으로 안 끓여 먹고, 구워서 더 자주 먹어봤다는 부잣집 사람도 봤다. 넌 소고기 한 번도 못 구워 먹어본 사람처럼 말을 하냐? 먹었지, 다 기억나 지. 옛날에 나 사춘기 때 빈혈 심해서 픽픽 쓰러질 때,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 몰래 구워줬잖아. 근데 기억이 난다는 건 거의 못 먹었다는 거 아닌가?

반년 만에 내려간 28년 된 고향 집은 외풍이 너무 심해서 코가 다 시려웠다. 날이 풀리고 ‘눈조차 잘 내리지 않는 따뜻한’ 여수인데도 말이다. 왜 서울보다 춥냐고 투덜 거리면서도 행복했다. 이제는 덜 고생하는 엄마, 아빠. 다 커버린 동생들. 돈 때문에 잦았던 다툼들, 다툼보다 매서웠던 식구들의 분주함. 대부분의 무관심. 그 와중에 중간중간 사랑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가 몰래 구워준 소고기 같은 것들. 부지런히 농사 지어 밥상에 올린 상추나 풋고추, 오이 같은 것들.

_

소설을 읽을 때, 책장을 덮을 때. 
내 안에 이런 것들이 남아 있었구나 떠올리게 된다. 기억과 맞부딪혀서 마음에 남을 이야기들. 

역시 소설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

쓸쓸하고, 가난한, 가진 것이 없어서 자꾸 변방으로 변방으로 밀려나는 사람과 영혼과 고양이와 젊은이들의 이야기. 파씨의 겨울이 따뜻해졌으면. 디디와 도도가 사는 방이 조금 더 넓어진다면 좋겠다. 고 생각했습니다.


P.54 (대니드비토)

나야,라고 생각한 순간엔 윤곽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비늘처럼 곤두섰다가 가라앉으며 나는 일순 확고해졌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일순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사라지고 있는 듯했다.
사라진다기보다는 너무 광범위하게 번지고 퍼져서, 끝내는 돌이킬 수 없이 묽고 뭇미한 상태의, 일부가 되는 듯했다. 나는 아직 나의 일부인 나를 추슬러 간신히 서랍에서 흘러나왔다.

p.66 (낙하하다)

야노 씨가 말해주었다.
애초 빗방울이란 허공을 떨어져내리고 있을 뿐이니 사람들이 빗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빗소리라기보다는 빗방울에 얻어맞는 물질의 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런 물질에도 닿지 못하는 빗방울이란 하염없이 떨어져내릴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생각해보세요, 야노 씨는 말했다. 허공에서 낙하하고 있을 뿐인 빗방울들을 생각해보세요.
우주처럼 무한한 공간을 끝도 없이 낙하할 뿐인 빗방울을.

p.173 (디디의 우산)

디디는 버스 안에서 양장본 표지에 손을 올렸다. 낯선 명사들이 동원된 긴 제목에서 마지막 두 음절을 들여다보았다. 혁명, 하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서 읽고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 사람 많은 곳에서 그 말을 했다는 게 꺼림찍했다. 버스에 실린 사람들은 버스와 더불어 침침하게 흔들리며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디디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보고 있다가 양장본으로 눈을 내렸다. 혁명, 하고 눈으로 읽은 적은 더러 있어도 혁명, 하고 입으로 말해보기는 드물구나, 생각했다. 혁명, 하고보니 자기를 비롯해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을 일이 있을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생소한 말이었다. 혁명, 혁명, 하니 디디는 가시덩굴처럼 구불구불한 금발머리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옛날 만화가 생각났고 걸핏하면 그 만화 속에서 흩날리곤 하던 장미 꽃잎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디더라, 역사 과목인가 미술 과목인가 교과서에 실려있던 뭐라더라, 하는 제목으로 젖을 내놓고 깃발을 들고 있는 여자가 그려진 그림.

p.174-5 (디디의 우산)

