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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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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장강명의 소설 ‘표백‘을 읽었을 때의 불쾌함이 생각나 쉽사리 손이가지 않았던 책이다. <표백>의 청춘은 자살선언을 하고 삶을 버리며, <한국이 싫어서>에서 청춘들은 이민을 선언하고 조국을 버린다. 소중히 여기라고 배워왔던 것들을 버리는 방식으로 저항하는 청춘들. 소설가 장강명은 현재의 청춘들에게 실재하는 현실의 어떤 부분을 소설적으로 (때로는 극단적으로) 추상해내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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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p.78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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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쳤다는 것을 이미 알고 시험의 성적표를 다시 보는 것처럼.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그의 문제의식. 오래전 <표백>을 읽고 나서 느꼈던 불쾌함의 정체 였으려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자살을 하거나 이민을 가거나 - 여하튼 한국을 멸망시키는 가장 급진적인 혁명을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구조가 바뀌는 속도가 우리들의 내면을 갉아먹는 속도를 추월하지 않는다면, 헬조선은 멸망할 것이다. 혁명이 절실하다. 내가 혁명적 인간인가?에 대한 물음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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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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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는 안지 얼마 안 된 지인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그는 탈조선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이민을 원했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썩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흔쾌히 설득되지 않고 싶었던 것은 내 안의 아집일 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보다 삶을, 조국을 사랑하기 위해 애썼던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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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보니 그 안으로 발을 내디딜 엄두가 안 났지만, 그렇다고 지하철역에서 나와 택시를 타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너무 지쳐서 ‘차라리 그냥 정면돌파를 하자’는 마음이기도 했고, 애초에 택시라는 건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답안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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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에 동의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민‘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가 맞을 것이다.) 이민을 고민 중이라는 동생 친구 이야기에 “그건 도망치는 거고, 어딜 가나 똑같을 거야.”라는 응원이 아닌 저주의 한마디를 남긴 적도 있다.


돌이켜 보면, 이민은 택시처럼 애초에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답안이었다. 다른 세상으로의 눈을 돌릴 수도 없이 나 자신을 방어하기 바빴던 거다. 이 길만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다른 쪽은 보지 않을 거야, 내 선택의 옳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기를 쓰고 증명을 하겠다는 삶의 방식으론 타인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깨달음에 봉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분주한 삶에서 ‘내 삶’은 필연적으로 실종될 수밖에 없는 거구나 까지 눈치 챈 것은 최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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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해? 다른 동료 톰슨가젤 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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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나를 - 이민을 원하는 청춘들의 서사를- 고개 끄덕이며 인정하게 되었다.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들과 변혁을 고민하는 사람들 - 종이 한 장 차이구나.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택하는 거고 누구도 그 방식을 강요할 권리는 없다. 물론 떠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나의 동의를 구한 것은 아니지만, 이민은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지난 날을 반성합니당 -_-


정말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았지만, 희한하게 가장 머릿속에 남은 장면은 새까맣게 개미가 붙은 과자를 털어먹으면서 계나를 설득하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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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

“그런데 우리 집에는 이제 쥐가 더 안나와. 어릴 때 이 집에서 연탄을 뗐던 건 기억나니? 그때는 이 동네가 전부 연탄을 피웠지 … 우리가 이 집에 20년 넘게 살면서 집 구조를 많이 바꿨어. 수리도 여러 번 하고. 옥상 올라가는 계단도 부엌이 아니라 거실에 있었지. 내 말은, 얼핏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예전에 비해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는 거야. 아궁이를 없애고 기름보일러를 들여놓고, 쥐도 안나오고. 우리나라가 워낙 빨리 발전하잖니. 그러니까…….”

엄마는 거기서 말을 흐렸고, 나도 뭐라고 더 말을 하지 않았어.

… 한참을 웃고 나서 문득 ‘옛날에도 우리 집에 이렇게 개미가 많았나.’는 생각이 들더라. 분명히 한 때 우리 집에서는 쥐가 나왔어. 그런데 쥐가 나오지 않게 됐다고 해서 집의 위생상태가 나아진 건 아니야. 쥐가 사라지자 바퀴벌레가 들끓었고, 바퀴벌레 다음에는 개미가 나오고, 그랬던 거야. 뭐가 바뀌긴 했는데 나아진 건 아니었어. …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고, 서울이 옛날이랑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는 데, 어떤 동네, 어떤 사람들은 옛날 그대로야. 나아지는 게 없어. 내가 그냥 여기 가만히 있는 다고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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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이 넘은 우리 집 거실은 벽이 나무로 되어있어서, 여름이면 어디선가 나오는 개미로 식구들이 고생을 했었다. 개미를 턴 과자를 먹은 적은 없지만, 남들이 모기에 물릴 때 개미에 물려 고생한 적은 있다. 당시 우리 엄마도 비슷한 궁상을 떨며 나를 설득했었다. “공무원 시험은 어떻니.” “사범대 가는 게 좋지 않을까?” 


