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
허만하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모든 감각을 열어서 평범한 사람들이 보지 못한 현상 너머의 본질을 캐는 통찰력. 그것이 시인의 주요 덕목 중 하나이다. 허만하 시인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는 이런 통찰력이 잘 스며들어 있는 산문집이다. 시 속에 삶의 풍경은 어떻게 비치고, 함축될까? 시인은 스스로 묻고 대답한다. 때로는 통일신라의 기와 조각 무늬를 감상하면서 '지도 없는 여행'을 떠나는 공상에 잠긴다. 또 리치먼드의 길을 더듬으며 에드거 앨런 포를 회상하기도 하고, 이인성의 수채 풍경화에서 풍경의 의미를 배운다. 멀리 보들레르까지 가지 않더라도 화가와 시인의 관계를 정의한 예술가는 적지 않다. 강연균 화백이 그랬던가? "시인은 언어로 그림을 그리고, 화가는 그림을 통해 시를 이야기한다"라고.

 

 

 

나는 풍경을 사랑한다. 풍경이란 살아있는 공간이다. 나의 눈길이 닿을 때까지 그 공간은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 죽어있던 공간이 내 시선이 닿는 순간 목숨을 가진 표범처럼 나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았던 수많은 풍경 - 그 가운데의 어느 하나의 풍경이(또한 한 순간이) 나의 망막을 보이지 않는 인두로 지지는 것이다. 그때 그 풍경은 나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피 흘리는 풍경' 중에서, 38쪽)

 

 

시인에게 있어서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망막세포 하나를 죽여 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의 눈에는 죽어 있던 공간이 하나의 역동적 풍경으로 보인다. 그 공간 안에서 선과 점과 면은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 그런 점에서 풍경이 그려진 시는 '움직임의 시'이자 '깨달음의 시'다. 얼핏 보면 정적인 시인의 풍경 속에는 움직임과 깨달음의 '가쁜 숨'과 땀방울이 들어 있다. 그 들이켜고 내쉬는 숨과, 솟아나서 떨어지는 땀방울을 새겨 넣는 시인의 손은 섬세하면서도 둔중하다. 거기에는 섣부른 계몽의 교훈이 없고, 그렇다고 화려한 묘사도 없다. 평이한 묘사와 진술만으로 자연의 풍경이자 '나의 풍경'을 빚는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느끼는 풍경은 밋밋해 보이지만 힘차며 그래서 아름답다.

 

풍경을 받아들이면서 체험하고, 성찰한 것을 근거로 완성한 시는 오래 간다. 언어로 묘사된 풍경은 단순히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숨과 땀방울이 스며든 존재로 표상되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려는 시인의 소도구가 된다. 숨겨진 부분, 가려진 부분을 보는 제3의 눈을 가진 견자가 시인이라는 점을 되새긴다면 허만하의 언어를 통해 세상의 가려진 부분을 확인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자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는 명상이다. 딱딱한 기계의 눈으로 결코 읽을 수 없는 그의 언어는 새삼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한다.

 

허만하 시인의 글은 감정의 묘사에, 자잘한 교훈에 자족하는 오늘날의 언어들에 대한 항변이기도 하다. 그 불완전한 언어의 틈 한가운데를 허만하 시인이 성큼성큼 걷고 있다. 저기 십리 밖 풍경 냄새 맡으러 시인이 걸어간다. 시인의 발걸음을 따라가기 위해선 그가 표식으로 뿌려놓고 간 조약돌을 잘 챙겨야 한다. 낯설면서도 깊은 언어로 뭉쳐진 텍스트의 조약돌(박남수, 릴케, 가스통 바슐라르, 쥘 쉬페르비엘[주])을 줍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주] 허만하 시인은 ‘6월에 바라본 한 시인의 뒷모습’이라는 제목의 글에 쥘 쉬페르비엘(Jules Supervielle, 1884~1960)의 시를 인용했다. 이 글이 쓰인 시기는 2000년이다. 이때 당시만 해도 쉬베르비엘의 시는 널리 소개되지 않았다. 비록 시집은 아니지만, 쉬페르비엘의 소설이 2014년에 《바다 위의 소녀》로 번역되어 나왔다. 이 책이 국내에 유일하게 정식으로 소개된 쉬페르비엘의 텍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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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31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들에게는 없는 것이, 시인들에게는 민감한 안테나가 있는 것이죠....

cyrus 2016-11-01 09:01   좋아요 1 | URL
정말 부러운 능력입니다. 그런데 음흉한 몇 몇 시인은 엉뚱한 안테나로 여성에게 접근했습니다..

