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지음, 고원태 그림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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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동틀 무렵에 선물 받은 책인데, 마음에 지옥이 닥칠 때 마다 듬성듬성 읽다보니 여름의 한 가운데서 다 읽게 되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치유자 부부 이명수, 정혜신샘의 ‘시+치유제‘이다. 여러편의 시를 통해 상처를 더듬는다.

˝자기 속도로 가는 모든 것들은 옳다˝

띠지에 둘러진 문장이 그대로 위로가 되어 박혔다. 언제나 시간이 부족한 것 만 같던 공간을 떠나와 나의 속도가 불안할 무렵이었다. 더는 달려지지 않아 멈추었는 데, 나를 둘러싼 여러가지 속도들이 겹쳐서 혼란스러웠다. 정세의 속도라는 것은 언제나 숨이 턱끝에 맺힐 때까지 쫓아가도 뒤통수만 보여주었고, 바깥이었던 사회의 시간은 나와 분리되어 흘러갔다. 일상적 사회에 기준을 두자면 나는 20대를 다 날려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까지 계속 힘들거냐는 걱정어린 질문들을 받고 또 받고, 자책하다 나는 그냥 주저 앉아버리기로 하였다. 주저 앉은 나는 꼴사나웠다. 어루만지기 위한 손길도- 억지로 일으켜 세우려는 우악스런 손처럼 보였다. ‘제 속도를 존중해주세요!!‘ 이야기해도 사실 알고 있다. 가장 내 속도를 존중하지 않았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

p. 72
치유자 정혜신의 처방은 간명하다. 걱정할 거 없다. 지금 일어설 수 없으면 일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 꺾였을 때는 더 걸으면 안될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걸 인정해줘야 한다. 충분히 쉬고 나면 저절로 걷게된다. 당신은 원래 스스로의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걸 잊지 않는게 중요하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깁스도 없이 정신력만 앞세워 걷겠다고 일어서면 근육과 신경, 혈관이 다 파열돼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 .. 본래 나는 내 두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것만 잊지 않으면 지옥을 빠져나간다.

*
책에 나오는 시들을 속도감 있게 읽어내릴 수 없었다. 텅텅 빈 여백들이 의미하는 바는 허겁지겁하는 그 독서들 말고 천천히 쉬어가는 조금 다른 독서를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하는 것 같았다.

서문에 이명수샘은 자신은 심리적 금수저로 이 수저는 후천적이라고 했다. 심리적 결핍감이 없는 것은 전적으로 정혜신 덕분이라며 그에게서 충분히 넘치도록 오랜기간 ‘인정‘과 ‘칭찬‘이라는 영양분을 공급받았다고 했다. 첫장을 넘기며 나는 진심으로 그가 부러웠다. 끊임없이 공급되는 인정과 사랑, 온전한 내편.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 같았다.

p.53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편파성이 긴요할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의 ‘꼭 한사람‘이 되어줄 때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너‘라는 이유만으로 ˝내말이 그말이야˝맞장구 쳐주고 함께 펑펑 울어주는 편파적인 사람이 바로 그 ‘꼭 한사람‘이다. 속세에서는 엄마, 친구 연인, 스승, 친구, 동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공감의 동지다. .. 하지만 누군가의 ‘꼭 한사람‘이 되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상대가 고통이 큰 상황일 수록 더 그렇다. 이렇게 무조건 지지하는게 옳은지, 몸에 좋은 약이 쓴 법이라는데 냉정하게올 바른 말을 제대로 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 이러다 그가 내게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의존하면 감당할 수 있을 지, 내가 그에게 ‘꼭 한사람‘이 될 자격이 있기는 한건지 갈등하게 된다.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갈등까지 포함해서 누군가의 ‘꼭 한사람‘이 되어주는 일은 언제나 옳다. 국민행복지수가 가장높은 나라 부탄에서는 ‘필요하다‘와 ‘원하다‘가 같은 단어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지금 내가 필요해서다. .. 필요해서 땡기는 거다. .. 왜 그런게 땡기는 지 분석할 필요가 없다. 자기결정에도 그 공식은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그렇게 선택하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필요해서다. 그러므로 모든 ‘나의 끌림은 늘 옳다‘

*

맞장구 쳐주기만 하면 버릇 나빠지기라도 한다는 듯, ‘그래 네 말이 맞아‘에 꼭 ‘그렇긴 한데‘ 를 달아야만 직성이 풀리던 지난 날들. 타인의 속상한 상처 앞에서 꼭 그렇게 중립을 지킬 필요가 있었던 걸까.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다 들어줄 수 있는 말들도 인내심있게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은 누군가를 위로해줄 아니, 그 시간과 어두움을 함께 견뎌줄 마음의 양이 충분하지 않아서였다. 여기에 쓰고 저기에 닳아가는 내 마음이라는 것이 -충분치 않으니, 함께 견뎌주어야 하는 타인의 상처를 보는 것이 두려웠던 거다.

