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민족 상.하 세트 - 전2권
강태진 글.그림 / 비아북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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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머리 식힐 겸 볼까 싶어 사무실에서 가져왔다가, ‘첫부분만 봐야지~’ 앉은 채로 다 읽었다. 초 흥미진진. 서스펜스가 훌륭한 만화여서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응답하라 1988>로 회자되는 시절의 이면 - 안기부의 고문과 조작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화다. 주제도 그렇지만, 주인공이 남다르다. 고무장갑을 끼고, 앞치마를 두른 홍안의 주인공, 안기부 “고문 수사관” 박도훈. 뭐지 ? 싶은 복장은 그가 일(고문) 할 때의 복장이다.


p. 32 (1권)
“그럼 뭐야. 장실장님처럼 강한 사람이 되어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돈많은 놈들이나 조지겠다?”
“맞아, 처음에 그런 생각이었어. 근데, 장실장님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 되어서 돈을 벌면 말이지. 그게 훨씬 더...”


돈 많은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어린 도훈은 돈보다 더 센 안기부 장실장을 만나고, 그 밑으로 들어가 간첩을 ‘잡는’게 아니라 간첩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게 된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 과연 그는 애국자였을까?

강태진 작가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5공 시절의 시국사건과 관련된 조사들 중 가해자들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애국심’, 진정 ‘국가’를 위하는 마음‘, 죄책감이 아닌 자부심”이라는. 이게 무슨 소리야. 작가는 그들 머릿속의 국가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고 한다.

만화를 덮고 난 나의 감상은... 안기부 직원 - 고문 수사관들의 ‘조국’과 ‘민족’은 그의 왜곡된 욕망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한 거대한 기제일 뿐, 그들에게는 ‘조국’도 ‘애국’도 ‘국민’도 ‘민족’도 없다. 전혀 없다. ‘조국’의 크기만큼 부풀려진 거대한 자기 자신이 있으면 있었지. 누군가 그랬나. 박근혜는 자신의 아버지와 국가를 동일시 했고, 박정희는 저자신을 국가와 동일시 했다고.

그것이 무엇이든 - 선택의 시기에 주인공 도훈의 모든 결정은 99% 자기 자신, 자신의 욕망일 뿐이다. 더 강해지고 자하는.(그게 힘이냐 돈이냐의 선택일 뿐) 혹은 살고자 하는.

p.289 (2권)
“너 아버지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니네 아버지 죽은 게 내 잘못이냐고. 경찰이 도둑 잡는 게 나쁜 짓이야? 나는 그냥 내 일을 한거야. 그 사람들이 간첩인지 아닌지 알아내는 게 내 직업이라고!”

자기 일을 한 거란다. 아이히만이 떠오른다. 그러나 만화를 보면 안다. 그는 자기 일을 하지 않았다. 자기 일을 했다고 믿고 싶은 거겠지.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하며 “아이히만을 생각할 능력이 없는 관료”라고 했다. 나는 일면 동의하지만, 동시에 비판적이다. 그들은 생각할 능력이 없지 않다. ‘자신(욕망)’을 위한 선택을 한 것이다. 거기에 명분까지 주면, 완전땡큐인 거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누구나 합리화를 하면서 산다.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타자를 해치는/지배하려는/배려하지 않는 욕망, 반성없는/으레하는/거대한 합리화는 좋지 않다. 그 자신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이 만화는 수작이다. 재미나 내용면에서도 그렇지만, 등장하는 사건들이 대부분이 (완전 비현실적인 간첩 부녀 빼고...) 현실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 사건인가?”하면서 봤는데 2권에서 사건들이 쭉 나온다. 수지킴 사건, 서승 등 간첩 조작 시건, 미법도, 김동식 등등등 그 많은 사건을 고작 2권의 분량에 다 버무려 넣은 것이 대단하다. (그 많은 사건들을 애국한다면서 조작한 안기부 놈들이 더 대단한건가...)

후유증이 있었다. 만화를 다 읽고 잠들었는 데, 꿈 속에서 안기부 대공분실이 나왔다. 고문을 당했는 지, 고문을 한건 지 무튼 너무 힘들었다.

