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제바스티안 하프너 지음,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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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민은 신과 인간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고 합일된 유럽의 동등한 권리를 갖는 구성원으로서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을 다짐하며 헌법 제정 권력에 의해서 이 기본법을 제정하였다.”

 

Im Bewußtsein seiner Verantwortung vor Gott und den Menschen, von dem Willen beseelt, als gleichberechtigtes Glied in einem vereinten Europa dem Frieden der Welt zu dienen, hat sich das Deutsche Volk kraft seiner verfassungsgebenden Gewalt dieses Grundgesetz gegeben.

 

 

이렇게 시작되는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은 통일 이전 서독 기본법의 연방정부 구성 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독일의 기본적 국가 구성 원리는 1870년 비스마르크의 첫 도이치 제국 통일 후 만들어져, 바이마르 공화국, 히틀러의 나치 정부,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동독과 서독의 분단 상황을 거친 오랜 역사적 실험과 경험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연방정부의 새로운 기본법은 나치 독일의 쓰라린 상처를 안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며 동서독의 통일과 유럽연합정부의 이상을 수용하고 있다.

 

패전국이 되었다는 것, 그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과거이다. 비스마르크의 도이치 제국에 패배한 프랑스가 제1차 세계 대전이 오기까지 와신상담의 시간을 보냈고, 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독일이 나치즘으로 접어들었던 과거를 볼 때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보불전쟁, 1차 세계 대전, 나치즘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등 이 긴 전쟁의 시대는 독일이란 단일 민족국가가 프랑스, 미국 등의 연합국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이 시기 전체가 독일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패자인 독일의 입장에서 본다면 전쟁의 시대는 자멸의 길로 인도하게 한 과오의 시대였다. 독일의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독일이 전쟁 제국으로 팽창하는 과정을 되돌아보며 몰락의 원인을 파헤친다. 비스마르크와 히틀러. 시대를 초월한 다소 어리둥절한 조합이지만, 한때 독일제국의 위대한 영웅으로 숭배되었던 이 두 사람은 독일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과 혈(), 그리고 뛰어난 외교술로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유럽 지도를 만들었던 인물. 비스마르크를 21세기, 그것도 독일이 유럽연합(EU)의 맹주로 자리 잡은 이 시기에 불러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비스마르크의 주변이 항시 적과 동지로 나뉘었듯 그에 대한 평가도 극으로 갈린다. 자유주의자들은 그를 나치 등장의 전조로 지목한다. 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극단적 전체주의를 경험해야 했던 파행과 굴절의 이면에는 독일 제국의 권위주의 전통이 뿌리내리고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비스마르크와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에게 닮은 점, 닮은 환경이 없진 않다. 혹자는 트럼프의 등장을 히틀러의 부활이라고 냉소적으로 조롱하지만, 나는 그가 히틀러보다는 비스마르크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현재 미국이 친 트럼프(대안 우파)’반 트럼프로 분열돼 있다시피 한 것처럼 당시의 도이치 제국도 크게 보면 보수적인 구() 프로이센 진영과 민족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다. 통일 도이치 제국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프너는 비스마르크의 도이치 제국이 20여 년 동안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대선후보로 등장하면서부터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일명 트럼프 쇼크. 비스마르크가 들고나온 철과 혈도 당시 유럽인들에겐 충격이었다. 그러나 제국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 2기는 달랐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비스마르크는 유럽 정복의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제국을 팽창하는 것만으로는 독일 내부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없었다. 오로지 순수 독일 민족이 사는 작은 독일을 건설하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원대한 꿈이었다. 그래서 비스마르크는 내부 분열의 잡음을 줄이기 위해 철과 혈 대신 실리와 실용’, ‘외교와 중재를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비스마르크 2기 체제가 거의 반세기를 풍미할 수 있었다. 내년부터 트럼프가 내년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지 아직 알 수 없다. 워낙 자신감에 차 있고, 백인 민족주의를 천명한 그의 공약이 비스마르크의 정치적 노선과 다르지 않다. 대선후보 시절 무모할 정도로 강경한 자세로 자신의 공약을 주장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당선 이후 일부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트럼프가 실리를 추구하는 정책을 펼칠지 지켜봐야 한다.