그렇게 누군가의 상처받은 마음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록, 나는 자신의 상처에게도 ‘그건 아닌것 같은데‘를 달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야멸찼던 시간들. 내가 자초했던 나의 지옥.

여전히 나는 나의 마음을 채우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래도 덜컥덜컥 찾아오던 지옥같은 순간들을 유예시키는 방법을 조금 알 것도 같다.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 관계에서 감정이 부대낄 때, 이따금 타인의 속도를 가늠해 보는 것.

어제는 땀을 뻘뻘흘리면서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종종 나는 나에게 가장 편파적이어 왔던 사람들에게 공격의 화살을 돌린다. 아직은 마음이 덜 찬 것 같다. 채우고 채워 언젠가는 도전하리라. 

나에게 편파적이었던 이들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꼭 한사람‘이 되는 것.



p. 247
누군가의 입에서 ‘그럴 줄 몰랐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일타쌍피의 지옥문이 열리는 구나 예감한다 ...
가까운 이가 구설로 곤경에 처하면 먼저 당사자에게 물어라. 어떻게 말할지는 그 다음에 판단하면 된다. 내가 코너에 물릴 때 가깝다고 생각한 이가 내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지키면 당사자는 그걸 중립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공격하는 적군으로 간주한다. 너무 힘들어 여유가 없어 그렇다. 내가 그 상황에 처해도 똑같은 심리상태가 된다.
잘 모르면 멈칫해야한다. 정확하게 모르면 침묵해야한다. 그럴 줄 몰랐다고 혀를 차는 일은 게으르고 잔인하다. ‘그럴줄 몰랐다‘말하기 전에 물어라. 단지 묻는 것만으로 양방향 지옥문이 사라진다는데 그러지 못할 이유가 뭔가.

p. 262 내 욕망에 취해 경계를 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맘이 약해서 힘든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해서 자꾸 손해를 보게 된다‘는 이도 있다. 착한 오지라퍼들로 인해 주위사람이 편해지고 세상이 밝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자기 외로움이나 자기 인정욕구, 자기현시 욕망이 동력이되는 오지랖은 오지랖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건강하고 적절한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일이다.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를 넘은 대가가 연이어 나타나는 건 당연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숙고해서 감당할 만큼만 개입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자꾸 개입하게 된다면 내부적인 다른 욕망때문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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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존엄 사이 -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9
은유 지음, 지금여기에 기획 / 오월의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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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분의 조작간첩사건의 피해자들의 증언을 묶은 책입니다.

 

하고 있는 일과도 관련이 있고, 최근에 좋아하게 된 작가 은유가 지은이라 집어 들었습니다. 막상 펼쳐보니, 책을 기획한 <지금여기에>를 제가 알고 있더라구요. 심지어 사무실에 가서 소소한 활동을 함께 한 적도 있었고책에 아는 이름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간첩으로 몰려 국가에 의해 삶을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왜 몰렸냐구요? 지은이가 내린 결론은 그래도 되니까, 그렇게 한 것이다입니다. 단순하고 허망하지만 그게 진짜 이유가 맞더군요.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는 간첩이 필요했고, 그런 국가에서 출세하기 위해 이근안과 같은 자들은 간첩을 만들어 냈습니다.

 

조작간첩에도 트랜드가 있습니다. 글을 모르는 납북어부, 한국말이 서툰 재일동포. 최근에는 신변을 보호해주거나 변호사를 구하는 방법도 모르는 탈북자들을 간첩으로 만드려다 국정원의 거짓말이 들통나 망신을 당했었죠.

 

이들에게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조작하기 쉬운 사람들. 국가의 거짓말에 항변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하여 조작이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이근안은 그런 사람들의 냄새를 맡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P. 115

눈물을 흘려서 한강수 되고 한숨을 쉬어서 동남풍 된다고이근안이 그 작자가 우리한테 한 짓 때문에 너무 많이 울었어요생선 팔 때도 울고 생선 판 돈으로 보리나 쌀 사서 집에 들어갈 때도 울고집에서는 울지도 못하죠내가 울면 애들이 타닥타닥 우니까 집에서 울지 못해.

이근안이 키도 크지 않고 뚱뚱해요몸도 좋아요그 작자가 우리 아바이우리 어머니나에게 한 생각만 하면 지금도 심장이 벌렁벌렁 뛰어나도 우리 아바이 처럼 글을 몰라요은행에 갈 때도 다른 가족을 데리고 가는데 … 덜컥 도장 찍어준 걸 생각하면.

