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라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한다. 정신 착란을 의미하는 무서운 질병인가 하면, 예술 창조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모파상은 ‘광기 속에서 격렬하게 작업한 천재’다. 모파상은 20대 때 매독에 걸려 정신착란 증세에 시달렸다. 모파상은 말년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이곳에서 환상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자신의 소변에 보석이 들어 있다면서 소변을 모으기도 했다. 모파상은 자신만의 세계에 극단적으로 고립된 채 소설을 써내려갔다. 43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단편소설은 무려 300여 편이나 된다. 모파상은 자신만의 특이한 기질, 즉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꿈과 상상의 세계를 소재로 소설을 썼다.
모파상은 단편소설 「어떤 이혼」은 예사롭지 않은 광인의 특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장원, 1996년)에 ‘어떤 이혼의 경우’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모빠상의 사랑》(정음, 2002년)과 《모빠상 단편집》(펭귄클래식코리아, 2015년)에도 수록되었는데, 두 책 모두 이형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번역했다.
모파상 단편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대부분은 작가처럼 정신착란 증세를 보인다. 「어떤 이혼」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신혼 때 무척 상냥한 남편이었으나 갑자기 성격이 돌변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싫증을 느껴 폭력을 가한다. 아내를 피하는 남편은 밤낮 쉬지 않고 꽃이 가득한 온실에 틀어박혀 지낸다. 그는 꽃에 격렬한 집착을 보인다. 심지어 온실의 꽃들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관능적인 여성으로 생각한다. 남편은 자신의 행동이 ‘열정’이라고 주장한다. 아내는 미친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는데, 아내 측 변호사가 남편이 쓴 일기 일부를 증거자료로 공개하면서 아내의 이혼 요구를 옹호한다.
아내 측 변호사는 남편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이상한 왕자의 정신착란’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이제 소개할 인용문을 보게 되면 모파상이 ‘이 사람’을 모티프로 소설을 집필했음을 알 수 있다.
여러분을 납득시키는 데는. 이 가여운 남자, 이 가여운 미친 사람에 의해 날마다 쓰여진 일기의 몇 부분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한 미친 사람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최근에 죽은 불행한 왕자의 정신착란, 바비에르를 순전히 정신적으로만 다스렸던 괴상한 왕의 정신착란을 상기시키니만큼, 더욱 더 이 사건이 호기심을 끌고 흥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경우를 시적 광기라고 부르겠습니다.
여러분은 그 이상한 왕자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그는 자신의 왕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 한복판에 진짜 요정의 성들을 짓게 했습니다. 사물과 장소의 아름다움이 주는 현실조차도 그에게는 충분하지 않아서, 그는 그 거짓말 같은 저택에, 연극무대장치의 방법을 동원한 인조 수평선, 배경전환장치, 생생하게 그려진 숲, 나뭇잎이 보석으로 된 동화의 나라 등을 상상하고 창조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연주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실성한 왕족의 영혼을 시로 취하게 하고 있을 때, 호수에는 백조들이 헤엄치고 곤돌라들이 미끄러지고 있었습니다.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 171쪽)
변호사가 언급한 ‘이상한 왕자’는 독일의 옛 땅 바이에른 공국을 다스렸던 루트비히 2세다. 인용문에 ‘바이에르’가 역자가 ‘바이에른 공국’을 잘못 쓴 건지 아니면 모파상이 실재 인물에 대한 암시를 숨기려고 일부러 ‘바이에른’을 ‘바이에르’로 쓴 건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루트비히 2세에 관한 이야기와 그의 불행한 죽음을 아는 사람들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이상한 왕자’가 누군지 대번 알아차렸을 것이다. 루트비히 2세는 폐위된 지 5일 지난 1886년 6월 13일 호수에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어떤 이혼」은 그해 8월 31일에 발표되었다. 모파상은 예전부터 자신과 똑같이 정신착란 증세가 있는 왕자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루트비히 2세는 ‘미치광이 왕’ 혹은 ‘음악가 바그너와 거대한 성(城)을 엄청 좋아한 덕후’로 평가받는다. 왕자는 어릴 때부터 건물 짓기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청소년 시기에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을 본 이후로 열렬한 ‘바그너 빠돌이’가 되었다. 루트비히 2세는 왕이 되자마자 바그너를 당장 자신의 성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그는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취향 안에 갇혀 살았다. 재위 기간에 호화로운 세 개의 성을 짓게 했는데, 그중 하나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모파상의 소설에 왕자가 지었다는 ‘요정의 성’이 노이슈반슈타인 성일 것이다. 실제로 왕은 스타른베르그 호수에 오페라의 백조가 이끄는 황금빛 배(곤돌라)를 띄웠다.
왕은 정치에 무관심했고, 자신의 성안에 들어가 바그너의 음악을 실컷 들으면서 은거하듯이 지냈다. 장관들은 젊은데다가 멀쩡하게 잘생긴 왕이 정치에 소홀히 하는 모습에 불만을 품었다. 적자를 내면서까지 성을 축조하는 데 열을 올리는 왕이 백성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왕이 동성애자였으니 그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이때부터 루트비히 2세는 ‘미치광이 왕’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의 동생 오토도 형과 똑같은 증세가 있었다. (정말 불행한 형제다) 결국, 왕은 장관들의 계획에 말려들어 ‘강퇴’ 즉 강제 퇴위를 당했다. 굴욕적인 일이 5일 지난 후 왕과 그의 주치의의 시체가 스타른베르그 호수에 발견되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왕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타살로 추측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시체가 발견된 호수가 많이 깊지 않았고, 주치의의 사인이 질식사였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잊히고, 루트비히 2세는 광란에 시달리다가 호수에 빠져 자살한 미치광이 왕으로 알려지게 됐다.
시인 아폴리네르는 루트비히 2세의 사연을 토대로 시를 남겼다. 시집 《알코올》에 수록된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라는 시다. 이 시는 시집에서 가장 긴 내용이다. 아폴리네르라고 하면 가장 유명한 「미라보 다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아폴리네르를 전공한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를 수작으로 손꼽는다.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257행에(!) ‘미친 두 왕’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루트비히 2세와 그의 동생을 의미한다. (황현산 교수는 《알코올》 작품해설에 왕의 동생 이름을 ‘오톤’이라고 잘못 썼다) 아폴리네르는 불행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왕의 처지를 실연당한 자신의 신세와 동일하게 표현했다. 시적 화자(아폴리네르)와 루트비히 2세는 불행한 운명에 희생당한 비운의 인물이다. 아폴리네르는 루트비히 2세를 소재로 단편소설을 썼다. 소설 제목이 「달의 왕」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줄거리가 괴랄하다. 루트비히 2세는 신하들과 함께 지하궁전에 사는데, 그곳에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미녀와 소년들을 상대로 음란한 사랑을 나누는 환상을 경험한다. 소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폴리네르는 루트비히 2세가 ‘달의 기운을 받아 미쳐버린 사람(lunatic)’으로 생각했다.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무너뜨리라고 유언을 미리 남겼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에 하늘 높이 치솟은 민심의 불만으로 인해 성이 무너졌다면 왕이 혼자 즐겼던 성 주변 풍경의 운치를 감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의 선율이 나오지 않았으며 디즈니의 궁전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이쯤 되면 루트비히 2세의 광기가 재평가 각이다. 때로는 광인의 기이한 버릇과 취향이 창조성을 촉발하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