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 18세기 조선의 문화투쟁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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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천, 그는 누구인가?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정조를 개혁 정책과 탕평책을 통해 대통합을 추진하고자 한 개혁군주로써 평가받고 있으며 24년 재위 기간을 일명 ' 정조 르네상스 ' 라고 일컫으면서 세종 시대와 함께 조선의 태평성대로 알려져 있다. 

정조 시대와 관련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연암 박지원이다. 정약용은 자신이 개발한 거중기를 통해 화성 건설에 참여, 주도하였으며 개혁과 개방을 통해 부국강병을 주장한 실학자로써 정로의 총아였으나 정조 사후에 불거진 천주교 탄압에 의해서 유배 생활을 해야했다.  박지원은 청나라 여행을 통해 보고 듣은 견문들을 <열하일기>에 기록하였으며 청나라의 문물을 배워야한다는 이른바 북학파의 영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렇듯 정조 시대는 정약용과 박지원이라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인재의 등장 그리고 화성 축성을 통해서 문예부흥을 이끌고자 하였으며 중국으로부터 고증학, 천주교 등 다양한 학문들이 성리학으로 견고히 다져진 조선으로 유입되는 등 오늘날에도 수많은 역사가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연구대상이 되는 동시에 양면의 역사적 평가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TV 속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서 정조 시대의 미시사가 재해석되고 있다. 

올해에도 정조 시대와 관련한 흥미로운 역사책이 발간되었는데 <정감록>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예언서에 대한 역사적 탐구로 유명한 백승종 씨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이다.  그런데 이 책이 유독 독자들의 눈길을 끌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제목에 있는 ' 불량선비 강이천 ' 이다.  하필 그냥 선비도 아닌 ' 불량 ' 선비다. 그리고 강이천이라는 이름 역시 낯설게 느껴진다. 강이천이라는 자가 정조 시대 때 어떠했길래 불량선비라고 불리고 있는 것일까?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백과사전에 ' 강이천 ' 을 검색해봤는데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768~1801,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 본관은 진주. 자는 성륜(聖倫), 호는 중암(重菴). 아버지는 흔(俒)이다.

1779년(정조 3) 12세 되던 해부터 임금의 총애를 받고 궁궐에 출입하면서 응제시(應製詩)를 지어 올렸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이기설(理氣說)을 토대로 하는 당시의 보편적 학문성향을 탈피하여 고증학적(考證學的)인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사실들을 구명(究明)하는 데 전념하여 전도가 촉망되었다.

그러나 1797년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김정국(金鼎國)에 의하여, 주문모(周文謨)와 접촉하면서 천주교교리를 배우며, 요언(妖言)으로 민심을 혼란시킨다고 보고되어 형조의 탄핵을 받아 그해 11월에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이어 1801년(순조 1) 신유박해 때 옥사하여 주문모와 함께 효수(죄인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음)되었다.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는 간략하게 강이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포털 사이트가 운영하고 있는 검색 사전에서는 이보다 더 간략하게, 그것도 단 네 줄로 설명하고 있었다.    

 

강이천 ( ? ~ 1801 ) 

조선 후기의 천주교인. 본관 진주, 호 중암(). 진사()로서 문명이 높았으나, 1797년(정조 21) 천주교인이라 하여 사학죄인()으로 몰려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신부 주문모()와 함께 효수되었다. 문집에 《중암고(稿)》가 있다.   

-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강이천의 출생연도를 불분명으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거슬렸지만 강이천이라는 사람이 조선 후기 때 활동했던 천주교인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사전 속 내용을 통해서 강이천이 왜 불량선비라고 불리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사교(邪敎)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박해받았던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조선 사대부들 입장에서는 성리학과 위배되는 사교에 가입한 강이천을 불량 선비마냥 바라봤을 것이다.  

 

  

 

  강이천 - 조선의 이상적 공상주의자 

백승종 씨의 책에서는 수많은 문헌들을 통해 밝혀진 강이천이라는 천주교인의 생애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전 속에 있는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강이천의 삶은 그리 평범하지가 않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후손이라는 강이천이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병으로 인해 애꾸눈이 되었으며 심한 종기 때문에 한쪽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강이천은 죽을 때까지 평생 안고 가야 할 신체적 불편함을 이겨내고 어린 나이에 정조로부터 재능을 촉망받았으며 박지원도 그의 능력을 눈여겨 볼 정도였다.  이 정도 능력이라면 강이천은 신체적 역경을 이겨낸 조선 최고의 학자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강이천이 향하는 곳은 양반 집안 자제라면 거쳐야 할 사대부가 되는 길이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성리학적 이념과 정반대인 천주교였다.  당시 천주교 전파에 나섰던 주문모 신부와의 교류를 통해서 천주교에 대해서 관여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정조와 박지원으로부터 사대부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강이천은 왜 그 당시로서는 사학으로 규정되었던 천주교로 전회했던 것일까?  

정조 시대는 근대화의 물결이 한반도로 밀려 들어왔던 과도기적 시대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은 선박을 타고 시시때때로 바다에 출현하였으며 이 때부터 천주교가 들어오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성대의 시대 속에서도 혼란의 시류가 있기 마련이다.  조선 중기 이후에 떠돌기 시작한 <정감록>은 민중들 사이에서는 조선의 말세예언에 대해서 운운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이다.   이런 불안정한 시국은 강이천의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강이천은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사회로는 조선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전망하였다. 개혁적인 정책 도입한 정조마저도 나날이 불안정과 혼란으로 거듭되는 민생을 안정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강이천은 조선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여 새로운 조선의 모습에 대해 꿈꾸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리학적 이념에서 벗어나 단지 가난한 평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건전한 사회의 조선을 만들고자 하였다.    

비록 그가 꿈꾸는 세상은 민속 신앙과 <정감록>의 예언적인 내용이 가미된 이상적인 유토피아였지만 번영을 위해서 민중들의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특히 강이천의 유토피아는 빈민 구제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데 백승종 씨는 강이천을 ' 이상적 공상주의자  ' 라고 규정하고 있다.   

놀랍게도 강이천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유럽의 공상적 사회주의에서 볼 수 있는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오직 노동자계급의 구제에 중점을 둔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 강이천의 사상을 이들의 사회주의 사상과 비슷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계급상으로 힘이 없는 서민들을 구제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강이천은 조선 사회에 걸맞는 이상사회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 - 개혁군주냐 보수군주냐    

 

   

이덕일 <조선 왕을 말하다 2> &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전 2권) 

 

이런 강이천의 비전(Vision)을 지켜본 정조가 이를 그대로 방관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전국 방방곳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정감록>이라는 책이 떠돌기 시작하면서 민심이 불안정하고 있는 마당에 강이천의 비전 역시 정조의 눈으로 봤을 때는 민심의 불안정에 더욱 부채질하는 위험한 사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고증학의 등장까지 더해지면서 조선 사회는 성리학 이외에 여러가지 사상들이 존립하고 있는 방향으로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정조는 내심 이런 사상들의 등장 때문에 조선 왕조 성립의 기틀로서 대대로 내려온 성리학적 이념이 붕괴될 것이며 성리학의 붕괴는 곧 조선의 멸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조선 사대부 권력을 공고히 확립, 유지하기 위해서 문체반정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정조는 문체반정의 일환으로 사대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패관소설과 소품문을 금지하였으며 아예 문체와 문장 작성마저도 전통적인 한문체를 고수할 것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에 반하는 천주교를 ' 서학 ' 이라고 몰아 붙이면서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정조가 아꼈던 인재들, 정약용과 박지원도 정조의 문체반정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셋째 형 정약종이 천주교인이라는 이유,  박지원은 <열하일기>가 잡문이라고 규정받게 됨으로써 두 사람은 문체반정 때문에 잠시나마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이렇듯 정조는 <정감록>, 천주교, 바다에 자주 등장했던 서양인들 그리고 패관소품을 성리학을 배반하는 하나의 반체제적인 요소로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반체적인 사상에 심취하고 있는 강이천이 정조에게는 불량스러운 선비로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백승종 씨는 정조를 성리학 이념을 유지하려는 보수군주였으며 반면에 강이천을 기존의 사회 체제를 유지하려는 상황에 맞선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을 저자는 조선의 ' 문화투쟁 '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조에 대한 백승종 씨의 평가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개혁군주라는 이미지를 뒤엎는 새로운 주장이기도 하다.  특히나 문체반정에 대한 평가는 이전에 <정조와 철인시대의 정치>와 작년에 출간되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조선 왕을 말하다> 2권의 저자인 이덕일 씨의 평가와 사뭇 다르기도 하다.  이덕일 씨는 당시 지배층이었던 노론 세력을 막기 위한 명목으로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던 것이고 성리학이 아닌 중국에서 들어온 고증학과 같은 학문에 너무 치중하고 있는 사대부들의 태도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정조를 둘러싼 두 역사가들의 서로 다른 평가에 대해서 누가 옳다고 판가름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어떤 시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약용 & 박지원 - 지식인의 두 얼굴       

 

 

 

문화의 격동기에 들어선 18세기 조선 후기의 사회 모습을 단순히 정조와 강이천뿐만 아니라 그 시대 속에서 활동했던 정약용과 박지원의 모습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이 책에서 크게 비중을 두고 있지 않지만 읽으면서 정약용과 박지원에 대한 언급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특히 정조의 문체반정이라는 비난의 화살로부터 겨냥을 받았던 이 두 인물의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정조와 강이천 간의 문화투쟁으로 인해 정약용과 박지원에게도 충돌의 불똥이 튀어졌다.  정약용은 정조에게 보내는 반성문에서 자신이 천주교와 관계한 점에 대해서  ' 아이들의 장난 ' 과 같은 일이었으며 자신의 입신이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정조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하는듯한 내용을 쓰기도 하였다.  정조는 박지원으로 하여금 천주교 탄압에 앞장 설 것을 종용하기도 하였으며 이에 박지원은 자신이 군수로 부임하고 있는 지역의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 두 지식인들은 정조의 문화투쟁의 부메랑이 자신들에게 날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문헌에 기록된 내용만을 가지고 정약용과 박지원이 벼슬을 통한 정계 진출의 영달을 위해서 정조의 정책에 동조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지만 오늘날 실학 사상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알려진 정약용과 박지원 역시 성리학의 이념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  

