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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탄생 - 차가움을 달군 사람들의 이야기 ㅣ 사소한 이야기
톰 잭슨 지음, 김희봉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인디아나 존스가 19년 만의 공백을 깨고 2008년에 돌아왔다. 중절모에 채찍을 두른 실루엣만으로도 영화 팬들을 설레게 했다. 예순을 넘은 해리슨 포드가 인디 역을 맡아 노익장을 과시했다. 과연 인디는 얼마나 늙었는가, 인디가 찾으려는(실제로 박사의 보물찾기는 도굴 행위에 가깝다) 보물이 무엇일까? 팬들의 무수한 기대 속에 <인디아나 존스 4>가 공개되었다. 젊은 시절 팔팔했던 인디의 모습은 오간 데 없지만 예순임에도 여전히 적과의 육탄전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힘을 자랑했다. 관객들은 나이 든 주연배우의 액션에 실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들이 영화에 실망한 것은 따로 있었다. 영화 초반부에 인디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원자폭탄 실험 현장을 가까스로 벗어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인디는 철통 같은 냉장고에 겨우 몸을 숨겨 폭발 충격으로 튕겨 나와 목숨을 부지한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로 완성한 핵폭발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 장면이 가장 황당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디의 목숨을 지켜준 냉장고는 ‘모니터 톱(Monitor Top)’과 유사한 제품일 수 있다. 모니터 톱은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만든 가정용 냉장고다. 1929년에 선보인 ‘모니터 톱’ 냉장고는 대량 생산으로 100만대 이상 판매 기록을 세워 가정용 냉장고 시대를 열었다. 이 냉장고는 강철 상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텔레비전 광고에서는 모니터 톱이 ‘철갑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그 전에 암모니아 혹은 전기로 작동하는 냉장고가 나왔지만, 사람들은 상자처럼 생긴 기계를 무서워했다. 그 당시 냉장고는 폭발을 일으키는 화재 사고의 주범으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얼음 상자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졌다. 냉장고의 등장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게 된 얼음 장수들은 냉장고에 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면서까지 얼음을 판매했다. 그러나 얼음을 사서 먹는 일에 한계가 있었다. 비위생적인 천연 얼음을 먹고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았다.
냉장고는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바랐던 꿈의 하나였다. 그 꿈속에 위생적이며 신선한 음식을 언제든지 먹고 싶다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오랜 인류의 꿈을 풀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차가움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했다. 《냉장고의 탄생》 8장부터 우리의 주인공 냉장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책의 전반부는 차가움의 원인을 탐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냉장고 등장 이전의 이야기가 참을성 부족한 독자들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냉장고의 역사에서 ‘이 사람’은 절대로 빠져선 안 된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729/pimg_7365531661462498.png)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차가운 눈이 고기를 부패시키지 않고 보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추운 겨울날 눈이 쌓인 곳에 생닭을 파묻었다. 그는 그 과정을 지켜보다가 그만 폐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과학적 방법론을 실천하고자 했다. 냉장고는 열을 이동시키는 기계다. 열을 이동시켜주는 물질인 냉매를 계속해서 압축ㆍ순환시켜 냉장고 내부를 차갑게 한다. 하지만 냉매로 사용되던 프레온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이다. 이를 대체하는 과불화탄소가 등장하여 프레온가스는 사용 금지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냉매를 이용한 냉장고의 등장은 20세기 100대 과학사건 중 하나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인 과학 사건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수소폭탄의 등장이다. 놀랍게도 수소폭탄은 냉장고의 원리를 응용해서 개발된 무기다. 냉장고와 수소폭탄은 용도가 다르지만, 작동 원리가 비슷한 ‘멀고도 가까운 친척’ 같은 기계 장치다. 그렇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부엌의 터줏대감이 된 냉장고들이 불량품이 아닌 이상 갑자기 폭발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냉장고가 24시간 열을 내보내면 ‘전기요금 폭탄’을 맞아야 한다. 냉장고에 열만 나가는 것이 돈도 새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