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긴긴 연휴에는 끝장낼 수 있지 않을까?하여 도전한 크리스하먼의 민중의세계사
(학부생 시절부터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였으나 언제나 중세에서 멈췄던 그 두꺼운 책)
나 자신을 과대평가 했나봄.. 추석내내 열심히 읽었는 데도 292페이지 ㅠㅠ 그래도 어떻게 저떻게 산업자본주의까지 왔당!! 맥주를 마시며 산업혁명까지는 달려보련다(불끈_!) 러시아 혁명 백주년을 기념하며 시월 안에는 요 책의 끝을 보자는 다짐.

참고로 책은 두꺼워서 그렇지 무척 재밌다. 우리가 아는 정치적 변화들 뒤에 흐르는 생산력-관계의 맥락들이, 선사시대부터 쭈욱 일관되게 정리되어 있다. 지긋지긋한 왕조나 영웅들 이름을 안보니까 좀 더 쉽고, 콜롬버스 같은 인간들 잘근잘근 씹아주시니 공감되서 좋고... 지배계급과 제국들의 몰락 역사를 보니 현대의 제국도 얼마 안남았다 싶기도 하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한줄로 정리되는 모든 격변이 당시를 살았을 이들에겐 끊임없이 이어지는 변하는 것 같지 않는 날들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미분된 지금의 시간과 미미한 존재일 뿐인 나자신의 느리디 느린 변화 또한 멀리서 보면 격변 이겠거니.

"(p. 244) 수백 년 이상 계속된 서유럽 사회의 변화들은 느리긴 했지만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것은 흔히 당시 사람들은 거의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변화들이었다. ... 느리고 간헐적이긴 했지만 계속해서 생산 기술이 발전했다. 그래서 16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12세기는 물론 14세기에도 보지 못했던 장비들이 넘쳐났다. 주요 도시마다 있었던 기계식 시계, 물레방아와 풍차, 무쇠를 만들 수 있는 용광로, 배를 건조하고 의장하는 새로운 방식과 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들, 전쟁용 대포와 머스킷 총, 전에는 소수의 도서관에 신주처럼 보관된 필사본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원본을 대량으로 복사할 수 있는 인쇄기가 바로 그런 것 들이었다. "

*

르네상스도 루터의 사상도, 인쇄기가 없었다면 거대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스마트 폰이 없었다면 2016년의 촛불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문자, 안경이나 인쇄기, 종이와 전구가 없었더라면 인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쓰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론을 얻고, 그게 움직임이 되고. 칼과 총이 발달하고, 물리적인 힘으로 외화되고, 어떤 정치적 변혁을 이뤄내는 과정.

지금의 우리는,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아이폰은, 어느 페이지 쯤에 있으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속았다. 이렇게 소녀소녀한 표지를 하고서는 이렇게까지 묵직한 소설이라니.

베트남 학살, 인혁당 사법살인, 학생운동, 세월호까지 한국 현대사 전반을 훑는 역사 속 사건들이 설마?했는데 나온다. 


응? 혹시 이 이야기가 그 이야기인가? 하면서 읽다보면 이 이야기가 그 이야기라는 사실을 결국 알게 되고, 자세를 고쳐 앉게 되고,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느 많은 역사적 사건을 담아낸 소설이 그러하듯 ‘이 소재라면 (반드시)교훈을 얻어야만 한다!’는 식의 지사적 느낌은 전혀없다. 되려 철저한 관계 중심의 서사랄까.