돈이 없구나, 하고 도도가 말했다. 디디는 도도를 바라보며 밥을 씹다가 컵을 집어 물을 마셨다. 저 말이야 도도.
돈이 있으면 더 살고 돈이 없으면 덜 산대.
그건 그렇지.
그게 그런가.
돈이 문제지.
돈.
돈이 언제나 문제가 되지.
디디는 젓가락으로 밥을 조금 집어서 탁자에 놓았다.
돈.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도록 만드는 어떤 것들.
어떻게 생각해, 하고 디디는 조그만 밥 무더기 네 개를 탁자에 늘어놓고 도도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정말 문제일까.
응?
이 가운데 어느 문제가 가장 문제라서 돈이 항상문제가 된다는, 뭐랄까 좆같은 답이 나오는 걸까. 나 오늘 종일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
뭐 좆?
응.
도도가 눈을 깜박이며 디디를 보았다.
뭐?
돈, 하며 디디는 무더기들을 보고 있다가 오른쪽부터 차례로 집어서 입에 넣었다.

p.218 (파씨의 입문)

야.
파씨의 사춘기 급우들이 파씨를 부릅니다.
그들은 파씨에게 바지가 그것밖에 없느냐고 묻습니다.
네.
파씨가 대답합니다. 이것밖에 없습니다. 아 깜짝이야 파씨도 그걸 지금 알았지만 파씨에게 주어진 바지는 이것뿐입니다. 파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 바지만을 입고 학교에 다니고, 일요일엔 아무런 바지도 입지 않는데, 그래서 뭐가 문제일까, 이씨발년들은 무슨 자격으로 파씨에게 바지가 그것밖에없느냐고 묻는 것일까.

p.224 (파씨의 입문)

파씨는 그 냉장고를 가져간 사람들의 형편에 관해 이따금 생각합니다. 몇 명이었을까, 그들도 한밤에 다녀갔을까, 킥, 킥, 하면서, 냉장고를 실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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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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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나 같은 페.알.못에게도 페미니즘 책을 추천해달라는 지인들의 요청이 잦은 것을 보니 대세이긴 대센가 보다. ‘메갈리안’으로부터-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미투 운동까지. 난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들에게는 많이 불편했었나 보다. 별의별 우려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여성들의 목소리 내기”는 멈추지 않고 있고, 그 목소리들은 우리들의 일상을 조용히-그러나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균열시켜 나가고 있다.

확신한다.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기쁘고 즐겁고 낙관적이지만, 동시에 슬프고 아프고 괴롭다. 내 안의 목소리를 우겨 누르는 것이 더 익숙했으니까. 틀어막은 입술을 떼는 순간 말은 ‘토해진다’. 구토 같은 그것은 역하기도 하고 멈출 수 없기도 하지만, 그걸 지금 껏 참았다는 것이 더.. 끔찍하다. ㅠㅠ

여하튼. ‘그래도 이렇게 난리인데 책 한 권쯤은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표를 가지기 시작한 지인들을 위해서 독후감을 써볼 생각이니 참고하시라. 대상은 “난 좀 원래 이런 거 둔한데…”라고 조심스러워 하던 나의 여성 동지들. 접근도-난이도를 체크해서 별점 다섯 개★★★★★를 달 예정인데, 어려운 건 나도 못 읽고 있어서... 별이 올라가려나 모르겠다. (그 별마저도 아주 주관적이겠지만)

주의할 점은. “여성들의 목소리 내기-”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 다르고 다르고. 걍 다르다. 그리고 원래 그랬다. 그래서 다행인 것은 ‘내 목소리도 목소리가 맞을까?’ 의심했던 너YOU의 목소리도 ˝있었다!˝라는 것. 그러니까 맞고 틀리고 할 거 없이 있/는/거/야. 그걸 잊지 말자!

_

“뭐부터 읽는 게 좋을까?” 물어보면서 “페미니즘의 역사나.. 개괄이나.. 개념이나 이런 것들이 정리된?”것을 묻는 (주로 남자) 지인들도 있었다. 페미니즘을 학술적으로 공부하려 하는 그 뜻은 갸륵하지만, 언제나 #82년생김지영 ☆ 을 읽으라고 말해줬다.#우리는모두페미니스트가되어야합니다 ☆ 나 #당신이불편했으면좋겠습니다 ★도 처음읽기 좋다고 생각한다.

요는 ‘공감’이고 ‘직관’이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 공감하지 못하는 데. 아무리 외워서 여성주의에 접근해봤자 그건 그냥 말싸움 용 무기 밖에 안되는 것 같아서.