나도 계나처럼 갸웃했다가 이내 절레절레. 그 때는 왜 저렇게 소박한 소망을 딸에게 바라나 싶었다. 모든 엄마들이 소망한 결과,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지금은 전혀 소박하지 않은 내용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져왔다 vs 더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한국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나아져봤자 그게 그거 일거라는 비관이 지배적이다. 그래도 아직 탈조선이 확 당기지 않는 이유는. 역시, 엄마 때문이다. 엄마 – 그러니까, 바지런히 애써오고 살뜰하게 가꿔온 많은 어른들의 삶. 무능하고 악랄한 사람들이 통치자로 군림해온 이 곳은 전쟁터였고, 학살터였고, 고문장이었다. 어른들이 겨우겨우 ‘고문 없는 세상’을 만들어 물려줬다… ‘헬’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곳을 내버려 두기만 할 수는 없는 이유-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내가 감당해야할 몫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국이 싫어서>를 읽고 나니, 전처럼 이민을 막기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이민을 장려하긴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 아래의 정도에서 타협하기로.


이 곳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떠나기를 바란다. 여긴 정말 정글이니까. 피해서라도 자신을 지켰으면 좋겠다. 다만 조금이라도 남은 힘이 있는 사람들은 바꿨으면 좋겠다. 포기하기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이곳에 있으니까.


(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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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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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올해의 마지막 날, 올해의 마지막 책.

하루종일 까무룩 졸았다 책 한 페이지를 읽다, 몇장이고 슥슥 넘기다가 또 졸음이 오면 조는 채로.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문체의 생겨먹음이 신기해서 심혈을 기울이며 꼭꼭 씹어먹듯 읽게 되는.

반가운 느낌. 얼마만의 소설인지.


계속해보겠습니다.


아름답고 창백하고 쓸쓸한 느낌이다.

소라, 나나, 나기라는 세명의 청춘들도 그렇지만.


특별히 그들의 엄마인 애자와 순자가. 소설에서 묻어나는 그녀들의 삶이.

그녀들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 셋으로 상징되는 지금의 청춘들이 내리는 결론이.


_


(p.23)

아기 같은 건 싫다.

싫어.

실은, 싫어.

무서우니까.

모든 게 걱정될 테니까.

나나는 걱정되지 않을까.

모든 게.

어쩌자는 거야, 아기를 가져서.

숨 막혀.

화가 나.

어쩌자는 거야, 하고 화가 나.

어쩌려는 걸까, 하고 걱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어쩌자는 거야, 하고 화가 나.

나나는 애자가 될 셈인가.

애자가 될 거야?

애자처럼.

애자처럼 사랑해서 아기를 만들고, 아기를 가져서, 압도적인 엄마가 되는 거야?

애자처럼.


(p. 45)

다 자란 나나는 이제 엄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엄마인지도 모른다. 새끼를 먹여본 손 맛. 그걸 갖추게 되는 순간도 오겠지. 언제고 오고 말겠지. 하지만 내게는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생각하고 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 회로가 그렇게 꼬여있다. 생각이 아니고 심정의 영역에서.

그러므로 애초에 아기는 만들지 않는 게 좋다.

아기를 낳지 않는다면 엄마는 없지. 엄마가 없다면 애자도 없어. 더는 없어, 애자는 없는 게 좋다. 애자는 가엾지. 사랑스러울 정도로 가엾지만, 그래도 없는 게 좋아. 없는 세상이 좋아.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 라는 이름의 부족으로


_



소라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 자기 하나로 삶을 끝내기로 했고, 나나는 버젓이 있는 아이 아버지는 상관없이 홀로 아이를 낳기로 했고, 나기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소망을 이뤄주지 않기로 하면서도 서글프다.


소라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 자기 하나로 삶을 끝내기로 했고, 나나는 버젓이 있는 아이 아버지는 상관없이 홀로 아이를 낳기로 했고, 나기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엄마의 소망을 이뤄주지 않기로 하면서도 서글프다.


그들의 결론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어느 덧 삼십대. 결혼과 출산과 육아. 그런 것들이 먼 미래가 아닌 피부에 찰싹 붙어있는 데도.. 나역시 소라처럼, 압도적인 엄마 같은 게 되고 싶은 생각이 없고, 나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문법을 가진 타인들을 가족이라는 이유로 공부할 생각이 없다.


그 시절 모든 엄마들의 삶은 으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또 딸은 그렇게 엄마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가엾고 억척스럽고 쓸쓸한 ‘압도적인’ 엄마라는 존재는. 그런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사실, 어쩌자는 거야. 하고 화가난다는 소라의 입장 처럼. 싫고. 싫다.


나나의 예기치 않은 임신을 대하는 소라의 모습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나는 주제들이 있었다.


비혼주의, 페미니즘,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가임기 여성의 출산지도를 만드는 정부.


사회과학적으로 말한다면, 살만한 세상이 만들어지면,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을 것이고, 대한민국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정말 그런 문제일까. 조금 더 복잡한 문제는 아닐까. 조금 더 난해한 상처는 아닐까.


우리가 경험한 많은 엄마들. 대체적인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들. 그가 소설속의 애자처럼 엄마로서의 삶을 포기했든 하지 않았든과 상관 없이. 그냥 엄마라는 존재들. 그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지. 또 실천해야하는지. 

심정의 영역에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대부분은 소라같은 결론에 다다르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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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4)

나는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몰라. 노동하는 그녀를 안다. 거리에서 변변한 바람막이도 없이 새까만 얼굴로 장사하던 그녀. 남자들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시장에서 호객하고 다투던 그녀. 매일밤 얻어맞은 것처럼 잠들던 그녀.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것 처럼 잠들었다가도 새벽이면 목에 수건을 두르고 집을 나서던 그녀. 열개의 손가락이 모두 곱은 그녀, 어머니의 여성은 진작 중단되어 버렸다. 내가 모르고 있을 뿐, 어쩌면 어머니가 썩 괜찮은 섹스를 경험하기도 하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난다. 차라리 그 쪽이 좋다.

