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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TH 더 패스 : 세상을 바라보는 혁신적 생각 - 하버드의 미래 지성을 사로잡은 동양철학의 위대한 가르침
마이클 푸엣.크리스틴 그로스 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6년 10월
평점 :
세월의 흐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변화’이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만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해가며 살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다. 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변화의 방향에 따라서 긍정과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에 변화의 시도도 좋지만, 변화의 첫발을 어느 쪽을 향해 내딛는가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쉽게 변화하기를 두려워한다. 그것은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안온함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타성에 젖게 되고, 관습이 되고 습관이 되어 타성에 빠진다. 새로움의 세계로 전혀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된 생활을 하게 된다. 현재에 안주하고 싶은 그 순간이 변화 추진력이 하나씩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이다.
언제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뇌는 자극에 대한 반응성이 약해진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고 흥미가 없어질 때, 언제나 똑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며 변화를 주지 않을 때, 현재에 안주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위기로 확산되는 조짐을 미처 알아내지 못한다. 하버드대 중국사 교수 마이클 푸엣은 ‘현실 안주의 시대’를 슬기롭게 살 수 있는 대안으로 중국 철학에 주목한다. 다양한 제자백가의 사상 중에서도 유가와 도가 철학은 호랑이의 얼굴 속의 두 눈이다. 중국철학하면 공자와 노자가 떠오를 정도다. 푸엣이 소개한 것은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순자의 사상, 그리고 《내업(內業)》이라는 오래된 문헌에 기록된 ‘기(氣)’에 관한 내용이다.
우리는 공자와 아주 관련이 깊은 유가 사상의 이념이 보수적이며 절대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막상 공자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仁)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지, 오래된 중국 철학이 민감한 현실 문제를 건드릴 수 있을 정도로 배울 가치가 있는지 등등 아주 간단한 문제들조차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마이클 푸엣의 하버드대 강의는 중국철학의 잃어버린 위상을 회복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것은 중국철학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커다란 복이다. 한편 중국철학은 우리의 생각을 거울처럼 정확히 비춰주는 도구가 되어 ‘나’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다.
요즘 사회는 많은 것들이 쉽게 변화하고 빨리 바뀌고 있다. 잭 웰치는 ‘변화를 강요당하기 전에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하여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웰치의 말처럼 우리 스스로 변화하려면 ‘나는 이런 유형의 사람이다’라는 정형화된 자아 개념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고대 중국 사상가들은 인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복잡한 존재로 인식했다. 즉 우리는 스스로 능동적으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존재이며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맹자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안정된 세상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좋은 대학, 안정된 직업.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선호한다. 내부, 즉 나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주변 일을 해석하면 위기가 위기인 줄 모르거나 위기 앞에 쉽게 좌절한다. 《내업》은 맹자의 생각과 반대로 외적인 일에 휘둘려서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는 삶을 경계한다. 외부 환경의 위협적이고 불길한 기를 반사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내업》 편에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氣)’와 ‘혼(魂)’을 언급하는 내용이 너무 관념적으로 느껴져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요즘 ‘혼이 비정상인 여자’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활력을 빼앗고,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외적인 상황에 휘둘리지 말고, 수양하라고 권한다. 나에게 독서는 내면의 안정을 유지하게 해주는 수양의 한 방식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도 마음의 활력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혼이 비정상인 여자’의 기가 독할 정도로 센 것일까.
푸엣은 《내업》이 ‘기원전 4세기 중국에서 출간된 작자 미상의 자기 신격화 운문 모음집’(184쪽)이라고 소개했는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내업》은 춘추시대 제나라 재상 관중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관자》 제49편의 제목이다. 《관자》에 수록된 일부의 글이 후대의 식자들이 쓴 것으로 추측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업》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의 글로 단정 지을 수 있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 푸엣이 인용한 《내업》의 문장은 《관자》 제49편의 시작을 알리는 첫 문장이다.
무릇 만물의 정기, 그것이 곧 생명이다.
그 아래로 오곡이 생기고, 그 위로 별이 생긴다.
그것이 천지 사이에 떠다니면 귀신이라고 부르고,
가슴에 갈무리되면 성인이라 부른다.
(《The PATH》 191쪽)
무릇 사물이 지니고 있는 정기가 합하면 만물이 생성한다.
땅에서는 오곡을 낳고, 하늘에서는 뭇 별이 된다.
천지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귀신이라 한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을 성인이라 한다.
(신창호 외 공역, 소나무출판사, 《관자》 502쪽)
특이하게도 205쪽 《내업》에서 인용한 문장은 한자 원문과 같이 소개되었다. 그런데 ‘하나를 굳게 지킨 군자만이 이를 해낼 수 있다’ 원문에 들어간 첫 번째 한자가 잘못 표기되었다. ‘性(성품 성)’이 아니라 ‘唯(오직 유)’다.
기를 수정하되 바꾸지 않고, 지혜를 변형하되 바꾸지 않는 것.
化不易氣 變不易智
하나를 굳게 지킨 군자만이 이를 해낼 수 있다.
性執一之君子 能爲此乎
(《The PATH》 205쪽)
모든 사물을 변화시키되 자기의 기는 바뀌지 않고,
化不易氣
모든 일의 변화를 촉진하되 자기의 지혜는 바뀌지 않으니,
變不易智
오직 하나를 굳게 지닌 군자만이 이를 해닐 수 있도다!
唯執一之君子能爲此乎!
(신창호 외 공역, 소나무출판사, 《관자》 5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