아바이 잡혀간 지 열흘 쯤 됐나그 작자가 집으로 찾아와서 서류뭉치를 내밀고 이 서류에 도장만 찍으면 3일안에 남편이 나온다그래요이 서류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변호사를 사는 서류래요. ‘안심하고 찍어라그러면 남편이 3일안에 온다.’ 또 그러는 거예요저랑 시어머니는 그 말만 믿고 덜컥 찍었죠… 나중에 재판할 때 보니까 그 서류가 아바이가 간첩을 만났다는 내용이었어요우리 아바이가 간첩이라고 내가 증인을 섰대요그 사실을 알자마자 시어머니랑 저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어요.”

 배운 사람들 하는 짓 보고 못 배운 걸 한탄하지 않았다김흥수


*


인터뷰 속 피해자들은 ?’를 따져 묻습니다. ‘왜 나일까?’였던 질문은 내가 뭘 잘못했을까?’라는 반성 섞인 질문으로 변합니다. 그때, 간절하게 점수를 올려달라던 학생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던 것을 잘못했구나, 혹시 내 먼먼 조상이 죄를 지었던 것은 아닐까.

   

P.170

어느 순간에는 우리 조상이 사람들을 거느리고 살았다면 살면서 죄를 지은 게 있었겠다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나는 후손으로서 이 시점에서 죄를 가혹하게 받나보다.”

자기 생각없인 못사는 사람 꼭 지켜주고 싶었다이정미 심진구


*


이근안치들이 맞춤한 간첩으로 선택한 사람들은 그렇게 해도 되는(별탈없는)” 사람들인게 맞습니다만,  정말 그들은 그렇게 다뤄도 되는 사람들이 맞았던 걸까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 곳곳에는 폭력으로 짓누를 수 없는 어떤 것 -그것이, 존엄 일지도 모르겠습니다-이 묻어납니다. 통찰, 반성, 꿋꿋함 그리고 노동.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 김흥수 오음전 부부



몇몇 대목에서 슬픔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피해자들이 지닌 선량함 때문입니다. “죽기전에 큰 배를 빌려서 자신이 모는 배에 아내를 태워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 글을 몰라 간첩이 된 납북어부의 소박한 소망에서 울컥했고, 그들의 소망 만큼이나 순박하고 따뜻한 부부의 사진 속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P. 220

드디어 연락이 닿았고 광주역에서 만났다열아홉 살이 된 아들을 그는 바로 알아봤다광주에서 3일을 같이 지내고 헤어질 때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내가 아버지한테 해줄 건 다 했고아버지 내하고 인연 끊읍시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가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됩니다.”

얘가 경찰 시험에 필기 까지 합격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진 거지필기도 붙고 만능 스포츠맨이고 떨어질 이유가 없어단지 아버지가 간첩이라는 이유로 그런 거야나한테 그래놓고 올라가서 한 달 도 안돼서 한강에서 투신자살한 거야애가 그렇게 죽은 것도 나는 몰랐어요. 4년이 지나고 난 다음에 풍문으로 들었어요.”

― 열네 살 납북어부 억울해서 공부하고 돈 벌어 남주다김용태



마지막 인터뷰. 짓지 않은 죄로 아들마저 먼저 보내고, 아들 삼아 키운 남의 자식들에게는 돈을 떼이고, 재심무죄판결로 받은 보상금을 손가락질 하던 형제들에게 다 갈라줘 버리고, 술을 안 먹으면 잠이 안 온다던 김용태씨의 이야기는 많이 먹먹했습니다.

 

내 것 없이 다줘도 돌려주지 않던 세상과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상에 돌려주기 위해 장학재단을 차리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더는 사람을 못믿겠다고 했으면서도요.

 

무엇 때문에?

오후의 시청 벤치에 앉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는 간첩조작의 피해자로만 남고 싶지 않은 것 같습니다. 타인의 연민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은듯 했습니다. 그가 남은 삶을 잘 살아내서 자신을 배신한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은 책의 기획의도처럼 힘과 용기 혹은 희망, 그 비스무레한 것이 아닐까 하고.

   

P.8

모든 폭력이 발생하는 원리가 그렇듯이 가해자는 그래도 되니까조작한 것이고피해자는 그래도 되는 사람들이니까 조작대상이 됐다.