매너나린 2016-10-3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들어 시인들의 시를 편견없이 바라보기가 힘들어졌다는 사실에 슬픕니다. . .

cyrus 2016-11-01 09:06   좋아요 2 | URL
반갑습니다. 매너나린님. 저는 한국 작가의 소설이나 시를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최근 불미스러운 소식을 접한 이후로 실망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국내 문학 작품을 즐겨 읽은 독자들이 더 큰 상실감과 분노를 느꼈을 겁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던데, 한편으로는 심각한 상황들이 빨리 잊혀질까 봐 걱정입니다.

2016-11-03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1-03 15:45   좋아요 0 | URL
제 글은 북플로 보기 힘듭니다. 글이 길거든요. 분량을 줄인 게 A4 용지 1장 반 정도 나오는데, 스마트폰으로 보면 눈에 피로감이 금방 생겨요. ^^

마르케스 찾기 2016-11-03 22:43   좋아요 1 | URL
ㅋㅋ 노트북으로 읽어서 괜찮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폰을 거의(아니 전혀라 할 만큼ㅋ) 사용하지 않는 터라ㅋㅋㅋ

다른 리뷰들보다 더 찬찬히 꼼꼼히 읽게하는 힘과 정보가 있어 재밌게 잘 읽었어요.

cyrus 2016-11-04 17:27   좋아요 1 | URL
정성을 담아서 리뷰를 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글을 찬찬히 보면 독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
 

 

 

 

 

 

 

 

 

 

 

 

 

 

 

 

 

 

 

 

최순실 대통령의 시녀 박근혜는 우주의 기운이 도와줄 때까지 청와대에 나갈 생각이 없는 듯하다.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는 “무속인이 남한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순실이 포함된 비밀모임 ‘팔선녀’가 막후에서 국정개입은 물론 재계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언론 보도마저 나왔다. 무속신앙과 정치권력의 결탁으로 인해 우주의 기운이 오기는커녕 국가의 기운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영생교를 둘러싼 최순실과 박근혜의 연결고리 그리고 이와 관련된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보면 디트리히 에카르트와 히틀러와의 관계가 떠올린다.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히틀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탕진하고, 노숙자 신세를 졌다. 에카르트는 헨리크 입센의 희극 《페르 귄트》를 독일어로 각색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과 알고 지낸 히틀러에게 《페르 귄트》를 헌정했다.

 

 

 

 

히틀러는 에카르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에카르트는 히틀러를 위해 멋진 프렌치코트 한 벌 사줬고, 베를린 왕립 극장의 연극 공연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히틀러는 남들보다 책을 많이 있었어도 글쓰기 실력은 형편없었다. 전문적으로 글을 썼던 에카르트는 히틀러의 ‘빨간펜 선생님’이 돼 주기도 했다. 히틀러는 여러 차례 연설할 기회를 가졌고, 반유대주의적 정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서재에 보관되었던 장서들을 조사하여 히틀러의 생애를 추적한 《히틀러의 비밀 서재》의 저자 티머시 W. 라이백은 히틀러가 에카르트의 각본에 따라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자 역할’을 맡았다고 주장했다.

 

 

 

 

 

 

 

 

 

 

 

 

 

 

 

 

 

 

 

히틀러의 주임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 1905~1981)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히틀러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썼다. 히틀러는 자신의 추종자나 심복이 많음에도 사적인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운 폐쇄적인 성격이었다. 슈페어는 루돌프 헤스(Rudolf Hess, 1894~1987)의 증언을 토대로 히틀러와 가깝게 지낸 에카르트를 주목했다.