피해자가 겪은 고통의 증언이 아닌, 그냥 사람과 사람 간에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관계의 상실-상처-치유-연결 의 이야기. 부담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덤덤하게 읽을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마지막 단편<비밀>은 거의 통곡하면서 봄)

64p. <쇼코의 미소>
쇼코는 할아버지의 여름 중절모를 썼고, 나는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던 베레모를 쓰고 갔다. 납골당 안에는 쇼코가 찍어준 우리 가족의 사진과, 천변 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사진이 있었다. 두 장 모두에 쇼코의 시선이 내려앉아 있었다. 쇼코는 납골당 유리문에 두 손바닥을 대고 말했다.
˝미스터 김.˝


*
소설에 흐르는 관계들이 마음에 남았던 까닭은
세로의 관계들이 ㅡ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있어서. 또 넓고 희미하게 이어진 가로의 관계들이 있어서. 이를테면 외국인 친구들. 그리고 어렴_풋이_ 세로마다의 켠켠이 있는 가로의 관계(엄마-응웬아줌마)들이 그렇게 대각선(할아버지-쇼코)으로도 이어져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본 많은 소설은 오로지 두사람만 있는 내용이라던가, 세대적으로 분절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드문드문 있는 역사를 훑는 소설의 경우는 현대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_ 차분하게 직조되어있는 여러 관계들이 반가웠다. 가로, 세로, 대각선의 관계들. 실제로 우리네 삶은 그렇게 종으로 횡으로 여러겹으로 가로질러 짜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아버지 혹은 엄마의 삶을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89p. <씬짜오, 씬자오>
저 모퉁이를 돌면 보이지 않겠지. 나는 현관문 앞에 붙박인 채로 천천히 걸어가는 아줌마와 투이를 바라봤다. 한 번, 두 번, 투이가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바라봤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였다. ... 다시 돌아올지 몰라. 나는 현관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이 오지 않아 나는 투이네 집 앞까지 걸어갔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났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
하염없이 뒷모습을 보고 혹시 돌아오지 않을까 헛된 걸 알면서도 아쉬워서 기다리게 되는 거. 잘 안다. 난 여전히 이별이 익숙하지 않다. 숱하게 많이 겪어온_ 관계가 끝나던 순간들이 소설 속 장면처럼 마음에 가득 남아있어,
“사람들이 떠나가는 게 견딜 수가 없어요.” 최근에도 엉엉 울면서 누군가에게 하소연 했다.

언제나 남겨지는 것은 ‘나’라고 생각했었다. 내 쪽에서 먼저 헤어짐 동인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나를 위해 어떤 인연은 부러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는 것을 서른이 넘어서야 겨우 알았다.

*

115p.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지금도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순애 이모를 저버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신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120p.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
엄마는 이모의 목소리가 잘 안들린다고,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소리쳤다.
˝항상 이런 건 아니라고. 나, 항상 이렇게 사는 건 아니야.˝


*
아끼는 사람의 치명적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기 힘들어 외면하게 되는 마음. 그리고 그를 걱정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해서 부득불 우겨보는 괜찮다는 항변.

굳이 인혁당사건이라는 소재를 불러오지 않아도 이런 감정들이 오가는 장면은 얼마든지 쓸 수 있었겠지만, 젊은 작가는 굳이 ‘엄마’까지 소환해가면서 이 이야기들을 다뤘다. 덕분에 멀게만 느껴졌던 유신이라는 국가 폭력이- 짠하고 기구한 엄마친구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런 식의 장치들이 <씬짜오,씬짜오>나 <미카엘라>같은 다른 단편들에도 콕콕 박혀있다는 게 이 소설책의 미덕인 것 같다.

*

201p. <먼 곳에서 온 노래>
“5월의 광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지 대학에 와서야 토론할 수 있게 된 스물, 스물하나의 아이들이 그게 너무 아프고 괴로워 노래를 불렀어. 어떤 선배들은 노래가 교육의 도구이자 의식화의 수단이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조회시간에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 같은 게 아니길 바랐어.”
선배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진심을 말할 때, 선배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금씩 떨렸다.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마음이 약해질 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고 느리게 읽는 기질, 둔한 운동신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백 가지 의미를 찾아내 되새김질하는 예민함 같은 것들을 선배는 부끄러워했다. 그런 약점들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배가 생각했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선배가 스스로 약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사랑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 덕분에 자주 웃었다.



