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는 해석이다.”

오랫동안 나는 마음의 상처에 천착했다. 그 상처의 본질은 무엇일까에 대해 사색했었다. 내게 가장 아픈 상처를 준 사람들. 그들은 공교롭게도 내가 가장 친밀하게 느끼고 있던 (혹은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 관계들이었다. 덧붙여, 그들은 나쁜 사람들도 아니었다. 의심할 바 없이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어쩌면 정말로 치명적인 상처는 그 모순이었을지 모르겠다. 나를 상처 준 사람들이 하나같이 착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그들이 나를 위해 했던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진심’이었다. 그 진심과 선함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의지가 선하다고 하여 내가 아프지 않은 것 또한 아니다. 나의 아픔은 그 아픔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p.90)상처는 해석이지 그 자체로 폭력은 아니다. 어떤 행위이든 상처의 가능성이 있고, 동시에 어떤 행위이든 상처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상처는 절대적인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이 날카로운 문장이 눈에 박혀서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책에서 설득하는 어떤 주의·주장과 상관없이. 텍스트가 박혀있는 문단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받은 상처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에 대한 물음표가 하루 내내 떠다녔다.
그것은 어쩌면, 더는 이 상처에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는.
‘이제 그 모든 과정들을 상처로 남겨두지 말자‘라는 무의식의 반영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착한/ 사람들.

상처는 해석된 것이기에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다. 사실 이미 악의가 없는. 그들의 의도를 따져 묻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엄연히 ‘내가 해석하는 방식’이, ‘나를 상처 입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아프고 싶지 않기에, 다른 방식의 해석을 - 그러니까, 이 다음의 삶을 도모해야 한다. 부디, 그러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 문장을 읽기 위해 이 책을 만났던 것일까..
가끔은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내 멋대로 해석해버린-) 어떤 한 줄의 글이 나를 살리는 것도 같다. 실은, 그 한 줄을 핑계 삼아서라도 살아가고 싶은 것일 테지만. 



2. 


책에 대한 평.

어느 순간부터 자주 등장하는 낯선 단어 ‘폴리아모리 Polyamory’가 궁금해서 읽었다. 폴리아모리적인 욕망이 향하는 것은 ‘여러 명’이라는 숫자가 아닌 어떤 ‘자유로움’에 가깝다는 것. ‘다자 간’연애보다는 ‘비독점’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다자 연애’에만 집중하지 ‘비독점성’과는 상관없는 문어발식 사랑(ex. 나는 바람피워도 너는 절대 피지마~♬)은 폴리아모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 (여러 사람을 소유하려는 모노아모리monoamory일 뿐)등을 배웠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방식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것에 대해 놀랄 뿐이다. 처음의 설렘보다는 관계가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안정감이 내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더 가깝기에- 일상을 계속해서 ‘변용’ 해야 하는 너무도 부지런한 그들의 ‘사랑’ 방식을 무리해서 납득하려 하거나,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을 갖기는 어려울 듯하다. 게으른 자에게 ‘폴리(여럿)‘는 물론 ‘아모리(사랑)‘도 피곤한 것. (더더군다나 난 사회성이 좋은 편도 아니라서 ‘하나 이상‘은 너무 힘들 것 같다ㅠ_ㅠ) 다만, 이러한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니 ‘아, 그렇게도 존재할 수 있구나’ 하기로.

한편으로는 이미 ‘신자유주의화’ 되어버린 우리 사회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다양한 가족(혹은 관계 맺기) 형태에 대한 실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즈음의 한국은 ‘가족’혹은 ‘가정’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 전통적인 ‘가족‘ 또한 ‘안전한 관계‘가 아니라면, 또 다른 관계를 찾아 나서야지.
요컨대, 필요한 것은 상상력. 그리고 용기. 실제 책에도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p.104) 즉 우리는 폴리아모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모노아모리만이 의식적인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모노아모리란, 우리가 한 사람만 사랑하기로 ‘선택‘한 그런 폴리아모리이다. 무한한 공동체의 배치를 상상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배치 속에서 가장 행복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상상하고 실천하고 구성하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지인 몇몇에게 ‘폴리아모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지만, 입도 떼기 전에 제지 당했다. 생계도 피곤하다며... 사실, 그게 현실 인것 같다. 우린 N포 세대..ㅜ.ㅜ