 

프랑스 황제에 올라 유럽제패를 꿈꾸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한 국가의 정치는 그 나라의 지리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남겼다. 정치현상이 이뤄지는 공간적인 실체, 즉 영토를 중시한 발언이다. 작은 독일제국으로 한정된 환경과 지리는 정복 열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최적의 조건이었다.작은 독일제국은 자신 주변에 둘러싸인 유럽 연합의 힘을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독일 제국은 유럽 연합의 힘에 밀려 고립될까 봐 두려웠다. 독일 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이 뒤숭숭한 분위기를 극복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고취하기 위해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생존 방식을 선택한다. 제국의 극단적인 논리는 나치스의 인종차별과 게르만 민족의 세계지배 이론을 뒷받침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긴 했으나 사민주의적 이상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바이마르공화국 헌법을 가진 독일은 20세기 전반기 이미 시민사회가 발달한 선진국이었다. 이때 독일은 민주주의를 재건해야 했다. 그런데 히틀러는 민주주의적으로 집권해 전쟁을 일으켰고, 유대인을 학살했다.

 

비스마르크는 정치를 이념이 아닌 힘의 논리로 파악했다. 그것은 유럽 정복이 아니라 독일 제국이 평화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선택한 차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차례로 통일 독일제국의 제물로 삼아 평화로운 제국의 이득을 취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정복의 야욕을 불러일으키게 한 중대한 배경이 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1871년 비스마르크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진 이후부터 독일 제국에 제국주의적 야망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비스마르크는 자신은 절대로 제국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비스마르크의 작은 독일 제국을 키워 준 토양은 역설적이게도 나라를 더 크게 만드는 제국주의의 거름이 되었다. 비스마르크는 전쟁이든 정치적 모험이든 단 한 번의 승부에 국가와 자신의 미래를 걸지 않았다. 절제를 알았고 한계를 알았다. 그런데 히틀러는 자신의 열망을 조절하지 못했고, 위험한 망상에 사로잡혀 유럽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독일은 다시 한번 유럽의 패권 국가가 되려는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철저한 사과로 전쟁 책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보였던 독일에서도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들이 남아 있다. 네오나치 단체들은 여전히 히틀러의 제3 제국 질서를 그리워하고, 나치의 상징인 하겐 크로이츠(Hakenkreuz)에 향수를 느낀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좌절감과 무력감을 교묘하게 자극하고, 거기에서 자란 정치적 허무주의를 발판으로 역사상 전대미문의 절대 권력을 장악, 독일 국민을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갔다. 민족적 자존심을 내세운 기개는 너무 지나치면, 막상 대안 없는 변화가 몰아올 결과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독일이 과거에 만들어진 비스마르크와 히틀러, 두 개의 이름으로 남은 제국의 향수(鄕愁)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면, 4제국으로 꾸미려는 위험한 향수(香水)가 될 수 있다. 독일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좌절감과 무력감이 자칫 정치적 허무주의를 가꾸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1970년대에 제조된 박정희 향수를 못 잊고 있다. 허무주의의 기운이 이미 흘러간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여 시대착오적인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키울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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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1 18:39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요즘 히틀러를 중심으로 한 독일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독일 역사를 계속 공부하게 되면 비스마르크까지 관심의 폭을 넓혀볼 생각입니다. ^^

2016-12-02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2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6-12-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향수... 전라도 사람들 조차 박정희는 좋게 평가하시는 분이 많아 걱정입니다.

cyrus 2016-12-02 14:38   좋아요 1 | URL
과거 지도자를 선호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도자의 업적만 찬양하고, 문제점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건 올바르지 않습니다.

yureka01 2016-12-0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도종환 시인의 시집 하나 들고 갈 작정입니다..오시면 꼭 싸인 받고 싶어요 ㅎㅎㅎ

cyrus 2016-12-02 14:39   좋아요 1 | URL
시인께서 바쁘시더라도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

2016-12-02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2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THE PATH 더 패스 :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 - 하버드의 미래 지성을 사로잡은 동양철학의 위대한 가르침
마이클 푸엣.크리스틴 그로스 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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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변화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만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해가며 살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다. 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변화의 방향에 따라서 긍정과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에 변화의 시도도 좋지만, 변화의 첫발을 어느 쪽을 향해 내딛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변화하기를 두려워한다. 그것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안온함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타성에 젖게 되고, 관습이 되고 습관이 되어 타성에 빠진다. 새로움의 세계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그 순간이 변화 추진력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이다.