#족민과국조
뒤틀린 시절의 부역자들에 의해 뒤틀려져 버린 단어들 - ‘애국’‘조국’‘민족’이라는 단어는 이제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책에서 많이 조명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애국’을 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가끔 그들의 가치마저 싸잡아 폄하되는 것을 본다. 씁쓸하고 괴롭다. 단어의 의미가 제자리를 찾는 것. 그 단어의 원본들이 가진 의미가 자체가 빛을 잃고 사라지는 것. 불현듯, 지금 해야 하는 싸움은 후자를 막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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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악인열전 - 교과서에선 볼 수 없는 부끄러운 역사
임종금 지음 / 피플파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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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의 구절이 있다. “이근안은 홀로 1970년대를 살지 않았다.”라는 말. “그는 재수 없게 걸렸고, 그 시대에 암묵적 동의를 보낸 자들은 지금 애국노인이 되어있지 않느냐”라는 물음과.

그 대목이 소름 끼쳤던 것은, 종종 ‘구조’의 문제라며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안팎의 모든 불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구조 앞에 개인은 무력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가 그 구조를 유지시키는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물론 이 책에 나온 인간들은 어쩔 수 없지 않았다. 해서는 안될 ‘짓’을 과하게 악랄하게 한 자들이다. 아마, 인류가 역사를 만든 이래 어느 시대에 떨궈 놓는다 해도 그들이 ‘선량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한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간에게 총과 권력을 내어주며 1000명을 죽일 수 있게, 기름을 부으며 부추긴 자들은-. 맨 꼭대기의 더욱 악랄한 권력이었다.

"(p.33) 
김종원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다. 사람 목을 잘라 이웃 지휘관에게 '선물'하는 게 장난이었던 김종원, 그런 그가 불과 20대 후반의 나이에 거의 무차별적인 권한을 받았고, 그는 살육으로 그 권한에 응답했다. 그것은 결국 이승만과 권부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 땅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김종원과 같은 비정상적으로 날뛰는 존재가 꼭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p.69) 
평소 조선인에 대해 민족적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일본인들은 이 유언비어를 믿었고, 경찰과 함께 자경단을 꾸려 조선인 학살에 나섰다. 그 결과 최근 밝혀진 자료에 따르면 불과 4~5일 사이 무려 2만 3058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학살의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정부는 9월 5일부터 학살 수습을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조선인들을 급조한 ‘수용소’에 격리시켜 일본 주민과 분리했으며, 시신 처리에 나섰다.
이때 눈치 빠른 박춘금이 상애회원을 이끌고 나타났다. 박춘금은 상애회원 1000여 명을 이끌고 일본 당국의 수습작업에 적극 동참했다. 일본으로서는 이처럼 반가운 일이 없었다.

(p.172) 
기분이 좋아진 이승만은 국무회의에서 “여러분들, 김창룡 대령을 자식처럼 사랑해 주세요”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우리는 일제 36년을 기억할 때, 몇몇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리지만, 뒤집어보면 그 36년간 대다수는 침묵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 ‘부역’ 했을 것이다. ‘박정희 독재’ ‘이명박근혜 시대’도 마찬가지.

많은 텍스트들이 사회의 많은 불의들을 ‘구조적 문제였다’ 정도로 정리 하곤 한다. 하지만 ‘구조’에 책임을 돌리면 개개인의 선택-삶들은 간과하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각각의 개인들에 묻어나는 사회를 생각하고, 때로는 구조 속에서 나타난 전형적인 개인들을 탐구해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물론, 생각하는 일이 좀처럼 쉽지는 않다. 그러나 친일파는 이완용으로 독립운동가는 유관순으로 정리해 외우고 끝낸다면, 역사는 우리 삶에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p.5)

해서 많은 것들이 잊혔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는 이완용이라는 이름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다 숨어버렸습니다. 해방 후 부당한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된 수많은 민중에 대해서도 '시대가 그랬다'는 막연한 논리로 덮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적 상황이 그랬다 치더라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근현대사의 악인들이 있습니다."