책을 덮고 잠시 모두가 폴리아모리스트인 세상을 생각해보았다. 역시나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빈약한 상상력 ㅠ.ㅠ) 모르긴 몰라도 사회주의(이건 그래도 상상이라도 간다..)하고는 비교도 안될만큼 상당히 급진적인 모습일 것 같다.





(p.162)
실제로 대중의 욕망이 변화한 것이라면, 그 변화의 기제는 무엇일까. 사실 폴리아모리가 소개되는 시점부터 한국 사회는 가족과 공동체, 성과 사랑에 대해서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이해를 구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p.227)
우리 각자는 하나의 우주와 같다. 그러므로 가족이 된다는 것은, 둘 이상의 우주가 장기적으로 교차한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혼자서는 어느 정도 인력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더라도, 교차하는 순간 그 인력들은 복잡해지고, 별들은 충돌하고, 어떤 공간은 소멸하고, 결국 여러 심급의 카오스로 뻗어나간다. 카오스에 대해 우리는 불안을 느끼는 존재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해체된 카오스 속에서도 오히려 그 카오스 자체에 대해 일관된 긍정을 찾을 수 이는 것, 이것이 바로 폴리 아모리의 가족형태인 폴리피델리티가 꿈꾸는 상태일것이다.

(p.242)
폴리아모리는 윤리적인사랑이아니다. 횡단하는 사랑이며 그 자체로 자연의 사랑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랑하고 있고 사랑하게 되어있다. 올바른 사랑을 찾으러 형이상학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에게 마주한 강렬함을 그 자체로 기쁘게 사랑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들어 처음 읽은 책이자 처음 읽은 소설. 책장을 덮고, 소설이 스며들 때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다. 뭐라고 한 줄이라도 써놔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쓰기 어려웠다.
이상하다. 정말 좋은 어떤 것에는 왜 좋은지 이야기할 수가 없다.

_
p.65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지를 마라.˝
나는 승희 엄마의 품속에 안겼다. 승희 엄마 옷자락에서 아주 아주 오래 묵은, 엄마 냄새가 났다. 그건, 바로 흙냄새였다. 여름에 소나기가 내리면 마당의 마른 흙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 가을에 고구마를 캘 때면 땅속에서 솟아나는 자우룩한 냄새. 그리고 저녁 냄새가 났다. 모든 저녁이면 나는 냄새들. 환한 낮에는 숨어있다가 어둠이 스며들면 비로소 피어나기 시작하는 냄새들. 뜨물 냄새, 연기 냄새, 수챗물 냄새, 쉰 행주 냄새, 파 마늘 냄새........ 그리고 별냄새, 달냄새.

_

아주 오래전의 유년시절 같기도 하고, 실은 살아본 적 없는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한. 그런데 아주 어렴풋이 흔적 같은 것만 남아서, 그리워하게 되는 그런 정서들이 떠올랐다. 정, 순정, 낭만, 짝사랑, 식구, 친구 등등. 이제는 현실에서 찾기 힘든, “나 사실 이런 것들 좋아해.”라고 말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이야기 같아 어쩐지 부끄러워지는. 그런.

그리고 엄마. 코끝이 찡하게 엄마-가 떠오르는.
그런 소설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설 곳곳에 엄마의 사투리가 배어 있기도 해서 피식피식 웃었던 것 같다. ˝악아, 아심찮게, 존일헌다고.˝)

_
p.206-7
그러나 나는 이제 알아야 했다. 아프지만 할 수 없었다. 이제 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구름 한 점 없는 시절이 다시는 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런 날을 우리가 다시 맞을 수 없는 것이 그에게, 혹은 내게 죄가 있어서가 아니지만,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풀밭을 데굴데굴 구를 수도 있을 것 같은 웃음을 짓는다면, 그것은 죄가 될 것임을. 나는 다만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되는 순간 말이다. 그런 순간은, 예기치 않게, 혹은 법칙처럼 오고야 마는 것이다.