 

헤스는 당시에 단 한 사람만이 히틀러와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디트리히 에카르트였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히틀러의 입장에서 보면 우정이라기보다는 연장자에 대한 예의였다고 보는 편이 옳다. 그는 반유대주의 계열에서 가장 저명한 작가였다. 1923년 에카르트가 사망하자, 히틀러가 친한 친구끼리 사용하는 호칭 ‘Du’(2인칭의 친근한 표현, 너)로 부르는 사람은 네 사람이 되었다. 그들은 헤르만 에서, 크리스티안 베버,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에른스트 룀이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174쪽)

 

 

에른스트 룀(Ernst Röhm, 1887~1934)은 나치돌격대(SA) 참모장으로 히틀러의 권력 장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룀은 히틀러의 2인자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히틀러는 그런 ‘친근한’ 룀의 존재감을 부담스러웠다. 1934년 6월 30일 이른바, ‘장검의 밤’(Nacht der langen Messer)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룀 세력과 나치돌격대 일원 모두 체포, 살해했다.

 

티머시 W. 라이백은 히틀러의 서재에 발견된 오컬티즘(Occultism) 관련 서적이 히틀러가 오컬트와 신비주의 등에 심취한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로 봤다. 히틀러 음모론 중 절대로 빠지지 않은 필수 요소가 바로 ‘히틀러와 오컬트의 연관성’이다. 박근혜가 ‘우주의 기운’을 믿었다면, 히틀러는 순수 혈통으로 이루어진 아리안(Aryan) 족의 우수성을 믿었다. 두 사람이 간절히 믿었던 대상은 실제로 성립 불가능한 것들이다. 히틀러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이 더럽혀지는 것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유대인을 ‘세상의 질병’으로 매도했다. 오컬트 마니아들은 히틀러가 ‘신비주의 밀교 조직’에 가입하여 자신을 지배한 사탄을 위해 세계를 파괴하는 음모를 꾸몄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래도 히틀러가 ‘신비주의 밀교 조직’ 비슷하게 분위기를 띤 단체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점은 사실이다.

 

 

 

 

 

 

 

 

 

 

 

 

 

 

 

 

 

1918년 뮌헨에 창설된 툴레 협회(Thule-Gesellschaft)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의 모임이지만, 정식 명칭이 ‘고대 게르만족에 관한 연구 모임’이다. 툴레 협회 일원들이 공통으로 연구하는 것은 신비주의인데, 이들은 영적인 힘을 빌려 ‘아리안의 부활’을 기도했다.

 

 

 

 

 

툴레(Thule)는 원래 고대 문헌 및 지도에 언급된 극북(Far North) 지역의 섬을 의미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들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툴레의 정확한 위치를 추정했다. 툴레 협회 일원들은 현실에 없는 섬에 관한 고대 전설에 매료되어 그곳이야말로 아리안 민족의 요람지로 믿었다. 히틀러가 툴레 협회에 가입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는지 불명확하지만, 히틀러와 툴레 협회의 관심사는 똑같다. 반유대주의자이자 히틀러의 ‘빨간펜 선생님’ 에카르트는 물론, 루돌프 헤스,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 1929~1945), 알프레트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 1893~1946) 등이 툴레 협회 회원이었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는 나치즘 옹호 이론가로 활동하여 《20세기의 신화》라는 책을 발간하여 독일 나치스(Nazis)의 중요 인사로 승승장구했다. 이 책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 다음으로 독일 제3제국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앞에 서술했듯이 《20세기의 신화》 역시 잘못된 편견과 망상이 만들어 낸 ‘불쏘시개’에 가깝다. 《20세기의 신화》는 나치스의 이념인 국가 사회주의의 기초를 정립한 문헌이다. 그래서 에카르트와 로젠베르크 등이 활동한 툴레 협회를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SDAP) 즉 나치스의 전신으로 보기도 한다. 하겐크로이츠가 툴레 협회의 공식 엠블럼과 유사하다.

 

로젠베르크는 히틀러에게 존경을 담아 《20세기의 신화》를 헌정했는데, 정작 히틀러는 이 책에 큰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책에 나온 내용은 수십 년간 독서를 통해 히틀러가 이미 정립했던 것들이다. 아니면 누구보다 열등감이 강했던 히틀러가 로젠베르크의 필력에 질투했을 수 있다. 《나의 투쟁》 초판은 겨우 팔릴 정도였다. 실패작에 가까운 책은 권력에 힘입어 히틀러 시대의 필독서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자신 스스로 《나의 투쟁》을 형편없는 책으로 평가했다.