_


여성으로서의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여성이다. 나는 여성이고, 머지 않은 미래에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


선택하지 않은 자명한 상황은 때때로 나를 열받게 한다. 어쩌자고 인류는 여성의 삶을 어머니의 삶으로 대치시켰는가. 그것도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그런데 어쩌자고 또 이놈의 자본주의는 어머니의 삶 마저도 세상으로 끌어내 이윤으로 만들기 시작했는가. 그리고 나는 왜 하필 이 시대에 태어나 그런 혼란스런 어머니상을 갖게 되었으며 어느덧 나이가 들어 엄마를 ‘선택’해야하는 시점에 오고야 말았단 말인가.


더 이상은 자명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 더욱 혼란스러운 걸지도 모르겠다.

여성이고 싶은 것도 아니고, 더더욱이나 엄마 이고 싶지는 않고, 그저 ‘사람’이고 싶은 건데.

결혼, 출산, 육아 앞에서는 이토록 무력한 느낌이다.


소라처럼, 나나처럼, 다른 선택을 해볼 수도 있는 걸까? 나는 그런 용기가있나? 아니, 이 사회에서는 그냥 '평범한 엄마'가 되는 것이 더 큰 용기 잖아.



_

(p.221)

나는 말했다.

공룡이 사라졌잖아.

어.

멸종했잖아.

멸종했지.

멸종이라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지만 실은 천만년이 걸렸대.

그랬대?

천만년에 걸쳐서 서서히 사라진 거야.

꽤 기네.

길지.

그렇게 금방망하지 않아.

세계는, 하고 덧붙이자 나나가 말했다,

그렇게 길게 망해가면 고통스럽지 않을까.

단번에 망하는게 좋아?

아니.

그럼 길게 망해가자.

망해야 되?

그렇게 금방 망하지는 않겠다는 얘기야.

_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이 이야기를 더듬으며, 피식 웃었다. 그 어떤 급진적인 단어 없이도 이렇게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소설이라니. 아름답고 쓸쓸하고 창백하다.


천천히 망해가자. 그 때 까지 계속해보자. 아, 이러한 계속은 멸종 아닌가.

지금의 한국이 청춘에게 제시하는 것은 멸종. 그렇게.

(목적어가 없는) 계속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덜컥 나나처럼 아이를 만들고, 낳기로 하고,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해보겠습니다” 잘지내는 것 같아보이는, 엄마가 되어버린 내 또래의 엄마들은 또 정말로 어떻게들 지내는지. 궁금해지는. 그런 2016년 마지막 날이다. 그러고 보니 2016년은 강남역사건을 계기로 – 기웃거리면서 주저하던 페미니즘을 드디어 공부해본 한해였기도 하다. 몇 가지 생각들이 더 머릿속을 돌아다니지만 더 적지는 않으련다.



서점에서 표지가 너무 예뻐서 사길 잘했다.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이 있는 소설일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앞으로 황정은 소설을 몇 권 더 읽어 보기로.


삶에 마음에 드는 작가나 감독이 추가 되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어쨌든.

새해에는. 조금더 많은 소설을.

다짐해본다.




(2016.12.31)



(p.9).
너무 소중하게 너무 열심히 들어서 기억에 남지 않고 몸이 되어버린거야.
몸?
들었다기 보다는 먹은 거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 정도로 남김없이 먹고 마셔서, 일체가 되어버린거야.
아침에 먹은 우유 한모금이 피가 되고 근육이 되는 것처럼, 그 이야기들이 전부, 내 피가 되고 뼈가 된 거야, 라고 말한 뒤 애자는 자기가 한 말을 생각해보는 듯한 모습으로 다시 생각에 잠겼다.

(p.40)
나나와 나는 소중하게 그것을 먹었다. 성장기였으므로 그 밥을 먹고 뼈가 자랐을 것이다. 뼈에도 나이테라는 것이 있다면 나기네 밥을 먹고 자란 시절의 테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뭐랄까, 나기와 나나와 나는 말하자면, 한뿌리에서 자란 감자처럼 양분을 공유한 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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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조력자 - 남을 돕는 이타적인 활동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볼프강 슈미트바우어 지음, 채기화 옮김 / 궁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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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처럼 누군가를 위해 사는 삶에 길들여져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 같은.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지금 와서 더듬거려 찾아봐도 잘 잡히지 않는다.


내 세계 속에서 ‘-을 위해 ~을 해.야.한.다’가 아닌 명제는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억지로 잘참고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잘 속일수록, 이게 정말로 맞다고 고개를 끄덕일수록 ‘나는 가치 있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거의 완벽하게 합리화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모래처럼 느껴지지만 않았다면. 


쉬고 있는 데도 쉬고 싶은 날이 많아졌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몽땅 기를 쓰고 집에 와서는 무기력함에 허덕였다. 읽고 싶은 책은 사라졌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힘들다고 말하는 순간 겉잡을 수 없이 약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강한 모습이어야 했다)


해야 하는 일들에 열정이 생기지 않았고, 원래 어려운 일이었지 자조하거나 이게 뭐냐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기운이 없었다. 움켜쥐려고 할수록 더 새어나갔다. 필사적으로 손바닥에 남은 모래 몇 알 같은 에너지를 쥐어짜던 일상을 연명하던 날들이었다.