*


그래도 되니까 했다라는 가해자의 논리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이근안 나쁜놈, 안기부 개자식들, 이것이 국가라고?”하면서 미워하고 이를 갈고 욕하는 것으로 -금새 휘발되는 즉자적 분노로-만 세상의 많은 서사들을 대해서는 안되겠다 싶어졌습니다. 부지불식간에 그래도 되니까저질렀던 많은 것들이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존재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겨왔을지. 사실 저는 그 문장 앞에서 섬뜩했습니다. 무감각하게 살아간다면 나 또한 언제든지 가해자가 될 수 있겠구나. 내안에 있는 폭력을 경계하는 것.

 

덧붙여, 간첩조작 피해자들의 한 많은 사연을 안타깝게만 슬프게만 읽지 않기 바랍니다. 그분들이 잔혹한 고문과 사회의 외면에도 망가지지 않으려 애쓰며 기어이 살아온 것이야 말로, 세상에는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라는 증거일 테니까요. 책 제목 폭력과 존엄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삶이지 않을까요?

P. 7
국가라는 추상적 실체가 폭군처럼 들이닥칠 때 일상은 어떻게 파괴되는가. 그 폐허 위에서또 다가오는 하루를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는가. 망가진 일상을 복구하는 힘은 무엇인가. ‘왜 하필 나일까’라는 물음의 도돌이표를 어떻게 안고 사는가.

P.11
끊어진 용수철처럼 자주 주저앉곤 했지만 내겐 그럴 권리가 없었다. 세상의 악에 대한 무지는 나의 게으름 일 뿐, 그 엄연한 시간을 살아낸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P.11
끊어진 용수철처럼 자주 주저앉곤 했지만 내겐 그럴 권리가 없었다. 세상의 악에 대한 무지는 나의 게으름 일 뿐, 그 엄연한 시간을 살아낸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P. 85
문학적인 것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것, 자연적인 것, 어두운 것, 낡아버린 것, 빠져드는 것, 아슬아슬한 것임을 소녀 순애는 마음으로 느꼈다. 설명할 순 없지만 울컥한 것, 불안하지만 설레는 것, 외롭지만 고고한 것을 이야기하는 문학에 빠져들었다. 그건 어쩌면 너무도 일찍 자신에게 닥친 상실과 떠돎을 체험한 탓에 생긴 끌림인지도 모른다.

P.139
백살일비.
양민 백을 죽이면 그 중에 게릴라 한명이 끼어있을 것이고 양민 이삼만을 죽이면 이삼백의 게릴라는 완전히 소탕될 것이라 했던, 그리하여 수만의 양민이 희생되고 마을이 송두리째 불탔던 핏빛 낭자한 사건. … 생과 사는 우연에 맡겨졌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4·3의 상흔을 숙명처럼 안고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갈 방법을 도모해야했다.

P.153
책, 산, 바다, 사람, 그리고 말하기. 그의 일상 복귀를 도와준 것들의 목록이다. 특히 그는 말 할 대상이 절실했다. 자신의 죄 없음, 억울함, 막막함, 허무함, 살 만함, 감사함 같은 감정의 치밈과 요동을 터 놓아야했다. 답답했으니까. 그리고 한 존재가 말하기 위해서는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말할 권리는 그래서 곧 들릴 권리이기도 한 것이다.

P. 188
“우리 큰 딸 하는 말, 아빠는 항상 연구하고 어디서 남들을 가르치는 게 성격에 맞는 거 였는데 그게 너무 안 되니깐 도저히 이 세계에서 살 수가 없었다고, 만약에 아빠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 생애에서 자기가 쌓아올린 학문을 갖고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예요. … 그 사람의 논리나 설교를 들으면서 와, 이 비싼 강의를 내가 듣는 구나했죠. 어떤 때는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있어요, 강아지하고 둘이 들을 때가 있어요. 아이들은 학교생활로 바빠서 나가고. 그럼 강아지도 경청을 했어요. 정말이에요, 들어요.”

P. 222
“이상하게 술을 안 먹고 나면 가슴이 허전해. 이쪽이 하나 없는 거 같고. 가끔 그런 게 있어요. 그동안에 참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 사람들한테 배신도 많이 당했고. 이 사람은 내가 이만큼을 주면, 내가 열 개를 주면 최소한 열 개는 몰라도 한 다섯 개는 줄 것이다. 이랬는데, 보니깐 사람이 안 그렇더라고요. 이 사람한테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싶으니까 돌아서는 게 인간이더라고. 그래 이제 내가 사람을 안 믿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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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7-28 17: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 ‘억울함‘ 인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책을 잘 못 읽어요..

공쟝쟝 2017-07-28 18:22   좋아요 0 | URL
억울하기만 하지는 않았어요. 너무 억울한 사연이지만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서 피해자들이 피해자로만 읽히지 않더군요. 오히려 존엄이 읽혔습니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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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그곳에 있었던 걸까.