 

 

 

 

 

 

 

 

 

 

 

 

 

 

 

 

 

 

독일의 역사학자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히틀러의 삶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는 주석으로 ‘결핍’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다. 히틀러는 중급 공무원에 불과한 친아버지보다 작가로서 부와 명성을 거머쥔 에카르트에 더욱 기대어 의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준비한 각본을 믿고 따르며 정치가로 변신한 히틀러는 ‘실패한 화가’라는 굴욕적인 인생의 명함을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에카르트는 히틀러를 평생 괴롭히는 상처가 될 ‘결핍’을 채워준 중요한 존재이다. 그렇듯이 최순실은 박근혜의 ‘결핍’을 채워주기 위해 그녀를 도와주었고, 박근혜는 평생 꼬리표로 달라붙은 ‘박정희의 딸’, ‘만년 2인자’를 18대 대선에 승리하여 떼어냈다. 그렇게 의기양양한 최순실은 박근혜를 위해 옷 입은 것부터 시작해서 연설문 작성 등 모든 일에 관여했다. 다만, 최순실이 박근혜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은 작문 방식이다.   

 

에카르트는 히틀러의 나치스가 독일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만약 에카르트가 건강해서 히틀러의 곁을 지켰다면, 괴벨스(Goebbels, 1897~1945)는 선전장관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히틀러는 에카르트는 ‘나치 운동의 북극성’이라고 치켜세웠다. 히틀러는 에카르트라는 북극성의 기운을 받아 독일을 장악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말을 빌리자면 “좋든 싫든 독일 제3제국은 히틀러의 작품”이었다. 여기서 더 크게 보면, 에카르트의 작품이었다. 독일 제3제국은 극작가 디트리히 에카르트가 원하던 세상의 무대이며, 그 무대 위에 선 주인공은 히틀러였다. 지금까지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연극했던 4년의 시간은 좋든 싫든 최순실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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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쥐의 독서일기 2016-10-3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요일 11시쯤에 하는 서프라이즈의 단골 주제가 히틀러거든요. 워낙 띄엄띄엄 봐서 연결이 잘 되지 않던 이야기를 쫙 정리해주시니까 이해가 잘 되네요. 근데 왜 마지막에는 열이 확 받는지.. 그간 찝찝한 부분이 드러나서 이제 시원(?)한 부분도 있는데 그 이상의 분노가 생기는 요즘입니다.

cyrus 2016-10-31 10:13   좋아요 0 | URL
<서프라이즈>가 문헌이나 인터넷 정보를 수집해서 방송 분량을 만드는 것 같은데, 문제는 인터넷 정보 대부분이 음모론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가끔 <서프라이즈>를 보긴 합니다만, 모든 방송 내용을 다 믿진 않습니다. 번거로워도 관련 서적 여러 권 읽는 것이 정확한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됩니다. ^^

yureka01 2016-10-30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틀러도 웅변술이 일가견있죠.

그에 반해...원고 없이는 안된다는 게,
기자회견 라이브에 질답이 예약이었던걸 보면 뭐..ㄷㄷㄷ

cyrus 2016-10-31 10:16   좋아요 0 | URL
그 분이 기본 능력조차 없는 걸로 봐서는 우주가 그 분을 외면한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에 최근 서재글-마이페이퍼페이지를 확인했습니다. 알라딘이나 북플에 접속할 때 가끔 최근 서재글을 통해 조용히 개인 활동에 전념하는 알라디너의 서재에 몰래 방문하곤 합니다.

 

 

 

    

 

대충 둘러보는 도중, ‘마르케스 찾기(편하게 마르케스라고 부르겠습니다)의 글을 보게 됐습니다. 마르케스님과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는 아니지만, 닉네임이 인상 깊어서 어느 분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목이 궁금해서 마르케스님의 서재를 방문했습니다. 이 글의 내용에 관한 언급은 생략하겠습니다. 글이 궁금한 분은 '링크'를 참고하면 됩니다.