_

영화 1987을 두 번째로 본 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너무 슬펐다. 처음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슬픔이 일렁 거렸다. 영화처럼 역사가 단순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드라마들처럼, 클라이맥스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6월 항쟁의 결론은 직선제 쟁취였지만 우리가 뽑은 대통령은 노태우였고, 2016년의 촛불을 겪었지만 내 일상은 여전히 막막하다.

찰나의 ‘그날‘로는 만족할 수 없는 끝없는 싸움.
그러니까, 그냥 ‘크으-‘하고 영화로 해소해 버리기엔, 인생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느낌.
‘역사‘와 ‘승리‘를 더 이상 낭만적으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잃어버린 것인지 알아버린 것인지, 어쨌든 인정하기 싫은 변해버린 스스로에 대한 슬픔이었던것 같다.

_
p.76
˝이상해서 말이야, 견딜 수가 없었어.˝
아직도 반복되는 수경의 말에 나는 이제 더 이상은 화낼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 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밥 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 게 이상해. 우리 식군 내가 이상하다지만 말야.˝
˝미안해, 수경아, 미안해. 화내서 미안하고, 웃어서 미안하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서, 정말 미안해.˝
(...)
수경이는 아픈데 나는 왜 멀쩡할까.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야말로 정말 이상한 애라는 걸.
_


5·18 ‘이후‘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그 해 광주에 있었던 젊은이들의 가슴에 진득하고 깊게 고여있는 어떤 상처에 관한 이야기였다. 많은 문학작품들과 영화들이 ‘어떤 사건’에는 주목하지만 그 사건 ‘이후’를 다루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 같다. 어떤 이들은 특별한 사건을 만나 아주 드라마틱하게 삶이 변화하기도 하지만(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큰 사건‘ 이후에도 이어지는 것은 - ‘일상‘이다. 생계 혹은 생활. 지리멸렬하고 개성 없는- 그날들.

어쩌면 특별히 다룰 이야기가 없을지도 모르는 - 5·18이후에도 멀쩡한 소녀, 해금이 주인공이다.
딸만 다섯인 집의 넷째 딸, 잘하는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아 집에서 미미한 존재감으로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해금도 친구들과 함께 5·18을 겪는다. 그러나 큰 사건 이후에도 악한 세상과는 상관없는 듯이 그녀를 둘러싼 일상은 돌아갔고, 식구들도 친구들도 저들마다의 문제를 겪어내며 바빴기 때문에, 해금역시 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걱정하며 살아간다.
물론 그때쯤 시작된다는 가슴 저릿한 첫사랑을 앓기도 한다.

_
p.124
˝노동운동이 아니라 그냥 노동을 하면 안 돼?˝
그 말을 하는데 내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가, 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하루라도 노동을 하지 않고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 이환이라는 사람 때문에 나는 정말로 가슴에 통증이 일어 견딜 수가 없었다. 혁명을 못 해 우는 영금이를 앞에 두고 나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한 남자 때문에 울었다. 밤은 깊어가고 비는 그치지 않았다.

-

해금에게는 5·18보다 더 강하게 일상을 흔들어 놓은 환의 등장.
내가 이 소설에 매료된 것은 ‘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환‘이라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캐릭터와 5·18. 전혀 개연성이 없어 보이지만,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인과관계가 이 소설의 중요한 포인트 같다.

