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복지의 배신
송제숙 지음, 추선영 옮김 / 이후 / 2016년 6월
평점 :
잠시만요! 사랑하는 이웃님, 제 블로그에 우연히 들어오신 분들, 멀리 계신 재외교포 여러분. 추억의 가요 두 곡 듣고 가셔요.
* 한스밴드 - 오락실 (1998년)
시험을 망쳤어 오! 집에 가기 싫었어
열 받아서 오락실에 들어갔어
어머 이게 누구야 저 대머리 아저씨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우리아빠
장난이 아닌 걸 또 최고기록을 깼어
처음이란 아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용돈을 주셨어 단 조건이 붙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
가끔 아빠도 회사에 가기 싫겠지
엄마 잔소리, 바가지, 돈타령 숨이 막혀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혹시 내 시험성적 아신 건 아닐까
오늘의 뉴스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는 우리아빠
늦은 밤중에 아빠의 한숨소리
옆엔 신나게 코골며 잠꼬대 하는 엄마
가슴이 아파 무거운 아빠의 얼굴
혹시 내일도 회사에 가기 싫으실까
(생략)
※ 요즘 아이들은 이 노래가 수지가 부른 CM송(비타500 광고)으로 알고 있더라...
* god - 어머님께 (1998년)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집에 없으면
언제나 혼자서 끓여먹었던 라면
그러다 라면이 너무 지겨워서
맛있는 것 좀 먹자고 대들었었어
그러자 어머님이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하지만 어머님은 왠지 드시질 않았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한스밴드는 발랄한 10대의 성격을 그대로 투영한 노래들을 발표하며 인기를 얻은 밴드 그룹이다. 한스밴드의 첫 앨범에 수록된 노래 ‘오락실’은 IMF로 인해 실직한 ‘고개 숙인 아빠’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내 기성세대들로부터도 인기를 얻기도 했다. 1999년을 앞두고 있는 무렵, god가 첫 앨범 ‘어머님께’를 들고 혜성처럼 등장했다. IMF 시절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어머님께’는 생활고에 시달렸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감사, 미안함을 노랫말로 표현했다.
IMF 경제위기는 6.25 전쟁 이후 최대의 국난이었다. IMF 한파로 인해 거리로 내몰린 실직자와 노숙자들은 정부를 저주의 눈으로 바라봤다. 직장과 삶의 의욕마저 잃은 노숙자들은 서울역과 시내 각 지하철역으로 몰려들었다. 김대중 정부와 사회 및 종교단체들이 실업자들에게 최소한의 급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노숙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던 서울역은 노숙자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다. 대합실 입구 한쪽을 아예 ‘노숙자 쉼터’로 지정했다. 김대중 정부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저소득층과 노숙자, 노인에 대한 생계지원 등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복지서비스 제공의 틀을 수요자 중심으로 정립했다. 정부는 앞장서서 ‘21세기 창조적 지식기반 국가건설’이란 기치를 걸고 각 부문별 ‘신지식인’을 선정했다. ‘신지식인론’을 등에 업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벤처창업이 그 시대의 으뜸가는 교양교육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송제숙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우리가 다시 떠오르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의 한국사회를 재조명한다. 그리고 지금도 뜨거운 ‘복지’라는 이슈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추적한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와 민생 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최저 생계 기준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으로 ‘복지국가’가 성립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송 교수는 이를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라고 규정한다. 정부는 모든 국민의 생계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부가 내세운 복지는 노동인구의 수를 늘려 양질의 노동력을 충당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즉 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으로 분류했다. 전자는 얼마든지 취업이 가능한 노숙자와 청년 실업자들이며, 후자는 실업 여성에 속했다. 여성 실업자 혹은 여성 노숙인은 복지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정부가 규정한 조건에 충족하는 국민이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같은 해에 나온 한스밴드와 god의 노래 속에 신자유주의 사회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한스밴드의 ‘오락실’ 속 아버지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잔뜩 듣는 무능한 가장이지만, 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실업자다. 반면 아내(또는 어머니)는 삶의 의욕을 잃은 가장들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가정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은 취업 기회가 극히 제한되었고, 실업자로 전락한 여성 근로자는 복지 혜택도 받지 못했다. 재취업이 어려운 여성 근로자는 집안일을 맡았다. 정부는 일자리를 잃은 여성들을 가정으로 돌려보내 경제위기 이후로 급격히 증가한 ‘가족해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나긴 경제 불황은 복지 혜택을 적게 받은 여성 근로자의 생계를 위협했고, 가장 없이 간신히 집안일과 육아를 홀로 책임지는 어머니는 복지 사각지대 속에 살아야 했다. 우리 사회가 ‘어머님께’를 들으면서 흘린 눈물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성의 모성애에 감동한 것이다. 가난 때문에 배고픈 아들에게 자장면 한 그릇을 양보한 어머니의 모습은 숭고한 모성애로 포장되었다.
송 교수의 책은 원래 영어로 된 저작물이다. 학술논문에서 볼 수 있을 법한 딱딱한 문체가 완독을 어렵게 만드는 단점이다. 그러면 저자의 주장이 간략하게 정리된 책의 ‘여는 글’을 참고하면 된다. 이제 복지를 좌파들의 전유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민심을 얻으려는 우파들은 좌클릭을 해서라도 복지 정책 도입을 표방한다. 우파와 복지의 기묘한 만남은 이미 IMF 시절부터 이루어졌다. 좌파 정치인들은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의 통치자가 되었고, 그러면서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침투되었다. 집권 정부의 이념에 상관없이 우리나라는 완벽하지 않은 복지국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