"나는 당신을 도와주지만 나 자신은 도움이 필요없어요!"


여름의 한 가운데서 ‘무력한 조력자’를 읽기 시작했다. 타임라인에 올라온 책소개를 봤고, 제목부터가 내 이야기임을 짐작했다. 


자신의 문제와 대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일에 전념하는 '조력자 증후군' 

지속되는 희생적 활동에 합당한 보상이 없어도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 '이상화된 조력자 상'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해칠 지경이 될 때 까지 다른 사람을 돕게된다.


‘-을 위해 ~을 해야한다’는 거대한 합리화의 세계 속에 철저하게 ‘나’라는 존재는 소외되어 있었다는 것. 스스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채로, 수년을 허덕이고 있었다는 것. 당시 내 상태에 병명을 붙일 수 있다면, 조력자증후군이 확실했다.



[조력자 증후군의 정리]


* 조력자 증후군은 자신의 발달을 희생하여 사회적 조력을 경직된 생활방식으로 삼는 독특한 성격 특성의 결합이다. 조력자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의 근본문제는 높고 경직된 자아이상을 지향하는 사회적 외형이다. 자신의 약점과 결핍이 부정되며, 관계에서는 상호성과 친밀함이 제외된다. 조력자의 자기애적 욕구는 크지만 그 전체 또는 부분이 무의식적이다. 따라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데는 미숙하다. 쌓인 욕망은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어린 시절 자기애적 만족이 거절당하면, 부모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즉, 초자아와의 경직된 동일시가 아이에게는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그 아이는 성장하여 자신이 그토록 원하고 그리워 했던 것을 자기 자신에게는 주지 못하고 ‘이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경직된 초자아는 직업적 책임을 강조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어 직업활동을 시작할 때는 이미 조력자증후군이 예비가 된 상태가 된다. 조력자증후군의 예방과 치료의 목표는 초자아 동일시를 통해 이타적 행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아의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p. 24-27)

조력자증후군이 있는 이들의 내면 상태는 화려하고 강한 외형 뒤에 방치된 굶주린 아이의 그림으로 표현 될 수 있다.

“나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X교수님의 집 앞에 있었다. 우리는 이 집에 종을 달아야 했다. 내 앞에 석회암으로 둘러쳐진 높은 담을 올려다보았다. 종을 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장비와 밧줄 등이 더 필요해서 가까운 헛간으로 갔다. 그 때 헛간 안에서 숨죽인 울음소리가 새어나았다. 문을 열자 아주 끔찍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탈진한 깡마른 아이가 오물과 거미줄을 뒤집어 쓴 채 잡동사니 사이에 끼어 있었다.” (30세 의사의 꿈) 

… 조력자로 하여금 자기 내면의 아이를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에 가두도록 한 초기의 결핍이, 이 아이의 욕구를 원시적인 수준으로 보존시켰다. …미숙한 상태로 남아있는 자기애적 욕구에 대한 엄청난 허기는 그 홀로 자신의 외형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있는 일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_


책을 펼치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이다. 타인의 꿈이지만 직관적으로 내 모습임을 눈치 챘다. 오랫동안 방치된 굶주려 있는 어린아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의사의 꿈이 내 꿈처럼 눈에서 오락가락 거릴 때 마다, 나는 울면서 산책로를 뛰었다.


다른 이를 도와주는 것이 보람 있지만 때때로 너무 힘에 부쳤던 까닭은, 내가 허기져 있었기 때문이구나. 어렴풋이. 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구나. 

방치된 어린 나에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살찌워야겠다. 보살펴야겠다. 안아줘야겠다. 사랑해줘야겠다. 부모가 해주지 않은 것이라면, 이제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면 된다. 어느 덧 나는 다 자란 어른이다. 되뇌이며.


_


(p.103)[나는 당신을 도와주지만 나 자신은 도움이 필요 없어요] – 자비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는 압력을 받을 때에만 자신을 느꼈다. 손님이 오면 그들을 잘 대접했다. 그러나 자신이 손님이 될 경우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배려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친구들의 불안과 어려움은 자비네의 문제이기도 하여, 그들의 얘기를 참을 성 있게 들으며 관심을 기울여 조언을 하고 돕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불안과 우울은 고독한 산책을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 도와줄 준비, 요구 없음, 어린동생에 대한 배려는 자비네가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즉,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맏이로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만 했던 것처럼 환자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나눠주어야만 했다. …조력자에게는 자기애가 공급되는 주요 원천이 욕구 충족이나 상호적 사회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충족을 가시적으로 단념함으로써 얻어진 감사이기 때문에, 그는 자주 클라이언트에게 심하게 의존한다. …자비네가 공격성을 표출하는 방식은 ‘제3자 변호’의 양상을 띤다. 예를 들어 그녀는 집단의 어느 구성원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이 감정을 다른 구성원을 변호하는 데 이용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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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이로서 사랑받기 위해, 철저히 자기의 욕구를 억압하는 생존방식.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면 동기가 생기지 않는 삶의 방식. 요구가 늘어날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나는 더욱더 책임을 다하고자 애썼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없는 나날들이 많아지면서 천천히 질식되고 있었던 것 이다.



(p.112) “이웃을 사랑하라.”뒤에오는 “네몸처럼”은 종종 간과된다. 


