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흔적을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는 소중한 곳이다. 또 한 번 뜬금없이 헌책방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대한 기사 때문이다. 휴가철이나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가 되면 신문과 TV에서 책방골목이 여행 명소로 추천된다. 오늘 아침에 생각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다가 네이버 메인 화면에 책방골목을 소개한 인터넷 신문기사를 발견했다. 책방골목 관련 기사를 발견하면 끝까지 읽는다. 책방골목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아서 글로나마 책방골목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이다. 오늘 내가 읽은 기사는 교통, 숙소, 식당뿐만 아니라 책방골목 전체 약도까지 친절하게 소개했다.

 

그런데 책방골목을 다룬 기사에는 항상 책방골목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의 댓글이 가장 많다. 부정적인 댓글 대부분은 책방골목을 방문하면서 겪었던 불쾌한 경험이었다. 인터넷 서점 중고샵에서 파는 5000원짜리 책을 보수동 책방에서는 10000원에 샀다는 사람이 있었다. 알라딘 중고샵에서 책을 싼 가격으로 사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불친절한 책방 주인의 태도에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책을 천천히 살피면서 고르려고 하면 책방 주인의 쌀쌀한 핀잔에 못 이겨 그냥 가게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책방에 가면 읽어 볼만한 책도 없다는 내용의 댓글도 있다. 보수동 책방을 안 좋게 보는 댓글이 넘쳐나는 사이에서도 책방을 좋게 보는 댓글이 몇 개 있었다. 마치 성을 공격하는 수많은 적에 대항하는 외로운 전사를 보는 것 같았다. 마음씨 좋은 주인이 운영하는 책방이 있다고 말하면서, 안 좋은 경험만 가지고 보수동 책방 전체를 나쁘게 보지 말라고 호소하는 댓글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헌책방은 지식인과 학생들에게 지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오아시스다. 오아시스 주변에 사람들이 터를 잡아 작은 마을이 생기듯이 보수동 책방골목도 하나의 책방으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50여 개의 책방이 모여 있는 특별한 골목이 되었다. 여기에 거리가 새 단장하면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북 카페까지 세워지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책방골목이 문화 명소로 알려지는 것이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을 관광 명소로 생각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책방골목을 찾는 손님 중에는 과연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약에 필자가 책방골목에 가게 되어 책방 주인과 대화를 하면 반드시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책방골목에 사진 찍으러 오는 여행객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책을 사기 위해서 오는 손님들은 몇이나 됩니까?” 필자는 헌책방에 가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면 무조건 이런 질문을 한다. 장사 수완이 좋지 않은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의 질문이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손님이 점점 줄어드는 책방의 현실에 좀 더 제대로 알아보고 싶고, 주인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레 물어보는 것이다. 책만 사러 오는 손님이지만, 돈 안 되는 책방을 외롭게 운영하는 분들의 마음을 최대한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단골 책방 주인과 가격 흥정이나 외상을 한 적이 없고, 책값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힌 적도 없다.

 

관광은 특정 지역의 풍경을 구경하는 행위다. 헌책방이 점점 사라지는 추억의 장소라고 해서 관광 장소로 소개되는 미디어의 태도를 부정적으로 본다. 헌책방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 좋다. 하지만 헌책방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는 대중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한다. 필자의 눈에는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책방골목이 책을 사려는 애서가들을 위한 골목이 아니라 여행객들을 위한 골목으로 보일 뿐이다. 책을 사고 싶은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헌책방이 여행객들의 사진 배경 장소로 전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화 관광 장소로 만들려는 보수동 책방 주인들의 노력이 과연 독서 문화에 이바지하는 것인지 반신반의한다. 손님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서 파는 일보다 책 가게 주변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만 치중하는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도 해본다. 이러다가 몇 년 뒤에 필자가 가게 될 책방골목이 책 떼로 남은 애서가들의 손길보다는 여행객들의 발길만 가득한 곳으로 변하는 건 아닌지. 부디 책방골목이 여행 관광 장소가 아닌 독서 문화 관광 장소가 되어 애서가의 성지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남녀노소 누구나 책을 마음껏 읽고, 먹고, 보면서 즐기는 도심의 오아시스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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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7-17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든 관광지화 시켜버리는 것이 현실이죠~~ 겉으로만 보고 사진한장을 위해 다니게 되는...
특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 그렇게 되어버린것을 보면 맘이 더 씁쓸해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자고 시작했던일인데 막상 사람은 없어지고 사람들 마저 관광상품화 되어있는걸 보면 더 그렇고요~
차라리 불친절한 그 분들이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5-07-18 15:54   좋아요 0 | URL
사실 책 파는 주인 입장에서는 책 사지 않는 손님들만 부쩍 늘어나는 상황에 신경이 예민하죠. 며칠 전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을 관광장소로 정하자는 바보 같은 구청장이 있었어요. 가난 체험마저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자본주의의 영향력이 무섭기만 합니다.

