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모자를 벗으세요. 여기 천재가 등장했습니다!”
독일의 음악가 슈만(Schumann)이 쇼팽(Chopin)을 음악평론에 소개할 때 한 말이다. 이 말은 쇼팽을 언급할 때 널리 회자하고 있다.
훌륭한 책, 특히 손에 넣기 어려운 훌륭한 책을 만나면 경외감이 느껴진다. 그럴 때, 나는 슈만의 말을 빌려 애서가들 앞에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여러분,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덮으세요. 여기 전설의 책이 등장했습니다.”
《토탈호러 1》(서울창작 · 1993), 《환상특급》(서울창작 · 1994)은 ‘전설의 책’이다. 두 권의 책에 대한 평이 요란한 호들갑으로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이 책들의 정체가 뭐기에 ‘전설’이라고 하는 걸까.
《토탈호러 1》은 ‘공포’를 주제로 한 단편 선집이다. 이 책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썰렁한 괴담집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부분이 있었다. 괴담을 담은 공포물은 단순히 무서움만을 안겨줄 뿐 문학성이 떨어져 있다. 작가들이 쓴 ‘무서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모았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는 신선한 기획이었다. 《토탈호러 1》은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겨냥한 공포소설 단편 선집이었다. 《토탈호러 1》의 역자는 지금도 활발히 장르문학 번역 활동을 하는 박상준 씨다.
※ 《토탈호러 1》 목차
《토탈호러 1》에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빅 네임’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이 포진되어 있다. 고마쓰 사쿄(小松左京)는 일본 SF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은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된 《일본 침몰》(범우사 · 2006)이다. 《토탈호러 1》의 첫 번째 수록작 『흉폭한 입』은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먹는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지금도 《토탈호러 1》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흉폭한 입』을 직접 읽고 싶어서 《토탈호러 1》을 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사실 내가 그 사람 중 한 명이다)
르네 레베테즈 코르테스(Lene Rebetez-Cortes)의 『새로운 선사시대』도 『흉폭한 입』 다음으로 충격적인 설정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 ‘기괴한 형태의 집단’으로 변신하는 설정이 그로테스크하다. 작품 속 세상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불가사의한 힘에 이끌려 줄지어 행렬해야만 하는 괴물의 부분체가 된다.
조지 R. R. 마틴(George R.R. Martin)의 『샌드킹』은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Hugo Award)과 네뷸러상(Nebula Award)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조지 R. R. 마틴은 SF, 공포, 환상 등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작품을 쓴 작가지만, 우리나라에선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원작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샌드킹』은 《조지 R. R. 마틴 걸작선 : 꿈의 노래 2》 (은행나무 · 2017)에 수록되어 있다.
* 《SF 명예의 전당 1 : 전설의 밤》 (오멜라스, 2010)
아서 C. 클라크의 『90억 가지 신의 이름』 수록
* 레이 브래드버리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황금가지, 2010)
『도시』 수록
로버트 블록(Robert Bloch), 아서 C. 클라크(Arthur C. Clarke), 로버트 셰클리(Robert Sheckley),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 커트 보니것(Kurt Vonnegut) 등은 말할 것도 없는 유명한 작가들이다. 로버트 블록은 앨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영화 《사이코(psycho)》의 원작자이며, ‘공포소설의 할아버지’ 러브크래프트(Lovecraft)로부터 문학적 영양분을 얻기도 했다. 『지옥으로 가는 열차』는 1959년 휴고상 수상작이다.
* 옥타비아 버틀러 《블러드차일드》 (비채, 2016)
커트 보니것과 옥타비아 버틀러(Octavia Butler)는 최근 국내에 주목받고 있는 미국 작가이다. 요즘 알라딘 서재에 커트 보니것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독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해리슨 버거론』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미래 사회를 어둡게 그린 소설이다. ‘평등’에 단호히 반대하는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인용할 만한 글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차일드』도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동시에 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외계인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토탈호러 1》을 소개할 때 ‘책 표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표지는 양반이다. 책을 펼치면 소름 끼치는 그림들이 나온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약 빨아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그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오해가 있을까 봐 책은 친절하게 ‘약 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정체를 알려줬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H. R. 기거(Hans Ruedi Giger).
* 《기거》 (아트앤북스, 2003)
* 《H. R. 기거》 (마로니에북스, 2010)
그는 ‘에일리언의 아버지’라 불리며 영화 <에일리언(Alien)> 디자인을 창조한 스위스 출신의 화가이다. 기거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은 그의 기괴한 그림을 ‘공포소설 선집에 어울리는 쌈마이한 그림’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지금은 기거의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는 화보집 두 권이 있다. 기거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고 싶으면 화보집을 보면 된다. 단, ‘19세 미만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아도 할 말 없는 에로틱하고, 잔혹한 그림이 있다. ‘안구 테러’를 할 수 있으니 주의할 것.
이 정도 소개만 봐도 여러분들은 《토탈호러 1》이 ‘전설의 책’이라는 내 평가에 수긍할 것이다. 《토탈호러 1》의 성공(?)에 힘입어 1996년에 《토탈호러 2》도 나왔다. 그런데 2권이 구하기 힘들고, 중고가가 비싼 편이다.
* 《SF 명예의 전당 1 : 전설의 밤》 (오멜라스, 2010)
톰 고드윈의 『차가운 방정식』 수록
*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현대문학, 2015)
『금빛 연, 은빛 바람』, 『태양의 금빛 사과들』 수록
*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53-1960》 (황금가지, 2009)
『동방의 별』 수록
*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아작, 2016)
『마지막으로 멋지게 할 만한 일』 수록
《환상특급》은 《토탈호러 1》에 비하면 무게감이 조금 떨어져 보인다. 《환상특급》에 수록된 작품들도 《토탈호러 1》에 못지않게 문학성이 뛰어나다. ‘장르문학 단편 선집’의 주요 단골 작가이자 SF 문학의 ‘빅 네임’인 아서 C. 클라크, 레이 브래드버리,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 등의 작품이 있다. 이 책이 ‘무게감이 떨어진 책’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빅 네임들의 작품이 최근에 다시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작품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숨어 있는 걸작’이다.
배리 롱이어(Barry B. Longyear)의 『적과 나』는 휴고상, 네뷸러상 2관왕 수상작이며 볼프강 페터젠(Wolfgang Petersen) 감독이 만든 영화 <Enemy Mine>의 원작이다. 팻 머피(Pat Murphy)의 『사랑에 빠진 레이첼』 은 1987년 네뷸러상 수상작이다. 아서 C. 클라크의 『동방의 별』도 1956년 휴고상 수상작이며 제입스 팁트리 주니어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1986년 휴고상 후보작이다.
《환상특급》의 표지도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기거의 그림을 사용한 《토탈호러 1》보다 낫다. 《환상특급》 디자인을 만든 사람은 영국 출신의 화가 패트릭 우드로페(patrick woodroffe). 그는 동화에 나올법한 상상의 세계를 묘사한 환상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그밖에 영국의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정규 2집 앨범 표지 디자인을 제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