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는 체중과 달리 인간으로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운명이다. 몸무게는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키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요소인 만큼 싫든 좋든 자신의 타고난 키를 그대로 안고 살아야 한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거인이 나타나길 기대해보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거인이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 거대한 체형을 원하는 욕망이 숨어 있다. 세계 곳곳의 전설 및 신화, 문학 텍스트, 그림 등을 살펴보면 심심찮게 거인의 등장을 엿볼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거인은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있었다.

 

거인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여자 거인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이다. 남성 주체의 시선으로 기술하는 불균형을 해소해 왜곡된 문화 속 여성을 복원하는 것이 이 글을 작성한 의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 거인은 다중적 여성의 이미지.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여자 거인은 생명의 창조자였다. 그러나 남성의 시선이 개입되면서 여자 거인의 위상이 달라졌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여자 거인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자 구원의 여신상이며 공포의 근원을 상징하여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신화는 전승 과정에서 각종 의식을 동반하면서, 그 신성화의 면모가 강화된다. 따라서 전승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 내용 자체보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을 통해서 신화의 존재 의미를 찾게 된다. 신은 하나의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 상징의 의미를 해석해냄으로써 우리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여신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남신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해주는 병풍이었다. 그래서 신화 속 여신의 이면을 살펴보면 인류가 여성에게 부여했던 신성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도서출판 숲, 2009)

*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도서출판 숲, 2004)

* 아폴로도로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민음사, 2005)

* 게르하르트 핑크 WHO :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예경, 2012)

* 다케루베 노부아키 《판타지의 주인공들(들녘, 2000)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는 그녀를 (Ge)’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이 대지’, ‘지구를 의미하는 어원이다. 헤시오도스(Hesiodos)의 묘사에 따르면 가이아는 태초부터 존재한 신이라고 한다. 그녀는 처녀생식을 통해 하늘의 지배자 우라노스(Uranus)를 낳았고, 그와의 사이에서 여러 명의 자식을 얻는다. 따라서 가이아는 크고 작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바람, 토양, , 햇빛 등 자연의 근원을 어루만져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 조현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 2006)

* 김화경 한국의 신화 세계의 신화(새문사, 2015)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창조여신에 관한 신화가 있다. 마고할미 이야기와 제주도에 전해지는 선문대 할망 이야기. 할미는 큰 어머니의 순우리말이다. 할망은 할머니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마고할미는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산을 들어 옮길 만큼 힘이 센 창조의 여신이다. 옛 문헌 기록에 따르면 선문대 할망은 마고(麻姑)’로도 불렸다. 그래서 마고할미를 선문대 할망의 다른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선문대 할망은 몸집이 매우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 앞바다 섬에 걸쳐질 정도였다고 한다. 잠을 자던 할망이 일어나 방귀를 뀌더니 천지가 만들어졌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은 선문대 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바다에 뿌려 제주 섬을 만들 때 치마의 터진 구멍 사이로 조금씩 떨어진 흙이 쌓인 것이다. 한라산은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흙이다. 선문대 할망은 자신의 키에서 나오는 장점을 과신해서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한다. 한라산 물장오리 못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심이 깊어서 터진물이라고 불렀다. 선문대 할망은 이 못에 들어갔다 빠져 죽는다. 신화학자들은 선문대 할망의 최후를 창조신의 지위가 여신에서 남신으로 넘어가는 변화의 결과로 해석한다. 신성성(神聖性)을 상실한 마고할미는 악행을 일삼는 존재(강원도 삼척의 서구할미)로 변형되었다.

 

 

 

 

 

 

 

 

 

 

 

 

 

 

* 문국진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예담, 2004)

* 앵그르(재원, 2005)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앵그르의 예술한담(북노마드, 2014)

 

 

 

근대 서구의 남성 작가와 예술가들은 여성에게 거인성(巨人性)을 부여하여 남성 앞에서 전시하는 대상로 설정했다. 여자 거인의 영혼에 신성한 능력’이 제거되고, 그 자리에 남성의 시각과 상상력이 채워졌다.

 

 

    

 

 

앵그르(Ingres)그랑 오달리스크 좀 더 자세히 보면 이 그림 속 여성이 비정상적인 자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녀의 허리와 한쪽 팔이 지나치게 길다. 그림을 분석한 학자들은 그림 속 여성이 정상인보다 척추 세 마디 더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앵그르는 정교한 소묘를 통해 완성된 선()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돋보이려고 의도적으로 해부학적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그림 속 여성이 일어나 서 있는 자세로 그려졌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그녀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 허리만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롭스와 뭉크 - 남자와 여자(컬처북스, 2006)

* 이명옥 팜므 파탈(시공아트, 2008)

    

 

 

보들레르의 시 거녀(巨女)젊은 거녀를 예찬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시에 묘사되는 여자 거인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풍요로움과 편안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녀가 검은 열정을 품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자연이 힘찬 기운에 넘쳐

날마다 괴물 같은 아이를 배던 그 시절

나는 젊은 거녀 곁에 살았으면 좋았으리,

여왕 발 밑에서 사는 음탕한 고양이처럼.

 

그녀의 몸이 그 넋과 더불어 피어나

끔찍한 희롱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그녀의 가슴 검은 열정 품고 있는지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그녀의 웅대한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며

그녀의 거대한 무릎을 비탈인 양 기어오르고,

또 때로는 여름날 몸에 해로운 뙤약볕에 지쳐

 

그녀가 들판을 가로질러 드러누울 때,

나는 그 젖가슴 그늘에서 한가로이 잘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평화로운 마을이 산기슭에 잠들 듯이.