짜라투스트라 2015-07-17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인터넷 댓글은 안 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실감하네요^^;; 글의 주제와 상관없는 쓸데없는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cyrus 2015-07-18 15: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사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맞는 말씀을 하셨어요. 거짓과 왜곡만 일삼는 허언증에 가까운 댓글이 수두룩합니다. 댓글을 너무 믿어선 안 되고, 너무 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sslmo 2015-07-17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맘에 들어서 댓글 남겨요~^^
전 언젠가 부산 헌책방 거리를 갔다가 완전 깜놀이었어요. 아니 더 최근에는 텔레비젼에서 동묘 벼룩시장이 너무 근사하게 나와서 갔다가 완전 실망한 기억이 있어요. 책이 먼지도 한가득, 읽기도 전에 부숴져 버릴것 같이 낡았더라구요. 책의 용도는 보관이 아니라 읽기위한 것인데 말이죠~--;

cyrus 2015-07-18 15:56   좋아요 0 | URL
항상 TV에 나오는 관광지에 실제로 가보면 실망만 잔뜩 느끼는 것 같습니다. ^^

BEGE 2015-07-17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사는 사람으로써 보수동에 책사는 사람보다 관광객이 더 많다는 데 공감합니다ㅠ 좀 더 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드나들었으면 좋겠네요.

cyrus 2015-07-18 15:57   좋아요 0 | URL
책방골목 관련 기사 댓글 중에 이런 내용도 있었습니다. 책방 주인이 여행객만 받아들이고, 허름한 옷차림의 주민들에게는 냉담하게 대한다고요. 이게 진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AgalmA 2015-07-18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모범이 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중고책을 파는 게 아니라 동네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돋보였어요. 주인장 윤성근 씨가 IT계를 다녔던 덕분인지 그런 네트워크 형성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잘 알았던 거 같아요. 각종 문화인들과 연계해 공연과 낭송회 등도 열고 예전에 한 달에 한번 24시간 문을 열어 밤새 책을 읽는 아이디어(장사는 필시 안 되었겠지만ㅎ)좋았죠. 요즘은 어찌 되었나 모르겠네요ㅎ;
헌책방도 시대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손님이 띄엄띄엄 오가는 고즈넉한 풍경은 사실 우리가 헌책방에 바라는 아날로그 감성이죠. 어느 서점이 그런 식의 적막강산 영업을 원하겠습니까. 다들 너무 영세하지만 헌책방도 서로 연계해 콘텐츠를 만들어주면 싶어요.
위즈덤과 빨간 책방 덕에 팟캐스트와 북카페 혹은 출판사와 북카페가 인기가 끄는 것도 시대를 읽기 때문이니까요.

cyrus 2015-07-18 16:18   좋아요 0 | URL
어제 글을 쓰면서 이상북을 생각했었습니다. 지금도 이상북에 각종 공연과 독서모임을 하고 있어요. 이상북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가게 근황을 확인합니다. 아갈마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너무 낡은 가게 분위기을 젊은 고객들은 선호하지 않으니까요. 책방에 음료수를 팔아도 좋으니까 주인분들이 책을 고르는 손님들을 배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책방의 얼굴은 간판도, 책이 아니라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

2015-07-18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18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7-20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향 2015-07-1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번에 헌책방에서 온라인으로 `설레어함`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3권 15,000원에 다섯 가지 주제 중에 하나를 고르면 그에 맞는 책을 골라서 보내준다고 합니다. 어떤 책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어서 설레기도 하면서, 헌책방 시장을 활성화 시키는 데에도 보탬이 되는 것이라 좋은 취지의 행사 같았습니다. 이런 다양한 행사를 하면서 책을 즐기면서 읽는 문화가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ㅎㅎ

cyrus 2015-07-20 18:57   좋아요 0 | URL
‘설레어함’이라면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서 했던 이벤트 맞죠? 그 이벤트, SNS에서 봤는데 정말 신선했습니다. ^^
 
새의 감각 - 새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팀 버케드 지음, 노승영 옮김, 커트리나 밴 그라우 그림 / 에이도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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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가 혜자와 함께 호수 근처를 지나가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물고기가 한가롭게 헤엄치고 있소. 이게 물고기의 즐거움이오.” 혜자가 말했다. “당신이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장자가 말했다. “당신은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오혜자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물론 당신을 알지 못하오. 당신은 물고기가 아니니까 물고기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오.” 장자는 당신은 이미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서 물었기에, 나도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았소라고 응수했다.