18세기 조선 한반도에서 발생한 문화투쟁으로 인해 강이천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비록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사회는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한 채 그렇게 역사의 먼지로 남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이야기가 있다. 아들인 이카로스와 함께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서 발명가인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새의 깃털들을 모아 붙여 날개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뜨거운 태양 가까이 너무 높게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너무 높게 난 나머지 날개의 밀랍이 녹아버려 바다에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이카로스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도전에 대한 기쁨에 너무 도취한 나머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렇게 어이없는 죽음을 맞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카로스를 자신의 역량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상징하고 있지만 불확실성의 세계에 과감히 한발짝 더 나아가려는 그의 도전 정신은 훗날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태양과 구름으로 이루어진 하늘이라는 광활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든 이카로스처럼 강이천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사회를 뛰어넘을 수 있는 무모한 도전에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내던졌다. 그것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는 조선의 시국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그리고 서민들을 위한 그의 이상사회에 대한 염원은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회의 문제적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기 위해서 신체적, 사회적 역경 속에서도 희망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강이천의 ' 이카로스 드림 ' 이 단순히 문헌 속으로 남아 있기에는 너무 아쉽기만 하다.  강이천은 불량선비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더 먼저 앞서간 생각을 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릴 정도로 대담했던 진정한 선비였다. 그의 시대적 도전 정신은 눈여겨 볼만하며 앞으로도 강이천에 대한 꾸준한 역사적인 연구가 필요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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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2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교가 연결되면, 머리 속이 복잡하면서 판단을 내리기 힘들단 말이예요. ㅠㅠ
천주교 전파가 순수한 의도만 있는 거라면 상관없는데,
제게는 서양의 시커먼 속을 지나칠 수가 없다는거죠. 그러니
천주교에 헌신했던 분들에 대해서도 평가가 복잡해지고, 그로 인해
<공상적 이상주의자>에 대해 무조건 수용이 어렵다는거죠.
물론 제 기질 상으로, 이상주의자나 몽상가가 아닌 것도 한 몫 합니다만.

cyrus 2011-02-21 19:21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에서 설명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강이천과 교류가 있었던
천주교인들도 자신들이 남긴 문헌에 강이천의 사상에 대해서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지 않더군요. 아마도 천주교인들도 강이천만의
생각에 대해서 수용하기 어려웠을겁니다. ^^

sslmo 2011-02-21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지원 관련 부분, 제 생각은 틀려요.
박지원이 강이천의 능력을 눈여겨 봤을지는 모르지만, 강이천의 성품이나 인간성은 폄훼하죠.
이 정도 능력이라면 강이천은 신체적 역경을 이겨낸 조선 최고의 학자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을까요?
그러기엔 강이천의 꿈이 너무 크지는 않았을까요?

암튼 확실한 건...리뷰가 엄청 멋지다는 것과,
강이천에게 있어 정감록과 천주교는 종교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었을거라는 생각~

cyrus 2011-02-21 19:25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 댓글을 보고나니 당쟁으로 치열한 진흙탕의 정계라는
커다란 사회적 장벽 때문에 강이천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나무꾼님
말씀대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에는 힘든 현실일 수도 있었구요. ^^

아이리시스 2011-02-2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강이천이 누군지 모르겠어요, ㅠㅠ

어느 시대든 세상을 바꾸려는 소수세력은 있기 마련인데, 자신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려놓고 무언가를 시도했던 인물들에게는 안쓰러움 같은 것들이 깃들어요. 공개적으로 이름 붙여진 천주교 박해 네 번 있을 동안 정말 엄청난 사람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죽어나갔는데 리뷰 읽으면서 교과서적인 것들의 뒤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이해하게 되네요. 팩트 말고 왜 그랬지? 하는 학자정신이 나온다고나 할까.

cyrus 2011-02-21 19:27   좋아요 0 | URL
저도 강이천이라는 인물을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어요.
기존에 알려져 있는 역사나 우리가 배우고 있는 역사교과서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주류 역사나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겁니다. ^^

반딧불이 2011-02-2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나무꾼님과 나란히 리뷰를 올려주셨네요.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강이천의 글이 있는건가요?

cyrus 2011-02-21 19:31   좋아요 0 | URL
이 책의 참고문헌들을 보게 되면 문체반정에 대한 언급이 있는
글과 책들은 많이 있는데 강이천이 쓴 글은 없는 거 같습니다.
강이천과 관련된 문헌들도 대부분 강이천 사건 당시 기록된
옛 문헌들이기도 하구요,, 아마도 강이천이라는 인물을 대중적으로
알리게 된 책이 백승종 씨의 책이 유일하다고 생각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2-21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반정에서 정약용은 정조의 편에 섰고 박지원은 제대로 벼락을 맞아버렸죠. cyrus 님의 글이 정약용과 박지원은 문학을 보는 시각에서 정반대 진영의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백승종 씨도 정조는 물론 정약용에 대한 세간의 무비판적인 숭배열에도 거리를 두고 있으니까요.

cyrus 2011-02-21 19:3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몰랐던 사실인데 새로운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18세기 조선사에 대해서 급 관심이 생겼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부터 시작해서 정민 교수가 쓴 18세기 조선사에
관한 책까지,, 읽을거리거 더 생겼네요. ^^

잘잘라 2011-02-21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앞에는 서너번 읽어봐도 잘 모르겠더니,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 이라는 설명에는 뭔가 안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결국 제 기억엔 '조선의 이카로스, 강이천'만 남겠죠.^^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 적절한 비유인듯..

cyrus 2011-02-21 21:37   좋아요 0 | URL
제가 건성으로 책 소개와 관련 없이 썼다보니 읽는데 애먹으셨군요. ^^;; 그래도 책 내용은 읽어보면 좋답니다. ^^

2011-02-23 0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2-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던 인물을 알게 되었네요.
관심도서로 찜해놓고 갑니다.
 
인간, ' 대칭 ' 의 매력에 사로잡히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 대칭의 역사 승산의 대칭 시리즈 3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재권.안기연 옮김 / 승산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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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진리와 아름다움에 관한 공부야.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공부야.

- 이언 스튜어트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p 25 -

 

  

 

  불광불급 (不狂不及)   

'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광적으로 덤벼들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불광불급의 열정 없이는 세상에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뜨거운 열정을 마음 한 구석에 품으면서 자신감을 갖고 오랜 시간을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공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를 하든 간에 내가 하는 일에 정신이 나갈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비소로 그때, ' 아! 그래도 내가 열심히 했구나 ' 하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광불급의 열정인 것이다.  

 

  

  수학벽(癖)에 들린 사람들   

수학자라고 하면 단순히 수학을 연구하고 어렵기 짝이 없는 수학 문제들을 푸는데 공을 바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언 스튜어트<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라는 책을 읽고나서는 수학자라는 직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회의 현상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찬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통상 관념 사전> 식으로 ' 수학자 ' 라는 인간을 정의하자면 ' 수학벽(癖)에 들린 사람들 ' 이라고 하고 싶다.

지구상에서 아무도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수학 난제를 해결하는 것이 모든 수학자들이 바라는 담대한 꿈이며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도 길이 빛나게 할 수 있는 영광적인 표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해법으로 어려운 난제를 해결하게 되었을 때 얻는 기쁨의 카타르시스는 어려운 문제 하나에 집요하게 매달릴 수 있는 남들보다 뛰어난 사고력의 힘을 발휘하는 정신적인 근원이며 수학자로서의 삶을 추구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폴 에어디쉬 (에르디쉬, 1913~1996)

 

아마도 수학벽에 들린 진정한 수학자를 꼽으라면 바로 헝가리의 폴 에어디쉬일 것이다. 에어디쉬는 이론이나 개념의 틀을 짜는데 치중하는 수학자가 되기 보다는 특별히 어렵다고 여겨지는 문제들만 해결하려고 하는 일반 수학자들과는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는 하루 최대 4, 5시간밖에 자지 않았고, 극도로 오랜 시간 연구를 계속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그가 수학 해결의 결과에만 집착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문제를 푸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름답고 기초적인 풀이를 얻고자 하였으며 그런 수학 문제 풀이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방랑 생활을 마다하지 않는 보헤미안이기도 했다.  어려운 수학 문제들을 해결하는 공로로 화려한 수상과 상금 경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거의 대부분의 재산을 학생들을 돕거나, 문제풀이 상금으로 내거는 것으로 썼다. 그렇다보니 집도 가지지 않는 무일푼으로 단촐한 삶을 살았다.  에어디쉬에게 수학 문제 풀이는 수학적으로 아름다운 증명의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유쾌한 지적 활동이었던 것이다.   

 

   
  * 본의 아니게 폴 에어디쉬 이야기로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사실 이언 스튜어트의 책에는 폴 에어디쉬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지 않는다. 폴 에어디쉬 이야기는 같은 출판사(승산)에서 출간되었던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지호에서 출간된 <화성에서 온 수학자>(품절)에 소개되어 있다.  
   