싸이코패스 치안국장 (지금의 경찰청장)-김종원, 자기 동네 가족몰살을 취미삼아 했던 지역구 국회의원-이협우, 동포를 착취해 일본에서 최초 조선인 국회의원이 되고 일본내 항일인사 30만명을 총살할 계획을 세웠던 박춘금, 항일인사들을 고문하고 뒤처리를 담당하다 해방후에는 김주열의 시신을 유기했던 박종표, 항일운동과 공산당원이던 전력을 무기삼아 만주의 항일세력을 토벌시킨 변절자 친일파 김동한 등.

어떻게 이런 인간이 있을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질나쁜 근현대사의 ‘악인’들을 기록했다.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 그런데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충격적일 수 있겠다.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현실만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렇게 피칠갑을 한 역사가 우리 역사였어? 현실부정 하게 되거나, 대한민국의 경찰 조직, 군 기무사령부 등등이 싫어질 수도 있다. 이런 역사를 덮어 놓고- 아무일 없었던 척, 정상인척 살아온 숱한 한국인들의 뇌구조를 의심해보고 싶어진다.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 역사가 현재와 외따로 흘러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의한 시대는 그들을 내세워주고 잘살게 해주고, 심지어는 죽어서도 국립묘지에 안장해주었다.(김창룡)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린지 일년 정도가 흘렀다. 난 이명박근혜만이 적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소망... ‘발본색원’은 불가능 할지라도 몇가지 작업은 하자... 이를테면 국가기관들이 ‘대한민국 악인열전’에 수록되어 있는 수준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역대 상관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까밝히고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국립묘지안장에서 파내고 그들에게 수여된 훈장을 대대로 회수하고 재산도 환수하는.....

하지만 아마 못할 거다. 국민 전체가 들고 일어나지 않는 한은. 대한민국의 ‘국가’기구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오늘 기사보니까 국정원 개정안도 간첩운운하면서 자유당이 막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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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 감춰진 것들과 좌파의 상상력
최세진 지음 / 메이데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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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나의 애인님은 무려(!)장발의 헤비메탈 뮤지션이었다고 한다. 진지한 글, 단정한 옷 매무새, 라식을 하고도 뿔테 안경을 고수하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면 유추하기도 어렵지만, 그 것은 진실인 것 같다. 이를테면 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을 들려주며 눈을 반짝일 때.

나는 묻는다. “이 익숙한 음은?!! H.O.T 노래 아냐?”
그는 손사래 치며 열변을 토한다. 90년대에 제일 좋아하는 그룹이었는 데 의외로 빡센 사회주의자들라며. 어디다 에쵸티를 갖다 대느냐며...
“사회주의?!? 우리 에쵸티 오빠들 노래가 얼마나 애국적이었는지 알아?!? 장우혁이 랩으로 애국가도 불렀다고!! 난 오빠들이 없었으면 사회주의는 커녕 사회문제에도 눈뜰 수 없었어~ 아이야 몰라??”
목소리를 높였지만, 신선했다. 90년대 처럼 자본주의가 기세등등하던 때에도 사회주의 뮤지션들이 있었다고? 게다가 쵸티오빠들이 그들의 노래를 샘플링하였단 말이지... 후덜덜.. 비틀즈의 반전운동 같은 거야 귓등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너무 생소했던 거다.

애인님은 뮤지션들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에 대해서 즐거워하며 수다를 시작했다. 

이야기중 가장 놀랬던 것은 역시 첨바왐바의 텁썸핑. 
이 노래가.. 그런 노래였다니... 퍼..펑크... 민중가요.....?!

흥미로웠다. 기사 같은 것들을 검색하다 첨바왐바, 존레논 등등을 다루고 있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이 멋있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미국의 엠마 골드만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이미 절판되었으므로, 알라딘 중고 결제.