 

장자추수(秋水)편에 나오는 장자와 혜자의 논쟁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느낌과 생각, 더구나 인간과는 종이 다른 생명체를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던져준다.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질문을 던졌다. 박쥐는 고주파의 빠르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어 주변의 사물들에서 반사되어 오는 것을 포착해서 주위 사물들의 배치를 알아낸다. 박쥐의 두뇌는, 쏘아 보낸 고주파와 반향 되어 온 미미한 파동들을 받아들인다. 만약에 인간이 박쥐처럼 음파 탐지 장치로 세상을 지각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때 박쥐가 된 인간은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네이글은 박쥐에 대해 아무리 많은 것이 밝혀진다고 해도, 우리가 박쥐의 경험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주장하였다. 박쥐의 두뇌가 입수된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대해 모든 것이 알려진다고 해도 그것이 박쥐에게 어떻게 드러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만이 생각하고, 감각을 가진 월등한 존재라는 착각 속에 산다. 하지만 동물=본능, 인간=사고란 고정관념은 동물행동학이 발달하면서부터 여지없이 허물어진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동물의 신비스러운 습성이 많지만, 동물도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지각하는 것을 학계가 인정하고 있다. 새의 감각의 저자이자 동물학자인 팀 버케드는 네이글의 논문 제목을 패러디한 부제를 강조하면서 새가 된다면 어떤 느낌인지 들려준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새가 되고 싶었다. 독일 민요 이 몸이 새라면의 노랫말처럼 하늘 높이 뜬 흰 구름까지 날아갈 수 있다. 이처럼 새의 날개는 인간의 지극한 동경심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새가 인간처럼 다섯 가지 오감과 정서를 느끼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새를 인간의 입장으로 생각했을 뿐, 정작 새의 입장이 어떤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새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게 되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새는 종족을 번식하기에 적당한 곳을 찾으려고 무리 지어서 이동을 한다. 공중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일은 먹잇감을 노리는 천적에게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여정이다. 새의 종류마다 다르겠지만, 천적의 위협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안전하게 비행한다. 오리, , 갈매기는 한쪽 눈만 뜬 채 잠을 잔다. 유럽칼새나 수리갈매기는 잠을 자면서 비행을 할 수 있다. 이렇듯 새들의 행동도 인간처럼 두뇌의 편측화(특정한 기능이 두뇌의 한쪽에서 더 자주 발생하는 현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새의 감각 능력은 인간의 감각을 훨씬 능가한다. 우리는 매우 뛰어난 시력을 매의 눈이라고 한다. 흔히 김제동의 눈처럼 작으면, 시야도 좁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안구의 크기는 시력과 시야 확보에 비례하지 않는다. 매는 사람보다 4~8배 멀리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매는 상이 맺히는 부위인 눈오목을 두 개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다오리는 청력이 뛰어나다. 온갖 잡음 속에서도 자신의 새끼가 내는 울음소리를 구분하여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에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가가 아니라 동물학자가 되었다면, 자신이 어린 시절에 달걀을 직접 품었던 일이 실패로 귀결되는 이유를 알았을 것이다. 알을 무조건 따뜻한 곳에 보관한다고 해서 부화하는 것은 아니다. 알은 어미 새에게만 있는 육반이라는 피부 부위의 자극으로 부화한다. 산란기에 접어든 어미 새의 몸에 깃털이 빠지는 부위가 생긴다. 그 곳을 중심으로 혈액 공급이 증가하는데, 이 부위가 바로 알의 온도를 조절하는 육반이다. 이때 육반이 생성되면, 뇌하수체에서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어미 새의 뇌에서 분비하는 프로락틴은 임신한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프로락틴과 상당히 유사한 기능을 한다. 임신 여성의 프로락틴은 뱃속 태아를 보호하는 양수에 들어 있다. 양수 내의 프로락틴은 태아의 탈수를 방지한다.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어미 새와 엄마의 몸속에 있는 호르몬이 새끼와 태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새의 감각은 인간이 새의 지각 능력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미덕이 있다. 현재까지도 새의 지각 능력에 관해서 풀지 못한 수수께끼는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장자처럼 새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모습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오해하지 않아도 된다. 혹독한 자연의 시험을 견디기 위해서 특별한 지각 능력을 갖췄을 뿐이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것 같은 새들은 인간이 모르는 삶의 방식으로 24시간 치열하게 살아간다. 책 속에 소개된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알면 그들의 강한 생존력에 연민이 느껴진다.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소박한 신념을 다시 강조해본다. 알면 사랑한다.’ 팀 버케드는 새를 알면 새가 세상을 보고, 듣고, 맛보고, 이해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새의 감각을 읽을 때는 오감을 활짝 열어놓으시길.