성경의 사랑하라, 에는 ‘네 몸과 같이’라는 말이 따라 왔구나. 몰랐다. 아니, 알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는 아니, 앞으로의 사랑에서는 ‘나’를 빠뜨리지 않으리라.



***



두 가지가 어려웠다. 책 자체의 번역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순간순간이 너무 괴로웠다는 것. 빼곡한 예시 속 곳곳에서 발견되는 나와 같은 이야기들. 역할 수록 꼭꼭씹어 삼켰다. 속상하고 속상해서 속상함에 내성이 생길 때 까지. 여름내내, 나는 몇 번 이고 반복해서 이 책을 읽었다.


서른 살, ‘무력한 조력자’를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표현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고민을 앓던 지나간 3년의 일기처럼. 더 바쳐지지 않는 모습을 자책하면서 괴로워하기를 되풀이했을까.


여전히 스스로에게 온기를 주는 것은 서툴지만, 종종 잊혀지곤 하는 ‘나’에 대해 '내'가 독려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삶이 이전처럼 그렇게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초자아에서 자아가 되라’는 책의 처방을 곱씹으면서-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돈을 벌고, 또 충분히 쉬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돕는 것이 좋다. 

나의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기쁘고 즐겁다. 그러나 ‘나’를 도외시하면서 살아가지는 않아야겠다. 그건 정말로 그 누구를 돕는 일도 아니며, 돕지 않았을 때 보다 더 서로에게 상처주고 끝난 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무력감’은 나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일상의 권력 관계에서 거대한 한국사회의 구조에서 특히 세월호의 침몰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 무력했고, 그 무력함이 온몸에 젖어들어 숨이 막힐 정도였다. 모두가 그 구조적 무력감에서 헤어 나올 수는 없겠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식을 택해야한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의 활동을 통해 조금씩 무력감을 극복한 한명 한명이 늘어 날 때, 사회 총량의 무력함이 – 무력의 구조가 – 타파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타인을 해치지 않는, 타인을 위하기를 꺼리지 않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


그들이 ‘네 몸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나를 일으켜 남을 세우는 활동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_

(p.253 조력자 증후군의 결론)

내가 보기에 자신의 조력자증후군에 대한 현실적 접근은, 우선 조력을 초기 아동기에 입은 자기애 적 손상의 비교적 바람직한 해결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그러면 방어로서의 조력과 자아에 조절된 활동으로서의 조력을 구분하게 된다. … 자아가 강조된 대답은 대략 다과 같을 것이다. “지금까지 제 인생의 기회를 너무 돕는 일에만 쏟아 부었어요. 그걸 넘어서서 이제 기회를 확장시켜볼 수 있어요. 제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절 도와주세요.” 초자아에서 자아가 되어야 한다. - 프로이트의 언설을 이렇게 변형하는 것이 조력자 증후군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변화 속에서 조력은 폄하되거나 조롱당하지 않으며, 그 자체가 창조적이고 만족감을 주고 자극과 성장의 기회가 풍부한 활동으로서 놓여난다.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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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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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읽는 삼미라.

책은 책대로 그대로인데 그걸 읽고 또 읽는 나는 많이 변했다. 두가지 포인트. 청춘, 그리고 탈주.



# 청춘


"(p.185) 청춘은 고장난 탱크와 같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누구나 그런 모습으로

내일의 문앞에 서있었다." 


스무살에 읽을 때는 전혀 감흥 없었던 문장인데 와닿아버렸다. 

맞아, 내 청춘 또한 저런 모습과 닮았었지. 동의가 되고 만 것이다. 

그 동의는 어쩌면 나의 청춘시절이 지났다는 반증이다.


"나 아직 20대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청춘'이라는 단어는 부담 스러웠고, "아 20대가 너무길다~" 꾸역꾸역 버리고 싶은 스물아홉을 보냈다. 어느 덧 서른을 맞이한 내가, 나에게 맞는 나이를 가졌다며 기뻐하던 내가, 이 대목에서 눈물이 왈칵 터졌던 건 미안해서 일거다. 고장난 탱크처럼 앞으로만 달리던 나 자신에게. 나의 청춘에게



"(p.191) 그녀는 끝없이 울었다.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므로, 운다는 느낌보다는 증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202) 빠빠빠 빠빠빠빠. 그리고 나는, 필름이 끊어졌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대학시절의 마지막 필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살아움직이던 내 청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후에도 20대의 나날이 계속되었지만-이후 내 삶은 결코 청춘의 범주에는 들어갈 수 없을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미,


5분의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청춘은?!

... 대부분이 필름이 끊어져서 보냈다ㅋㅋ <그녀>의 죽고 싶어처럼 열심히 살자를 입에 달고 다녔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셨고, 울다가 내가 증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좌충우돌 천방지축. 과도하게 신이났고, 불현듯 우울했다가도, 또 다시 신이 나길 반복. 무언가를 발산하고 토해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ㅡ 주체할 수 없는, 감당이 안되는 극단의 어떤 상태의 시기였다. 그래서 참 간절하게 <그녀>처럼 혹은 <나>처럼, 남루하기 짝이 없는 날 것의 나 마저도 함께 견뎌 줄 연인 혹은 동지같은 존재를 바라고 필요로 했더란다. 뭐, 번번히 실패했지만.