 

(윤영애 역, 70)

    

 

     

보들레르는 '정복자'의 입장에 되어 그녀의 거대한 신체 이곳저곳 마음껏 탐하고 싶지만(그녀의 웅대한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며 / 그녀의 거대한 무릎을 비탈인 양 기어오르고), 여성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그녀의 가슴 검은 열정 품고 있는지 /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보들레르를 비롯한 19세기 중반 상징주의 예술가들이 팜므 파탈을 대할 때 느끼는 딜레마다. 팜므 파탈은 남성에게 여성이 어떻게 동경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보들레르의 거인 여자는 대지의 어머니가 아닌 근대적 팜므 파탈이다. 보들레르는 검은 열정이 품고 있는 여자 거인을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상대를 매혹하고 이내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존재로 본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는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벌거벗은 여성의 신체 크기를 왜곡하여 보들레르의 거녀를 시각화했다. 그림 옆에 있는 시는 보들레르의 거녀원문이다. 방 한가운데 떡하니 서 있는 여자 거인은 왠지 모를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뒷모습만 보인 신사는 여자 거인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보들레르다. 거인 여성의 존재에 압도당하는 신사의 뒷모습은 자신보다 훨씬 큰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마크로필리아(Macrophilia)를 암시하기도 한다.

 

 

 

                    

 

 

구스타브 아돌프 모사(Gustav Adolf Mossa)그녀유혹하는 팜므 파탈유혹당한 남자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모사의 여자 거인은 커다란 젖가슴으로 남성 관객을 유혹한다. 그녀의 유혹에 굴복당한 남성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녀의 머리에 해골로 만들어진 핀이 보인다. 뜯어보자면 그림은 여색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벌거벗은 거인 여자는 남성 관객들을 위한 눈요기 대상일 뿐이다. 남성 화가들은 여성 누드를 선호하는 남성 관객들을 위한 맞춤 전략을 내세웠다. ‘현실 속 여성이 아닌 여신이나 상상 속 여성의 누드를 그림으로써 외설 시비에 벗어날 수 있었다.

 

 

 

                        

 

 

펠리시앙 롭스(Félicien Rops)는 보들레르에게 영향을 받은 화가다. 그가 묘사한 거대한 사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모호하다. 나는 사탄이 쓰고 있는 챙이 넓은 모자를 보고 사탄을 여성이라고 유추했다. (혹자는 사탄의 모자가 농부들이 쓰는 밀짚모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남성 농부만 밀짚모자를 쓰는 건 아니잖은가.) 사탄이 여성이라는 설정 하에 롭스의 그림을 살펴보면 사탄에게서 남성상징주의자들을 매료시켰던 고혹적인 팜므 파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롭스는 악마적인 여성의 본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지의 어머니‘질병과 고통의 천사를 잉태하는 악마로 변형시켰다.

 

 

 

              

 

 

게라케라온나(倩兮女)는 기모노를 입은 중년 여자의 모습을 한 거대한 요괴다. 킬킬거리는 웃음을 지으면서 사람들 앞에 불쑥 나타난다. 일본인들은 게라케라온나가 음탕한 여자의 혼이라고 생각했다.

 

 

 

 

 

 

 

 

 

 

 

 

 

 

*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들녘, 2001)

 

 

 

롭스의 그림을 보면서 일본 괴담에 등장하는 팔척 귀신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심약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팔척 귀신 이미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팔척 귀신이라고 검색하면 기괴한 모습의 이미지가 나온다.) 팔척 귀신은 약 2m 50cm의 큰 키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며 팔과 다리가 굉장히 길다.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2차 창작에서의 팔척 귀신은 어린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쇼타콘(쇼타 콤플렉스의 준말. 예쁘장하게 생긴 미소년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성)으로 설정된다. 이렇다 보니 쇼타콘이 된 팔척 귀신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예쁘장한 외모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남자아이를 유혹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묘사된 여자 거인들을 살펴봤다. 생각보다 글의 분량이 길어져서 어쩔 수 없이 포함되지 못한 내용이 있고,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다루지 못한 것도 있다. 그래서 필자가 소개한 내용만 가지고 역사라고하기에 다소 미흡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여자 거인 이미지들을 짚어보면서 제 입맛대로 여성의 신체를 소유하고 즐기는 남성들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페미니즘 관점으로 미술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대가 온 시점에서 남성의 편견이 반영된 작품들을 수준 이하로 보는 우를 범하지 것이 좋다. 비판과 비난은 엄연히 다르다. 예술의 기본은 다양한 눈을 허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롭스나 모사의 그림은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이지만, 그 그림들을 통해 시대적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근대미술 작품들은 인류의 내밀한 욕망이 화석처럼 남아있는 중요한 기록들이다. 우리는 화석이 되어버린 근대 그림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지금도 여전한 시대적 한계(남성 중심의 근현대 미술)를 규명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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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8-28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더왕 이야기에서도 대지모신인 귀네비어가 하급신으로 추락하는 모습과 많은 여신들이 몰락하는 모습들이 참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데 정말 남자들에게 여자는 엄마 아니면 창녀인건가요??