 

 

 

 

※ 215쪽에 '동물은 꽤ㅈ 먼 거리를'이라는 문장 일부가 잘못 인쇄되었다. (내가 읽은 책은 2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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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f I were a bird... 가정법은 맨날 이 문장으로 배우죠. 새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 이 책을 읽으면 좀 나으려나요? 박쥐 시력이 굉장히 낮다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나는데 그걸 안다고 하더라도 박쥐가 정보를 조합해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생각을 알 수 없다.. 흥미롭군요 그건 그렇고 표지는 참 감각적이에요.

cyrus 2015-07-17 17:22   좋아요 0 | URL
If 문장을 성문 아니면 맨투맨에서 본 것 같아요. 맞습니다. 박쥐가 시력이 낮아서 초음파로 사물을 인식하죠. 올해 나온 책 중에 표지가 마음에 듭니다. 알라딘 책 베개 표지로도 사용되었어요. ^^

페크pek0501 2015-07-1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을 많이 봤다 싶었는데, 제가 글에 인용한 적이 있어서네요.

˝새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게 되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 늘 잡혀 먹을지 모르는 환경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니는 동물들에 비하면 이것만으로도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요. 요즘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 철이 조금, 아주 조금 들려고 하나 봐요. ㅋ

cyrus 2015-07-17 17:2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오랜만에 동물 관련 책을 읽다가 감명을 받았습니다. ^^

수이 2015-07-1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그래도 새가 여전히 무서워;;; 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거겠지만;; 이 두려움은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

cyrus 2015-07-17 17:27   좋아요 0 | URL
어떤 새는 무서워하세요? 비둘기? 요즘 비둘기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더군요. 새 떼가 하늘 위에 날거나 갑자기 다가오면 무섭긴 해요. ㅎㅎㅎ

도가도비상도 2015-07-17 0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 이거 심리철학에 나오는 감각질에 대한 사유실험 내용이네요 cyrus님 정말 엄청난 독서가시네요~

cyrus 2015-07-17 17:28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아직 안 읽은 책도 많고, 항상 공부하면서 새로운 걸 배운다는 마음으로 책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

프레이야 2015-07-17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강렬한 표지, 사은품으로 받은 북파우치랑 같아서 깜짝!! 리뷰 늘 참 좋아요^^

cyrus 2015-07-17 17:28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올해 나온 책 중에서 표지가 제일 좋습니다. ^^
 

 

 

 

 

 

 

15차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가 나온다. 올해로는 세 번째. 시리즈가 3개월 마다 출간되기 때문에 16차 시리즈는 10월에 나올 것이다. 이번에 나오는 고전 작품은 오승은의 《서유기》와 현장의 《대당서역기》다. 《서유기》는 《삼국지연의》, 《수호지》, 《금병매》와 함께 중국 4대 기서로 알려졌다. 《수호지》는 작년 7월 올재 클래식스 11차 시리즈로 총 4권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이 정도 출판하는 기세라면 언젠가는 《삼국지연의》마저 올재 클래식스 버전으로 만날 가능성이 있다. 이왕이면 《금병매》, 특히 한 곳이라도 삭제가 되지 않은 완역본으로 재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총 10권으로 된 솔출판사의 《금병매》가 절판되는 바람에 알라딘 중고샵에서 나온 10권 세트의 가격이 10만이 넘는다.

 

 

각설하고, 《서유기》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그리고 삼장법사의 좌충우돌을 그린 이야기로 당나라 현장법사가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나면서 기록한 《대당서역기》를 명나라 사람 오승은이 허구와 환상적 분위기를 가미해 지금의 소설로 완성했다. 《대당서역기》는 현장이 16년 동안의 수도 여행 중 보고 들은 것을 귀국한 후 쓴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나라의 수는 137개국이나 된다. 각 나라의 풍속, 절과 승려의 수 및 불탑과 그 유래 등이 서술되어 있다. 《서유기》 또한 《삼국지연의》처럼 판본이 다양하다. 원래 지금의 《서유기》가 완성되기 전까지 현장의 여행기는 무대 공연을 위한 희곡으로 각색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작가가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서 여러 가지 판본이 나오게 되었다. 《서유기》는 통쾌한 유머와 함께 현실 세계의 추악함과 타락상을 반영한 작품이기도 해서 해학의 재미를 더 하고 있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여 LA 다저스에서 뛰던 해에 

인터넷에서 떠돌던 합성 사진, 일명 'LA 서유기'

 

왼쪽부터 류현진(저팔계), 삼장법사(돈 매팅리  감독),

사오정(잭 그레인키), 손오공(클레이튼 커쇼)

 

 

 

《서유기》 원전을 읽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삼장법사 일행의 이름은 기억한다. 나 같은 8090세대는 허영만 원작의 TV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를 보면서 손오공을 기억했다. 만화의 영향 때문인지 나는 《서유기》의 손오공이 여의봉을 사용한다는 것을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전까지는 손오공의 무기 아이템이 쌍절곤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쌍절곤의 진짜 주인은 이소룡이었다. '드래곤볼'의 주인공 이름도 손오공이다. 《서유기》라는 작품 자체를 완전히 몰랐던 꼬꼬마 시절에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과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서로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지 혼자 상상한 적도 있었다. 이렇듯, 손오공이라는 이름은 친숙하다. 사오정, 저팔계, 삼장법사도 마찬가지다. 한때 사오정이 손오공보다 인기 많았던 적이 있었다. 기억하시는가. 1998년에 최불암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었던 사오정 시리즈를.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특성을 빗대어 유머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했다. 오랜만에 추억의 사오정 시리즈 하나를 소개해본다.