적절한 예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재용에게 <자본론>을 가져다주면서 노동자의 현실을 이야기해줘봤자 그는 공감 못할 것이 뻔하다. 그런데 노동계급에게 <자본론>은 현실을 변혁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책이란 어렵게 쓰여도 자기 이해관계에 맞으면 끝까지 읽는 거고, 아무리 쉽게 쓰여도 내 세상을 설명해주지 못하면 몇 장 넘기기 힘들더라. 그러니 당신이 '아직'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면, “나는 반드시 페미니즘을 공부해서 지금의 잘못된 페미니즘 운동에 내재적 접근을 통한 비판을 가하겠어!!”라는 사명감에 불타지 않고서야 ‘개념 위주의 개론서’를 독파하기는 힘들 것 같다. (사실 나도 어려워서 못 읽...)

소설이나 에세이를 가장 먼저 추천했던 이유는 “공감과 감응”이라는 태도를 갖추고 토론을 시작했으면 좋겠어서다. 공감이 전제되지 않은 - 옳음과 덜 옳음을 재단하기 위한 토론은 ‘현재 이곳의 페미니즘’안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직까진 내견해다.

그렇다면 본격 <페알못의 페미니즘책추천> 첫 번째는



#현남오빠에게 (★☆)

부제가 ‘페미니즘 소설’이다. ㅎㅎ 조남주, 최은영 등 한국 문단의 여성작가 7명이 쓴 단편 모음집. 앞의 세 편은 세대별로 다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뒤의 네 편은 현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가상의 세계가 주무대이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앞의 세편만 읽어도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뒤의 네 편중에서는 일종의 ‘미러링’적 구성을 취하고 있는 구병모 작가의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을 즐겁게 읽었다.

조남주, 최은영, 김이설 소설은 <82년생 김지영>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고,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선택이 ‘지금까지의 여성들이 하는 선택‘과 다르다. 어쩌면 현실의 여성들이 그런 결단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 결혼을 하지 않는 것, 여행을 떠나는 것,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를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것, 그들이 기대하는 며느리가 되지 않는 것, 아들의 잘못을 감싸 안지 않는 것. 등등. 

정말로 그렇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소설과 미디어를 통해 나름의 실천(!)들이 전파될 테니 더 다양한 선택들을 여성들이 하게될 것이다. 과연 30년 후의 세상은 어떻게 바뀌어있을까? 두근거린다.

_

일부러 제목을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현남 오빠에게> 속 현남은 전형적 ‘한남’이다. (으..으.. 타자 치면서 몸서리 치며 싫어하는 중) 여자 친구를 선택의 주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잘해’주면 되는 사람으로 본다. ‘작가의 말’처럼 나도 소설 이후를 추측해보았다.

결혼을 앞두고 이별을 통보하는 그녀에게 현남이 ‘몰랐어, 미안해. 너 아닌 다른 여자에게 다시는 안그럴 께. 안녕’ X잡고 반성할 일은 정말 만에 하나... 일 것이며, ‘내가 이렇게 잘해줬는데, 어떻게 감히 네가’ 억울해 할 것만은 확실하다.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런 이별이 어딨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달라’고 해서 차 안에서 주인공을 실컷 패버릴지도 모르고, 밤에 집에 칼을 들고 나타나 강간할 수 있으며, 휘발유통을 들고 집 앞에 나타나 불질러버리겠다 고성방가를 하며 동네 망신을 줄지도 모른다. (놀라지 마시라, 이 세가지 예는 내 지인 혹은 동생의 지인들이 직.접. 겪은 이별에 대처하는 남자들의 스토리였다. 당연히! 사귈 땐 그런 놈 인지 몰랐다고 한다.)

_

가장 가슴 아프게 공감하면서 읽은 것은 요새 최애(!) 작가인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

생각하면 그렇다. 소설처럼, 이 땅에서 딸로 길러진 다는 것은 아무도 보지 않는 엄마의 눈물을 먼저 헤아려 닦아주는 것이다. 엄마에게 향해지는 부당한 대우들을 엄마를 대신해 싸워주다가 따귀를 맞는 것이고. 그러나 끝끝내 자신의 문제 앞에 무기력한 엄마에게 화내고 난 뒤 자책하는 것이다.