수경은 사람들이 공기 중에 잊어버리는 약을 살포한 것은 아니느냐 물었지만,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개인의 삶에 기어코 개입하는 것이 ‘역사’이다. 해금과 그의 친구들은 마치 경애와 수경의 죽음을 잊어버린 것처럼, 살아가고, 사랑하고, 싸우고, 꿈을 꾸고, 아이를 낳지만, 선택의 마다에, 행복의 순간에, 삶의 틈새 틈새에 바로 그 ‘역사‘가 켜켜이 끼어들어 있는 것이다.

다만 ‘역사‘와 ‘개개인의 일상‘이 만나 일으키는 화학반응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삶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고, 그래서 그럴 듯한 개연성을 찾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_
p.283
누가 웃지 말라고 해서 웃지 않은 것은 아닐진대, 꼭 누군가 웃는 것을 용서치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인가. 어쩌다가 웃음을 참을 수 없을 만치 행복한 순간에도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습관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인가. 혹시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행복이 누군가에게 슬픔이 되지 않을까, 따뜻한 내 집 창밖에 지금 누군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지는 않은가, 노심초사해야만 겨우 안심이 되는 이 못 말릴 습성이, 노인네들처럼 온갖 세상 근심 걱정 다 떠안아야만 겨우 내가 사람 노릇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이 딱한 습벽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란 말인가.

_


가장 예뻤을 때, 마음껏 행복하기가 어쩐지 미안했다는 시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덧, 공지영 작가는 알았지만, 같은 나이의 같은 성씨인 공선옥 작가는 몰랐다. ˝언니, 공선옥 소설 진짜 좋은데.˝ 사나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라이트 노벨이라고 생각했을 표지ㅜ_ㅜ 이제라도 공선옥 작가를 알게 되어 너무 좋고, 다른 작품도 많이 읽어봐야겠다! 2018년은 소설을 많이 읽자 얍얍!



p.105
제재소 마당에 유일하게 서있는 목련나무 고목의 꽃망울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봄날 저녁, 그늘이 포근히 내리고 있었다. 그 마당으로 환이 나왔다. 환이 나오자 어두운 마당이 환해졌다!

p.187
세상 사람 그 누구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때, 그래서 눈여겨보지 않을 때, 나 혼자 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나는 기뻤다. 나는 그가 그 이름처럼 얼마나 환한 사람인지를 세상 사람들이 몰라도 좋았다. 나는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갖고 싶지 않았고 오직 환의 환한 아름다움만을 내 것으로 갖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살아가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p.189
이상했다. 택시 안에서부터 몸과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온몸이 나른한데도 계속 말이 나왔다. 환하고는 아무 말 안 해도 좋았다. 환하고 말없이 거리를 걸을 때면 끊임없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상했다. 그런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처럼 되었다.

p.248
모든 좋은 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이, 행복이, 청춘이, 인생이, 인생의 환한 것들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이 세상에 슬픔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 어떤 것도 지속될 수 없으므로, 슬픔은 생겨나는 것이다.

p.251
피 흘리는 경애를 안고 목놓아 외쳤다는 수경이,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소리, 그러니까, 그것은 인간임을 외치는 소리, 그러니까 그것은 너의 슬픔에 내 슬픔이 공명하는 소리, 그리고 수경은 목이 터져라 외치다가, 화답 없는 세상에 절망하여 저세상으로 떠났다. 지금 2번 시다 판님이가 3번 미싱사 경자를 잡아가지 말라 외치는 것은 수경이 경애를 살려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는, 이제라도 화답해야 한다. 내가 인간이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내가 우리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 쪽으로 돌려놓고자 한다면, 나는 운동장 가운데로 달려나갔다. 여공들의 비명이 아스라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대 초반을 떠올리면, 삶의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어떤 강렬한 경험들이 생각난다. 역사 동아리에서 ‘민간인 학살지 답사’를 갔을 때, 어떤 책에서 ‘사회주의’가 가진 진짜 의미를 발견했을 때, 강의실에서 김상봉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 탐탁치 않아했던 운동권 선배가 학교‘안’에서 잡혀갔을 때, 2008년 촛불 집회에서 새벽이 올 때까지 물대포를 맞았을 때. 등등.