 

 

수업시간에 사오정이 손을 들더니 말했다.

 

사오정 : 선생님, 칠판 글씨가 안 보이는 데요.

선생님 : 너, 눈이 몇이냐?사

오정 : 제 눈은 둘이죠.

선생님 : 그게 아니고, 눈이 얼마냐고?

 

선생님은 사오정의 황당한 대답에 그만 기절하고 말았다.

 

사오정 : 예? 제 눈은 안 파는데요.

 

 

아차차, 추억에 젖으면서 글을 쓰다 보니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올재 클래식스의 《서유기》의 번역은 중국 연변인민출판사 번역팀이 맡았다. 2004년에 10권으로 나온 현암사판 《서유기》를 그대로 옮겨서 재출간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 번역팀의 《서유기》는 명나라 금릉 세덕당(世德堂) 판본, 명나라 양민재 판본, 명나라 때 출간된 이탁오 판본, 청나라에 나온 판본 등을 참고했다. 원래 현암사판에는 중국 화가의 삽화도 실려 있다. 일단 직접 책을 사서 확인해봐야겠지만.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에서는 삽화가 수록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만약에 삽화까지 포함했다면 올재 클래식스의 《서유기》가 총 4권의 분량으로 나올 수가 없다. 아무튼 10권으로 이루어진 완역본을 그대로 옮기되, 분량을 대폭 줄여서 재출간하는 올재의 출판 능력이 대단하다. 글자 크기를 작게 인쇄했기 때문에 4권의 책으로 만드는 일이 가능했다.

 

 

책은 오는 17일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교보문고(인터넷, 광화문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그 다음날인 18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전국 교보문고 매장에서 책을 찾아볼 수 있다. 한 권당 2900원, 《서유기》 전 4권과 《대당서역기》의 가격을 모두 합산하면 14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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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충격이네요... 지난 올재 클래식스 산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시간 빨리 갑니다. 살지 말지 좀 고민되네요. 삼국지연의는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ㅎㅎ

cyrus 2015-07-16 16:59   좋아요 0 | URL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 신간 소식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리즈가 나오는 달이 되면 어떤 책이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만약에 제가 북 스탠드에 혹해서 5만 원을 책 사는데 썼으면,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를 사지 못했을 겁니다. ㅎㅎㅎ

돌궐 2015-07-15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출판사에서 나왔던 대당서역기가 권덕주 선생 번역인데, 이 책이 올재에서 다시 나오는 거군요. 절판된 책인데 잘됐네요.

cyrus 2015-07-16 17:0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몰랐던 사실입니다. 올재가 절판된 책을 다시 펴내는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

sslmo 2015-07-15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옛날에 서유요원전을 만화로 읽다말았는데, 그림체가 너무 안예쁘고 답답하니까 재미가 반감되더라구요. 어린시절 동화책에 나오던 그 귀여운 삼장법사랑 손오공은 어디가서 찾아야 하려나~(,.)
제가 성이 서가라서 그런지 서유기하면 왠지 한번 더 돌아보게 돼요, ㅋ~.

cyrus 2015-07-16 17:03   좋아요 0 | URL
저는 서유기를 모티프로 만든 만화 ‘최유기 시리즈’를 봤어요. 원래 ‘환상마전 최유기’부터 봤으면 좋았을 텐데 ‘최유기 리로드’부터 보는 바람에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서 보다 말았어요. ㅎㅎㅎ

킹하데스 2015-07-1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현암사판 서유기,솔출판사 서유기 문학과 지성사 서유기 이 셋중에 문학과지성사 서유기가 번역이 훨씬 좋더군요.......

cyrus 2015-07-17 17:30   좋아요 0 | URL
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국내 서유기 번역본에 대해서 궁금했는데, 하데스님의 의견을 참고하겠습니다.