 

  

 

 

  ' 수학자 ' 라는 이름의 독한 사람들 
 

하지만 이언 스튜어트의 책에서 등장하는 수학자들은 중에는 폴 에어디쉬보다는 더한 사람들도 있다.  에어디쉬의 수학 문제 풀이 앓이를 뛰어넘는 종결자 정도는 아니지만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수학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았으며 에어디쉬의 생애 못지않은 독특한 생의 이력을 남긴 수학자들도 있었다.    

 

 

  1) 기하학을 연구했던 무명씨의 수학자들

 


 

임의의 각 삼등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부피가 주어진 정육면체 부피의 정확히 2배인 정육면체 작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주어진 원의 넓이와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 작도하기 (출처: 네이버캐스트)

 

 

고대 그리스 때부터 기하학으로는 풀지 못했던 세 가지의 불가능한 문제가 전해내려 오고 있는데  ' 임의의 각을 삼등분하기 ' , ' 원과 같은 넓이의 정사각형 만들기 ' , ' 2배의 부피를 가진 정육면체 만들기 ' 이다.   유클리드의 저서 <기하학 원론>에는 수많은 기하학 명제들과 해법을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는 일말의 언급도 없었다는 점에서 비롯되어 후세의 수학자들 사이에서는 불가능한 작도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특히, 기하학을 가르쳤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 기하학에서는 오직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 사용하여 도형을 작도해야한다고 말함으로써 오랜 세월 기하학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어 자와 컴퍼스만으로도 이 세 가지 작도를 증명하려고 도전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무리 똑똑한 현자들마저 해결하지 못하는 나제일수록 오히려 더 불가능한 문제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되며 열심히 연구하려는 사람은 많아지기 마련이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수학자들은 비로소 자와 컴퍼스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와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로 분류할 수 있다고 결론을 지었으며 ' 해법이 없다 ' 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수천년동안 수많은 무명씨의 수학자들은 플라톤의 정의에 사로잡혀 불가능한 기하학 문제에 매달려야 했다.    

 

  

  2) 병약한 천재, 닐스 헨리크 아벨   

 

 


닐스 헨리크 아벨 (1802~1829)

 

가난한 형편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병약한 기질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오직 하나의 분야를 해결하기 위해서 끝장 보려는 수학자도 있었다.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은 3세기 동안 수학상의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던 5차 방정식의 해법을 탐구하였다. 19세라는 나이에 아벨은 5차 방정식은 기존의 방정식 풀이 방법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음을 증명하였지만 그의 증명 방법이 난해한 나머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수학계의 1인자였던 프리드리히 가우스마저 어려운 수식과 증명으로 가득한 젋은 무명 수학자의 연구 논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정도이다.  젊은 나이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아벨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증명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5차 방정식 연구에 더욱 매진하였다.  

그러나 열심히 수학을 연구하기에는 아벨은 너무나 가난했으며 날이 갈수록 병마로 인해 쇠약해져만 갔다. 그러나 아벨은 자신의 수학적 공로를 통해서 고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동료들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아벨의 연구 결과는 차즘 인정받기 시작하게 되고 독일의 베를린 대학은 젋은 아벨을 교수로 초대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교수 임명직을 알리는 초대장이 도착되기 이틀 전에 아벨은 26세라는 짧은 나이로 불행한 생애를 마쳤다.  

어떻게 보면 아벨의 생애는 정말 불행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이른 나이에 아무도 이루어내지 못한 수학적 성과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19세라는 아직 어린 나이에 사회가 주는 쓴 맛을 맛 본 아벨은 자신의 생활고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학 연구를 통한 안정된 일자리를 얻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깨달았을 터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을 구제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강박관념 속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생의 모든 에너지를 오직 수학 연구를 위해 소진해버렸다.  그런 아벨의 삶은 젊은 천재의 요절을 재촉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3) 불운한 혁명가, 에바리스트 갈루아    

 

 


에바리스트 갈루아 (1811~1832)

 

수학사에서 가장 불행했던 수학자 2명은 앞서 소개했던 아벨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바로 프랑스의 에바리스트 갈루아이다.  아벨은 26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갈루아는 아벨보다 5살 적은 21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아벨보다 더 불운한 경험을 가득찬 삶을 살아야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다. 공통적으로 이 두 사람은 5차 방정식이 분야의 연구로 인정을 받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는 점 그리고 죽고 난 뒤에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던 연구로 인해 수학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는 점에서 보면 이 두 사람의 생애는 흥미롭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갈루아는 수학적 신동의 기질이 나타나고 있었다.  다른 과목의 성적은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수학 성적은 동급생들보다 더 뛰어났으며 오히려 수학 공부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17세의 나이로 5차 방정식에 관한 주제로 첫 논문을 발표했지만 그의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가 논문을 분실한 탓에 인정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자신의 능력을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했던 열혈 청년 갈루아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두 번째 논문 심사에서는 탈락하고 말았고 세 번째로 다른 권위 있는 수학자로부터 심사를 받을 수 있는 논문 제출에 응모했으나 하필이면 심사위원 수학자가 사망하게 되렸기 때문에 갈루아의 세 번째 논문은 또 분실되고 말았다. 

정말 아벨 못지 않게 지독하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런 연속된 불행의 좌절 속에서 갈루아는 자신의 혈기왕성한 열정을 새로운 사회로 개선하려는 7월 혁명으로 향함으로써 세상에 대한 분풀이를 시도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호전적인 기질이 강한 나머지 젋음 특유의 힘을 주체하지 못했던 갈루아는 7월 혁명에 참가했다는 죄목으로 잠시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고 그 사이에 연애 관계까지 맺게 되었다.  자신의 연애 관계가 짧은 수명으로 마감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원인이 될 줄은 그는 알고 있었을까?   

복잡한 연애 관계로 인해 갈루아는 결투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프랑스 남자들에게 결투는 자신의 자존심을 걸린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진다는 것은 곧 죽음이었다.  결투 전날 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하게 되고 갈루아는 자신과 같은 소속인 공화당원이며 절친한 사이의 친구인 슈발리에에게 유서를 남겨둔 채 결투로 인한 총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갈루아가 죽기 전날에 쓴 유서는 지금도 수많은 역사가들의 연구 대상이며 그의 짧은 생애에 대한 수많은 추측들이 등장하고 있다.   유서에는 단순히 죽기 전에 남기는 보통 평범한 내용만 남겨져 있지 않다.  마무리하지 못했던 연구 내용을 슈발리에에게 논문으로 출판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기 하루 전에 갈루아가 급하게 쓰다보니 유서에는 휘갈겨 쓴 수학적 용어와 수식들로 빽빽하게 가득 차 있는데 그 내용에는 훗날 5차 방정식에 대한 연구에 대한 ' 갈루아의 이론 ' 으로 불리게 될 내용에서부터 오늘날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준 군(group)의 이론까지포함되어 있었다.   지금도 갈루아가 고안한 이론들은 물리학, 우주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갈루아는 유서에서 자신이 ' 생각해 낸 ' 이론들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는데 그의 말대로 실현되었다.   

갈루아의 유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생전에 그토록 인정 받지 못했던 5차 방정식 연구를 혁명 참여 와중에서도 천착하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죽기 하루 전날에 영영 무덤으로 가지고 갈뻔했던 자신의 연구 내용들을 유서를 통해서나마 알리려고 했던 그의 모습은 뼛 속 깊이 ' 수학자 '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수학자들만 느낄 수 있는 진리의 아름다움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수학적 지식 하나 제대로 건지기는커녕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앞에서 언급된 기하학 관련 내용이나 군의 이론 등에 대해서 자세하세 설명하지 못했다.  책의 부제는 ' 대칭의 역사 ' 라고 달고 있는데 정작 ' 대칭 ' 이라는 주제에 대한 내용이 아닌 엉뚱하게도 책에도 언급되지 않는 폴 에어디쉬에다가 책 속에서 소개된 수학자들의 생애만 열거하고 말았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주제와 논지에 벗어난 글이 되었음을 뒤늦게나마 알리려고 한다.  

최근에 같은 출판사에서 마커스 드 사토이의 <대칭>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알고 예비독서 삼아서 읽어봤는데 쉽지가 않았다. (이 책 역시 이언 스튜어트의 책보다 한층 더 수준이 놓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수학적 개념을 알기 위한 입문용으로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본문 중간에 수식은 당연히 나온다.  

그렇다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수학적 용어와 수식만 보고 막연히 어렵다고 해서 짐짓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언 스튜어트는 대중들을 위한 수학 전문 저술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미 기본적인 개념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읽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정말 수학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으며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수학적 이론들이 소개되고 있다.  

나는 수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읽는데 애먹었지만 그렇다고 이번 독서가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수학 지식은 건지지 못했지만 수학사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으면 오늘날에도 중요한 내용으로 자리잡은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수학적 개념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학의 역사 속으로 남게된 수많은 수학자들의 업적을 확인하면서 이들이 남들보다 수학 연구에 매달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일반인과는 다르게 수학 문제를 풀면서 얻게 되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었으며 고생해선 찾아낸 진리라는 결과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수학자들은 진리라는 빛나는 진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된 나머지 일반인과 다른 독특한 사람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생전에 제대로 된 평가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발견한 수학의 진주들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느낄 수 없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누리기 위해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집중력을 하나의 수학 문제 해결에 쏟아부었다. 인정을 받는냐 못 받느냐에 떠나서 수학자들은 오직 수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불광불급의 열정을 발산시켰다.  