사회 문화 구석구석에 숨겨져있는 좌파적 상상력을 알려보겠다는 취지의 책인데, 솔직하고 거칠게 내 평을 이야기 하면 “혁명 오덕이 쓴 책” 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저자 지금 뭐하실지 궁금함)

SF소설과 게임, 펑크뮤직, 해커 분야에서부터 인물로는 체게바라, 쇼스타코비치, 미야자키하야오, 마르코스까지..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진보진영통신모임 바.통.모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며 구석구석에 숨겨(?)진 ‘혁명’의 키워드들을 찾아내고 있다. 놀라울 따름..

뭐,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이상으로 자본주의는 치밀했고, 또 생각보다 더 세상은 빨갱빨갱했다. SF 소설의 대가인 H.G 웰즈가 사실은 사회주의자 였고. 그가 남긴 <타임머신>이라는 소설은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타임머신...)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자본주의’를 비판 한 거고, <우주전쟁>은 (스필버그의 그 우주전쟁 원작 맞다) 화성인의 지구침공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빗댄 소설이라는 것.. 등등. 구석구석 감춰진 사회주의 창작자들이 놀라워서 반갑고 재밌더라.

"(p.145) 피카소
피카소는 당내에서 계속되는 비판에도 자신의 미술관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이 당에 해를 줄까봐 늘 조심했습니다. 그것은 ˝뭐라해도, 미술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혁명이 잘못되는 것보다는 미술이 잘못되는 게 낫다˝는 발언에서도 드러나듯 혁명에 대한 그의 신념은 매우 깊었습니다. "

이를 테면 피카소가 이정도의 공산당이었던 것도 나는 몰랐던 거지.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 같지만 혁명은 겨우 지난 세기의 이야기이고, 우리세대가 혁명에 대해 냉소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익히 아는 옛날 사람들이 혁명을 꿈꾸지 않았으리란 법은 없는 거다.

"(p.171) 첨바왐바
첨바왐바는 1985년 첫 음반 <革,Revolution>의 표지에 ‘우리의 음악이 단지 즐거움만을 주고, 행동을 고무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음악은 실패한 것이다‘라고 새겨놓았는 데, 지금도 자신들의 역할이 ‘진실을 폭로하고, 투쟁을 선전·선동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첨바왐바는 당시 <革>의 속지를 통해 ‘분열을 중단하고, 함께 투쟁하자‘라고 호소하며 ‘자본가들이 심어놓은 환상을깨고 지금이 바로 투쟁을 위해 일어설 때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그러한 메시지는 변함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인 사건이 생길 때마다 사건에 대한 입장을 담은 노래를 만들며 노동계급과 민중의 투쟁을 선동하고, 자본주의와 우경화한 노동당에 대한 풍자를 노래 가사에 녹여냅니다."


"(p.177) 첨바왐바
1998년 ABC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음반을 훔치는 것에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우리 음반을 품치는 것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첨바왐바는 공식 홈페이지에 ˝만일 우리 음반을 훔치려거든 Virgin, HMV, Our Price,Tower, Andy‘s Records, Woolworth, Boots, WH smith 와 같은 대형 체인점을 추천한다. 동네 작은 레코드 가게 보다 큰 체인점에서 훔칠 때 도덕적인 딜레마를 조금 적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대기업들을 전혀 동정하지 않는다˝고 올려놓아서 대형음반판매 업체들이 첨바왐바의음반들을 카운터 쪽으로 급하게 옮기기도 했습니다."

*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체게바라, 멕시코 등의 남미의 혁명전통 이야기다. 너무 오랫동안 잊고 지냈는 데, 이 책이 출간되던 2000년대 중반 무렵은 멕시코의 사파티스타-마르코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등등 남미에서 일어나는 혁명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던 시절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많은 세계 민중들에대한 연대 감수성 같은 게 있었던거 같기도 하고. (왜 이렇게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지는 모르겠당)

"(P.190) 라쿠카라차
‘라쿠카라차‘라는 단어의 뜻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바퀴벌레입니다. 하지만 바퀴벌레라고 모두 같은 바퀴벌레는 아닙니다. 혁명가요의 제목이 ‘바퀴벌레‘로 된 것은 당시 혁명군인 농민군의 비참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도 하고, 농민군을 돕기 위해 여인네들이 음식바구니를 메고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바퀴벌레들이 줄줄이 걸어가는 것 같아서 라고도합니다. 그런데 넓은 차양의 멕시코 전통모자인 솜브레로를 쓴 혁명군들의 사진을 보니 아마 죽이고 죽여도 다시 나타나는 바퀴벌레떼 같아서 지은 이름이 아닐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라쿠카라차>는 당시 판초 비야와 농민군의 혁명을 찬양하는 노래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19세기 말 동학혁명을 노래한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꽃에 앉지 마라‘같은 거죠."