붉은돼지 2015-07-19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저도 어제 대구교보에서 15차분 구입했습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사모을 작정입니다
혹시 모르니 10월에도 페이퍼 함 올려주세요~~^^

cyrus 2015-07-19 19:54   좋아요 0 | URL
잘 됐군요. 올재 출판사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면 붉은돼지님 폰으로 출판 소식이 문자로 날려 옵니다. ^^

붉은돼지 2015-07-19 19: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This is Gauguin 디스 이즈 고갱 This is 시리즈
조지 로담 지음, 슬라와 하라시모비치 그림 / 어젠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어젠다출판사의 ‘This is’ 시리즈는 재미있는 일러스트를 곁들인 미술책이다. 출판사 소개에 의하면 그래픽 아티스트 평전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번역된 아티스트는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록, 폴 고갱이다. 평전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내용 중간에 화가의 작품들을 설명하기도 한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예술가의 일화도 볼 수 있다. 시공사, 마로니에북스, 예경, 한길아트 같은 출판사에서 만드는 화가 시리즈들을 읽으면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화가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공부하려는 독자들이라면 참고하면 좋은 책이지만, 미술 비전공자에게는 딱딱한 서술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This is’ 시리즈는 미술 비전공 독자들이 읽기에 아주 적합한 책이다. 또 책값이 착하다. 그러나 《디스 이즈 워홀》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리즈들의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는 낮다. 디스 이즈 시리즈 중에서 가장 낮은 세일즈 포인트를 기록한 책은 《디스 이즈 고갱》이다.

 

고갱은 워홀, 달리, 폴록과 비교하면 국내에서 인기가 낮다.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전시회에서 고갱의 타히티 그림들이 선보였지만, 한때 절친한 동료였던 반 고흐의 인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고갱도 반 고흐처럼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뒤늦게 인정을 받아 가장 비싼 화가의 대열에 올랐다. 반 고흐를 이해하는 데에 고갱의 존재감을 그냥 넘길 수 없다. 반 고흐는 고갱과 함께 노란 집에 머물었을 때 고갱에게 많은 영향을 받으려고 했다. 또 르누아르, 피사로, 모네 등이 활동하여 근대 유럽에 맹위를 떨쳤던 인상주의의 위력이 떨어지고 있을 때, 인상주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넘어서려고 한 사람이 바로 고갱이다. 타히티의 원시적인 자연을 묘사하고자 했던 고갱의 정신은 훗날 피카소와 마티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인상주의(근대미술)에서 야수주의, 표현주의(현대미술)로 이어지는 회화의 흐름의 중간 지점에 고갱이 있었다.

 

 

 

 

 

 

 

 

※ 이 책에 고쳐야 할 내용이 있다. 이 그림은 고갱이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한 「누드 습작」 (1880년)이다. 누드모델은 고갱의 집에서 일하는 하녀 쉬잔이다. 그래서 이 그림을 ‘바느질하는 쉬잔’이라는 제목으로 부르기도 한다. 벌거벗은 쉬잔의 몸 전체를 감싸는 밝은 색의 흔적은 인상주의 회화에서 빛의 효과를 강조할 때 쓰는 기법이다. 그런데 《디스 이즈 고갱》의 12쪽에 보면 누드모델의 이름이 ‘쥐스탱’으로 소개되었다. ‘쥐스탱’(Justin)은 프랑스 남자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누드 습작 또는 바느질하는 쉬잔」의 프랑스어 작품명은 ‘Etude d'une Femme Nue, Suzanne entrain de Coudre’이다. ‘쥐스탱’(Justin)이 아니라 ‘쉬잔’(Suzanne)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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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5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를 노란 집도 원래 고갱 집 아니었어요? 기억이 가물가물.. cyrus님이 소개하는 명화들 잘 보고 있습니다^^

cyrus 2015-07-16 17:05   좋아요 0 | URL
반 고흐가 노란 집에 있는 방을 얻었습니다. 방을 마련하고 난 뒤에 반 고흐는 고갱에게 아를에 있는 노란 집으로 오라고 초청합니다. ^^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많은 자화상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자화상이라고 해서, 거울에 비추듯 자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외부에 비치고 싶은 이미지, 오래 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거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이미 큰 명성을 얻었던 렘브란트 역시, 자화상 속의 자신이 좀 더 거장답게 보이길 원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렘브란트의 자화상에는 어두운색과 그늘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제 젊은 날의 모습은 없고 늙고 볼품없는 노인이 있다. 렘브란트는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에 주목하면서 평생 자신을, 아니 영혼까지를 화폭에 담아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을 철저하게 살펴봤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점점 늙어가는 삶에 대한 초탈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반 고흐의 자화상은 극도의 불안감에 대한 적극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자화상에는 일관되게 심각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강렬한 시선이 있다. 절망하는 한편에 도전의식이 자리 잡고, 불완전하고 불안해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항상 무언가를 갈구한다.