 

언제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뇌는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약해진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고 흥미가 없어질 때, 언제나 똑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변화를 주지 않을 때, 현재에 안주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위기로 확산되는 조짐을 미처 알아내지 못한다. 하버드대 중국사 교수 마이클 푸엣은 현실 안주의 시대를 슬기롭게 살 수 있는 대안으로 중국 철학에 주목한다. 다양한 제자백가의 사상 중에서도 유가와 도가 철학은 호랑이의 얼굴 속의 두 눈이다. 중국철학하면 공자와 노자가 떠오를 정도다. 푸엣이 소개한 것은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순자의 사상, 그리고 내업(內業)이라는 오래된 문헌에 기록된 ()’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는 공자와 아주 관련이 깊은 유가 사상의 이념이 보수적이며 절대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막상 공자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지, 오래된 중국 철학이 민감한 현실 문제를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배울 가치가 있는지 등등 아주 간단한 문제들조차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마이클 푸엣의 하버드대 강의는 중국철학의 잃어버린 위상을 회복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것은 중국철학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커다란 복이다. 한편 중국철학은 우리의 생각을 거울처럼 정확히 비춰주는 도구가 되어 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요즘 사회는 많은 것들이 쉽게 변화하고 빨리 바뀌고 있다. 잭 웰치는 변화를 강요당하기 전에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웰치의 말처럼 우리 스스로 변화하려면 나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다라는 정형화된 자아 개념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고대 중국 사상가들은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한 존재로 인식했다. 즉 우리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존재이며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맹자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안정된 세상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좋은 대학, 안정된 직업.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내부, 즉 나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주변 일을 해석하면 위기가 위기인 줄 모르거나 위기 앞에 쉽게 좌절한다. 내업은 맹자의 생각과 반대로 외적인 일에 휘둘려서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는 삶을 경계한다. 외부 환경의 위협적이고 불길한 기를 반사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내업편에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을 언급하는 내용이 너무 관념적으로 느껴져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요즘 혼이 비정상인 여자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활력을 빼앗고,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외적인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수양하라고 권한다. 나에게 독서는 내면의 안정을 유지하게 해주는 수양의 한 방식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도 마음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혼이 비정상인 여자의 기가 독할 정도로 센 것일까.

 

푸엣은 내업기원전 4세기 중국에서 출간된 작자 미상의 자기 신격화 운문 모음집’(184)이라고 소개했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내업은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관자49편의 제목이다. 관자에 수록된 일부의 글이 후대의 식자들이 쓴 것으로 추측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업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의 글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푸엣이 인용한 내업의 문장은 관자49편의 시작을 알리는 첫 문장이다.

    

 

무릇 만물의 정기, 그것이 곧 생명이다.

그 아래로 오곡이 생기고, 그 위로 별이 생긴다.

그것이 천지 사이에 떠다니면 귀신이라고 부르고,

가슴에 갈무리되면 성인이라 부른다.

 

(The PATH191)

    

 

무릇 사물이 지니고 있는 정기가 합하면 만물이 생성한다.

땅에서는 오곡을 낳고, 하늘에서는 뭇 별이 된다.

천지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귀신이라 한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을 성인이라 한다.

 

(신창호 외 공역, 소나무출판사, 관자502)

 

 

특이하게도 205내업에서 인용한 문장은 한자 원문과 같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하나를 굳게 지킨 군자만이 이를 해낼 수 있다원문에 들어간 첫 번째 한자가 잘못 표기되었다. (성품 성)’이 아니라 (오직 유)’.

   

 

기를 수정하되 바꾸지 않고, 지혜를 변형하되 바꾸지 않는 것.

化不易氣 變不易智

 

하나를 굳게 지킨 군자만이 이를 해낼 수 있다.

執一之君子 能爲此乎

 

(The PATH205)

 

    

 

모든 사물을 변화시키되 자기의 기는 바뀌지 않고,

化不易氣

 

모든 일의 변화를 촉진하되 자기의 지혜는 바뀌지 않으니,

變不易智

 

오직 하나를 굳게 지닌 군자만이 이를 해닐 수 있도다!