cyrus 2017-08-29 13:35   좋아요 1 | URL
북유럽 신화에도 여자 거인이 나오는군요. 남성중심사회가 되니까 모신의 입지가 줄어들고, 신화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모신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sprenown 2017-08-29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계중심사회에서 부계중심사회로 오면서 남자들의 희번덕 거리던 눈동자가 더욱더 야비해 졌군요..이젠 성평등의식이 확산되어 덜하지 않을까 싶지만, 상품판매,시청률올리기 등 영화 또는 tv 대중매체 때문에 더욱 더 교묘해 진 것도 같습니다.(역사,환타지)소설이나 드라마,게임,만화 등이 이러한 문화전승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지..그렇다고 막 태어나 사내아이에게 여성학강의를 해 줄수는 없을 것이고, 문명발달의 추이를 보면 다시 모계사회로 회귀할 수도 없을 터, 인류의 진화과정이 돌연변이의 역사였던 사실에 주목하여,언젠가 자웅동체의 신인류가 탄생되는 날! 진정한 성평등은 이루어 질것입니다.

cyrus 2017-08-29 13:41   좋아요 0 | URL
남자들이 벌거벗은 여체를 그리고 싶어서 여신을 이용했습니다. ‘벌거벗은 여신‘은 아름다우니까 예술로 인정했지만, 그냥 ‘벌거벗은 여자‘는 음란한 여자로 봤죠. ‘희번덕 거리던 눈동자‘가 문제입니다. 남자들은 여자에 대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습니다. 여자가 마음에 안 들면 욕을 했죠. ^^;;

2017-08-28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9 13:43   좋아요 1 | URL
<진격의 거인>을 본 적이 없어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다 나옵니다. 그런데 인터넷 정보를 긁어 모아서 언급하고 싶지 않았어요. ^^
 
창조력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가
김대식.다니엘 바이스 지음, 박영록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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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지능, 사물 인터넷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그들의 의식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 자체를 바꿀 것을 강요하고 있다. 사실 사회 변화의 흐름을 피부로 느낀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류 삶의 기본조건들, 즉 의식주는 변하거나 이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기본조건은 변하지 않지만, 그것을 충족시키는 수단 혹은 방법이 변하고 있으며, 이것은 사회변화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제 정보통신기술의 힘은 단순히 세상을 바꾸는 것에 멈추지 않고 세상이 변화하는 방식마저 바꿔놓을 정도로 막강해졌다. 수 세기 전의 산업혁명처럼 그 누구도 도도한 흐름을 돌리지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과연 내가, 우리가, 우리 사회가 이 거대한 흐름을 감지하고 있느냐는 사실이다.

 

뇌과학자 김대식다니엘 바이스(Daniel Weihs) 이스라엘 과학기술부 수석 과학관의 대담집 《창조력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가》(중앙북스, 2017)는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책 제목에 두 사람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와 있다. 창조력이다. 창조란 창의적 아이디어를 잘 육성하여 발전시키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변화와 혁신은 이러한 창조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는 ‘창조’의 의미를 자유롭게 말하면서도, ‘창조력’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한다. 창조력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발휘하지 못하면 구태의연한 지식에만 의존하여 현재에 안주한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서 살면 창조력은 생기지 않는다. 사소한 문제점이라도 불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지 생각한다.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여기서부터 창조력이 샘솟는다. 자신의 삶이 불완전하다고 느꼈을 때 창조적인 삶을 위한 첫걸음이 시작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명심하면서 기존의 지식을 이용해 아이디어를 만들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지식을 보충해서 약간 더 나은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은 ‘가짜 창조력’이다. 모방은 창조력 향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기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기존의 지식 또는 아이디어들을 짜깁기해서 만든 ‘잡탕’을 내놓고 있다. 표절 시비가 불거질 경우 오히려 이를 홍보 전략으로 활용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모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에 익숙해지면 변화하는 시대를 읽는 능력을 상실하고, 단물이 빠진 구시대적 발상만 찾게 된다. 창조적인 삶의 핵심은 사고의 유연성이다. 창조는 수많은 실패로부터 나오는 만큼 이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사회는 무조건 원칙만 따르도록 강요하지 말고 틀을 깨는 혁신을 유도해야 한다. 잘 짜인 조직이나 일사불란한 체제보다는 창조력을 발휘하도록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게 되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와 이스라엘의 사회적 분위기의 분명한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어렸을 때부터 탈무드 교육을 통해 제 생각을 발언할 수 있는 훈련을 한다. 훈련법은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것이다. 몸으로 하는 공부인 셈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무조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군인을 양산하지 않는다. 군대 규율을 따르면서도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능숙한 군인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도 지식을 응용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독창성을 마모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규격화돼 있고 천편일률적이다. 똑같은 교과서에 의한 성적 위주 교육은 창조력을 발달시키는 사고나 행동을 억압한다. 조직 문화도 경직되어 있다. 상관의 의견에 순순히 따라야 하는 통제된 분위기로 인해 개인 발언은 물론 비판할 기회마저 없다.