너는 왜 도청에 남았던 걸까.

너는 왜 죽어야 했던 것일까.

그렇게 무서웠으면서, 그런데 마치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라도 된다는 듯이. 너는 왜.



(p. 92)

여러분, 지금 나와 주십시오.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침내 도청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잠들어 있지 않았다. 귀를 틀어막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고개를 젓지도, 신음하지도 않았다. 다만 너를 기억했다. 너를 데리고 가려 하자 너는 계단으로 날쌔게 달아났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치 달아나는 것만이 살 것인 것처럼. 같이 가자,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너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


*


어떤 서사는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각오를 해야한다.

12년전 도청에 갔던 그날부터, 10년 전 태백산맥을 덮고 부터, 3년전 팽목항에 다녀온 그 이후로 나에게 5·18은, 남부군 빨치산은, 세월호는. 누군가는 없애고 싶겠지만 분명히 없지 않고, 있는. 부들부들 살 떨리는, 이 국가 폭력-학살의 서사는. 어금니를 꽉 깨무는 각오 없이는 직면하기 힘든 어떤 것 이다.


작년부터 5월이면 5월과 관련된 책을 한 권씩 읽자고 했다. 올해는 미뤄두었던 한강의 소설이다. 소년이 온다. 한강의 518이었기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각오를 했지만, 계속해서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이 비극을 안다. 이 소설의 끝을 안다. 끝을 알아서 미리부터 슬펐다. 미리 슬퍼해두고 있는 데도 한 문장 한 문장 눈으로 훑는 것이 고통이었다. 코끝으로 계속 올라오는 울음을 꾹꾹 누르면서 지하철에서. 집에서, 카페에서. 한 문단을 읽고 덮었다가 다시 한 문장을 읽고 덮고 했다. 한 번에 다 섭취 하기는 너무도 힘든 책이었다. 마지막 6장을 읽으면서는 엉엉 통곡하고 말았다. 새벽이었고, 옆에서 자던 동생이 깨서 나를 달랠 정도였다.


(p.114)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 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


내가 아는 광주는 학살과 수난의 서사만은 아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아쉬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 속 그의 증언처럼 518은 역사 이래 가져본적 없던 民이 이룬 공동체의 서사이다.

계엄군이 물러간 자리. 해방광주, 절대공동체. 세상에는 없었던 광주의 일주일.


혼란을 방지하겠다는 명목으로 들이닥친 공권력은 民을 학살했으나, 공권력이 물러가 民의 자치가 이루어지는 광주는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아름답기까지 했다더라.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아본 느낌이 들어서, 이런 공동체라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다는 증언도 들어본 적이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공포 앞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자들. 그러나 권력은, 비범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그것은, 그들이 든 총은 폭력이었고 폭력이었으며 ‘인간’이 아니었다. 공권력의 아이러니.



(p.119)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굶기고 고문하면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어리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


너는 사라지고 없게 된 그 날 이후 살아남은 이들은 ‘인간다움’이 죄가 되어 ‘인간’을 부정하기 위한 고문과 고통 속에서 차라리 몸이 지워지길 바라는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김진수처럼 삶을 차마 이어가지 못한 이들도 있다.


(p. 130)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으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는 유리를 가지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거야.


*


5‧18 사진첩속 으깨진 여자의 얼굴을 보게된 순간 한강은 “거기 있는지도 미처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짐”을 느꼈다고 했다.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일까. 찾으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훼손한다고 훼손되어질 수 있는 것인가.



(p.212)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


가해자의 폭력성을 강조하기 위해 희생자를 희생자로, 피해자를 피해자로만 남기지 않았으면 한다. 광주(와 국가폭력의 희생자들)를 타자화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어서 어쩔 수 없게 된 경우란 없다. 눈을 감고 뜨는 것도 선택인 만큼, 거대하고 구조화된 폭력 앞에서 개개별의 시민들은 나름대로의 선택을 했고 그저 ‘당함’으로 머무르기 만을 원하지 않았다. ‘당함’만으로는 역사가 되지 않는다, 그를 넘어서는 ‘행함’이 광주의 본질이다.


문학이 삶을 넘어설 수는 없겠지. 언어가 실재하는 고통을 초과할 수는 없겠지. 우린 그저 유추할 뿐이지만. 그래도 이 봄이 가기 전에 읽기를 다행이다. 깨져버리면서 영혼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던 반짝이는 고통의 서사. 동호와 정대, 진수와 정미.