 

이름난 화가 중에는 유독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많다. 반 고흐와의 악연으로 알려진 고갱 또한 자화상을 많이 남겼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고갱의 인기는 반 고흐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반 고흐의 그림은 꾸준히 복제되고, 그의 이름이 들어간 노래는 지금도 라디오에 흘러나온다. 반면, 고갱의 이름은 반 고흐가 일으켰던 귀 절단 사건을 소개할 때에만 언급될 뿐이다. 이 이야기에서 고갱은 반 고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최악의 파트너가 된다. 고흐의 자해 소동이 신문에 보도되어 동네 전체에 퍼지게 되자, 고갱은 아무 말 없이 노란 집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귀는 그 자신이 자른 것이 아니라 펜싱을 했던 고갱이 잘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 올드한 세대라면 반 고흐의 치열한 삶을 그린 영화 ‘열정의 랩소디’에서 고갱 역으로 분한 앤서니 퀸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반 고흐의 엄청난 인기에 밀리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고갱은 과소평가를 받고 있다. 고갱의 자화상이 반 고흐와 렘브란트의 자화상 못지않게 흥미로운 그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알고 보면 고갱도 반 고흐처럼 불행한 일을 많이 겪었다. 반 고흐와 렘브란트처럼 고갱도 기쁨과 슬픔이 느껴지는 자화상으로 자신이 처한 주변 상황을 이야기했다. 

 

 

 

 

 

폴 고갱 「이젤을 앞에 둔 자화상」 (1885년)

 

 

 

고갱이 1885년에 그린 자화상을 보라. 인상주의 회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초창기 때 제작한 것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냥 평범한 느낌을 주는 자화상이다. 그렇지만, 자화상에 묘한 긴장감이 가득하다. 그림 속 고갱은 뭔가 쫓기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고갱이 앉은 공간이 비좁아 보인다. 고갱의 한쪽 손은 이젤로 향해 있지만, 붓을 확실하게 쥐어지지 않고 있다.

 

이 자화상의 제작 시기는 고갱이 화가가 되려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3년 차로 접어든 해이다. 원래 고갱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먹고 살기에 충분했던 주식중개인이었다. 이때 당시만 해도 고갱에게 미술은 취미였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맺었지만, 모네와 르누아르는 고갱을 독창성이 부족한 아마추어 화가로 여겼다. 1882년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고갱은 실직자 신세로 전락했다. 고갱 가족들에게는 실직자가 된 가장의 모습에 절망했으나 고갱 본인은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할 중대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덴마크 사람 부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림에 전념하기로 했다. 곧 마흔을 앞두는 남편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아내는 탐탁지 않았다. 아내의 냉정한 태도는 외로이 그림을 그리는 고갱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대중과 평론가들은 고갱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이 있는 보금자리와 화가들의 세계, 둘 중 한 곳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고갱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불만족스럽고, 그림에 대한 내적 고민이 많았다. 「이젤을 앞에 둔 자화상」은 그림에 열중하는 화가의 모습이 아니라 불투명한 미래 앞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가장의 모습이다. 좁게 느껴지는 공간은 고갱의 열악한 삶을 보여준다.

 

 

 

 

 

 

폴 고갱 「레 미제라블」 (1888년)

 

 

 

「이젤을 앞에 둔 자화상」을 그리고 난 뒤, 3년이 지나서야 동료 화가들은 고갱의 능력을 인정했다. 고갱은 브르타뉴 지방의 퐁타방이라는 시골 마을에 머물면서 친분이 있는 화가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토론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퐁타방 파’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화가 모임이 만들어지면서 고갱은 퐁타방 파를 이끄는 대표 화가로 인정받았다. 이때가 고갱의 첫 번째 전성기였다. 1888년에 제작된 「레 미제라블」은 성공대로를 걸으면서 한결 여유로워진 ‘화가’ 고갱의 표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1885년에 그린 자화상에 비하면 색채가 상당히 밝아졌다. 고갱은 자신을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으로 묘사했다. 그림 오른쪽 하단에 ‘레 미제라블, 빈센트, 그리고 고갱’이라는 사인이 있다. 고갱은 이 자화상을 반 고흐에게 선물로 주었다. 친분이 있는 화가들은 자신의 모습이 있는 자화상을 서로 주고받았다. 반 고흐가 먼저 자신의 자화상을 고갱에게 주었고, 이에 대한 답례로 고갱은 「레 미제라블」 자화상을 제작한 것이다. 서명 위에 있는 사내의 옆모습이 그려진 그림은 퐁타방 파 소속 화가였던 에밀 베르나르의 초상화이다. 베르나르는 고갱과 반 고흐와 친했다.

 

하지만 고갱은 여전히 자신이 대중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실 그가 주도한 ‘퐁바방 파’는 새로운 기법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화파였으나 인상주의파의 영향력만큼으로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외면 받은 장발장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반 고흐와 베르나르에 비하면 고갱은 이들보다 좀 더 앞선 화가임은 분명했다. 고갱이 아무리 장발장 코스프레를 했어도 고갱 특유의 매서우면서도 생기 있는 눈빛은 그대로다. 고갱은 눈빛으로 자신이 반 고흐와 베르나르보다 한 수 더 위라는 점을 은근히 과시한다.