수학자가 아닌 나로써는 수학자들이 발견해낸 진리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무엇이다라고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학창 시절에 어려웠던 수학 문제를 풀어본 경험을 생각해보면 수학자들이 느꼈던 진리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해답을 찾고 그 해답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인고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가 나오면서 느끼게 되는 짜릿한 기쁨, 그것이야말로 진리라는 진주가 뿜어내고 있는 수학자들을 미치게 만드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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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2-19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자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결과
디자이너=문제를 찾아내고 문제를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해내는 사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 리뷰를 읽었어요. 그랬더니 그렇다면 수학자도 디자이너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과연..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데 몰입한 수학자와, 누군가에게 발생한 어떤 문제(또는 필요)를 해결하는데 몰입한 디자이너의 모습이 다르지 않군요. 흠..

cyrus 2011-02-20 11:26   좋아요 1 | URL
수학자를 디자이너라는 표현이 멋집니다. 디자이너들도 자신만이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서 몰입하기도 하죠. ^^

마녀고양이 2011-02-1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학자는 약간 미친겁니다 란 에세이를 읽고,
수학자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게 되었었죠. 너무 멋지다구요.
무슨 일이든 한가지에 미쳐있고,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 행복하다면
그 생애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구요.

수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미학이라잖아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아름답고 단아한 공식으로 풀어내느냐 역시 중요한 문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이 이해가 가더라구요. 사이러스님두 그렇죠?

cyrus 2011-02-20 11:32   좋아요 1 | URL
저는 고등학생 때 수학 선생님이 폴 에어디쉬 관련 책을 추천하셔서
읽어봤는데 이 사람 참 괜찮더군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요. 수학 용어와 수식이 있는 책보다는
오히려 수학자들의 생애나 에세이가 더 재미있는거 같아요.

마고님 말씀 듣고보니 아르키메데스가 생각나네요. 자신이 죽고나면
묘비명에 자신이 발견한 수학 원리들을 새기라고 유언을 남겼거든요.
정말 수학자들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간결한 공식으로 풀어내는 과정과
결과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sslmo 2011-02-20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칭'은 가지고 있어서 설렁설렁 넘겼어요.
(넘 어려워요~)
'대칭'을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랑 엮으시다니...좀 멋지십니다~^^

cyrus 2011-02-20 11:33   좋아요 0 | URL
<대칭>이라는 책,,, 어,, 어렵나요? ^^;;
아무래도 이언 스튜어트의 책의 부제가 ' 대칭의 역사 ' 라서
읽어봤습니다. 여전히 ' 대칭 ' 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수학의 역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읽어서 좋았습니다. ^^

2011-02-20 15: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0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11-02-20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파란 나비 사진은..제가 오래~전에 어떤 나비박물관에서 찍어온 녀석과 똑같군요.
그걸 자랑한답시고 한 번 어딘가에 인터넷으로 올렸는데..그 이후로 자주 보이는..
설마 그 때 그 사진이 저 사진은 아니겠지이~ㅎㅎ

그나저나, 오랜만에 싸이러스님한테 댓글을 멋지게 달아야지! 하고 왔는데..
수학이라뇨,수학이라뇨...OTL (털썩);;

cyrus 2011-02-20 16:30   좋아요 1 | URL
그래도 오랜만에 댓글 달아주시다니 반갑습니다. ^^
제가 독서 취향이 독특하니 엘신님이 이해해주세요. ^^;;


아이리시스 2011-02-21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학을 엄청 못했어서, 그래도 고등학교 때 이과반으로 갔고, 수학에 대한 책은 이해 못해도 한 번 들춰봐야 속이 시원하고 그럴 때가 있었어요.
학창시절엔 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책이나 이야기를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재미조차도 못붙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전 정답없는 사회과학쪽엔 자신 있었지만 수학공부도 답안지 펴놓고 맞춰가곤 했었어요. 말이 안되죠.

이젠 별 쓸때도 없지만 미드 <넘버스> 보고 수학 엄청 못했던 과거가 좀 억울하던데요.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은 이유불문하고 멋져요. 나쁜 일 빼고요. 제목이 멋진 책인 것 같아요. 수학 아니고 미학 책인줄 알았잖아요,ㅋㅋㅋ

cyrus 2011-02-21 19:35   좋아요 1 | URL
죄송해요, 아이리시스님도 제 글 때문에 착각하셨네요.^^;;
저도 솔직히 수학 문제 푸는 건 좋아했는데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수능 때 수리영역 점수가 개판으로 나왔던거 생각하면,, ㅠ_ㅠ
지금은 수학 문제 푸는 거 좋아하지는 않지만 수학자들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운거 같습니다. ^^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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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든 콜필드의 재림    

 

 

올해가 J. D. 샐린저의 불후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년 작)>이 세상에 나온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단 한 권의 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는 물론 사진 촬영까지 단호히 거부하면서 은둔 생활을 즐기는 ' 괴짜 ' 작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샐린저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특히 <호밀밭의 파수꾼>에 등장하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기존 사회에 반항하려는 문제적인 인물답게 지금도 독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문제적인 평가를 받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존 레논의 암살범 마크 채프먼" 모든 사람들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 " 라는 단 한 마디의 발언으로 소설은 논란의 중심이 되었으며  심지어 전국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이 읽어서는 안 될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현대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으면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매년 적지 않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반항끼가 넘치는 전형적인 10대 청소년을 가리키는 ' 콜필드 신드롬 ' 이라는 용어가 탄생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호밀밭의 파수꾼> 출간 51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나라에 기가 막히게도 우연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한 권의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필립 로스<울분>이다. (미국에서는 2008년에 출간되었다) 

국내에서 새롭게 소개된 필립 로스의 <울분>은 냉전 체제를 겪고 있는 격동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미국의 젋은 청년 마커스 메스너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재미있게도 소설 속 배경은 한 6.25 전쟁이 한창 진행중이었던 1950년대 초이다.  소설에는 당시 6.25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미국의 정세를 간간이 언급되고 있는데 특히 1951년 4월 11일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권한을 정지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나오는걸로 봐서는 이 소설의 배경은 전쟁이 처음 발발했던 1950년에서부터 1953년 사이로 설정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정육점을 운영하고 있는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커스 메스너의 삶의 이력을 읽어보게 되면 메스터라는 인물이 평범하지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자신은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유태인과 관련된 사교적 모임을 피하거나 또는 기숙사 룸메이트로 같은 혈족이나 마찬가지인 유태인이 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오직 법학대 졸업생 대표가 되어 고별사를 한 훌륭한 법률가가 되는 것을 목표를 삼아 공부하는데 열중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과 같은 현실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규제하고 있는 사회 체제나 사회 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 시민의 삶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 사사건건 간섭하고 아버지와 설전을 벌이기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도움을 주려는 코드웰 학생과장과의 면담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압권적인 장면이다.  

코드웰 학생과장은 기존의 평범한 학생의 삶의 방식과 다른 메스너에게 진지한 삶의 조언을 주고 있지만 메스터는 법률가 지망생답게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을 정확하게 인용하면서까지 자신보다 학식의 연륜이 깊은 학생과장 앞에서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삶의 방식을 논리정연하게 반박하여 설명하고 있다.  자신을 간섭하려는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서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리 콜필드를 연상시키고 있다.  소설의 첫 장면이 콜필드가 문제아로 낙인 찍혀버려 스펜서 선생과 면담을 하게 되는 것인데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짜증과 분노를 억지로 참아내면서까지 스펜서 선생의 지적에 어떻게든 넘어가보려고 대응하고 있다.  콜필드는 자신의 감정이 가는대로 반항심 가득한 모습으로 대응하는 식이라면 메스너는 나름 지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있다.   

  

  

  주변인으로 남게 된 마커스 메스너   

무엇보다도 홀든 콜필드와 마커스 메스너는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관계의 흐름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로 반항으로 가득한 홀리 콜필드나 상대방에게 허를 찌를 정도로 박식하고 논리적인 메스너나 결국에는 삶의 행동양식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주변인으로 남게 된 것이다.   

보통 20대의 젊은 시기는 ' 청춘 ' 또는 ' 인생의 황금기 ' 라고 하여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게 된다.  하지만  땅 속 깊이 오랫동안 자랐던 굼벵이가 매미가 되기 위해서는 어둠으로 가득찬 땅 속에서 벗어나 햇빛과 공기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천적으로 가득한 또 하나의 자연 세계와의 만남을 피할 수 없듯이 20대에 들어서는 인생의 관문에도 환경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20대들은 그 동안 집안이나 학교의 울타리 안에 자랐던 ' 청소년 ' 이었다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직업선택, 경제문제, 이전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인간 관계 등으로 이루어진 ' 어른 ' 의 세계에 직면하게 되면 고민과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청소년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원래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애 대한 향수가 남아 있으며 새로운 사회집단에도 부적응을 하게 되는 주변인의 성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부적응한 사회생활을 감당하다 못해 자신을 향한 타인들의 시선마저도 곱게 느껴지지 않게 되며 어느 사회집단의 일원으로 소속되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나는 늘 나 자신을 밀어붙였다. 늘 어떤 목표를 추구했다. 부모를 절대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주문을 전달하고, 닭털을 뽑고, 도마를 닦고, A를 받았다.  (중략) 

아버지의 비합리적인 구속에서 달아나려고 로버트 트리트에서 학교를 옮겼다. 오직 공부에만 집중하려고 클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죽지 않으려고 ROTC에 아주 진지하게 참여했다. 이제 목표는 올리비아 허턴이었다. 나는 그애를 내가 주말에 버는 돈의 거의 반이 들어가는 레스토랑에 데려왔다. 나도 그애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알 만큼 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자, 또 하나의 목표가 생긴 것이다. 2차 대전 직후 중동부의 자그마한 아류 대학의 캠퍼스를 아직도 엄격하게 틀어쥐고 있던 관습의 속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기 전에 성교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 필립 로스 <울분> p 61~62 -  

 

19살의 메스너는 진정으로 ' 어른 ' 이 되고 싶어했다.  세상을 알만큼 알고 있으며 이성을 유혹할 줄 아는 ' 어른 ' 으로 말이다.  열심히 공부에 매진해서 법률가가 되려는 모범생 메스너의 목표 뒤에는 어른의 세계에 안정적으로 안착되기를 바라는 막연한 희망과 동시에 자신의 삶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부담감이 작용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면 법률가라는 좋은 직장도 가지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결정적이 이유는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6.25 전쟁에 참전하지 않는 것이다.  제대로 학업을 관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장밋빛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로 끌러가게 된다.  메스너 역시 냉전 체제가 만들어낸 인류의 비극이 주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에게 6.25 전쟁의 참전은 자신의 장래희망은 물론이고 목숨마저 한순간에 사라지는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메스너에게 젊은 청년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 진심으로 걱정을 하고 조언을 주는 아버지와 학생과장의 말이 삶의 방향을 어렵게 정하도록 만드는 세상에 대한 ' 울분 ' 을 유발하는 듣기 거북한 소음에 불과했던 것이다.    