소년이 온다가 오랫동안 읽혔으면 좋겠고,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2017.05.15)


p.121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 곧은 물성대로 활짝 펴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 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p.127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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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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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p.)
아무리 설명해도 수컷들은 모른다. 딸아이에 대한 나의 감정은 혈육의 정이라기보다 여성 간의 자매애에 가깝다. 할머니 이전부터 대대손손 피를 타고 전해 내려온 소수자 감수성이다. (..) 빨래를 걷는데도 꼼짝 않고 누워있는 남편, 결혼 전에 아빠를 볼 때면 좀 궁금했다. 옆사람 힘든게 왜 안보일까... 나중에 알고보니 못본척 하는게 아니라 아예 안 보이는 거다. 대대손손 소통불능의 장애를 겪는 남성들. 그렇게 살아도 삶이 유지됐으므로 타인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이 퇴화한 것이다. 무심함이 무뚝뚝함, 남자다움으로 미화된데다가 학교나 학원에서 안 가르쳐주니까(...) 아주머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갯짓으로 건너편 빈자리를 가리키셨다. 힘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외면이 안되는 거다. 한 때 딸이었던 사람들은 그렇다. 엄마 따라서 눈물의 방에 갇혀보았기에 안다. 나지막한 신음 소리. 그곳에서 오래 있으면 들린다. 서로서로 얼굴을 비춰보는 신통력이 생긴다.

(101p.)
죽는 날 까지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고 가는 게 소원이고 그러려면 알뜰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 처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으니 엄마들의 삶에서 알뜰과 궁상은 한 세트로 상호 촉발하며 작용하는 것 같다.
왜 엄마들에게 행복은 늘 충족 유예 상태로만 존재해야하는 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인내하는 삶. 자식을 위해 당신은 포기하는 삶.... 워낙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서 그러신 줄은 안다. 그래도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가 호강 한번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나의 일신의 호강은 주체적으로 '지금 여기서' 챙겨야 한다는 것. 그 엄정한 사실 말이다.
- 은유,<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
여성으로서 여성의 글을 읽는 것은 _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_ 행복감이다.
이런 글을 발견하고 공감할 때 마다 느끼는 쾌감을. 남자들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그건 좀 안됐다.

(27p)
시집, 철학서, 실용서, 번역서 등등 장르 불문 거의 모든 책 첫 장이나 머리말에는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회한의 글귀가 적혀있다. 통계를 낸 건 아니지만 남자필자의 책에서 더욱 자주 본다. 부채감정에 시달리는 아들들. 어머니에게 바친다는 클리셰. 한줄로 요약되는 차가운 이성. 그걸 보면 마음이 안좋다. 남자들이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어머니를 불러댐에 따라 불효자 아들-희생과 헌신의 모성 관계가 영영 고착될것만 같기에 그렇다.
은유,<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
엄마, 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한다.
엄마, 라는 존재에 대해서 또 곰곰히 생각한다.
그 말 안에 들어있는 엄마의 노동에 대해서 생각한다.

엄마를 노동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을까. 값이 매겨지지 않았던, 그래서 당연하게 여겼던, 내가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위한 과정에서의 그 돌봄. 돌봄속에 사라진 엄마의 삶. 엄마의 삶은 고스란히 나에게 스며들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엄마의 밥을 먹고, 엄마가 세탁한 옷을 입고 등교 해 본 사람 누구라면.

그래서 난 여성에게 '엄마'가 되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엄마'라는 존재로만 값어치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을 자신의 노동으로 그냥 살아가는 사람'이 '엄마'라는 단어로 바뀌기를 원한다. 그것은 많은 남자 사람들이 엄마(혹은 부인)에게 돌봄 노동을 떠넘김으로 해서만 - 큰 일을 해내기를 원하지 않고, 혹 자신의 삶이 덜 명예롭게 빛나더라도 시간을 내어 돌봄 노동을 기꺼워 하는 평등한 사람이 되는 것일테다.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의 노동에 감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아들들의 삶으로만 살아있는 엄마의 역할을 이제 나눠서 져야하는 것 아닐까 하는 바람이다. 헌신은 사랑이다. 그러나 하나의 성에게만 부여되는 역할일 수 없다.
은유의 말대로.