 

* 마르케스 찾기님의 글 : http://blog.aladin.co.kr/779983149/8865624

 

 

 

 

 

마르케스님의 글을 처음 확인하기 5분 전에 화제의 서재글(New)’를 훑어봤습니다. 제가 아침에 본 마르케스님의 글은 전체 공개상태였고, ‘좋아요수는 4개였습니다. 그런데 이 글이 화제의 서재글(New)’에 뜨지 않았습니다. 마르케스님의 글은 오늘 새벽 314분에 작성되었습니다. 제가 스마트폰으로 화제의 서재글(New)’ 목록을 캡처한 사진을 보십시오. 새벽 240분에 작성된 사랑지기님의 리뷰와 새벽 358분에 작성된 아른님의 페이퍼 사이에 있어야 할 마르케스님의 글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마르케스님의 글이 받은 '좋아요' 개수가 5개 이상이 되자, '화제의 서재글(Hot)'에 나타났습니다.

 

마르케스님의 글이 처음부터 작성되었을 때, ‘친구 공개또는 비공개설정이었으면 최근 서재글-마이페이퍼페이지에 뜨지 않았을 겁니다. ‘친구 공개’, ‘비공개설정의 글에 좋아요를 아무리 100개를 눌러도 화제의 서재글에도 뜨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화제의 서재글목록을 설정하는 알라딘 로직의 버그(오류) 현상으로 판단하여, 이 사실을 마르케스님에게 알렸습니다. 그런데 마르케스님의 글이 알라딘 서비스 기능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라서 마르케스님 입장에서는 황당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알라딘 측이 회사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글이 알라디너들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비공개하는 건 아닌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검열과 같은 기능인 거죠.

 

이런 사소한 문제를 서재지기님에게 알리면, 서재지기님은 알라딘 로직의 버그라고 해명합니다. 마르케스님이 겪은 상황을 저도 몇 차례 경험한 적이 있고, 몇 년 전부터 버그 문제가 이따금 나왔습니다.

 

알라딘 직원들이 일반 회원 계정으로 알라딘 서재 또는 북플에 접속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사실을 근거 없는 루머로 받아들였는데요, ‘확실한 근거를 직접 보고 나서야 찝찝했던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토크토크관리라는 닉네임의 서재는 알라딘 운영진이 관리상 필요로 만든것이고요, 지금도 서재 검색을 해보면 토크토크관리의 서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제 글에 좋아요를 눌렀더군요.

 

관련 글 : [서재지수의 문제점] (2016510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484359

 

 

토크토크관리의 서재 이외에도 알라딘 직원이 만든 계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계정 닉네임을 여기서 밝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계정이 제 북플 친구목록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분은 이 글을 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 분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으므로 닉네임 공개는 하지 않겠습니다.

 

알라딘 운영진들이 회원 계정으로 접속해서 알라딘을 비판하는 글을 검열하는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거로 볼 수 있는 정황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섣부른 추측은 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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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10-29 14: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Cyrus 님 알라딘 서재 사랑하는 마음을 아는 이상 자기 검열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cyrus님이 항상 북플을 관리하고 이야기 하면서 제가 더욱 마음 놓고 활동을 할 수 있어요.감사합니다.^^

cyrus 2016-10-29 16:05   좋아요 2 | URL
알라딘을 사랑하기 보다는 알라딘 서비스 사항에 어긋나 있는 걸 보면 그냥 못 지나가는 성격입니다. 그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개선되지 않으면 저를 포함한 알라디너 모두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6-10-29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토크토크관리 이분이군요.
좋아요 받아본 적 있네요

싸이러스님 대단하세요^^;

cyrus 2016-10-29 16:04   좋아요 1 | URL
토크토크관리의 서재에 아무 글도 남기지 않고, 서재지수가 높게 책정되어 있어서 이상했습니다. 서재지기님에게 문의해보니 운영진 계정이라고 알려주더군요. 그런데 저는 운영진이 회원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북플 런칭 이후로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신입 회원들을 알리려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 같은데, 다른 회원들의 눈에는 편파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yureka01 2016-10-30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검열보다는 피드백해야 알라딘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죠..
검열을 막는다고 막아지겠습니까요 ㅎㅎㅎㅎ
오류를 바로 잡고 ..개선시키는 업그레이드릉 위한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역량이
꼭 필요하죠...
이게 알라딘도 살고 ..유저들도 알라딘을 버리지 않는 이유일 것입니다..^^..