*

사실 인혁당사건을 다룬 <순애언니>도 그랬지만, 정말 놀랐던 건 <먼 곳에서 온 노래>였다. 이 젊은 작가의 소설에서 좁아지는 학생운동 지평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으니까. 다 읽고 작가 약력을 보니 84년생이더라. (이러면 질투나기 시작한다.) 그녀와 나는 동시대를 산 것이고, 나 또한 학생운동 끝물을 겪었다. 그래서 이건 그냥 내 이야긴 줄.

“넌 운동하기에는 너무 여린 것 같다.” 남자선배들 말에, 감정이 북받치면 목소리가 떨리는 습관을 고치려고 정말 애썼는 데. 괜찮고 무던한 척, 쎄보이고 싶어서 괜히 욕도 많이 하고, 그러면서도 친절하고 똑똑해야 했었다.

2000년대에 학생운동이란 뭐랄까 일종의 소수자 감성이었다. 사회적으로도 인정 못 받고, 학교 안에서는 친구들이랑 멀어지고, 집에도 말 못하고, 스펙과 학점은 걱정되고, 맹바기가 때린 벌금은 어마어마하게 나왔지..

언제나 “학생운동이 어렵다”라는 말이 있었고, 계속해서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상황에서 ‘전통을 끊었다는 비난’과 ‘낡은 운동권이라는 비난’을 위아래 옆으로 들었다. 서러웠다 ㅠㅠ. 그래도 우린 다짐의 노래를 불렀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 ‘아직‘ 운동 비슷한 조직들이 ‘남아‘있어 병든 사회에 대한 토론을, 실천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감사했었다.


206p. <먼 곳에서 온 노래>
나에 대한 선배의 끝없는 관심과 조언이 고마웠지만 그 고마움 만큼이나 불쾌감도 커졌다. 선배가 ‘나‘의 테두리를 짓밟고, ‘나‘라는 공간을 무례하게 침입하는 것 같았다. 선배는 멀리에 있으면서도 내게 너무 가까웠다. 나는 나의 가장 추한 얼굴까지도 거부하지 않는 선배의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애초부터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이었으니까.

*
물론 제대로 사랑받은 적도, 사랑해본적도 없었던 우리 세대에게- 함께 연대하며 싸우는 동지를 만드는 것은 정말 너무도,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지. 승리를 만들지 못했던 기억, 아니 언제나 일상적이었던 패배의 기억들.

그래도 간직하고 싶다. 그 다짐. 작가가 –그 때, 우리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주어 너무 고맙다.

235p. <미카엘라>
그녀 나이 서른하나, 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도 실금 하나 가지 않을 것 처럼 견고해 보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그녀의 이십대를 통해 깨쳤다.

*
이 얇은 소설책 하나가 뭐라고, 읽는 내내 줄줄 눈물 바다였다. 그냥, 너무 공감가고 따뜻하고 음. 그래서.
독후감의 마지막 문장은 작가의 말로 대신해야지. 왜냐면. 지금 내 마음이 딱 이러니까.

292p. <작가의 말>
십대와 이십대의 나는 나에게 너무 모진 인간 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고 부당하게 대했던 것에 대해 그 때의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애에게 맛있는 음식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25) 새삼스런 이야기지만 가장 강력한 지배는 사람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금지하거나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독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갑’은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 잃을 것이 없는 사람, 덜 사랑하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권력이 두려워하는 인간은 분명하다. 세상이 넓다는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사람이다."


앞으로 생각하고 뒤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않는 이야기이지만, 고집세고 궁금한 게 많은 나에게 어떤 종류의 생각과 독서를 말리는 나를 (자신의 방식으로)아끼는 지인이 있었다. 더 놀랍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의 생각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갸웃하고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더는 복잡해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옮겨적고, 받아적었다. 토론 중에 생각이 달라지면 죄책감이 들었다. 생각이 달라지지 않고 싶어서_ 그가 추천하는 책 말고는 책을 읽지 않았다. 표면 그대로 생각하고, 판단도 그 기준으로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간동안 나의 언어는 메말라갔다.
언어의 부족. 서사의 부족. 삶의 부족. 그리고 성찰의 부족.