*

책의 마지막 장은 2002년의 반미 촛불 집회를 활동가로서 지켜보며 느낀 소회와 토론해야할 쟁점들을 제시하고 있었다. 특히 ‘대중운동’과 ‘인터넷’에 대한 깊은 고민들이 인상적이었다. 그 무렵 진보주의 활동가들이 그 주제를 어느 수준으로 토론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자본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것 같지는 않다.

"(p.318-19) 인터넷이 평등하다는 편견을 버려
하지만 인터넷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현재의 인터넷 소통 구조는 이 방식으로 결코 극복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정보의 빈부 격차를 바탕으로 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취하는 현재 구조를 방치한 채 그들의 시혜를 요구하는 운동은 단기적으로는 유효하지만, 대안적인 전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커뮤니케이션 구조에서 자본주의적 소유제도 그 자체를 뒤집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계급문제는 계급적 관점에서 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본이 사유화한 인터넷을 사회화하고, 그 운영방식을 민주화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두고, 그 안에 다양한 전술적인 활동을 배치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과 함께 시작된 촛불은 15년 뒤 박근혜 탄핵이라는 나름의 정치적 성과로 이어졌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혁명은 어느 순간 ‘펑’하고 터지는 것이 아니라, 나날이 계속되는 일상이라서_ 여전히 오늘의 논쟁, 투쟁, 소란에 속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

"(p.9)
그리고 이제 기나긴 혁명은 우리에게 예전보다 많이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그 ‘자유롭고, 불순한 상상력’으로 감추어진 것들을 꿰뚫어보고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즐거운 상상력’으로 바닥부터 전복해 나갈 것을 요구합니다. 일상에 대한 전복의 상상력이 또다시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팔려나가거나 ‘개인적인 반항’에서 머물지 않으려면, 언제나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모순과 거시적인 변혁의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전히 버릴 수 없는, “혁명”에 대한 바람. 그리고 그 혁명을 만들어가는 순간이 ‘춤 출 수 있을 만큼’ 즐거워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당연하지만 구현은 어렵기도 한 내용이라서, 책속의 사례들이 참 좋았다.

자본은 미디어를 장악하고, 미디어는 모든 문화를 다 장악해 버린 것 같지만_ 다른 세상을 향한 우리의 상상력을, 우리의 혁명을, 우리의 춤을 가져갈 수는 없을 것 같다. If I can‘t dance, it‘s not my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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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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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슬슬 불어오는 10월 하면 가을 전어가 아니라 10월 유신이 떠오른다ㅋㅋㅋ 유신과 관련된 책들 중 백미는 역시 홍구샘의 ˝유신˝인데, 박근혜 정권 한창 서슬 퍼렇던 2015년 무렵, 너무 적나라한 표지덕에 지하철 1호선에서 읽다가 어버이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무서워 집어 넣은 기억이 있다. (사상의 자유는 커녕 독서의 자유도 없던 3년전 ㅠ)

바야흐로 하수상한 시절은 가고 지하철에서 꺼내 읽어도 무섭지 않은 시절이 왔다 ㅋㅋ

요새 자료 조사 차원에서 다시 읽는 중 인데, 시인 고은의 말대로 ˝정사와 야사의 변별을 뭉개버린 한홍구 특유의 생동의 역사서술˝이 탁월하다. 특히 책 중반의 여공애사는 다시봐도 눈물이 울컥울컥.


