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분기 - 신자유주의 위기 그 이후
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 지음, 김덕민.김성환 옮김 / 나름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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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음에 이견을 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침탈을 통해 세계적 지배권을 확립했던 영국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지배국의 자리를 미국에 넘겨줬다. 냉전기 소련과 함께 세계의 양대 축으로 군림하던 미국은 사회주의가 몰락한 지 10여 년 만에 세계 패권주의의 정점이 올랐다. 계획경제보다 시장경제가 우월하다는 것은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하는 것을 보고 분명하게 알게 됐다. 자본주의적 변신에 성공한 중국과 70여 년의 사회주의 실험에 실패하여 결국 붕괴한 소련의 차이는 바로 시장과 사유재산제도에 있었던 셈이다. 일찍이 다니엘 벨은 1960년대에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말한 바 있다. 이데올로기가 정치 이념을 뜻한다면, 이념이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리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80년대 후반 ‘역사의 종언’을 주장했다. 사회주의 몰락과 더불어 이제 인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역사의 종착역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의 견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분석하는 틀을 제공하고,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현실에 적합한 최적의 사회적 담론도 아니기 때문이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정치·사회적으로 불평등이 만연하고 있는 오늘날 《거대한 분기 : 신자유주의 위기 그 이후》는 주목할 만하다. 현재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에 발을 디디고 있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로 변신하여 의기양양하게 득세하고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기업 주도 세계화는 실패했고, 2008년 경제 위기로 전 세계가 홍역을 앓은 이후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은 확산했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고, 위기만 넘기면 다시 탐욕과 착취를 반복한다. 첫 번째 위기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기업의 수익성 저하였다. 경제적 타격을 받은 자본가들은 금융기관의 보호 덕택에 기사회생했다. 이때부터 금융이 자본주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위기는 1929년 대공황이다. 일약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한 미국경제가 1929년 10월 주가의 폭락과 함께 순식간에 끝났다. 끝없는 실업자의 행렬이 시대의 아픔을 상징하게 되었고,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루스벨트 정부가 시행한 뉴딜 정책은 자본가 계급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관리직 계급과 민중의 ‘사회적 타협(좌파적 타협)’이었다.

 

신자유주의가 탄생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소수의 상위 자본가 계급들은 금융자본을 이용해 자기 몸집을 키워왔다. 그사이 전 지구적 범위에서 투기와 거품이 끊임없이 양산되었고 이렇게 커진 거품은 경제 체제의 약한 지반을 따라 부분적인 폭발을 일으키면서 문제들을 누적시켜왔다. 세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좌파 정당의 목표는 언제나 효율적인 자본주의 경제 관리와 경제 성장 촉진, 그리고 이를 통한 보다 공정한 잉여의 분배였다. 하지만, 유럽의 좌파 정당은 미래를 위한 경제정책과 정치적 목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분열해왔다. 여기에 우파들은 자본가 및 금융기관과 함께 동맹을 결성하여 신자유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 주도했다.

 

《거대한 분기》의 공동 저자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 자체마저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좌파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좌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좌파의 위기는 거대한 세계 경제 위기의 뒤에 찾아왔다. 1929년 경제 붕괴와 대공황 시절, 1970년대 성장둔화와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그때다. 뒤메닐과 레비는 신자유주의 위기 이후 또 한 번 ‘거대한 분기’에 직면하게 된 자본주의의 향방을 예측하면서도 유럽 좌파들이 선택해야 할 경로를 넌지시 제시한다. 그들은 뉴딜 정책의 사례처럼 ‘사회적 타협’이 형성되어 민중 계급이 신자유주의 쇄신에 주도하는 대안 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번 위기의 상황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면이 있다. 좌파와 우파, 그리고 중도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각 정파 내에서도 또 수많은 다양성이 존재하며, 역사적으로도 변화해왔다. 역사는 가변적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거대한 분기》는 신자유주의에 반감을 보인 사람들에게 주어진 거대한 숙제다. 사실 우리나라도 ‘사회적 타협’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의 허상이 낱낱이 알려졌음에도 관리직과 자본가 계급의 우파적 동맹이 아주 강고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 동맹의 핵심은 노동과 시민을 억압하고 배제한다. 이 관계의 ‘뿌리’가 지금까지 썩고 있었던 사실을 목격했다. 이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 특히 금융이 승승장구하리라는 것을 전망하는 주장들이 빈축을 사고 시대착오적이라 비난받아 마땅한 시기가 왔다.

 

 

 

 

 

 

우리나라가 ‘거대한 분기’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경기 침체의 늪에 계속 허덕인다면, 먼 훗날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최악의 선택지를 마주할 수 있다. 보수 우파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미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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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6-11-26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러다임이 shift하는 건지,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지 아직 모르겠지만, 엄청난 사건이죠...

cyrus 2016-11-26 10:23   좋아요 0 | URL
181쪽 문장을 보면서 제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음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