메스너는 청소년기 특유의 불안에 시달리면서 그것을 떨쳐내버리기 위한 정신적 강박증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에는 피하고 싶었던 비극적인 인생의 결과를 맞이 하게 된다. 젋음의 꽃봉오리를 제대로 피우지 못한 채 6.25 전쟁 참전 중에 20살의 나이로 전사하고 만다.  어른이 되지 못한, 그렇다고 청년이라고 불릴 수 없는  ' 주변인 ' 으로 남게 된 채 마커스 메스너는 1953년에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1951년 미국과 2011년 대한민국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리 콜필드는 3일이라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삶 속에서의 방황의 짧은 여정 끝에 자신을 향한 여동생 피비의 믿음과 사랑 덕분에 드디어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그리워하기까지 한다.  방황과 비행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던 유년 시절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리워지게 되듯이 16세의 콜필드는 이미 어른의 세계로 향할 수 있는 한층 더 성숙된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1951년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콜필드의 나이가 16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콜필드의 나이는 67세이다.  어쩌면 67세의 콜필드는 지금도 51년 전의 방황을 그리워하면서 추억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험난한 인생의 과정을 자신보다 나이 어린 젋은 독자들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울분>의 마커스 메스너는 콜필드의 삶과 비교하면 너무 비극적이면서도 불행하다. 그렇다고 청춘 특유의 열정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전쟁의 포화 속으로 사라져야했던 죽음이  불행하다는 것은 아니다.  콜필드와 같이 자신의 말 못하는 고통을 위로해주고 이해해주는 따뜻한 사랑과 믿음을 느끼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 것이 더욱 불행하다. 그리고 삶에 대한 불만을 수도 없이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메스너는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어느 누구에게도 속 시원하게 알리지 못했고 반항으로 가득찬 울분마저 토해내지 못했다. 그가 울분 대신에 토해낸 것이라고는 그동안 계속 쌓인 채 묵혀왔던 울분들이 가득 차 썩어버린 구토물이었다.   

유일한 외아들에 대해 큰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메스너의 부모는 ' 아들의 부재 ' 로 인한 상실감 때문에 반 미치광이로 되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관계 속에 자란 젋은 인간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역자 정영목 씨의 말을 비유하자면 완전하지 못한 ' 어른 ' 으로서의 메스너가 그나마 최선을 다해서 선택한 끝에 나온 극단적인 결과가 바로 ' 죽음 ' 이다. 그리고 메스너의 죽음은 비단 1950년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며 특정 시대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비극적인 현상도 아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도 마커스 메스너의 후손들이 등장하고 있다. 88만원 세대라고 불리우고 있는 이들은 현재 나이로는 24세이다.  숫자로 따져 보면 사회생활이 어떤 것이지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어른으로 봐도 무방한 나이다.  하지만 24세가 된 88만원 세대들은 여전히 ' 어른 ' 의 세계 속에서 앞날을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불안과 방황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취업이 우선이다. 그러나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이라는 인생의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어떻게든 취업률이 보장되는 대학을 다니기 위해서 한창 놀아야 될 나이부터 공부에 매진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공부는 계속 된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공부에 싫증을 느꼈음에도 이상하게도 대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싫었던 공부를 하게 된다.  학교 도서관 가득히 자리잡아  하루종일 공부를 하는데 그들이 보고 있는 책은 TOEIC과 각종 공무원 시험 교재들이다.  이것이 88만원 세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들에게 자유롭게 캠퍼스를 노닐 수 있는 대학가의 낭만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준비되지 않은 자는 오직 경쟁사회에서 낙오될 뿐이다. 경쟁사회에서의 낙오는 결국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똑같다.  결국 눈 뜨고 살아 있음에도 숨통이 막혀 오는 어른의 세계 속에서 죽게 되거나 정말로 삶의 이중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삶을 조금씩 죄어오는 기형적인 세상 속에서 젋은 세대들은 기성 세대들을 향한 불만으로나마 마음 속으로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성 세대들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모습에 대해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 희망이 없다고 '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1950년대 미국이나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통해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울분>을 읽어봐야 한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저자 엄기호는 오늘날의 젋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는 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하며 그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내놓는 불만과 자조 섞인 답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면 그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하였다.   

만약에 메스너의 아버지 그리고 학생과장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메스너와 같은 1930년대 출신의 전후 세대들의 고민과 방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었다면 못다 핀 꽃 한송이가 되어버리는 세대의 비극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비록 필립 로스의 소설이 구 세대를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사회집단에서 관통하고 있는 세대 간의 단절 그리고 젋은 세대들의 정신적 성장통을 볼 수 있다. 

정영목 씨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고 싶은 것은 감정의 혼란으로 가득했던 젋은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기대하기 위해서만으로 이 소설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비극적인 인물 마커스 메스너로 대표되는 젋은 세대에 대한 삶의 모독이다.   

모든 사람들은 <울분>에서 묘사된 ' 필립 로스 식 ' 세상을 읽어봐야 한다.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없는 기성 세대의 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만드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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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1-02-1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의 폭풍책읽기 도 끝이 보이는구나 ㅋㅋㅋㅋ

그거 뭐지? 오늘 니가 한 말이 하루종일 멤돌았어 아리스토 정치학 말이야

내 대학은사 는 그 책을 20번 이상 읽었다고 하더군~ 자기 밥그릇 이니까 뭐 ㅎㅎ

근데 말이다. 아직도 50퍼센트 반액대매출 하나 한 번 검색해보니까 끝났군 ㅋㅋ

하긴 잘된 일이야~ 난 지금 가지고 있는 책 만으로도 2번 살아도 다 못 읽을테니까 말이다

책은 싸다고 하면 사들이는데 부질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도 오늘은 너 때문에

아리스 아리스 시달렸다 ㅋㅋㅋㅋ 몇 시간 고민끝에 그래 결심했어 안 사는거야 마음

먹었는데 막상 세일 안 하니까 지금까지 내가 고민한 시간이 아깝네~ 시간당 알바를 해도

만원 짜리 이하면 하지 않는데~ 왜 푼돈에 연연하는지 모르겠다. 큰 살마 되기는 글러먹은

거 같다 캬캬캬캬

cyrus 2011-02-19 00:22   좋아요 0 | URL
이제 복학도 해야되니 천천히 독서를 하려고 해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간이 글 한편씩 올릴려고 해요. 그리고 반값할인 하루동안만 하는거에요.
특정 도서를 하루만 반값으로 파는거죠. 저는 그전부터 읽고 싶어서
마침 반값할인한다기에 구입했어요.

아이리시스 2011-02-1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진짜 완전 샐린저 좋아해요.
<아홉가지 이야기> 읽어보셨어요? 단편집이요.
그거 완전 좋아해요.^^

예전에 필립 로스를 한 번 읽었는데 이 작가가 유태인 출신이었나요?
그때도 혼혈 유태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었던 것 같은데.
사실 미국소설이기도 하고, 여러 모로 거부감이 좀 있어서(그래도 샐린저는 짱!)
이 책 나온 거 보고도 큰 기대 없었는데 홀든 콜필드와 비슷하고 우리와도 비슷하다면 읽어볼만 할 것 같아요. 고마워요. 편견도 없애주고, 좋은 리뷰도 보게 해줘서, 아하하.

cyrus 2011-02-19 00:26   좋아요 0 | URL
아니요, 아직 단편집은 안 읽어봤어요. 단편집도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필립 로스 유태인 출신 맞아요. 국내에 필립 로스의 작품이
출간된게 이번에 나온거랑 <휴먼 스테인> <에브리맨> 단 두권뿐인데,
제가 아는 지인은 필립 로스를 선호하더군요. 그래서 읽게 되었어요.
사실 리뷰 이벤트 때문인 것도 있지만요,,^^;;

저도 <호밀밭의 파수꾼>을 감명깊게 읽어서그런지 <울분>을 읽으면서
콜필드가 떠올랐어요. 그래도 마커스 메스너보다는 콜필드가 더 나은거
같아요.

stella.K 2011-02-19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읽고 있는데 평소 미국문학 그다지 안 좋아해서 잘 읽힐까 싶었어요.
별로 두껍지도 않으면서 빨리 읽히는 건 아니지만, 작가가 정말 이야기꾼이구나
싶더군요. 처음 멋 모르고 봤을 때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소설을 이렇게도 쓰는구나. 나름 좋게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 책이 좋다면 저도 늦게나마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봐야겠는데요?^^

cyrus 2011-02-19 19:54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지인분이 필립 로스를 추천해준 것도 있어서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려고 해요. 저도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필립 로스, 참 괜찮은 작가인거 같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02-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작품 제일 먼저 번역본 나온 게 <콜롬버스여 안녕>(삼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입니다.중편 정도 분량입니다.헌책방엔 지금도 가끔 나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2-19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는 그 이전 유태인 작가와는 달리 박해받는 유태인 운운 하는 이야기를 별로 안 하는 게 특징이더군요.이 책들도 그런지 궁금하네요.