 

503번 정부가 창조력이 나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고, ‘창조경제’만 여러 번 외쳐댔으니 공허한 구호로 남게 되는 건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웃긴 점은 ‘창조경제’를 위한 준비를 소홀히 한 채 ‘새마을운동’ 세계화 작업에 매진했다. 21세기 지식 정보화 시대에 새마을운동이 웬 말이냐. 우리나라 발전이 시급한데, 다른 개발도상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죽은 권력’에서 나온 국가 정책을 사골곰탕 우려먹듯이 애용했다. 이거야말로 ‘가짜 창조력’을 내세운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낭비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책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높은 평점을 줄 수 없다. 비교적 진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내가 볼 때 책에서 신선했던 내용은 이스라엘의 창업 문화와 군대 문화) 두 사람은 앞에서 언급했던 대담 내용 일부를 다른 표현으로 바꿔 반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두 사람에게는 밀도 있는 대담을 나누기 위한 ‘진짜 창조력’이 필요해 보인다. 책 편집 방식이 불만스럽다. 두 사람이 말하는 중요한 내용, 즉 ‘미래에 필요한 창조력의 의미’를 알려주는 문장만 진한 검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중요 문장만 속독하는 것은 효율적으로 독서 시간을 쓸 수 있는 장점이 된다. 중요 문장만 보면 책의 핵심 내용을 거의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하게 표시된 문장만 골라 읽는다고 해서 없던 창조력이 생기겠나? 창조력을 안 생기게 하는 근본적인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독자가 파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책을 편집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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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8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8 15:42   좋아요 0 | URL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헛구호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현 정부가 산업 발전을 위한 기틀을 잘 마련한다면, 여당이든 야당이든 다음 정부가 바통을 이어받아서 장기적인 준비와 노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qualia 2017-08-28 18: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스라엘은 어렸을 때부터 탈무드 교육을 통해 제 생각을 발언할 수 있는 훈련을 한다. 훈련법은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것이다. 몸으로 하는 공부인 셈이다. [···]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아직도 지식을 응용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독창성을 마모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규격화돼 있고 천편일률적이다. 똑같은 교과서에 의한 성적 위주 교육은 창조력을 발달시키는 사고나 행동을 억압한다. 조직 문화도 경직되어 있다. 상관의 의견에 순순히 따라야 하는 통제된 분위기로 인해 개인 발언은 물론 비판할 기회마저 없다.

→ 이스라엘과 한국에 관한 자료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나오는군요.

Israel

Area
• Total
20,770-22,072 km^2 (149th)

Population
• 2017 estimate 8,731,540 (98th)

-----------------------------------

South Korea

Area
• Total 100,210 km^2 [107th]

Population
• 2017 estimate 51,446,201 (27th)

위 자료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은 땅덩어리 크기가 한국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고 인구는 한국의 5분의 1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국토는 우리나라 경상북도의 19,030km^2보다 약간 더 클 뿐이고 인구는 1천만 안팎에 이르는 서울시보다도 적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국토/인구 약소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까진 할 수 없어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근데 미국 정계뿐만 아니라 경제계·과학계를 쥐고 흔드는 막후 실력자들이 이스라엘계·유태계 미국인들이라는 사실을 볼 때 어쩌면 세계를 좌지우지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과학 분야에서나 경제 분야에서나 국제 정치 분야에서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막강한 듯합니다. 세계 최고 기업들인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IBM 등등이 이스라엘 벤처 기업들을 거액에 인수했다는 소식이 자주자주 들려옵니다. 반면 한국 벤처 기업 인수 소식은 거의 없다시피 하죠. 창의적 기업의 활성도를 나타내는 지표라 할 수 있는 혁신적 벤처 기업은 한국에선 거의 멸종 상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은 삼성이나 LG, 현대, SK하이닉스 같은 경직된 대기업밖에 내세울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런 이스라엘의 힘과 그걸 뒷받침하는 이스라엘 국민의 창의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제가 위에 인용한 cyrus 님의 글 중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도 있겠지만 저는 저것이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봅니다. 이스라엘과 한국의 근본적 차이는 바로 저 차이라고 봅니다. 요컨대 한국에선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나 조직적 차원에서나 지역적·국가적 차원에서나 타인과의 논쟁을 직간접으로 금기시하고 경원시합니다. 민족심리적 차원에서나 시대조류적 차원에서나 사회풍조적 차원에서나 타인과의 논쟁을 억제하고 통제하는 기질·성향·분위기·문화가 너무 우세합니다. 해서 한국인들 각자가 거의 모두 저것을 실천하려 하지 않습니다. 회피하고 기피하고 억제하고 심지어 부정적으로 보고 죄악시하기까지 합니다. 근본적·급진적 시각에서 비판하건대 끼리끼리 근친상간적 상호 친목질·자뻑질만 무한반복한다는 것입니다. 또 정반대 형태의 상호 비난질·왕따질·싸움질만 무한반복한다는 것입니다(백년하청 21세기 초 백주대낮에까지 한반도에서 계속되고 있는 호영남 지역감정 대립과 남북한 극한대결이 그 대표적 사례인 것입니다). 물론 무골호인이 넘치는 우리 한국인끼리 정을 나누고 우애를 돈독히 다지는 친목 문화가 일방적으로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런 좋은 점들은 차고 넘치니까 이 자리에선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왜 우리 한국에선 《타인의 생각과 직접 부딪혀 논쟁하는》 논쟁 문화가 자리잡지 못하는 것일까요? 윗글에서 cyrus 님께서 지적했듯이, 왜 우리 한국인들은 《규격화돼 있고 천편일률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대로만 생각하고 움직이(려)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남과 다른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데 소극적인 것일까요? 이에 대한 대답 일부가 cyrus 님께서 윗글에서 비판한 사항들 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cyrus 님의 비판적 시각에 너무나 크게 동의하는 나머지 이 댓글을 쓰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cyrus 님의 비판적 핵심을 간파했으면 합니다.

cyrus 2017-08-29 13:56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에 비판을 ‘비난‘과 동일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단어의 의미를 따져 보면 별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비난‘은 논거가 부족하고, ‘가짜 뉴스‘를 동원하면서 인신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예의가 없고, 설득력도 떨어집니다. 비난은 상대방의 결점만 파고 드는 행위입니다. 비판은 결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행위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목 문화 때문에 상대방의 결점을 지적하는 태도를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친한 사람일수록 좋은 점만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자를 벗으세요. 여기 천재가 등장했습니다!”

