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는 체중과 달리 인간으로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운명이다. 몸무게는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키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요소인 만큼 싫든 좋든 자신의 타고난 키를 그대로 안고 살아야 한다.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거인이 나타나길 기대해보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거인이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우리의 의식 속에 거대한 체형을 원하는 욕망이 숨어 있다. 세계 곳곳의 전설 및 신화, 문학 텍스트, 그림 등을 살펴보면 심심찮게 거인의 등장을 엿볼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거인은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있었다.

 

거인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여자 거인을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이다. 남성 주체의 시선으로 기술하는 불균형을 해소해 왜곡된 문화 속 여성을 복원하는 것이 이 글을 작성한 의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 거인은 다중적 여성의 이미지. 고대 전설에 등장하는 여자 거인은 생명의 창조자였다. 그러나 남성의 시선이 개입되면서 여자 거인의 위상이 달라졌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여자 거인은 남성의 성적 대상이자 구원의 여신상이며 공포의 근원을 상징하여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신화는 전승 과정에서 각종 의식을 동반하면서, 그 신성화의 면모가 강화된다. 따라서 전승 집단의 구성원들은 그 내용 자체보다, 그 속에 담긴 정신을 통해서 신화의 존재 의미를 찾게 된다. 신은 하나의 상징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 상징의 의미를 해석해냄으로써 우리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읽어낼 수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여신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남신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해주는 병풍이었다. 그래서 신화 속 여신의 이면을 살펴보면 인류가 여성에게 부여했던 신성한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도서출판 숲, 2009)

*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도서출판 숲, 2004)

* 아폴로도로스 아폴로도로스 신화집(민음사, 2005)

* 게르하르트 핑크 WHO :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예경, 2012)

* 다케루베 노부아키 《판타지의 주인공들(들녘, 2000)

    

 

 

가이아(Gai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는 그녀를 (Ge)’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이 대지’, ‘지구를 의미하는 어원이다. 헤시오도스(Hesiodos)의 묘사에 따르면 가이아는 태초부터 존재한 신이라고 한다. 그녀는 처녀생식을 통해 하늘의 지배자 우라노스(Uranus)를 낳았고, 그와의 사이에서 여러 명의 자식을 얻는다. 따라서 가이아는 크고 작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비롯해 바람, 토양, , 햇빛 등 자연의 근원을 어루만져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 조현설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 2006)

* 김화경 한국의 신화 세계의 신화(새문사, 2015)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창조여신에 관한 신화가 있다. 마고할미 이야기와 제주도에 전해지는 선문대 할망 이야기. 할미는 큰 어머니의 순우리말이다. 할망은 할머니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마고할미는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산을 들어 옮길 만큼 힘이 센 창조의 여신이다. 옛 문헌 기록에 따르면 선문대 할망은 마고(麻姑)’로도 불렸다. 그래서 마고할미를 선문대 할망의 다른 이름으로 보기도 한다. 선문대 할망은 몸집이 매우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 앞바다 섬에 걸쳐질 정도였다고 한다. 잠을 자던 할망이 일어나 방귀를 뀌더니 천지가 만들어졌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은 선문대 할망이 치마폭에 흙을 담아 바다에 뿌려 제주 섬을 만들 때 치마의 터진 구멍 사이로 조금씩 떨어진 흙이 쌓인 것이다. 한라산은 마지막으로 날라다 부은 흙이다. 선문대 할망은 자신의 키에서 나오는 장점을 과신해서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한다. 한라산 물장오리 못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심이 깊어서 터진물이라고 불렀다. 선문대 할망은 이 못에 들어갔다 빠져 죽는다. 신화학자들은 선문대 할망의 최후를 창조신의 지위가 여신에서 남신으로 넘어가는 변화의 결과로 해석한다. 신성성(神聖性)을 상실한 마고할미는 악행을 일삼는 존재(강원도 삼척의 서구할미)로 변형되었다.

 

 

 

 

 

 

 

 

 

 

 

 

 

 

* 문국진 법의학자의 눈으로 본 그림 속 나체(예담, 2004)

* 앵그르(재원, 2005)

*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앵그르의 예술한담(북노마드, 2014)

 

 

 

근대 서구의 남성 작가와 예술가들은 여성에게 거인성(巨人性)을 부여하여 남성 앞에서 전시하는 대상로 설정했다. 여자 거인의 영혼에 신성한 능력’이 제거되고, 그 자리에 남성의 시각과 상상력이 채워졌다.