내가 알았던 세상이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닐 때.
막연히 불편했던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적당한 언어나 이론을 찾았을 때.
깨달음의 순간들.

그 후로는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왜냐면, 지축이 흔들렸으니까.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이 흔들리거나, 때로는 무너지는 것은 – 곧 나와, 내가있는 세상 전체가 달라지는 것이었으니까.

*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스무살의 나는 세상이 밉고 싫은 분노쟁이가 되었고, 이러다가 사회부적응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엉엉 울기도 했다. 화내고 우는 걸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더 큰 문제는 어제까지의 관계가 뒤틀리더라는 거다.

분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동기들과 점점 멀어지고, 왜 이렇게 불만이 많냐? 그러다 취직 못한다.. 걱정해주던 선배들과도 거리가 생기고, 엄마 아빠가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고, 뭔가 무서워하던 운동권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래도 화가 올바른 방향을 찾고 부터는 덜 까칠했던 것 같다.
˝내가 몰랐던 세상에 대해 분노 했던 것은, 내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이었구나.
그것을 지키고 바꾸기 위해서 실천하고 투쟁해야겠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동료들이 가족보다 좋았다.

*

나이를 먹는 것은 그런 깨달음의 순간들의 강도와 횟수가 줄어든 다는 것일까. 어느 순간 익숙해져버린 관계들을 만나고, 익숙한 경험들을 하고, 익숙한 세상의 불의에 이런저런 비평을 하면서 한참을 지냈다. 이쯤 하면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느 덧 서른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그녀의 글을 읽었다.

(p.259) 며칠 사이 저는 젊은 여자 운동가에서 일순간 차별의 경험을 친절하게 설명해야하는 피해자의 위치에 놓였습니다. (...) 최근 효녀연합의 활동을 바라보는 언론이나 여론의 시선이 위안부 문제의 근원인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시선, 성적 대상화로 느껴져 성찰해보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참 많은 사람이 저를 보고 지적 허영심에 어리광을 부리고, 질투하고, 본질을 흐린다고 말했습니다.” 

한문장 한문장이 공감 되었다.
그 후, 그녀를 친구로 등록해서 여러 글을 읽었고, 지금까지 느껴왔던 어떤 답답함이 그녀의 글을 통해서 설명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감지하고 있었지만, 말하지 못한 것들에게 ‘언어와 개념을 입힌’ 내용이었다. 말과 글들로 구체화 된 것은 인식되기 마련이고, 인식된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다소 겁나던 주제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여성혐오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 이슈들이 터져 나왔고, 망설이다가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보자. 공부부터.” 페미니즘 관련 글들을 주섬주섬 읽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지축이 흔들리는’ 깨달음의 시간이 다시 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느긋하고 천천히, 그런데 보다 근본적이고 강하게 ...

이번에도 역시 나는 화가 났고, 분노의 화살은 여러 군데로 튀었고, 그렇게 관계가 재구성되었으며, 그 이전의 ‘나’로는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p.75) 막연하게 이론으로만 알았던 ‘페미니즘’이 삶으로 성큼 들어왔다. 지독하게 평범했던 일상이 지독히도 무섭게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도 온라인에서는 많은 이들이 ‘사랑받는 여자의 조건’을 공유한다. (...) 이런 고민을 이야기 하면 “페미니즘에 너무 빠지지 말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내가 살면서 느껴온 많은 불편함을 설명해주는 페미니즘을 하나의 편협하고 비합리적인 신앙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의 태도가 나를 더욱 외롭게 한다. (...) 세상은 너무 견고한데 변한 건 혼자인 것만 같은 감정이 나를 짓눌렀다. 곁에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도 온전히 내 아픔을 이해해주지 않을 것 같은 감정, 고독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고독이 찾아왔다." 