"(p. 166) 여공애사
장기간에 걸친 군사독재에서 1970년대처럼 노동운동 내에서의 성비가 여성 쪽으로 기울었던 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연구자들은 왜 여성들이 그토록 열심히 투쟁했는가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상당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이 자리에서 그 연구 성과를 검토하고 평가할 여유는 없지만, 나는 중요한 질문 하나가 빠져 있는 점이 늘 아쉬웠다. 모순이 존재할 때 사람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970년대는 왜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섰는가를 묻기보다는 왜 그때 남성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았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1970년대 내내 노동운동을 책임졌고, 대학생들조차 변변히 데모를 하지 못했던 유신의 마지막 순간 와이에이치(YH) 사건을 통해 철옹성 같던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는 단초를 열었다. 너무나 단단했기에 작은 충격도 흡수할 여지가 없어 깨져 버린 박정희 정권과는 반대로, 그 시절의 여성 노동자들은 한없이 약했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히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러게 나도 언제나 비슷한것이 궁금했다. 이명박근혜시절 학생운동은 왜 여대들이 도맡아 하는지. 반값등록금, 국정교과서 문제, 언제나 집회의 현장에는 여대생들이 훨씬 많았다. (원래 학생운동권! 하면 남학생들의 이미지가 더 강한데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 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사건에도 견고하던 박근혜 체제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가 알려지는 순간 부터 겉잡을 수 없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

"(p.140) 장준하 의문사
시인 이광웅이 노래한 것처럼 이 땅에서 뭐든지 제대로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분단된 조국에서 통일을 위해 발 벗고 나서다는 것은 정녕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독재정권하에서 수많은 사법살인이 있었지만 민주주의만을 외쳤다고 죽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이승만을 저격했던 유시태나 김시현도 사형을 선고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통일을 외치면 꼭 죽였다. 조봉암이 죽었고, <민족일보> 조용수가 죽었고, 사회당의 최백근이 죽었고, 통혁당 사람들이 죽었고, 전략당 사람들이 죽었고, 뒤의 일이지만 인혁당과 남민전 사람들이 죽었다. 분단된 조국에서 참된 민족주의자의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


친미 반공 청년 장준하도 결국엔 가닿을 수 밖에 없었던. 건드리지 말아야할 마지막 금기, 끝끝내 풀어야할 마지막 숙제, 지금도 목숨을 걸 만큼의 결단과 용기를 내야 말할 수 있는 그 주제.
통일 혹은 분단.
새 정부가 이 선명한 과제를 애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많은 의제들과 나란히 놓고 가야할 현대사의 가장 긴박한 주제 중 하나이다.

*

"(p.365-345) 남민전 사건
남민전 사건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고 어쩌면 황당하기까지 했다. 남민전 전사들의 헌신성과 민주화운동 진영의 보통사람들이 느꼈던 황당함 사이의 거리는 인혁당 사형수 8명의 억울한 죽음을 엏게 받아들였느냐의 차이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광주가 있기 5년 전, 인혁당 8명이 목숨을 빼앗겼을 때, ‘그들은 나일 수 있고 내가 그들일 수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일 수 있었다.(홍세화)‘고 생각한 사람들은 불행히도 많지 않았다. 인혁당은 그렇게 쓸쓸하게 죽었고, 남민전 전사들은 그만큼 더 돌출적으로 과격했다. 이재문은 전창일의 부인을 통해 인혁당 사형수 8명의 가족으로부터 가신 이들이 입었던 속옷을 모아 남민전의 깃발을 만들었다.
... 이재문은 1차 인혁당 관련자이고, 김병권은 해방전략당, 신향식은 통혁당 관련자였다. 꼭 그렇게 모으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1960년대를 대표하는 전위조직 관련자들 중에서 탄압 속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 꼭 이런 처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남민전이라는 지하 비합법 전위조직에 가담한 사람들은 혁명가로서 옳다고 생각한 일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었다. 목숨을 걸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목숨을 걸어본 사람들의 행동을 가벼이 평가하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다. 조직의 모든 기밀을 담은 문서보따리와 모든 증거물과 수배자들이 한꺼번에 털려버린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그 어두운 죽음의 시대를 치열하게 산 남민전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안도현의 짧은 시 한 구절을 한 번은 외어 보아야 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난 왜 이 문장을 공유하고 싶었을까.
미지근한 싸움은 참고, 제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어했던 시인 ‘김남주‘가 몸담기도 했던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남부군 유격대 이후 최초로 무장혁명을 도모한 조직었다고도 하고, 남한 혁명의 전위조직에 대한 열망이 모인 조직이기도 했다한다. (그것이 진짜인지도 알수 없거니와 일망타진 되어 실현되지도 못했다.) 나 또한 처음에 남민전 이야기를 들었을 때, 뜨악 했었던 기억이 있다. 인혁당 사법살인에 대한 정서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읽고 나니,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광주학살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80년대 민주화운동도 더 제대로 볼 수 있듯, ㅡ 비슷하게 모두는 세월호와 지난해의 탄핵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한다ㅡ
맥락. 인과관계, 혹은 그러하기까지.
그러니까, 누군가의 간절함을 절박한 투쟁의지를, 헌신적 삶의 방식을, 어느 순간 고루하다고 여겼던 - 연탄재 발로 차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들더라.

