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보다는 웃음에 관하여 쓰는 편이 나은 법이라오.
웃음이 인간의 본성일지니.
(프랑수아 라블레, 유석호 역 《가르강튀아》 14쪽)
중세 유럽은 극단의 시대였다. 중세인들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 심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역사가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 모든 인간의 영광과 찬란함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 즉 이름뿐이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저 날카로운 전율을 생각해 볼 때, 이런 슬픈 생각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그 시대는 가시적 공포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에서 부패하는 시체의 이미지를 발견하는데, 이것은 ‘사라져 버리고 없음’이라는 관념을 좀 더 짧은 시간의 틀 속에서 응축시켜 놓은 것이다.
(《중세의 가을》 269쪽)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전도서 문구처럼, 기독교의 교훈적인 성격과 연관된 바니타스(vanitas)의 기원은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세 말 죽음과 관련된 마카브르(macabre) 도상에서 세밀하게 묘사된 시체를 대신해서 해골이 죽음의 역할을 맡게 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하여 부나 명예의 덧없음, 쾌락의 무의미함을 상징하는 소재들을 다루었던 바니타스 그림은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서 절정을 이룬다.
하위징아는 중세의 분위기가 잿빛 구름이 드리워진 고즈넉한 가을 풍경과 같다고 이해했다. 즉, 중세는 시들고 쇠퇴해간 가을이었다. 하지만 중세인들에게도 강렬한 열망을 품은 채 뜨겁게 살아온 ‘여름’ 같은 시절이 있었다.
중세의 생활은 너무나 강렬하고 다채로웠기 때문에 피 냄새와 장미 냄새의 뒤섞임을 견딜 수 있었다. 그들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 같았다. 모든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절대적 부정과, 부유함과 즐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 이런 두 양극단 사이에서 그들은 살았다. 중세인의 삶 중에서 다른 한 극단을 차지하는 밝은 반쪽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그 세대의 웃음은 죽어 버렸고, 중세인의 걱정 없는 즐거움과 생애에 대한 자연스러운 열망은 민요와 소극에서만 살아 있는 듯하다. (《중세의 가을》 73쪽)
중세의 밝은 반쪽이 완전히 잊히는 바람에 후대의 역사가들은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렇지만 이제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만 정의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하위징아는 중세인들이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선택한 세 가지 길을 정리했다. 세계를 온몸으로 저항하며 거부하든가, 모순의 세계를 변혁하든가, 아니면 공상의 세계를 꿈꾸는 길. 15세기 프랑스의 민중들은 즐거움에 대한 광적인 열망을 표현하려고 ‘첫 번째 길’ 또는 ‘세 번째 길’을 택했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어린애의 머리를 가진 거인’이다. 두 거인의 이야기는 원래 프랑스의 민담에서 유래한다. 두 거인은 중세적 금욕과 규율마저 씹어 삼킬 정도로 쾌락을 즐긴다. 가혹한 현실에 진저리를 친 민중들에게는 두 거인의 걱정 없는 즐거움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었다.
※ 라블레의 문학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책으로 바흐친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아카넷, 2001)는 단언 최고다. 그런데 이 책은 절판되어 도서관에서 구해야 한다.
다행히 라블레 전공자인 유석호 교수의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이 나옴으로써 그동안 주류 고전문학으로부터 멀어진 라블레 문학이 재조명받을 기회가 마련되었다. 이 책에 당연히 바흐친의 라블레 연구서의 주요 내용도 나온다. 600쪽 넘는 바흐친의 책이 부담스러우면 유석호 교수의 책을 참고해도 된다. 그런데 이 책에 오자가 눈에 띈다. 책 199쪽 주석에 ‘디드로(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소설가)’를 ‘디디로’로 표기되었다.