확실히 스물여섯 이후 부터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훨씬 덜하게 되더라. 어쩌다 한 번, 발작처럼 엉엉우는 시간들이 있긴했지만, 그 또한 해소가 덜 된 남은 감정들이 었던 거지,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이 근거는 아니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살아움직이는 것 같던 시간. 그 기억들이 너무 강렬해서, 스물 여섯 이후의 삶은 도통 떠올려지지가 않는다. 나의 청춘은 너무나 날뛰는 류의 것이라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한동안은 내가 준 상처들에 물밀듯 밀려오는 후회를 감당하느라 정신을 못차렸을 정도. (지금도 수습중)


삼미의 마지막장을 덮고나니, 그 후회마저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20대를 정리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음, 깔끔하군.





# 탈주_ 남은 질문들.


애들이랑 책을 읽고 토론을 했는 데, 다 소설속 <나>처럼 살겠다고 해서, 질문하고 싶었던 거다. 

음?? 다들 이렇게 살면?? 세상은 누가 바꾸지? 아예 바꿀 필요가 없어지는 건가?


"(p.297)

지구상의 어떤 양서류보다도 돈 욕심이 없어진 나는 - 늘 조금 이라도 더 나의 시간, 나의 삶을 확보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또 찾았다. 결국 나는 작은 종합병원의 후생관리 직원이 되었다. 균등하고 변함없는 하루 6시간의 업무. 그리고 그 6시간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나의 시간이다. 인생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


생각해보니 이 것도 스무 살때는 전혀 문제 의식 없이 읽었던 부분인데, 결론자체가 불편해져 버린거...


탈주의방식으로 자본주의에 저항하자는 물론 기계부품처럼 살지말자는 뜻을 이해못하는 건 아니나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말자.  - 그러니까 "임금노예로 살것이냐 /임금노예란걸 자각하고 거기서 도망칠것이냐" 이 두가지 선택지만 내놓는다.


도망친다는 것 부터 계급적인 행위다 (그들식으로 말하면 '세상으로 하여금 도망치게 하는 것' 이겠지만). ‘적당히 벌고 아주 잘살자’는 생계의 위협을 받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혁명만큼 비현실적인 구호다. 헬조선에선 탈조선마저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소리. 소설 속의 <나> 또한 부양가족이나 병든 부모처자가없는 일류대출신의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탈주의 방식을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다. 두 어깨에 지어진 가족생계의 위협으로 부터 탈주하라고? 이건 좀 약오르는...


'탈주'라는 방식이 지극히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문제다. 연대 혹은 관계가 없다. 그들 나름의 공동체가 있을 수도 있겠는 데, 가능 할런지는 의문.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강요하는 '자기 착취라는 경쟁법칙'을 간파한,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착취를 멈춘 삶.. 더 부연하면 개인이 개인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자기에게 좋다고 판단되는 욕망을 쫓아가는 삶의 형태가 정말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일 수 있을까. 


복잡한 미사여구로 포장하지만 탈주는 결국 도망 아닌가. 속세를 떠나 '나 혼자의 삶만' 살겠다는 게 삼미의 결론이라면, 그건 일종의 냉소주의다.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들에게 ‘모두 같이 힘을 모아 이 병든 세상을 바꿔보십시다’라는 주장은 무척 피곤한 것일 테니까. 


어쩌면 탈주의 철학은 혁명을 멈춘자들의 투항을 합리화하는 세계관일 지도 모르겠다. 혁명은 포기했고, 연대는 불가능하고, 자본주의는 이미 다 세상을 먹어버렸고,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하자니 그건 맘에 안들고... 계속 어디로든 도망치자~~ 뭐 이런.


물론, 그 시각의 전복이 주는 쾌활한 기분(소설 속 ‘나’가 잠을 늘어지게 자고 푹~쉰뒤에 느끼는 세상의 발견)마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뒤집어 말하면 그 생신한 느낌은 '임금 노예'를 멈춤으로서 함께 오는 일시적 해방감아닐까. 


해방이 진짜 해방이 되려면,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바로서야하고, 사회로부터 개인적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것일터,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개인적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거부한다면, 결론은 무기력일 것이 자명하다. 아무리 내 자신이 그 배에 타고 있지 않더라도, 그 배가 침몰하는 것을 바라만 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는 지독한 지독한 무력감을 느꼈다. 그 무기력. 


자기만의 방식으로 경쟁을 거부한다고 한들,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 일을 고개 처박고 안보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더하여, 탈주를 계속 해야한다는 건, 계속해서 불안한 상태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처럼 여겨진다. 과연 인간은 유목민인가?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정착하고 싶어한다…


정리하면, 삼미식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은 철저히 자본주의에 포섭되어있으므로 그 자체가 한계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욕망을 주장하며 혁명을 포기한 지식인들은 -좋든 싫든 진보라고 할 수없을 것 같다. 대중에게 무기력을 설파하니 그게 양아치지. 그리고 혁명이 어떻게 욕망과 함께가나. 자본주의가 욕망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인데. 그냥 솔직히 "욕망을 포기 못하겠는데 자본주의도 아니꼽다" 이런식으로 이야기하지, "지난날의 혁명이 욕망의 포기를 강제했기 때문에 졌다"니 그건 무슨 혁명하다 돌아가신 분들이 억이 막힐 소리냐 …


라고... 그자리에선 

열심히 까댔지만 그래도 난 삼미를 여전히 좋아해 -!