“다른 이가 겪는 부당함에는 화를 내고 저항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이 겪었던 부당함을 애써 보려 하지 않게(p.67)” 길러지는 딸들. 더디지만 분명하게 이 딸들은 어머니와는 다른 삶을 선택 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당신(만)의 평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터. 집안의 평화를 위해 자신들 안에서는 항상 내전 중이었던 엄마와 딸들을 해방시키자. 누군가의 침묵으로 유지되는 특정 일방의 ‘조용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_

<경년>은 읽고 나서 많이 울었다. 내가 생리 중이어서 이기도 했지만.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자신을 바라보는 장면 -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갈등하는 소설 속 ‘나’의 독백들에 강하게 이입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해친다. 사랑을 멈추어야 하는가. 해치지 않게 나를 보호해야 하는가. 투항하는 순간 동조자가 되며, 싸우는 순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해치게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_

각자의 결단이 있고 각자의 선택이 있을 것이다.
다만 필요한 건. 자신의 말을 하고. 스스로의 선택을 믿는 것뿐.
요즈음의 변화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그리고 “난 어째서 그를 견뎠을까.(p.66)” 하고.


p.12-3 (현남오빠에게 )
저는 저도 모르게 규연이가 오빠 동아리 후배라고 강하게 말했고 오빠는 오늘 왜 그렇게 예민하냐며 ˝그렇다고 치자˝했어요.
왠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오빠 손을 잡아끌고 길을 건너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규연이게 직접 자신은 오빠의 동아리 후배이고 저와 다른 과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그런데도 제가 울었던 건 오빠가 우겼던 일이 화가 나서도, 그래놓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별것 아닌 듯 넘겨서도 아니에요. 사실 규연이를 만나러 가면서 정말 내가 틀린 거면 어떡하지, 내가 헷갈리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저 자신을 계속 의심했기 때문이에요.

p.69 (당신의 평화)
정순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정순은 언제나 자기 행동의 의미를 찾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행동이 옳고 귀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유진도 그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 엄마의 자유의지로, 엄마의 신념대로 살아왔다는 믿음으로 정순이 견뎌왔다는 것을. 그런 엄마가 자신의 삶을 ‘이런 삶‘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엄마에게 했던 방식으로 선영 씨 대할 생각하지 마. 엄마, 그건 아니야.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 괴롭힐 자격 없어.˝

p.74-75 (최은영 작가노트)
여성주의가 남녀의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고 사랑을 반대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은 틀렸다. 나는 여성주의야말로 사랑을 향한 투쟁이며, 사랑을 죽이는 가부장제의 해독제라고 생각한다. 한쪽의 일방 적인 굴종을 요구하고 오만가지 방법으로 인간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방식으로는 어떤 인간도 해방될 수 없다. 다른 인간에게 굴종을 요구하는 인간마저도 말이다.

p.224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넨 충고를 가장한 폭언은 이랬다.
너만 모르지, 아니 아는데 모르는척하는지도. 그렇게 둘러대고 신경 쓴다는 점에서 이미 호구야. 네가 상대해주니까 널 계속 찾는 건데 그걸 받아주면 너도 한과 다를 거 하나 없어, 오십보 백보야. 그런 무해한 척하는 순진함은 사실 나태함의 다른 이름이고 결국 넌 기꺼이 2차 가해자로 복무한 거야... 말이 심하다니 천만에, 그걸 복무가 아닌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니... 피곤하다고? 저쪽은 인생이 조각났는데 고작 피곤함 따위를 내세우게 생겼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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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없지 않다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from 쟝르개척 2018-11-12 21:54 
    아침 출근 길에는 연극배우 엄지영씨의 미투운동을 유튜브로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늦은 퇴근 길에는 올해는 참 추웠던 2월 이었지, 봄을 상상했다. 곧 꽃이 피겠구나. 그리고 조금은 낙천적이어졌다. 2월과 함께 시작된 #metoo 운동은 당분간은 지속될 것 같다. 공작에 놀아날 수 있다, 자기 파괴적으로 성과 없이 끝날 것이다, 여러 예언과 걱정이 유행이므로 나도 예언을 해야겠다. 그 치들이 기대하는 모습의 적폐청산은 아닐지라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2. 성희롱 가해자가 되지 않는 법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
    from 쟝르개척 2018-11-12 23:57 
    #페알못의페미니즘책추천 3번째 책은 역대급으로 쉬운책이다.......... 음..... 난이도 별반개(☆). 요즈음의 미투에서 뭔가 억울하지만 그래도, 실수하지 말아야겠다 라는 마음을 먹은 남자들(부장급의 중년 뿐만 아니라도 남자라면 누구라도)이 읽고 공부하기 좋다. '여자들은 도대체 왜 분명하게 NO라고 말하지 않는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부터, '이런것도 성희롱이라고??' 풍부한 예시(남자 입장-여자입장 비교), 심지어 성희롱 가해자로 연루되었을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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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가끔 아니, 자주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른다. 멀미 날것 같이 쏟아지는 신간을 구경하면서 만져보고 읽어보고 쓰다듬어도 보고 그러면 괜히 뿌듯해진다. 힐링타임이랄까. 충동구매는 잘 안하는 편인 데, 이 책은 사서 읽으면서 집에 들어와 끝까지 읽었다.