cyrus 2011-02-19 19:56   좋아요 0 | URL
알고보니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서 필립 로스를 검색해봤더니
알라딘에서도 찾을 수 없는 70년대에 번역된 작품이 몇 권 있더군요.
물론 노자님이 소개하신 작품도 있었구요,, ^^
저는 필립 로스의 작품으로는 <울분>이 처음이라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에 나온 소설의 주인공이 단지 유태인일뿐 유태인 차별에 관해서는
크게 운운하지 않은거 같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sslmo 2011-02-20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필립 로스'를 '정영목'님 때문에 알게 됐어요.
이 책 울분과 에브리맨에는 그럭저럭 만족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휴먼 스테인'은 좀 우울해요~^^

cyrus 2011-02-20 11:3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에브리맨>에 대해서도 블랑카님도 호의적으로 보시더라구요.
국내에서 소개된 필립 로스 작품이 이 세 권 이외에도
새물결이라는 출판사에 낸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소설도
있는데 알라딘에서는 찾을 수가 없더라구요, 책 제목을 검색하면
찾을 수 없는 책이라고 나오네요. -_-;;

꽃도둑 2011-02-21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리뷰를 읽으면서 저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각지대라고나 할까요?... 제목도 좋았어요...^^

cyrus 2011-02-21 19:38   좋아요 0 | URL
저는 <울분>을 읽으면서 샐린저의 소설이 떠올렸는데,, 지금 글 쓴거 보고나니
너무 억지로 써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예전에 샐린저의 소설을
감명깊게 읽어서 그런지 그런 인상이 떠올린거 같습니다. ^^;;

stella.K 2011-03-0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cyrus 2011-03-04 00:21   좋아요 0 | URL
축하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스텔라님은 리뷰가 당선되었는지
잘 모르겠네요, 알라딘 이벤트 당첨자 공지사항 같은 경우에는
닉네임을 기재하지 않아서 불편하네요,,^^;;

stella.K 2011-03-04 11:36   좋아요 0 | URL
ㅎㅎ 미역국이어요.ㅠ
거 한턱 쏘라니까. 말 참 안 들어요. 그럼 내 이름
가르쳐 줄 수도 있는데...ㅋㅋ3=3=33

cyrus 2011-03-04 22:1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이 서울에 사신다면 서울쯤이야 찾아갈 수 있지만,,
저는 가난한 청년이랍니다. ㅎㅎ

stella.K 2011-03-05 11:0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뜻이 아닌 것 같은디...
모르시면 할 수 없구요.ㅠㅠ

레삭매냐 2011-03-05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 세상을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이근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그가 내게 오렌지 하나를 주면서 말했다.  " 자, 어느 쪽 손에 오렌지 하나를 들고 있는지 말해 보렴. "   " 오른손이요. "  내가 말했다.   " 그럼 이제 가서 거울 앞에 서렴. 네가 보는 소녀가 어느 손에 오렌지를 들고 서 있는지 말해 보렴. "  나는 당황해서 놀라움에 감추지 못하다가 " 왼손이요. " 라고 대답했다.  " 그렇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볼 수 있겠니? "   

나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대답이든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용기를 내서 " 내가 거울 반대편에 있다면, 오렌지는 계속 내 오른손에 있는 게 아닐까요? " 라고 답했다.  나는 그가 웃었던 것을 기억한다. " 잘했어, 앨리스.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대답 중에 가장 훌륭하구나. "  

- 모튼 코언 <루이스 캐럴 : 대담과 회상> 중에서,  

루이스 캐럴, 펭귄클래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서문] p 54 -  

 

  

  386의 딜레마  

<진보집권 플랜>을 읽어보면 조국 서울대 교수는 우리나라 386세대의 모순이 곧 진보 세력 전체의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20대 때 386세대들은 사회적 문제들을 과감히 해결해나가는 실천을 통해서 ' 정치 진보 ' 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 생활 보수 ' 가 되어버렸다는 것이 조국 교수가 말한 주장의 요지이다.  다시 말하자면 머리속에는 진보적인 마음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생활에서는 정작 진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순의 원인을 진보 세력들 사이로 침투된 보수적 문화와 논리의 영향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자신들도 모르게 보수적 논리의 향수에 젖어들게 되면서 과거의 진보적 희망의 불씨가 사라져버렸으며 결국에는 사회를 개선하려는 희망과 의지마저도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외고 폐지 이외에도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 등에 대해서 " 너무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므로 실현 불가능할 것이다 " 라고 예단하거나, " 보수 진영에서 ' 좌파 ' , ' 포퓰리즘 ' 이라고 맹공을 가하지 않을까 " 걱정하면서 포기한 것이죠.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진보, 개혁 진영의 상상력은 쪼그라들었고, 실천마저 과감해지지 못한 것입니다.  

- 조국 & 오연호 <진보집권 플랜> p 74 -

 

  

  진보의 생각를 조종해온 세 가지 논리 

조국 교수는 386세대의 보수화를 정치적 민주화의 성공에 기댄 탓에  ' 관리자 모드 ' 로 되어버린 그들 스스로 문제를 자초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문제 현상의 이면을 살펴보게 되면 보수 진영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큰소리라도 쳐보려는 보수 세력의 심산에 진보 세력은 마음 여리는 사람처럼 쉽게 받아들이고 되레 위축되고 마는 것이다.   

조국 교수는 그런 보수 세력의 심산을 애초부터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보 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의 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통해서 점점 위축되어가는 진보 세력의 문제점을 넘어서 왜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발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보수주의 사상의 창시자라고 불리우는 에드먼드 버크에서부터 랜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 위대한 사회 ' 정책까지 다양한 정치적 사례와 문헌들을 통해서 보수주의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분석 끝에 보수주의의 문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세 가지 논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보수주의자들은 특정 논리들을 이용하여 진보주의자의 이념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허시먼이 주장하고 있는 보수주의자의 반동 레토릭(Rhtoric)에 대한 내용은 우석훈 소장은 국역본 추천사를 통해서 간략하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 그래 봐야 너만 더 힘들어진다 : 역효과 명제  

2. 백날을 해봐라, 아무 일도 안 벌어진다 : 무용 명제  

3. 복지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다 : 위험 명제  

 

역효과 명제는 말 그대로 개혁적인 정책을 도입해봤자 지금보다 실정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뜻이며 무용 명제는 아예 되지도 않는 헛된 일이라고 강력하게 못을 박고 있다. 그리고 위험 명제는 개혁적 정책을 피력하는 진보 세력을 위험 반동분자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들의 결정 때문에 사회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위험 명제의 단적인 예가 ' 국가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다 빨갱이다 ' 와 같은 주장이다.

이처럼 보수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명제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인데 우석훈 소장은 이런 보수주의자들의 ' 무기 ' 들 때문에 진보적 개혁의 시도가 정체될 수 밖에 없었고 개혁 실행 의지에 대한 희망마저 부정하게 되어버리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우석훈 소장이 지적한대로 지금도 우리나라 사회에는 반동 레토릭의 영향이 남아 있으며 특히 보수와 진보 간의 의견 차가 큰 중요한 정책 결정에 보수주의자들은 반동 레토릭을 이용하고 있다.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반동 레토릭을 증명한 허시먼은 책의 결론에서 밝혔듯이 단지 보수세력을 겨낭한 비판을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며 양 세력 간 단절된 소통의 담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수 특유의 레토릭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공격해오는 주장을 또 다시 반박, 방어하기 위해서 진보주의자들도 재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A. 역효과 명제

반동 :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진보 :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B. 위험 명제 

반동 :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 신-구의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 앨버트 O. 허시먼 <보수는 왜 지배하는가> p 226 -  

 

허시먼은 진보-보수 간의 상반되는 명제 대립을 비타협적 레토릭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한 쪽 세력이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면 반대쪽 세력은 무조건 그 의견에 반하는 입장을 보이는 것인데 결국 오랫동안 진보와 보수는 서로서로 레토릭을 이용하면서 승자 없는 대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협점이 보이지 않는 진보-보수 간의 대화에서는 상대 진영에 대한 이해와 양보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반동 레토릭을 이용하고 있는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반동 레토릭을 통해서 보수적 논리를 은연중에 옹호하고 있는 언론매체이다.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반동 레토릭을 진보주의자들도 변형하여 자신들만의 레토릭을 만들듯이 언론매체도 하나의 정치이념을 옹호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 전면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민주당식 복지 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글을 올렸다는 언론보도 내용에서 반동 레토릭의 명제를 발견할 수 있다. 

" 무차별적 전면 무상급식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 공짜 복지의 시작입니다. "  

오 시장이 블로그에서 직접 이런 문구를 썼는지 기사보도 내용대로 12일에 올린 글을 찾기 위해서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봤지만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오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 주장 입장을 언론보도를 접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강력하게 드러내기 위한 기자가 만들어낸 헤드라인일 수 있다.  그러나 언론보도의 헤드라인은 반동 레토릭 중의 하나인 위험 명제를 사용하고 있다.  분별력 없이 내세우고 있는 민주당의 무상급식 정책을 도입하게 되면 총체적인 국가적 예산 낭비를 불러올 수 있으면 결국에는 경제 파탄의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 정책 도입의 문제점에 대한 근거보다는 정책 도입 자체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시간상 또 다른 명제들의 예를 찾아보지 못했지만 이처럼 반동 레토릭은 보수주의자들뿐만 아니라 이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언론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동 레토릭을 사용하는 언론의 탄생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정치적 사항에 대해서 혼란을 겪고 있는 대중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조장할 수 있는 동시에 정치적 사항에 대한 자주적 분별력마저 상실할 수 있는 문제점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게임이론 중에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라는 것이 있다. 도로의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자동차 게임에서 유래되었는데 핸들을 먼저 꺾은 사람은 겁쟁이, 즉 ' 치킨 ' 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불리면서 패배자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게임에서는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충돌함으로써 양쪽 모두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  즉,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이 모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는 이론이다.   