미하일 바흐친은 프랑수아 라블레의 《팡타그뤼엘》과 《가르강튀아》를 중세 민중문화의 실체를 증명해줄 수 있는 문헌으로 봤다. 라블레의 소설은 음담패설, 욕설 등 상스러운 말들로 가득하다. 이에 대해 바흐친은 천박한 표현들이 민중이 자주 모이는 장터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석했다. 장터에는 민중들이 모여 떠들썩하게 즐길 수 있는 축제, 즉 ‘카니발(Carnival)’이 펼쳐진다. 카니발은 왕족과 귀족이 참여하는 공식적 축제와 거리가 멀다. 계급 초월, 해학과 풍자, 질서를 파괴하는 카니발 속에 억압된 욕구와 권력에 대한 저항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니발은 중세의 비공식적 민중 문화이며 장터는 서민들만의 놀이터라 할 수 있는 특별한 광장이다. 바흐친은 라블레의 소설이야말로 ‘광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칭송했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241쪽)
인류 전체의 문화사를 살펴보면 인간의 원초적 감정과 욕망이 축제를 통해 표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데서 유래한 축제 내내 음주 가무를 즐겼고,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콩 임금의 축연’이 전통적인 민중 축제로 자리 잡았다. (‘콩 임금의 축연’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미야시타 기쿠로의 《맛있는 그림》을 참고할 것)
그러나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카니발을 정기적으로 열기가 불가능했다. 카니발의 의미가 역사의 기억 속에 희미해지기 시작한 가장 큰 원인이 최악의 기근으로 인해 생긴 식량 부족일 수도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술과 음식이 가득한 정물화나 축제를 묘사한 그림을 걸어 놓고, 굶주림에 대한 고통을 잊으려고 했다. 서민들이 풍족한 공상의 세계를 꿈꾸고 있을 때, 부유한 왕족과 귀족들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서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하위징아는 중세 궁정의 화려한 식탁 정경을 ‘라블레적 풍성함’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했다.
궁정의 위계적 배열은 식사와 주방과 관련해서는 라블레적 풍성함을 갖추었다. 대담공 샤를의 궁정 식탁은 빵 담당, 고기 담당, 와인 담당, 요리장이 늘 대기했고 그들의 서비스는 거의 의전 절차 비슷한 위엄으로 규제했다. 식사 과정은 장엄하고 엄숙한 연극과 비슷했다. 식사의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통제되었고 엄격한 격식에 맞추어 시중을 받았다. (《중세의 가을》 101쪽)
하위징아는 대식가의 면모를 드러낸 두 거인의 식탐이 생각나서 궁정 식탁을 ‘라블레적 풍성함’이라고 표현한 것 같은데, 바흐친의 관점에서 본다면 틀린 내용이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배고픈 민중을 대변하는 영웅이다. 라블레는 위계질서를 무시하는 두 거인을 등장시켜 민중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을 썼다. 그러므로 라블레는 ‘민중 친화적’ 문학을 상징하는 작가다. 엄격한 격식이 지배하는 궁정 문화와 라블레는 상극이다.
민중 축제는 권력의 억압에 밀려 사라졌고, ‘축제’의 의미가 그 권력의 축인 기득권층이 즐기는 사치스러운 문화 유형으로 변질하였다. 이는 종교가 라블레의 소설을 금서로 규정하기 시작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혹자는 ‘광화문 광장의 촛불 집회’가 ‘축제 같은 시위’로 비치는 것을 꺼린다. 나도 촛불 집회가 ‘평화’라는 단순한 프레임 속에서만 갇혀서 보는 것에 반대한다. 그렇지만 축제의 원래 의미를 탐색해보면 촛불 집회를 ‘축제 같은 시위’로 보는 것도 옳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힘으로써 지금까지 X 같은 현실에 짓눌린 압박에 해방감을 느끼고, 썩어빠진 권력이 만든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마음껏 표출하고 있다. 정말 제대로 된 ‘축제 같은 시위’가 되려면 가수들의 공연 시간과 집회를 주도하는 주요 시민단체들의 연설 시간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시민은 광장을 지배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중이 즐기는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