‘일’이 나를 해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에 대해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게 주요 문제는 아니었고. 읽으면서 알겠더라. 나,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었던 거구나. ‘생계수단’이라는 의미만으로도 충분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라는 것이 응당.


"(p.19) 오늘날처럼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일을 그저 생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 삶의 방식을 만드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일 기회가 늘어날 것입니다. 일에 임할 때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떻게 변화하고 싶은지, 또 사회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매일매일 원점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질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이란, 사회에서 내가 있을 자리이면서 동시에 ‘나다움-그다움’의 개성을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며, 기회가 생긴다면 실제로 해보면서 깨닫고, 다만 불안한 지금의 시대에서는 “하나의 영역에 자신을 100퍼센트 맡기지 않겠다는 태도”를 가지라는 저자의 말이 단단한 위로로 남았다.

책을 읽고 나서 식탁에 앉아 수첩에 적어가면서 -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의미를 찾아보고, 중요도로 순서를 매겨보고, 일에 훼손당하지 않게 지켜야 하는 ‘나’라 는 인간자체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어쩐지 차분하게 1년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p.52,63) 실제로 자아실현이라는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보면 ‘지금의 나‘는 임시적인 모습일 분 ‘진짜 나‘가 아니고, 내 안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훨씬 더 훌륭한 ‘진정한 나‘가 있어서 그것을 목표로 삼아 매진하며 자신을 질타하고 격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아실현의 함정)
원래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의 타자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을 다시 있는 그대로의 타자에게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성립되는 사회는 본래 그래야합니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상호 자유롭게 개방되어야 합니다.(자연스러울 것)"


종류로 치면 ‘자기계발서’ 일 것 같다 다만, “자아실현의 함정”에 대해 언급하고 일방적인 ‘성공’을 독려하지 않는, 조금 다른 의미의 훌륭한 자기계발서. 



언젠가 동생에게 “앞으로 우리는 세 번 이상 직업이 바뀌는 시대가 될 거래. 그러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조절해가면서 일해.” 조언해준 적이 있다. 일 때문에 기 빨려 창백해진 채로 귀가하던 동생이 그 말을 듣고 일주일은 신나서 회사에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이 일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되더란다. 다음 직업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지금을 잘살아야 더 괜찮은 일을 도모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자기를 연구해야겠더란다.

가끔 내가 한 말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는 데, 나도 그랬다. 되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대체 난 뭐하는 인간인가 싶었다가. ‘커서 뭐가 돼야지!’ 생각 할 필요 없이 ‘그냥 내 일을 잘 하’고 있으면, 또 그와 연관된 더 괜찮은 기회가 찾아오겠지 근거 없는 낙관이 생겼다.

한 가지 일이 ‘소명’이며 ‘천직’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저자에 따르면 불확실한 시대 - ‘개인 경력 모델 사회’다. ‘일’이 나를 지켜주던 시대가 지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잔인한 사회다. 때문에 나를 지켜야 한다. ‘나’를 ‘지키면서’, ‘일’ 할 수 있어야 한다.

‘일-과 나-’에 대한 진지한 물음.
가끔은 그것을 묻는 것만으로도, 더할나위 없는 해답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읽고 동생한테 책을 넘겨줬다. 우리 가족 모두 씩씩하게 ‘일’했으면 좋겠다.


p.42

그래서 저는 ‘나다움‘에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 합니다. 하나는 스스로가 알고 있는 ‘나다움‘입니다. 사람들이 ‘나다움‘이라는 말을 할 때는 대부분 이것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다움‘ 이외에도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의 ‘그다움‘도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다움‘은 종종 자기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다른 사람이 본 ‘그다움‘은 객관적이며 정곡을 찌를 때가 많습니다.


p.96

지금은 불우하더라도 반드시 돌아올 시간을 믿고 기다릴 것, 그저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열심히 살면서 ‘그때‘를 기다릴 것.