타임라인에서 읽고 곱씹었던 홍승은 작가의 글들이 페미니즘 에세이가 되어 책으로 나왔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지만, 차마 추천할 수 없는 이유는 제목과 같다. “당신이 불편해 할 것 같아서.”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 불편하다. ˝어떤 존재˝의 고통들이 ˝눈에 걸리적˝ 거리게 된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일상의 폭력˝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면 미안해지고 화가 나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경험들이 썩 행복하기만한 과정은 아니다.

그래도 권한다. 알려는 노력도 없이, 문제점조차 느껴본 적 없이, 게을렀다는 것 자체가 _ 당신이 권력이기도 했음을 드러내는 일이며, 자신이 알게 모르게 누려왔던 권력을 감지하는 것부터가 진정한 존중-평등의 시작 이라고 생각하니까. 

신기한 것은 책이라면 소리 내서 읽어줘도 못 보던 여동생이 반나절만에 이 책을 다 읽고, 적극적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와 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불만쟁이가 되어 세상만사를 계속 가르치려 들었던..) 스무 살 이후, 취향 말고는 공유하는 대화가 극히 부족했던 우리에게 공감하고 깨달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책 이었다.

홍승은 작가가 앞으로도 많은 글들을 써주면 좋겠다. 그녀의 정직한 용기가 위안이 될 때가 많았다. 진정한 위안은 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가는 것.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불편해져야겠다. 내 안에 있는 익숙한 폭력을 모르는 척 휘두르고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p.9)
오랫동안 나는 나를 해명해왔다. .. 어떤 질문은 궁금증 해소가 아니라 통제가 목적이라는 걸 그 때는 몰랐다.

(p.108)
그들은 왜 어떤 ‘의외의 폭력‘은 그토록 경계하면서 일상적 폭력은 가볍게 여기고 있는 걸까. 그 의외의 폭력이 우리 모두가 가담한 일상적 폭력에서 파생됐다고 말해도, 왜 시선은 전자로만 향하는 걸까.

(p.126)
언제나 나쁜 놈을 손가락질하며 거리두기 하는 것만큼 편안한 비판은 없었다. 외설적이고 자극적인 사건 속에서 ‘나쁜 놈’은 추악한 괴물로 그려지지만, 현실 속 그들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다

(p.212)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나의 게으름은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어 누리는 권력이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노동에 기대어 편리함을 누렸을까.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모른 척 편리함을 누렸을까.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서른에 읽었던 세권의 에세이
    from 쟝르개척 2018-11-12 20:02 
    서른의 언저리에서 물흐르듯 몇가지 결단을 하게되었다.그 전까지는 사람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구조’나 세상의 생겨먹음이 궁금했다. 세계의 모순에 집중했고 그리고 그것을 바꾸는 일을 하면 나의 삶은 가치있고 명료해지지 않을까. 달려왔다. 어느 날 부터인가 매일 아침을 마주하는 게 싫었고, 심리상담을 받은 후 그게 일종의 우울증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스스로는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돌보는 것에 능숙하지 않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들)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울었다고 했다. 느끼는 게 많았다고 했다. 정말이냐고도 물었다.

87년생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별거 없네”라고 생각했다. 있는 이야기 있을 법한 이야기. 오히려 아무일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언제나 겪어왔던 이야기. 내가 겪었던 삶은 지영씨의 서사보다 더 심하고 무서운 사건들로 범벅되어있다. 그런데 또 내 이야기는 내가 만난 대다수의 그녀들에게는 다행이며 비교적 평탄한 이야기다. 어쨌든 난 칼든 강도를 물리쳤고, 치한으로부터 도망쳐나왔으며, 데이트 폭행이나 가스라이팅은 겪지 않았으니까.

결혼-출산-육아을 거치며, 지영씨는 그나마의 자기 삶의 통제권도 다 잃는다. 그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냥 으레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소설 속의 아내는 맘대로 되는 일은 이것 밖에 없다며 수학문제를 푼다. 꼭 수학문제만은 아니겠지. 내 삶이 내 삶같지 않을 때 하루 꼬박 어른용 색칠 공부를 한 경험이 있다.