執一之君子能爲此乎!

  

(신창호 외 공역, 소나무출판사, 관자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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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1-30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변화의 시간 차....이걸 보면 정말 어느 것이든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이 변화만이 영원할 듯하더군요...변화하지 못하면 변화를 당하야 하는 것도 세상이치인듯..ㅎㅎㅎ

cyrus 2016-11-30 17:11   좋아요 0 | URL
신기한 점이 변화의 미세한 조짐을 감지 못하더라도 그 변화의 흐름에 저절로 맞추면서 살아가는 경우입니다. ^^

:Dora 2016-11-30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신 혼 마음 영혼에 어떻게 다른건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예~전에

cyrus 2016-11-30 21:50   좋아요 0 | URL
저도요. 철학적인 관점으로 정신, 혼, 마음, 영혼의 정의를 정리하면 꽤 머리 아플 겁니다. ㅎㅎㅎ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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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원래 조직폭력배라는 의미로 사용돼온 경찰 전문용어였다. 지금 조폭은 가장 익숙한 말 중 하나가 됐고, 그 실체는 일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각종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문화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조폭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마도 배신과 불신이 판치는 세태에 거친 사나이의 야성적 매력과 자기들끼리긴 해도 끈끈한 의리랄지 우정 같은 것들이 재미를 주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천명관의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조폭물의 세계를 비꼬고 희화화한 코미디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천 뒷골목 조폭 두목과 건달들은 그저 우습거나, 망가지는 존재로 묘사된다. 작가는 처음부터 익숙한 조폭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액션과 웃음 속에 막판 감동을 살짝 끼워 넣는 뻔한 줄거리의 조폭물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의리나 인정 같은 조폭 세계에 대한 알량한 미화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생존을 위한 싸움에 휘말린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조폭 그 자체보다는 남자들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일상적 폭력성과 먹이 사슬을 형성하는 사회 구조의 모순에 대한 공포가 더욱 구체화하여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건달 울트라는 정식 조직원이 되는 것이 꿈이다. 그런데 그가 심부름을 가던 도중 재수 없게 일이 꼬이는 바람에 조직원 전체가 원산폭격(손을 뒤로하고 머리를 박는 벌)’을 받게 된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울트라는 살벌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공포를 느끼기 시작한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단체로 요가라도 하는 중인가? 울트라는 단순하고 무식했지만 그래도 예감이라는 게 있었다. 그 예감은 뭔가 일이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울트라는 답답하고 무서워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아무것도 못 본 척 사무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금이 저려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41)

 

이 소설에 묘사된 조직 내 가혹 행위는 남자들이 말하기 불편했던 익숙한 문제이기도 하다. ‘원산폭격은 지금은 사라진 군대식 기합이다. 과거에는 연대 책임이라는 군대 문화 때문에 장병들은 연일 군홧발에 죽도록 맞고 원산폭격을 밥 먹듯 했다. 의무적으로 군대에 몸을 담게 되는 대한민국 남성은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는다. 적응할 것인지, 반항할 것인지. 그러나 개인의 힘으로 군대의 조직문화에 반항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상 한 가지의 선택을 강요받는 셈이다. 그렇게 대한민국 남성들은 권위에 복종하고, 불의와 타협하는 법, 비합리적 상황에 맞서기보다는 적당히 피하는 법을 배운다.

 

군대에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는 말을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곧 군대에 다녀와야 복종과 포기를 내면화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다시 이 말을 조금 순화하면 군대에 다녀와야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런 말은 명백한 불의와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원래 조직사회란 그런 곳이라고 합리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엄격한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의 원리는 군대뿐만이 아니라 많은 조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내리 갈굼으로 표현되는 일방적 의사소통 구조, 강요되는 복종의 문제는 비단 군대 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좀 더 넓게 보면 권력에 의한 일상적 폭력은 가정에서도 일어난다.