(73p.)
탈특권화된 아줌마와 특권화된 어머니의 차이는 무엇일까. 결혼한 여성이 자신의 성역할에 충실하며 집에만 머무를 때, 어머니가 직장생활을 하지 않을 때, 그녀는 나의 어머니다. 하지만 그녀가 욕망을 드러내며 집밖으로 나올 때, 남의 어머니일 때 그녀는 아줌마다. 그녀가 집에서 내게 밥을 해줄 때는 어머니지만, 그녀 자신이 음식점에서 남이 해준 밥을 먹을 때는 아줌마다. 여성은 평생토록 서비스를 하는 주체이지 받는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 아줌마는 여성이 아니라 제3의 성이다. 공적 영역에 나올 수 있는 여성은 남성이 규정한 여성이미지 -젊고 예쁜, 자신의 눈을 즐겁게 할 수 있는-에 걸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줌마는 그들이 기대하는 여성이 아니다.
아줌마에 대한 혐오와 어머니에 대한 신성화라는 이 아슬아슬한 게임에는 경계가 없다.(...) 아들이 필요로하는 변화무쌍하며 한없는 요구의 대상. 이것이 어머니론의 핵심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는 변화하지 않아야한다. 아들의 입장에서 어머니는 자기의 요구대로 변화해야하지만, 근본적으로 변화해서는 안된다.
어머니 억압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보다 20배는 더 오래되었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어머니 자신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원하는 희망과 자신에게 부과된 희망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훌륭한 언어는 아니지만 내게 언어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쾌락을 느꼈다. 그런 점에서 내게 언어를 가르쳐준 아버지들에게 감사한다. (...) 앞으로 딸들은 아버지의 검은 잉크를 엎어버리고 어머니의 젖이라는 흰색 잉크로 어머니에 대해 다시 써야 한다. 이제 아들은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그만 두어야 한다. 딸은 어머니를 자신에게 투사하지 말고 스스로 욕망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사회는 여성과 어머니를 분리하고 '성스러운' 어머니의 일을 남성에게도 부과해야한다.

(179p.)
이제까지 양성평등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은 '공적영역'으로 진출했지만, 남성은 그만큼 '사적영역'으로 진출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남성중심의 같음을 의미하는 '양성 평등'이념은 여성들에게 임금노동과 가사노동의 두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남성들은 '양성 평등'을 위해 여성들과 같아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 현재의 인권 개념에도 보살핌과 돌봄, 배려의 가치 같은 '여성적 경험'은 포함되어있지 않다.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인권운동은 사회적 약자에게 인권의 개념이 확대 적용되는 것을 넘어, 기존의 인권 개념을 문제시, 재구성하는 것 까지를 포함하는 '인권의 운동'과정이기도하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
한 참, DOC 논란으로 타임라인이 핫했을 때, 소위 '빻은' 의견들을 보다보다 못해서. 타임라인에 쳐서 올린 <페미니즘의 도전>의 몇 구절. 그리고 거기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즐겨 쓰는 아들들의 댓글을 보면서 아마 쓴웃음을 지었더랬다. 무엇을 바라 나는 ㅡ 먼지 묻은 책을 털어내, 페이지를 굳이 찾아, 키보드로 줄글을 쳐가며, 안읽어도 되지만 이 논란이 궁금하면 한번 쯤 읽어보면 좋은 글이라는 코멘트 까지 달았가며 ㅡ 설명했던 것인가.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어차피 못알아 먹지. 어떤 것을 이해하는 것은 머리의 능력이 아니라 그 머리를 그렇게 쓰게 하는 감정의 능력임을 알면서도. 혹시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싶어서 설명해주고, 그들의 반론을...듣고.. 아, 또 속고 말았구나. 한숨짓기의 반복.

아직 기대 할 것이 남아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말하는 -내가 지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여하튼 어렵다. (주어와 목적어 생략) 포기하지 않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201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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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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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장강명의 소설 ‘표백‘을 읽었을 때의 불쾌함이 생각나 쉽사리 손이가지 않았던 책이다. <표백>의 청춘은 자살선언을 하고 삶을 버리며, <한국이 싫어서>에서 청춘들은 이민을 선언하고 조국을 버린다. 소중히 여기라고 배워왔던 것들을 버리는 방식으로 저항하는 청춘들. 소설가 장강명은 현재의 청춘들에게 실재하는 현실의 어떤 부분을 소설적으로 (때로는 극단적으로) 추상해내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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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p.78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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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시험의 성적표를 다시 보는 것처럼.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의 문제의식. 오래전 <표백>을 읽고 나서 느꼈던 불쾌함의 정체 였으려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자살을 하거나 이민을 가거나 - 여하튼 한국을 멸망시키는 가장 급진적인 혁명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조가 바뀌는 속도가 우리들의 내면을 갉아먹는 속도를 추월하지 않는다면, 헬조선은 멸망할 것이다. 혁명이 절실하다. 내가 혁명적 인간인가?에 대한 물음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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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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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는 안지 얼마 안 된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그는 탈조선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이민을 원했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썩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흔쾌히 설득되지 않고 싶었던 것은 내 안의 아집일 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보다 삶을, 조국을 사랑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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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보니 그 안으로 발을 내디딜 엄두가 안 났지만, 그렇다고 지하철역에서 나와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너무 지쳐서 ‘차라리 그냥 정면돌파를 하자’는 마음이기도 했고, 애초에 택시라는 건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답안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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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에 동의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가 맞을 것이다.) 이민을 고민 중이라는 동생 친구 이야기에 “그건 도망치는 거고, 어딜 가나 똑같을 거야.”라는 응원이 아닌 저주의 한마디를 남긴 적도 있다.