비타협적 레토릭을 오고 가면서 대립과 갈등의 폭이 깊어져만가는 우리나라 진보-보수의 모습은 치킨 게임에 참여하는 두 명의 경쟁자를 연상시킨다.  진보와 보수 세력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절대로 굽히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떻게든 자신의 주장을 관철되기 위해서 상대방 진영을 향해 공격적으로 나서려고 한다.  두 진영의 ' 귀머거리 ' 대화의 사회는 곧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권력 독점적인 사회이다.  무의미한 권력 엘리트 간의 대립은 대중의 영향에서 멀어지게 되면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마저 야기시키게 되며 결국은 사회 붕괴라는 파멸을 맞게 된다.   

공정한 경쟁과 협력을 통한 진보-보수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앨버트 O. 허시먼이 발견한 통찰에 의하면 우리나라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의 원인은 비타협적 의사소통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의 반동 레토릭은 단순히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기이자 방패가 아니라 다른 진영과의 대화마저 피하는 또 하나의 소통의 벽이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폐쇄적인 담론의 종속성에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인 것이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기보다는 반대 입장의 생각을 헤아려보면서 양보할 줄 알며 서로에 대해서 존중할 줄 아는 관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건전한 발전을 지향하는 자세가 없는 한 두 정치 진영의 과도한 경쟁과 불필요한 공명심으로 발호되는 진보-보수 간의 귀머거리 대화는 우리 사회 내 숙명의 문제로 남기게 될 것이다.

 

 

   

* 기사 출처

[오세훈 "전면 무상급식,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 ] 머니투데이 2011.2.13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1021304421490747&outli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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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2-1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386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끌어내기라도 했는데,
보수와 진보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현실을 떠올리면 모순에 답답한 게 참 많아요.
우리처럼 20대도 나이를 먹으면 결국 생활보수화 되어갈지, 원.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제목을 봤을 때 <진보집권플랜>과 반대반향 논지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확실히 우리는 완전한 진보를 논할 위치가 아닌가 봐요. 비슷하네요.
요즘처럼 헛된 데다 돈 쏟고 있는 꼴 보면 무상급식이 아무리 나빠도 그만할까 싶은데, 요즘 언론기사들 제목 너무 선정적이예요, 진짜. 꼭 이간질 시키려는 계략같고. 물론 그런 뉘앙스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요.

cyrus 2011-02-18 01: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나이 먹으면서 생기는 보수화를 부정할 수 없을거 같아요.
요즘 언론기사 보면 어떻게든 이목을 집중시켜보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선정적인 제목이 많긴 하죠.

마녀고양이 2011-02-17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책 주문하면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를 두고 망설이면서
리뷰를 보는데........ 글쎄 사이러스님의 페이퍼가 딱 보이는겁니다.
리뷰 읽고, 그대로 주문장에 던져넣었습니다. 땡스투~ 당근 눌렀어염. 아하하.

우리의 진보는 솔직히 보수와 진보 중간 즈음, 소위 중도라는 어정쩡한 위치라 봅니다.
그거라도 되면 어딥니까, 솔직하게.. 그도 안 되는 위치에서.
복지 국가 어쩌구 남발하는 온갖 정치인들, 다 꼴불견의 극치입니다. (아하하, 강성 발언!)

cyrus 2011-02-18 01:04   좋아요 0 | URL
이 책 정말 좋아요. 분량도 그리 많지 않구요,, 사실 우석훈 씨의
서문만 읽어도 이 책이 뭘 말하고 있는지 90%는 이해할 수 있어요 ^^;;

sslmo 2011-02-18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수나 진보 등의 개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면 다소 과격하지만 '개혁'을 들먹이게 되구요.

이 책의 국역본 추천사를 '우석훈'씨가 썼다니...흥미로운걸요.^^

cyrus 2011-02-18 14:02   좋아요 0 | URL
저도 지금까지 보수 진보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 아래 개념 확립의 선을 긋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모호한 느낌도
들더라구요.. ^^

2011-02-18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8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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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35]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발렌타인 데이의 초콜릿 

어제가 바로 2월 14일,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준다는 발렌타인 데이였다.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발렌타인 데이가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건지 아니면 남자가 여자에게 초콜릿을 주는건지 구분을 못했다. (본의 아니게 모태 솔로 티를 내고 마는구나 , , , -_-;; )   반대로 다음 달 14일, 화이트데이가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것이다.  

비록 발렌타인 데이가 초콜릿을 더 팔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업의 상술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사랑의 감정을 담은 초콜릿을 준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고 좋은 일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여 어떻게든 이익을 챙겨보려는 초콜릿 회사의 지나친 가격 설정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발렌타인 데이 기념 초콜릿 중에서 제일 비싼 가격이 30만원이란다.    

최근에는 수제 초콜릿이 유행이다. 차라리 비싼 돈 주고 사기보다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제대로 된 사랑의 증표를 전달하겠다는 여자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초콜릿 하나 만드는 것도 여간 쉽지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기구들을 구매해야한다. 여기에서도 지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비싼 돈 들어가면서 산 초콜릿이나 고생 끝에 정성스럽게 만든 수제 초콜릿을 평소에 좋아했던 남자한테 용기를 내서 전달했건만 그 남자로부터 퇴짜를 맞게 된다면 그동안 가졌던 희망과 정성은 한꺼번에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사 실연의 아픔이 무척 클 것이다.  

 

 

  자기만의 방     

Stella09님 서재에서 발렌타인 데이에 읽어볼만한 책으로 라우라 에스키벨<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고 댓글로 밝힌 적이 있었다.  책 제목의 ' 초콜릿 ' 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발렌타인 데이가 연상되었을뿐 그 때까지는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발렌타인 데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책장에 박혀 있었던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을 집어들어 읽게 되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단순 연애소설인줄 알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제목처럼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내용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 ' 막장 ' 전개라고 불릴 수 있다.  여주인공 티타페드로를 좋아하는데 막내딸은 절대로 결혼을 하지 못하며 죽을 때까지 평생 독신으로 홀어머니인 마마 엘레나를  돌봐야한다는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가풍 때문에 페드로와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페드로는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면서 어떻게든 티타에 대한 연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었으나 한 순간에 형부-처제 관계로 되어버린 이 두 사람은 언니와 어머니의 시선을 피하면서 은밀하게 사랑의 감정을 나누었다.   

이들의 은밀한 사랑은 마마 엘레나와 언니에게 들통났음에도 불구하고 페드로는 노골적으로 티타에게 추파를 던졌으며 티타는 사랑과 제도 사이에서 복잡한 심적 갈등을 겪어야했다. 가면 갈수록 거세지는 마마 엘레나의 핍박에 의해서 정신적인 고통마저 시달리기도 했다. 

소설 속 티타는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 사랑 ' 이라는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감정을 봉건적인 제도 때문에 억압되어야만하는 힘 없는 여성으로 상징되고 있다. 페드로와의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함에 대한 실연의 상처 그리고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마마 엘레나와 로사우라에게 문전박대당해야하는 힘겨운 시련의 시간을 달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바로 부엌이다.  소설에서는 유독 부엌에서 요리를 만들고 있는 티타에 대한 묘사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티타는 항상 부엌에서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티타에게 음식이란 말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심적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자신만의 치료방법인 것이다. 사랑하는 페드로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가 바로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였다. 그리고 요리를 통해서 자신이 ' 여자 ' 라는 정체성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썼다.   결국 부엌은 티타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순수한 본질과 감정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으며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 자기만의 방 ' 이다.    

 

 

  이들도 한 때 ' 여자 ' 였다 - 나차, 마마 엘레나     

그러나 소설 주인공인 티타만 불우한 것만 아니다. 티타가 요리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귀머거리 요리사 나차의 영향이 컸었는데 나차 역시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어지 못하고 마는 뼈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는 여인이다.  사랑의 좌절감을 맛본 티타에게 유일하게 연민을 느꼈고 정신적 동일감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나차였다. 나차 역시 부엌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자신과 같은 경험을 겪고 있는 티타를 동정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마 엘레나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차는 로사우라의 결혼 피로연 준비를 하며서 그동안 마음 속으로 억눌러져 있었던 헤어진 연인에 대한 감정 그리고 강렬한 그리움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그녀는 갑작스런 심경 변화를 주체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양손에 그리워했던 옛 애인의 사진을 쥔 채.  

소설에서 티타를 모질게 구는 악명 높은 어머니로 등장하는 마마 엘레나 역시 젊은 시절에 사랑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여인이다.  마마 엘레나도 정작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의의 사건으로 결국에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했다. 불행하게도 결혼한 남편이 엘레나의 과거사를 알게 된 순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마마 엘레나는 평생 두 남자를 만났고 삶의 반려자로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한 채 과부로 살았던 것이다.   

마마 엘레나가 유독 막내 티타를 모질게 굴었던 이유는 점점 밝혀지는 엘레나의 과거사를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  티타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에 남편이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엘레나에게는 티타가 옛 연인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히 태어난 죄 밖에 없는 티타에게 삶에 대한 불평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은 티타마저도 자신처럼 지울 수 없는 사랑의 상처를 남기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 특유의 모정을 어쩔 수 없이 가풍이라는 이름 아래 매정하게 대할 수 밖에 없었고 자신의 삶을 봉건적인 제도에 스스로 속박당하는 운명을 선택했다.