어느 날 문득, 버석버석하게 말라가는 ‘나’ 라는 인간이 보였다.
생기없는 스스로의 못남이 견딜 수 없어졌을 때, 사람들에게 ‘나 자신’에 대해서 할 말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몇 년치의 노트와 SNS를 뒤적이기 시작했고 - 지겹도록 똑같은 질문을 다양한 단어로 변주한 내 글들을 읽었다.

나는. 멈춰있었다.

_

멈춰있는 모든 것을 멈춰야 했다. 가장 먼저 하던 일을 멈추기로 했다. 쉬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어느 순간 간절했던 쉬고 싶음은 ㅡ 사실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는 마음의 브레이크였나보다.)

하던 일을 멈추니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더라.
그리고, 알았다.
더 이상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구나.

꿈에서 깬 것처럼 관계가 재구성되었다.
나를 아낀다면서 하는 ‘충고’가 내게 얼마나 큰 ‘독’이었는 지. 멈추고 나니 알았다. 입맛이 썻다. 많이 울었다.

_

내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 사람. 그는 왜 그랬을까를 오랫동안 더듬어 물었다.
"세상이 넓다는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그 세계를 만나면, 내가 달아날것 같았나? 아니면 그저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타인을 버텨낼 재간이 없는 사람이었던걸까.

막연한 생각 끝의 결론은 ˝그에게는 어떤 의도가 없었다˝는 것. 그냥 그는 자신의 삶의 방식 그대로 살았을 뿐이고, 많은 이들이 그렇 듯 ‘성장‘을 중요하 게 여기는 부류의 사람이었고, 자기 스타일의 조언을 아끼지 않은 거고.. 존경의 대상이 필요했던 취약한 내가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만 받아들이려 한 게 뒤틀린 관계의 시작이었겠거니.

나의 성장을 그가 제멋대로 재단했다는 것에 오랜시간 분노했었다.
‘성장’이라는 전제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인 ‘나 자신‘에 대한 화 였을 테지만.. 그땐, 화낼 대상이 필요했다.

나는, 나란 인간은. 아- 얼마나 의존하고 싶은 나약한 고집쟁이였던 것일까.

_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사람들을 만났어야했다. 다른 시각의 말들을 듣고, 진한 이야기를 나누고, 미묘한 관계의 긴장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고치고 변주하면서 살아야 했다.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었고, 삶도 스스로가 사는 것이었다.

개인의 평가나 충고에 그토록 깊게 침식당하면 안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충고와 다가섬을 덕지덕지 온몸에 묻혀가면서, 그렇게 내 세계를 주조해 나갔어야 했다. 그런데, 난. 왜 그토록.

맹목적으로 누군가를 따르려 했던 걸까.
같아지려 애썼던 걸까.
다른 것을 견뎌내지 못했던 걸까.
그렇게 분리되고 싶지않아 발버둥 쳤던 걸까.
그러니까,
스스로를 믿지 못했던 걸까.

"(p.257) 한때 나를 구원했던 것(사람,생각,조직...)이 나를 억압하는 시기가 온다. 이것은 나의 성장 때문일 수도 있고 대상의 변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의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내게 이 이야기는 분리의 어려움에 대한 비유였다. 20년된 관계, 30년된 생각, 사라진 이들과 헤어져야 한다."

<정희진처럼 읽기>의 마지막은 이별을 권했다. 꼭 그녀의 이별 권유가 계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사랑했던 많은 것들과 헤어지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일을 멈추고 나니까 더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을 지경이다. 지금 상황이 스스로에게 납득 되지 않을 때는 울컥울컥 속에서 무언가가 치민다. 무언가를 도모하지 않고 멈춰있는, 진공의 시간이 참기 힘들다. 그렇지만 노력한다. 언제까지나 불안을 질료로 삶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혼자 있지 못해서, 너무 많은 마음을 허락하는 거.. 그렇게 계속 힘을 들여가며 내면을 응시하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거.. 이제 그만 둬야지.
이 가만히 있는 시간이 주는 불안감은, 일중독으로 좇아 버려야 할 것이 아닌,
더 적극적으로 가만히 들여다 보아야 할 내 안의 _어떤_ 신호.