탄핵 이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위해 기꺼이 싸우는 사람들을, 그만큼 절박하게 실천으로 역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고맙게 여길줄 아는 마음의 복원이 시급하다.

*

"(p. 439) 신유신의 밤
유신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는 이 난을 통해 많이 설명했지만, 충분히 다하지는 못했다. 먼저 유신시대는 죽음의 시대였다. 최종길, 장준하와 인혁당 관련자들만 희생된 게 아니었다. 유신시대는 군대에서 1년에 근 1500명이 죽던 시대였다. 유신시대 전체가 아니라 1년에 1500명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죽어갔다. 유신 전체로 치면 1개 사단이 전쟁도 치르지 않았는데 전멸한 것이다. 아니, 전쟁 없이 죽었다기보다는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상대로 치른 전쟁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것이다. 민주화가 이룬 가장 중요한 성과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것보다도 그 죽음의 행렬을 멈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년에 1500명의 젊은이가 소리 소문 없이 죽어나가도 입 한번 뻥끗할 수 없는 것이 유신시대였다."


한홍구는 이를 ‘민주화가 살린 목숨들‘이라고 표현했다. 민주화가 되서 나아진 것이 정말로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일년에 1500명이 죽던 유신시대를 1000명 좀 안되게 죽던 전두환 정권시대를. 우리는 군사독재라고 부른다고.
민주화 이행기를 거처 2000년대가 되면 군대내의 연내 사망자수는 100명 안팎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물론, 단 한 명도 죽어서는 안되므로 그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확 줄어든 사망자 숫자표를 보면서, 아 그렇구나. 유신은 그런 것이었구나. 소름이 끼쳤다. 막연하던 군사 독재를 살짝 엿보고 온 느낌이랄까.

<어버이 연합>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의 다소 괴기한 사고방식을 아에 이해 못할 일은 아니구나 - 그렇다고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싶었다. 말도 안되는 자가 통치하던 말도 안되던 시기. ˝군대에서 살아 나오는 것˝이 정말로 장-한 그런 시기. 그것이 군사독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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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2-24) 유신의 몸과 광주의 마음을 가진 그대에게
그러나 유신시대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뼈대를 만든 시기다. 유신 체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민주화운동 세력조차 유신시대에 만들어진 사람들이었다. 1970~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세력은 한마디로 유신의 몸과 광주의 마음을 가진 세대였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자유와 민주를외쳤지만 정작 자유를 누려본 적도, 민주주의가 몸에 밸 기회도 갖지 못한 불행한 세대였다.
...
유신시대는 일제가 키워낸 식민지 청년들이 장년이 되어 사회를 운영해간 시기였다. 이 시기는 친일잔재 청산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 친일잔재를 청산하려던 세력이 거꾸로 친일파세력에게 역청산당한 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참혹하게 보여준 시기였다.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박정희를 사령관으로 하는 병영국가는 그가 청년기를 보낸 시절 만주국의 국방 체제나 일본의 총동원 체제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했다. 황국신민으로 타어나 황국신민으로 자라난 ‘친일파’ 박정희의 진면목은 청년장교 시절보다도 만주국이나 쇼와유신의 실패한 모델을 다시 살려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
누군가에게 박정희는 ‘아, 박정희!’이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악, 박정희!’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1970년대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시작되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게 1970년대는 평화시장에서 타오른 전태일의 불길로 시작된다. 평화시장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세월을 보냈어도 사장의 역사와 시다의 역사가 쉽게 하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