 

인천 연안파 두목 양 사장의 유년시절은 참혹하다. 그는 뱃사람이었던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렸다. 아버지 때문에 어둡고 좁은 어창에 사흘 동안이나 갇히는 바람에 아사 직전, 죽음의 위기까지 갔다. ‘물고기 썩은 내가 진동하는어창에 갇힌 양 사장의 기억은 어린아이에게 있어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이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양 사장의 정신적 탯줄이 끊겨버린다. 그렇게 일찌감치 존재의 연줄이 사라져 버린 양 사장은 남성성을 통해 자신을 살찌우면서 뒷골목 세계에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조폭 집단은 모든 권력이 한 사람, 즉 두목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는 강한 남성으로 행사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상처의 기억을 잊으려고 한다. 작가는 이런 양 사장의 심리적 경험을 따라가면서 그것이 왜곡된 남성성에 대한 집착임을 짚어낸다.

 

그러나 이런 세밀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가 관습화된 조폭물을 넘어설 만큼 특별한 무엇을 보여줬다고는 평가하기 힘들다. 작가가 노골적으로 묘사한 수컷의 모습들은 시시콜콜 헤집을 것까지도 없다.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군대 미담을 언급하거나 지나가는 여자들의 몸매를 관찰하면서 희희낙락거리는 사내들의 모습은 남자들끼리 모여 있을 때 등장하는 공식 클리셰(Cliché). 무망한 목표를 위해 거칠고 물불 안 가리는 위험한 열정을 과시하면서 사력을 다하는 건달들의 모습은 우리 남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실상 남자는 상처를 지닌 하나의 작은 인간에 불과하다. 약점을 지우려고 남성성을 과시하려는 동족들의 호들갑이 불편하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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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9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1-29 19:51   좋아요 1 | URL
그쪽 세계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더 무섭게 느껴져요. 제 친구 중에 조폭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연락을 끊을 겁니다. 괜히 친하게 지냈다가는 엉뚱한 일에 휘말릴 것 같습니다. ^^;;

자강 2016-11-2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봤습니다~ 수준높은 리뷰를 보니 같은 책 다른 리뷰라는 말이 머리속에 내내 남는군요 ㅜㅜ

cyrus 2016-11-29 19:55   좋아요 0 | URL
과찬입니다. 알라딘에 리뷰를 꾸준히 기록하시는 분들 보면 대충 쓴 티가 나지 않고, 생각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어서 읽기 편합니다. 자강님도 그러한 분들 중의 한 분입니다. ^^

stella.K 2016-11-29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군대를 갖다 왔야 한다는 진짜 속내는 네가 지적한 말이 맞긴 할 거야.
근데 그것도 한끗 차이 아닌가?ㅋ
또 어떤 면에선 그게 여자들에겐 다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여자는 결국 거의 대부분이 의젓하고, 힘 세고, 자기를
보호해 주는 남자를 좋아하거든.
그리고 군대 안 갔다오면 엉덩이 뿔난 망아지 같다고 싫어해.ㅎㅎㅎㅎ

cyrus 2016-11-29 20: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노골적으로 말하면 남자 취급 안 해줘요. 저는 그런 상황을 지켜봤어요. 대학교 다닐 때 사정상 군대 안 간 선배가 있었어요. 제가 좀 눈썰미가 있는 편인데요, 예비역 선배들이 그 선배를 은근히 무시하는 태도가 보였어요. 제가 군대 안 간 선배 입장이었다면 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을거예요.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거든요. ^^;;

수다맨 2017-07-26 0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인 주관을 말하자면 천명관 소설은 수준 편차가 상당히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쓰인 소설(예컨대 ˝고래˝)은 맛깔나고 기름진 장광설의 향연을 보여주는 데 반하여 범작이나 졸작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재미와 의미를 확보하지 못하고 작가가 무절제하게 뱉어 놓은 요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더군요. 박하게 말하자면 저는 천명관이 ˝고래˝라는 기념비적 작품 이후로는 그가 가진 문학적 명성에 걸맞는 소설을 쓰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는 확실히 구라를 푸는 재주는 탁발한 작가인데 그 구라가 깊이가 떨어지는, 범속한 수준에서만 계속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cyrus 2017-07-30 09:58   좋아요 0 | URL
오래 전에 독서모임에 가면 사람들이 가끔 천명관의 소설을 많이 언급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호평한 천명관의 소설이 <고래>였습니다. 하지만 그 작품 이후에 나온 천명관 작가의 작품들에 대판 평가는 부정적이었습니다. 수다맨님이 말씀하신 것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눈물보다는 웃음에 관하여 쓰는 편이 나은 법이라오.