그러나 마마 엘레나가 티타를 정말로 악의적인 감정을 가졌으며 정말로 싫어했는지에 대해서는 중요치가 않다.   그리고 엘레나를 단순히 신데렐라 계모를 연상케하는 악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마마 엘레나도 가슴 아팠지만 애틋했던 사랑의 추억을 몰래 간직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세 딸의 어머니이기전에 한 때 사랑이라는 감정에 청춘을 불태웠던 ' 여자 ' 라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한다.  마마 엘레나가 죽은 뒤에 티타는 그동안 봉인되었던 호세라는 옛 연인이 그녀에게 썼던 편지 묶음을 보관한 함을 발견하게 된다.  마마 엘레나는 남 몰래 비밀 보관함 속의 편지들을 읽으면서 호세에 대한 사랑의 추억이 남기고 만 상처를 달랬거나 그리움을 눈물로 삼켰을 것이다.  

 

  

  페드로에 대한 불편한 감정  

솔직히 말자하면 나는 페드로와 티타의 재결합이 못마땅하다.  티타의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며서까지 티타에 대한 연분의 감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페드로의 모습이 정말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페드로는 티타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집착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존재 때문에 괴로워해야하는 티타의 말 못하는 심정을 정작 이해하지 못한 채 티타를 자신의 성적 욕구을 채울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소유하려고 했다.  그리고 존이 티타를 사랑하는 모습에 질투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소설 속 페드로의 모습은 뜨겁기만한 사랑의 감정에 쉽게 타오르고 사랑하는 여자를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남성으로서 전형적인 본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채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고 집착하는 모습은 사랑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병적인 스토커에 불과하다. 나는 티타에 대한 페드로의 사랑을 묘사하는 부분을 읽을 때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히려 페드로를 향한 마음을 담아 만든 티타의 초콜릿은 그렇게 달콤 쌉싸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페드로는 정작 티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타가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아니 그는 티타가 만들어준 음식을 직접 먹어보려는 생각마저 하지 않았다. 그저 티타를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신만의 기호식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티타가 만든 음식에 대해서 티타 앞에서 칭찬을 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사랑이 담긴 진심어린 칭찬으로 보기 어려운 그녀의 비위만 맞춰주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하는 성냥갑

페드로와 진심으로 티타를 사랑했던 의 모습을 비교해가면서 읽게 되면 티타에 대한 이 두 남자들의 태도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티타에 대한 페드로에 대한 태도는 이미 설명했고 존 같은 경우에는 티타의 정신적 고통과 처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였고 티타가 예전에 페드로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에 그는 깨끗하게 티타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게 된다.   

"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뜻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 

-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p 124 ~ 125 -  

 
티타에게 들려주는 존의 성냥갑 이야기는 무척 인상 깊다.  존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성냥갑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성냥개비가 티타였을 것이다. 그러나 티타에게는 자신의 불꽃을 태워줄 수 있는 사람은 존이 아닌 페드로였다.  그런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존에게는 티타와 페드로의 재결합을 인정하기가 쉽지가 않았을 것이고 본인도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티타를 사랑했다. 티타를 위해서라면 그리고 티타의 의견을 존중하여 자신이 한 발 물러섰다.  그야말로 진심으로 티타를 사랑하고 그녀를 이해할 수 있는 진정한 남자였던 것이다.  

존의 말대로 우리들의 심장 어딘가에는 성냥갑 한 개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성냥에 불을 붙일 수 있는 불꽃을 만났거나 반면 여전히 자신의 성냥에 불을 붙여줄 불꽃을 찾지 못한 채 고독의 습기에 축축해지면서 방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성냥갑이 축축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뜨겁게 해줄 불꽃을 찾는 길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불꽃을 찾는게 여간 쉽지가 않다.  나에게 맞는 불꽃인줄 알았지만 나중에 알고보면 성냥갑을 다 태워버릴 정도로 너무 센 불꽃도 있을 것이도 반대로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게 너무 미약한 불꽃도 있기 때문이다. 즉, 너무 세지도 않고 그렇다고 약하지 않은 적당한 불꽃이 필요하다.   

결국에는 고독으로 습기가 찬 심장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아주 적당한 불꽃이란 성냥갑의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불을 붙일 수 있는 불꽃인 것이다.  모든 불꽃이라고 성냥개비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과 정성을 이해하기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서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전달했을 초콜릿들은 몸 안에 흐르는 사랑의 불씨를 지펴줄 수 있는 불꽃인 것이다.  그 중에서 일부는 사랑의 불씨를 지피는데 실패한 여성들도 있을 것이며 어디선가 남몰래 실연의 아픔을 눈물로 달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연당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자신에 대한 여성의 진심어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채 초콜릿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다거나 혹은 연애에 관심이 없어서 거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용기를 무릅씁고 초콜릿을 건내준 상대방 여성의 마음만큼은 이해해주자. 남성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여성들도 말하고 있지만 남성들은 여성이 자신에게 구애를 하면 보편적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구애외 동시에 여성이 준 초콜릿을 거절한다. 

  " 너의 마음만은 충분히 받을께. "  

냉정하게 딱 잘라서 거절하는 것보다는 이런 말 한 마디 해주는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준비했고 혹은 밤 새가면서 서툰 실력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초콜릿일 수도 있다. 예의상 말로만 그렇게 거절하는 것보다는 정말로 상대방이 준 정성이 담긴 초콜릿을 받는 것이야말로 상대방의 진심을 이해하고 실연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받지 않게 해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평생 이성에게 초콜릿 한 번 못 받은 것도 있어서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는 보지는 않았다. 굳이 발렌타이 데이 초콜릿 운운하면서까지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을 향한 상대방의 진심과 이해는 꼭 알고는 있자라는 것이다.  

티나는 핍박과 고통의 삶 속에서도 페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서 홀로 부엌에서 요리를 만드는데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써 페드로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정작 페드로는 그런 티타의 진심어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많은 시련 끝에 끝내 재회하게 되지만 실제로는 이성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이기적인 성격에만 사로잡힌 페드로 같은 남자는 절대로 이성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존처럼 상대방에게 무척 예민할 수 있는 마음 속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고 진심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람만이 진짜로 사랑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능력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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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2-15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콜릿 향이 날 것 같은 제목, 늘 벼렀는데 몇 년째 못 읽은 책이예요.
발렌타인데이 맞아 특별히 간택하신 거예요?,ㅋㅋㅋ
따뜻한 불꽃 하나 맘속에 지피고 싶은 추운 겨울밤이예요, 그죠?
거기도 눈이 많이 내렸어요?

cyrus 2011-02-15 00:26   좋아요 0 | URL
네, 스텔라님 서재에서 그냥 무심코 한 말 때문에 읽게 되었어요.
읽게 된 자세한 이유는 스텔라님 서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연애소설인줄 알았는데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

대구는 17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려왔다고 하네요.
어제 하루종일 내내 눈 내리다가 저녁 때 드디어 그쳤어요.
내일 기상과 동시에 집 앞에 제설 작업 좀 해야겠습니다.
잘 하면 또 새벽에 눈이 온다고하네요 -_-;;

삽하나 2011-02-15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렌타인 데이 따위. 나이 들면 이렇게 됩니다 ㅋㅋ
나도 이제 알라딘에서 놀까해요
슬슬 글 옮겨 오려고 구상중 +ㅅ + 즐겨찾는 서재, 꾸욱. 누르고 싶은데 여기는 어디 있나요???? ㅠㅠㅠ 버튼을 찾을 수가 없네잉;;

cyrus 2011-02-15 10:56   좋아요 0 | URL
서재 사진 밑에 보면 즐겨찾기 버튼 있어요. 삽하나님도 여기서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

stella.K 2011-02-1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결국 읽지도 않았으면서 읽은 척 하신 거로군요. 칫!
그게 막장 전개였던가요?
어쨌든 전 그 책 재밌게 읽었어요. 읽고 누구 줬지만...ㅠ
무엇보다 맥시코의 정서가 우리나라 정서와 일맥상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흡인력이 좋았죠.
근데 쪼꼬렛 먹고 싶어졌어요. 일부러 사 먹진 않아도 누군가 먹으라고 그러면
절대 거절하는 법이 없는데. 문제는 사소한데 있다고, 사 주는 사람이 없어서
못 먹고 있슴다.ㅠㅠ

cyrus 2011-02-15 21:08   좋아요 0 | URL
그래서 댓글 달았을 때 이유를 밝히지 않았어요^^;;
인물 관계는 거시기해도 읽는데 정말 흡인력 좋았어요.
결말이 무척 궁금해 할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줄 사람이 없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별다른 생각은 없는데,,
갑자기 댓글 보니 초콜릿 먹고 싶어지네요 ^^;;

마녀고양이 2011-02-16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란게 워낙 어렵잖아요...
사람의 마음이란게 워낙 헤아리기 어렵고, 거기다 변덕도 심하고.
언제부터인가 사랑 이야기, 남녀 이야기, 그런 영화들을 즐기지 않게 된 것은
이렇게 저렇게 말해도, 정열적인 사랑이란 조금은 허무하다는 생각 때문인가 봐요.

초콜릿을 받으면서, 마음만 받을게 말하는 남자... 글쎄요.
또 어떤 사람은 지나친 이기주의라고 화낼걸요.. 아하하.

cyrus 2011-02-16 21:30   좋아요 0 | URL
마고님 말씀대로 사랑이란게 참으로 어려운 인간의 감정인거 같아요.
이 소설의 결말을 읽으면서 무언가 허무한 느낌도 들기도 했었어요.

starover 2011-02-17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은 페미니즘을 음식 요리법과 함께 드러내려는 방법이 참신한 작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