삼미식의 진보라고 했는데, 사실, 삼미는 진보가 아니다. 소설은 진보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냥 덤덤히 그래, 이런 삶도 있다~를 보여주면서 자본주의에게 침을 뱉을 뿐. 소설과 별개일지도 모르지만, 겹쳐져서 내가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삼미식의 삶을 그나마 자본주의의 대안이라고 제시하는 이들이었나 보다…쩝…



#


생각해보면, 삼미는 스무살에 정말 좋아했던..

나의 첫사랑같은 소설이다.

그래서 이젠 보내줄 생각이다. 안녕, 삼미. ㅠ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게.. 


(201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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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헌정 - 5ㆍ18을 생각함 인문정신의 탐구 18
김상봉 지음 / 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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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11)

그렇다면 무슨 내력이 있어, 아직도 5·18을 모욕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까닭은 오직 하나,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5·18을 죽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의 빛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진리를 모욕하고 다시 그 심장에 못을 박음으로써 진리를 매장하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대검으로 찌르고, 총알로 뚫어도 진리는 죽지 않는다.

 

… 악몽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역사, 제주에서도 남쪽 끝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고양의 금정굴까지 전 국토가 학살터인 나라에서, 한맺힌 역사가 어디 5·18 하나뿐이겠는가! 국민을 지키라고 있는 군대가 국민을 학살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초현실 주의적인 현실에서 누가 어떻게그 많은 죽음을 모두 애틋하게 기억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왜 아직 5·18인가? 게다가 하필이면 왜 모욕당하는 방식으로 기억되어야 하는가? 간단히 그 까닭을 말하자면, 그것은 5·18이야 말로 악령으로부터 선량한 사람들을 지키는 방패이고 대문의 빗장이기 때문이다.

 

… 1948년 제주에서 1980년 광주까지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공격하고 학살하는 일을 말 그대로 밥먹듯이 해온 자들이다. 그런데 그 미쳐 날뛰는 군대 마귀들을 이 땅에서 몰아낸 것이 5·18이었다. 5·18은 이 땅의 민중들을 군대지옥에서 구원하고 해방한 사건이다. 또한 그것은 지금도 자기의 부모 형제자매를 향해 총을 쏠 준비가 되어있는 이 패륜적인 군대 마귀들을 향해 이 선을 넘지 말라고 박아놓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인 것이다.

 

… 그런데 광주가 있다. 1980년 광주의 역사가, 5·18이 있다. 총을 든 군인들 앞에서도 겁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경찰의 차벽으로도 막지 못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해지면 결국에는 군대마귀를 동원해야하는데, 5·18광주항쟁이라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버티고 서있는 것이다. 그 기둥을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군대마귀를 동원할 수 없다. 그 빗장을 풀지 않고서는 이 땅을 군대지옥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역사를 없앨 수는 없으니 할 수 잇는 일이란 오직 왜곡하고 모욕하는 것 밖에 없다. 5·18은 북한군이 벌인 소행이라거나, 홍어택배 어쩌고 하는 소리들은 모두, 다시 군대를 동원하고 싶은 은밀한 소망을 버리지 못한 무리들이 그들을 가로막고선 헤라클레스의 기둥 앞에서 이를 가는 소리요, 피에 굶주려 으르렁거리는 신음인 것이다.

 

*

 

몇 년 사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5·18이 왜곡되고 있다. 왜 그렇게 하는 걸까. 답답하던 차에 김상봉 교수님의 책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철학의 헌정> 한문장 한문장 읽는데 2006년 (혹은 07년) 학부시절 철학과 강의실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세계가 확장되던 수업시간이 교수님께는 오랫동안 다듬어온 나름의 철학을 강의로 푸는 시간이었던가보다. 반가웠고 기뻤고, 잊었던 퍼즐들이 다시 끼워 맞춰졌다.

 

그래 그랬지, 총을 들었지. 5·18 이후 더 이상 통치자들은 총을 들지 못했지. 총을 들어도 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그래서 모욕하는 거구나. 예전 같았으면 무력으로 밀어버렸을 텐데, 명분 만들고 이야기 만들고 법도 만들어야 하고…그러다보니 스트레스 심했나보네.

 

‘그놈의 5·18만 없었다면! 총들면 다 입 닥칠텐데! 저 징글징글한 시끄러운 국민들이 알아서 길 텐데.!!’

 

그들의 명맥이 사라지지 않고서는 (오늘 날 처럼 활개쳐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80년 광주를 모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구나. 잊지 않는 것을 넘어 싸우는 것이 여전히 몫으로 남아있구나.

 

*

(p. 31)

그러므로 5·18을 생각한다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그것의 고통을 기억하고 따라 체험하는 데서 시작되어야합니다. 직접적인 고통과 그 고통이 주는 좌절과 절망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분노를 따라체험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결코 5·18과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따라 체험한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 하지만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는 나를 뛰어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나를 내가 선 자리에서 들어 올려 타자의 자리에 옮겨놓을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생각이 제자리에 머물러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남의 자리에 나를 두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정신에게 남의 고통이란 제 편한 대로 해석된 관념적인 기호로 남기 십상입니다. 5·18을 생각하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따라체험하기에는 너무도 큰 고통이요 수난이었습니다.


*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는 나를 뛰어넘지 않으면 안됩니다.”