결혼을 해야한다, 고 생각하고 있다. 또래의 친구, 동료들이 다 그 삶의 수순을 밟아가는 중이고. 그런데 나는 무섭다. 걱정된다. “다 저절로 되게 되어 있어.” 라고 많은 결혼한 언니들은 말하지만, 그 저절로에 포함된 사랑이라는 것의 능력치가 내게 있다고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엄청 힘들지만 또 엄청 행복하다!라는 증언에서 나는 이상하게 “힘들다”만 들린다. 그러니까 인생이 지금도 충분히 어려운데 여기서 더? 행복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만 힘들고 싶다.

지영씨의 삶이 특별하거나 소설로 다룰만큼 대단한 서사가 있었다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영씨가 될리 없는 누군가들은 눈물을 흘리고 느끼는 게 많은 정도가 다 인 좋은 책이겠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현실보다는 덜한 공포 소설이라는 것도. 적어두고 싶었다.

꿈 속에서 지영씨를 비롯한 많은 언니들과 엄마들의 삶이 둥둥 떠다녔다. 오지 않을 걱정을 사서하는 것 일거야, 다스려보려 했지만 불안을 이길 만한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다. 너무 복잡하다. 선택을 결단할 용기가 없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 서툴면 서툰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지금 내 마음대로
서늘한여름밤 지음 / 예담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겪었던 내 우울증의 증상은 ˝감정 없음˝ 남들은 내가 신경질적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는 나는 감정없음. 기운이 좀 나서 감정이 생기면 그걸 분노, 눈물, 웃음으로 격하게 방출. 

서밤님 말대로 사막처럼 온도조절 안됨.

성격 좀 고치라는 진심어린 충고들이 다 튕겨졌는 데, 고치고 어쩌고 할게 아니라- 지나고 나니 그냥 나한테 내가 좀 더 관대했으면 됐을 텐데 싶다. 잘 안들렸으니까. 좋은 충고도 나한테는 송곳같은 상처였으니까.


"P. 85-91 우울증이 있었던 이야기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데, 솔직히 마음의 폐렴 정도이지 싶다. 폐렴의 증상은 생의 에너지를 조절할 수 없는 느낌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뭔가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면 정서적으로 완전히 탈진해 버렸다. 그때의 감정은 ‘감정 없음‘이었다. 내 안에도 내 밖에도 아무것도 없는 그 진공의 느낌.
생의 에너지가 조금 생기면 그것을 감정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그 중 슬픔이나 우울은 생의 에너지가 가장 적게 드는 감정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느낌보다는 슬픔이든 뭐든 있는 게 나았다.
기분이 까닭없이 좋아질 때는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는 데, 무엇도 나를 잡아주지 않고, 언제라도 곤두박질 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 기분을 더욱 증폭시켰다.
...
기분이 곤두박질칠 때는 끝이 없었고 비명을 질러도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진공. 도저히 온도조절이 되지 않는 사막 같은 마음.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다. 위로받거나 이해받는 것도 피곤했기 때문에. 나는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노력했다.
마음의 빈자리가 생기는 게 무서워 뭐든 쟁여두려 했다. ... 돌아보면, 어느 수준까지 관리하는 것은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지금, 우울을 걷어낸 마음에는 듬성듬성 못자란 부분이 많다. 지금은 마음의 나무를 심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내 마음도 울창해지겠지...
...
적절할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 때는 도움받을 여력마저 없었다. 여기에는 다 담아내지 못한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나 많은 노력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다시 재건 중이라는 것."


대체적으로 잘 살아왔고, 잘살고 있으며, 잘 살아갈 것이라고 믿는 나지만, 갑자기 울컥, 기억과 감정들이 쏟아져 내릴 때가 있다. 이마 저마 많은 것들이 있지만, 관통하는 딱 한가지 후회는 ‘스스로한테 좀 더 잘해줄 걸.‘

나한테 가혹했던 순간들, 절체절명 아등바등 백척간두 같던 날들, 비어있는 스스로를 애써 의미있게 포장해보려던 시간들이 아쉽고 후회된다.