cyrus 2016-10-30 08:26   좋아요 1 | URL
아프리카 TV가 한순간에 망테크 타면서 회원들이 돌아선 이유 중 하나가 피드백을 소홀히 한 점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 봤자 돌아오는 건 냉담한 반응입니다. ^^;;

yureka01 2016-10-30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휴 아프리카티비....두손들고 항복했더군요. 그런데 버스 갈아타고 떠나 승객이 되돌아 올리가 없겠더군요...화질이 좋아? 써비스가 좋아? 게다가 비제이들에게 수익 삥뜯고 별풍 수수료 삥듣고..이건 뭐....비제이들 컨텐츠 제작 열라게 해도 대가가 적다면 ..누가 있겠어요...특히 게임방송은 아프리카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더군요...화질과 이익율은 비교가 안되더군요.ㅎㅎㅎ.,그동안 너무 안일했더군요...플렛폼의 성격을 방송국 성격으로 태세전환한 마인드가 틀렸죠...특히 게임방송 비제이들에겐 갈아탈수 밖에 없겠더군요....

cyrus 2016-11-03 06:43   좋아요 1 | URL
몇 년 전에도 알라딘 회원들이 대거 빠지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그 때 알라딘 운영진들이 호되게 당했습니다. 회원들의 의견을 듣는 척하고, 시스템 상 달라진 게 없으면 이 사태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외박 - 고공농성과 한뎃잠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8
정택용 지음 / 오월의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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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항거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들만의 외로운 싸움, 그것은 기업과 공장, 법원으로 대변되는 한국사회 메커니즘의 톱니바퀴에 짓눌려 ‘메아리 없는 함성’으로 그칠 뿐이다. 힘없는 자들의 목소리에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정택용의 《외박 : 고공농성과 한뎃잠》은 우리가 가장 기피하는 세상의 일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집이다.

 

 

 

정택용의 사진은 예술이 아닌 '기록'으로서 사람들에게 농성장의 모습을 좀 더 기억하게 하는 수기(手記)이다. 수기(手記)는 자기의 생활이나 체험을 직접 쓴 글이다. 잡다한 삶의 비늘을 모아 몸피를 채우고 도금을 하는 작업이다. 한 영혼의 존재가 오롯이 스며든 수기는 그를, 나아가 그가 속한 집단을 이해하는 머릿돌이다. 사진가는 카메라만 있으면 시각적인 수기를 만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정택용은 시위 현장과 농성 현장을 '투쟁의 현장'이 아닌 '삶의 현장'으로 찍었다. 그는 사람들 틈바구니로 곧장 걸어 들어가, 그들의 간고한 일상을 그냥 살았다.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는 순간의 역사는 물론, 한쪽에선 싸우다 지쳐 잠든 모습까지 흑백사진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래서 사진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그리고 거침없다. 농성 현장에는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아픔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다. 결국, 현실적으로는 패배하지만, 결코 패배가 아닌, 살아있는 몸짓들을 형상화하고 있다.

 

평화적 시위문화라는 허상 앞에서 생존을 외치는 시위대는 폭력범이 되고, 신자유주의에 항거하는 노동자들은 교통체증의 원흉으로 내몰린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까지도 시장의 폭력 앞에 벌거벗긴 세력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나누는 것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그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런 풍토에서 《외박 : 고공농성과 한뎃잠》은 가뭄 속 단비와 같다. 사람 사는 세상 속에서 누가 노동자이고, 누가 자본가이고는 중요하지 않다. 싱거운 말일지 모르지만 모두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택용은 자본의 이익만을 좇는 현실에서 핍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소외되는 아픔을 알렸다.

 

 

 