 

 

 

 

 

 

폴 고갱 「황색 그리스도 있는 자화상」 (1890년)

 

 

「황색 그리스도 있는 자화상」은 고갱의 자화상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왼쪽에는 1889년에 완성된 「황색 그리스도」가, 오른쪽에는 자신의 얼굴을 그로테스크하게 형상화한 도자기 병이 놓여 있다. 자화상은 거울에 비친 상을 그리는 장르라서 예수의 얼굴이 오른쪽 아래로 향해 있다. 이 자화상에서 예수는 예술가의 고뇌를 상징한다. 고갱은 예술에 대한 외로운 투쟁을 경건하게 묘사하기 위해 예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그림 왼쪽에 배치했다. 항아리 병은 고갱이 그토록 동경했던 '야만', '원시'를 상징하는 페르소나다. 그는 문명의 때에 묻지 않은 고귀한 야만인이 되고 싶은 문명인'이었다. 파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타히티로 가서 '야만'의 가면을 써서 타히티 사람이 되었고, 다시 파리로 돌아올 때는 '야만'의 가면을 벗고 문명인이 되었다. 고갱의 세 가지 얼굴을 그린 작품으로, 화면 안에서 화가는 자신의 다양한 인격적 측면을 보여 준다.

 

 

 

 

 

 

폴 고갱 「골고다 근처의 자화상」 (1896년)

 

 

 

「골고다 근처의 자화상」에서 고갱은 예수로 변신했다. 그러나 고갱의 표정은 침울하다. 검은색으로 가득한 골고다 언덕은 고갱을 집어삼킬 듯하다. 예수라기보다는 늙고 지친 병자처럼 보인다. 말년의 고갱은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해 다시 열대의 섬으로 돌아가서 초라한 여생을 보낸다. 파리는 고갱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했고, 가족과 동료 화가들은 그의 곁을 떠났다. 매독과 피부병은 노쇠한 고갱을 더 지치게 하였다. 이제 고갱을 기다리는 것은 바로 죽음.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 저승사자가 고갱을 노려본다. 고갱은 목덜미에 스치는 저승사자의 눈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생기 잃은 고갱의 눈빛에는 삶에 대한 미련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예술가의 자화상은 더 이상 단순한 인물화에 머물지 않는다. 화가의 얼굴은 저마다의 경험과 세상의 풍파에 의해 음영이 달라진다. 자화상은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림이다. 우리는 저만치 떨어진 거리에서 캔버스 안에 남아있는 한 사람의 인생 드라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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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6펜스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죠. 자유로운 영혼이여.. 첫번째, 세번째 자화상만 봤었는데요.. 렘브란트 자화상을 보면 당시 그가 앓았던 질병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cyrus 2015-07-15 18: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최근에 고흐의 자화상을 통해서 고흐의 병명을 추정하는 연구 결과도 나왔어요. 몸의 소설은 아직 안 읽어봤습니다. 고갱 책을 더 찾아봐서 읽은 뒤에 소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

yamoo 2015-07-1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고갱이군요!! 고갱에 관계된 미술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그의 자서전 격이 책도 봤습니다. 근데, 아직달과 6펜스는 완독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관심있는 화가를 보니 반갑네요...데이비드 호크니도 함 다뤄주세요. 저 완전 좋아하는 화가입니당~ㅎ

cyrus 2015-07-15 18:16   좋아요 0 | URL
저도 몸의 소설은 안 읽어봤습니다. 그래도 고갱의 실제 삶 자체가 드라마틱합니다. 그가 처한 상황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족을 외면하고 타히티 소녀들을 자신의 성적 욕구를 푸는 대상으로 여기는 고갱의 모습이 불편했습니다. 나중에 호크니의 책을 다시 잃어봐야겠어요. ^^

바람향 2015-07-1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갱보다는 <달과 6펜스>를 먼저 읽었는데요. 주인공이 이제 자신만의 삶을 살겠다며 가족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는데, 그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 주인공이 실제 화가인 고갱이었다는 것을 알고 고갱의 삶이나 작품들을 찾아보기도 해서 제게는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책과 화가네요^^ㅎㅎ cyrus님~ 미술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ㅎㅎ

cyrus 2015-07-16 20:05   좋아요 0 | URL
어렸을 적에 위인전으로 반 고흐와 고갱이 누군지 처음 알았어요. 두 사람의 삶에 관한 책을 읽으니까 위인전에서 봤던 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었어요. 특히 고갱이 아내와 자식이 있는데도 원주민 소녀들을 정부로 삼은 사실은 충격적이었어요.