돌이켜 보면, 이민은 택시처럼 애초에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답안이었다. 다른 세상으로의 눈을 돌릴 수도 없이 나 자신을 방어하기 바빴던 거다. 이 길만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다른 쪽은 보지 않을 거야, 내 선택의 옳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기를 쓰고 증명을 하겠다는 삶의 방식으론 타인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깨달음에 봉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분주한 삶에서 ‘내 삶’은 필연적으로 실종될 수밖에 없는 거구나 까지 눈치 챈 것은 최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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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 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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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나를 - 이민을 원하는 청춘들의 서사를- 고개 끄덕이며 인정하게 되었다.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변혁을 고민하는 사람들 - 종이 한 장 차이구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택하는 거고 누구도 그 방식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물론 떠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나의 동의를 구한 것은 아니지만, 이민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지난 날을 반성합니당 -_-


정말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희한하게 가장 머릿속에 남은 장면은 새까맣게 개미가 붙은 과자를 털어먹으면서 계나를 설득하는 엄마였다.


-

(p.101)

“그런데 우리 집에는 이제 쥐가 더 안나와. 어릴 때 이 집에서 연탄을 뗐던 건 기억나니? 그때는 이 동네가 전부 연탄을 피웠지 … 우리가 이 집에 20년 넘게 살면서 집 구조를 많이 바꿨어. 수리도 여러 번 하고. 옥상 올라가는 계단도 부엌이 아니라 거실에 있었지. 내 말은, 얼핏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예전에 비해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는 거야. 아궁이를 없애고 기름보일러를 들여놓고, 쥐도 안나오고. 우리나라가 워낙 빨리 발전하잖니. 그러니까…….”

엄마는 거기서 말을 흐렸고, 나도 뭐라고 더 말을 하지 않았어.

… 한참을 웃고 나서 문득 ‘옛날에도 우리 집에 이렇게 개미가 많았나.’는 생각이 들더라. 분명히 한 때 우리 집에서는 쥐가 나왔어. 그런데 쥐가 나오지 않게 됐다고 해서 집의 위생상태가 나아진 건 아니야. 쥐가 사라지자 바퀴벌레가 들끓었고, 바퀴벌레 다음에는 개미가 나오고, 그랬던 거야. 뭐가 바뀌긴 했는데 나아진 건 아니었어. …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서울이 옛날이랑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는 데,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야. 나아지는 게 없어. 내가 그냥 여기 가만히 있는 다고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어.

-



25년이 넘은 우리 집 거실은 벽이 나무로 되어있어서, 여름이면 어디선가 나오는 개미로 식구들이 고생을 했었다. 개미를 턴 과자를 먹은 적은 없지만, 남들이 모기에 물릴 때 개미에 물려 고생한 적은 있다. 당시 우리 엄마도 비슷한 궁상을 떨며 나를 설득했었다. “공무원 시험은 어떻니.” “사범대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계나처럼 갸웃했다가 이내 절레절레. 그 때는 왜 저렇게 소박한 소망을 딸에게 바라나 싶었다. 모든 엄마들이 소망한 결과,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지금은 전혀 소박하지 않은 내용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져왔다 vs 더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한국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나아져봤자 그게 그거 일거라는 비관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아직 탈조선이 확 당기지 않는 이유는. 역시, 엄마 때문이다. 엄마 – 그러니까, 바지런히 애써오고 살뜰하게 가꿔온 많은 어른들의 삶. 무능하고 악랄한 사람들이 통치자로 군림해온 이 곳은 전쟁터였고, 학살터였고, 고문장이었다. 어른들이 겨우겨우 ‘고문 없는 세상’을 만들어 물려줬다… ‘헬’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을 내버려 두기만 할 수는 없는 이유-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나니, 전처럼 이민을 막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민을 장려하긴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아래의 정도에서 타협하기로.


이 곳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떠나기를 바란다. 여긴 정말 정글이니까. 피해서라도 자신을 지켰으면 좋겠다. 다만 조금이라도 남은 힘이 있는 사람들은 바꿨으면 좋겠다. 포기하기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이곳에 있으니까.


(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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