사진은 상징이다. 우리는 지금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전광판 위에 서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들을 둘러싸는 듯한 거대한 빌딩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노동자들과 빌딩은 각각 난쟁이로 상징되는 못 가진 자와 거인으로 상징되는 가진 자 사이의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기호다. 개발지상주의 망령이 떠도는 지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돈벌이의 욕망에 사납게 찢겨버리고 있다. 원래 그렇게 살아왔듯이 앞으로도 조용히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이 희미해져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순하고 약한 사람들의 작은 항거들이 무시되고 있는가. 만약 이 사진에 노동자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좋은 사람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면 타인의 사회적 위치가 어디에 있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 속 '사람'은 여전히 너와 나를 구분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 대표는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천막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의 비극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정부·여당 사람들은 유족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범죄 피의자처럼 몰아세우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로 무시하며 유족들을 괴롭히고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밤비를 맞는 세월호 농성 천막의 사진은 절대로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적인 저항이다. 이 사진에는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사진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외박 : 고공농성과 한뎃잠》은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보다 두 달 먼저 나왔다. 두 권 모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당연히 강신주의 책이 사진집보다 더 많이 팔렸다. 그런데 꼰대 같은 질문이지만, 소위 인문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철학을 공부한다 해서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철학이 세상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선의 도구인 것은 맞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철학이라면 거부하겠다.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 철학을 배우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기본적인 의식을 잃어버린다. 《외박 : 고공농성과 한뎃잠》에는 뚜렷한 사진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철학, 그게 꼭 사진으로 드러내야만 하는가. 상업적인 영상 콘텐츠와 권력에 복종한 기성 언론과 구분되는 정택용의 현장 사진은 타인의 고통에 바라보고 응답해주는 눈과 입 역할을 한다. 그래서 오늘도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을 정택용의 카메라는 정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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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8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0-29 08:06   좋아요 1 | URL
**님이 언급하신 문제의 글이 뭔지 궁금해서 검색으로 찾아봤어요. 이미 삭제되었는지 흔적 일부마저 찾지 못했습니다. ^^;;

저도 말과 행동이 불일치한 적이 많아서 여기에 글을 남길 때 신중해집니다.

**님의 영향을 받은 이후로 알려지지 않은 사진집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
 
스페이스 미션 -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찾아 떠난 무인우주탐사선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크리스 임피.홀리 헨리 지음, 김학영 옮김 / 플루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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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를 주제로 한 논문만 약 300편을 남겼다. 그는 외계 생명체를 찾는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1976년 바이킹 1호가 화성에 착륙했을 때 세이건이 집중했던 것도 외계 생명체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이건은 그곳에서 최초의 사진들이 전송된 직후 “생명의 흔적은 없다”고 인정했다. 두 대의 무인 화성 탐사 로버(Mars Exploration Rover) 스피릿(Spirit)과 오퍼튜니티(Opportunity)는 우리에게 과거 화성에 물이 존재했다는 등의 새로운 사실을 알려줬다. 화성인이 허구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화성인이 존재할 것이란 믿음은 팽배했다.

 

 

 

 

‘기회를 놓치지 마라.’ 미국의 명문가 출신인 퍼시벌 로웰은 이 집안 가훈을 믿으며 평생의 목표인 화성인 문제에 매달렸다. 화성 연구를 위해 미국 애리조나 주의 사막에 천문대를 세웠다. 화성인에 대한 발상은 이탈리아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의 화성관찰 논문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화성 표면에서 ‘계곡(canalis)’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프랑스 천문학자가 ‘운하’로 번역했고, 로웰은 ‘인공 운하’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국, 화성에는 그 운하를 파놓을 수 있는 지적 존재가 있다는 믿음을 주게 됐다.

 

 

 

 

 

왜 인류는 많은 돈을 투자해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가? 그 이유는 화성이 미래에 이용가치가 가장 크고 연구할 것이 많은 행성이기 때문이다. 비록 생명체가 없어 황량하지만, 지평선을 배경으로 드넓게 펼쳐진 화성의 정경은 인류에게 감동과 함께 기대감을 안겨준다. 탐사 로버가 보내온 화성의 모습을 보며 우주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인간이 화성표면에 무인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한 지는 40년이 넘었고 숱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왔다.

 

오퍼튜니티는 현재 6개의 바퀴 중 1개가 고장 나 있고, 2개의 탐사 장비도 작동을 멈춘 상태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며 탐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약 3개월 활동을 목표로 발사된 오퍼튜니티는 나사(NASA)의 예상보다 훨씬 긴 생존력을 보인다. 나사 과학자들은 오퍼튜니티가 십 년 넘게 작동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그간 숱한 잔 고장과 모래바람을 이겨내면서 고독한 주행을 하는 화성의 방랑자다. 앞으로 남은 오퍼튜니티의 생존 기간은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오퍼튜니티의 주행은 화상탐사의 새로운 역사를 쓸 소중한 기회(Precious opportunity)이기 때문이다. 지구와 화성까지의 거리는 평균 2억 2,500만km에 달한다. 화성 현지 신호가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시차가 발생한다. 지구에서 오퍼튜니티를 조종하는 연구진은 지구-화성 간의 시차를 고려한 교신 업무를 해야 한다. 연구진은 밤낮의 생체 리듬을 잃어버려 수면 부족으로 고생한다. 그렇지만, 광활한 우주 공간을 날고 싶은 꿈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오퍼튜니티 조종은 화성의 드넓은 지평선을 누빌 특별한 기회(Special opportunity)다.