나를 독려하고, 나를 조건없이 사랑하고, 나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것은, 앞으로 30년간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아득하기도 하지만 기분 좋기도 한 일이라서, 옛날보다는 훨씬 더 내일이 기대 된다.

이제는 영혼의 동반자 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서밤님의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
헤쳐왔던 나의 문제들이 나혼자 겪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나와 비슷하게 또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위로 받았던 시간들.


˝대단한 포부 따윈 없고 멀리도 못보지만, 한치 앞은 보려고 노력한다.˝
˝세상에 망한 인생은 없다. 인생은 망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아직은 모르지만 적어도 싫어하는 것을 하고 있지는 않다. 새로운 삶에서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빛나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견디지 않는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끌어다가 지금을 밝히는 데 쓸 것이다. ˝


너무도 위로가 되었던, 그녀의 띵언들을 명심하고!!
오늘도, 내일도.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P.106-109
˝나는 이제야 내 인생을 스스로 그려보겠다고 붓 들고 있는 데, 시작부터 큰 그림은 아무래도 무리다. 큰 그림을 그리겠다고 망설이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작은 그림들을 거침없이 그리는 게 즐겁다. 작고 소소한 일상과 생각을 누군가와 나눈다. 대단한 포부따윈 없고 멀리보지도 못하지만, 한 치 앞은 보려고 애쓴다. 언젠가 지금의 작은 그림들이 모여 큰 그림이 될 수도 있고, 아니어도 뭐 어쩌랴. 순간순간 만족스러웠으니까 됐지 뭐. 언젠가 남들의 큰 그림에 자괴감이 드는 순간도 올 수 있겠지. 그런 순간에 작고 즐거웠던 조각들이 나를 지켜주기를 바랄 뿐이다.

P.131
엄마는 남에게 싫은 소리 하고 싸우는 걸 싫어했다. 그 억눌렀던 화는 자식들에게 돌아갔다. 습관적인 정서적 분풀이. 이걸 끊어내려고 나는 엄마한테 지랄을 했다. 물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용서할 수는 없었다. 쉽게 용서된 폭력은 쉽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엄마를 위하고 싶지만 그게 나를 학대하는 방식이라면 싫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분풀이 대상이 될 생각은 없다. - 어른의 좋은 점은 엄마와 정서적 물리적으로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

P.152
네가 이렇게 얘기 해줬다
˝네 오른쪽 눈은 반달처럼 예쁘고 왼쪽 눈은 아몬드처럼 예쁜 걸.˝
내 눈은 여전히 짝눈이고, 짝눈이 아니었더라도 미녀는 아니지만, 나는 처음으로 내가 짝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예쁜 눈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너는 나를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면서 내 모든 것을 바꿨다.

P. 138
사람들은 다양한 정서를 느끼며 산다. 그런데 나는 정서를 덜 느끼며 살려고 노력했다. 외면하고 억압하려고 했다. 나에게 정서란 다양하거나 유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게 편했다. 그래서 이성에게 인생 몰빵! 오직 이성이 이끄는 삶만 살아왔다. 그래서.. 이제와 이러고 있다. .. 용기내어 마주해보려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다양한 정서를 잘 느끼게 됐으면 좋겠다.

p.214
내일이 괴롭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히 안다. 내가 뭘 좋아하는 지 아직 잘모르겠지만 적어도 싫어하는 것을 하고 있지는 않다. 우습지, 그만두면 모든 게 끝장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그래, 어쩌면 나는 그 때 끝나 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1년전 오늘부터 새로운 삶을 일구고 있다. 그 새로운 삶에서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하고 싶은 것들을 계획한다. 남의 눈치를 보는 대신에 스스로를 살핀다. 빛나는 미래를 위해 지금을 견디지 낳는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끌어다가 지금을 밝히는 데 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