p.119

논어에는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막연하여 얻는 것이 없다-옮긴이)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보로서 받아들일 뿐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책만이 가진 효용을 살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p.121

지성의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멀리 내다본다면 기초가 되는 부분은 ‘말린 것‘을 통해 견실하게 취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런 후에 필요에 따라 ‘날 것‘을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 ‘말린 것‘과 ‘날 것‘을 튜닝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사회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사건이나 사례의 심층을 재빠리게 읽어내고 제 안에 비축해둔 말린 지식과 연결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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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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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6월 항쟁 관련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시인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의 마지막 구절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도 너무 사랑하거니와 학부시절에 즐겁게 읽었던 <철학콘서트>의 저자 황광우씨가 쓴 활동가 시절의 기록이라 하여,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어서 빨리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알라딘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배송료 포함 4천5백 원에 득템!)

읽기 시작하자마자 얼마 안가 놀랐다. 무언가 익숙했다. 
이 책의 내용은 대학시절 술자리에서 자주 듣던 운동권 선배들의 경험담 아닌가!!. (-_-) 경찰을 앞에 두고도 태연하게 성공한 ‘도바리’라던가, ‘담배=혁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끊임없이 뻐금대던 기억. 그 와중에 틈틈이 연애를 하고, 두렵고 어려운 결심들을 하고, 흔들릴 때마다 동지들에게 한 말들이 생각나서 다잡는. 약간 허세스럽고, 그래서 더 정감가는. 대단할 것 없지만 그래서 대단한 그 시절의 서사.

술자리와 좀 다른 점은 -김남주, 윤상원, 박관현, 박기순, 윤한봉, 조성오, 노회찬까지.. 한 번씩은 들어본 전설의 이름들이 다 나온다는 것 정도? 그것도 고민 많고 짓궂기도 한 장난꾸러기 동료이자 동지로서.
80년 518~87년 6월 항쟁까지.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 시절의 투쟁사다. 



1.

사람마다 감동을 받는 장면이 다르겠지만, 내 눈에 유독 들어왔던 것은 유인물에 대한 묘사! 
저자는 유인물 살포 전문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나도 일가견이 있던 종목이었다!!) 이를 테면 이런 구절.

"(p.25) 1980년 6월에서 9월까지 나는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을 원 없이 뿌리고 다녔다. 범죄란 하면 할수록 대범해진다. 지하 다방에서 내려가 손님들에게 유인물 뭉치를 던져놓고 잽싸게 사라진다. 도서관에 들어가 공공연하게 뿌리고 선 사라진다. 대학교 캠퍼스 화장실은 가장 안전한 유인물 배급소다. 화장실에다 유인물을 두고 오는데 누가 잡아?
역시 유인물을 뿌리는 작업에서 가장 힘든 것은 빈민가 가택 배포이다. 밤 열시부터 한 장씩 한 장식 신문 넣듯, 대문 안으로 넣다 보면 신경질이 난다. 부수가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미아리 길음동에선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뿌린 적도 있었다.”

ㅋㅋㅋㅋㅋ 경험이 겹치니까, 너무 와닿는 거다.
때는 바야흐로 유인물 뿌리는 것이 제일 뿌듯 한 시절, 대학교 3학년! 학기 중에야 학생들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뿌리면 그야말로 “살포”할 수 있지만, 방학 중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땀 뻘뻘 흘리면서 동네 상가와 아파트를 돌아서 돌아서 꽂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땀에 젖은 유인물은 닳아지지 않았다. 오묘한 동질감. 이명박근혜 시절의 우리는 경찰보다는 경비 아저씨를 피해 도망 다녀야 했고, 수배나 구속보다 벌금과 시민들의 거절이 두려웠지만, 30여 년의 시간을 가로질러 유인물 살포자(?)로서 고개 끄덕일 수 있는 공감 코드가 책 곳곳에 등장해 즐거웠다. 심지어 황선배님(왠지 다 읽고 나니 이렇게 불러야 할 것 같음)은 머지않은 항쟁의 예감마저 유인물 경험담으로 갈음하신다ㅋㅋ

"(p.203) 유인물을 뿌려보면 군중의 마음을 안다. 가리봉역이나 구로역에서 유인물을 뿌리면 혹여 좌경용공세력의 불순한 행동이 아닌가 의심하던 시민들이 이제 격려의 눈빛을 보냈다. 수고한다는 눈인사말이다.”