 
쏟아지는 지금의 뉴스들에 허우적 거리다 보면, 세상이 왜이렇게 망해가나 망연자실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홍구 샘 책을 보면 용기가 생긴다. 그래도 이만큼 이겨왔구나. 아, 누군가는 감사하게도 저렇게 싸워왔구나. 갈길이 멀지만 그래도 힘내야겠다.

그러고보니 당면한 투쟁이 벅차 바로 앞의 변화에 조급해 불안한 맘이 들 때, 한국의 근현대사 공부만한 안정제가 없었던 것 같다. 거창할 필요 없이 지금의 싸움을 잘 싸우는 것이 가장 역사적으로 사는 방법이란 걸.

요새 역사 책 많이 읽었더니 마음이 좀 느긋해졌다. 현실이 너무 바빠 현실감각이 떨어질 땐, 역사책 추천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것 처럼 내가 딛고 있는 땅의 큰 그림이 훤히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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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긴긴 연휴에는 끝장낼 수 있지 않을까?하여 도전한 크리스하먼의 민중의세계사
(학부생 시절부터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였으나 언제나 중세에서 멈췄던 그 두꺼운 책)
나 자신을 과대평가 했나봄.. 추석내내 열심히 읽었는 데도 292페이지 ㅠㅠ 그래도 어떻게 저떻게 산업자본주의까지 왔당!! 맥주를 마시며 산업혁명까지는 달려보련다(불끈_!) 러시아 혁명 백주년을 기념하며 시월 안에는 요 책의 끝을 보자는 다짐.

참고로 책은 두꺼워서 그렇지 무척 재밌다. 우리가 아는 정치적 변화들 뒤에 흐르는 생산력-관계의 맥락들이, 선사시대부터 쭈욱 일관되게 정리되어 있다. 지긋지긋한 왕조나 영웅들 이름을 안보니까 좀 더 쉽고, 콜롬버스 같은 인간들 잘근잘근 씹아주시니 공감되서 좋고... 지배계급과 제국들의 몰락 역사를 보니 현대의 제국도 얼마 안남았다 싶기도 하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는 한줄로 정리되는 모든 격변이 당시를 살았을 이들에겐 끊임없이 이어지는 변하는 것 같지 않는 날들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미분된 지금의 시간과 미미한 존재일 뿐인 나자신의 느리디 느린 변화 또한 멀리서 보면 격변 이겠거니.

"(p. 244) 수백 년 이상 계속된 서유럽 사회의 변화들은 느리긴 했지만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그것은 흔히 당시 사람들은 거의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변화들이었다. ... 느리고 간헐적이긴 했지만 계속해서 생산 기술이 발전했다. 그래서 16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12세기는 물론 14세기에도 보지 못했던 장비들이 넘쳐났다. 주요 도시마다 있었던 기계식 시계, 물레방아와 풍차, 무쇠를 만들 수 있는 용광로, 배를 건조하고 의장하는 새로운 방식과 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장비들, 전쟁용 대포와 머스킷 총, 전에는 소수의 도서관에 신주처럼 보관된 필사본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원본을 대량으로 복사할 수 있는 인쇄기가 바로 그런 것 들이었다. "

*

르네상스도 루터의 사상도, 인쇄기가 없었다면 거대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스마트 폰이 없었다면 2016년의 촛불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문자, 안경이나 인쇄기, 종이와 전구가 없었더라면 인류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쓰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론을 얻고, 그게 움직임이 되고. 칼과 총이 발달하고, 물리적인 힘으로 외화되고, 어떤 정치적 변혁을 이뤄내는 과정.

지금의 우리는, 내가 만지고 있는 이 아이폰은, 어느 페이지 쯤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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