달라짐을 자책하지 말자. 분리가 두려워, 나를 해치지는 말자.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나를 억압하는 것들로부터 -
이별하자.

다만, 살아있기 위해서.
스스로를 믿기 위해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9-25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정희진처럼 읽기를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공쟝쟝 2017-09-25 16:27   좋아요 0 | URL
정희진 처럼 읽기 정말 좋죠..두고두고 읽어도 또 남을 책인 것 같아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멋있어서 사놓고 책꽂이에 수년을 짱박아 뒀던 책. 알쓸신잡 보고난 후 김영하가 좋아서 어디 한번 읽어보자고 폈는데, 펴지말것을!

읽는 내내 미간 찌푸리고 봤다. 1도 공감 안가서. 왜 한국문학 남자 작가가 쓰는 소설 속 여성들은 이런 모습일까. 춥팝춥스를 먹거나 정액을 먹거나 내친 김에 해답이나 구원인 것처럼 자살까지 하는 여자라니.
아, 그냥 자기가 미친 거를 꼭 미친여자를 등장시켜서 섹스를 해야만 일종의 미학이 생기는 건가?

공허, 허무, 살인충동, 자살충동, 권태, 냉소, 결핍 혹은 과잉… 어쨌든 뭉뚱그려진 세기말적인 그런 거.. 그런 본인의 세상을 응시하는 자폐적 방식을 굳/이/ 아름답고 퇴폐적인 젊은 여성과의 섹스 아니면 섹스 비슷한 걸로 표현하는 거 하나도 미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자기 자신한테 개새끼라고 하고 싶으면 그냥 스스로한테 개새끼라고 하면 될 것을, 꼭 상처입은 어떤 여자하나 데려다가 그녀의 아름다운 입술로 개새끼라는 소리를 들어야 자신이 개새끼인 것이 인식되는 건가??

아무튼 소설 속에서 나오는 여성들이 불쌍했다. 모든 여성들이 소설처럼 불쌍한 섹스를 하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그런 섹스는 안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
_

아무리 김영하가 스물여덟에 쓴 90년대 소설이라지만 그 후로도 한국남성들이 쓰는 소설 속 여성들은 이런 모습이 지배적(박민규, 장강명, 천명관 최근에 허지웅이 냈던 소설도) 이었던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면서 홀딱 깨버렸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No! 남자작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 여성들을 그런 식으로 파괴할 권리는 없다. (아무리 자기 작품의 창조주라 할지라도!)

여하튼 소설책 안 읽은지 오래되서 더 할말은 없지만, 2천년대 이후 많은 한국 소설 속 여성들이 이런 식으로 소비되어 왔다면 아무리 그 작가의 소설이 뛰어나다고 한들 그 소설을 옹호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것 같다. 욕은 여기까지 하고 그래도 인기 작가라고 하니 기대하며 소설 몇 권 더 봐보겠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순간 책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텍스트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p.70)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독서 행위만 좋아하는 게 아니고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시간이 남는데 근처 서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들어가죠. 꼭 책을 사지 않아도 되고 표지만 보고 쓱 구경만하고 나와도 그 사람은 마음이 흡족해집니다.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은 곧 독서라고 저 역시 생각해요.

*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책이 가지고 있는 물성을 사랑하기도 한다는 것. 한눈에 딱 들어오는 빨간 색, 손에 착 감기는 크기. 작은 체형에 맞는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 시간이 남아 ‘자연스럽게‘ 들른 종로서적에서 지하철에서 들고 있기 딱 좋은 몸을 가진 책을 만났다. <이동진 독서법>

요즘은 신국판 외에도 파격적인 판형들의 책이 많이 나온다. 오래된 고전인데 새옷을 입혀서 나오기도 하고. 보기에 예쁜 책들을 구경하는 것은 괜히 마음 흡족해지는 일이다. 항상 책 살 돈이 부족한 나에게 일년에 한 두권 정도, 디자인이 예뻐서 사게 되는 책이 있는 데, 이 책이 그랬다. 크기와 색깔이 참 갖고 싶게 생겼더라.