이 느낌 알쥐. 유인물 뿌려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ㅋㅋㅋ



2. 

"(p. 8) 역사가는 역사의 밖에서 역사를 보지만 실천가는 역사 속에서 역사를 만진다.”

한 시대를 실천으로 산 젊은이들의 기억.
질문이 생겼다. 대체 무슨 까닭이 수천의 젊은이들이 노동 현장으로, 교도소로 가는 것을 주저않게 만든 것일까. 책에서는 시대가 그러했다고 하지만, 그 시대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일까.

보다 더 절박한 질문 하나. 그렇다면 지난 30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금의 젊음들은 이 시대를 이렇게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p.192) 독립운동가 이재유가 1936년 『적기』에 기고한 바 에 따르면, 1933년부터 3년간 검거, 투옥, 고문, 학살된 독립운동가가 자그마치 1만여 명이었다. 1930년대의 조선 인구는 2,000여만 명이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때는 어땠을까?
1974년 박정희 정권이 전국의 운동권 대학생들을 민청학련 사건으로 싹쓸이했을 때 검거된 자가 1,000여 명이었다. 1977년부터 1979년까지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가 300명 이상이었다. 1983년 전두환 정권이 감옥에 가둔 민주인사와 학생의 수는 1,000명을 넘어섰다. 1986년엔 7,250명이 검거되어 4,610명이 구속되었다. 이는 1985년에 비해 2.5배 증가한 것이었는데, 1930년대 초반의 구속자 수와 비슷한 수치였다. 1980년대의 한국 인구는 4,100여만 명이었고, 전국의 교도소는 30여 개에 불과했다. 1,000명이 구속되면 한 교도소 당 30여 명의 정치범이 몰렸다. 교도소가 견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도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1984년 전두환 정권은 유화 국면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었다.”

83년 전두환 정권이 데모로 구속시킨 민주 인사와 학생의 수가 1000여 명, 2010년대 한 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30 청년세대 자살자 수가 1000여 명.
그러니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시대가 “더 나아졌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만한 근거를.

저자는 책을 통해 “청년들로 하여금 심장이 불끈불끈 뛰었던 우리의 과거를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만지게 하고 싶다”했지만, 난 책을 덮고 나서 답답해지고 말았다. 2018년의 우리는 (살인정권이 아닌) 누구와/무엇과 싸워야 “오래 남아있을 만한” 젊음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굳이 싸움일 필요가 더 이상 없다면,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그것이 ‘비트코인’일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하고.


3. 

이 좋은 책을 읽고도 불편해진 것이 – 내가 앞으로 싸울 것들이라는 힌트이려나. 

"(p.73) 평생의 동지요, 반려자로 살아주어야 할 나의 연인은 너무 연약하였다. 그 연약함이 드러날 때마다 나는 먼 장래를 위하여, 서로를 위하여, 이별의 결단을 고뇌하여왔다.

(p.118) 우리의 역사를 노동자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미친 듯 써 내려갔다. 책을 보름 만에 탈고하고 나서 후배들의 자취방을 돌아다녔다. 이대 아내는 임신 6개월,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나가서 일주일을 소식도 없이 외박하였다. 새댁을 혼자 버려두고 뭣이 좋아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아내는 이때의 고립감‧절망감이 뼈에 사무치게 되었고, 지금까지 바가지의 근원지가 되었다." 

군데군데 나온다. 이제는 곱게 보이지 않는 동의할 수 없는 여성에 대한 부당한 시선과 행동들. 전형적인 큰 일-사소한 일 나누기, 해일 오는 데 조개 줍는다는 식의 마인드. 불편했다.

황광우씨 부인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었다. 앞으로는 이런 제목의 수기도 나오면 좋겠다 싶다. “혁명가와 그 동료들의 밥까지 지은 아내”라든가. “수배 끝난 남편은 수배 시절보다 더 자주 집에 안 온다. 차라리 수배인게 나았어” ㅋㅋㅋ 등등..............

당시 선배들이 쟁취한 제도적 민주주의는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 투쟁했기에 겨우 얻을 수 있었지만, 오늘 우리가 원하는 ‘민주적 인간관계’란 굳이 목숨까지 바치지 않고 지금도(그 때에도)당장 실천할 수 있는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그 자체라는 것.