 

 

    

 

 

앵그르(Ingres)그랑 오달리스크 좀 더 자세히 보면 이 그림 속 여성이 비정상적인 자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녀의 허리와 한쪽 팔이 지나치게 길다. 그림을 분석한 학자들은 그림 속 여성이 정상인보다 척추 세 마디 더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앵그르는 정교한 소묘를 통해 완성된 선()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돋보이려고 의도적으로 해부학적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그림 속 여성이 일어나 서 있는 자세로 그려졌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그녀는 한쪽 팔과 한쪽 다리, 허리만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롭스와 뭉크 - 남자와 여자(컬처북스, 2006)

* 이명옥 팜므 파탈(시공아트, 2008)

    

 

 

보들레르의 시 거녀(巨女)젊은 거녀를 예찬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시에 묘사되는 여자 거인은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풍요로움과 편안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녀가 검은 열정을 품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자연이 힘찬 기운에 넘쳐

날마다 괴물 같은 아이를 배던 그 시절

나는 젊은 거녀 곁에 살았으면 좋았으리,

여왕 발 밑에서 사는 음탕한 고양이처럼.

 

그녀의 몸이 그 넋과 더불어 피어나

끔찍한 희롱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보고

그녀의 가슴 검은 열정 품고 있는지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그녀의 웅대한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며

그녀의 거대한 무릎을 비탈인 양 기어오르고,

또 때로는 여름날 몸에 해로운 뙤약볕에 지쳐

 

그녀가 들판을 가로질러 드러누울 때,

나는 그 젖가슴 그늘에서 한가로이 잘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평화로운 마을이 산기슭에 잠들 듯이.

 

(윤영애 역, 70)

    

 

     

보들레르는 '정복자'의 입장에 되어 그녀의 거대한 신체 이곳저곳 마음껏 탐하고 싶지만(그녀의 웅대한 형체 위로 한가로이 노닐며 / 그녀의 거대한 무릎을 비탈인 양 기어오르고), 여성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그녀의 가슴 검은 열정 품고 있는지 / 그녀의 눈에 서린 젖은 안개로 짐작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 보들레르를 비롯한 19세기 중반 상징주의 예술가들이 팜므 파탈을 대할 때 느끼는 딜레마다. 팜므 파탈은 남성에게 여성이 어떻게 동경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보들레르의 거인 여자는 대지의 어머니가 아닌 근대적 팜므 파탈이다. 보들레르는 검은 열정이 품고 있는 여자 거인을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상대를 매혹하고 이내 파멸로 이끄는 위험한 존재로 본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는 초현실주의적 기법으로 벌거벗은 여성의 신체 크기를 왜곡하여 보들레르의 거녀를 시각화했다. 그림 옆에 있는 시는 보들레르의 거녀원문이다. 방 한가운데 떡하니 서 있는 여자 거인은 왠지 모를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뒷모습만 보인 신사는 여자 거인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보들레르다. 거인 여성의 존재에 압도당하는 신사의 뒷모습은 자신보다 훨씬 큰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마크로필리아(Macrophilia)를 암시하기도 한다.

 

 

 

                    

 

 

구스타브 아돌프 모사(Gustav Adolf Mossa)그녀유혹하는 팜므 파탈유혹당한 남자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모사의 여자 거인은 커다란 젖가슴으로 남성 관객을 유혹한다. 그녀의 유혹에 굴복당한 남성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녀의 머리에 해골로 만들어진 핀이 보인다. 뜯어보자면 그림은 여색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벌거벗은 거인 여자는 남성 관객들을 위한 눈요기 대상일 뿐이다. 남성 화가들은 여성 누드를 선호하는 남성 관객들을 위한 맞춤 전략을 내세웠다. ‘현실 속 여성이 아닌 여신이나 상상 속 여성의 누드를 그림으로써 외설 시비에 벗어날 수 있었다.

 

 

 

                        

 

 

펠리시앙 롭스(Félicien Rops)는 보들레르에게 영향을 받은 화가다. 그가 묘사한 거대한 사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모호하다. 나는 사탄이 쓰고 있는 챙이 넓은 모자를 보고 사탄을 여성이라고 유추했다. (혹자는 사탄의 모자가 농부들이 쓰는 밀짚모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남성 농부만 밀짚모자를 쓰는 건 아니잖은가.) 사탄이 여성이라는 설정 하에 롭스의 그림을 살펴보면 사탄에게서 남성상징주의자들을 매료시켰던 고혹적인 팜므 파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롭스는 악마적인 여성의 본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지의 어머니‘질병과 고통의 천사를 잉태하는 악마로 변형시켰다.