 

독일의 음악가 슈만(Schumann)쇼팽(Chopin)을 음악평론에 소개할 때 한 말이다. 이 말은 쇼팽을 언급할 때 널리 회자하고 있다.

 

 

 

 

 

 

 

 

 

 

 

 

 

 

 

 

 

 

훌륭한 책, 특히 손에 넣기 어려운 훌륭한 책을 만나면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럴 때, 나는 슈만의 말을 빌려 애서가들 앞에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여러분,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덮으세요. 여기 전설의 책이 등장했습니다.”

 

 

 

 

 

《토탈호러 1》(서울창작 · 1993), 《환상특급》(서울창작 · 1994)은 ‘전설의 책’이다. 두 권의 책에 대한 평이 요란한 호들갑으로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이 책들의 정체가 뭐기에 ‘전설’이라고 하는 걸까.

 

《토탈호러 1》은 ‘공포’를 주제로 한 단편 선집이다. 이 책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썰렁한 괴담집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부분이 있었다. 괴담을 담은 공포물은 단순히 무서움만을 안겨줄 뿐 문학성이 떨어져 있다. 작가들이 쓴 ‘무서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모았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토탈호러 1》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겨냥한 공포소설 단편 선집이었다. 《토탈호러 1》의 역자는 지금도 활발히 장르문학 번역 활동을 하는 박상준 씨다.

 

 

 

《토탈호러 1》 목차

 

 

 

 

 

 

 

《토탈호러 1》에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빅 네임’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 포진되어 있다. 고마쓰 사쿄(小松左京)는 일본 SF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된 《일본 침몰》(범우사 · 2006)이다. 《토탈호러 1》의 첫 번째 수록작 『흉폭한 입』은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먹는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지금도 《토탈호러 1》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흉폭한 입』을 직접 읽고 싶어서 《토탈호러 1》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사실 내가 그 사람 중 한 명이다)

 

르네 레베테즈 코르테스(Lene Rebetez-Cortes)『새로운 선사시대』도 『흉폭한 입』 다음으로 충격적인 설정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기괴한 형태의 집단’으로 변신하는 설정이 그로테스크하다. 작품 속 세상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불가사의한 힘에 이끌려 줄지어 행렬해야만 하는 괴물의 부분체가 된다.

 

 

 

 

 

 

 

 

 

 

 

 

 

 

 

 

 

 

조지 R. R. 마틴(George R.R. Martin)『샌드킹』은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Hugo Award)과 네뷸러상(Nebula Award)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조지 R. R. 마틴은 SF, 공포, 환상 등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작품을 쓴 작가지만, 우리나라에선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원작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샌드킹』은 《조지 R. R. 마틴 걸작선 : 꿈의 노래 2》 (은행나무 · 2017)에 수록되어 있다.

 

 

 

 

 

 

 

 

 

 

 

 

 

 

 

 

 

* 《SF 명예의 전당 1 : 전설의 밤》 (오멜라스, 2010)

아서 C. 클라크의 『90억 가지 신의 이름』 수록

 

*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황금가지, 2010)

『도시』 수록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 로버트 셰클리(Robert Sheckley),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등은 말할 것도 없는 유명한 작가들이다. 로버트 블록은 앨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사이코(psycho)》의 원작자이며, ‘공포소설의 할아버지’ 러브크래프트(Lovecraft)로부터 문학적 영양분을 얻기도 했다. 『지옥으로 가는 열차』는 1959년 휴고상 수상작이다.

 

 

 

 

 

 

 

 

 

 

 

 

 

 

 

 

*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차일드》 (비채, 2016)

 

 

 

커트 보니것과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는 최근 국내에 주목받고 있는 미국 작가이다. 요즘 알라딘 서재에 커트 보니것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독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해리슨 버거론』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미래 사회를 어둡게 그린 소설이다. ‘평등’에 단호히 반대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인용할 만한 글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차일드』도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외계인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토탈호러 1》을 소개할 때 ‘책 표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표지는 양반이다. 책을 펼치면 소름 끼치는 그림들이 나온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약 빨아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오해가 있을까 봐 책은 친절하게 ‘약 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정체를 알려줬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H. R. 기거(Hans Ruedi Giger).

 

 

 

 

 

 

 

 

 

 

 

 

 

 

 

 

 

* 《기거》 (아트앤북스, 2003)

* 《H. R. 기거》 (마로니에북스, 2010)

 

 

 

 

그는 ‘에일리언의 아버지’라 불리며 영화 <에일리언(Alien)> 디자인을 창조한 스위스 출신의 화가이다. 기거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은 그의 기괴한 그림을 ‘공포소설 선집에 어울리는 쌈마이한 그림’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지금은 기거의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는 화보집 두 권이 있다. 기거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고 싶으면 화보집을 보면 된다. 단, ‘19세 미만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아도 할 말 없는 에로틱하고, 잔혹한 그림이 있다. ‘안구 테러’를 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이 정도 소개만 봐도 여러분들은 《토탈호러 1》이 ‘전설의 책’이라는 내 평가에 수긍할 것이다. 《토탈호러 1》의 성공(?)에 힘입어 1996년에 《토탈호러 2》도 나왔다. 그런데 2권이 구하기 힘들고, 중고가가 비싼 편이다.