"(p.222) "무릎 꿇고 사느니 보다 서서 죽길 원한 단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그렇게 우리는 살았다. “전두환은 해볼 수 있어도 미국은 이기지 못한다”는 장인어른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두환의 퇴진은 사실상 미국의 굴복이었다. 박종철은 갔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 민중의 가슴속에." 

는 마지막의 이 책의 문장. 전두환의 퇴진이 사실상 미국의 굴복이라는.. 
관점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도 궁금...

미국은 한번도 굴복한 적이 없거니와 이 땅에서 손 뗀 적도 없다. 
6‧29는 미국의 작품이었다. 전두환은 살아서 내려왔고,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군복 입은 자들이 양복으로 바꿔 입은 것이 민주화였다. IMF 외환위기와 이어지는 구조조정 역시 미국의 작품이었고, 87년에는 없던 문제들 (이를테면, 부동산, 비정규직) 마저 생겨났다. 

정말로. 미국은 굴복했는가?

하루에 세 명의 학생이 대공분실에 끌려가지는 않지만, 하루에 세 명의 청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우리가 이름 붙인 여기는 헬조선이고, 지금의 청년 세대를 분노케 하는 것은 꼰대와 개저씨다. (이 개념만큼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 복잡해져버린 싸움, 민주화 이후 더 팽배해진 무기력과 개개인을 잠식하고 있는 분노. 나는 87년 생이다. 내가 경험한 역사는 책 이후의 시기 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최근에 만들어진 문제들이다. 도대체 87년 이후, 우리의 역사엔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4.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젊음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꽤 진지하고 심각하게 10년가량 해왔던 나의 학생운동 경험도 떠올려보았다. 나 개인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고, 끔찍했던 박근혜 정부가 문재인 정부로 교체된 나름의 역사적 순간도 목격했으나,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라는 시구처럼 곱씹어지지 않는 것은.
패배주의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젊음을 지나는 중이어서 인 것일까.

"(p.8) 과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잠기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몸속에 잠겨있는데 우리는 느끼지 못할 뿐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여전히 암담하다. 좋아지는 속도가 나빠지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아름다운˝ 싸움이 사라지지 않았으되 잠겨 있는 역사라면, 지금이야말로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면 좋겠다. 그것이 내 몸속에 잠겨 있다면 진심을 다해 인식하고 싶다. 잘 살고 싶으니까. 정말로. 잘. 살아보고 싶으니까.

나의 젊음은 선배들의 그것에 비하면 부족하게 치열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치열함으로 감히 바란다. 30년 뒤의 젊은이들은 자살하지 않기를.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고 확신할 수 있기를.


(p.102)
˝어이, 광우, 후배들이 날더러 학생회장 하라는데, 해야하나?˝
˝후배들이 하라믄 해야하는 것 아니오?˝
나의 대답이 박관현의 죽음을 재촉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1981년 서울 수유리 전복길의 고모댁에 피신하고 있었다. 현상 수배는 지하생활자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체포된 박관현은 고분고분 수감생활을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먼저 간 박기순, 윤상원이 매일 밤 꿈 속에 나타났을 것이다. 김영철이 광주 교도소벽에 자신의 머리를 박아버리고 정신병자가 되었듯이, 그날 함께 죽지 못한 우리들은 미쳐버리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 그렇게 박관현이 갔고, 이어 신영일 형이갔고, 이어 김영철 형이 갔고, 이어 박효선 형이 또갔다.

(p.183-4)
희한한 일이었다. 모든 피의자들은 고문 하루 안에 다 항복하였다. 대학3학년생, 그 어린 놈이끄떡하지 않은 것이다. 내무부 장관까시 시찰한 상황이다. 치안본부 고문관들은 당황하였을 것이다. 뭐, 이런놈이 다있어?
고문은 살인을 가장한 협박이다. 이대로 가면 죽을 것 같은 공포심리 상태로 인간을 몰아넣는 과정이다. 죽이지 않으면서 죽음으로 가고 있다는 공포심을 자아내는 것이 고문관의 기술이다. 죽임은 고문의 실패작이다. ... 박종철은 고문받다 죽은 고문치사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문에 대한 항거 속에서 죽음을 선택한 고문저항였다.

(p.214)
지금 생각해보면,1987년 6월은 우리가 꿈꾸는 혁명의 시절이었다. 우리는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책에서만 봤지 현실에서 본 적은 없었다. 6월항쟁이 끝나고 나서야 이런게 혁명적 상황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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