웃음이 인간의 본성일지니.

 

(프랑수아 라블레, 유석호 역 《가르강튀아》 14쪽)

 

 

 

 

 

 

 

 

 

 

 

 

 

 

 

 

 

 

 

 

중세 유럽은 극단의 시대였다. 중세인들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모든 인간의 영광과 찬란함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 즉 이름뿐이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저 날카로운 전율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슬픈 생각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그 시대는 가시적 공포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에서 부패하는 시체의 이미지를 발견하는데, 이것은 ‘사라져 버리고 없음’이라는 관념을 좀 더 짧은 시간의 틀 속에서 응축시켜 놓은 것이다.

 

(《중세의 가을》 269쪽)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전도서 문구처럼, 기독교의 교훈적인 성격과 연관된 바니타스(vanitas)의 기원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말 죽음과 관련된 마카브르(macabre) 도상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시체를 대신해서 해골이 죽음의 역할을 맡게 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부나 명예의 덧없음, 쾌락의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다루었던 바니타스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위징아는 중세의 분위기가 잿빛 구름이 드리워진 고즈넉한 가을 풍경과 같다고 이해했다. 즉, 중세는 시들고 쇠퇴해간 가을이었다. 하지만 중세인들에게도 강렬한 열망을 품은 채 뜨겁게 살아온 ‘여름’ 같은 시절이 있었다.

 

 

중세의 생활은 너무나 강렬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에 피 냄새와 장미 냄새의 뒤섞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들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 같았다. 모든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절대적 부정과, 부유함과 즐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 이런 두 양극단 사이에서 그들은 살았다. 중세인의 삶 중에서 다른 한 극단을 차지하는 밝은 반쪽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 세대의 웃음은 죽어 버렸고, 중세인의 걱정 없는 즐거움과 생애에 대한 자연스러운 열망은 민요와 소극에서만 살아 있는 듯하다. (《중세의 가을》 73쪽)

 

 

중세의 밝은 반쪽이 완전히 잊히는 바람에 후대의 역사가들은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이제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만 정의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하위징아는 중세인들이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선택한 세 가지 길을 정리했다. 세계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거부하든가, 모순의 세계를 변혁하든가, 아니면 공상의 세계를 꿈꾸는 길. 15세기 프랑스의 민중들은 즐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을 표현하려고 ‘첫 번째 길’ 또는 ‘세 번째 길’을 택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이다. 두 거인의 이야기는 원래 프랑스의 민담에서 유래한다. 두 거인은 중세적 금욕과 규율마저 씹어 삼킬 정도로 쾌락을 즐긴다. 가혹한 현실에 진저리를 친 민중들에게는 두 거인의 걱정 없는 즐거움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라블레의 문학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바흐친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 2001)는 단언 최고다. 그런데 이 책은 절판되어 도서관에서 구해야 한다.

 

다행히 라블레 전공자인 유석호 교수의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이 나옴으로써 그동안 주류 고전문학으로부터 멀어진 라블레 문학이 재조명받을 기회가 마련되었다. 이 책에 당연히 바흐친의 라블레 연구서의 주요 내용도 나온다. 600쪽 넘는 바흐친의 책이 부담스러우면 유석호 교수의 책을 참고해도 된다. 그런데 이 책에 오자가 눈에 띈다. 책 199쪽 주석에 ‘디드로(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소설가)’를 ‘디디로’로 표기되었다.

 

 

미하일 바흐친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팡타그뤼엘》과 《가르강튀아》를 중세 민중문화의 실체를 증명해줄 수 있는 문헌으로 봤다. 라블레의 소설은 음담패설, 욕설 등 상스러운 말들로 가득하다. 이에 대해 바흐친은 천박한 표현들이 민중이 자주 모이는 장터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석했다. 장터에는 민중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 즉 ‘카니발(Carnival)’이 펼쳐진다. 카니발은 왕족과 귀족이 참여하는 공식적 축제와 거리가 멀다. 계급 초월, 해학과 풍자, 질서를 파괴하는 카니발 속에 억압된 욕구와 권력에 대한 저항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니발은 중세의 비공식적 민중 문화이며 장터는 서민들만의 놀이터라 할 수 있는 특별한 광장이다. 바흐친은 라블레의 소설이야말로 ‘광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칭송했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241쪽)