(p.5)
책을 펼쳐 들면 순식간에 나만 남습니다. 사람으로 가득 찬 한낮의 카페 한가운데 좌석에서든, 시계 초침 소리만이 공간을 울리는 한 밤의 방 한구석에 홀로 기대 앉아서든, 모두 그렇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경험이지만, 그 고독은 감미롭습니다.
게다가 책을 읽을 때 그 고독은 사실 다른 고독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 자 한 자 책을 쓰는 저자의 고독과 한 줄 한 줄 책을 읽는 독자의 고독 사이. 그 책을 읽는 나의 고독과 그 책을 읽는 너의 고독 사이. ... 홀로 된 채 책을 읽고 쓰는 타인들이 느슨하게 서로 연결 될 때, 그 끈은 세상의 다른 범주들과 달리 억압하지 않습니다. 그 작은 평화 속에 위엄이 있고 위안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연대를 꿈꿉니다.


*
무슨 까닭에서 인지 독서를 멈추었던(물론 필요한 최소한의 책은 읽었다) 5년 여간의 시간을 빼면 나는 항상 어떤 책에 매료되어있었던 상태였던 것 같다. 나에게 읽는 것은 - 퐁당 빠지는 것이라서, 저자에 푹 빠지기도 했고 개념에 빠지기도 했고 이론에 빠지기도 했고 서사에 빠지기도 했다.

멈춰있던 5년을 견디고, 다시 ˝읽어야 해서 읽는 책˝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어떤 책˝을 집어 들기 시작하면서.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연히 책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이번에 이동진 독서법을 읽다가 깨달았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책‘이 었구나.

평생을 질리지 않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책‘일 것 같고, 가지고 싶은 어떤 것이 있다면 그건 ‘책‘이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혼자 있을 때 기분이 너무 좋고, 책-과-나-만 남은 책에 흠뻑 몰입된 상태(세상이 페이드 아웃되고, 책과 나 외에 모든 것이 진공상태가 된 것 같은 그 순간)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 ㅡ 책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책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뭔지 혼란스러웠고, ‘독서‘라는 행위 ‘언어나 글‘ 혹은 ‘심리학, 문학, 역사‘를 좋아하는 걸까 싶기도 했었다만.. 말 그대로 - 텍스트를 품고 있는 물질의 형태로 만들어진 종이 ‘책‘ 자체 좋아했던 거였다니. (어쩐지 ebook은 안읽게되더라 ㅠㅠ)

(p.80)
우리는 일반적으로 책을 내가 습득해야할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나면 그 내용이나 생각이 다운로드 되듯 나에게 그대로 옮겨지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독서를 위해서는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그것에 주목해야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독서에서 정말 신비로운 순간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을 때 책과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신비로우면서도 황홀한 경험입니다.

*
이 외에도 책읽기에 관해 내 생각과 일맥상통하기도하고 다르기도 한 이동진씨의 많은 주옥 같은 문장들이 있었지만 옮겨적지는 않기로 한다.

참, 나는 다양한 종류의 책을 여러권 아무데나 뿌려놓고 읽기 시작해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독서들이 끝나는 데 -물론 읽다가 마는 책은 더 많다- 그런 형태의 독서방법이 ‘초병렬 독서법‘ 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책에 대한 누군가의 생각을 읽는 것만으로도 더 책을 읽고 싶어져 근질근질했다. 독서욕 충만 +_+

‘독서‘ 대한 강박을 버리고 - 있는 그대로의 책을 그냥 즐기는 것.
must로 점철된 인생은 재미 없고 힘들다. 독서 역시 그렇다. 아니, 절대 책읽기 만큼은 강요할 수도 시킬 수도 없는 듯. 자기에게 맞는 것을 자기가 읽고 싶은 만큼만. 딱 그만큼만 읽다가 말아버리길 바란다. 걔중에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으면 더 좋고.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밌게! 이동진 독서법.
책을 가까이 하고 싶은 데, 잘 안읽혀지는 분들께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