 

 

 

 

 

 

 

 

 

 

 

 

 

 

 

 

 

 

 

 

 

 

 

 

 

 

 

 

 

 

 

 

 

 

 

 

* 《SF 명예의 전당 1 : 전설의 밤》 (오멜라스, 2010)

톰 고드윈의 『차가운 방정식』 수록

 

*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현대문학, 2015)

『금빛 연, 은빛 바람』, 『태양의 금빛 사과들』 수록

 

*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황금가지, 2009)

『동방의 별』 수록

 

*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아작, 2016)

『마지막으로 멋지게 할 만한 일』 수록

 

 

 

 

《환상특급》은 《토탈호러 1》에 비하면 무게감이 조금 떨어져 보인다. 《환상특급》에 수록된 작품들도 《토탈호러 1》에 못지않게 문학성이 뛰어나다. ‘장르문학 단편 선집’의 주요 단골 작가이자 SF 문학의 ‘빅 네임’인 아서 C. 클라크, 레이 브래드버리,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 등의 작품이 있다. 이 책이 ‘무게감이 떨어진 책’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빅 네임들의 작품이 최근에 다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 있는 걸작’이다.

 

 

 

 

 

 

배리 롱이어(Barry B. Longyear)『적과 나』는 휴고상, 네뷸러상 2관왕 수상작이며 볼프강 페터젠(Wolfgang Petersen) 감독이 만든 영화 <Enemy Mine>의 원작이다. 팻 머피(Pat Murphy)『사랑에 빠진 레이첼』 은 1987년 네뷸러상 수상작이다. 아서 C. 클라크의 『동방의 별』도 1956년 휴고상 수상작이며 제입스 팁트리 주니어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1986년 휴고상 후보작이다.

 

 

 

 

 

 

 

 

《환상특급》의 표지도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기거의 그림을 사용한 《토탈호러 1》보다 낫다. 《환상특급》 디자인을 만든 사람은 영국 출신의 화가 패트릭 우드로페(patrick woodroffe). 그는 동화에 나올법한 상상의 세계를 묘사한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그밖에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정규 2집 앨범 표지 디자인을 제작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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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2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일본 갖다 온 거니?
다시 보니 반갑네.^^

cyrus 2017-08-26 14:34   좋아요 0 | URL
네. 어제 귀국했어요. ^^

stella.K 2017-08-26 14:39   좋아요 0 | URL
여독이 아직 풀리기 전일텐데
이런 글을 쓰다니...
그동안 글 쓰고 싶어 어찌 참았누?ㅎㅎ

cyrus 2017-08-26 14:43   좋아요 0 | URL
일본으로 가기 전에 글 앞부분을 미리 작성했어요. 뒷부분은 오늘 썼어요. ^^;;

겨울호랑이 2017-08-26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한동안 cyrus님께서 활동이 뜸하셨던 이유가 있었군요. 여름의 마지막 즈음. 드디어 공포물을 소개하셨네요^^:

cyrus 2017-08-27 20:21   좋아요 1 | URL
운이 좋았습니다. 구하기 어려운 책 두 권이 싸게 팔고 있길래 바로 주문했어요. ^^;;

서니데이 2017-08-2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잘 다녀오셨나요.
시원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7-08-27 20:22   좋아요 1 | URL
제대로 먹고 놀았습니다. 휴가 한 주 금방 지나가버렸네요. ^^;;

카스피 2017-08-26 20: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본 다녀오셨나봐용,넘 부럽습니당 ㅜ.ㅜ
하지만 저도 cyrus님한테 자랑할것이 있는데 90년대 서울 창작에서 나온 위 단편집들(총 6권인지 7권인지 좀 가물가물하네요.모두 박스속에 쳐박혀 있어서 말이죠)을 몽땅 가지고 있답니다.ㅎㅎ 그중에는 비싸게 구한것도 상당수 이지만요^^;;;

cyrus 2017-08-27 20:24   좋아요 0 | URL
이미 전설의 책들을 구입한 분들의 블로그 글을 봤어요. 글을 볼 때마다 부러웠습니다. 돈, 적립금 열심히 모아야겠습니다.. ^^;;

AgalmA 2017-08-2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또 어떤 레어템을 수집하신 건지 궁금ㅎ/

cyrus 2017-08-27 20:26   좋아요 0 | URL
다음에 또 일본에 가게 되면 서점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긴자 거리에 가고 싶어요. 이번에 일본 여행이 처음이라서 그냥 주전부리, 술만 샀습니다. ㅎㅎㅎ

2017-08-27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7 20:29   좋아요 0 | URL
대단한 일 아니에요. 카스피님처럼 희귀 책을 소장하신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책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했던 걸 똑같이 따라했을 뿐입니다. ^^

transient-guest 2017-08-27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레어템을 얻으셨네요.ㅎ 책을 읽고 사들이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쾌감이죠..ㅎ

cyrus 2017-08-27 20:30   좋아요 0 | URL
사진으로만 봤던 책을 실제로 가지게 되니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

zombie 2017-08-3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러 애서가로서 놓칠수없는 책이죠. 3만원 가격대가 훌쩍 넘기도해서 SF소설은 재테크가 가능하다는 말이 이책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었습니다. 토털호러는 2권도 있는데 할란 엘리슨의 단편으로 유명하죠. 그래도 1권보다는 못한편입니다. 좋은책을 구하셨다니 기쁘네요.