 

인류 전체의 문화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욕망이 축제를 통해 표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데서 유래한 축제 내내 음주 가무를 즐겼고,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콩 임금의 축연’이 전통적인 민중 축제로 자리 잡았다. (‘콩 임금의 축연’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미야시타 기쿠로의 《맛있는 그림》을 참고할 것)

 

 

 

 

 

 

 

 

 

 

 

 

 

 

 

 

 

그러나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카니발을 정기적으로 열기가 불가능했다. 카니발의 의미가 역사의 기억 속에 희미해지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이 최악의 기근으로 인해 생긴 식량 부족일 수도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술과 음식이 가득한 정물화나 축제를 묘사한 그림을 걸어 놓고, 굶주림에 대한 고통을 잊으려고 했다. 서민들이 풍족한 공상의 세계를 꿈꾸고 있을 때, 부유한 왕족과 귀족들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하위징아는 중세 궁정의 화려한 식탁 정경을 ‘라블레적 풍성함’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했다.

 

 

궁정의 위계적 배열은 식사와 주방과 관련해서는 라블레적 풍성함을 갖추었다. 대담공 샤를의 궁정 식탁은 빵 담당, 고기 담당, 와인 담당, 요리장이 늘 대기했고 그들의 서비스는 거의 의전 절차 비슷한 위엄으로 규제했다. 식사 과정은 장엄하고 엄숙한 연극과 비슷했다. 식사의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통제되었고 엄격한 격식에 맞추어 시중을 받았다. (《중세의 가을》 101쪽)

 

 

하위징아는 대식가의 면모를 드러낸 두 거인의 식탐이 생각나서 궁정 식탁을 ‘라블레적 풍성함’이라고 표현한 것 같은데, 바흐친의 관점에서 본다면 틀린 내용이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배고픈 민중을 대변하는 영웅이다. 라블레는 위계질서를 무시하는 두 거인을 등장시켜 민중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을 썼다. 그러므로 라블레는 ‘민중 친화적’ 문학을 상징하는 작가다. 엄격한 격식이 지배하는 궁정 문화와 라블레는 상극이다.

 

민중 축제는 권력의 억압에 밀려 사라졌고, ‘축제’의 의미가 그 권력의 축인 기득권층이 즐기는 사치스러운 문화 유형으로 변질하였다. 이는 종교가 라블레의 소설을 금서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혹자는 ‘광화문 광장의 촛불 집회’가 ‘축제 같은 시위’로 비치는 것을 꺼린다. 나도 촛불 집회가 ‘평화’라는 단순한 프레임 속에서만 갇혀서 보는 것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축제의 원래 의미를 탐색해보면 촛불 집회를 ‘축제 같은 시위’로 보는 것도 옳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힘으로써 지금까지 X 같은 현실에 짓눌린 압박에 해방감을 느끼고, 썩어빠진 권력이 만든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정말 제대로 된 ‘축제 같은 시위’가 되려면 가수들의 공연 시간과 집회를 주도하는 주요 시민단체들의 연설 시간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시민은 광장을 지배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중이 즐기는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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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11-25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말씀따라 내일 즐기려면 일찍 자야겠네요 ㅋㅋ 편한 밤 되시고 원기를 모으시길.

cyrus 2016-11-25 22:17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울이 대구보다 많이 추울텐데 내일 그곳에 집회 인원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2016-11-26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6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6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1-26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6-11-29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서평도서로 받아 두기만 하고 여적도 못 읽고
있는 책이네요. 왜 이렇게 죄책감이 드는지 -
카오

cyrus 2016-11-29 15:07   좋아요 0 | URL
<중세의 가을>에 꼭 알아두어야 할 중세 시대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은 거의 다 있습니다. 중세 역사를 다룬 고전을 천천히 읽고 나서 에코의 <중세> 시리즈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
 