 

 

 

 

 

세이건은 외계 생명체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보다 절호의 기회(a window of opportunity)를 맞닥뜨리는 데 성공했다. 세이건이 보이저 1호의 영상 팀에게 우주의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을 때, 나사 과학자들의 태도는 냉담했다. 하지만 세이건은 반대를 무릅쓰고, 보이저 1호를 통해 우주의 어둠을 촬영했다. 보이저 1호의 사진 한 장은 과학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도 감동할 만한 위대한 순간을 포착했다. 세이건은 지구를 우주의 어둠에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에 불과하다고 했다. 26년 전에 찍은 지구 사진이 아직도 우리 시선을 거듭 잡아끄는 이유는 깊은 성찰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창백한 푸른 점’은 인간 존재와 인류 역사 그리고 지구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게 한다. 한 장의 사진은 사소한 욕망, 분노 따위가 덧없는 것임을 절실히 느끼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스페이션 미션》에 소개된 우주 탐사 이야기들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기록이 아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의 말을 빌리자면, 성공과 실패의 기록들 모두 우주의 경이와 비밀을 풀기 위한 ‘커다란 도약’이다. 우리나라의 우주 탐사 기술력은 여전히 선진국의 계획에 의존해야 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몇몇 우주 과학자들은 우리나라도 국가 우주개발의 자주성을 확보해야한다고 촉구한다. 우주개발이 선택이 아닌 필요조건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안보의 차원을 넘어 산업과 국가발전의 성장 동력으로서 우주를 접근하는 어른들의 생각이 성급하게 느껴진다. 우리 아이들이 우주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화성의 방랑자에게 붙여진 이름을 가장 먼저 생각한 사람은 우주개발로 이익을 꿈꾸는 어른들이 아니라 고아원 출신의 9세 소녀였다. 소녀는 가슴 벅찬 심정으로 소감을 밝혔다.

 

“전 고아원에서 살았습니다. 그곳은 어둡고 춥고, 또 외로웠어요.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을 꿨죠. 미국에서 저는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정신(Spirit)과 기회(opportunity)에 감사합니다." (《스페이션 미션》 83쪽)

 

로웰, 세이건, 오퍼튜니티 조종사, 그리고 무인 화성 탐사 로버에게 멋진 이름을 붙여준 소녀. 우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원대한 꿈을 펼칠 가능성의 기회(Potential opportunities)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나라 어른들이 우주개발을 돈벌이 기회(Money Making Opportunities)로 여기고 있을까 봐 조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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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27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에 파란 점이 지구라더군요.. ˝˝창백한 파란 점하나.˝˝

오거서 2016-10-27 18:37   좋아요 2 | URL
그 점 위에서 우리는 아둥바둥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점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여기면서요.

cyrus 2016-10-27 18:59   좋아요 2 | URL
세이건의 제안은 신의 한 수 였습니다. 숙연하게 만드는 이 사진이 아이들 과학 교과서에 실렸으면 좋겠어요.

붉은돼지 2016-10-27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디 예천천문대인가 갔다가
저 사진 비슷한 엄청난 크기의 천체망원경으로다가 뭔가 보기는 봤는데...
이게 영 실감이 안나더라구요...

cyrus 2016-10-27 19:02   좋아요 1 | URL
천문대 규모가 클수록 성능, 명확도가 좋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6-10-27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러스님의 리뷰가 빛을 발하는 분야인것 같습니다^^;

cyrus 2016-10-28 08:24   좋아요 1 | URL
우주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주에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10-2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세대에 인류가 화성에 첫발을 디디는 것을 보게 될까요ㅎ? 생각만해도 흥분되네요ㅎ

cyrus 2016-10-28 17:10   좋아요 0 | URL
나사는 2030년대에 인류를 화성에 보낼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정말 현실화된다면 과학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