cyrus 2017-09-04 09:10   좋아요 0 | URL
미안합니다. 좀비님.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토탈호러 2》의 수록작을 확인해봤는데, 역시 전작보다 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2권이 제일 구하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제국과 낭만 - 19세기 화가는 무엇을 그렸을까?
정진국 지음 / 깊은나무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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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22, 나폴레옹 1(Napoléon I)의 대관식이 열렸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동원됐다. 대관식 장면을 꼼꼼히 지켜보고, 하객들의 얼굴과 장신구도 일일이 확인한 끝에 1년이 넘어서야 그림을 완성했다. 역사에 길이 남을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을 이렇게 해서 우리도 볼 수 있게 됐다. 황제는 대관식이 끝난 후 다비드에게 최고의 화가라는 영예를 수여했고, 다비드는 그의 그림을 통해 나폴레옹을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선전하는 데 관심이 많았고, 특히 미술을 잘 이용했다. 당시 그림은 현실의 인물을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였다. ‘나폴레옹 영웅 만들기의 주역은 물론 다비드이다. 그러나 주연에 가까운 조연도 있었다. 그가 바로 궁내부대신 탈레랑(Talleyrand)이다. 탈레랑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격변기에 활약한 탁월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다. 그는 코르시카(Corsica island)의 하급 장교인 나폴레옹을 왕좌에 앉히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다비드와 탈레랑. 이 두 사람은 한때 프랑스 혁명의 지지자였고, 나폴레옹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된다. 그들은 권력의 곁에 착 달라붙을 줄 아는 처세의 달인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권력의 앞잡이가 된 미술이 좋은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제국과 낭만(깊은나무, 2017)을 참고해도 좋다. 미술작품은 지배자들의 정치적 권력을 그대로 반영한다. 권력의 장식품이 된 그림은 시각적인 정치 선전 도구이다. 이런 그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고,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권력을 미화한 그림을 보면서 그 속에 숨겨진 사실을 읽어낼 수 있다. 제국과 낭만은 화가들이 주목했던 18~19세기 유럽의 모순과 부조리를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본다.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자유와 평등의 정신이 반혁명 분위기와 정부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으로 서서히 퍼져 나갔다. 시민들은 왕권의 몰락으로 점차 무너져 내리는 현재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상상 속의 미래 사이의 간격으로 인하여 불안하기도 하였으나, 그들 내부에는 새로운 문화의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렇지만 구체제를 그리워하는 권력자들은 보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신성동맹을 준비했고, 시민들은 급속히 보수화되고 있었다. 혁명과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급속히 확산됐다. 보수적인 소시민들은 전쟁의 고통을 잊기 위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선호했다. 문화사에서 이른바 비더마이어 시대(Biedermeier Zeit)가 열린 것이다.

 

한편 유럽인들은 바다 건너세계에 향해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바다 건너에 있는 유럽의 식민지는 관광지로 전락했다. 식민지에 정착한 유럽인들은 문화를 향유하는 풍토를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문화재들을 약탈했다. 프랑스인과 영국인 들은 각각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을 인류문화의 보고라고 치켜세우지만, 과거 문화재 약탈행위를 합리화하는 변명일 뿐이다. 유럽 정부는 이집트, 인도, 아프리카 대륙 등 식민지 정벌에 나설 때마다 종군화가를 반드시 파견했다. 종군화가는 식민지를 정복하는 군인들의 용감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이국적 풍경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종군화가의 이국적인 그림은 유럽인들에게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의 환상을 심어주었고,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행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더마이어 시대,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급속한 팽창으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모든 면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황금기를 구가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터지게 될 제1차 세계대전을 생각한다면, 유럽의 아름다운 시대는 부풀려진 풍요의 열정에 도취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시대였다. 19세기의 풍요는 새로운 차원의 예술과 문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풍요로운 시대의 이면에는 개인을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이 행해졌다. 정복의 야욕을 부추기는 제국주의의 향수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무색무취의 전운(戰雲)에 대해 둔감하게 만든다. 제국주의의 풍요에 도취할수록 전쟁의 위험성은 자신과 별개 문제로 간주한다. 제국과 낭만에 나오는 비더마이어 시대의 그림들을 보면 배부른 자의 권태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시대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서 칙칙해진 세상을 좋게 보려고 애썼다. 시대를 미화한 그림 속에는 급변하는 정세 속에 상실감을 숨기려는 사람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름다운 시대의 맨얼굴은 결국 공허의 시대였다.

 

 

 

 

 

Trivia

 

* 이 책에 수록된 도판 목록은 있으나 정작 제일 중요한 색인이 없다.

 

* 105쪽에 빈 회의(나폴레옹 실각 이후 유럽 질서 재편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열린 회의)를 이끈 오스트리아 정치가를 메테르니히(Metternich) 왕자라고 적혀 있다. 메테르니히는 왕족 출신이 아니다. 저자는 왜 그를 왕자라고 불렀을까.