거대한 분기 - 신자유주의 위기 그 이후
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 지음, 김덕민.김성환 옮김 / 나름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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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음에 이견을 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침탈을 통해 세계적 지배권을 확립했던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지배국의 자리를 미국에 넘겨줬다. 냉전기 소련과 함께 세계의 양대 축으로 군림하던 미국은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10여 년 만에 세계 패권주의의 정점이 올랐다. 계획경제보다 시장경제가 우월하다는 것은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는 것을 보고 분명하게 알게 됐다. 자본주의적 변신에 성공한 중국과 70여 년의 사회주의 실험에 실패하여 결국 붕괴한 소련의 차이는 바로 시장과 사유재산제도에 있었던 셈이다. 일찍이 다니엘 벨은 1960년대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한 바 있다. 이데올로기가 정치 이념을 뜻한다면, 이념이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리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80년대 후반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다. 사회주의 몰락과 더불어 이제 인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역사의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견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분석하는 틀을 제공하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현실에 적합한 최적의 사회적 담론도 아니기 때문이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정치·사회적으로 불평등이 만연하고 있는 오늘날 《거대한 분기 : 신자유주의 위기 그 이후》는 주목할 만하다. 현재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변신하여 의기양양하게 득세하고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기업 주도 세계화는 실패했고, 2008년 경제 위기로 전 세계가 홍역을 앓은 이후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은 확산했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고, 위기만 넘기면 다시 탐욕과 착취를 반복한다. 첫 번째 위기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기업의 수익성 저하였다. 경제적 타격을 받은 자본가들은 금융기관의 보호 덕택에 기사회생했다. 이때부터 금융이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위기는 1929년 대공황이다. 일약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미국경제가 1929년 10월 주가의 폭락과 함께 순식간에 끝났다. 끝없는 실업자의 행렬이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게 되었고,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루스벨트 정부가 시행한 뉴딜 정책은 자본가 계급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관리직 계급과 민중의 ‘사회적 타협(좌파적 타협)’이었다.

 

신자유주의가 탄생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소수의 상위 자본가 계급들은 금융자본을 이용해 자기 몸집을 키워왔다. 그사이 전 지구적 범위에서 투기와 거품이 끊임없이 양산되었고 이렇게 커진 거품은 경제 체제의 약한 지반을 따라 부분적인 폭발을 일으키면서 문제들을 누적시켜왔다. 세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좌파 정당의 목표는 언제나 효율적인 자본주의 경제 관리와 경제 성장 촉진, 그리고 이를 통한 보다 공정한 잉여의 분배였다. 하지만, 유럽의 좌파 정당은 미래를 위한 경제정책과 정치적 목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분열해왔다. 여기에 우파들은 자본가 및 금융기관과 함께 동맹을 결성하여 신자유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 주도했다.

 

《거대한 분기》의 공동 저자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 자체마저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좌파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좌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좌파의 위기는 거대한 세계 경제 위기의 뒤에 찾아왔다. 1929년 경제 붕괴와 대공황 시절, 1970년대 성장둔화와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그때다. 뒤메닐과 레비는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 또 한 번 ‘거대한 분기’에 직면하게 된 자본주의의 향방을 예측하면서도 유럽 좌파들이 선택해야 할 경로를 넌지시 제시한다. 그들은 뉴딜 정책의 사례처럼 ‘사회적 타협’이 형성되어 민중 계급이 신자유주의 쇄신에 주도하는 대안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번 위기의 상황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면이 있다.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도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각 정파 내에서도 또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며, 역사적으로도 변화해왔다. 역사는 가변적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거대한 분기》는 신자유주의에 반감을 보인 사람들에게 주어진 거대한 숙제다. 사실 우리나라도 ‘사회적 타협’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의 허상이 낱낱이 알려졌음에도 관리직과 자본가 계급의 우파적 동맹이 아주 강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 동맹의 핵심은 노동과 시민을 억압하고 배제한다. 이 관계의 ‘뿌리’가 지금까지 썩고 있었던 사실을 목격했다.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특히 금융이 승승장구하리라는 것을 전망하는 주장들이 빈축을 사고 시대착오적이라 비난받아 마땅한 시기가 왔다.

 

 

 

 

 

 

우리나라가 ‘거대한 분기’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경기 침체의 늪에 계속 허덕인다면, 먼 훗날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선택지를 마주할 수 있다. 보수 우파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미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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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11-26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러다임이 shift하는 건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지 아직 모르겠지만, 엄청난 사건이죠...

cyrus 2016-11-26 10:23   좋아요 0 | URL
181쪽 문장을 보면서 제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음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