*


살아남은 자들의 거대한 슬픔이 번지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대학교 1학년, 추적추적하게 비가 내리던 금남로의 5·18 전야제. 기념하러 갔고 구경삼아 간 그 곳엔 엉엉 억막힌 울음을 울고 있는 광주시민들이 있었다. 아직 한 세대가 다 가지 않은 25주기였다. 그 날, 홀로 슬프지 않았던 나는 몰라서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2학년 부터였던 것 같다. 5·18때마다 망월묘역 한구석에서 까만 얼굴을 시커멓게 태워가며, 외운 것 같기도 하고 이미 내 언어 같기도 한 열사의 이야기를 목메어가며 가이드 했었다. 적게 잡아 100명 많게 잡으면 1000명도 될 것 이다. 대부분이 기껏해야 한 두 살, 많으면 다섯 살 후배들이었고, 때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있었다. 부러 시간내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꺼이 발품을 팔아주는 젊은이들에게 광주를 이야기했다. 나름의 미안함을 덜고 싶었던 것 같다. 광주의 고통에 연대하고 싶었다. 전대 캠퍼스 곳곳, 어떨 때는 금남로, 특별히 망월묘역. 윤상원 열사의 마지막 말을 읽어주기도 하고, 김남주의 시를 읽히기도 하면서.. 도청의 마지막 새벽을 잊지말아달라, 같은 말을 수 번 하면서도 매번 진심이었다.

 

그 때의 나는 내 말의 무게를 알았던 걸까.

몰랐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알 것 같은 것은.

 

듣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오월을 간직했을 거라는 것.

 

자살은 있어도 열사는 없던 시대. 스펙이나 경쟁의 삶이 아닌 열사의 죽음을 먼저 배운 조금은 특이한 나의 대학생활. 우리 지역의 우리 학교의 시간은 다른 대학의 그것과는 다르게 참 느리게 흘렀었지. 그 느림에 빚진 것처럼 나도 참 열정적으로 느리게도 살아 왔구나.

 

그 때 나는 오월과 한 몸 같았는데, 요즘의 나는 어색하다. 내 안에 무언가가 변한 것일까 아니면 고통 앞에서 겸손해 진 것일까. 그래도 그때 말을 많이 해놓아서 다행이다. 내 말이 내 발목을 잡을 테니. 언제고 선택의 순간에, 기꺼이 발목이 잡히기를.

 

*


(p.94-5)

.. 하지만 시민군은 거절하는 그에게 한사코 수류탄을 떠안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마치 김밥을 먹으면서 같이 먹으라고 친절하게 사과라도 건네는 듯이.

 

생각하면, 피와 김밥 옆에 수류탄이 같이 있는 탁자는 얼마나 초현실주의적 정물인가. 하지만 그 정물 앞에서 우리가 겸허한 마음으로 조금만 더 머물러 깊이 생각하면, 이 그림 속에는 얼마나 심오한 통찰이 담겨있는 가. 사랑은 피를 나누는 것이며, 밥을 같이 먹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의 참된 사랑과 연대를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사랑은 마지막에는 같이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시민이 똑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는 없다. 수류탄을 건넸던 시민군이 헌혈을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울 것을 요구했다면 수류탄이 아니라 총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은 총을 들고 싸우던 시민군이 헌혈차에는 총이 아니라 수류탄을 주고 갔다는 것은 그들이 헌혈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우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 없다면서 받지 않으려는 사람에게 굳이 수류탄을 강요하듯이 떠안기고 갔다는 것은 똑같은 방식으로가 아니라 하더라도 모든 시민이 같이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요청이었을 것이다.

 

만남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같이 기쁨을 나누는 것에만 존립하는 것이 아니다. 기쁨은 언제나 만남의 마지막 결과이다. 사랑의 기쁨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같이 나누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지 않으면 안된다. 고통은 수동성이다. 하지만 내가 타인과 고통을 나눌 때 나는 자발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이요, 그런 한에서 고통을 나누는 것은 그 자체로서 능동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고통 속에 하릴없이 같이 머무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고통은 본질적으로 그것의 부정을 지향한다. 고통의 주체로 하여금 고통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는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것이다. 그런 한에서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고통을 다시 부정한다는 것, 다시 말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같이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이 외부의 적대적 타자인 한에서 고통을 극복하기위해 같이 행위한다는 것은 같이 싸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한에서 사랑은 같이 아파하는 것 뿐만아니라 같이 싸우는 것.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같이 위험에 맞서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피와 밥 곁에 수류탄이 놓일 때, 사랑의 성찬은 완성되는 것이다.


*

 

타인의 고통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함께 싸우는 것.

 

5·18에 위대함을 가져다 붙일 수 있는 이유는

놀랍게도 그 항쟁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싸우는 것도 모자라죽음까지 무릅 쓴 용기를 내며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려 했다는 것.

그러한 항쟁 공동체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기에 철학자 김상봉은 5·18을 '씨알 공동체'이자 '서로주체성의 현실태'로서 계시된 '우리 모두의 나라'라고 썼다.

 

고통의 연대와 응답으로서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철학'하는 것 - 여러가지 묵직한 질문들과 마주하며, 5월의 마지막 날, 마지막 장을 덮는다.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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혬혬 2017-07-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사준 책?!ㅋㅋㅋ

공쟝쟝 2017-07-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랫나? 역시상봉샘

혬혬 2017-07-28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좋나보네^^

공쟝쟝 2017-07-28 23:09   좋아요 0 | URL
믿고 읽는 김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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