 

* 217: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프로스트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 “만찬 자리는 정책을 선전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문인들이 단골 초대손님이었고 페니실린으로 인류를 구한 파스퇴르 박사도 단골이었다.” (223)

페니실린을 발견한 사람은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이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로 1945년에 노벨 생리 · 의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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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8-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 좋아요 후 감상입니다...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제국주의 본질을 숨길 수가 있나요 그래.

cyrus 2017-08-19 17:2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레삭매냐님이 읽었던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가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제국과 낭만》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우주, 시간, 그 너머 - 원자가 되어 떠나는 우주 여행기
크리스토프 갈파르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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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답을 몰라도 상관 없다. 그런데 이 질문만 봐도 현기증이 인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태초에 빅뱅(Big bang)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1백50억 년 전쯤 일어난 대폭발의 여파로 오늘의 우주가 생겼다. 빅뱅 이후 팽창해온 우주는 무한대의 공간이다. 우주에는 3천억 개의 별들이 모여 사는 은하가 있다. 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단지 도심의 불빛과 대기오염 때문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별은 얼마나 될까. 앞으로 소개할 책의 저자는 별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려고 별을 ‘모래알’로, 은하를 ‘정육면체 상자’로 비유한다. 이 문장만 봐도 우주가 얼마나 큰지 짐작된다.

 

 

은하수는 우주의 거대도시라고 할 수 있다. 3000억 개의 별들이 모여 사는 이 번창하는 도시에서 우리 태양은 그저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일 뿐이다. 마분지로 만든 1미터 높이의 정육면체 상자를 가져와 바닷가의 모래로 그 상자를 가득 채우라고 하라. 그렇게 모래로 가득 채운 상자를 300개나 만든 뒤, 그 안에 든 모래알의 숫자를 모두 합해야 비로소 우리 은하에 있는 별들의 개수가 된다. (56~57쪽)

 

 

크리스토프 갈파르(Christophe Galfard)《우주, 시간, 그 너머》(RHK, 2017)는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는 정신체가 된 저자가 들려주는 우주와 과학의 광대한 역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와 그 원리의 실체를 밝혀줄 수 있는 최신 과학 이론을 동시에 알려준다. 저자의 필력이 대단하다. 그림과 도표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으로 우주와 과학 법칙을 설명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책에 ‘E=mc2’를 제외한 공식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는다.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그림 없는 과학책’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우주, 시간, 그 너머》는 과학상식이 빽빽하게 채워진 그저 그런 과학책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없는 우주의 실체를 보여준 여행기다. 저자는 정신체가 되어 우주라는 거대한 바다를 자유롭게 유영하다. 한 번 빨려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black hole) 근처에 가보기도 한다. 까마득한 태초의 우주 공간에 나타난 최초의 별부터 블랙홀까지 우주를 넘나드는 저자의 탐사는 풍부한 상상력과 과학적 사실로 증명해내는 기교를 보여준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호킹 복사’를 문장으로만 쉽게 설명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블랙홀이 발생하는 원리와 그 실체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갈파르의 설명만 봐도 호킹의 이론을 알 수 있다. 호킹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까치, 1998)를 안 봐도 된다. 사실 갈파르는 호킹의 제자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같이 사멸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이 함께 공존해 있는 지구, 더 나아가 별과 우주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의 경우는 신생아의 몸무게로 그 아이의 수명을 알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별의 세계에서는 태어날 때의 질량으로 그 별의 수명을 알 수 있다. 별의 질량이 커질수록 별빛이 밝아진다. 질량이 커지면 중심의 온도가 높아져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별은 죽을 때가 되면 점점 부풀어 오르게 된다. 태양보다 큰 별들은 ‘초신성’이라고 하는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이 폭발에서 나오는 별의 분해 물질들이 우주로 퍼지게 되고, 그 물질들이 모여 지구와 같은 행성을 만들게 된다. 우주에는 잉여라는 것이 없다. 별은 그저 반짝거리기만 하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다. 생성을 위해 사라지는 별들의 장엄한 최후. 별의 소멸은 우주에서 빛나는 부고(訃告)인 동시에 새로운 별의 탄생을 알리는 축복의 신호다. 그래서 우주는 경이롭다.

 

태양도 앞으로 약 50억 년이 지나면 그 수명을 다해 별로서의 일생을 마친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증발해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을 수 있다. ‘우주의 먼지’ 지구 안에서 사는 인류는 미세먼지에 불과하다. 이 미세먼지들은 우주가 점점 늙어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지구 속 미세먼지는 자신보다 몇억 배나 큰 우주를 ‘정복’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을 벌인다. 실컷 일을 벌여놓고 자연을 파괴한 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 지구가 태양보다 일찍 멸망해도 할 말 없다. 우주에서 가장 쓸모없는 유일한 잉여, 그리고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미세먼지는 바로 인간이다.

 

 

 

 

 

 

 

※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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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7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18 20:51   좋아요 0 | URL
지금 인류의 욕망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언제 크게 터질지 모릅니다.. ^^;;

꼬마요정 2017-08-17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와 닿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위험한 미세먼지는 바로 인간이다.

오탈자 지적하신 부분.. 너무 재밌습니다. ㅎㅎ

cyrus 2017-08-18 20:53   좋아요 0 | URL
만약 외계인이 진짜로 있다면 그들도 우주의 먼지겠죠? ㅎㅎㅎ

나와같다면 2017-08-1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 님은 우주의 크기, 공간에 대해서 생각하실 때 공포감 느껴본적 없으세요..?
전 그 공간과 시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온 적이 있었어요..

cyrus 2017-08-18 20:54   좋아요 0 | URL
제가 우주 공포증 약간 느낍니다. 우주 사진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