 

 

 

              

 

 

게라케라온나(倩兮女)는 기모노를 입은 중년 여자의 모습을 한 거대한 요괴다. 킬킬거리는 웃음을 지으면서 사람들 앞에 불쑥 나타난다. 일본인들은 게라케라온나가 음탕한 여자의 혼이라고 생각했다.

 

 

 

 

 

 

 

 

 

 

 

 

 

 

* 구사노 다쿠미 《환상동물사전(들녘, 2001)

 

 

 

롭스의 그림을 보면서 일본 괴담에 등장하는 팔척 귀신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심약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팔척 귀신 이미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팔척 귀신이라고 검색하면 기괴한 모습의 이미지가 나온다.) 팔척 귀신은 약 2m 50cm의 큰 키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며 팔과 다리가 굉장히 길다. 그리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다. 2차 창작에서의 팔척 귀신은 어린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쇼타콘(쇼타 콤플렉스의 준말. 예쁘장하게 생긴 미소년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성)으로 설정된다. 이렇다 보니 쇼타콘이 된 팔척 귀신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예쁘장한 외모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남자아이를 유혹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묘사된 여자 거인들을 살펴봤다. 생각보다 글의 분량이 길어져서 어쩔 수 없이 포함되지 못한 내용이 있고, 필자의 역량 부족으로 다루지 못한 것도 있다. 그래서 필자가 소개한 내용만 가지고 역사라고하기에 다소 미흡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여자 거인 이미지들을 짚어보면서 제 입맛대로 여성의 신체를 소유하고 즐기는 남성들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페미니즘 관점으로 미술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대가 온 시점에서 남성의 편견이 반영된 작품들을 수준 이하로 보는 우를 범하지 것이 좋다. 비판과 비난은 엄연히 다르다. 예술의 기본은 다양한 눈을 허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롭스나 모사의 그림은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이지만, 그 그림들을 통해 시대적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근대미술 작품들은 인류의 내밀한 욕망이 화석처럼 남아있는 중요한 기록들이다. 우리는 화석이 되어버린 근대 그림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지금도 여전한 시대적 한계(남성 중심의 근현대 미술)를 규명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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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8-28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더왕 이야기에서도 대지모신인 귀네비어가 하급신으로 추락하는 모습과 많은 여신들이 몰락하는 모습들이 참 가슴 아팠습니다.

그런데 정말 남자들에게 여자는 엄마 아니면 창녀인건가요??

cyrus 2017-08-29 13:35   좋아요 1 | URL
북유럽 신화에도 여자 거인이 나오는군요. 남성중심사회가 되니까 모신의 입지가 줄어들고, 신화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모신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sprenown 2017-08-29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계중심사회에서 부계중심사회로 오면서 남자들의 희번덕 거리던 눈동자가 더욱더 야비해 졌군요..이젠 성평등의식이 확산되어 덜하지 않을까 싶지만, 상품판매,시청률올리기 등 영화 또는 tv 대중매체 때문에 더욱 더 교묘해 진 것도 같습니다.(역사,환타지)소설이나 드라마,게임,만화 등이 이러한 문화전승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지..그렇다고 막 태어나 사내아이에게 여성학강의를 해 줄수는 없을 것이고, 문명발달의 추이를 보면 다시 모계사회로 회귀할 수도 없을 터, 인류의 진화과정이 돌연변이의 역사였던 사실에 주목하여,언젠가 자웅동체의 신인류가 탄생되는 날! 진정한 성평등은 이루어 질것입니다.

cyrus 2017-08-29 13:41   좋아요 0 | URL
남자들이 벌거벗은 여체를 그리고 싶어서 여신을 이용했습니다. ‘벌거벗은 여신‘은 아름다우니까 예술로 인정했지만, 그냥 ‘벌거벗은 여자‘는 음란한 여자로 봤죠. ‘희번덕 거리던 눈동자‘가 문제입니다. 남자들은 여자에 대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습니다. 여자가 마음에 안 들면 욕을 했죠. ^^;;

2017-08-28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8-29 13:43   좋아요 1 | URL
<진격의 거인>을 본 적이 없어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인물에 대한 정보가 다 나옵니다. 그런데 인터넷 정보를 긁어 모아서 언급하고 싶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